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110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10
[기가 슬렌더] -64- 에리네 반인테스(그들의 위기.) 기가스
12장.종말(終末)의 장
-에리네 반인테스(그들의 위기.)-유그리스시. 티탄시에서 동남부에 위치한 가장 가까운 도시였지만 호크로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도시였다. 유그리스시의 분위기는 상당히 평화로웠다.
티탄시나 노스 메테르시 그리고 마르스시처럼 세이렌들이 한 차례 공격을 시도했더라면 이런 평화스런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이들에겐 평화라는 사치를 누릴 시간이 있었으며 사치를 누리는 자들답게 불우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도 뻗힐 수 있었다. 에리네와 미얀 그 외 수많은 의인들이 쿼터드 시로부터 난민들을 호송해 왔던 것이다. 워낙 먼 거리였기에 근 이틀에 걸쳐 난민들을 모두 이동시킬 수 있었다.
물론 에리네와 미얀은 처음 이동한 후 더 이상 왔다갔다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에리네는 그 외에 할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로 돌아오자마자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워낙 명석한 그였기에 밀린 업무는 금새 끝났고 그는 이송되어 온 난민들을 위한 수용시설 등을 마련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미얀은 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우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 거의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에리네는 미얀의 쉬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에리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죠."
미얀은 자신이 문자를 사용했다는 점에 스스로 놀라며 에리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리네가 웃으며 말했다.
"지나친 것은 안 하는 것만 못한 법이죠. 맞아요. 좋아요. 이 일까지만 처리하고 쉬도록 할게요."
-
"그렇게 해요."
미얀은 에리네를 바라보고는 미소지었다. 에리네. 그는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미얀은 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며시 젓고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녀 역시 에리네가 쉬라고 충고하는 것을 이렇게 거절하지 않았던가.
"당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은 지금도 뜬눈으로 당신을 노려보고 있을텐데. 내가먼저 자다뇨. 그들이 신나게요? 그럴 수 없어요.
호호홋."
-
"그래도 당신이 피곤하지 않아야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거 아녜요."
"흠. 좋아요. 그럼 당신이 쉬면 같이 쉬도록 하죠. 공평하죠?"
미얀은 에리네가 그 말에 반박하려 하자 크게 하품을 하면서 돌아섰던 것이다. 둘 다 피장파장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에리네의 사무실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에리네는 들여보내라고 지시하고는 다시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
"누군지도 안 물어보고 들여보내면 어떡해요?"
-
"걱정 말아요. 미얀. 정문으로 들어올 정도라면 암살자는 아닐테니까요."
"아뇨. 암살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취향이 있다구요. 정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만의 방식이라면 어쩌려구 그래요?"
-
"하핫. 걱정도 팔자군요."
"아뇨. 걱정도 사자에요."
미얀은 에리네의 말에 볼이 부어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라케프식 언어 유희를 사용한 것이었다. 하늘에 계신 라케프여. 이제 편히 눈감으소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범죄에 속할 정도로 잘빠진 몸매에 몸매가 이쁘면 얼굴은 별볼일 없다는 속세의 진리를 깨고 얼굴까지 아름다운 빼어난 팔등신 미인이었다. 미얀은 그녀를 보고는 순간 자신의 온몸이 경직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그녀가 자신보다 아름답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그랬다는것을 그녀가 알까? 어쨌든. 그런 미얀을 더욱 실망시키고 싶었는지 에리네는 들어온 여인에게 반가운 인사를 보냈다.
"와. 베아트리체. 어서 와요. 웬일이죠? 마르스시를 놔두고."
에리네는 심지어 일어서서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미얀은 왜 그런 그의 모습이 얄밉게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순간 그녀의 이름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것을 듣고는 솜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리네는 전부터 그녀를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명한데다가 아름답기까지 한>베아트리체. 바로 그녀가 찾아온 것이었다.
베아트리체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미얀이 뾰루퉁해져서는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문밖으로 나가려는게 아닌가.
하지만 에리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쪽은 미얀 가레즈에요. 아주 귀엽죠? 이번에 사람들을 이주시킨 일을 도와주었어요."
-
"......"
에리네의 소개를 받은 미얀은 어쩔 수 없이 멈추어 섰다. 그런데 베아트리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다. 미얀은 에리네의 체면을 봐서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바. 반가워요. 전 미얀 가레즈에요."
미얀은 분명 인사를 했는데도 대꾸를 안 하는 상대에게 약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베아트리체의 입이 열린 것은.
"넌 필요 없어. 죽어."
