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108화 (108/120)

제 목: 113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13

[기가 슬렌더] -67- 카에살레아 폰 발더스(운명의 끈 모두 연결되다!) (2) 우리는 완벽한 존재였기 때문에 성장속도도 조절할 수 있었다.

불과 1년만에 우린 어른의 몸으로 성장했고 인격도 그만한 수준으로 성숙하고야 말았다. 아니,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났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태어났고 세상의 부조리를 보았다.

〔- 부. 부조리?〕

후훗. 파인리히. 너에게 묻겠다. 넌 인간이란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인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면 우스울까?

하지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인간도 그 두 가지 종류에 모두 속한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인간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 다른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인간. 난 후자쪽을 택해 지금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네가 말하는 부조리라는 것은 전자의 녀석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남의 불행을 보고도 모른척하는 인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자들을 짓밟는 인간.

후훗. 마테리온 같은 작자로군.〕

후훗. 네 대답은 잘 들었다. 부조리. 지금 너희도 느끼고 있고 아마 다른 종족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런 것이 없는 곳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란 동물의 당연한 한 면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적어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 적어도 넌 이해할 수 없다니?〕

이제와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과 내 생각이 약간 달랐던 것은 사실이니까. 당시 2007년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가의 예언은 틀린 것이라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우릴 창조한 그분도 그렇게 생각하셨지. 한때 카안드리아스를 앙골모아 대왕이라고 생각했었던 자신을 부끄러워 하셨지. 하지만.

두려움은 버리지 못 하셨었다. 그분 역시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분이였기에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결과라 아닐 것이라 굳게 믿었던 거겠지.

그 분은 언젠가 나에게 유언장 비슷한 쪽지를 주고 사라졌다.

내 생각이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쪽지에는 먼 미래에 대한 예언이 적혀 있었다. 상당히 난해한 내용으로 처음엔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유품을 난 소중히 간직했다.

이미 2005년부터 대기오염은 그 한계를 드러내어 오존층 파괴로 인해 빙하가 녹고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의 인간들의 모습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이기적이더군. 그것에 대한 내 형제들과 나의 생각은 모두 한결같았다. 하지만 난 그들을 모두 죽여 세상을 정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 그들을 모두 죽이다니. 설마. 죽음의 전쟁을 일으킨것이 당신이란 뜻인가요?〕

세느카. 부인하지는 않겠다. 우리 형제들은 이미 8년동안 전세계의 강대국들의 핵무기에 대해서 모든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게다가 우리들이 피신할 공간도 마련해 둔 상태였지. 이때 우리들의 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너희들이 말하는 포스 오너란 개념을 훨씬 접어둔 단계라고나 할까? 글세. 뇌의 100%를 다 사용할 수 있으니. 노화정도는 알아서 방지 할 수 있고 상처가 생겨도 치료할 수 있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눈짓만으로도 죽일 정도였으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우리가 살던 미국이란 나라에서 핵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도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어 결국 모두가 죽는 길로 나아간다. 물론 이미 우리들은 뛰어난 종자를 가진 인간들을 모두 수집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 수집?〕

후훗. 그래. 그들은 모두 비르수 라 페르테라는 곳에서 냉동보관한 상태였다. 제 2세기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었으니까.

〔- 이런. 사악한 자식들.〕

그래. 악했지. 이미 초광화학 스모그가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시점이어서 우리가 일으킨 핵전쟁은 그야말로 전세계를 그대로 강타하고 말았다. 다른 핵무기를 가진 여러나라들도 핵무기를 있는대로 발사했으며 그로 인해 지구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미 우리들은 비르수 라 페르테.

번역하면 '희망의 시작' 이라는 해저 동굴에서 그 모든 위험을 피해냈다.

〔- 그 핵무기로 인해. 세상이.〕

그래. 세상이 이런 모습으로 변했지. 하늘에는 먼지층이 생겼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죽고 말았다. 우리가 수집해놓은 녀석들을 제외하곤. 하지만 결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형들의 말을 듣고 난 인간이란 존재에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죽여서 벌을 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변명이겠지만 난 온통 죽은 시체들로 산을 이룬 도시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결심했었다.

