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109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09
[기가 슬렌더] -63- 카에살레아 폰 발더스(The First Brood War) -카에살레아 폰 발
더스(The First Brood War)-
일행들이 의기투합한지 하루가 지났다. 구체적인 계획은 짜지 못했어도 대략적인 윤곽은 잡은 상태였다. 우선 파리나타의 말대로 세이렌들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었다. 그의 예상으론 이삼일 뒤면 세이렌들이 공격해올 것이라 했다.
그때를 노리자는 것이었다. 세이렌들이 배틀 팀을 데리고 인간들의 도시를 공격하는 사이 일행들은 파리나타의 언더 플레인으로 5지역구로 가서 카루이안을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언더플레인은 충분히 일행들을 태울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또 하나의 의견은 타렌이 낸 것이었는데 카안드리아스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는 재단 소속 비밀 기지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지층을 뚫을 수 있는 셔틀크루져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의견을 나누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티탄시 공습 경계경보가 울리는게 아닌가. 이것은 광선형 돔 결계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헤켈이나 세이렌들이 공격을 시도했단 뜻인데.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탄(靑天霹靂彈)?이란 말인가.
게다가 티탄시 가오그 전대는 저번 락토니즈의 배틀 팀에게 모두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일행들은 미시케와 세느카를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달려나갔다. 미시케와 세느카는 카인이 말려서 남긴 했지만 그들이 걱정되어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들도 얼마 후에 밖으로 뛰어나간 상태였다.
광선형 돔 결계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었다. 이런 놀라운 파괴력은 유래 없는 것이었다. 글랜시아시를 마타 륭의 주작단과 오펜션 조력단이 합작으로 부수었을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일행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카인은 로보로이드와 싸울 때 검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저번에 들고 다니던 광목검과 비슷한 디자인의 검을 구입한 상태였다. 킴은 자신의 고물이 다된 가오그에 탑승했으며 다른 일행들도 각자 채비를 했다.
일행들이 티탄시의 유일한 통로인 3-27블록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미 경계경보는 경보로 바뀌어 있었고 보수 된지 얼마 안된 광선형 돔 결계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일행들의 눈에 헤켈들 300여개체가 눈에 띄었다. 그 중에는 일행들이 잘 아는 마타 륭과 쟈칼이 있었고 일행들은 잘 몰랐지만 르부뤽과 드라시안을 제외한 2대 현자들도 있었다. 정말 가공할 군세였다.
쟈칼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소규모 병력만으로 운명의 인간을 납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신관이 된 드라시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전쟁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티탄시를 접수하면서 동시에 운명의 인간을 납치하자는 가공하리 만치 놀라운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지금껏 그들은 한 검단이 한 도시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싸웠는데 인간들이 거세게 대항하자 마타 륭과 락켄신이 많은 부하들을 잃었었다.
그걸 깨달은 드라시안은 각개격파를 생각해냈던 것이다.
마타 륭과 락켄신의 잔여 병력으로 주작단을 재건하고 쟈칼의 청룡단과 르부뤽의 백호단이 한꺼번에 티탄시로 공격해 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그 군세는 역사상 최강의 군세이자 인간들을 파멸로 이끌 최후전쟁의 시발점인 것이었다.
얀 일행들은 그야말로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고작해야 9명. 물론 일반 헤켈 개체들보다야 훨씬 단위전투력이 높지만 어느 정도 숫자비율이 맞을 때 이야기지 지금처럼 300:10은 말도 안 되는 게임이었다. 모두들 그것을 느꼈는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이미 티탄시 시민들은 아비규환이었다. 제2지역구만 헤켈들에게 내주면 더 이상 전쟁이 없을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마테리온. 그의 생각이 여지없이 빗나가 버린 것이었다.
마테리온도 당황했는지 자신들의 부하들을 소집하는게 다소 늦었다. 하지만 이미 경계경보가 울렸을 때 제이드는 출동을 명령한 상태였다. 저번 공격 때 뒤늦게 출동하여 낭패볼 뻔 한 교훈을 되새겨 빠르게 준비했던 것이다.
마테리온은 저번 락토니즈가 공격해왔을 때 가오그의 중요성을 깨달은 상태라 가오그 20대를 더 확보한 30대로 늘인 상태였다.
다행히 마테리온의 부하들. 즉, 제이드를 수장으로 하는 200여명의 무인들과 30대의 가오그 그리고 마테리온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코로니스 엘 드바인까지. 그들 모두가 광선형 돔 결계가 파괴되기 전에 3-27 블록에 운집할 수 있었다.
얀 일행들은 갑자기 등장한 그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반갑다고 해야 할 텐데도 그들의 검은색 복장이 눈에 익은 것이라 약간 놀라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코로니스와 제이드가 아닌가. 파인리히는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었던 제이드를 보고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 파인리히를 얀이 말리는 것이었다.
"파인리히! 우선 참게. 지금은 전쟁중일세! 전쟁이 더 중요하다네. 어.? 어. 그런데."
얀은 제이드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이드와 코로니스도 마테리온이 연구소를 파괴한 후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들이 모두 살아 있음을 알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때 얀과 제이드의 시선이 마주쳤다.
"얀. 박사!!"
- "제이!!!(J)"
제이드는 얀을 알아보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얀 일행들은 광선형 돔 결계가 파괴되기 일보직전인데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제이드와 코로니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서로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다. 당신은 J 아니오!"
-
"후훗. 오랜만이군요. 얀 박사. 아. 이젠 소장이라고 했던가. 어?
부인께서도 옆에 계셨군요. 세이렌으로 귀화했다고 들었는데."
"J 당신이 살아 있었다니."
이카루스도 제이드의 얼굴을 알아보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J. 그는 포스 스트렝스 플랜에서 희생되었던 바로 그 실험대상이었던 것이다.
제이드가 온 몸이 기계로 되어 있던 이유는 바로 얀과 싸우다가 최후의 일격에 부상당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랜드 포스 오너를 능가하는 가공할 능력. 바로 포스 스트렝스 플랜으로 만들어진 괴물같은 능력이었던 것이다.
