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108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08
[기가 슬렌더] -62- 카인 쥬언트(그들의 평화.) -카인 쥬언트(그들의 평화.)-미얀과 에리네가 떠난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얀 일행들은 더 이상 쿼터드 시에 머물지 않고 티탄시로 돌아온 상태였다.
라이오네와 레이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오네는 여전히 밝은 미소로 일행들을 반겼고 레이는 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카인은 레이를 바라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재단 탓이었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그녀를 이렇게 만들다니.
의학이 발달하긴 했어도 정신세계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그녀를 다시 현실로 꺼내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녀를 다시 원래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한가지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쉐도우 프로젝트는 다시 할 수 없다. 마지막 유전자를 각성하게 되면. 그녀를. 그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연구소는 더 이상 그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카인 자신도 더 이상 각성을 받지 않고도 잘 싸울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부작용이 없었지만 마지막 각성까지 이뤄지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얀은 레이를 바라보고 있던 카인에게 다가가서는 어깨를 짚고는 말했다.
"너무 신경쓰지 말게. 레이도 지금 싸우고 있어. 그녀가 이기길 바라는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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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하핫. 이젠 소장이라고 부르지 말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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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박사님. 저어. 혹시 쉐도우 프로젝트 마지막 유닛을 각성하게 되면."
"흠. 아니.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네. 너무 위험부담이커. 그 세상에서 입은 정신적 충격으로 레이가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네. 자네마저 잃고 싶지 않아."
카인은 얀이 단호하게 말하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파인리히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갔다.
릴튼 병원의 신체이식병동이었다. 장기만 이식하는게 아니라 신체의 일부분까지 이식하는 기술이 발달했던 것이다.
파인리히는 일부러 아우로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혼자 그곳을 찾아간 것이었다. 신체이식병동의 원장을 찾아간 파인리히는 그에게 아우로페의 상태를 말하고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글랜시아시의 유명한 병원에서도 못 고친 아우로페다.
티탄시가 글랜시아시보다 약간 크긴 하지만 거기서 거기다. 의학 수준도 마찬가지였다. 파인리히는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우로페는 파인리히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물었다.
"사담. 무슨 일 있나요? 안색이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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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야. 그래. 아우로페는 어때?"
"저야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죠."
-
"그래."
파인리히는 아우로페의 얼굴을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시케는 파인리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파인리히!! 그 자신감 있던 표정은 다 어디갔어요? 자! 자!
아우로페 앞에서 당당해지라구요!! 호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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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시케. 후훗. 그래요."
파인리히는 언젠가는 고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활짝 웃었다. 미시케는 그의 미소를 보면서 자문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그녀는 행복한 표정의 아우로페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낄 자리는 없는 듯 보였다. 파인리히. 그는 언제나 아우로페 한 사람만을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그들 사이에 자신은 아무런 존재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도리어 후련해졌다. 아니. 자신이 파인리히를 좋아하는만큼 그들이 잘 되길 바래야 할 것이었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타렌은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최근 들어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일들. 저질렀던 죄악들.
앞으로 해야할 일들. 그는 파인리히와 아우로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숭고한 사랑.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단 말인가. 하지만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실력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그들을 인정했던 것이다.
아직 사람들은 타렌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그는 그런 반인륜적인 실험을 실행한 사람이고 자신들은 피해자였으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킴 팽이었다.
그는 글랜시아시가 완전히 끝이 나면서 직장을 잃은 가오그 탑승자였다. 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다른 도시에 취직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일행들과 있으면 더 안전할 것 같다나? 그런 킴 역시 타렌처럼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유유상종이니 타렌과 킴은 자연히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둘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
"그나저나 타렌. 이젠 뭘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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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 그건 저들의 몫이지. 난 그들을 도울뿐이야."
"흠. 그들은 널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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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난 파인리히를 죽자살자 쫓아다녔으니까."
"뭐어? 취향이 독특했구나. 그러니 저들이 널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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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이야?"
