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화 (프롤로그) (1/279)

제 1화

프롤로그

“지, 진짜 도망치는 거냐! 이 비겁한 새끼야!”

난데없는 욕설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

시큼털털한 하수구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서 있는 몇 명의 인원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왔다.

번쩍이는 마법진 중앙에 서 있는 동양인 남자가 입가를 비틀어, 씹어 뱉듯 말했다.

“비겁? 지랄하네. 늬들이 멋대로 잘 살고 있는 외부 사람을 납치한 거잖아?”

“우리가 전해준 것들은! 그것으로 대가를 다 했다고 생각했건만!”

남자, 최강일은 평범한 한국인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에 들어가 군대를 다녀왔다.

취업 준비를 위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졸음이 몰아쳤고, 눈을 떠보니 이계라는 곳에 떨어졌다.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빨리빨리 일어나라!-

-이 버러지 같은 놈을 용사로 키워야 한다고?-

-그냥 내가 용사 할래. 저딴 허약한 놈을 무슨 수로…….-

최강일은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온갖 영약과 기괴한 방법으로 그의 육체를 바꿔 버렸다.

마나라는 힘을 얻기 위해서 온갖 실험을 당했고, 결국 건영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힘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난 늬들 장난감도, 너희가 싼 똥을 치워 주는 청소부도 아니야. 그러니까 멸망은 알아서들 막아.”

“으으으-! 이 배신자! 네가 없으면 이 브락시아는!”

강일은 그 말에 크게 웃었다.

브락시아가 뭐!

날 괴롭혔던 곳이 뭐 어쨌다고!

길고 길었던 시간 속에서 고통을 참아왔다.

바로 지금!

빌어먹을 납치범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봤던 연놈들에게 줄 건 없거든? 난 간다 개새끼들아-!”

그동안 고분고분했었던 최강일은 없었다.

7인의 대영웅이라는, 다소 유치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가장 성질이 급한 영웅이 마나를 가득 담은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강일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이런 젠자아아아아앙-!”

지하실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7인의 대영웅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 * *

나, 최강일.

위대한 용사로 낙점받아 온갖 개 같은 일을 겪은 귀환자다.

마지막에 가증스러운 연놈들에게 빅엿을 날려 주고 현실, 지구로 귀환했다.

그래서 나는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냐고?

삑-.

“삼천 칠백 원입니다.”

빚더미에 잔뜩 앉아서 편의점 알바 중이다.

1화 - 실패한 용사

#1

새벽 1시.

이따금 창밖으로 소음을 뿌리던 자동차마저 뜸해, 고요한 시각이었다.

턱을 괴고, 낡은 노트북의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조용한 밤에 홀로 편의점을 지키고 있으면, 이따금 후회감이 밀려든다.

콕콕 찌르는 통증이 몰려왔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기분 나쁜 그런 통증이었다.

“또 지랄이네.”

이제는 내성이 잔뜩 생겨 버린 진통제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심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 놔야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까.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다시 노트북 위로 손가락을 올려 두었다.

편의점 알바라는 것이 이럴 때는 좋아,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거든.

“요번 달은 그래도 좀 넉넉하겠어.”

의미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막을 넣는 아르바이트.

오후에는 병원에서 서류 작성 아르바이트.

나의 일과였다.

아, 내가 누구냐고? 이전에 이세계에서 엿을 먹이고 탈출했던 그놈이다.

귀환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었다.

“물건 왔습니다.”

본사에서 물건이 도착했다.

그래도 일은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시급은 꽤 많은 편이다.

각설하고, 궁금해하는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 주자면, 나는 실험을 통해 온몸이 개조되었다.

브락시아라고 하는 차원은 마나가 정말 풍부한 세계였다.

그런 곳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개조를 거쳤다.

그래서 마나를 누구보다 잘 흡수하지만, 또 누구보다 잘 소모하는 체질이 되었다.

“학생, 몸은 좀 어때? 며칠 전엔 못 나왔다면서.”

“아, 이젠 괜찮습니다.”

가벼운 안부를 묻는 물류 기사님이 주신 물건을 정리했다.

최대한 차근차근, 그리고 천천히.

본래는 10시 전후에 물건이 들어왔다고 하지만, 내가 일하게 된 후로는 심야에 물건이 배달되곤 한다.

본사가 은근히 부탁을 잘 들어줘서 놀랐지.

