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101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101
[기가 슬렌더] -56- 세이타르 쿼르라(다시 만난 파리나타!) -세이타르 쿼르라(다시
만난 파리나타!)-
흉켈리스의 마지막 힘. 그 힘으로 내던져진 세느카 일행들. 순식간의 일이었다. 빛이 몸을 휘감더니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듯 했다. 동시에 빛이 사라졌고 그들은 어딘가에 와 있었다. 어딘가. 흠. 어디지?
세느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량한 사막.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지? 그때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쥬데카와 세이타르였다. 둘 다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텔레포트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세이타르는 이카루스가 응급처치를 한 상태였기에 낳은 편이었다.
하지만 쥬데카는 달랐다. 그는 극심한 부상 속에서도 흉켈리스를 검으로 찌를 정도로 정신력이 강했다. 그런 그가 정신을 잃은 채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카루스는 다급히 쥬데카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어느 정도 의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지만 다른 종족의 몸까지 해박하지는 않았다. 세이타르의 경우도 어깨부분이 탈골된 것은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었지만 다른 부분은 고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쥬데카의 상처도 내상이라 고칠 수가 없었다.
"언니. 어떻게 안되겠어요???"
세느카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이카루스에게 물었다. 이카루스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내상이라도 매너 포스를 사용해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었겠지만. 헤켈족이라. 그럴 수가 없어요. 헤켈족의 몸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할 수 있겠지만."
이카루스는 마지막 말 대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의학지식이 밝으면 뭐하겠는가.
그건 인간의 몸에 대한 지식이다. 헤켈족에 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세이타르의 탈골된 뼈를 고친 것도 모험이었다. 뼈의 조직이 충분히 다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이었다.
다행히 고통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가 팔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 언니. 전 헤켈족의 시체를 많이 해부해보았어요. 어떻게 제 지식과 언니의 지식을 합쳐서 고칠 수는 없을까요?"
세느카는 쥬데카의 신음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알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가능할지도 몰라요. 세느카. 하지만 장담할 순 없겠죠."
이카루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세느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세느카는 천천히 눈을 감고는 오래전이지만 헤켈들의 사체를 해부해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장면들에 대해서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속이 매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웁."
-
"아. 괜찮아요? 세느카?"
"미안해요. 언니."
세느카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당황하면서 손을 저었다. 그리곤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그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비록 기분이 이상하고 속이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쥬데카를 위해 최대한 참으려고 애썼다.
이카루스는 한 손은 세느카의 머리에 대고 다른 한 손은 쥬데카의 가슴에 대었다. 그러자 이카루스는 세느카의 기억을 통해 헤켈들의 몸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카루스 역시 두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와. 정말 놀랍군요. 인간의 내장기관과 그 구조가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마치. 외피만 파충류의 것을 사용한 것처럼. 너무도 흡사하군요."
이카루스는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듯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건 세느카도 오래 전에 알아낸 사실이다. 그녀가 연구했던 <기형 생명체 변이 유전자 모듈 프로젝트>는 타 종족들의 유전자 구조를 해석해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던 연구가 아니던가.
그 연구를 하던 도중에 헤켈들의 유전자 구조와 인간의 유전자 구조가 거의 차이가 없음을 밝혀낸 그녀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어쩌면 인간과 헤켈의 뿌리는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 가설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펠로포타미아 유적과 알리타인 유적을 탐사했었던 그녀. 세느카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름을 막을 수 없었다. 카인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당시 카인은 자신의 주장을 너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인간들 중에 발생한 기형인간들이 계속적인 변이를 일으켜 또 하나의 종족으로 번성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이론. 그런 기형인간들과 평범한 인간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던 유적들. 그 유적들은 두 부족이 서로 싸운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두 부족. 그들은 왜 싸워야만 했는가.
그때 세느카는 뭔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유희>
신들은 그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종족들이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다. 이건 카루이안과 싸우면서 알아낸 사실이었고 카발리에레로부터 확신을 갖게 만들었던 진실이다. 그렇다면. 그 유적에서 나온 두 부족간의 전쟁의 흔적은 어쩌면 신들의 유희를 위해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신들이 자신들을 대변해 싸울 대리인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지. 세느카의 이 생각은 라케프의 생각과 일치했다. 하지만 뭔가 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카루스는 세느카로부터 얻은 헤켈의 해부도를 바탕으로 쥬데카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다행히 인간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상처를 고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폐에 혈액이 차 그것이 응고되어 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녀의 능력으로 그 피를 기화시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세느카. 상처는 거의 다 낳았지만 페에 찬 피는 제거하지 못했어요. 쥬데카가 깨어나면 그때 다시 해보도록 해야할 거에요."