순간 베아트리체의 오른팔이 뻗어져 미얀의 멱살을 움켜 쥐었다. 정말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쌔씬이었던 미얀도 당할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쌔씬. 암살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녀가 비록 어쌔씬보다는 스파이로서 활동을 많이 해서 그렇지 그녀는 엄연한 어쌔씬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정말 위험했다. 상대는 정말 놀랍게도 전혀 살기를 발하지 않고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닌가. 만약 미얀이 베아트리체에 대한 적개심이 전혀 없었더라면 바로 그녀의 손에 잡혔을 것이다. 다행히 미얀은 그녈 처음 본 순간부터 경계하고 있었기에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미얀은 베아트리체의 팔을 간신히 피한 후 복부부터 가슴, 얼굴까지 세 번을 연속으로 공격하는 3단 크래쉬 펀치를 갈겼다. 하지만 그녀의 울트라 메가톤 공격은 1단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베아트리체의 복부를 가격한 순간 미얀은 자신의 팔과 주먹이 으스러지는듯한 충격을 입었던 것이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여잔. 사람이 아니야!!"
미얀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뒷걸음질치자 에리네도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지금 자신을 찾아온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알던 그녀와 그 느낌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여자가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에리네는 소형 로이안 리플을 들고는 베아트리체를 겨냥했다.
"멈춰!! 도대체. 넌 누구냐?"
-
"호호홋. 에리네. 나에요. 베아트리체. 벌써 날 잊은거에요?
그 날 있었던 그 뜨거운 일을 잊은거냐구요?"
"에리네!! 저게 무슨 소리죠??"
-
"미. 미얀. 오해하지 말아요. 뜨. 뜨거운 일이라뇨. 말도 안돼."
에리네는 베아트리체를 겨냥하던 팔이 떨릴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을 들켜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당황해 그랬던 것이다. 어쨌든 미얀은 그런 에리네의 모습에 화가 나서는 말했다.
"설마! 저 여자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에요? 그래서 저 여자가 날 죽이려는 거냐구요!!"
-
"호호홋. 그걸 몰랐니? 불쌍한 것. 우린 그렇고 그런 사이야."
"닥쳐!!! 내가 아는 베아트리체는 그런 조야한 말이나 내뱉는 저질이 아니야!!"
에리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로이안 리플은 계속해서 베아트리체를 겨냥하고 있었다.
미얀은 에리네의 행동을 보고 방금 전 베아트리체가 한 말은 거짓이란것을 깨달았다. 근데. 뭐야.? <내가 아는 베아트리체는?> 미얀은 기분이 약간 상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대로 상대는 암살자였던 것이다.
"필요 없는 자는 죽인다. 그러므로 넌 죽는다."
-
"어디서 배워먹은 이단논법이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긴다.
난 너보다 강하다. 고로 내가 너를 이긴다. 이 정도는 돼야지?"
미얀은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웬만한 장정도 3단 크래쉬 펀치 앞에 거품을 무는데 이 여자는 철판으로 배때기를 둘렀는지 끄덕도 안 하는 것이다. 도리어 자신의 팔만 다친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미얀을 비웃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에리네는 그런 베아트리체를 향해 소리쳤다.
"다. 다가오면 쏘겠다. 다가오지마!!"
-
"멍청하긴!! 어서 쏘라구요!!"
미얀은 에리네가 당황하자 그의 로이안 리플을 빼앗아 그대로 베아트리체를 향해 발사했다. 로이안 리플에서는 시퍼런 불이 뿜어졌고 그것은 베아트리체의 심장에 정확하게 맞았다.
이제 심장이 뚫리면서 피가 쏟아져 나오겠지. 동시에 눈은 뒤집히면서 흰자위만 보이게 될거야. 그리고 외치겠지. <너의 삼단 논법은 진리였어.>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심장에 광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한 걸음 주춤 했을뿐 멀쩡하게 계속 걸어오는게 아닌가. 에리네는 순간 나지막이 탄식했다.
"설마. 휴먼 로보로이드란 말인가."
-
"필요 없는 녀석은 죽인다."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얀을 공격했다. 놀랍게도 베아트리체의 스피드는 미얀의 것과 비슷하거나 도리어 빨랐다.
미얀은 간신히 베아트리체의 손을 피하고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동시에 그녀의 품속에서 암기가 던져졌다.
하지만 그 암기들은 모두 베아트리체의 몸에 부딪혀 퉁겨져 나왔다. 퉁겨져 나올 때마다 '챙! 챙!' 하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미얀은 다시 로이안 리플을 사용해 공격했다.
베아트리체는 광선에 한방 맞을 때마다 뒤로 움찔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순식간에 미얀을 향해 공격해 오는게 아닌가.
미얀은 베아트리체의 양손을 피하려다가 발에 걷어차이고 말았다.
"큭."
-
"미얀!!"
에리네는 단지 발에 한번 걷어차인 미얀이 뒤에 있는 책상까지 굴러가는 것을 보고는 급히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베아트리체가 휴먼 로보로이드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젠장. 아무리 휴먼 로보로이드라해도. 어떻게 로이안 리플에 당하고도 끄떡없지? 설마 휴먼 로보로이드를 값비싼 티타미넘 계열의 합금을 사용해 만들었단 말인가? 단지 인간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인 로보로이드를.???"