물건을 차근차근 나르고 정리를 다 하자, 급격하게 숨이 차올랐다.

“후우-. 후우-. 오늘은 그나마 나은 편이네.”

내가 물건을 정리한 시간은 약 1시간.

아까 실험을 했다고 했었지?

마나가 없는 몸뚱이는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할 시에는 3분, 평범한 신체 활동을 할 시에는 약 30분이면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진통제를 먹지 않는다면 엄청난 통증이 수반된다.

근육이 과하게 수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뇌에 산소까지 잘 공급이 안 되더라고.

“문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죽지는 않는다는 거지.”

다시 자리에 앉아 안정을 취했다.

마나가 없으니 신체는 그저 싸움 잘하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무리하게 행동할 때마다 ‘CRPS’ 증상처럼 무지막지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앉아서 일을 하는 생활을 보내고만 있지.

“게임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 장비를 어디서 구할 수도 없고.”

웃긴 게, 말도 많이 하면 안 된다.

본의 아니게 과묵한 이미지가 되었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처절한 삶의 하루가 지나갔다.

#2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대학 병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서류 업무를 시작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믹스 커피의 냄새가 후욱 올라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간호사 한 분이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쉬엄쉬엄 해. 어머니는 좀 어떠셔?”

“아직 똑같죠. 이제 슬슬 빠듯해서요. 아르바이트 하나 더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러다 너도 쓰러지면 어쩌려고? 쉬엄쉬엄 해.”

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쉬엄쉬엄 하라는 말.

한 귀로 흘리곤 있지만 어떻게 쉬엄쉬엄 하라는 건지.

돈도 보태 주지 않을 거면서 말이야.

“벌써 5년이니까, 쉬엄쉬엄 할 수야 없죠.”

“에휴,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잠깐 올라갔다 올게요. 괜찮죠?”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인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5년이었다.

내가 이세계로 떨어진 후로 흐른 시간이.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충격에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긴 생활고 끝에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 하지만 원망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송할 뿐.

“어이- 최강일이.”

“아, 형님 오셨습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병원비를 대기 위해 사채까지 쓰셨다.

야반도주를 감행하신 주된 원인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눈을 들어 보니 양복을 입고 덩치가 좋은 남자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그 대부업체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몸은 좀 어떠냐.”

“뭐, 평소와 똑같죠. 여전히 아프고요.”

“이해할 수가 없군. 어머님은?”

사채업자치고는 상당히 친절하다고 생각하겠지?

뒷이야기가 조금 있었다.

저들이 자주 찾아왔지만 기본적인 전투력으론 나를 어찌할 수 없었고, 수차례 마찰이 벌어졌다.

그러다 뒷골목에서 다른 집단이 이쪽 보스의 아들을 해하려는 것을 구해 줬다.

그저 꼬맹이가 얻어맞으려고 하는 걸 구해 줬을 뿐인데- 운이 좋았다.

꽤 무리했었지.

“여전하시죠. 언제쯤 깨어나실는지.”

“이번 달도 그대로 입금하는 거지?”

“네. 내일이면 월급날이네요.”

“입금은 원래대로 될 거고, 어머님은 아직도 편찮으신 상태로군. 진짜 우리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는 거냐?”

한숨이 나왔다.

지금 그렇게라도 돈을 벌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나쁘다고?

혹은 쓰레기라고?

그것보다 훨씬 더 더러운 짓도 많이 하고 다녔다.

이세계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고 왔게?

설명하려면 백과사전 두께의 자서전을 몇 권이나 써 내려가야 할 거다.

“……지금 남은 금액은 얼마냐.”

“5억 4,800만. 내일 150만 원 입금하면 5억 4,650만이네요.”

5억.

이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지만 이곳에선 인생을 갈아 넣어도 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돈이다.

월마다 150만 원을 갚는 것으로는 평생 일해도 모자랄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숨을 쉬며, 생명을 유지하고 게셨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면, 당장 말리실 분이었다.

“안 가 볼 거냐?”

“일부터 하고요. 내일 입금해 드릴게요.”

“……너무 무리하진 말아라. 큰형님도 이해해 줄 거야.”

“공사는 구분하겠다는 큰형님의 말씀도 있었죠.”

그들에게 덤벼들 수도 없었다.

숫자가 워낙 많아야지.