-
"알겠어요. 언니."
세느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쓰러져 있는 세이타르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쥬데카보다는 상태가 낳은 편이었지만 그 역시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탈골된 어깨를 맞추긴 했다지만 그래도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느카는 세이타르의 고개를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잘 알았다. 오래 전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그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때처럼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세이타르라는 세이렌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는 전적으로 세느카를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그것을 세느카가 모를리 없었다. 세느카도 세이타르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세이타르가 또 한 명의 카인처럼 느껴졌다.
'카인.'
세이타르는 쥬데카보단 상태가 많이 좋은 편이라 얼마 안 있어 깨어날 수 있었다. 이미 모두 지친 상태였고 세이타르와 쥬데카가 정신을 잃은 상태여서, 또 황량한 사막이라 오도가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세이타르가 정신을 차리자 세느카는 그를 부축해 앉도록 도와주었다.
"괜찮아요? 세이타르?"
-
"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우린 모두 살아 있는건가요?"
세이타르의 질문에 이카루스가 다가와서는 대답했다.
"다행히 우린 살았어요. 세이타르. 카발리에레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한거에요."
-
"그. 그럼. 그 흉켈리스는??"
세이타르는 카발리에레이면서도 동시에 흉켈리스였던 그를 걱정하는 듯이 질문했다. 세느카는 슬픈 표정이 되었다.
"흉켈리스는 죽었을거에요. 대신 카발리에레만 남았겠죠."
-
"역시."
세이타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세느카에게 질문했다.
"세느카. 내가 흉켈리스를 보고 나서 누굴 떠올렸는지 알아요?"
-
"글쎄요. 누구죠?"
"바로 브라키온이에요. 그 둘이 왜 그리 비슷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군요."
-
"......"
세느카는 세이타르의 말에 공감했다. 브라키온. 그 역시 카루이안의 둘도 없는 분신이었다. 그런 브라키온은 자신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동료인 7대사제들에게도 그 깨우침을 전달하기 위해 살신성인하였다. 그도 역시 그 자신인 카루이안에게 죽었고 흉켈리스도 바로 그 자신인 카발리에레에게 죽었다.
"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그들은 아름답게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
세이타르는 목이 매이는 듯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세느카도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루카누스. 그 역시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생명을 구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 죽음은 깨달은 자들의 축복일지 모른다.
차라리 그렇게 고귀하게 죽을 수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 다른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두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한번 자살을 시도했던 그녀다. 그때는 자신이 죽는 길만이 모든 전쟁을 막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다행이야."
세느카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해 보았다. 흉켈리스나 브라키온. 루카누스처럼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다른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일은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만들 자신이 있었다.
'내가 정말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선택받은 순간 난 책임이란 짐을 짊어지게 된거야. 그 짐이 아무리 무겁고 날 지치게 한다해도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덜거나 그 짐을 버리지 않겠어. 만약 그 운명의 선택이 온 세상의 파멸이고 죽음이라면 난 그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야 말겠어! 이제 더 이상 나약한 세느카가 아니야. 난 반드시 모든 생명의 가치를 더욱 찬란하도록 빛나게 만들거야!!'
세느카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세이타르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세이타르 역시 세느카가 자살을 시도했을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한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몇 번이고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서 그녀가 다신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란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쥬데카가 깨어났다. 그는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완성된 인격 카켄이었기에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쥬데카가 깨어나자 이카루스가 그에게 다가가서는 말했다.
"폐속에 피가 고여 있어요. 그것이 모두 응고되기 전에 기화시킬거에요.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속이 좋지 않을거에요. 매스꺼워 토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참을 수 있겠어요?"
이카루스의 말에 쥬데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이카루스가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는 말했다.
"입을 벌려요."
이카루스의 말대로 쥬데카가 입을 벌리자 그의 입에서 붉은색 기체가 천천히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는데 표정만 그러할 뿐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카루스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고인 피를 증발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실 매너 포스가 많이 사용되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워낙 정교하게 하다 보니 힘을 많이 사용했던 것이다.
이카루스도 지쳐서 모래 위에 누워버렸고 쥬데카는 고통이 끝나 안도감으로 모래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카루스가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었다.
"정말. 고맙소."