[다신] 어떤 생명도 죽이지 않겠다고. 이제라도 난 다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나의 형제들도 같은 생각인 듯 보였었다.

그들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야무진 꿈에 들떠 있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을 기가 슬렌더(Giga Slender)라고 불렀었다. 우린 그 뜻을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여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기가스라고 불렀었지.

하지만 난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보며 그 뜻이 '위대하지만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우린 모두 신이 되기를 원했다. 다른 자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그들로부터 추종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우린 절대 신이 될 수 없는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난 그 점을 깨달았고 신이 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내 형제들은 달랐지. 카안드리아스는 인간들의 신이 되고 싶어했고 카발리에레는 그 인간들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그렇게 해서 헤켈이란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켰다. 카루이안 역시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내어 세이렌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한때는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주변을 힘을 합쳐 봉인하고 그 곳에 자신들의 종족을 번성시켰다.

〔- 대륙을 봉인하다니.그게 무슨 소리죠?〕

아마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이 비르수 라 드뮨 대륙의 바깥으로 나가 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만에 하나 가졌더라도 나갈 수 없었을 테지만. 너희들은 태어나면서 온 세상은 오로지 이 비르수 라 드뮨 대륙뿐이라고 알고 태어났다. 그래서 북반구에서만 살고 있는 너희들은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어? 그. 그러네. 정말이잖아? 우리가 있는 이 대륙 이외에는 더 이상 땅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어.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 킴의 말대로입니다. 우린 그 점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종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까?〕

후후훗. 아크바레이. 네 말처럼 그 이유로 인해 우린 이 대륙을 봉인했다. 물론 그 이유말고도 부수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미 지구는 핵전쟁의 휴유증으로 몇십만년 동안 회생 불가능한 땅으로 바뀌어 버렸다. 빙하기가 찾아와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간빙기 때는 모든 땅이 녹은 빙하로 인해 물에 잠겨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지. 그래서 우린 이 비르수 라 드뮨 대륙을 다른 세계와 차단시켜 너희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해 준 것이다.

〔- 쳇. 인심 써 주는 척 말하는군. 결국 뭐야. 가지고 놀기 위해 놀이터를 만들어주었다는 말이잖아. 우린 너희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단 뜻이잖아?〕

〔- 진정해요. 락켄신.〕

〔- 맞잖아. 펜 타고니. 결국 우린 모두 저들이 죽으라고하면 죽는 그런 소모품이잖아.〕

말이 심하다!!!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생각하였더라면 너희들의 전쟁에 간섭하지도 않았고 세느카의 운명에 끼여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너희들을 결코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존재는 너희들의 신과 인간들의 신! 그리고 세이렌들의 신인 바로 그 기가스들이다!!

〔- 그럼. 제가 예상했던게 맞군요.〕

그렇다. 세느카. 난 형제들이 정녕 새로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전혀 다른 곳에서 빗나갔다.

그들은 시간이란 거대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간. 시간이란 것은 아무리 우리들이라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우리들에게도 두려움이란 선물을 안겨주고 지루함이란 공포를 느끼게 해주었다.

시간. 그 시간을 이기기 위해. 그 두려움과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유희> 였다.

카에살레아의 유희란 말에 모두들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세느카가 말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아까 전에 세느카가 했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정말 단지 즐기기 위해 이런 전쟁을 벌였단 말인가.

단지. 그 기가스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이유 하나 때문에. 이런 공포를 느끼고 다른 종족을 죽이고 했단 말인가. 단지 그 빌어먹을 이유 때문에.

모두들 갑자기 엄청난 분노를 느끼는 듯 살기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카에살레아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유희. 자신의 종족과 형제의 종족. 그것은 게임이었다. 정말 재밌고 유쾌한 게임이었지. 서로 경쟁의식도 부추기고 게임을 관람하는 것은 최고의 쾌락이었지. 그들에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때마다 죽어 나간 생명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실 이미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난 자살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난 자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바로 그분이 준 예언. 그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서였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1세기는 멸망했다. 그의 예언이 완벽히 들어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세상은 멸망했다. 난 그분의 예지력이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대예언가에 못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분이 한 예언에 대해 몇백년간을 연구했다.

그리고 끝내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예언이 지켜지기 위해선 할 일이 많았다. 형제들에게 예언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일에서부터 세느카를 꿈속에서 괴롭히는 일까지.

