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102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02
[기가 슬렌더] -57- 펜 타고니(III.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재회.) -펜 타고니(III.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재회.)-도망치는 카인 일행과 그들을 뒤쫓는 헤켈들. 이미 가오그 전대도 헤켈들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킴의 가오그만이 가장 후미에 서서 헤켈들을 저지하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다른 가오그들은 모두 전멸 당한 것 같았다. 부상자를 안고 달리는 일행들은 헤켈들의 속력을 따돌릴 수 없었다. 킴도 일행들의 바로 뒤에 쫓아오고 있었으며 음영대는 그런 킴을 죽자고 따라붙고 있다.
"나. 날 그냥 두고 혼자라도 몸을 피하게. 아니. 아크바레이만이라도 데리고 도망치도록 하게!!"
얀이었다. 얀은 내상 때문에 더 이상 격렬하게 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는데 방해만 되는 것 같았다. 파인리히는 얀이 나약한 소릴 하자 더욱 빨리 걸어가며 말했다.
"아뇨! 그럴 수 없어요. 카인도 우릴 버리지 않았는데 제가 어찌 박사님을 버리고 가겠어요?"
파인리히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아크바레이를 업고 약간 앞서서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도 점점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 사투를 벌였는데 지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리 소설이라도 과장이 너무 심한게 아닐까? 이미 과장이 너무 심했던가. --;
카인은 아크바레이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자신의 등을 타고 흐른다는것을 알았다. 급소는 피했지만 이대로 계속 둔다면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가 있는가. 지금은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킴의 가오그가 바로 뒤까지 쫓아오자 일행들은 더욱 다급해졌다. 그렇게 많이 도망친 것도 아닌데 벌써 헤켈들에게 따라잡힌 것이다. 카인은 앞이 깜깜했다.
라케프 할아버지가 죽은 것만도 서러운데 이젠 자신들이 꼼짝없이 죽게 생겼지 않은가. 그때였다.
달려가던 얀과 파인리히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얀은 파인리히에게 자신을 두고 혼자라도 도망치라고 했지만 파인리히는 다짜고짜 얀을 일으켜 세우려 애썼다.
카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속이 탔다. 헤켈들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카인은 다급히 아크바레이를 내려놓고 파인리히를 뒤에서 공격하는 한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하지만 녀석은 음영대의 쉐도우를 가진 헤켈. 둔중한 음향이 들렸지만 녀석은 꿈쩍도 안 했다. 도리어 화났는지 카인에게 덤벼드는게 아닌가.
카인은 녀석이 휘두르는 검을 피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포기를 모르던 카인도 이젠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카인을 베려던 한 헤켈이 그대로 터져서 즉사해버린 것이다. 쉐도우와 가이넥 한 상태의 헤켈을 한방에 터뜨려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있을까? 쉐도우엔 로이안 리플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방어력이 있었다.
그럼 구식 무기인 지대지 박격포란 말인가. 박격포라 해도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하게 목표를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카인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헤켈들이 하나같이 그대로 폭파해 살쩜만 튀기고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뭔가 깨달았다. 그리고 앞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펜 타고니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달려오면서 카인이나 아크바레이를 공격하려는 헤켈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척 보니 폭발해서 죽는 헤켈들은 그녀의 메이딩 바쿰에 그대로 당해버린 것 같았다. 헤켈의 몸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리면 진공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기압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한 헤켈의 몸이 그대로 산산조각 났던 것이다.
카인은 비록 그녀가 한때 라케프 할아버지의 죽음에 일조를 한 적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도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아크바레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물론 얀과 파인리히는 돌연한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도움을 마다할 처지는 아니었다. 헤켈들도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 현무 음영대의 수장 펜 타고니임을 알고 그녀를 향해서도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신에 대해서 그들이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평판이 좋지 않은 전이 헤켈이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전이 헤켈들은 헤켈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락켄신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아까 죽은 노인이 한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리곤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다.
"내 그녀를 존중해줬건만.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다니."