에리네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그는 전지역구 의회에도 참석하는 의원이다.
비록 재단의 모든 연구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지만 재단에서 하는 실생활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오사이보그 프로젝트라던가.
로이안 리플 프로젝트같은 것은 인류 방어적 측면에서 전지역구 의회를 통과했던 사안이었던 것이다. 물론 비밀스런 프로젝트가 더욱 많았지만 이번 로봇공학 연구소에서 추진된 휴먼 로보로이드 프로젝트는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승인된 연구였던 것이다.
재단과 연구소 측에서는 그 연구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삶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이라 호언 장담했었다. 파출부 하나를 쓰더라도 한번 사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휴먼 로보로이드. 녀석들은 값도 싸고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그런 것들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로이안 리플에도 끄떡없는 합금이라면 그것이 절대 쌀 리 없었다. 아무리 휴먼 로보로이드가 대단한 물건이라지만 그 몸통을 값비싼 티타미넘 합금 계열로 생산해 낼 필요가 있을까? 글쎄. 있을수도 있지.
"빌어먹을. 재단에선 도대체 무얼 생각하는거지? 너희들을 가지고 전쟁이라도 치를 셈인가?"
-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저장되어 있지 않다."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대답했다. 에리네는 피를 흘리면서도 로이안 리플을 들고 있는 미얀을 바라보았다. 그는 로이안 리플을 빼앗아 들고는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슝! 슝! 슝! 슝!!!.'
광선이 베아트리체의 몸을 연신 두들겼다. 하지만 녀석은 잠시 뜨끔한 표정만 짓고는 여전히 다가오는게 아닌가.
에리네는 점점 난감해졌다. 상대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아닌가. 힘은 인간보다 몇배에서 몇십배 강하고 방어력도 인간의 무기는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 녀석이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 미얀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저 자는 날 노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에리네. 당신을 납치하려는 것 같군요. 이걸 받아요."
-
"이. 이게 뭐죠?"
에리네는 미얀이 자신에게 건넨 작은 기계를 바라보았다.
그 기계는 마치 자그마한 단말기에 잭을 꽂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제가 스파이란 것을 잊었어요? 이건. 컴퓨터 회로에 침입하는 바이러스에요. 이걸 가지고 산업 스파이짓을 했었죠.
저게. 로보로이드라고 했죠? 그럼 어딘가 컴퓨터 회로가 있을거에요. 이 잭만 연결할 수 있다면."
미얀은 그렇게 말하고는 힘겹게 일어섰다. 베아트리체가 벌써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로이안 리플 광선에 수십방 맞은 상태여서 옷이 거의 걸레조각이나 다름 없었다. 에리네는 베아트리체를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가슴이 반 이상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휴먼 로보로이드였지만 그녀는 실제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간 에리네는 실제 베아트리체 역시 그들에게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미얀이 잽싸게 베아트리체를 향해 뛰어드는게 아닌가.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미얀에게 팔을 휘둘렀다. 로보로이드가 무슨 무술을 알겠느냐만은 그 일격에 당하게 된다면 그대로 뼈가 으스러질지도 모르는 강한 공격인 것이다.
미얀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람쥐처럼 베아트리체의 팔을 굴러서 피하고는 그녀의 상의를 붙잡았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뒤로 도망친 미얀을 잡기 위해 몸을 돌리며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녀의 웃옷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하지만 미얀도 그녀의 팔에 맞고 그대로 한바퀴 돌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미얀은 터진 입술의 피를 닦으며 외쳤다.
"에리네!! 드. 등에!!"
미얀이 찢어버린 옷 때문에 베아트리체의 상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그 등에 잭을 꽂을 만한 단자가 보이는게 아닌가. 아마 그것은 로보로이드에게 기억이나 정보를 입력할 때 사용하는 단자 코드인 것 같았다.
미얀의 외침에 에리네는 간신히 베아트리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이미 에리네를 향해 서 있었고 그는 앞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나름대로 순진했던 에리네는 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얀은 자신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에리네 역시 미얀이 일어서려고 안간힘 쓰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충격이 꽤 컸는지 휘청거리며 일어서지 못했다.
베아트리체는 에리네를 한번 스윽 보더니 다시 미얀을 향해 다가갔다. 아예 끝장을 볼 생각인 듯 싶었다. 에리네는 베아트리체의 행동에 당황해서는 급히 베아트리체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상체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달려간 에리네는 그녀의 등 척추부분 중간에 위치한 단자 코드를 발견했다. 에리네는 비록 무공은 전혀 몰랐지만 꽤 민첩한 감각과 뛰어난 운동신경이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누워 있는 미얀을 그대로 발로 걷어차려 했다.
그때 에리네가 그대로 몸을 던져 잭을 단자코드에 꽂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베아트리체를 뒤에서 껴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로보로이드 베아트리체는 동작을 멈추었다.