쥬데카는 진심으로 이카루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설마 자신이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이 죽이려고 공격했던 자들이 아닌가.
쥬데카의 내부에 또 하나의 인격인 카켄이 자리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엄연히 쥬데카였다.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기 위해 지금껏 죽어라 싸워왔던 바로 헤켈 전사 쥬데카였던 것이다.
오래전. 그는 한 명의 전사에 불과했었다. 그나마 다른 자들보다는 실력이 낳아서 도시를 침략해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임무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이 임무는 사람들에게 헤켈족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 놓으며 동시에 염탐도 하는 정찰 임무까지 섞여 있었다.
워낙 인간에 대한 증오가 뼛속까지 스며있던 그였다. 아니, 헤켈들은 태어나면서 동시에 다른 종족에 대한 증오를 배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충실히 지켜나가기 위해 수련을 쌓는다. 그렇기에 인간들의 도시에 침입해서 그들을 죽이는 임무는 신성하고 거룩한 임무였던 것이다.
그 임무 중 하나가 소도시였던 블레인 시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워낙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방어시설은 형편없었고 인간들의 저항 또한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잠시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갑자기 한 장년의 사내가 검을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검술엔 자신이 있던 쥬데카였기에 별것 아니겠거니 하고 공격을 했다가 상대의 한 수에 그냥 당할뻔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카켄이란 인간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고 마지막 발악으로 그의 몸으로 전이(轉移)를 시도했던 것이다.
죽을 각오로 가슴에 박힌 검을 왼손으로 붙잡고 오른손으론 카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곤 그의 목과 어깨사이를 힘껏 물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 전이는 충분했다. 비록 쥬데카의 육신은 죽어버렸지만 그의 의식은 카켄의 몸 속에 숨어 들어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동안 잠복기를 거쳐 8개월째 되던 때부터 각성이 시작되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카켄의 의식을 완전히 제압하고 드디어 다시 헤켈의 몸으로 환골탈태하였다. 신기하게도 카켄이란 녀석의 몸은 이미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내력도 엄청나게 쌓여있는 상태였기에 검기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쥬데카는 엄청난 검술을 바탕으로 쾌속승진을 할 수 있었고 흉켈리스의 눈에 들고부터는 [켄]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자신은 다른 헤켈들에게 전이 헤켈이란 점 하나 때문에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 것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따돌림당하는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흉켈리스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락켄신이란 친구가 없었더라면 그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그래. 맞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를 그때. 그에겐 놀라운 참을성과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자신의 성격은 아니었다.
자신의 성격이 변했나? 하고 자문해보았지만 절대 그럴리는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인격이 그의 몸 속에 숨어 있지 않는가 하고.
그의 그런 불안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의 의식 저편에는 또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인 카켄이 살아 숨쉬고 있었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려 주었으며 급한 마음에 여유를 심어주었다.
아니. 도리어 그 카켄의 인격에 자신의 인격이 사로잡혀 버렸다. 그래서 성질 급하고 다혈질이던 쥬데카의 모습은 사라지고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 있는 쥬데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쥬데카의 인격이 강해지면 부하들을 매질하곤 했던 것이다.
공존(共存).
쥬데카는 쥬데카면서 카켄이었고 카켄은 카켄이면서 쥬데카였다. 둘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였으며 하나였지만 둘이었다. 그런 쥬데카의 의식이 카켄의 의식으로 동화되어 감을 루카누스가 죽으면서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쥬데카는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삶을. 그의 삶이지만 또한 자신의 삶이 아닌.
그의 삶이지만 또한 카켄의 삶임을.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마 오래 전의 자신. 즉, 카켄과 하나가 되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인간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수치심으로 자결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젠 그도 깨달았던 것이다. 둘이면서 하나가 되는 방법을.
쥬데카는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세느카는 세이타르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쥬데카는 그녀를 보고 길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녀가 너무도 고마웠다.
자기 자신을 되찾게 해준 그녀가.
"다행이에요. 무사해서. 상처가 심해서 큰일나는 줄 알았어요."
-
"정말 고맙소. 헤켈인. 나를. 도와줄 줄은 정말 몰랐소."
쥬데카의 말에 이카루스는 집게손가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뇨. 당신은 헤켈이 아니에요."
-
"뭐라고 했소?"
"당신은 헤켈이 아니라고 했어요."
이카루스의 말에 쥬데카는 자신이 전이 헤켈임을 상기하고는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였다. 이카루스는 그런 쥬데카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살아 있는 생명이에요. 헤켈이든 인간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
"아....."
