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89화 (89/120)

제 목: 95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95

[기가 슬렌더] -50- 카발리에레 폰 발더스(흉켈리스의 또 다른 인격) -카발리에레 폰 발더스(흉켈리스의 또 다른 인격)-얀 일행들은 발카로스시 사람들을 이주시키던 도중에 세이렌들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보를 들었다. 문제는 공격받은 도시 중에 티탄시도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 라.. 라이오네가"

-

"얀선상 아무래도 이곳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티탄시로 얼렁 가보는게 좋을 것 같구먼.."

"알겠습니다. 라케프씨 서둘러 출발하도록 합시다. 호크는 라케프씨것을 타고 가도록 하죠."

-

"아뇨!!! 그거 이제 제꺼에요 호호홋.."

미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물건임을 따지려들다니.. 어쨌든 얀,카인,아크바레이,파인리히,라케프,미얀,미시케는 라케프 호크에 아니, 미얀의 호크에 탑승했다.

마도란도 따라 가고 싶어했지만 사람들을 구하는 막중한 임무 때문에 발카로스시에 남았다. 에리네 역시 미얀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가 '당신은 싸움도 못하면서 어딜 가려구 그래요?' 라는 구박만 받고 물러났다.

남은 의인들에게 발카로스시를 맡겨두고 미얀의 호크는 엄청난 속도로 티탄시를 향해 날아갔다.

카에살레아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락토니즈에게 말했다.

"마지막 부탁이다. 제발 조용히 돌아가라. 그리고 너희들의 신에게 전해라! 나 카에살레아가 있는 한 전쟁은 용납할 수 없다고.."

-

"네 녀석이 뭔데 큐탕 쿠 매지그님에게 그런 소릴 지껄이는 거냐?

신성모독이다!!"

"정말 슬프구나. 아니.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구나. 이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들의 잘못이지."

카에살레아는 뭔가를 결심한 듯 손바닥을 위로하며 치켜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공기가 그의 손바닥에 응집되듯 광풍이 몰아쳤다.

동시에 카에살레아의 온 몸에서 흰색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머리카락은 바람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인지 하늘을 향해 일어섰다.

카자마는 그의 주인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 놀라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힘. 결코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주인은 살기란 것을 내뿜는 성격이 아닌데 지금 이 힘은 엄청난 살기를 동시에 발산하고 있었다. 그. 그렇다면 세이렌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인가.

카자마는 다급히 카에살레아의 다릴 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그의 주인을 간절히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 이제 와서 자신과의 맹세를 저버리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기가스들과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지금껏 노력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죄까지 뒤집어쓰기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하시지 않았습니까? 안됩니다!! 먼저 저를 죽이십시오 그렇지 않으시겠다면 모두를 용서하십시오."

-

"카. 카자마."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주인님."

카자마의 말에 카에살레아는 피식 웃었다. 2000년 동안의 맹세.

2000년 전의 죄악. 2000년 후에 과거. 미래의 슬픔. 지금 순간적으로 세이렌들을 몰살시키려했던 자신의 모습이나 그들 형제들의 모습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죽는 길만이 내 죄를 용서받는 것이라 생각하며 또 그렇게 믿으려고 안간힘 쓰며 살아왔다. 그 수많은 시체들 파괴된 건물들. 잘려진 어린 아이의 팔 처참하게 찢겨죽은 아이들.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던 사람들. 난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 난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 내 죄를 스스로 단죄한다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니."

카에살레아는 살기를 거두었다. 동시에 몰아치던 광풍도 그의 몸에서 빛나던 흰색기운도 사라져버렸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카자마는 그런 주인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주인님"

-

"카자마. 내가 힘을 거두었다는 것은 또 한번 죄를 짓겠다는 뜻이다.

그저 바라만 보는. 죄를."

"알겠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입니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존재하듯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후회나 미련은 없는 것입니다."

-

"후훗. 그래. 너도 많이 자랐구나."