다시 돌아와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해 받는 돈은 300만 원 남짓.

“150에, 집세 30…… 관리금 5만 원…….”

이것저것 공과금과 병원비 등등을 내고 남은 돈은 10만 원 정도.

이번 한 달도 편의점 폐기로 연명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뵙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고르게 숨을 쉬며 누워 있는 어머니를 한참 동안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한 일과였다.

하루 종일 업무를 본 뒤에 퀴퀴한 반지하로 내려가, 오늘도 쓸쓸하게 휴식을 취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었다.

#3

편의점에서 무성의하게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8시부터 다음 날 8시까지.

요즘엔 인터넷 방송이나 개인 크리에이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세계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별로 성행하지 못했었지.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이 사람 건 그나마 재밌네.”

자막을 만드는 일의 대부분은 인터넷 크리에이터들의 편집 방송이었다.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채널 전속 편집자가 있기에 가끔, 아주 가끔 건수를 잡을 때가 있고, 나머지는 ‘하꼬’라고 불리는 이들의 외주였다.

건당 10만 원도 받지 못하는, 뭐 그런 일이었다.

“방송이라…….”

몸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도 잠시 휴식을 하면서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은 그럴 돈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방송인들이 동영상을 올리는 곳은 ‘브튜브’라고 하는 곳인데, VR과 한때 유행했던 대형 플랫폼인 ‘유튜브’를 합쳐 만든 사이트였다.

“강일이, 있냐?”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낮에 찾아왔던 예의 그 형님, 창식이 형이 찾아왔다.

형은 햄버거 세트 하나를 자리에 올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아-, 이러면 안 되지만, 침샘을 자극하는 감자튀김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어쩐 일이에요? 이건 저 먹으라고 주는 겁니까?”

“그래. 요새 이 게임이 그렇게 핫하더라.”

형님은 태블릿 PC를 꺼내 광고 영상을 하나 보여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영상 중간에 새로운 게임이 나온다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긴 했다.

내 주제에 무슨 게임이냐 싶어서 대충 보고 넘겼었다.

화려한 광고 영상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위기의 세계를 구하세요.-

거대한 초목과 싱그러운 자연.

수목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수해가 펼쳐졌다.

눈을 사로잡는 장엄한 풍경.

이게 진짜 게임 그래픽이 맞나 싶었지만 영상 하단에 ‘실제 게임 그래픽 영상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세요.-

여러 사람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장면이 드러났다.

그 중심에서, 플레이어로 보이는 자가 지시하고, 함께 움직이고, NPC로 보이는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저 건축 방식이 묘하게 익숙한 것은 왜 때문일까?

-VR을 넘어선 풀 다이브 기술로, 생생한 감각과 실제와 똑같은 경험을 하세요.-

실험 영상이 떴고, 풀 다이브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옛날의 소설처럼, 커다란 기계에 들어가 뇌파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시연 영상이었다.

풀 다이브라……. 혹시 몸이 약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굉장한데요?”

“그렇지? 우리 회사에서도 투자를 결정했지. 그래서 말인데…… 어때, 한번 해 보지 않을래?”

창식이 형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선 곤란했다.

돈.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건물주라도 돼서 돈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은…….

“제 집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내 집 마련이라…… 지금 모든 청년들의 꿈이지. 아직 영상이 끝난 건 아니니까 봐라.”

그래, 아직 영상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안내 멘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요즘 연예인들이 나오는 게임 광고도 많은 편인데, 순수하게 게임 영상으로만 광고를 만드는 곳은 드물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얻은 것을 진짜 현금으로 교환하세요.-

-제2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현금 서비스가 설마…… 합법입니까?”

“그래. 그것 때문에 이 영상을 가져온 거다. 너, 몸도 약하잖아?”

“하지만 저 캡슐 살 돈도 없는데요.”

창식이 형이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어쩐지…… 또 빚을 져야 할 것 같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

“게임 이름이 참 친숙하네요.”

빌어먹게도, 그 게임 이름은 내가 정말 증오하고 있던 곳의 이름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게임이 지금의 나에겐 구원의 손길이었다.

“한번 해 볼까요?”

“좋은 생각이다. 500만 원. 달아 두지.”

물론 빚은 한 번 더 늘어났지만.

어쩌면, 이곳에서는 마나 결핍증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속에 묘한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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