"당신도 이제 우리말을 믿겠죠? 신들이 단지 그들의 유희를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카루스의 말에 쥬데카는 카발리에레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카발리에레. 흉켈리스였지만 신이었던 바쿠듀므 란케. 자신이 그토록 믿고 존경하고 따르던 바로 그들만의 신. 헤켈들의 신인 고귀하신 존재.
하지만 그 믿음은 거짓이었다. 거짓된 믿음이었다. 아니, 믿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신앙이었다. 쥬데카는 이카루스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비록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헤켈이었지만 이카루스는 그의 미소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당신말을 이제 믿어요.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 알았어요. 후훗.
이제 당신들을 돕겠어요. 잘은 모르지만 저기 보이는 저."
-
"아. 세느카에요."
"네. 세느카가 바쿠듀므 란케. 아니, 카발리에레를 죽일 힘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신들을 돕겠어요.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겠어요."
쥬데카가 당차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저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세이 타르와 세느카도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쥬데카를 향해 다가왔다. 이카루스는 쥬데카의 당찬 포부를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상처가 낳아서 다행이에요.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전 세느카 아이리스라고 해요. 앞으로 기가스들과 싸울 용감한 여전사 세느카죠!! 후훗."
세느카가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렸다. 옆에 있던 세이 타르도 자신을 소개했다.
"난 세이렌족의 세이타르 쿼르라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
"난 헤켈족의 쥬데카. 쥬데카 카켄이라 해. 나도 잘 부탁한다."
세이타르와 쥬데카는 종족을 초월해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다른 종족도 우정과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를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순간?이었다.
쥬데카는 자신을 소개할 때 성을 카켄으로 바꾸어 말했다. 그 전에도 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에이. 그건 떠올리지 말기로 하자. 그는 이제 카켄의 의식 그 자체를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카켄의 기억과 카켄의 감정.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쥬데카가 아닐까? 카켄의 의식과 하나가 되기 위한 마음의 다짐으로 이름을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세이타르와 쥬데카 사이에는 한때 서로 칼을 들이대던 사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알 수 없는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 둘은 단지 서로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벌써부터 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 전. 이카루스 이반이라고 해요. 이제 모두 친구가 되었으니 앞으로 잘 해보도록 하죠."
-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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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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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모두들 활짝 웃으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카루이안과 사투 속에서 탈출하고 바쿤신전 그 사지에서도 도망쳐 나온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두려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꼬르르륵. --;
두려운 것은 바로 배고픔과 갈증이었다. 이곳은 사막지역이라서 먹을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야 모래뿐이었다. 더군다나 물도 없어서 갈증에 시달리고 있던 차였다.
이 비르수 라 드뮨 대륙에서 사막지역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그들은 앞이 깜깜했다. 어디가 어딘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위치를 아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들뿐이었다. MGPS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어딘가로 움직이기라도 했을텐데.
그들은 그대로 땅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그 활기차던 모습들도 뱃속의 거지들이 농성하는 소리 앞에서는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죠.?"
세느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모래더미가 흔들리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마치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소리가 모래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 무슨 소리지?"
쥬데카는 다소 당황한 듯 세느카와 이카루스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서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변은 온통 황량한 모래뿐이었다.
그때 세이타르가 뭔가 느낀게 있는지 그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한참 앞으로 낳아가더니 이내 멈추어서고는 모래에 귀를 가져다 대는게 아닌가.
그리곤 중얼거렸다.
"언더 플레인."
세이타르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던 일행들은 재빨리 세이타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세이타르가 그들을 뒤로 약간 물리며 말했다.
"금방 나타날 겁니다."
-
"네?"
세이타르가 뒤로 물러서면서 이상한 말을 하자 세느카와 이카루스가 동시에 반문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때였다. 세이타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원형 기둥이 솟구쳐 오르는게 아닌가.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원형 기둥이 이곳저곳에서 4개정도 더 튀어나왔다.
원형기둥은 사람 10명 정도는 충분히 탈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는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원형기둥을 처음 본 일행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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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플레인입니다. 우리 종족이 타고 다니는 머신입니다. 세느카. 당신을 납치 했을때도 저것을 타고 프레제톤타까지 갔었죠."
"어라? 난 기억이 안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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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저체온증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세이타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원형기둥 앞쪽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에 원형기둥 밑 땅속으로부터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엘리베이터와 똑같은 모양새였다.