"나도 조심해야겠는데? 내가 파인리히보단 훨씬 곱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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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 날 게이취급하는거야? 쳇. 그런 뜻이 아니야.
난 파인리히를 잡기위해서 쫓아 다녔던거라구. 그를. 실험대상으로 사용하려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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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그대로야."
킴은 깜짝 놀란 듯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지만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난 과거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해.
지금이 중요하지.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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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지만 저들은 날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아."
"힘내. 난 널 믿을 수 있어. 네 녀석의 눈은 진실하거든.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까 날 믿어도 돼."
킴이 호언장담을 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타렌은 피식 웃더니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날 믿지마. 언제고 뒤에서 찌를 수도 있어."
-
"......"
타렌의 표정이 워낙 진짜 같았기에 킴은 그대로 굳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글랜시아시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그의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히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하하핫. 농담이야.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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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바. 방금 전 그건. 살기였다구!! 살기!!"
"정말 놀랐나보구나. 미안해. 정말. 장난이었어."
-
"정말이지?"
"그래. 후훗. 미안해. 난. 사실 아무도 믿질 않거든. 내 자신밖에.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날 믿는다는 것도 믿지 않아.
하지만. 이젠 누군가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
"그. 그래? 그게 나지?"
"후훗. 아니, 넌 좀 더 두고 봐야겠어."
-
"뭐어!!!"
킴은 타렌의 웃는 모습이 무척 쓸쓸하다고 느꼈다. 일행들 중에 거의 쥐죽은듯이 지내는 타렌은 거의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 그였기에 웃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던 것이다.
킴은 타렌의 마음이 진심이란 것을 마음으로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가서는 법을 아직 모르는 거다.'
얀은 나머지 일행들에게 일단은 숙소에 돌아가자고 제의했다.
라이오네와 레이도 무사했으므로 그들은 안심하고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얀은 잠시 어디로 나간다고 하고는 사라졌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할 일을 위해 행동했다. 카인은 모처럼 티탄시에 돌아온 기념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저절로 정신과학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덧 구석진 곳에 위치한 연구소 건물 앞까지 걸어온 카인은 연구소를 바라보았다.
"세느카."
카인은 세느카를 처음 만난 순간을 아직도 기억했다. 재단에서 시킨 알 수 없는 명령. 세느카를 납치하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 헤켈. 처음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쉐도우를 그 헤켈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었다.
그 당시엔 헤켈들이 인간들의 기술을 훔쳤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다. 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헤켈들이 훔친게 아니라 인간들이 훔친 기술이었던 것이다.
세느카를 납치하려는 헤켈과 몇차례 사투를 벌여 모두 물리쳤었다. 하지만 결국. 결국 그녀를 납치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가 납치당한 상태에서 간신히 그녈 만났을 때에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그녀를 볼 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하지만 세이렌들에게 납치된 그녀를 무슨 수로 구해낸단 말인가. 금단의 땅으로 나홀로 쳐들어가 그녀를 구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갔을 것이다.
카인은 오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이젠 무얼 해야한단 말인가. 헤켈들은 모두 돌아가고 세이렌들은 아직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잠시간의 평화.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너무 평화스러운 것도 그에겐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세느카를 떠올릴 시간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건 고통이었다.
카인은 다시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같은 복장을 한 같은 머리스타일의 사내들이 카인을 가로막았다.
카인은 그들을 보자마자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쟈코모를 만났을 때 나타난 그 로보로이드들인 것이다.
그들은 카인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로이안 리플을 갈겼다.
카인은 민첩하게 쉐도우와 접속을 했다. 쉐도우와 접속한 상태에서 로이안 리플의 광선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걸 알텐데도 계속 공격을 가하다니 카인은 그들을 비웃고는 광목검을 꺼내 들었다. 아니. 그럴려고 했다. 하지만 광목검은 마타 륭을 찌르고 나서 부러져버렸지 않은가.