락켄신은 어느 정도 상처가 가라앉자 천천히 일어섰다. 락켄신. 그는 전이 헤켈들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인 헤켈이었다. 아니, 출신 성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개방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쥬데카나 펜 타고니는 똑같은 헤켈이지 <전이 헤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전이 헤켈들과 친하게 지냈던 락켄신은 자신의 손으로 아꼈던 펜타고니를 죽여야 함을 무척 아쉬워했던 것이다. 락켄신은 쥬데카를 떠올리며 그는 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아무리 펜 타고니가 엄청난 실력을 가진 그랜드 포스 오너급 헤켈이라지만 그녀에게도 체력이란 것은 존재한다. 무한 체력을 가진 자라면 혼자서도 백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겠지만 일찍이 신이 아니라면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그건 펜 타고니도 마찬가지여서 카인들을 도와주던 그녀가 공격을 받기 시작하자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에도 급급했다.
따라서 자연히 카인 일행들은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한것은 음영대의 부하들을 펜 타고니가 모두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옆에서 킴의 활약도 있었다. 하지만 헤켈들의 숫자는 80여개체를 웃도는 것 같았다.
80여개체를 펜 타고니 혼자서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속에서 일행들이 도망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헤켈들이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게 아닌가.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 소리는 죽기 직전에 내는 최후의 발악같은 소리였다. 도대체. 무엇이.
카인 일행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던 헤켈들이 어딘가를 향해 일제히 뛰어가는 것을 보고 그 방향에서 새로운 아군이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자리에 앉았다. 헤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괴물이 헤켈들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일행들은 자신들이 환상을 보는 줄 착각했다. 하지만 파인리히는 그 괴물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다. 그 괴물은 하체는 말이고 상체는 인간이었으며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고 기다란 창과 방패를 가지고 헤켈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 괴물은 바로 아우로페의 라벤더였던 것이다.
"아우로페. 살아 있었구나......"
파인리히는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연구소 폭파의 그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아우로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살았는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자의의 힘으로 자신들을 돕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파인리히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카인은 파인리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이봐. 우리 아직 안 죽었다구. 우는거야?"
-
"후훗. 그래. 반드시 살아야해. 아무렴!!"
파인리히가 동문서답하자 카인은 혀를 차고는 아크바레이를 다시 업었다.
그리고 파인리히에게 말했다.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구. 이제 도망치는게 최선이야."
카인의 말에 파인리히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카인에게 말했다.
"아니. 난 가지 않겠어. 넌 아크바레이와 박사님을 모시고 도망쳐."
-
"무. 무슨 소리야.? 지금 네 상태를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파인리히는 카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헤켈들을 향해 달려갔다. 바로 라벤더와 싸우고 있는 헤켈들을 향해. 펜 타고니는 갑자기 전투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공격하던 헤켈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 절호의 찬스였다.
이미 그랜드 포스 오너의 능력을 훨씬 초월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일반 헤켈 전사들은 상대도 안 되는 조무래기에 불과했다.
물론 근접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때마침 녀석들이 자신을 놔두고 다른 곳을 향해 공격해 가는게 아닌가. 더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의 기회는 그만 저지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순간 몸이 굳는 줄 알았다. 그녀의 앞에는 쉐도우와 가이넥 해서 온통 검은색인. 눈동자조차 구별 안 되는. 락켄신이 서 있었던 것이다.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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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잘못은 탓하지 않겠다. 나에게 자식은 없지만. 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것은 아니니까."
"고마워요. 켄. 그럼 저도 당당히 싸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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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나도 바라는 바다. 탓!!"
락켄신은 펜 타고니를 향해 살초를 펼쳤다. 펜 타고니는 그의 켄이었던 락켄신이 이미 자신을 더 이상 부하로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부턴 확실한 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자식을 버렸던 그때보다 후회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으므로.
라벤더는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마치 피에 굶주린 늑대처럼 녀석은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는 헤켈들을 장난감병정놀이 하듯 그대로 창에 꿰어 죽여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광기에 사로잡힌 울트라 괴물이었다.
헤켈들은 하나둘씩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금새 깨달았다. 공격하는 족족 창에 찔려 즉사하거나 뒷발에 차여 늑골이 절단나 죽고 앞발에 깔려 죽어버렸던 것이다.
헤켈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사방팔방에서 라벤더를 포위하고는 일제공격을 감행하자 라벤더도 결코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팔이 네 개라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방패를 가지고 있는 손이 재빠르게 검들을 막고는 있었지만 라벤더의 몸에 생기는 생채기는 더 이상 생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최상급 가상생명체라지만 녀석에게도 상처는 존재했던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점점 헤켈들이 유리한 상태가 되었다. 라벤더의 몸은 자신의 피로 온통 붉었으나 녀석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웠다. 한 녀석을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잡아 목을 분질러버리고는 이어 창을 원형으로 돌리며 앞쪽에 있던 헤켈들을 공격했다.