카자마는 순간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주절거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카에살레아 옆에 가서 섰다. 카에살레아는 천천히 락토니즈를 응시하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난 또 하나의 죄를 짊어지려 한다. 너희들이 아무 죄 없는 생명들을 모조리 앗아가는 그 죄까지도. 가자!"

카에살레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자마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정녕 어리둥절한 순간이었다. 무슨 개소릴 지껄이다가 사라져 버리는거야?

게다가 분위기는 혼자 다 잡아놓고. 하지만 모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방금 전 그 미소년이 보여준 힘은 제이드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랄 만큼 엄청난 것이었고 락토니즈 역시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무서운 살기였으므로......

락토니즈는 천천히 앞에 있는 사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묘한 공포심.

헌데 이상한 것은 그 공포심이 아까 그 미소년으로부터 전이된 것은 확실한데 뭔가 다르게 변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자신감 바로 그러한 마음에 대한 공포심. 정말 이상하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때였다. 락토니즈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락토니즈? 그만 돌아 가자구.."

-

"누. 누구냐?"

락토니즈는 다급히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놀란 것은 락토니즈 뿐만이 아니었다. 제이드와 코로니스도 갑자기 2배로 늘어난 세이렌들의 숫자에 기겁하고 있었다.

"파. 파리나타!!!"

- "어서 돌아가자.. 아까 그분이 말했듯. 나도 네가 죄를 짓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볼 수 없어서 이곳으로 온 거야"

"무. 무슨 소리냐?"

-

"쳇. 역시 말이 안 통하는군 가자!! 큐탕 쿠 매지그님이 그냥 복귀하래.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데?"

"저, 정말?"

-

"그래.. 빨리 돌아오래. 시간 없다."

"그래? 알았어 모두 돌아가자!! 프레제톤타로 돌아가자!!"

락토니즈의 말에 부하들은 다소 당황했지만 금새 정신을 차리고 일사 분란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제이드와 코로니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하여간 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락토니즈와 그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언더 플레인에 모두 탑승하자 파리나타의 배틀 팀도 언더 플레인에 탑승했다. 그러자 스캇이 파리나타에게 물었다.

"정말 큐탕 쿠 매지그님이 복귀하라고 했습니까?"

-

"이런.. 멍청하긴 내가 지어낸 말이야. 락토니즈에겐 그게 가장 잘 먹히는 말이거든 녀석은 워낙 곧은 성격이라 그런 식으로 말해야지 통하는 스타일이야.."

"그. 그렇군요."

-

"다행이야 휘페리언. 락토니즈 모두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어.."

파리나타는 그렇게 말하고 싱겁게 웃었다. 그렇게 해서 세이렌들의 공격은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이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을 심어두게 만들었다.

제이드와 코로니스도 자신들의 진지로 돌아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그 꼬마는 누구였을까?"

-

"못 들었어? 세이렌 신의 친구이자 형제라고. 혹시 또 알아? 헤켈들의 신의 친구이자 형제일지도."

"하핫. 제이드 어쩌면 우리들의 신일 수도 있겠군"

-

"어쨌든 아까 그 꼬마의 능력이라면 세이렌들은 물론 이 세상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야. 그가 엄청나게 화났을 땐 나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구.."

"흠. 제이드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정말 신이 아닐까???"

- "어쨌든.. 피곤한 하루는 지나갔군. 젠장. 마테리온 그 늙은이 밑에서 일하기 힘들군"

"아참, 그 늙은이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했잖아 그게 뭔데?"

- "글세. 확실하진 않지만 세이렌들이 공격해오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임엔 틀림없어. 나중에 말해줄게"

"치사하게......"

-

"후훗. 오늘은 술이나 한잔하자구."

코로니스와 제이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각자 서로의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세 종족의 전쟁으로 세상은 망하게 되는 건일까?

얀 일행들이 도착 했을땐 다행히 사태가 진정된 상태였다. 가장 먼저 달려간 릴튼 병원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라이오네와 레이도 무사했다.