베아트리체의 발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미얀의 앞에서 멈추었는데 녀석은 관성이란 것도 없는지 걷어차려는 속도를 무시하고 잭을 꽂는 그 즉시 그대로 멈추었다. 미얀은 간신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순진해요? 로봇 가슴에 당황해서는."
-
"어. 괘. 괜찮아요? 미얀??"
에리네는 미얀의 질타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것보다도 미얀의 상처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미얀은 미소인지 화내는 표정인지 모를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 왜 당신하고 화끈한거 한 저 여자나 걱정하지 그래요?
뒤에서 껴안기까지. 하고. 쿨럭!! 쿨럭!!!"
-
"미얀!! 일단. 누워요."
"아뇨. 괜찮아요. 이 정도쯤은. 하핫. 오랜만에 맞아봤네. 정말 오랜만이야."
미얀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에리네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깨울 수 없었다. 졸지에 로보로이드의 미모에 넋나간 얼빠진 인간이 되버린 것이었다.
미얀은 거의 한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정신이 들었다. 워낙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던 그녀였기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무술의 기초를 배울 때 맞는 연습부터 한다지 않은가.
에리네는 그녀를 옆에서 간호하고 있었다. 미얀이 눈을 뜨자 에리네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깨어났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
"후훗. 왜요? 저기 저 여자랑 놀지 그랬어요?"
"미얀. 미안해요. 하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했다구요."
에리네는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도리어 미얀은 당황하고야 말았다.
"아. 저. 전 괜찮아요. 하핫. 안이 좀 덥네요. 하핫. 그나저나 당신은 다친데 없어요?"
-
"네. 전 괜찮아요. 다행이에요. 정말. 당신이 없었더라면 전 그대로 당했을거에요. 당신은 여러번 제 생명을 구해주는군요?"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면."
-
"네?"
"네? 에구. 깜짝 놀랐잖아요.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그. 그런데 저 로봇은 왜 저렇게 누워있죠? 호. 혹시 무슨 이상한 짓 한거 아니에요?"
-
"도대체. 절 어떻게 보는거에요? 전 그런 인간이 아니라구요."
"하핫. 농담이에요. 농담."
미얀은 얼굴이 붉어져서는 에리네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면. 키스해줄래요?>라고 말 할뻔 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에리네를 변태로 몰아붙여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미얀은 자신이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쑤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로보로이드(에구. 계속 쓸락카니께.
힘들구만유. 앞으로 줄여서 <로드>라구 할게유. 양해해주셔유.^^-이하 로드=로보로이드-)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갔다.
로드 베아트리체는 엎드린 채로 있었는데 이 무거운 녀석을 에리네가 어떻게 눕혔는지 의문스러웠다. 어쨌든 그 로드는 등판 단자 코드에 자신이 주었던 기계가 연결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기계에는 PDA 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에리네의 물건 같았다.
"아. 당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저 로드를 이용해 몇가지를 알아냈습니다."
-
"와. 놀랍군요? 저 기계에 컴퓨터가 연결되는 건지 어떻게 알았죠?"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더군요. 산업스파이짓을 하려면 바이러스만 심어선 곤란하죠. 바이러스를 심어 방어체계를 허술하게 만든 후 컴퓨터로 정보를 빼내야 할거 아녜요."
-
"후훗. 역시 똑똑하시군요?"
"과찬입니다. 어쨌든. PDA를 연결하고 로드의 두뇌 CPU 메모리 칩에 침투 할 수 있었죠. 그래서 몇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저 로드의 목적은 날 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
"후훗. 그건 당연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죠. 날 납치해서 또 하나의 나를 껴 넣을 생각이었던 겁니다."
-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이미 나와 똑같이 생긴 로드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에리네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해서 미얀마저도 그 표정에 동화되고 있었다. 에리네는 미얀의 그런 표정이 이해를 못하는 표정처럼 느껴져 몇마디 덧붙였다.
"아마. 그 로드와 날 바꿔치기 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인간 에리네는 납치해서 감금하고 로드 에리네로 하여금 의회 일을 하도록 만드는거죠."
- "잠깐만요. 그럼. 마테리온이란 사람이 단지 당신을 바꿔치기하기 위해 이런 일을 꾸몄다는 건가요?"
"차라리 그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다행이겠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건 아무래도 재단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
"네?"
"카안드리아스 재단에선 이미 전지역구 의회의 파워를 실감했습니다. 솔직히 이번 전쟁론의 의회 통과는 그 자체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재단의 파워와 의회의 파워가 서로 맞대결을 펼친 파워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재단은 의회에 무릎을 꿇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재단의 누군가가 모든 것을 꾸민 것이지만 그 역시도 의회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는 깨달은 것입니다. 더 성장하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 할 필요성을 말이죠."
