제 2화
2화 - 내가 알던 그 세계
#1
세이브 더 브락시아.
전 세계를 강타한 싱글 패키지 게임이었다.
2011년.
유명한 게임이 등장했었다.
7년, 8년이 지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게임이자, 중세 판타지 배경의 오픈 월드 RPG로서는 감히 대적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고 평가받는 게임.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이었다.
훗날 그래픽이 더욱 발전된 ‘위처 3’나 ‘GTA 5’ 같은 게임도 많이 등장했지만, ‘스카이림’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스카이림’만 찾게 된다는 마성의 게임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세계 최대의 화제작!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공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려고 왔습니다! 이곳은 장충 체육관입니다!”
모니터 안에서 유명 BJ가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좋겠네.
누구는 지금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딸랑-.
손님이 왔다는 종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오늘도 창식이 형님이 찾아왔다.
언제나 자극적인 냄새를 뿌리는 햄버거 세트를 들고 오셨다.
“잘 먹겠습니다.”
“이젠 인사도 안 하냐? 그보다 너도 보고 있구나.”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방송을 흘끗 보며 말을 건넸다.
손님도 없는 심야에 찾아와 말동무라도 해 주시는 걸 보면, 감사하기도 하다.
항상 올 때마다 햄버거 세트도 사다 주시고 말이야.
모니터 안에서는 장충 체육관에서 녹화된 영상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채팅이 미친 듯이 올라가는 것을 보아, 꽤나 반응이 뜨거웠었던 모양이었다.
“같이 와서 보시죠.”
“나는 이미 생방송으로 봤지. 인마. 봐라, 엄청 신기할 거다.”
형님은 몇 가지의 주전부리를 사서 밖으로 나가셨다.
통화를 하는 형님을 뒤로하고, 영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안내를 받아 올라간 캡슐.
그곳의 내부까지 꼼꼼하게 비춰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역시 유명 방송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적절한 입담과 지루하지 않게 하는 진행 능력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자! 이제 드디어 앉아 봅니다. 크으……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지고 지렸습니다!”
“그럼, 연결하겠습니다.”
안내원은 친절했다.
외국인으로 보였는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흠…… 이거 꼭.
“에이 설마.”
그 녀석들이 지구로 넘어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진짜 소설에서 볼 법한 내용이 일어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5년 동안 내버려 뒀을 리도 없고.’
그러고 보니, 게임 이름도 심하게 마음에 걸렸다.
“이미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곳인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휙휙 돌아봤다.
아직도 그곳만 생각하면 예민해지곤 했으니까.
거의 트라우마나 다름없는,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풀 다이브, 실행합니다.]
화면이 돌아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가 풀 다이브를 한 BJ의 뇌파와 심장 박동 같은 안전에 관련된 수치를 체크, 기록하는 화면을 보여 주었다.
호오, 나름 체계적이구나.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이, 이게 진짜…….”
[브락시아 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낯선 이여.]
“……근데 이 게임사 언제 적 드립을 치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고소가 흘러나오는 저 드립을 아직도 치는 게임이 있다니.
스트리머는 플레이어의 시야로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아아, 이게 방송용 무인 카메라인가 보군요. 이야, 촬영 구도도 설정할 수 있고, 모드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군요.
역동적인 연출이 가능한 전투 카메라 모드.
평소에 캐릭터 움직임을 잘 볼 수 있는 3인칭 일반 모드.
상황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해 주는 1인칭 일반 모드.
마지막으로 특정 스폿을 광활하게 촬영해 주는 배경 모드까지.
아직은 이 정도 기능밖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밖에도 많은 모드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멍하니 빠져들게 되는 영상이었다.
“저기요?”
“아, 네.”
“계산해 주세요.”
어느새 한가득 물품을 들고 있는 손님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나 보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헛기침으로 무마하곤, 무뚝뚝하게 계산을 해 주는 중에,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
“이거 되게 재밌을 거 같아요. 지금 다들 난리래요.”
“저도 처음 봤는데…… 대단하네요.”
“저도 돈 모아서 꼭 해 보려고요. 이건 대출받아서라도 사야 되는 거겠죠?”
“능력이 된다면요.”
듣기 좋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답을 해 주었다.
음……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데.
브락시아 대륙에 있을 때 들었던 성가대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수고하세요!”
봉투에 담아서 건네자,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고는 다다닥,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제법 인상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잠시 멈춰 두었던 동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BJ가 보였다.
“오늘은 베타 테스트이기 때문에 간단한 튜토리얼과 미니 보스까지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해요!”
[안내를 따라가십시오. 본편에서는 해당 안내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극한의 자유도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게임이었다.
이정표도, 메인 스토리도 알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그것이 세이브 더 브락시아가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히야-. 이거 보세요. 풀 살랑살랑 흔들리는 거 보여요? 바람에 맞춰서 흔들리고, 떨어지고……. 흙 감촉도 진짜 같아요. 전투가 어떨지 진짜 기대됩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세상을 구현해 놓았다.
보는 내내 시선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1시간 정도 되는 긴 동영상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문득 그곳에서는 내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BJ는 자유롭고 발랄하게 움직였다.