이미 HDTV 에서는 미소년과 거한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세이렌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일행들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이카루스였다. 그녀는 기지개를 펴더니 긴 하품을 했다. 하아아아암.. 잉? 그녀는 옆에서 졸고 있는 세이타르를 발견했다. 그는 결국 혼자 불침번을 선 것이었다. 이카루스는 미안해서 차마 그를 깨우지 못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때 세느카도 정신을 차렸는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일어섰다.

그러다가 일어서는 이카루스와 부딪혀 둘 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땅이 울리는 바람에 졸고 있던 세이타르가 깨어났다.

"앗. 이런 미안해요. 내가 졸고 있었다니."

-

"아뇨. 우리가 미안하죠 왜 안 깨웠어요. 돌아가면서 서야 덜 피곤하죠."

"하핫 아. 전 괜찮아요. 서둘러 가도록 하죠. 해도 떴으니."

그렇게 말한 세이타르는 일어서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카루스와 세느카도 한결 몸이 편해졌다고 느끼면서 그를 따라갔다.

한참 가다보니 이상하게 더욱 길이 잘 다듬어져 있는게 아닌가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 명 모두 같은 생각이 들었나 그때였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위에서 누군가가 걸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는 혼자였다.

"누. 누구지?"

-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뒤로 와요. 일단 경계합시다."

세이타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카루스와 세느카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걸어오는 자는 1미터 80정도 되는 키에(헤켈로서는 작은키)흰색 머리카락을 가진 자였다. 세이타르는 헤켈들이 머리카락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흰색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소 경계를 늦추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몸집이나 백발의 머리를 보면 인간의 노인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헤켈이었다. 어느 정도 가까이 오니 도마뱀같은 피부로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홀홀 단신으로 걸어오다니 상대는 마치 자신들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걸어오는게 아닌가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고 그렇다고 공격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헤켈의 대신관인 흉켈리스 매지드헬이었다.

"반갑습니다. 정명(定命)의 인간과 그의 친구들이여. 세이렌이 한 명 끼어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지만. 어쨌든 상관없습니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들이 많았습니다. 가시죠.."

흉켈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걸어서 올라가는게 아닌가. 일행들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할 기회를 잃었다. 그는 벌써 저 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따라가도 될까요?"

-

"그는 이미 우리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우릴 공격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군요."

"세이타르 말이 맞아요. 세느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네요."

그들은 결국 흉켈리스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세이타르의 말대로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으므로 뭔가 사연이 있겠지.

흉켈리스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멈추어 섰다. 그가 서 있는 곳에는 원형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원의 둘레엔 헤켈어로 뭔가 빼곡이 적혀져 있었다.

세느카 일행들도 원 위에 올라서자 흉켈리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명자여 이제 바쿤 신전으로 갈 것입니다. 이것은 비밀통로이므로 약간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균형을 잘 유지해주십시오"

흉켈리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신을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원형 그림이 땅속으로 푹 꺼지기 시작했다. 무슨 이동식 엘리베이터인가? 그 원형그림은 땅속으로 한참 내려가더니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균형을 잃을까 걱정하던 세느카들은 생각 외로 흔들림이 적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원형 그림은 바쿤 신전 안에 도착했다. 그곳은 바로 흉켈리스가 바쿠듀므 란케에게 기도를 드리는 방이었다. 흉켈리스는 원형 그림에서 내려선 후에 다른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은 거대한 원과 작은 원들 그리고 수많은 도형들의 그림이 빼곡이 그려진 거대한 방이었다. 흉켈리스가 한 원 위에 앉는 시늉을 하자 그 원이 땅위로 튀어나와 그의 의자가 되었다.

흉켈리스가 일행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같은 방법으로 앉으라는 말이었다.

일행들도 작은 원형 위에서 앉는 시늉을 하자 그림이 튀어나와 그들을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참 신기한 곳이었다.