에리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마테리온이면 낳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재단이 마테리온보다 훨씬 무서운 상대라는 뜻을 대변해주는 말인 것이다.
이미 에리네는 이번 전쟁론을 주도한 마테리온과 게류온도 자신과 비슷한 공격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까지 한 상태였다. 자신을 죽이려한 마테리온이야 어찌되든 크게 상관없다지만 베아트리체와 그 외의 수많은 의원들이 모두 납치되고 그 자리를 로드들이 차지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재단의 의지대로 세상은 흘러갈 수도 있고 역류할 수도 있겠지.
에리네는 순간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베아트리체의 모습으로 자신을 공격해왔다는 것은 이미 베아트리체는 납치된 것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아마 모든 도시의 시장들이 나와 비슷한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어쩌면 베아트리체처럼 이미 당했을 수도 있구요.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은 로드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로드를 지배하는 재단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
"저. 정말 무서운 일이군요."
"한가지 다행한 일은 우리가 재단의 음모를 먼저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죠."
-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죠?"
"로드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몇가지 중요한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난처한 것이죠. 모든 로드들에게 이 기계를 꽂아 바이러스를 침투시키는 방법은 한계가 있거든요."
-
"도대체. 그 중요한 점이란 게 뭐길래?"
"이 녀석들은 한번 사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다시 말해. 특별한 고장이 나지 않는한 배터리도 갈아끼울 필요가 전혀 없는 영구적 시스템이란 뜻입니다."
미얀은 에리네의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에리네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이 로드의 배터리는 내장형이 아니라 외장형입니다."
-
"외장형?"
"네. 그러니까 하나의 거대한 제너레이트 에더피스(Generate edifice)를 이용해모든 로드들에게 동력을 공급하는 것이죠.
제너레이트 에더피스라는 것은 한마디로 발전소와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동력을 발생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공급하죠. 그러니까 이 제너레이트 에더피스를 부수기 전까진 로드들을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
"그렇군요. 우리처럼 웃옷을 벗겨내고 등에다가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기 전까진 그들을 막기 힘들겠군요."
"후훗. 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 동료들이라면 그대로 때려부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은 이런 로드들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입니다. 다행한 일은 이 로드들의 생산은 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생각은 약간 다르지만요."
-
"어떻게 다른데요?"
"전쟁은 구실에 불과하고 재단에선 아무래도 좀더 거대하고 효율적인 제너레이트 에더피스를 만들고 있을 겁니다. 나도 과학자이기 때문에 잘 압니다.
이런 로드 하나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동력이 엄청나다는 것을요. 아마 그들이 한정 생산을 한 것은 제너레이트 에더피스가 가진 동력의 크기를 로드의 수가 넘어섰기 때문이겠죠."
-
"그럼. 재단의 음모를 막기 위해선 제너레이트 에더피스를 파괴해야하겠군요."
"맞아요.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게 문제죠."
-
"이 로드에 그 정보가 나와있지 않나요?"
"재단 녀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런 정보는 해킹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아예 첨가를 하지 않습니다. 이 로드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것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질 않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이라면 보안프로그램을 해킹하여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 "지금 중요한 것은 제너레이트 에더피스의 위치군요.
하지만 그것을 알아낼 길이 없으니. 일단 의원들이라도 구하는게 옳지 않을까요? 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그 베아트리체란 여자도 납치되었을 것 같은데."
"네?? 아. 네. 그. 그. 그래야겠군요."
미얀은 에리네가 당황하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순진해서 당황한건지 아니면 정말 베아트리체가 꿈에 나타나서 당황하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기분이 상했다.
"미. 미얀. 분명 베아트리체는 똑똑하고 예쁘고 좋은 여자에요."
-
"......"
"하지만 당신은 그 여자보다도 더 똑똑하고 더 예쁘고 더 좋은 여자에요."
-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솔직히 말해서 베아트리체에 대해 호감이 없는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호감을 느끼는 것하고 좋아하는 것 하고는 다르지 않을까요?"
-
"에. 에리네."
에리네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주절거렸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자신의 마음이 일러준대로 말했던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후훗. 그들이 어디로 납치되었는지는 알아낼 수 있어요."
-
"어떻게 말이죠?"
"이 로드의 정보를 분석하던 중에 날 납치하고 나서 어디로 옮길지 알아냈거든요. 아마 그곳에 가면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렇군요! 당신. 정말 대단하군요?"
"아뇨. 다 당신덕분이에요."
-
"제가 뭘요."
에리네는 미얀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밝게 웃었다.
그리곤 엎드려 있는 로드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놀라운거 보여줄까요?"
-
"뭔데요?"
에리네는 PDA를 빠르게 조작했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로드가 일어서는게 아닌가. 미얀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꺄악!!! 에리네 피해요!!"
-
"거봐요. 놀라운거 보여준다고 했잖아요."
에리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PDA를 계속해서 조작했다.