제이드는 그 당시 이성을 잃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공격을 당해 사람들을 죽이고 얀과 싸웠었다. 연구소에서 도망친 후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주인을 필요로 했다.
그가 바로 마테리온이었던 것이다.
얀은 J에게 다가가서는 갑자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파인리히가 당황해서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면서 말했다.
"그는 제이드라구요!! 연구소를 폭파시켜 저와 라케프씨,미얀을 모두 한꺼번에 죽이려 했던 바로 그 녀석이라구요!!"
-
"나도 짐작은 했네."
얀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얀은 제이드란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런 추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지금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제이드는 얀의 행동에 다소 놀란 듯 보였다. 얀은 제이드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J 날 용서해주시오. 당신이 그렇게 떠난 후 지금껏 당신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로 인해 그런 몸이 되었고 나로 인해 그런 고통을 당했으니. 난 평생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죄를 뉘우치며 살아 왔습니다. 날 용서해주시오."
-
"무. 무슨 짓이오? 얀 박사. 나. 난."
얀은 무릎꿇은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은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카루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카루스가 제이드에게 다가가서는 말했다.
"그 분은. 당신 때문에 많이 괴로워했어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기 책임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재단에서 시키는대로 한 것뿐이라구요. 카안드리아스 재단.
그곳이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구요."
-
"흠. 후우. 일어서요. 얀 박사. 내 당신에 대한 감정은 잊은지 오래입니다. 난 제이드란 이름으로 새출발을 했고 나 역시도 당신들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
-
"난 나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써줄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의장 마테리온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날 거두어주었고 난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내린 명령이라면 그 명령이 아무리 불합리한 것이라 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나를 용서하십시오."
"제이."
얀은 제이드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둘은 그간 서로에 대해 많은 후회와 고통을 공유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가끔씩 생각나는 정도로 그쳤지만 얀은 언제나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제이드 역시 고의가 아니지만 사람들을 해쳤다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니스는 제이드의 말을 듣고 제이드가 마테리온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을 구해준 사실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코로니스는 그간 제이드와 티격태격하면서 큰 우정이 쌓여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로써 제이드와 코로니스 그리고 얀 일행들의 오해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타이밍도 좋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즉, 누구도 죽을 수 있는 위기였다. 이런 시기라면 그간의 은원은 쉽사리 풀릴 수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파인리히도 제이드의 말을 듣고 그를 용서했으며 그들은 이제 하나가 되어 눈앞의 적을 맞을 준비를 했다.
광선형 돔 결계가 깨지면서 동시에 세라곤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강하기 그지없다던 세라곤이 그대로 깨져버리다니.
바닥이 깨져나가면서 동시에 이상한 원형기둥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세이타르와 파리나타가 동시에 외쳤다.
"언더 플레인!!!!"
그것은 언더 플레인의 사람 태우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파리나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기둥 숫자라면 휘페리언과 락토니즈. 그리고 스캇까지 모두 이곳에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단 말인가. 파리나타는 기솔라벨카가 스캇에게 파리나타의 배신을 귀뜸해 주었을 때부터 언더 플레인의 제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삼일의 시일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 좁기로 유명한 3-27 블록에. 바깥쪽은 헤켈 300개체. 안쪽엔 인간 200여명과 가오그 30대 그 옆쪽엔 세이렌 150개체.
갑자기 등장한 세이렌들의 모습에 헤켈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인간 200명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 해치울 수 있었다.
가오그 30대도 주작 마참대와 백호 수라대, 청룡 용아대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난데없이 세이렌들이 등장할 줄이야. 이 기막힌 타이밍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헤켈들은 작가의 어처구니없는 농간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일. 세 종족 모두 서로를 바라볼 뿐 어떻게 먼저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면 세 종족 다 지리멸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정말 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휘페리언은 저만치 보이는 파리나타를 보고 소리쳤다.
"파리나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들의 편을 들겠다는거냐?"
-
"난......"
"기솔라벨카님께서 네가 배신을 했다고 했을 때 난 그렇지 않을거라고 너를 믿어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것은 쓰디쓴 배신의 독배로구나!!"
파리나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휘페리언은 자신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인정해주는 고마운 동료였다. 그들은 가까이 있으면서 친해진 사이가 아니라 먼발치에서 서로를 존경하는 그런 친구사이였던 것이다. 그런 휘페리언이 자신을 배신자라고 말하자 파리나타는 속이 쓰려왔다.
한편, 헤켈 4검 중 일인인 자캴은 쥬데카를 보고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쥬데카. 네 어찌 락켄신의 우정을 버리고 인간들을 택할 수 있단 말이냐. 게다가 흉켈리스님을 암살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헤켈이라 할 수 있느냐? 나 역시도 널 전이 헤켈이라 무시하지 않았거늘."
-
"쟈칼. 넌 사정을 몰라. 사정을 알았다면 너도 나처럼 행동했을걸?"
"배신자의 변명은 듣기 싫다! 너 때문에 락켄신은 두 명의 친구를 잃었다. 그것도 둘 다 전이 헤켈이었지. 그의 믿음을 저버리고도 네가 그의 친구라 할 수 있는 것이냐!"
-
"내가 그의 진정한 친구라면 그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 해야하는게 옳겠지. 안 그런가?"
"올바른 길?"
-
"그래. 만약 친구가 옳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면 난 서슴없이 그를 벨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잘못을 고쳐줄 것이다!!"
쥬데카의 말에 파리나타가 그를 바라보았다. 파리나타 역시 쥬데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리나타의 시선을 느낀 쥬데카는 고개를 약간 숙여 답례를 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세이렌과 헤켈의 마음이 통한 첫 사건이 아닐까 한다.