"우리 헤켈들의 과학은 인간들이나 세이렌들과는 좀 다릅니다. 약간 주술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어서 대부분 도형적인 형태로 표현이 되죠.. 그건 그렇고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당신은 우릴 지켜보고 있었군요?"

세느카의 질문에 흉켈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긍정의 뜻인 것 같았다.

흉켈리스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마구 호기심 발동하는 표정을 지으며 세느카에게 물었다.

"신의 유희라고 했는데. 그 얘기에 대해 더 듣고 싶군요."

-

"네?"

"신의 유희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은 세이렌들의 신인 카루이안과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싸운 이유가 신의 유희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쥬데카에게 들은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요?"

흉켈리스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흉켈리스의 왼편에 서서 일행들을 노려보았다. 다름 아닌 쥬데카였다.

"설마."

-

"아 정명자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을 죽이려고 했다면 이곳까지 귀찮게 모시지도 않았을 것이오."

흉켈리스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했다. 아마 쥬데카란 녀석의 보고를 듣고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당신들의 모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세이렌족의 신인 카루이안과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모험담.."

흉켈리스는 동화를 듣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일행들 중 세이타르가 먼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렇게 해서 우린 신이 단지 자신들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전쟁을 벌이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린 그의 즐거움을 만족시켜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

"흠. 정말 그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세이타르의 장대한 설명에 흉켈리스도 뭔가 동요를 일으키는 듯 했다.

그건 쥬데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믿을 수 없었는데 설명을 차근차근 듣고 있자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우린 결정해야했습니다. 그의 유희를 위해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우리 종족을 위해 전쟁을 하느냐.. 이때까지는 신의 의도대로 우린 무조건 전쟁을 한다고 단정지은 채로 선택을 강요받았던 것입니다."

-

"호오.. 그래서요?"

"그때 세느카가 우리에게 일깨워줬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생명의 출신성분을 떠나서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사실을요."

-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로군요"

흉켈리스는 세이타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세느카가 고개를 들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그 생명은 그 순간부터 우리 자신의것이 돼요. 타인의 것도 신의 것도 아닌 순수한 나 자신의 것이 되는 거예요.

그런 나의 생명은 나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 "흠 그렇죠. 내 생명은 가치 있는 것이죠"

"다른 생명들도 똑같이 태어나는 순간 그들에게 가치 있는 소중한 것이 되어버려요. 그런 그들에게 <너희들의 생명은 가치가 없으니 죽어라> 라고 말할 수 있나요?"

-

"흠......"

흉켈리스는 세느카의 말에 뭔가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쥬데카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가치밖에 지니지 못한 생명이라면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들은 태어남으로써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그런 존재가 되는 거예요 또 그들 역시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를 사랑하겠죠. 이 세상에 생명이 없는 것만큼 안쓰럽고 안타까운 것이 어디 있겠어요 살아있으므로 기뻐할 수 있고 살아있으므로 슬퍼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건 나나 당신이나 옆에 있는 세이타르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우린 모두 생명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여기고 있어요.."

-

"그렇군요."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고 남의 생명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에요."

흉켈리스는 그녀의 말이 왠지 옳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뭔가 빠진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세상에는 서로 증오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어야겠군요. 그래야 다른 생명도 소중하단 것을 알 수 있을테니."

-

"무. 무슨 뜻이죠?"

"전쟁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입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전쟁을 하는 것일까요? 우린 알고 있습니다. 설령 모든 생명이 살아있으므로 소중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짓밟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전쟁이 그런 경우죠 전쟁을 할 때엔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이럴 때 그러니까 내 생명과 상대의 생명이 동시에 걸려 있을 경우 어떤 생명이 더 존엄한가요? 상대의 생명이 존엄하다고 내 생명을 그냥 내줄까요? 아뇨..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거죠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할건가요? 상대의 생명을 소중히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느냔 말입니다."