카인은 적수공권으로 상대를 향해 공격해갔다.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공격했는데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가 버리는게 아닌가. 녀석은 얼굴부분의 합금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카인은 녀석들이 티라늄 합금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그 추측은 사실인 듯 느껴졌다. 카인은 자신을 향해 로이안 리플을 휘두르는 한 녀석을 돌려차기로 쓰러뜨렸지만 녀석이 금새 일어서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비록 녀석들의 숫자가 6명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맨손으로 싸우기엔 너무도 강한 적들이었다. 아무래도 보통 헤켈보다도 강한 듯 느껴졌던 것이다.
카인은 계속해서 다가오는 로보로이드들을 공격했지만 녀석들은 쓰러져도 계속해서 일어설 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 듯 보였다.
순간 카인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이곳으로 온 것을 로보로이드 녀석들이 알았다면 다른 일행들이라고 무사할 리 없지 않은가.
"얀 박사님!!!"
카인은 순간적으로 얀이 혼자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얀이 포스 오너긴 하지만 이 녀석들은 자신도 상대하기 벅찬 녀석들이 아닌가. 분명 얀 박사도 공격받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젠장."
카인은 몸을 빼 달아나고 싶었지만 녀석들의 공격은 집요해서 쉽사리 탈출 할 수 없었다.
카인과 로보로이드들이 싸우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두 명은 온 몸을 큰 옷으로 덮어 그 큰 덩치를 가리고 있었으며(마치 카자마처럼) 두 명은 아름답게 생긴 여자였다. 그리고 또 한 녀석은 두 녀석보다 덩치는 약간 작았지만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한 여자가 그 덩치들에게 뭐라고 말하자 덩치 하나와 매서운 눈매는 쏜살같이 달려갔으며 다른 한 덩치는 손을 이상하게 놀리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수인에서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가 튀어나갔다.
사자의 몸에 소의 머리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그 생명체는 바로 트라키아였다!
카인은 자신을 공격하던 한 로보로이드가 이상한 생명체에 맞고는 날아가 세라곤 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온 몸을 천으로 칭칭 감은 한 녀석이 달려드는게 아닌가. 카인은 순간적으로 흠칫하며 주먹을 질렀다.
큰 덩치를 가진 녀석이 갑자기 달려드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그 녀석은 카인의 주먹을 쉽사리 피하고는 뒤에서 카인을 공격하는 로보로이드를 오른팔로 잡고는 그대로 들어올렸다. 카인은 녀석이 로보로이드를 공격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의 괴력에 더 놀라고 있었다.
자신도 로보로이드를 공격해봐서 아는데 녀석들의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로보로이드를 한 팔로 들다니. 그의 오른팔은 금속팔이라도 되는 듯 보였다.
카인의 예상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그의 팔을 가리고 있던 천이 흘러내려 금속팔이 드러났다. 그는 그 금속팔로 로보로이드의 목을 그대로 따버렸다. 순식간에 로보로이드는 머리통이 없어져버렸고 통제력을 잃고 아무곳으로나 허우적거리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한 복면의 매서운 눈매가 나타나더니 팔을 가리고 있던 한쪽 소매에서 검을 꺼내었다. 발검과 동시에 한 로보로이드의 머리통과 몸통이 분리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세 녀석이 죽어버린 것이었다. 너무 황당했던 카인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금속팔을 가진 녀석은 또 한 녀석의 목을 따버렸고 검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한 녀석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저 멀리서 날아온 개처럼 생긴 생명체는 남은 녀석의 몸을 그대로 뚫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카인은 그들이 적이 아님을 깨닫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생명체를 사용한 녀석은 분명 파인리히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했다. 카인은 그가 파인리히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그의 덩치는 저자보다 훨씬 작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때 금속팔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건을 뒤로 젖혔다. 순간 카인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먹을 말아쥔 카인은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이렌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다른 종족이라 긴장하던 카인은 그 녀석이 세느카가 납치당하던 날 파인리히를 죽기 일보직전까지 두들겨 팼던 그 세이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바싹 긴장하던 카인은 그래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는 셋이고 자신은 혼자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녀석들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던가.
그 이유라도 들어봐야 했다.