그리고는 연결되어 있던 PDA 와 기계를 빼내었다.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입을 열었다.
"모든 프로그램 인식되었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주인님."
-
"허. 험험. 우선 저쪽에 있는 옷장에서 옷부터 꺼내 입어라!!"
에리네는 애써 베아트리체를 바라보지 않으며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제서야 미얀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마. 로드의 프로그램을 바꾼거군요?"
-
"다행히. 복잡한 코드가 아니더군요."
"대단해요."
-
"그녀가 우릴 안내해 줄거에요. 우린 그녀를 이용해 각 도시들의 시장들을 구해내야 해요."
"알겠어요. 에리네."
미얀과 에리네는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더 이상 미얀은 베아트리체를 시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다.
티탄시 3-27 블록. 이 블록을 둘러싼 작은 구역안에 대 병력들이 운집해 있었다. 인간과 헤켈. 그리고 세이렌.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류 최후의 결전. 그 서막이 장엄하게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그곳에 모든 종족은 갑작스런 어린아이들의 등장에 모두들 황당한 표정들이었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점에 아이들이 나타나다니. 정말 우스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상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지 결코 큰소리로 웃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을 빨리 대피시키지 않으면 큰 희생을 치르게 될것이 분명했다. 뉴스에서 보도된 사실처럼 그들은 8세에서 13세정도로 보이는 보통 아이들이었는데 그 숫자만 해도 대략 200여명이 넘는 것 같았다. 이런 숫자의 아이들이 이런 전쟁터에 버젓이 나타나다니.
세느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괴기스러웠던 것이다. 모두들 눈동자가 풀려 있고 같은 걸음걸이와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잘 조직된 군대처럼, 똑같이 만들어진 로봇처럼.
하지만 그들의 생김새는 하나하나 모두 달랐다. 그렇다면 뉴스에 등장했던 그 납치된 아이들이 틀림 없을텐데.
얀은 그 아이들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들릴까 말까하게 중얼거렸다.
"전쟁에만 너무 신경을 써서 아이들 납치 사건에는 너무 소홀했었구나. 저 아이들이 모두 죽게 된다면 우리 어른이란 존재들은 그 죄값을 그 어떤 것으로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한 아우로페가 소리쳤다.
"얘들아!! 더 이상 다가가지마!! 위험해!!"
아우로페의 말대로 그들은 인간과 헤켈,세이렌으로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의 중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제이드의 부대로도 구할 수 없게 되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누군가의 조종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이쯤 되니까 인간들은 전투 준비를 안할래야 안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세느카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던 다른 종족들도 하나같이 긴장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는 일련된 동작들이었다.
세느카는 갑자기 이렇게 된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모두를 설득시킬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모든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가슴이 후련해 질것 같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이 상황은.
도대체 누가 연출한 것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타렌이 기분 나쁜 괴소를 흘리며 세느카 곁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슬레이브 시스템(Slave System)입니다. 재단에서 만든 피실험자를 복종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아우로페를 조종했을때도 저 시스템을 사용했었죠."
-
"뭐라구요??? 그렇다면.!! 재단에서?"
세느카는 놀라며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재단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라면 이런 많은 아이들을 소리소문 없이 납치할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저토록 아이들을 쉽게 조종할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타렌은 정말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는데 그 표정이 비웃는 듯 보였다.
"정말 놀랍군요. 제가 사용했던 슬레이브 시스템은 고작해야 대여섯명 정도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의 수를 보십시오. 못해도 200명은 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 슬레이브 시스템은 만든 사람만이 키워드를 알고 있습니다. 그 키워드가 암호인지 아니면 음성인식인지 아니면 지문인식인지. 그건 쉽게 알 수 없습니다."
-
"뭐라구? 이런. 빌어먹을. 설마. 저 아이들을 이용해 헤켈과 세이렌을 공격하려는건 아니겠지? 재단이 아무리 무식한 집단이라지만 그건 아니겠지? 이것봐. 아니지? 엉?"
킴은 누군가가 아니라고 대답해주길 기대하는 듯 연신 두리번거리며 아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재단은 그만큼 무서운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때 타렌은 고개를 떨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키워드라면 힘겹겠지만 알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얀 박사님의 능력과 제가 힘을 합친다면. 하지만.
만약 그 키워드가 재단에서 개발하고 있던 그 방식이라면."
-
"그 방식이 뭡니까? 타렌?"
얀은 타렌의 말을 듣고 지문이나 음성 혹은 암호가 키워드라면 해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하지만 그 외의 조건을 타렌이 말한 것이었다. 얀이 다급하게 묻자 타렌이 대답했다.
"소울 인터미디어리(Soul intermediary) 방식."
-
"정신 매개체??? 설마.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든 사람하고 저 아이들하고 정신적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까?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제가 재단에 있을 동안에 연구중이던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슬레이브 시스템 방식과 실험 대상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차이가 없지만 그 안전성 문제 때문에 그 방식이 연구되었습니다. 전.