흉켈리스는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질문했다. 아마 이 질문에 그녀도 당황할 거란 생각에서 그렇게 웃었나보다.

"아뇨. 전 두 생명 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왜 결과만 보려하죠?

결정된 상태에선 어느 쪽도 선택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왜 그런 결정된 상태를 만들어야하죠? 전쟁을 안 하면 되잖아요 전쟁을 안 하게 되면 애초에 다른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고 내 생명이 위협받을 일도 없죠.

당신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군요. 그런 전쟁이 단지 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란 것을.."

-

"......"

"신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줘요.. 아니, 그렇게 믿어 왔죠.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아뇨. 그렇지 못할걸요 그들은 자신들의 종족의 생명은 소중하다 외치며 다른 종족들을 죽이라 명령하고 있어요 그리곤 뒤에서 우릴 조롱하죠 우리가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즐기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 우린 깨달았어요. 세상엔 거부할 수 없는 신의 존재도 있지만 그보다 더 거부할 수 없는 내 마음속에 양심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세느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또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카루스는 안쓰러운 나머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흉켈리스는 뭐가 뭔지 약간 혼동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세느카를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은 신이 왜 그녀를 납치하라고 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그녀를 두려워 하는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유희' 라.

신의 유희를 위해서 자신은 그 도구의 지팡이로서 헤켈들을 지휘하고 부려왔던 것이다.

신은 바로 자신이 아니, 헤켈들이 이런 것을 깨닫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외 뭔가 실질적인 뭔가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무기는 바로 이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바쿠듀므 란케가 그렇게 그녀를 찾은 이유였단 말인가. 자신의 못난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단지 유희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보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그때였다.

흉켈리스가 갑자기 머리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하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었다. 쥬데카는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어리둥절해 하며 흉켈리스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흉켈리스는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비록 노쇠한 헤켈이라도 그는 강력한 존재. 휘젓는 손에 쥬데카는 한 대 맞고 나가떨어졌다.

"이 이런 젠장. 지금은 안돼. 안돼"

흉켈리스는 바닥을 뒹굴면서 안간힘을 썼다. 도대체 뭐가 안 된다는 것인가? 쥬데카 역시 그의 상관의 이런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으흐흐흐흣. 유희라."

흉켈리스는 여성의 높은 미성을 내며 웃었다. 목소리가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거친 말투였다. 쥬데카는 흉켈리스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운 다음 다시 의자에 앉혔다.

"처음 보는군.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인간."

-

"뭐. 뭐라구??"

흉켈리스의 말에 세이타르가 당황해서는 일어섰다. 흉켈리스는 지금껏 세느카를 정명자(운명이 정해진 자)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인간이라니. 세이타르가 일어서자 쥬데카도 긴장하며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때 흉켈리스가 손을 내저으며 쥬데카를 말렸다.

"가만히 있거라. 쥬데카여 난 저 아이와 할 말이 있다. 으흐흐흣."

흉켈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뒷짐을 지더니 돌아섰다. 그리곤 싸늘하게 말했다.

"난 헤켈들의 신인 바쿠듀므 란케. 거창한 거 집어치우면.

카발리에레 폰 발더스라고 한다"

흉켈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만 돌려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느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똑바로 마주보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짐작은 했어요. 카루이안과 풍기는 뉘앙스는 다르지만 당신일거란 것을."

세느카의 말에 이카루스와 세이타르가 둘 다 놀랐다. 상대가 카루이안과 같은 종류라면. 바로 기가스란 말이 아닌가? 방금 전까지 흉켈리스던 녀석이 갑자기 기가스 중 일인인 카발리에레라니 귀신이 씨나락 밟고 넘어져 곡할노릇이 아닌가!

"호오. 제법이군 대단하구만. 카루이안의 힘이 증폭된 것을 느꼈을 때 설마 녀석의 손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

"......?!"

"어쨌든.. 흉켈리스 녀석의 마음을 동요시키다니. 정말 대단해."