펜 타고니와 아크바레이는 티탄시를 향해 이동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호크를 찾고 있었다. 다행히 글랜시아 시에는 헤켈들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아서 호크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문제는 전쟁의 혼란속에 모두 고장나있다는 것이었다. 아크바레이는 좀 더 주변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펜 타고니는 그런 아크바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 말대로 푸조를 죽인 헤켈이다. 그런데 네 동료들이 날 받아줄지 모르겠구나."
-
"전 제 동료들을 잘 알아요. 그들이 절 믿는 만큼 어머니도 믿어 줄거에요."
"그러길 바래야겠구나."
펜 타고니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녀의 손으로 직접 라케프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건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일 것이다. 펜 타고니는 이미 헤켈도 배신한 상태였다.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준 락켄신을 배반한 것이다. 물론 아들을 얻었으니 그 기쁨에 비하면 별것 아니겠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헤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정체성의 혼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크바레이는 그런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아크바레이의 눈에 또 한 대의 호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것은 외관상으로는 고장난 곳이 없어 보였다.
아크바레이는 호크를 한참 살펴보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상이 없는 호크 같았다. 펜 타고니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아크바레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아크바레이의 시선이 자신의 뒤를 향하고 있는게 아닌가.
펜 타고니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켄!"
-
"아직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펜 타고니."
"어째서."
아크바레이는 펜 타고니의 옆에 서서는 락켄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펜 타고니를 찾으러 글랜시아 시로 왔던 것이다.
락켄신은 펜 타고니를 보자마자 그의 묵룡도를 빼어들었다.
검은색 검신이 작열하는 태양빛에 반짝거렸다. 오늘따라 먼지층이 얇게 느껴졌다.
"펜 타고니. 난 널 믿었다. 아니. 전이 헤켈이란 족속들을 같은 헤켈족이라 믿고 대해줬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배신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냐? 너와 쥬데카. 하루아침에 두 명이나 배신을 할 수 있단 말이냐?"
-
"쥬데카 켄까지 배신을 했단 말입니까?"
"모른다고 시치미떼지 말아라. 후훗. 아니. 이젠 더 이상 뭐라 말할 필요도 없겠지. 곧 죽을테니까."
락켄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검을 돌리며 다가왔다.
아크바레이는 펜 타고니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떻게 같은 헤켈을 죽이려 하는 거죠?"
-
"닥쳐랏!! 지금껏 헤켈족의 역사상 배신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아끼는 부하가 그 첫 번째 오욕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내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는가.?"
"어머니를 놓아주세요."
-
"어머니?"
"네에. 제 어머니에요. 인간이었을 때 제 어머니요!!"
아크바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펜 타고니의 거친 손을 잡았다.
펜 타고니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불러주는 아들을 감동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지경이었다.
락켄신은 아크바레이와 펜 타고니의 행동에 다소 주춤거렸지만 이내 냉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가 지금 당장이라도 돌격한다면 아크바레이나 펜 타고니 둘 중 하나는 죽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아크바레이가 락켄신을 향해 다가가는게 아닌가. 펜 타고니는 놀라서 소리쳤다.
"아크바레이. 무슨 짓이냐???"
아크바레이는 조금 더 다가가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락켄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어머니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세요. 대신 어머니를......
어머니를 용서하세요. 마음속으로 그분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잊어주세요."
아크바레이는 잘 알았다. 자신은 펜 타고니를 지켜줄 힘이 없다는 것을.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은데. 그에겐 힘이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면 이것은 비굴한게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영광된 행동일 것이다.
락켄신은 둘 다 죽이려고 마음먹었었기에 싸늘하게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후훗. 효심은 가상하구나. 하지만 난 너희 중 누구도 살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락켄신은 그렇게 말한 후 검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때였다.
그는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동시에 그가 있던 곳이 공기 버스트에 휩싸였다. 메이딩 바쿰이었다.
아크바레이는 그 폭발의 충격으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락켄신은 메이딩 바쿰의 위력을 실감하며 말했다.
"후훗.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
"켄. 나 하나만 죽이겠다고 약속한다면 반항하지 않겠어요."
"어머니!!! 무슨."
-
"조용히 있거라. 이 아이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배신한것은 나니까. 나만 죽이고 끝내세요."
"어머니. 그럴순 없어요!!"
락켄신은 한때 가장 믿었던 부하의 말을 곰곰이 잘 들었다.
그녀의 말투는 정말 간절한 것이었다. 헤켈 사회에서 그녀는 독설을 잘 퍼붓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말투는 전혀 곱지 않아서 걸핏하면 시비거는 말로 들려 싸움질을 했던 것이다. 그런 펜 타고니가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락켄신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이게 아니지 않은가. 배신을 하고선 당당하게 '난 헤켈이 싫어서 배신했다. 그래 어디 한판 붙어보자!'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그대로 버리겠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마음이 약해지던 락켄신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한번 속지 두 번 속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락켄신은 대답 대신 묵룡도를 휘둘렀다.
"흑현괴무(黑玄怪霧)!!!"
검이 워낙 쾌속하여 안개를 뿌린 듯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펜 타고니는 위험을 느끼고는 뒤로 물러서면서 외쳤다.
"에어 배리어(Atmosphere-Barrier)"
강력한 폭발도 뚫을 수 없는 A-B 필드를 락켄신의 검은 그대로 찢어버리고 있었다. 펜 타고니는 그때 아차했다. 저번에 락켄신과 싸울 때 그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실력은 당연히 그때보다 좋았던 것이다.
펜 타고니는 가슴과 복부에 검상을 입고는 뒤로 황급히 피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만의 독특한 기술을 사용했다.
"디센트 템퍼레이쳐(To Descent Temperature)"
락켄신은 그 기술이 어떤 기술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당장 그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있던 장소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락켄신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바로 시간차 공격이었던 것이다.
시동어를 외친 후 조금 있다가 기술을 시전하는.
락켄신은 바로 깨닫고선 옆으로 피했지만 왼쪽 다리가 마비됨을 느꼈다. 급격히 하강한 온도 때문에 빨리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도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0.1초만 늦었어도 온몸이 얼어붙었을 것이었다.