〔- 꿈속에서 괴롭히는 일이라면???〕

그렇다. 너를 밤마다 꿈속에서 괴롭힌 자는 바로 나이다.

그리고 너를 납치하기 위해 쫓아다녔던 그 헤켈은 바로 여기 있는 카자마이다.

카에살레아가 카자마를 가리키자 카자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붕대같은 천조각을 천천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모습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그 모습. 카에살레아와 카자마를 한번이라도 보았던 자들은 그 거한이 인간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약간 덩치가 컸지만 절대 다른 종족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헤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자마의 모습을 본 세느카와 카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느카를 납치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바로 그 헤켈이었던 것이다.

카인은 그 헤켈과 여러번 싸워봤기 때문에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간 분노가 이는 것을 참으며 카인이 물었다.

"당신이 시킨 짓인가?"

-

"그렇다. 내가 시킨 짓이지."

"그럼. 어째서 그는 실패했지.? 아니. 질문이 이상하군. 왜 너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저자를 시켜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지?"

-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넌 세느카란 여자에 대해 몰랐다. 그렇지 않은가?"

"그. 그렇다."

-

"그 일로 넌 세느카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

"그래. 바로 그것이다."

카에살레아의 말에 파인리히가 덧붙여 말했다.

"그럼. 세느카와 카인을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뜻이군. 만나지 못할 두 운명을 만나도록 바꾸었다는 뜻인가.?"

-

"그래. 난 그분의 예언을 지키기 위해 몇가지 부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 중에 일부분이었지. 나도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카자마를 이용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너희가 만났을지. 어쩌면 그분은 내가 카자마를 이용해 너희들의 운명을 이어줄 것을 미리 예언했는지도 모른다."

"뭐가 그리 복잡해.?"

-

"난 너희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파리나타! 그때 네게 세느카를 보내주었던 것은 바로 세이타르와 그녀의 운명을 이어주기 위해서였다."

"여. 역시 그런건가? 그 당시엔 이해 못했지. 충분히 우릴 모두 죽이거나 아니면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두고 갔다는게 이해할 수 없었거든."

-

"그래. 난 나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너희들이 다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때 세느카와 세이타르의 운명을 보았지.

세느카. 그녀는 세이타르로 인해 부분적으로 기억을 상실했다.

만약 그 기억을 되찾는다면 분명 세이타르를 두려워했겠지.

이것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다. 세이타르 역시 세느카와 하나의 배를 타야하는 운명이었으므로."

카에살레아의 말에 모두들 세이타르를 바라보았다. 세이타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프레제톤타 지하세계에서 세느카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었다. 세이타르는 도리어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해주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도 동화되었고 끝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그곳에서 세느카와 같이 보낸 짧은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녀와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고 브라키온이 루카누스를 이용해 그녀의 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을 보고 두려워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를 카루이안에게 보낼 때 걱정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분이 예언한대로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정명자라면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운명을 끌어 모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나의 역할은 그것이 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엔 될 수 있으면 너희들의 일에 관여하려 하지 않으려 했다.

-

"그런데. 관여하고 말았군."

카에살레아의 말에 파인리히가 대답했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자 파인리히가 말했다.

"나와 미얀. 라케프 할아버지를 구해준 것 역시 같은 이유였나? 그럼 우리 중 누가 그녀와 운명이 닿아있지?"

-

"바로 파인리히! 너다. 그때 라케프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

아니. 라케프와 같은 운명을 지닌 세줄기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것은 그분의 예언에도 나와있던 것이고 나도 의심하지 않던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 운명을 거스르고 라케프를 구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운명의 끈인 파인리히! 너를 구하기 위해서."

카에살레아의 말에 얀이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그 팔을 받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라케프씨가 죽음을 예상했던 것이로군. 자신의 운명을 꿰뚫어본 카에살레아. 당신의 눈빛을 읽었던 것이야."

-

"그는 기가스의 후예. 그는 또 하나의 카안드리아스였다."

"뭐. 뭐라구???"

모두 놀라 되묻자 카에살레아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리니아. 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인공적인 포스 오너가 라케프밖에 탄생하지 못한 이유를."