그때 저만치서 다가오던 녀석도 두건과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또 한 개체의 세이렌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카인은 파인리히 역시 세이렌의 유전자를 이식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순간 그가 사용한 기술이 파인리히와 같은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남은 매서운 눈매 녀석은 복면을 벗지 않았고 세이렌의 뒤에선 두 명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을 풀지 않고 있던 카인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아니. 쉐도우만 아니라면 자신의 살을 꼬집어보고 싶었다. 그가 하도 세느카,세느카 하니까 하늘에서 환상을 보여주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연신 눈을 껌뻑이기만 하고 말을 못하자 세느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카인. 보고 싶었어."
세느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인에게 달려들었다. 카인은 순간적으로 긴장을 풀며 쉐도우와 접속도 풀었다. 다시 원래 모습이 된 카인은 달려오는 세느카를 꼭 껴안았다. 분명 그녀는 세느카였다. 분명.
이카루스와 파리나타, 세이타르 그리고 쥬데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티탄시에 도착하자마자 연구소로 찾아 가보자는 세느카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멀리서 카인을 알아보았는데 그를 웬 녀석들이 습격했던 것이다.
세이타르와 파리나타 그리고 쥬데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인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세. 세느카. 나. 날 기억하는거야? 내가 기억나는거야?"
카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세느카의 얼굴을 손으로 보듬으며 물었다. 세느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던 카인을 만났는데 왜 눈물이 고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인 역시 자신의 소원이 이뤄진 듯한 기분이 들어 기쁨의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순간 카인은 주변에 관객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을 붉히며 세느카와 떨어졌다. 그때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크. 큰일이다!! 얀 박사님이 위험해!!"
카인은 자신이 위험에 빠졌듯 얀도 위험에 빠졌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카인은 순간 얀의 MTM을 떠올리고는 저번에 새로 구입한 MTM을 꺼냈다.
이카루스는 카인의 말을 듣고 남편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카인은 세느카를 다시 만났다는 기쁨에 이카루스가 옆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카루스는 카인을 걱정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카인은 신호가 가도 받질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얀의 모습이 화상에 떠오르면서 얀이 말했다.
"아. 카인. 무슨 일인가?"
-
"아. 박사님. 휴. 아무 일도 없군요. 지금 어디계세요?"
"나. 지금 로봇공학연구소 앞이네. 지금 연구소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네."
-
"네? 그럼 잠시만 나가지 말고 계세요. 그때 말씀드렸던 로보로이드들에게 습격 당했어요. 박사님도 노리고 있을지 몰라요. 아무래도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있는 것 같아요."
카인의 말을 들은 얀은 주변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흠. 벌써 밖으로."
'치지직!!!!'
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MTM 이 꺼져버렸다. 카인은 순간 얀이 공격받았음을 직감했다.
정신과학 연구소에서 로봇공학 연구소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원래 재단 연구소는 한곳에 밀집되어 있었는데 정신과학 연구소,로봇공학 연구소,생명공학 연구소가 모두 티탄시 외곽진 곳에 함께 위치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카인은 다른 일행들에게 설명할 시간도 없이 로봇 공학 연구소를 향해 뛰어갔다. 세느카와 이카루스는 얀의 신변에 무슨 이상이 생겼음을 알고 걱정하며 카인을 쫓았다. 세이타르와 파리나타,쥬데카 역시 카인의 달리기 속도에 뒤지지 않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로봇공학 연구소 앞. 아니나다를까 얀은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미 부상을 당했는지 한쪽 팔을 붙잡고 있던 얀은 괴한들의 로이안 리플에 한쪽 다리도 명중 당하고 말았다.
간신히 몸을 굴려 옆으로 피한 얀은 매너 포스를 사용해 로보로이드들의 로이안 리플의 작동을 멈추는데 성공했다. 보통 포스 오너들이었다면 날아오는 광선을 공기 방어막이라던가 주변의 물체들을 이용해 막아내는데 급급했을 텐데 얀은 그렇지 않았다.