락켄신은 잠시 마비된 다리를 붙잡고 펜 타고니를 노려보았다.
펜 타고니 역시 자신의 부상당한 가슴을 붙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게임이었다.
락켄신은 다리의 마비가 풀려가자 검을 땅에 꽂고는 그대로 끌면서 달려나갔다. 그리곤 검을 들어올리면서 외쳤다.
"음상영렬(陰上影裂)!!"
락켄신의 흑룡도가 갑자기 주욱 길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검은색 검기였던 것이다. 펜 타고니는 다급히 에어 배리어를 친 후에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에어 배리어와 음상영렬이 마주치는 폭발에 옆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아크바레이는 그대로 달려가 펜 타고니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미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순간 아크바레이는 뭔가 끌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도대체 왜. 서로 싸워야 하는가.
도대체 왜 붉은 피로 세상을 적시려는가.'
아크바레이는 엄청난 분노로 자신이 이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때 아크타리안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매너 포스를 사용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와 마음이다.
그 중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불순한 것이면 불순한 매너 포스를 발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면 정순한 매너 포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데 네 녀석은 사상이 너무 불순하다! 욘석!'
그리곤 얀이 그에게 들려주었던 말도 생각이 났다.
'난 너의 눈빛에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아주 강한 의지.
하지만 결코 정순한 의미의 의지는 아니구나. 언젠가 스승님께서 내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의지를 가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을. <마음, 아무리 뛰어난 포스 오너라 해도 그 마음이 곧지 못한다면 그 능력은 없느니만 못하다.
너의 비뚤어진 마음을 보아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내 속에 잠재된 부정적인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의 의지들은 비록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었지만 그것들로 인해 결국 내 몸을 망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아크바레이 자신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곧지 못한 마음으로 만들어낸 의지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순간 아크바레이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스스로 분노를 잠재웠던 것이다. 펜 타고니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아크바레이를 바라보았다.
"어서 도망치거라. 아가야."
-
"아뇨."
아크바레이는 펜 타고니를 잘 누이고는 락켄신을 바라보았다.
락켄신 역시 자신의 음상영렬과 펜 타고니의 에어 배리어가 맞닿는 충격으로 뒤로 약간 밀려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펜 타고니보다 부상의 정도는 훨씬 미약했다. 락켄신은 가장 어려운 상대였던 펜 타고니가 먼저 쓰러지자 다소 안심하며 아크바레이에게 다가갔다. 펜 타고니에 비하면 이런 녀석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락켄신은 초식을 사용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지 그대로 검을 찔러 들어갔다.
아크바레이는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다가오는 검을 노려보며 른손을 안에서 바깥쪽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락켄신은 왼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락켄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크바레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 보여 방금 전 펜 타고니를 붙잡고 소리치던 그라곤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락켄신은 순간 뭔가 일이 잘못 꼬이고 있음을 알았다.
방금 전 그가 검을 찔러 들어갈 때 왼쪽으로 날아가 버렸던것은 아무래도 그의 검 때문인 것 같았다. 아크바레이의 손짓은 그 검을 락켄신의 왼쪽으로 날아가도록 움직인 것이었는데 락켄신의 손아귀 힘이 워낙 강해 그까지 딸려 날아갔던 것이다.
락켄신은 직감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펜 타고니라 해도 자신의 손에서 검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놓여져 있는 검 자체를 움직이는데 드는 매너 포스는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검을 누군가가 잡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물체를 들 때 사용하는 힘이 1F라고 한다면 그 물체를 누군가가 잡고 있을 때 사용해야 하는 힘은 10F를 웃도는 것이다. 이것은 매너 포스의 의지란 개념 때문에 생긴 이론인데 간접 의지라는 개념이었다.
무생물체에는 의지력이 없기 때문에 간단한 힘으로도 들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무생물체에게도 간접적으로 의지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락켄신이 흑룡도를 들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락켄신이 흑룡도에게 찌르자는 의지를 부여한 상태에서 그 검을 매너 포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다. 생명체의 의지는 아무리 강한 매너 포스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지만 간접 의지는 강력한 매너 포스로 깨칠 수 있는 것이어서 아크바레이가 락켄신이 검에 부여한 간접 의지를 깨치고 검과 함께 그를 던졌던 것이다.
물론 말이 쉽지 엄청나게 강한 매너 포스가 있어야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펜 타고니는 자신의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뭔가를 깨달았다. 그 아들의 몸에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광채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빛이 너무 투명해서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얀이나 라케프가 보여주었던 광채와는 다른 아주 잔잔한 것이었다. 펜 타고니는 그 광채를 보고는 미소지었다. 그리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페니. 당신이군요."
드디어 아크바레이의 몸 속에 잠자고 있던 그의 또 하나의 유전자가 깨어났던 것이다. 오리지널 포스 오너였던 아크바레이.
그의 아버지였던 세컨드 포스 오너의 능력이 깨어난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세컨드 포스 오너 고페니와 오리지널 포스 오너 리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오리지널 포스 오너가 될 수 있느냐? 우생학적으로 맞는 설정이냐? 라고 질문하는 분이 계셔서 한 말씀드리고 가겄습니다이~<실은 한 분도 없었어유.--;> 퍼스트 포스 오너의 우성 유전자(AA)를 가진 라케프와 열성 유전자(aa)를 가진 리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고페니의 유전자는 (Aa)가 되고 그런 고페니와 (aa)의 유전자를 가진 리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Aa)(aa)의 2가지 확률도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중 (Aa)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는 우성 유전자가 발현되어 라케프 혈통을 이어받는 것이고 (aa) 의 유전자 형태를 가진 아니는 리니아의 유전자 구조와 같기 때문에 오리지널 포스 오너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크바레이는 (aa)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크바레이의 아버지 고페니의 유전자가 깨어났다는 것은 그야말로 설정.<요건 극적효과를 위한 설정이구만유.--;>〕
락켄신은 마음을 진정시킨 후 그만의 절초를 펼쳐나갔다.