-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쥬데카는 사태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듯 흉켈리스. 아니. 카발리에레를 향해 물었다. 카발리에레는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흉켈리스는 또 다른 또 하나의 나다. 난 단지 세상일에 오랫동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지. 그래서 흉켈리스라는 또 하나의 의식을 내 스스로 만들어내었다. 그 녀석은 또 나지만 또 다른 나.

녀석과 내 생각은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 그는 자신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나를 신의 의식이란 것을 통해 불러내었지.

물론 처음엔 몰랐겠지. 그 신을 불러내는 의식이 깊은 잠재 의식 속의 나를 소환해내는 것이란 것을. 하! 물론 그 녀석의 몸이 아니라 실제론 내 몸이지만.. 결국 녀석은 자신의 몸 속에 또 하나의 의식이 있음을 깨닫고. 저 여자를 이용해 내 약점을 알아낸 후에 나를 제거하려 했던것 같군. 그래서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만들고 싶었겠지 그 잠재 의식 속에 숨어 있던 바로 자신을 제거해서."

-

"!!!!!!"

모두들 한마디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가장 놀란 것은 쥬데카겠지.

지금껏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하던 대신관 흉켈리스가 알고 보니 진짜 신이었더라. 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이란 말인가.

그런 흉켈리스는 자신의 몸을 자신 혼자만의 의식의 매개체로 만들기 위해 즉, 신을 없애기 위해 세느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자기 딴에는 신 몰래 약점을 알아낸 후에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겠지만. 이미 신은 그의 의식을 오래 전에 능가하는 레벨이 아닌가?

흉켈리스는 신들의 가공할 계획에 대해 세느카에게 들었고. 그조차 다시 말해 그의 의식조차 그런 유희를 위해 만들어진 소모품에 불과하단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잠자고 있던 카발리에레의 의식이 깨어난 것이다. 당연히 원래 주인의 의식이 소모품인 의식을 제압하고 등장한 것이다.

카발리에레는 친절하게 설명해준 이유가 죽이기 전의 마지막 배려였다는것을 말해주려는 듯 살벌하게 웃었다.

그제서야 쥬데카도 자신이 무엇을 실수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신을 믿었다는 것. 그 신은 자신의 부하를 단번에 죽여버리고(흉켈리스의 의식을 제압하고)이젠 자신까지 죽이려고 살기를 내뿜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세느카가 말한 그 유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정말. 유희 때문이었군. 개자식!"

-

"으흐흐흐흐흣. 낄낄낄. 개자식이라구? 헤켈들은 그런 동물성 욕을 안 하는걸로 아는데? 카켄 양반?"

"뭐. 뭐라구???"

카발리에레는 그렇게 말했다. '카켄 양반' 이라고. 세이타르 일행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지만 쥬데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너와 나는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나. 나 역시 한 몸에 두 개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쥬데카의 말에 일행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밟고 넘어지다가 낙법 하는 소리란 말인가?

"난 전이 헤켈. 하지만 내가 전이한 인간은 나보다 더 뛰어난 인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난 그 녀석의 몸은 내 것으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녀석의 인격까지 제압할 순 없었지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나는 바로 그 녀석일지도 몰라.. 신검 카켄. 한때 나는 그렇게 불렸었지."

신검(神劍) 카켄 그는 2차 세이렌 대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오래 전 한 헤켈과 싸우다가 잠깐 방심한 사이 어깨부분을 물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헤켈은 자신의 온 힘을 쏟아 카켄의 몸에 전이를 시도했고 그것은 성공이었다. 몇 년간의 잠복기를 거쳐 그는 헤켈이 되었다.

2차 세이렌 대전 때 그는 죽을 뻔 했지만 죽지 않았다. 그는 이미 헤켈로 변이가 시작된 상태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신검 카켄이. 바로 쥬데카의 또 다른 인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쥬데카의 인격과 카켄의 인격이 서로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카루이안한테서 어떻게 도망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서는 어림없을 것이다. 아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자는 살려주도록 하겠어. 난 네가 필요하거든?"