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물체에 작용한다는 매너 포스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었다. 로이안 리플의 내부 설계도를 잘 알고 있던 얀은 공이가 뇌관을 때리기 전에 뇌관의 전극을 바꿔 놓았다.
이렇게 하면 공이가 뇌관을 때리는 순간 광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순간 로이안 리플이 폭발을 일으키며 로보로이드들의 한쪽 팔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들은 맨손으로라도 때려잡을 생각인지 얀을 향해 다가오는게 아닌가. 얀은 MTM을 들고 있었던 팔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다리에서도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겨우 일어서서 도망치려 했다.
그때 저쪽에서 카인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세이렌 두 개체와 매서운 눈매가 그를 쫓아오는게 아닌가. 얀은 순간 당황해서 외쳤다.
"카인!! 위험하네!! 뒤에 세이렌이!!!"
-
"박사님!! 그들은 친구입니다!!!"
카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얀을 부축해서 뒤로 옮겼다. 파리나타들은 로보로이드들을 장난감 부수듯 공격해 금새 모두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얀은 세이렌들과 매서운 눈매의 엄청난 힘에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왜 자신을 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세느카와 이카루스도 로봇공학 연구소 앞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로보로이드들은 모두 고철이 되어 땅바닥에 구르고 있었으며 얀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팔과 다리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이카루스는 그를 보자마자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얀은 피를 많이 흘려 의식이 가물가물했는데 상처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그는 정신을 차리고 옆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사람이 자신을 치료하고 있었다.
얀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카루스가 아니야."
얀의 말을 들었는지 이카루스는 그의 상처를 마저 치료하고는 그에게 키스를 하며 말했다.
"아뇨. 내가 바로 이카루스에요."
얀은 자신의 입술에 닿는 감촉이 오랳도록 갈망해왔던 그녀의 것임을 느끼고는 진한 프렌치 키스를 나누었다. 꿈치고는 너무 달콤한데. 라고 생각하며.
얀은 순간 벌떡 일어섰다. 이건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앞에는 분명 이카루스가 앉아 있었다. 이카루스는 천천히 일어서 더니 얀에게 안겼다.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
"이카루스."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
"정말 당신이구나. 이카루스."
얀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카루스를 꼭 껴안고 또 한번의 키스를 나누었다.
카인이 험험 거리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입술이 부르트도록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얀은 황망히 웃으며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세느카와 이카루스. 세이렌들에게 납치되었던 인간들이 모두 돌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세이렌 두 개체와 한 이상한 녀석을 대동하여.
얀과 카인은 반가움도 컸지만 우선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두가 있는 상황에서 설명하는게 번거롭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얀 자신도 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얀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고 세이타르와 파리나타는 다시 두건과 후드를 뒤집어써서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했다. 쥬데카는 복면을 벗지 않았기에 그대로 일행을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숙소 안.
일행들은 갑자기 등장한 5인에 대해 경계의 빛을 띄었다. 물론 세느카를 알고 있던 파인리히와 미시케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도 세이렌족을 마주하고 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매서운 눈매를 가진 녀석은 아직 복면도 벗지 않고 있었다.
얀이 먼저 입을 열어 세느카와 이카루스를 소개했다. 얀은 납치된 아내를 다시 만난 기쁨에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건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얀이 두 숙녀를 소개하자 바통을 이어받아 세느카가 두 세이렌을 소개했다.
"이 분은 세이렌 최고 장로인 7대사제 중 일인인 파리나타 리셀런. 그리고 이 분은 7대사제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실력파 세이타르 쿼르라에요. 모두 인사들 나눠요."
세느카의 말에 모두들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세이렌들은 인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세이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자 모두의 시선이 매서운 눈매에게 향해졌다.
그러자 역시 그때까지 그의 모습을 한번도 못 봤던 카인이 세느카에게 질문했다.
"세느카. 근데 저 사람은 왜 계속 복면을 쓰는거지? 그 분도 소개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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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헤켈 5검 중 일인 쥬데카 카켄이에요."