"흑현괴무! 음상영렬!!"
락켄신은 검을 땅에 대고 끌면서 달려가다가 그의 빠른 쾌초식으로 음상영렬을 동시에 구사했다. 정말 패도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아크바레이는 선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펜 타고니는 위험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멈추어 섰다.
락켄신의 묵룡도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아크바레이를 때리고 있었지만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아크바레이를 공격하던 묵룡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어 서서는 부들부들 떨리는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락켄신의 손에서 묵룡도가 빼앗기고 말았다.
락켄신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 없자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아크바레이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공중에서 그대로 회전시켜 묵룡도의 검끝을 락켄신의 목에다 가져다 대었다. 아크바레이가 조금만 힘을 주면 끝날 상황이었다.
"멈추거라!!! 아크바레이!!"
-
"어머니."
펜 타고니였다. 그녀는 부상당한 가슴을 붙잡고 아크바레이에게 다가와서는 공중에 떠 있는 묵룡도를 잡고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그는 한때 나의 켄이었다. 그분을 그만 돌려보내거라."
-
"알겠습니다. 저도 이유 없는 살생은 원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세요."
아크바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락켄신의 묵룡도를 도로 돌려주었다. 락켄신은 아크바레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는데 그냥 돌려보내주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락켄신은 검을 집어넣고는 펜 타고니에게 말했다.
"쟈칼과 마타 륭. 그리고 르부뤽이 티탄시를 공격하러 출발했다. 아마 곧 도착하게 될거야."
-
"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거죠?"
"이제 넌 인간이니까. 펜 타고니."
르부뤽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을 잊겠다는 뜻이었다. 펜 타고니는 고마운 눈길로 예전 상관을 바라보았다.
아크바레이는 티탄시가 공격 받을거란 소리에 다급히 호크에 타보았다. 그런데 역시 이 호크도 내부에 고장이 나 있었다.
기술자가 아닌 아크바레이로서는 그것을 고칠 수가 없었다.
허기야. 멀쩡한 호크를 사람들이 버리고 도망쳤을리 없었다.
호크에서 내린 아크바레이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때 락켄신이 말했다.
"왜. 날 죽이지 않는거지?"
-
"당신은 분명 다른 종족이에요. 하지만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당신만을 믿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거라구요. 난 그 가족들을 슬프게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
-
"난 가족의 소중함을 이제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게 되었거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다른 종족인데도 그들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나? 그들의 삶이 향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
"정말 우스운 질문이군요. 일개 벌레조차도 살아갈 권리를 가진 생명체에요. 하물며 생각할 줄 아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내 생명이 중요하단 건 알면서 다른 종족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는건가요?"
아크바레이의 말에 락켄신은 미소지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가지 배웠군. 좋아. 같이 가지. 나와랏!!"
락켄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하늘을 향해 들며 나오라고 외쳤다. 그러자 땅속에서 거대한 벌레가 지상으로 튀어 나오는게 아닌가. 길이 50미터에 너비 30미터인 그레이트 웜보다는 훨씬 작은 스몰 웜이었다. 그래도 길이 10미터에 너비 5미터나 되는 거대한 놈이었다.
아크바레이는 깜짝 놀랐지만 펜 타고니는 많이 봐오던 녀석이라 녀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로드니! 여긴 내 아들이란다. 오랜만이구나."
그 스몰 웜의 이름은 로드니였다. 락켄신과 현무 음영대가 타고 다니던 벌레였던 것이다. 이젠 그 주인의 대부분을 잃어 락켄신밖에 남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래서 펜 타고니도 그 녀석을 알아봤던 것이다.
아크바레이는 펜 타고니의 소개로 녀석과 인사를 나눈 후 그 녀석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참. 벌레 속으로 들어간다는것이 기분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호크가 없는 이상 이것이라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벌레 안쪽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창문 비슷한 것이 있어 바깥 장면이 모두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락켄신은 아크바레이의 말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어 그들을 돕기로 한 것이었다. 락켄신과 아크바레이 일행들이 로드니에 탑승?하자 로드니는 다시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티탄시를 향해 땅속을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티탄시. 아직도 세 종족은 서로 대치상태였다. 섣불리 도발을 할 수가 없는게 상대는 두 종족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전력을 쏟을 수 없는 두 개의 종족.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그들로서는 점점 초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뭐라도 터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그만큼 1분 1초가 피말리는 긴장의 순간들이었다.
얀도 적들을 아무리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수단이 생각나질 않았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방어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그건 다른 종족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만약 한 종족을 향해 공격을 가하게 되면 남은 한 종족이 어부지리를 취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병력을 둘로 쪼개어 한쪽씩 공격하게 한다면 그 역시도 각개격파 당할게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다.
그때였다. 숙소에 있으라고 했던 세느카와 미시케가 달려오는게 아닌가. 카인은 그녀들을 보고는 당황하며 직접 뛰어가 그녀들을 맞이했다.
"세느카, 미시케. 이곳까지 오면 어떡해요?"
-
"미안해. 카인. 하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미시케! 미시케가 세느카를 말렸어야죠."
-
"카인. 그녀를 탓하지마. 그녀는 내가 나오자고 해서 따라나선 것뿐이니까."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 있어."
카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직접 제이드의 부하들 뒤로 세느카를 안내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헤켈의 한 녀석이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바로 그 운명의 인간이다!! 나 지존 르부뤽은 역시 대단해. 한 번에 그녀를 알아봤어!! 역시 난 천상천하 유아독존 광세무적 천하제일검 지존 르부뤽이야. 우하핫."
그 문신을 한 헤켈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이 심각한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자 곳곳에서 큭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카인과 세느카는 바싹 긴장하고 말았다. 헤켈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티탄시를 접수하는 것도 있겠지만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그녀를 납치하는게 아닌가.
헤켈의 말을 알아들은 휘페리언도 앞으로 한 걸음 나오더니 세느카를 보고 말했다.