세이타르는 자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막에 언더 플레인이 그것도 한 대가 아닌 5대정도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도시들을 침략하더라도 한 대의 언더 플레인이면 만사 형통이었는데 5대나 나타나다니. 그것도 소형 언더 플레인이 아닌 적어도 세이렌 10개체가 한꺼번에 탈 수 있는 대형 언더 플레인이었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세이렌의 움직임도 뭔가 달라졌음을 알고 긴장했다. 이 정도 병력이 움직이는 것은 단 한가지 경우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
5개의 원형기둥 안에서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올라오자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세이렌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략 어림잡아도 50개체는 더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한 헤켈이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세이타르를 보고는 아는 체를 했다.
"이게 누구신가. 세이타르 쿼르라. 배반자가 아니신가?"
-
"뭣. 배반자????"
세이타르는 상대방 세이렌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 배신자로 전락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도망쳤을 때 카루이안은 이미 7대사제를 모두 제압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무슨 짓을 했을지는 뻔하고. 자신을 배반자라고 선포한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 사태를 단박에 이해 못한 자신이 도리어 한심스러웠다.
세이타르를 배반자라고 말한 자는 손이 다른 세이렌들보다 더 발달되어 있어 수인을 맺기 쉬운 구조를 가진 소서렌이었다. 바로 엘더 소서렌 스캇이었던 것이다.
이미 배반자라는 말에 세이타르 뿐만 아니라 세느카,이카루스,쥬데카 모두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같은 종족한테도 싸늘하게 <배반자!> 하는데. 다른 종족인 그들에게 인정을 둘 리 없지 않은가.
쥬데카는 정말 인생이란 덧없다는 것을 느꼈다. 겨우 살아 나왔더니 또 죽음이 기다리고 있나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고어는 진리이자 명언이었던 것이다.
스캇은 일행들을 한번 쭈욱 훑어보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배반을 했다더니. 쑈킹하구만. 헤켈, 인간들 참 골고루 어울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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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우릴 조용히 보내다오."
세이타르는 스캇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배반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같은 종족이 아닌가. 부탁하면 들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엘더 소서렌과 광전사는 같은 신분적 위치였기 때문에 스캇과 세이타르는 꽤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물론 오래 전 일이지만.
"조용히 보내달라? 훗. 우습군. 너희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스캇은 싸늘하게 내뱉고는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이타르는 당황했지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외쳤다.
"모두 멈춰라!!! 어째서 같은 동족끼리 상잔을 하잔 말이더냐? 난 너희들을 해칠 의사가 없으니 어서 비키거라!!"
세이타르의 말에 세이렌들이 동요를 했는지 뒤로 약간 물러섰다. 그러자 스캇이 부하들에게 외쳤다.
"뭐하는건가? 그는 배신자다! 배신자에겐 오직 죽음만이 있을뿐!! 하하핫.
하늘에서 인간들을 제물로 삼기 전에 먼저 배신자를 죽일 영광을 내려주시는구나!!"
스캇은 광오하게 웃어젖히며 세이타르를 바라보았다. 일행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스캇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타르는 스캇에게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이. 인간들을 제물로 삼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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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배신자 주제에. 묻는 것도 많구나."
"처음 물어 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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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지금 말장난하자는 거냐? 험험."
"설마.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간단 뜻이냐?"
세이타르의 질문에 스캇은 다소 허황되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호오. 역시. 한때 기솔라벨카님의 총애를 받을 정도의 머리로군. 그걸 알아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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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놈. 그렇게 힌트를 줬는데 못 맞추는게 바보지."
"뭐라구?. 죽고 싶은게로구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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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인간들을 공격한다는게 사실이냐?"
"그래. 몇 번 말해야 알아 듣냐? 아마 지금쯤 휘페리언님과 락토니즈님은 출발하고 계실거다."
세이타르는 재빠르게 머릴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스캇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파리나타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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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그분은 곧 뒤따라 오실거다."
스캇의 말에 세이타르는 거의 좌절한 듯 보였다. 휘페리언과 락토니즈가 전쟁을 하기 위해 공격을 시도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카루이안과 싸울 때의 그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도 아마 세이타르 자신을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세이타르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것이 카루이안과 싸우고 얻은 전리품이란 말인가. <배신자> 라는 오명이. 그게 다란 말인가. 자신과 목숨을 걸고 같이 싸워 주었던 7대사제들은 모두 죽거나 그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세이타르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스캇이 비웃었다.