세느카가 소개하자 쥬데카는 어쩔 수 없이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이번엔 헤켈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모두들 깜짝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쥬데카는 모두를 쓱 둘러보다가 카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곤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인. 오랜만이구나. 알카드 그 친구는 잘 지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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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데카가 카인을 너무 친하게 대하며 말하자 모두들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건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헤켈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안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친구라고 하다니.도대체 누구지?
"다. 당신은 누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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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벌써 사부를 잊은게냐?"
"사. 사부??? 설마. 카켄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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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카인은 쥬데카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카켄은 제2차 세이렌 대전 때 전사하지 않았던가. 물론 엄청난 폭발로 시체하나 건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가 살아 있다니. 그것도 헤켈의 모습으로.
쥬데카는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카인은 쥬데카의 설명을 듣고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카켄이 쥬데카라는 헤켈에게 물린 그 순간은 카인도 분명 목격했었다. 쥬데카의 설명을 모두 들은 카인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쥬데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보지 말거라. 난 쥬데카지만. 너의 사부 카켄이기도 하다. 전이 헤켈이지만 또 하나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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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전이 헤켈에 대한 쥬데카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아크바레이의 어머니라고 했던 펜 타고니 역시 그런 부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제지간의 상봉도 끝나고 대충 인사도 나누고나니 파인리히가 세느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느카.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리고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
파인리히의 질문에 세느카는 최근 일을 기억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대충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말하기 시작했다.
세이타르를 만나서 기억을 잃어버렸던 일. 라케프 할아버지를 만나서 잠시동안 같이 있었던 일. 알리타인 유적에 갔다가 괴한 들에게 납치된 일. 괴한들에 납치되어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다가 쥬데카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던일.
그런데. 거기서 잠시 기억이 끊어져 있음을 알았다.
"흠. 이상하네. 내가 정신이 들었을땐 파리나타와 세이타르와 함께 있었어. 그 중간 기억이 영 생각나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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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느카양은 한 미소년과 거한에게 납치되었었소.
아무래도 그들 손에서 세이렌들이 세느카를 빼낸 것 같은데."
얀의 말에 파리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 미소년과 거한. 미소년은 우리들의 신인 카루이안과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느카를 우리에게 양도했습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세느카를 프레제톤타로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파리나타의 말에 세느카는 기억하려고 안간힘써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고는 그 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7대사제가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카루이안과 싸우는 대목에선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신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단지. 그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는것을 들었던 것이다. 잠시 썰렁해진 분위기를 파리나타가 깼다.
"하지만 신들이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 즉, 기가스들은 유희를 즐겼지만 그 중 한 기가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미소년. 그는 우리 세이렌이 인간들의 도시를 공격했을 때 말로 설득하여 우릴 돌려보냈습니다.
그가 유희를 즐기려 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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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그 미소년은 신의 힘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니."
얀도 동의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파인리히도 미소년을 한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많았다.
그 미소년의 행동. 한때는 세느카를 납치하더니 세이렌에게 넘겨주고. 또 연구소 폭발 때 자신과 라케프, 미얀을 구해주고. 세이렌이 공격해왔을 때 그들을 조용히 돌려보내고. 도대체 그 미소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이상한 일들을 저지르고 다닌단 말인가.
모두들 파인리히와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신의 생각을 엿본다는것은 그야말로 기연이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때 세느카가 입을 열었다.
"기가스는 총 네명인 것 같군요. 세이렌들의 신 카루이안, 헤켈들의 신 카발리에레, 그 미소년. 마지막으로 인간들의 신 카안드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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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카안드리아스!!!???"
모두 이구동성으로 카안드리아스를 외쳤다. 그러자 세느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카발리에레가 그랬죠. 인간들의 신인 카안드리아스가 먼저 계약을 파기했다고요.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카안드리아스를 우리들의 신이라고 확신하는 말투였어요. 카안드리아스는 우리들의 신이 되지 않고 재단의 총수로 남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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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 카안드리아스 재단이. 왜 그리 놀랍도록 위대한 집단이었는지. 어떻게 그들이 하는 연구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었는지. 바로 그도 기가스였기 때문이야."