-

"어. 어떻게. 내가 리니아란 것을.?"

펜 타고니는 당황하며 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질문은 기가스에겐 무의미하단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는 퍼스트 포스 오너. 즉, 인공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포스 오너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실험이었죠. 아무리 뛰어난 지크프리드라고 해도 포기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어느날 카안드리아스가 그에게 실험대상을 직접 제시하였습니다. 바로 그가 라케프였죠. 그의 과거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100살 장년의 사내라는 것밖엔."

-

"그는 카안드리아스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카안드리아스는 당시 강해지는 다른 종족의 능력에 비해 인간들의 능력은 별로 진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뇌를 사용하는 매너 포스였다. 우린 뇌의 100%를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지니스 포스 오너나 다름없으니. 다른 종족을 상대할 가장 좋은 능력으로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필적할 능력을 가진 분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아주 힘들고 어려운 작업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면 그 분신에게 투자된 힘과 능력만큼을 잃게 된다. 그만큼 분신은 소중한 존재이지.

게다가 아무리 완벽한 우리 기가스라고 해도 그 분신은 단 한 명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이 바로 라케프인 것이다."

"그를. 기가스의 후예라고 말했던 것이."

-

"그래. 난 그에게서 카안드리아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제한을 시켜두었더군. 그 점은 나도 이해가 간다. 다른 종족과의 유희 게임에서 너무 우세한 승리를 거둔다면 즐거움이 반감될테니까."

"개자식들."

좀처럼 욕을 안하던 얀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이미 그들은 카에살레아의 말을 모두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 엄청난 진실이 지금껏 가려져 있었고 그 진실을 모른채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자. 잠깐!! 분신이라고 하면. 우리 동료였던 브라키온도.

카루이안의 분신이었는데?"

파리나타의 질문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세느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맞아요. 카루이안이 브라키온을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말했어요. 아!! 쥬데카. 당신도 알죠? 흉켈리스도 카발리에레의 또 하나의 의식이라고 말했었잖아요?"

-

"흠! 그렇군. 맞아. 흉켈리스도 카발리에레의 분신이었지.

그럼. 묘한 우연인데?"

"정말 묘한 우연이지. 그들은 최근에 모두 죽었다. 브라키온은 자기 자신인 카루이안과 싸워 죽었고 흉켈리스 역시 카발리에레의 의식과 대항하다가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

"그들은 모두 죽었나요?"

"그렇다. 그분의 예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미 양심의 줄기였던 또 하나의 자신을 잃어 세상이 되어버린 위대하지만 나약한 자 모두를 동시에 멸하리라.> 이 예언의 뜻을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젠 알 것이다.

양심의 줄기란 바로 또 하나의 자신을 뜻한다. 바로 기가스들의 분신. 그들은 또 하나의 자신이었지만 자신과는 다른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사랑과 노여움,슬픔,괴로움. 이런 감정들을 가진 바로 양심이었던 것이다. 나도 내 형제들이 처음부터 악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들에게도 양심이란 것은 반드시 존재했고 그 양심을 따르기 위해 갈등을 겪기도 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시간과의 오랜 투쟁 속에서 그들은 패배하였고 두 개의 자아로 분열한 것이다.

결국 양심을 가진 자아는 본래 자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나의 분신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많은 힘을 빼앗겼고 분신이 모두 죽은 지금 그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약해진 상태이다."

-

"그랬군. 분신이 모두 죽었으니 잘하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는데?"

"쥬데카. 하지만 양심을 가진 분신이 죽었으니 이제 완벽한 악인이 되었다는 뜻이잖아. 더 강해지는 건 아닐까?"

쥬데카의 말에 세이타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카에살레아가 대답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분신을 잃은 그들은 전보다 반 이상 약해졌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멸할 운명을 가진 너희들이 모두 모였다. 난 이때를 기다려 온 것이다."

-

"우린 더 알고 싶소. 도대체. 그 예언이란 것은 무언지.

어떻게 세느카가 그 예언에 나오는 정명자가 된 것인지."

얀의 말에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다.

세이렌의 휘페리언과 락토니즈,헤켈의 쟈칼과 마타 륭,르부뤽등도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다. 하지만 전혀 살기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 역시 궁금한 눈초리로 카에살레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고 그 위치가 변함이 하나라.