"너무 낙심할 것 없다. 아프지 않게 죽여 줄테니."
세이타르는 스캇의 말에 뭔가를 다급히 생각해내었다. 그리곤 스캇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공격하기 전에 먼저 외쳤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
"뭐. 뭣이???"
세이타르의 말에 스캇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배신자 주제에 무슨 결투? 이게 서부의 총잡이 영화쯤 되는 걸로 착각하나보지?
하지만 세이렌족에겐 각결의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같은 계급의 세이렌이라면 누구나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신청을 받은 자라면 결코 그 신청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같은 계급이라하면 실력도 서로 비슷한 법. 그렇기 때문에 그 둘 중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처절한 죽음의 게임이었던 것이다. 물론 세이타르는 광전사였고 스캇은 엘더 소서렌이었다. 두 직업이 달랐기에 신분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둘의 신분은 동급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그것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그런 재치를 사용한 것이었다. 물론 응급조치에 불과한 것이지만.
스캇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웃기지 마라!' 라고 말하려다가 주변의 시선을 보고 그 말을 삼켰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부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뻔할 뻔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각결 신청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거부할 수 없었던 풍습의 영향도 컸다.
그 신청을 거부하게 되면 불명예를 업고 신분이 한단계 강등 당하고 영원히 진급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스캇의 당황하는 모습에 세이타르는 다소 마음을 놓았다. 배신자에 대한 규칙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는데 그런 자신에게까지 풍습을 지키려는 스캇의 모습이 우스웠다.
"어때? 배신자하고는 겨루기 싫다는거냐?"
세이타르의 말은 스캇의 마음을 꼭 찝어낸 말이었다. 스캇은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세이타르에게 말했다.
"후훗. 설마. 내가 너를 겁내리라곤 생각지 말아라. 좋다. 너의 도전을 받아주마."
-
"만약 내가 이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쳇. 뭘 어떻게 해?"
스캇은 세이타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다소 떨떠름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자 세이타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이들을 모두 풀어다오. 대신. 난 너희들의 손에 죽겠다."
-
"세이타르!!!"
-
"세이타르!!"
세이타르의 말에 세느카와 이카루스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쥬데카는 내심 놀랐지만 헤켈답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이타르의 말을 들은 스캇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타르가 이길리야 없겠지만 만약 그가 이긴다고 해도 손해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세이타르를 죽인 후에 저들을 죽인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좋아.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하지만 내가 이기면 너희들은 몰살이다.
그땐 절대 반항해서는 안 된다. 어떤가?"
-
"좋다."
-
"잠깐!!!"
세이타르가 수긍했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는 쥬데카였다. 쥬데카는 한발 앞으로 나오며 스캇에게 말했다.
"아니. 그가 진다고 해도 난 반항 할거다. 난 너희들의 대결에 내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
"뭣이???"
"뭐. 정 내 목숨을 빼앗고 싶다면 나하고도 일대일로 붙어 보던가???"
-
"뭐라구??"
스캇은 쥬데카의 도발에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부하들이 보는 앞이라 당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했다.
"좋다. 세이타르 다음엔 네 차례가 될 줄 알거라. 자아. 잔말이 너무 많았다.
어서 덤벼라!!"
스캇의 말에 세이타르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금속팔을 휘둘러보았다. 전과는 달리 뭔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탈골된 휴유증으로 팔을 쓰는데 아직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섰다. 스캇은 세이타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신이 유리한 상태라고는 해도 상대는 기솔라벨카가 아끼던 세이타르다.
허기야. 한때 기솔라벨카가 자신이 빠짐으로써 한 명이 부족한 7대사제의 자리를 그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적도 있었으니.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캇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 역시 소서렌 중에서는 파리나타 다음가는 실력파가 아니던가. 말이 엘더 소서렌이지 그 역시도 거의 마스터 급에 버금가는 실력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실력이 있었기에 세이타르의 도전에 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이타르보다 스캇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세이타르는 근접전을 주요 사용하는 전사타입이었고 그는 원거리 공격을 주로 하는 소서렌이었던 것이다.
그런 불리한 점을 세이타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게임은 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스캇이 씩 하고 웃는게 아닌가. 웃고 있던 스캇에게서 웃음이 돌연 사라졌다. 동시에 그는 엄청난 속도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새끼손가락들을 서로 겹치고는 하늘로 들어올렸다가 검지와 무명지를 엇갈리게 엮고는 땅으로 향하더니 이내 원형 모양으로 손가락을 구부린 후에 세이타르를 향해서 외쳤다.