파인리히를 여러번 놓치게 됨으로써 보다 더 안전한 슬레이브 시스템 방식을 연구했었습니다. 그랜드 포스 오너였던 저는 암호나 지문,음성등의 방식은 어렵지만 해독이 가능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그랜드 포스 오너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실험대상의 키워드를 알아낸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점을 재단에 건의했었습니다. 재단은 정말 대단한 곳이더군요. 그들은 얼마 안 있어 소울 인터미디어리 방식을 개발하기 시작하더군요. 바로 정신 사념체를 키워드로 삼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시술자와 실험대상을 연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시술자가 죽거나 그들을 풀어주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절대 풀 수 없는 방식입니다."
타렌의 말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멈추어 서서는 헤켈과 세이렌들을 바라보고 병력을 반으로 분산하기 시작했다.
헤켈과 세이렌들은 그런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제이드의 부하들은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타렌의 말에 얀은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타렌. 아무래도 저 아이들은 정신 매개체 방식을 사용하는것 같소. 저런 아이들을 이런 전쟁에 투입할 정도라면 그 정도의 저축은 해두었겠지."
-
"하지만 저 정도의 병력이라면. 저. 정도 숫자의 아이들을 모두 조종하려면."
"알고 있소. 엄청난 정신력. 혹은 엄청나게 강한 매너 포스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아마 그는."
-
"지오 안티노스."
얀의 말에 타렌은 그가 누구일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지오인 것이다. 이쯤 되면 지오가 <하하핫!! 제법인데?
난줄 알아내다니. 정말 놀라워. 하지만 이제 죽어주셔야겠어.>
하고 나타나야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지오는 바보가 아니었다.
정신 매개체 방식은 시술자가 원하거나 죽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 강력한 슬레이브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나타나 <나 좀 죽여줍쇼!> 할 필요가 있을까? 지오는 천재중의 천재였지 그런 바보중의 바보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극적 효과를 중시 여기는 작가라지만 작가 역시 천재중의 천재였지 바보중의 바보가 아닌 것이다.
(지송해유.--;)타렌의 말을 들은 얀은 자신들의 힘으로 아이들을 막아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아이들은 벌써 삼각형의 중앙에 모여 세이렌과 헤켈을 향해 100명씩 찢어져 두 개의 병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마치 100명으로도 충분히 적을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물론 헤켈,세이렌뿐 아니라 인간들도 그들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던 차였다.
세느카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이 멍하니 있었던 것을 질책했다.
너무 놀라 그들이 저만치 걸어갔어도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세느카가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멈춰! 세느카!!!"
달려가는 세느카를 향해 카인이 달려갔다. 세느카보다 훨씬 빨랐던 카인은 금새 세느카를 따라잡았고 그녀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놔!! 이거 놔!! 아이들이. 아이들이 위험해!!"
-
"나도 알아!! 세느카. 진정해. 진정하라구!! 네가 지금 가봐야 도움되는건 전혀 없어!! 이건 또 자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구!!"
"카. 카인. 하지만. 하지만."
세느카는 설움이 목까지 차올랐는지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카인은 그런 그녀를 안고 다시 뒤로 돌아왔다. 세느카는 너무나 슬펐다. 도대체 재단은 어찌된 곳이길래. 아이들까지 희생양으로 삼는단 말인가. 도대체 왜? 카안드리아스. 그 자는 얼마나 간악한 신이길래 이런 짓거리를 저지른단 말인가.
세느카는 순간 기가스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그 분노는 곧 엄청난 힘으로 분출되었다. 그건 가히 통곡이라 할 수 있었다.
세느카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기분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그곳에 있던 인간들이라면 모두 같은 기분을 느꼈다.
미시케와 이카루스 그리고 아우로페는 세느카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깊은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인간들의 소중한 미래. 그들의 모든 행복인 아이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몰살당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들은 그런 존재였다.
다른 이들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존재. 신들의 농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 공포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눈조차 뜰 수 없는 가련한 존재. 불의를 보고도 모른척 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낮지만 웅장한 목소리로 말하며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빚을 갚을 시간이군. 죄값을."
그는 바로 타렌이었다. 타렌이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슬레이브 시스템에 조종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더욱 더 극심한 죄책감을 느꼈던 그였다. 아이들이 그 앞에서 죽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찢는 고통보다 더욱 심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달려나가 삼각형의 중앙에 섰다. 두 개로 나뉘어진 아이들의 가장 앞쪽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들 가슴이 터질 듯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타렌은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킴이었다.
그는 타렌을 믿어준 친구였으며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어른이었고 전쟁을 막을 가오그 탑승자였다.
킴 역시 가오그를 끌고 타렌곁으로 달려갔다. 킴의 가오그가 아이들 앞에 포진하자 헤켈들과 세이렌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 다른 도발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짐작했으리라.