"흠. 기솔라벨카님께서 말씀하신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인간이로군."
- "넘보지마라! 세이렌! 저 인간은 나 지존 르부뤽의 몫이다!! 우하하하핫"
"르부뤽?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군. 그런 쓰레기같은 이름을 감히 광마(光魔) 휘페리언 앞에서 들먹이다니 우습군."
휘페리언은 차갑게 웃으며 르부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거리는 불과 40미터정도밖에 차이가 없어서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한 거리였다. 르부뤽은 도가 튼 녀석처럼 그 정도 말에 당황하지 않고 응수했다.
"얌마 휘페리언? 야. 임마. 그 따위 별명도 별명이라고 달고 다니냐? 나처럼 황제병 말기 환자라던가. 초우주적 세기말적 엽기 왕자라던가. 뭐. 그런 화끈한 별명도 아니고. 쪼다같이 얌마가 뭐야. 얌마가. 얌마 휘페리언? 우헤헤. 웃기는 별명이야."
-
"쳇. 자기 자신의 병명을 알면서도 고치질 않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휘페리언은 르부뤽의 입심이 자신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고 조용히 말싸움을 회피했다. 르부뤽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상?
(반:비하?)시켰다고 생각하며 부하들에게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는 둥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둥 양팔을 하늘 높이 들며 <지존! 지존!> 하고 외치는 둥 해괴망측한 짓거리를 했다.
그의 부하들은 몇 번 겪어본 것처럼 르부뤽이 팔을 들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지존! 지존!>을 외쳤다. 참. 보기 민망할 정도의 광신집단이었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완전 미친 또라이 집단이었다.--;
세느카는 그들을 모두 바라보고는 카인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곤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서는 외쳤다.
"휘페리언!!! 나를 기억못하나요???"
카인은 다급히 그녀의 입을 막았지만 그녀는 카인의 억센 손을 치우고 다시 소리쳤다.
"휘페리언!! 락토니즈!! 날 기억 못하나요?"
-
"우린 그대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언제 만난적이 있던가?"
"같이 카루이안과 싸웠잖아요. 신들의 유희에 대항해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싸웠잖아요. 기억 안나요?"
-
"카루이안? 그게 누구지?"
세느카의 말에 락토니즈는 한참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는 정말 기억을 못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있었다. 휘페리언은 세느카를 보고 말했다.
"우린 당신도 기억 못하고 카루이안이 누군지도 모른다. 단지 널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
"쳇. 웃기지마! 저 인간은 내꺼야!!"
휘페리언의 말에 르부뤽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타 륭이 르부뤽에게 말했다.
"좀 닥쳐줘. 아무리 귓구녕이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려버리라고 두 개라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
"쳇. 좋아. 나 지존 르부뤽에게 주작단의 켄이 무릎꿇고 사정사정한다는데 어찌 내가 그 부탁을 거절하겠는가. 좋아.
가만히 있지. 좋다구. 하지만 이건 내가 결코 널 두려워해서가 아냐. 내가 워낙 착하고 마음이 넓은 지존 르부뤽이라서 그런거지. 알겠어?"
"에휴. 내가 언제 무릎꿇고 사정사정했냐? 어쨌든. 알았어.
알았다. 제발 그 입만 닥쳐다오."
마타 륭의 말이 끝나자 르부뤽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세느카는 휘페리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파리나타의 말대로 세뇌를 당한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와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휘페리언. 당신은 선택의 날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나요?"
-
"선택의 날?"
"그래요. 당신이 결정해야 했던."
-
"......"
세느카의 말에 휘페리언은 뭔가 생각이 나는 듯 했다.
<신의 유희> 유희란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사실 카루이안이 세뇌를 했지만 그것은 자신과 싸우기 직전에 세느카가 등장한 기억부터 세뇌를 시킨 것이어서 그 전에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건 카루이안의 큰 실수였다.
"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
"휘페리언. 당신이 선택한 것이. 고작 이건가요? 신들의 유희든 종족을 위한 것이든. 상관없이 다른 종족을 죽이겠다는 것인가요?"
"아냐!! 난 신들의 유희를 위해서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 세이렌족을 위해서 너희를 공격하는 것이다!!"
휘페리언의 말에 모두들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다른 모두는 그들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느카는 조금 더 세이렌쪽으로 다가서고는 말했다.
"기가스. 즉, 세이렌! 당신들의 신과, 헤켈!! 당신들의 신!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신이나 다름없는 카안드리아스! 이들이 왜 전쟁을 일으키는지 알아요?"
세느카는 마치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헤켈들 모든 세이렌들에게 말하는 듯 보였다. 물론 인간어를 못 알아듣는 하등개체는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이었지만 고등개체들은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세느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뒷 말을 이었다.
"기가스들은. 단지 자신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거라구요."
세느카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인간들쪽은 모두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으므로 놀랄만한 사실에 어리둥절해졌던 것이다. 세느카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난 최근에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우리 인류의 유적. 펠로포타미아 유적과 알리타인 유적, 오스렌디아 유적, 쿠콰랴만 유적. 이 유적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요? 그건 바로 신들이 유희를 즐겼던 전투장이란 사실이에요!!"
-
"!!!!!!"
"그곳들은 모두 하나같이 두 개의 부족들이 싸운 흔적이 남아 있죠. 그 이유가 뭔지 아나요? 그들은 각자 자신의 신들의 이름 앞에서 목숨을 걸고 다른 종족들과 싸움을 벌였던 거에요. 단지 신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사명으로 목숨을 버렸던 거라구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나요? 우리는 신들이 만들어 놓은 장기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구요. 지금 우리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공격한다면 신들은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승부에 서로 내기를 걸며 좋아하겠죠. 그들은 그런 자들이니까.