문제는 말 엉덩이 옆쪽이었다. 뒷발로 걷어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몸을 돌려 창으로 찌르기도 힘든 위치였던 것이다. 게다가 켄타루우스족의 약점은 복부였기 때문에 상체를 뒤로 돌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
파인리히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하지만 아우로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헤켈들의 틈 속에서 그녀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 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그녀를 포기 할 수 없었던 그였다.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우로페와 만났던 기억. 그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던 기억. 모든게 생생했다.
그리고 미시케. 파인리히는 자신을 그토록 좋아해 주는 미시케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결국 이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해서 그랬던 것인가?'
파인리히는 자문해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우로페가 죽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으므로.
파인리히는 계속해서 아우로페를 찾아 뛰어다녔다.
카인은 얀과 아크바레이를 부축해서 미얀과 미시케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두 명을 한꺼번에 부축하려니 자연히 힘들고 속력이 나질 않았다.
"파인리히. 이 치사한 자식."
카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까 파인리히가 조용히 중얼거린 말을 떠올려 보았다.
"아. 맞아. 아우로페라고 했지. 아우로페. 어디서 들어봤는데."
카인은 순간 파인리히, 세느카와 함께 사막에서 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물론 자신은 별로 관심 없어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들었지만 분명 아우로페라는 이름을 그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녀는 파인리히 자기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카인은 의아해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카인들을 따라오며 보호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킴이었다. 킴의 가오그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고물이나 다름없었는데도 기상만은 대단했다.
도망치는 녀석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지 헤켈들도 더 이상 킴 일행에게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뒤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락켄신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게 자신의 부하들이 무참히 죽는 꼴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그의 걱정대로 펜 타고니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어서 쉽사리 부하들을 도울 수 없는 처지였다.
락켄신은 펜 타고니를 향해 그의 흑룡도를 세차게 휘둘렀다.
"흑현괴무(黑玄怪霧)!!!"
그가 흑현괴무의 초식을 펼치자 마치 그의 흑룡도가 괴이한 안개를 뿜어내듯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펜 타고니는 검을 쾌속하게 움직여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의 검초를 보고 당황하여 뒤로 다급히 후퇴했다.
후퇴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보고 경악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여섯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뒤로 몸을 빼지 않았더라면 여섯 조각의 고깃덩어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디센트 템퍼레이쳐(To Descent Temperature)! 앤 메이딩 바쿰(Mading a vacuum)!!!"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일갈과 함께 그녀의 좌수가 락켄신을 향해 뻗어졌다.
두 개의 기술을 연속적으로 중첩해서 사용하는 능력은 오리지널 포스 오너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디센트 템퍼레이쳐 기술은 쉽게 말해 온도를 낮추는 기술로 한때 제이드가 가오사이보그들을 상대로 사용했던 프리징 포스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프리징 포스는 그 물체만을 얼려버리지만 디센트 템퍼레이쳐는 그 물체의 신진대사를 정지시킬 정도로 온도를 급강하시키기 때문에 한번 걸리게 되면 그 물체가 있던 곳 근처의 공기까지 얼려버려 모든 것을 깨뜨려 없애버리는 사악한 기술이었다.
펜 타고니가 그 기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락켄신은 이미 그곳에서 몸을 피하고 없었다. 그의 스피드는 펜 타고니의 손짓보다도 빨랐던 것이다. 락켄신이 있었던 곳은 공기마저 얼어버려 유리창이 깨져버리듯 와장창 하고 공기 얼음이 깨어져 버렸다.
펜 타고니 역시 첫 번째 공격은 그가 피할 것이란 것을 예상했었다. 그녀는 락켄신을 오랫동안 모셔왔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기술을 한꺼번에 사용한 것인데 락켄신은 두 번째 기술인 메이딩 바쿰에는 여지없이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녕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진공이 되어버린 공간을 흑룡도로 찢고는 밖으로 탈출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펜 타고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락켄신 자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진공상태가 되는 순간 그 진공의 공간을 찢어버려 밖으로 나와 압력차로 폭발하는 것을 면했던 것이다.
락켄신이 비록 공격은 피해냈지만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무서운 공격이었다.
정말 이대로 간다면 자신이나 펜 타고니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이었다.
파인리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푸른색 머리. 비록 예전만큼 길진 않았지만 그 머리색을 잊지 않았다. 날렵한 몸매. 이지적인 얼굴.