킴이 자신을 따라오자 타렌이 웃으며 말했다.
"널 뒤에서 찌를지도 모르는데 날 따라온거야?"
-
"쳇. 차라리 지금 날 뒤에서 찔러줘. 네 녀석이 먼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후훗. 킴."
-
"왜? 진짜 찌르려구?"
"아니. 고맙다구."
-
"싱거운 녀석. 찌르지도 못 할거면서.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살아남거든 해라. 그땐 내가 널 뒤에서 찌를테니."
"하하핫. 그래. 그래. 꼭 살아남아라. 나도 좀 찔려보자."
타렌과 킴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후훗. 타렌. 킴! 너희들끼리만 재밌게 즐기기야? 나도 같이 놀아야겠어."
-
"파. 파인리히?"
"타렌. 널 증오했다. 죽도록 미워했다. 하지만 네 녀석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야."
-
"파인리히."
"네가 나에게 무릎꿇은 그 순간부터 네 목숨은 내 것이야.
네 맘대로 죽으면 용서하지 않겠어. 내 허락 맡고 죽으란 말야!"
-
"하핫. 파인리히! 좋아. 주인님 분부 명심합죠!!!"
"뭐야? 타렌? 너 파인리히한테 무릎도 꿇었어? 이런. 이런.
그럼 내 친구 자격이 없잖아?"
-
"하핫. 킴. 그럼 킴도 나한테 무릎꿇으면 되잖아요!"
"그. 그런가?? 하하하핫."
킴과 파인리히, 타렌은 적들을 노려보며 그렇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도리어 그들의 그런 농담 하나하나가 엄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자 세느카를 안고 있던 카인이 세느카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세느카. 넌 세상을 바꿀 사람이야. 넌 지금 위험에 빠지면 안돼. 절대로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
"카인. 무슨 소리야?"
"그것만 약속해줘."
세느카는 울먹거리며 카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말리려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카인이 세느카의 입술을 덮쳤다. 카인은 진한 키스를 한번 나누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 약속한거다!!"
미소짓던 카인은 벌써 멀어지고 있었다. 그 역시 파인리히들과 합류한 것이다. 세느카는 놀랍고도 슬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카인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소리쳤다.
"카인!!!! 살아나면. 살아나면!!! 그땐 이렇게 빨리 끝내면 가만 두지 않을거야!!! 훗."
세느카는 울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세느카의 어깨를 짚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얀이었다. 얀은 세느카에게 눈으로 인사를 건넨 후 천천히 다른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제이드를 향해 소리쳤다.
"제이드! 다행이오. 죽기 전에 당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어서.
부디 아이들을 모두 구해주시오."
-
"얀 박사."
제이드는 미소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얀마저 아이들의 앞쪽으로 걸어가자 나머지들(파리나타,세이타르,쥬데카)도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 동족과 될 수 있으면 싸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볼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그 어린아이가 다른 종족의 아이들이라 해도 그들은 숭고한 생명인 것이다.
젊음의 씨앗. 사랑의 열매.
미래의 기둥.
얀과 카인들은 타종족 세 개체가 다가오자 미소로서 그들을 반겨주었다. 그들은 모두 적을 바라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 있던 아우로페가 파인리히를 향해 소리쳤다.
"사담!!! 절대로 죽으면 안돼요. 나. 난. 이렇게 되었을 때 당신을 찾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너무 사무쳐 사랑하기에. 당신을 보지 않고는 모든 순간이 지옥같았기에.
이런 추한 모습으로 당신을 찾아왔어요. 그런 날. 다시 지옥속에 던지지 말아요. 이런 모습으로라도 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흑. 흑."
- "아우로페!!! 걱정하지마! 여기 친구들이 있는한 난 죽지 않아!!! 이제야 겨우 널 만났는데 내가 가긴 어딜가겠어?
걱정하지마!!!"
"사담."
아우로페는 파인리히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세느카는 그런 아우로페의 휠체어를 밀어 보다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미시케는 파인리히를 한참 바라보고는 세느카가 이동한 곳으로 걸어갔다.
'파인리히. 당신. 만약 아우로페를 슬프게 한다면. 절대 용서 하지 않겠어요. 그건 동시에. 나도 아프게 하는거니까. 당신들의 행복을 지켜봐줄 나에게 희망을 줘요. 파인리히.'
아이들의 앞에 얀,카인,파인리히,킴,타렌,세이타르,파리나타,쥬데카가 도열했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영웅같은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온 땅을 뒤엎을 정도였으며 그 웅장함은 천지를 뒤흔들 지경이었다. 너무 오바했다.
--; 어쨌든 그들이 다른 종족들을 바라보자 그들마저도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
아.... 여러분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전 감기에 걸렸답니다.
그것두 추석 끝나는날에 .... 아.... 연휴 끝나니 적응이 안되네요.
그래서 한편 올립니다. --;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