이제 알겠어요? 우리가 저질렀던 그 수많은 전쟁과 희생들. 도대체 누굴 위한 전쟁이었으며 누굴 위한 희생이었죠? 우리의 죽음을 관람하며 즐기는 기가스들을 위한 것인가요? 그 신들을 위해 서로를 죽이려 애쓰고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뭐죠? 쓰디쓴 상처와 고통뿐이잖아요."
세느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다시 고요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최근에 많은 경험을 하면서 동시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추리하고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유적에 대한 사실도 죽은 루카누스가 그녀에게 힌트를 주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추리였다.
루카누스는 인간들의 땅에 있는 유적들이 인간들의 유적이 아닌 헤켈과 세이렌들이 오랜시간전에 싸웠던 유적임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이미 세느카는 펠로포타미아 유적과 알리타인 유적을 탐사해봤었고 그때 그녀의 생각도 인간과 다른 종족이 싸운 흔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종합된 생각은 끝내 진실을 파헤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추리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싸우면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의 유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최근에 어떤 한가지 사실을 알았죠.
이번 전쟁의 목적은 전에 유희를 즐기기 위한 것과는 약간 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을요. 그게 뭔지 아나요? 신들은 지금껏 유희를 즐겨왔어요. 하지만 이런 대규모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유희를 즐길 수 없겠죠. 그렇지 않나요? 자신들의 피조물들이 모두 죽는다면 그 종족의 신은 더 이상 유희를 즐길 수 없게 되어버리죠. 그건 지금껏 그들이 추구하던 이상과 전혀 다른 방향의 길로 들어서는 거에요. 즉, 이것이 뜻하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유희를 즐기지 않기로 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죠."
세느카는 카발리에레로부터 들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카안드리아스가 먼저 계약을 파기했다는. 그 말을.
"이건 추측이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신들이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 했을거에요. 쉽게 설명해서 지금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한 종족이나 혹은 두 종족은 모두 멸망하고 그들은 더 이상 유희를 즐길 수 없을테니까요. 그럼 새로운 종족을 창조해야겠죠.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을 새로운 종족으로 교체하는 작업은 그들에게도 지루하고 귀찮은 작업이 될테죠.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성을 느낀거에요. 바로 그들만의 조약을 체결하므로써......"
세느카는 그곳에 있는 모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정으로 약간 격앙되어 있었지만 흥분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모여 조약을 체결했어요. 그 조항을 확실하겐 모르지만 이렇게 추리할 수 있었죠. 첫째, 다른 종족을 절대로 멸종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세이렌이나 헤켈들이 인류의 도시를 공격했을 때 한 도시정도에 국한되었던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죠. 안 그런가요?"
-
"흠.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우리 헤켈들도 한번 빼고는 전부 한 개 도시만을 공격했었지."
세느카의 말에 르부뤽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는 마타 륭의 따거운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맞아요. 제 4차 헤켈대전때 3개 도시를 공격한 것을 빼면 모두 한 도시만을 공격했었죠. 하지만 4차 헤켈대전때에도 이유는 있었죠. 얀 박사님. 말씀해주실래요?"
-
"흠. 내 생각엔. 그 당시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그랜드 포스 오너 3명이 4차 헤켈대전에서 모두 전사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군."
얀의 말에 쟈칼이 다소 놀라면서 말했다.
"흠. 저 인간의 말이 맞다. 우린 그 당시 3명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를 죽이라는 지령을 받고 3개의 도시를 공격했지.
그러고보니. 다른 전쟁때에도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몇 달전에 티탄시를 공격한 그때를 제외하고는."
-
"그래요. 하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달라요. 단지 헤켈에게 위협이 되는 그랜드 포스 오너 3명을 죽이기 위해 대전을 일으켰을까요. 아뇨. 천만에요. 신들은 그랜드 포스 오너란 장난감의 능력을 시험해 본거에요! 헤켈 당신들로 하여금 그 도시들을 공격하게 하여 그들의 능력을 시험해 본것이라구요!
물론 그 전투를 관람하며 즐겼겠죠. 그리고 서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더 뛰어나다고 잘난척 으스댔겠죠. 그래서 또 하나의 조약이 필요해요. 둘째, 서로가 만들어낸 새로운 피조물의 능력에 대한 정보는 공유한다."
"설마. 로이안 리플이 등장한지 얼마 안되어서 헤켈들이 레이져 건을 만들고 세이렌들이 아크릴 방패를 만들었던 것이!!"
얀은 정말 똑똑하다. 척척 알아먹으니. 얀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님 말대로에요. 우리가 가진 기술은 자연히 재단으로 보고되고 그것은 카안드리아스가 보게 되겠죠. 그들은 아마 정기적으로 회담을 갖거나 했을거에요. 그래서 각자 새로운 피조물의 능력을 개발하면 그것을 서로에게 자랑하며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의 능력을 시험했겠죠. 휘페리언. 세이렌족에서 소서렌이란 개체가 나타나 인류를 위협한 것이 언제쯤이죠?"
-
"소서렌이란 개체는 최근 들어 많이 생겼지 200년 전만 해도 대여섯 개체에 불과했다. 아마 그들이 전쟁에 투입된것은 불과 10년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제 3차 세이렌 대전을 기억하나요?"
세느카가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킴이 놀라며 외쳤다.
"3차 세이렌 대전이면!! 가오사이보그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가오그 프로토타입이 전투에 참가하게 된 첫 번째 전투잖아요!!!"
킴은 가오사이보그 전문가답게 단박에 알아맞히었다.
"맞아요. 그게 과연 우연일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세이렌의 카루이안과 인류의 카안드리아스는 서로 새로운 능력을 가진 피조물을 창조해냈죠. 세이렌들은 소서렌이었고 인간들은 가오사이보그였죠. 그들은 그것들의 능력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어요.