하나가 변하여 둘이 되고 둘이 변하여 셋이 된다. 변했던 위치가 다시 하나로 돌이켜지나니. 그렇게 움직이고 또 변하리라.

시간은 강이 되어 스무번의 굽이를 지나 더욱 골은 깊어지고. 그 세월의 갭을 막을 자 누구인가. 세월의 갭은 어둠을 잉태하고 어둠 속에서 위대하지만 나약한 자 넷이 있어 세상을 어둠 속으로 이끌지니. 둘이 열을 등에 업었을 때 세월의 어두운 틈(Gap)을 매울 동방의 정명자 (定命者) 위대하지만 나약한 자 앞에 서. 위대함을 누르고 나약함을 떨쳐버리리라.

그와 함께 맺어진 열매. 고통받는 자, 신음하는 자, 슬퍼하는 자와 세 갈래의 고독한 뿌리가 있어, 이미 양심의 줄기였던 또 하나의 자신을 잃어 세상이 되어버린 위대하지만 나약한 자 모두를 동시에 멸하리라.

허나 어둠 속에 빠져든 세상은 빛을 볼 수 없는 것. 둘은 하나로. 셋도 하나로 시위를 당길 것이니 과녁의 이름이 파멸임을 궁금히 여기라.>

이것이 그분이 내게 주었던 예언이다. 난 그 내용을 몇백년간 연구했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그 내용을 외우고 있다. 처음 지구의 움직임을 묘사한 부분은 정명자인 세느카가 태어날 연도와 날짜를 말한 것이다.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공전 주기를 1년이라 한다. 이런 황도의 위치는 매년 변하게 되는데 다시 처음 위치로 돌아가는 해가 있었다. 그 시간은 대략 99.05 년인데 스무번의 굽이를 지난다는 것은 그런 일이 20번 반복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 해가 D.W 1981년이지.

〔- 1981년이라.〕

세월의 갭이란 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기가스들을 은유한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기가스들 사이에서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둠이란 것은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이 세상의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기가스들이 유희로 즐겼던 전투나. 지금의 전쟁도 그 어둠이라 할 수 있지.

위대하지만 나약한 자. 이건 바로 기가스들을 말하는 것이다.

기가 슬렌더. 우린 그분이 우릴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기 때문에 좋은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기가스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그렇게 믿고 있다.

둘이 열을 등에 업었을때는 2의 10제곱을 뜻하는 것으로.

〔- 세느카의 생일을 말하는 날짜죠.〕

〔- 이카루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 얀. 세이렌들의 전설 속에서도 세느카에 대한 것이 나와요.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인간. 그녀의 생일은 10월 24일이죠.〕

그렇다. 1981년 10월 24일에 태어난 아이. 바로 세상을 구할 수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그 정명자인 것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날 태어난 애가 한두 명이 아닐텐데 누군지 어떻게 알아봐요?〕

동방의 정명자. 방금 전. 세이렌 전설에 등장하는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자. 둘 다 같은 뜻이다. 바로 동양인!! 동양인을 뜻하는 것이다!

카에살레아의 말에 모두들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 지금까지는 그녀를 많이 봐와서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는데 카에살레아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동양인. 하지만 동양인이 정확히 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세상엔 동양인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1세기엔 동양인이 많이 존재했다. 우릴 만들어낸 그분도 동양인이었지. 우리 기가스들이 세느카를 단번에 정명자로 알아본것은 아주 간단한 그 단어 때문이었다.

동방의 정명자. 다른 종족의 예언에선 약간 다르게 나올 수도 있겠지. 세이렌처럼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자. 그건 동양인을 뜻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동양인의 모습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는가?

〔- 글쎄요. 당신말처럼 수집이란 것을 할 때 동양인은 수집하지 않았나보죠. 뭐.〕

후훗. 아니. 동양인중에는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수집. 험험. 아니 모을 때 동양인도 꽤 많은 수가 포함되어 있었지.

〔- 그럼. 그들을 모두 죽이기라도 했나보군요? 쳇.〕

......

미시케의 말에 카에살레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이 죄책감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을 짐작한 미시케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정말. 그들을 모두 죽였단 말인가요?"