얀은 그렇게 말하고는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상대가 신인데.
신이 이끌고 있는 집단인데 그곳을 무슨 수로 처단한단 말인가.
세느카는 그 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카루이안의 분신이었던 브라키온이 희생하여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던 일.
아크로나딘으로 공간이동을 한 후 기억을 되찾고 쥬데카와 싸운일.
루카누스의 죽음. 헤켈의 대신관 흉켈리스를 만난 일. 알고보니 흉켈리스는 카발리에레의 또 다른 의식이었다는 사실. 세느카가 자살을 시도한 일. 흉켈리스의 의식을 불러내 간신히 카발리에레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일. 그렇게 도망쳐 사막으로 떨어진 그들 앞에 파리나타의 배틀 팀이 나타난 일. 지금은 배틀 팀장이 되어 있을 스캇에게 공격받은일. 그때 파리나타가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준 일.
그리고 카인을 만나기까지. 그녀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설명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것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어쩌면 그녀를 두고 일어난 일이며 미소년이 했던 일들도 모두 그녀를 두고 일어났던 일이었다. 다른 종족의 기가스들도 오로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녀가 겪은 일은 실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모두들 숨죽여 깊은 생각에 빠져버렸다. 아무래도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세느카가 있고 그 배후엔 그 미소년이 있는 듯 했다. 모두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특별히 도출되는 결론은 없었다.
그들은 조타수를 잃은 배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똑똑한 얀이 결론을 지었다.
"결국. 우리들의 적은 신들이군. 기가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전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아니었어. 아예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기가스들을 처단하는 것이었어."
모두들 얀의 말에 동의했다. 이제 드디어 목표가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무엇을 해야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아무리 머리 좋은 얀이라도 그 점에 대해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원자력 천공위성이라는 먼지층 바깥 위성에 살고 있는 카안드리아스를 무슨 수로 공격한단 말인가.
프레제톤타 빙산 지하세계에 있는 카루이안을 무슨 수로 공격한단 말인가. 또 아크로나딘 로페하벤 봉우리에 있는 카발리에레는.
설사 그곳까지 찾아간다 치더라도 그들을 죽일 수 있을지나 의문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신이 아닌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회복시킬 줄도 아는 그리고 가공할 파괴력으로 세이렌과 헤켈에서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파리나타나 쥬데카도 한방에 물리치는.
그런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파리나타와 쥬데카, 세이타르도 얀과 같은 표정이었다. 이미 한번 싸워본 경험이 있는 그들로서는 기가스들을 죽인다는 목표는 허황된 것이었다. 아무리 꿈은 원대하게 가지라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느니 실용적인 개꿈을 꾸는 것이 백만번 낳을 것이다. 하지만 세느카는 포기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녀였다. 더 이상 두려움도 없었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전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해본적 없어요. 너무나 평범해서 도리어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죠. 물론 외모로 따지면 검은색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흔치 않은 아이였기에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아왔고 똑같이 생각했어요. 그런 내가 왜 이런 일들의 중심에 서 있는지 처음엔 믿을 수 없었어요. 아뇨. 거부하고 싶었죠.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던 거구요. 하지만 그건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해결책은 죽을 각오로 더 열심히 사는 것이었죠. 난 정말 따뜻하고 정의로운 신이 있다고 믿어요. 카안드리아스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신이란 존재가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믿고 있었기에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고 그냥 재단의 총수로 남았을거에요. 그의 선택은 어쩌면 옳은 건지도 몰라요. 헤켈이나 세이렌들의 신은 자신을 철저히 신격화하면서 피조물들을 부려왔죠. 하지만 인간들은 헤켈과 세이렌과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카안드리아스의 생각은 틀린거에요. 마음씨 좋고 정의로운 신은 정말로 존재하거든요."
세느카는 잠시 말을 끊고는 모두에게 시선을 주었다.
"바로 우리들 마음 속에요."
-
"......"
"우린 모두 나약한 존재예요. 힘들때면 누구에게 의지하려들죠.