물론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이 더 강하길 바랬겠죠. 그들은 그런식으로 서로의 능력을 저울질 하며 균형을 맞춰 왔던 거에요. 그래야 그들의 유희가 영원히 향유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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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들의 쉐도우가 개발된 것도. 소서렌과 가오사이 보그란 능력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쟈칼이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느카의 말들은 정말 놀라운 것들뿐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반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의견에 토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조약은 끝내 파기되기에 이르렀죠. 전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이천년간을 이어온 그들의 우정이 도대체 어떤 것으로 깨졌을까 하구요. 셋째, 조약을 깨뜨린 기가스는 다른 종족의 기가스들로 하여금 말살당하리라.
이것이었죠."
얀은 이 대목에서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에리네가 그들에게 설명했던 바로 그것. <재단은 겉으론 전쟁을 원하지 않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원했다> 카안드리아스는 자신이 조약을 깨뜨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다른 종족보다 인간들은 자유롭고 개성이 강하며 특별했다. 즉, 카안드리아스가 자신을 신격화해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란 사실이다.
그만큼 인간들은 멋대로인 동물이었으며 그들을 규제할 수 있는것은 권력과 돈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기가스들처럼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고 재단의 총수로 남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조약을 파기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쟁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원들을 매수해 전쟁론을 언제나 반대하도록 만들었고 전쟁은 당연히 해선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두려움은 결국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오는 그런 위대하신 분의 생각을 훨씬 앞서 나가 이미 전쟁 준비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생각대로 전지역구 의회에서 전쟁론은 통과되고 말았다. 얀은 이 모든 것을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재단에서 전쟁을 반대했지만 끝내 전쟁론이 통과되었던 그 이유를! 세느카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한가지만 물을게요. 거기. 문신 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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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말인가?"
"네. 맞아요. 당신."
세느카는 르부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몇달 전에 헤켈들이 티탄시를 공격했을 때 왜 정신과학 연구소만을 공격했었죠? 대답해 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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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에이. 좋아. 대답해주지. 솔직히 그 임무에 투입된 녀석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모두 죽었다. 사실 자살특공대를 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어쨌든 그들은 연구소를 뒤지고 흉켈리스님께서 원하신 정보를 우리에게 전송하는데 성공했다. 그 작전이 끝난 후에 흉켈리스님으로부터 그 작전의 목적에 대해서 들었다.
그것은 그 연구소에서 해서는 안될 연구가 진행중이란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지. 바로 우리 헤켈들의 유전자를 이용해 잡종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한다는 정보였어!!"
르부뤽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간들을 벌레 보듯이 바라보았다.
상당히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다.
"맞아요. 쉐도우 프로젝트는 헤켈의 유전자를 가지고 실험한 것이었죠. 그것 말고도 또 한가지가 있죠. 세이렌의 유전자를 가지고 실험했던 가상 생명체 프로젝트. 이것 역시 반인륜적인 실험이었죠."
세느카는 파인리히과 카인에게 약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 실험들은 해선 안 되는 실험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네 번째 조건이죠. 넷째, 기가스 사이에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되며 세종족은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또한 타종족의 인권을 유린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여기서 인권을 유린하지 말란 말은 다른 종족을 침입할 때 서로의 합의 하에 싸우도록 하자는 뜻이에요.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뜻은 다른 종족의 능력을 도용하지 말라는 뜻이죠. 하지만 카안드리아스 재단에서는 다른 종족의 뛰어난 장점만을 갈취해 인간들의 몸에 합성시키는 실험을 자행했어요.
이것은 세종족의 힘의 균형도 무너뜨리는 짓이고 또한 인간 자신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물론 다른 종족의 인권까지도 유린하는 짓이었죠. 물론 당연히 다른 기가스들에겐 비밀로 했겠죠. 하지만 헤켈족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에요.
전이 헤켈이 비밀을 빼왔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방법으로 알아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 엄청난 사실을 믿을 수 없던 헤켈들의 신인 카발리에레는 그것을 확인하라고 시켰죠. 그래서 헤켈들은 티탄시를 공격하고는 정신과학 연구소만 파괴한 것이었어요.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죠.
끝내 카안드리아스가 기가스들의 조약을 파기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었어요. 그와 동시에 카발리에레는 조약을 파기한 카안드리아스를 응징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고 당신들은 2지역구를 철저하게 파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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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설마. 바쿠듀므 란케님께서 말한. <전쟁은 신의를 저버린 그들의 대한 나의 의사표현인 것이다.>것이. 그 뜻이란 말인가.
조약을 어긴 인간들의 신 때문에."
세느카의 말에 마타 륭이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렇다면 그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도 자신들의 유희를 즐길 수 없게 되어 기분나빴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게 아닌가. 마타 륭은 순간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세느카는 잠시 숨죽여 그를 관찰하다가 말을 이었다.
"세이렌족도 역시 약간 늦었지만 카안드리아스의 분위기를 느꼈던거죠. 그리고 카루이안 역시 헤켈들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전쟁을 하기로 결심했죠. 락토니즈. 당신에게 묻겠어요.
왜 여러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이 티탄시로만 몰려온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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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헤켈들이 이곳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지. 우린 그들이 노리는 것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눈치 챘던거야. 그리고 그건 우리가 노리고 있는 것이었고."
락토니즈는 약간 바보스러웠지만 천천히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세느카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카루이안은 이미 알았던거에요. 헤켈들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리고 바로 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 노리는 것이란 바로 저겠죠. 왜냐하면 제가 이 모든 것에 원인이자 중심이거든요."
세느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일의 원인이자 중심인. 그녀. 그녀는 왜 기가스들이 그렇게 와해되었는지 그 또 하나의 원인이 자신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것을 설명하려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인간의 군대와 세이렌의 군대가 오른쪽과 왼쪽에 주둔한 상태였는데 그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오는게 아닌가. 대략 200여명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보고나서 뭔가 깨달았다. 그제서야 얀 일행도 최근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한 뉴스를 기억해냈다.
〔최근 전쟁 발발 이후 8세 이상 13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많이 실종되고.〕
설마. 그 아이들이 바로!!!!!!
-4권 끝('귀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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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잘 보내세요. 추석 기념으루 한편~ 모두 모두 행복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