그. 그래. 내 형제들에게 난 그 예언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들이 알고 있어야만 그 예언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언의 대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동양인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란 사실을 해석해 낼 수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도 완벽한 존재였으니. 더 빠른 시간동안 해석하는게 가능했겠지.

난 설마. 그들이 그 많은 동양인을 모두 죽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미 그들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마음쓰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신경이 무뎌졌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무 죄없는 동양인들을 모두 학살했다.

전부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그들 각각의 힘도 엄청나지만 그들의 힘을 모두 모았을 때엔 불가능한 일이 없었다.

아무리 숨어 있어도 그들의 원안의 법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을 막으려 했던 나도 그들로부터 완벽한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 그랬군요. 그래서 세느카가 정명자였군요.〕

그렇다. 세느카의 출현은 동양인의 유전자는 씨가 말랐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겐 충격이었겠지. 그렇게 해서 세느카를 서로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마치 1세기의 강대국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위험하긴 하지만 다른 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 그럼. 운명을 이어줬다는 우리들은 뭔가?〕

쥬데카. 흠. 넌 예언에서 말하는 세갈래의 고독한 뿌리이다.

전이 헤켈이란 멍에를 쓰고 언제나 홀로 살아가야 했다. 그건 카켄의 인생도 마찬가지였으며 전이 헤켈이 되기 전 쥬데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크바레이. 넌 세갈래 중 인간의 고독한 뿌리다. 이젠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오리지널 포스 오너 중 한 명인 아크바레이. 넌 태어날 때부터 고독한 존재였다.

마지막으로 세이렌의 뿌리. 바로 세이타르이다. 그는 실력은 인정받았을지 몰라도 진정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있더라도 모두 죽었겠지.

〔- 어떻게. 그 사실을. 그렇다. 난 오로지 승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를 돌볼 시간도 가족을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오로지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런 나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었다. 운이 좋았는지.그런 지도자는 만나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났다. 바로 세느카.〕

세이타르는 과거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어떤 임무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세느카를 납치하는 임무도 끝내 성공하였고 그 외 어떤 일도 모두 해내었다.

그는 주변의 어떤 세이렌보다도 고속승진을 하였으며 7대사제의 반열에 오를 뻔한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다른 7대사제들도 자신을 별로 안 좋아했고 같은 광전사 계급을 가진 친구들도 자신을 멀리했다.

파리나타와 루카누스는 세느카를 만난 후에 얻은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특히 루카누스는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았던가.

〔- 그럼. 고통받는자,신음하는자,슬퍼하는자는 누구입니까?〕

흠. 인간의 신인 카안드리아스는 가장 큰 죄를 저질렀다.

바로 기가스끼리의 조약을 파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까 세느카가 말했던 것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유희를 보다 효율적으로 즐기기 위해 그런 조약을 만들었다.

그리곤 세종족의 힘의 균등화를 이뤄가며 유희를 즐겼다.

그런 유희는 비단 최근 100여년동안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몇백년전부터 그런 유희 게임을 즐겼던 것이다.

세느카. 그녀의 말대로 지금 존재하는 유적들은 그 당시 종족간의 전투를 벌이는 검투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당시 희생된 종족들은 자신들의 신을 위해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고 알고 죽었을 것이다.

〔- 그때 같은 우매한 짓을 반복할 뻔했군.〕

카안드리아스가 어긴 대목은 바로 종족간의 능력 균등화란 것과 다른 종족의 능력을 훔치지 말자는 대목이었다. 그가 했던 실험은 바로 <인공 DNA 삽입 플랜(Artificial DNA Insertion Plan-ADIP)>이란 것이다.

〔- ADIP???〕

아마 너희는 그것까진 모를 것이다.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차계획이 인간의 몸을 다른 종족처럼 빠르고 강하게 만들려는 것이었고 2차계획이 가상 생명체 프로젝트, 3차계획이 쉐도우 프로젝트였다.

카에살레아는 카인과 파인리히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카인과 파인리히는 뒤늦게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알고 놀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자마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날. 기억하는가?"

-

"뭐?"

"날.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

"넌 세느카를 쫓던 그 녀석이잖아. 기억한다."