'설마. 그도 살아 있을 줄이야.'
파인리히는 자신이 발견한 그 사내도 파인리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예전의 그 사내였다면 벌써 죽이려고 달려 들었을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만 슬픈 눈으로 파인리히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지. 왜 그렇게 날 보는거야. 어? 타렌."
그는 바로 타렌이었다. 타렌 라미너. 파인리히의 오랜 숙적. 파인리히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자 오랜 악연으로 이젠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얼굴. 바로 그 타렌이었다. 그는 아우로페와 마찬가지로 연구소 폭발 사건 때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라벤더와 헤켈. 그리고 펜 타고니와 락켄신이 싸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파인리히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타렌에게만 향해 있었다.
파인리히는 천천히 다가갔다. 예전이었다면 도망치던지 먼저 공격하던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시라서? 헤켈들에 대항해 인간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있는 시점이라서?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묘한 마력에 이끌리듯 타렌을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타렌 역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파인리히를 보고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파인리히가 점점 다가오자 타렌은 더 이상 숨기고 있을 수 없음을 알았는지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자 파인리히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버렸다.
"아. 아우로페."
파인리히는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전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우로페를 만났는데. 어째서. 어째서. 눈물이 흐르는거지. 파인리히는 자신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어. 어째서. 그러고 있는 거니. 어째서."
파인리히가 슬프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타렌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날 죽여다오. 나를. 모든 것이 나의 죄다. 부디 날 죽여서 네 화가 풀린다면.
날 죽여다오. 제발."
타렌도 더 이상 못 참겠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파인리히는 간신히 몸을 움직여 아우로페를 향해 다가갔다.
아우로페.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파인리히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의 하반신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다리만 없는게 아니었다.
하복부부터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폭발로 인해 하반신을 아주 잃어버렸던 것이다.
휠체어. 그렇다. 다리 하나를 잃어도 의학의 발달로 충분히 의족을 달면 전혀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아니면 장기 이식 수술처럼 신체의 일부분도 이식수술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그처럼 일부분의 신체에 대해서였다.
그녀는. 다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여자로서의 구실도 할 수 없게 된 하반신 불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파인리히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뭐라고 위로하고 싶은데. 자신이 위로의 말을 건네면 건네는 그 순간 동정하는 쓰레기같은 말이 되버릴까 두려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우로페는 남아 있던 양팔로 휠체어를 밀고는 파인리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여전히 미소띈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난 괜찮아요. 사담. 당신을 피하고 싶었는데. 타렌이 그래선 안 된다고 했어요.
나 용기 내서 당신을 만난거에요. 그러니 울지 말아요."
-
"나. 내가 보이니.?"
"난. 다릴 잃었지만 눈을 얻었어요. 이 눈은."
아우로페는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지 애써 눈물을 참으며 타렌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타렌이 고쳐준거에요. 그는. 더 이상 악인이 아니에요."
파인리히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아우로페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우로페를 이 꼴로 만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파인리히는 아우로페 약간 대각선 뒤로 와서 서 있던 타렌을 바라보았다. 타렌은 그가 바라보자 고개를 숙여 시선을 외면했다.
"너. 이 개자식!!!!"
파인리히가 타렌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릴 질렀다. 파인리히의 분노는 극에 달해 손까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타렌은 욕을 들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모습이 파인리히에겐 충격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앙? 어째서!!!"
예전 같으면 참지 않았을 파인리히였지만 그는 타렌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파인리히는 아우로페의 휠체어 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파인리히의 눈에 썰렁한 휠체어 바퀴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그녀의 다리.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왜!!!!!!!!!!!"
파인리히는 타렌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이건 그의 잘못도 아니고 하늘의 잘못도 아닌 바로 자신의 잘못이었으므로.
'어째서. 우린 이런 거니. 왜 만날 때마다 이런 거니.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 했길래. 우리에게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거니.왜. 왜. 도대체 왜!!'
파인리히는 그녀의 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아우로페도 참던 눈물을 끝내 흘리고 말았다. 뒤에 서 있던 타렌이 그런 파인리히를 보고 말했다.
"다 내 탓이다. 연구소가 폭발하는 순간 난 그녀로 하여금 나를 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고. 동시에 가상생명체를 소환했지. 눈을 떴을 때 난 살아 있더군. 그리고 내 몸을 껴안고 있는 그녀가 보였지. 난 살아 있다는 환희에 그만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일어서서 만세를 외쳤어. 그리곤 쓰러져 있는 그녀를 봤지."