"쏘레노드!!!"
동시에 스캇의 원형 수인에서 한 괴물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그 크리에이쳐는 마치 보통 인간처럼 생겼는데 머리가 두 개가 달린 괴물이었다. 크기는 세이렌 한 개체만 했는데 두 개의 머리는 하나는 개였고 하나는 독수리인 이상한 괴물이었다.
<사족이지만 쏘레노드라는 이 크리에이쳐는 야차신(野次神) 전설에 등장하는 야차들의 신중 하나였다. 신이라기보단 악귀에 가까운 망령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개의 영민함과 민첩함. 그리고 독수리의 용맹함과 놀라운 시력등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야차신 중에서도 손꼽히는 맹장이었다.>
세이타르는 쏘레노드를 소환해낸 스캇을 보고는 비웃으면서 외쳤다.
"그 정도의 크리에이쳐를 불러내다니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런 악신을 불러내면서까지 실력을 키운 것은 실망이 크다!"
-
"닥쳐랏!! 가랏!!"
스캇의 말에 쏘레노드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 스피드가 예사롭지 않았다. 쥬데카 역시 말로만 듣던 소서렌의 능력을 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소서렌이 불러낸 쏘레노드라는 생명체는 괴이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가공할 스피드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거의 독수리 발톱에 가까운)을 휘두르는 쏘레노드의 모습을 보고는 비웃으며 금속 팔을 들어 막으려 했다. 그런데 팔이 잘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쏘레노드의 공격을 막았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쏘레노드의 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막은 상태로 뒤로 3미터나 밀려 나는게 아닌가.
그 덕에 모래는 발부터 무릎까지 집어 삼켰다. 세이타르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쏘레노드의 2차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 크리에이쳐의 손톱은 맹렬하기 그지없었는데 감히 금속이 아닌 왼손으론 막을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단지 방어만 몇 차례하고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하핫. 기솔라벨카님께서 주신 금속팔도 별 도움이 안 되나보군."
-
"제길."
세이타르는 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엔 공격을 감행했다. 쏘레노드를 향해 금속팔을 검처럼 찔러 들어갔다. 그냥 맞게 되더라도 보통 살갗은 그냥 뚫어 버릴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런데 쏘레노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팔을 그냥 노려보더니 이내 세이타르를 꿰뚫어 볼뿐이었다.
"됐다!!!"
하지만 그건 세이타르의 생각이었다. 세이타르의 손은 쏘레노드의 심장 바로 앞에서 멈추어서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놀란 세이타르는 자신의 눈이 쏘레노드 개의 눈과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개머리의 눈에서 알 수 없는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밤도 아닌데 안광을 뿜어내다니.
역시 신통한 괴물임에 틀림없었다.
쏘레노드는 자신의 개의 머리를 이용해 세이타르의 손을 붙잡아 두고는 다시 손톱으로 세이타르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이번에 그의 금속팔은 묘한 힘에 의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는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세이타르의 심장 속으로 쏘레노드의 손톱이 박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이타르도 그냥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다. 손톱이 심장에 박히는 순간 몸을 틀면서 쏘레노드의 팔을 금속팔로 내리쳤던 것이다.
놀랍게도 심장에 닿은 충격으로 쏘레노드의 눈을 보지 않게된 그 순간부터 팔이 말을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세이타르의 팔이 쏘레노드의 팔을 정확하게 가격하였다.
엄청난 일격이었기에 쏘레노드의 팔은 두부 자르듯이 잘라져 버렸다. 하지만 세이타르도 부상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팔 하나를 잃은 쏘레노드보다는 분명 유리한 상황일 것이다.
쥬데카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 마디 했다.
"세이타르의 승리로군."
-
"과연 그럴까?"
스캇은 쥬데카의 말을 비웃으며 쏘레노드를 가리켰다. 그리곤 큰 소리로 외쳤다.
"잘 봐라! 내 크리에이쳐의 팔을!!"
스캇의 말대로 모두의 시선이 쏘레노드에게 집중되자 그의 독수리 머리의 양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잘라져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팔이 스스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꿈틀거리던 그 팔은 저절로 날아가 쏘레노드의 남아 있던 팔에 붙어 버리는게 아닌가. 녀석은 한번 쓱쓱 움직여보더니 이내 잘 움직인다고 판단되었는지 다시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모두들 질려버리고 말았다. 저건 그야말로 괴물이 아닌가.