-와, 이건 빚내서라도 산다. 무조건 산다!
-지렸구연, 오졌구연! 이건 인생겜 각이구연!!
-와…… 진짜 말도 안 나온다. 그래픽 뭐 이래?
-본인 방금 이세계에서 환생하는 상상 함!
-근데 그게 게임으로 나옴!
-엌ㅋㅋㅋㅋㅋ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수도 없이 많은 채팅들이 주르륵 올라갔다.
동체 시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면 차마 다 읽지도 못했으리라.
[전투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덩굴이 올라오고, 이끼가 끼어 버린 낡은 탁자 위에 여러 무기가 놓여 있었다.
녹슨 검, 방패, 활과 화살 등등.
BJ는 하나씩 만져 보며 리뷰를 했다.
“와, 이거 보세요. 금속의 질감 하며, 손에 감기는 느낌 하며 진짜 검이에요. 완-벽합니다.”
-편-안.
-완-벽.
-갓-겜.
-이 사람들 보솤ㅋㅋㅋ
-ㅋㅋㅋㅋㅋ나도 만져 보고 싶다.
말하는 장면마다 명장면.
BJ가 화면 가까이 무기를 보여 줄 때,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라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인지, 설렘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저 BJ가 들고 있는 검은, 내가 살고 있던 브락시아에서 흔히 보던 양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일반 병사나 징집병에게 주어지는…….
“보레아스식 브로드소드.”
“이름이…… 띄워 드릴게요.”
[낡은 보레아스식 브로드소드]
[공격력 : 5]
“하!”
머릿속이 번쩍였다.
게임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방송.
그리고 게임.
브락시아와 ‘알고 있던 것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맹렬하게 돌아가던 생각은 한순간에 뚝 그쳤다.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또 치열하게 달려가긴 싫은데.”
귀찮음이 몰려왔다.
왜?
하루하루가 훈련의 연속이었다.
악을 쓰며 구르고, 베이고, 찢기고, 모욕당했던 나날들.
약하다며, 영문도 모르는 나를 패고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가증스러운 새끼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때문에, 얼굴에 피가 몰렸다.
“돈이나 벌고, 내 집이나 마련하자.”
게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랭커가 될 생각도 없고, 죽자고 엔딩을 보는 것도 사양이었다.
그저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소소하게 공략하고, 영지를 가꾸고, 그 돈으로 빚을 갚는 것.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것.
“돈이 좀 생기면 이 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도 때려치워야지.”
정식 발매일까지는 한 달.
어차피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가상 현실 게임.
이것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이 2만 개네.”
조회 수가 1,300만.
댓글은 2만 개.
대부분 호평 일색인 내용이었다.
댓글에서 눈을 뗀 후,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이 동영상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투 파트였다.
“그, 그런데 맞으면 아플 것 같은데요?”
-그러게.
-실제로 통증 느껴지면 아파서 못 할 것 같은데?
-에이, 생각이 있으면 아프게 안 했겠죠.
대부분은 그럴 리가 없다는 소리를 했다.
터벅터벅, BJ가 걸어가자 가장 기초적인 몬스터인 고블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생한 울음소리.
울퉁불퉁한 가죽에 흐르는 체액까지, 기억 속에 들어 있는 고블린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케륵-! 하며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고, 들고 있는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위협하는 동작까지.
“와, 진짜 괴물 보는 것 같습니다. 긴장돼서 죽겠네요.”
가상 현실 게임은 키보드나 마우스, 그리고 패드와 같이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
운동 신경이 좋은 사람이 아무래도 조금은 유리하겠지.
전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장 궁금한 것은 대미지를 입으면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대미지를 경험하겠습니다.]
“어?”
그 순간, BJ의 몸이 굳었다.
고블린은 상당히 영악한 몬스터다.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힘차게 휘둘러진 나무 몽둥이가 플레이어, 해당 BJ의 팔뚝을 내리쳤다.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별로 안 아픈데요?”
상처가 난 부위에는 황금색의 폴리곤 덩어리가 날렸다.
눈을 질끈 감은 BJ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고블린은 열심히 때리고 있었지만 체력은 닳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시스템의 영향이겠지.
“아, 안 아파요! 그냥 저릿한 정도네요. 맞았다는 느낌은 확실하게 드는데, 아파서 몸서리칠 정도는 아니에요. 오오, 잘해 놨네.”
-다행이네.
-여윽시, 킹갓겜.
-이제 죽여 봐야죠?
채팅 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비되었던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서걱-!
그 뒤로는 뻔하지 뭐.
어설프게 검을 휘둘러서 고블린을 처치한 그가 환호성을 질렀다.
“크으-! 손맛 진짜 끝내줍니다!”
피는 붉은색이 아니라 황금색이었고, 부위가 절단되어도 내장이나 뼈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 폴리곤 덩어리로 대체가 되었다.
심의를 정말 적절하게 지켜 낸 것 같은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일아. 그래서 할 거냐? 큰형님에게 말씀드려야 하거든.”
창식이 형님이 통화 중에 들어와서 휴대폰을 툭툭 두드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식이 형님의 표정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