타렌은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어. 난. 날 껴안고 있던 그녀의 무게가 가벼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설마. 하반신이 날아갔을 줄이야. 내 명령 때문에 생명을 던져 날 구했던거야. 흑. 나. 난."
타렌은 고개를 숙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난 바로 그녈 병원으로 옮겼어.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더군. 하지만 하반신은 영원히 회생불능이었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되길 바랬던 것은 아니야. 살고 싶었어. 다....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야."
타렌은 무릎을 꿇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숨소리가 거칠었지만 그는 차츰 진정되어갔다.
타렌은 아우로페의 상처를 고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느꼈다. 그리고 아우로페의 사랑을 받았던 파인리히란 녀석이 너무도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러운 감정은 잠시.
너무나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으로 인해 파인리히와 아우로페의 운명이 이토록 비참하게 뒤엉켜 버렸으니까.
이미 재단에선 타렌이란 이름을 사망자로 분류해놓은 상태였고 타렌도 더 이상 그런 재단에 미련이 없었다. 타렌은 아우로페를 지배하던 슬레이브 시스템(Slave System)을 제거했다. 그러자 아우로페는 과거의 모든 기억과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하반신을 잃었다. 타렌은 그녀가 하반신을 잃은 충격으로 자결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그녀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뻐하는게 아닌가.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그것이 파인리히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파인리히와 헤어진 그 순간. 즉, 자신이 죽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순간 이후 처음 자신의 이성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즉, 파인리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그 일념하나만으로 그렇게 기뻐했었던 것이다.
그녀의 숭고한 사랑 앞에서 타렌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타렌이 파인리히를 만나러 가자고 했을 때 그녀는 거부했었다. 이런 모습을 그에게 보여 줘봐야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라고. 하지만 타렌은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도 파인리히를 사숙하는 마음이 사무쳐 끝내 허락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었다.
파인리히는 타렌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미 아우로페는 타렌에게서 이상한 실험을 받았다는 것을 들은 상태였고 파인리히 역시 같은 실험의 희생자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가자."
파인리히는 일어서더니 휠체어 손잡이를 붙잡고 밀기 시작했다. 아우로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렌은 그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자 파인리히가 외쳤다.
"뭐해? 너도 같이 가자. 그동안 못된 짓만 했으니. 이제라도 착한일 좀 해서 죄값을 치러야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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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같이 가도 된단 말이냐?"
"두 번 말하기 귀찮아. 어서 따라와."
파인리히의 말에 타렌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타렌은 파인리히가 자신을 죽일 것이란 예상을 했었다.
만약 그런다고 해도 자신은 절대 반항하지 않을 거라 다짐까지 했던 그였다. 그런데 자신을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인가. 도무지 파인리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뭔가 마음을 울리는게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언지는 몰라도.
"좋아. 이제 죄값을 달게 받겠다."
타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파인리히들을 따라 걸어나갔다.
락켄신과 펜 타고니의 싸움은 좀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는데 이건 순전히 락켄신이 라케프에게 당한 부상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펜 타고니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락켄신은 싸우면서 점점 더 입은 상처가 심화됨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도 미친 괴물한테 반수 이상이 죽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싸워봐야 본전도 못 건진다는 것을 깨닫고 깨닫는 즉시 후퇴를 외쳤다.
락켄신의 후퇴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벤더를 포위하고 있던 헤켈들은 전열을 재정비하며 즉각 후퇴하기 시작했고 헤켈들이 사라지자 라벤더도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펜 타고니도 더 이상 살수를 뻗히지 않고 락켄신으로부터 천천히 멀어져갔다. 락켄신도 더 이상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이날의 글랜시아 헤켈 대전은 2번에 걸친 헤켈들의 연속 침략을 두 번다 막아내는 진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라고 역사책은 말했다. 책이 말할 수도 있나? 하여간 후세라는게 있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락켄신의 현무단이 썰물 빠지듯 모두 빠져나가자 펜 타고니는 천천히 카인 일행들이 도망친 곳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온 몸이 피투성이였지만 그녀를 이끄는 집념 같은 것이 있었다. 피붙이에 대한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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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기승이네요... 에구 더워라..... 모두 마지막 더위 먹지 않도록 조심하시구요. 코멘트 좀 많이 달아주세요. 제게 힘을 불어넣어주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