카인은 카자마를 이상하게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질문이지? 카자마는 자신의 품속에서 검 한자루를 꺼내어 들었다.

"이봐?? 뭐하는 짓이야?"

-

"받아라. 너에게 칼자루를 주겠다."

카자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검을 카인에게 건네주었다.

카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검을 받았다. 그러자 카자마가 양 무릎을 천천히 굽히며 카인에게 말했다.

"네 동생을 죽였던. 바로 그 카자마가 나다."

-

"뭐??? 자. 잠깐만. 뭐라구??"

카인은 카자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카자마,카자마.

카자마. 카인은 뭔가가 생각났다.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폐인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카자마. 단지 검을 겨루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의 동생을 죽였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어째서 지금껏 복수란 신념으로 살아온 자신이 카자마란 이름을 들었을 때 기억을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인은 분노가 치솟는것을 느꼈다.

자신의 팔에 들려있는 검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카인은 왜 자신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그 녀석은 그때보다 훨씬 완벽하게 헤켈로 모습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어느 정도 인간의 형태가 남아 있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때 카자마가 입을 열었다.

"난 ADIP 1차 계획의 실험대상이었다. 그 실험은 세이렌과 헤켈의 유전자를 인간의 몸에 결합시켰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살펴보고 강력한 신체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내 몸엔 헤켈의 유전자가 삽입되었다.

난 오랜 세월을 거쳐 점점 헤켈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 저주받을 실험 때문에. 난 세상을 증오했다.

모든것을 저주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라곤, 해결책이라곤. 고작."

-

"뭐? 고작.?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거? 그래서 내 동생을 죽였나? 단지 네 세상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내 동생을 죽였냐구!!! 내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였는데. 꺼억.꺼억."

카인은 분노 때문에 서글피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동생 수아가 생각난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빌어먹을 쉐도우 실험에 참가하지 않았었나. 단지 카자마라는 이름 석자를 가진 녀석을 죽이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그래서. 그 젠장 맞을 실험까지 해서. 그래서 강해졌는데. 이제. 복수할 그 순간이 다가왔는데. 지금 그 기회가 왔는데. 하늘에 있는 동생의 원한을 갚아줄 때가 왔는데.

카자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용서를 빌지 않겠다. 아니. 용서를 빌 수 없어."

-

"뭐라구? 이 자식.!!!"

카인은 순간적으로 울컥 치미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니, 카자마의 뒷말이 바로 이어져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난 너에게 용서받는게 싫다. <잘못했으니 용서해줘.> 라고 말하면. 넌 결국 용서할테지. 난 너희들을 잘 알아. 이곳에 있는 너희 모두. 너희들은 그런 녀석들이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어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지. 만약 내가 아무리 죄를 많이 저지른 녀석이라도 용서를 빈다면 너희들은 내 사과를 받아줄 것이다. 그렇지 않나? 카인. 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서 난 용서를 빌 수 없다. 용서를 빌게 되면 넌 나를 용서하게 될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너에게 용서를 받는 다고 해도 내 죄값을 다 갚지 못할거란 것을 잘 안다. 죽은 네 동생에게 진 죄가 사해지는게 아니란 것을 잘 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사라지는게 아니란 것을 잘안단 말이다."

-

"......"

"용서를 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으로 내 죄를 가리고 싶진 않다. 난 죄를 진 녀석이고 그 죄값을 달게 받고 싶다.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가지 생각해 오던 것이 있었다.

주인님과 같이 다니면서도 난 이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려 왔다. 세느카를 납치하려고 했을 때 나타난 상대가 바로 너란것을 알았을 때. 난 하늘에게 감사하고 주인님께 감사했다.

바로 이 날이 올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그 검으로 날 쳐라. 날토막내고 내장을 짓이기고 내 뼈를 가루로 만들어라. 네 손에 죽겠다는 그 한가지 목표만으로 난 지금껏 살아왔던 것이다."

카자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인의 눈은 눈물도 메말라 버렸는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쥬데카가 카인의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서고는 말했다.

"역시. 너였구나. 카자마. 나도 널 알아보지 못하다니. 확실히 어렸을 때보다 많이 변했구나."

-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네가 날 아버지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

"서. 설마. 카. 카."

"그래. 내가 카켄이다."