그것도 팔을 잘라도 소용없는 어쩌면 모가지가 떨어져도 다시 붙어버릴 놀라운 괴물인 것이다.
세이타르는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은 부상을 입은데 반해 녀석은 멀쩡한 모습이지 않은가. 점점 암담해졌다.
사실 소서렌들은 선한 크리에이쳐들을 자신의 소환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선한 크리에이쳐일수록 더 강하고 소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유 당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힘을 얻고자 하는 소서렌들은 악한 크리에이쳐들을 자신의 소환체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종류의 것들은 소환자의 생명을 갉아먹고 살기 때문에 쉽게 주종의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야차신들은 거신족과는 달라 악한 크리에이쳐로 분류되기 때문에 세이타르가 처음 스캇에게 그런 말을 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악한 크리에이쳐라해도 야차신들 중 꽤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 쏘레노드를 제압한 스캇은 대단한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쏘레노드는 자신의 주인은 힐끗 보더니 이내 다시 세이타르에게 달려들었다.
세이타르는 녀석의 개머리의 눈을 마주보게 되면 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난다는것을 깨달은 상태였다. 그래서 더욱 개머리의 눈과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신경이 쓰여 개머리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싸움의 기본은 상대의 시선을 주시하는 것이다.
쏘레노드는 개머리로 세이타르를 더욱 노려보며 공격해 들어왔다. 세이타르는 쏘레노드가 자신을 향해 팔을 휘두르자 몸을 숙여 피한 후 다리를 뻗어 녀석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쏘레노드는 휘청하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이것은 세이 타르가 바라던 것이었다. 쓰러지던 쏘레노드를 향해 금속팔을 찔렀던 것이다.
개머리의 목부분을 향해 찔렀는데 이게 또 웬일이란 말인가.
또 다시 개머리 눈과 눈이 마주친게 아닌가. 동시에 그의 팔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쏘레노드는 쓰러지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는 바닥에 누워있다시피 한 세이타르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세이타르는 막지 못하고 맞고 퉁겨져 뒤로 날아올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세이타르는 고통에 겨워 신음을 흘렸다.
그만큼 쏘레노드의 괴력은 드라쿤과 맞먹는 것이었다. 세이타르는 자신이 진다면 다른 이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발에 채인 그의 허리는 단지 걷어 차였을 뿐인데 움푹 들어가 뼈라도 몇 개 부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세느카는 그런 세이타르가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떨어졌던 팔이 다시 붙는 그런 괴물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때 세이타르가 다시 일어났다. 그의 불굴의 의지는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쏘레노드는 상대가 다시 일어서자 또 스캇을 바라보았다. 쏘레노드가 스캇을 바라볼 때마다 스캇은 기분 나쁜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또 바라보자 가쁜 숨을 내쉬었다. 세이타르는 그 모습을 보고는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가다듬고 스캇에게 외쳤다.
"그만 포기하시지. 네 몸까지 좀 먹으면서 날 이기고 싶은가???"
-
"쳇. 너나 포기해!!"
스캇은 땀구멍이 거의 없는 세이렌족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세이타르에게 굴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세이타르의 부상은 그가 보기에도 심한 것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승부를 가릴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쏘레노드의 괴력과 놀라운 능력 때문에 자신이 녀석을 쓰러뜨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스캇은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스캇은 쏘레노드에게 엄청난 기운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계약은 주종의 맹약이 아니라 동등한 동맹관계였던 것이다. 스캇이 원하면 쏘레노드는 싸워주고 대신 그의 생명력을 내주는. <계약>관계. 세이타르는 그것을 알아채고 죽을힘을 다해서 버틴다면 스캇이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쏘레노드는 스캇에게서 또 한번의 기운을 흡수하고는 포효했다. 개머리와 독수리머리. 상스럽게 말해 개대가리와 새대가리가(지송해유 --;) 돌연 소릴 지르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전율했다. 녀석의 괴성이 멈추자 사람들의 몸도 차츰 진정이 되었다.
쥬데카는 세이타르가 지금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도와주게 된다면 그건 그들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승부에 방해를 놓는 꼴이 되어버린다.
쥬데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속만 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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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일이 계속 꼬이네요. 이것 저것...... 에휴...... 한숨만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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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야지 정신차려야지 하면서도..... 계속 헤메이고 있네요.....
우울한 기분에 한편 올립니다. ㅜ.ㅜ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