때론 믿지도 않는 신을 외치며 '오.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라고 말하죠. 하지만 이건 위선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들은 자기 자신 속에 지고 지존한 신이 있고 그 위대하고 정의로운 신이 자신을 돌봐줄거라고 믿고 있는거죠. 그들의 믿음이 지켜지려면 자기 자신을 믿고 더욱 열심히 사는길 밖에 없어요. 아무리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한다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얻기 마련이죠. 난 그렇다고 믿어요. 비록 우리가 기가스들에게 도전한다는 것이 무모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바로 나 자신을 믿고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몸을 맡기면 언젠가 뜻을 이룰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
"세느카."
"여러분. 도와줘요. 여기 파리나타와 세이타르 그리고 쥬데카는 이미 그들과 싸워 보았어요. 그들의 무서움을 잘 알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를 도와 이곳까지 왔어요. 인간들의 세상이란 외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구요. 모두. 모두 힘을 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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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난 세느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거야!"
-
"후훗. 카인녀석. 신났군. 나 파인리히는 워낙 의리의 사나이라서 말야. 그 끝이 죽음이라면 어떨쏘냐? 날 막진 못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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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리히. 나도 꼭 데려가줘요."
"아. 아우로페?"
-
"이젠 다신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그래서."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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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하지 말아요. 방해 안 될게요."
"나도 도와줘도 되겠습니까?"
-
"타렌!!?"
"죄값을 치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랜드 포스 오너입니다.
저번에 라케프님이 가르침을 주셔서 그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기가스란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타렌. 고마워요. 같이 싸우죠."
"파인리히."
타렌은 파인리히가 따스한 미소로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자 킴이 한마디했다.
"좋아. 나도 어차피 글랜시아시에서 뼈를 묻었어야 할 몸! 까짓 거 신이고 뭐고 한번 싸워보지 뭐. .하하핫."
-
"킴.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카인. 난 아직 가오그의 최후의 비밀 병기도 안 써봤다구요.
아직 미완성이지만. 게임의 황제로서 그 최후의 병기를 사용하는 영광을 가지렵니다. 후후훗."
카인은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알고 미소지었다. 그때 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나도 동참하지. 하지만 미시케,이카루스,세느카는 안됩니다.
이들은 그냥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
"하지만. 박사님."
"세느카. 당신은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기가스들이 인정했다는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
"그래. 박사님 말씀이 옳아. 세느카는. 이곳에서 응원이나 해줘."
카인까지 그렇게 나오자 세느카는 차마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요즘처럼 자기 목숨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 목숨은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세상에.
모두들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가. 세느카는 그들에게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세느카의 말이 대충 끝나자 얀은 로봇공학 연구소에서 얻은 정보를 일행들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로봇공학 연구소에선 휴먼 로보로이드 프로젝트가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일단 한정 생산을 한 상태고 지금은 실험을 중지했더군요. 킴의 말대로 다시 가오그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이 중단 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전쟁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그 이유에 대해선 생각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정 생산된 로보로이드의 대부분이 연구소에 남아 있지 않더군요. 어딘가로 빼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로보로이드들의 능력은 엄청나서 전쟁에 사용해도 될 정도 였습니다. 카인과 제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에도 그들은 우릴 공격했습니다.
정말 막기 힘든 녀석들이었죠. 그런 녀석들을 전쟁에 투입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로보로이드 개발자였다면 더욱 성능을 개량해 전투형으로 개조해 전장에 투입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전쟁말고 다른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직은 그 목적에 대해 뭐라 장담할 수 없겠군요.
어쨌든 재단에선 우리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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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저번에 재단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로보로이드의 습격을 받았었습니다. 우린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카인은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감시를 당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나쁜 일일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좋지 않은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모두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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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박사님."
얀의 말에 파인리히가 가장 먼저 동의했고 나중엔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조용하지만 시끄럽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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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느카와 카인이 상봉을....... ^^; 여러분들두 시골집에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상봉을 하시겠죠? 추석이 얼마 안남았네요! 조심해서 시골 내려가시구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