카자마는 쥬데카를 바라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한때 방황하던 그에게 그처럼 이상한 몰골을 한 한 사내가 다가왔었다.

그리곤 자신을 보살펴 주었었다. 바로. 카켄. 그가 전이 헤켈로 변이가 되기 전 그 둘은 서로를 만났던 것이다. 카자마가 연성한 검법은 바로 카켄이 완성했던 천검법이었던 것이다.

"카인. 이 아이를 용서해주거라. 사부의 마지막 부탁이다."

-

"아닙니다. 저. 전. 죽어 마땅한."

"닥쳐!!!! 네가 죽는다고 해서 네 죄가 없어질 것 같아?

용서도 빌지 않고 그냥 죽으시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 같아?"

-

"뭐?"

카인은 카자마의 목에 검을 겨누고는 말했다.

"네가 죽는다고 해서 내가 기쁠 것 같냐구!!! 아니!! 난 절대 기쁘지 않아!! 도리어 기분만 잡칠거라구!! 이 젠장할 녀석아. 너만 죽으면 끝이냐? 흐.흑. 너 내가 널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이런 개수작 부리는거지? 앙? 이런. 나쁜 자식아.

꺼억. 흑흑. 빌어먹을. 자식아."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검이 떨어져 버렸다. 카인은 그대로 무너져 카자마를 껴안았다. 그는 마치 오래 전 죽었던 동생 수아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카자마에게 볼을 부비며 울고 또 울었다. 카자마는 카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카인은. 카자마를 마음으로 용서한 것이었다.

"네 죄를 갚는 길은. 우리와 함께 가는 길밖에 없다."

-

"고맙다. 정말. 고맙다."

"쳇. 나쁜 자식. 난 널 용서할 수 없다!! 나도 네 죄가 사라지는것은 보기 싫으니까. 하지만! 우릴 돕는다면 언젠가 널 용서할 날이 올거다. 그땐 너도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거다."

-

"그래. 알았다. 내 한 목숨. 너희들을 위해 바치겠다."

카자마와 카인은 그렇게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모두들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에살레아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실험들은 해서는 안 되는 그야말로 반인륜적인 것들이었다.

ADIP 라는 개념은 인간의 뇌하수체를 다른 종족의 유전자와 결합하기 쉬운 녀석으로 바꾸는 것이 요체다. 그러니까 다른 종족에게 어떤 능력이 생겼을 때 그 유전자만 알아낸다면 인간에게도 같은 능력을 쉽사리 배양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카안드리아스는 그런 뇌하수체를 개발해냈다. 바로 너희 세명. 카자마,카인,파인리히.

너희들의 뇌 속에 들어 있는 바로 그 뇌하수체는 모두 같은 기능을 가졌다. 그 뇌하수체를 이용해 각성한 유전자만 서로 다를 뿐.

〔- 그럼. 저 뒤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이미 한번 실험에 성공한 그들에게 아이들의 뇌하수체를 교체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었겠지. 뇌수술 한번에 모든게 끝났을 것이다. 그리곤 몇일 동안 다른 종족의 유전자를 심고는 각성을 시켰겠지. 그들은 그런 녀석들이다.

그렇게해서 다른 기가스와 와해되었고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희를 즐기기 위해 전쟁을 했지만 지금의 것은 그 상황이 다르다. 서로 살기 위해. 오로지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기가스를 죽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것은 다른 종족의 멸종이며 그것은 곧 모두의 종말을 뜻한다.

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너희들이 이런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단지 그들의 목적을 위해 휘둘러지는 삶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너희들이 이런 진실을 알고 나서 무슨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선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다. 너희들의 생각대로 너희는 살아갈 것이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이것이. 당신의 목적이었군요. 우리들의 허망한 삶에 대한 질책. 아무리 신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는 해도 그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맹신적으로 행동하고 살아왔던 우리들을. 그것을 꾸짖으려고 했던 것이군요.〕

세느카의 말에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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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려진 베일이 모두 벗겨지기 시작하네요. ^^;; 기가 슬렌더 란제목이 왜 그런건지 이제서야 비밀이 풀린것 같은데 --; 넘 늦게 풀렸낭코멘트 마니 마니 달아주시구요!!!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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