-

"그게 무슨 소리냐?"

"예언에는 우릴 죽일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그녀뿐이라고 되어 있거든.

하지만 살아남는 자가 있다고 했지 우리 기가스 중에 단 한 명 난 그 한 명이 되려 하는 것 뿐야. 다른 녀석들이 모두 죽어야만 그 한 명이 될 수 있거든."

-

"미. 미친 그럼 네 동족들을 죽이겠다는 말이냐?"

"후훗. 미친건 내가 아냐 난 정상이지 그들도 날 죽이려고 혈안일텐데 피차일반 아니겠어?"

-

"뭐라구???"

"왜 카루이안이나 내가 그녈 그토록 납치하려고 했겠어? 아마 카안드리아스 녀석도 그녈 감시하고 있었을걸? 아니라곤 못하겠지?

세느카?"

세느카는 카안드리아스란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카안드리아스가 기가스란 말인가. 그렇다면 재단에서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지금껏 감시한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동족을 죽이기 위한 칼로 쓰기 위해 자신을 예리하게 갈고 닦았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이 날이 올 거란 예상을 했다. 예언서에는 세상이 파멸할거라 되어 있지. 그 징조가 바로 너야. 세느카. 너 같은 종자.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 있을 수 없는 종자지 왜냐하면 우리가 씨를 말려버린 종자거든."

-

"그 무,무슨???"

"하하핫. 어쨌든 네가 세상에 나타났고 우린 그 예언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지. 그건 곧 네가 우리들을 죽일 저승사자란 말인데. 그렇다는 말은나 말고 다른 기가스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어? 그래서 널 필요로 했던 거야. 바로 동료이자 형제인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

"어떻게 그런."

"왜냐면 내가 살기 위해서지. 으흐흐흣."

카발리에레는 친절하게 가르쳐주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런 카발리에레를 쥬데카가 비웃었다.

"후훗. 신이라더니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신이라. 멋지군. 다른 자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고 서로 미워하는 우리들. 겨우 너희들의 피조물인 우리들보다 더욱 나약한 존재. 그것이 신이었다니."

세느카는 단지 자신을 납치하려했던 의도가 형제들을 죽이기 위해서란 말을 듣고 맥이 풀려버렸다. 아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형제를 죽이기 위해 자신을 노렸단 말인가. 너무 무서운 생각이 아닌가.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기가스를 죽이기 위해서란 말인가 모든 생명이 소중한데. 그들 신의 생명을 죽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명자 운명이 정해진 자. 운명은 겉으로 '아 네! 생명은 소중한 겁니다. 그러니 전쟁도 하지말고 서로 미워하지도 말고 서로 사랑합시다.' 하면서 실제론 신들의 생명을 빼앗도록 결정되어 있는 건가?

세느카가 휘청거리자 세이타르가 다급히 부축해주었다. 카발리에레는 그런 세느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제 대충 알았으니 협력해 줘. 너 하는 행동을 봐서 네 친구들을 살려주든지 말든지 결정하기로 하지 후훗.."

카발리에레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세느카를 부축하고 있던 세이타르과 이카루스가 그의 양손에 빨려들 듯이 끌려갔다. 그 둘의 목덜미를 잡은 카발리에레는 어깨를 들썩이며 비웃음을 흘렸다.

세느카는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고는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형제를 죽이려 하다니. 그것도 자신을 도구로 사용해서 세느카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이 고통을 이겨낼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그때였다. 지켜만 보고 있던 쥬데카가 분노하여 카발리에레에게 공격을 가했다. 카발리에레의 뒤에 서있었기에 분명 이 기습은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쥬데카의 검은 그의 등을 찌르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힘이 그걸 막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타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붙잡고 있는 카발리에레의 팔을 자신의 오른팔로 비틀었다. 아무리 그가 신이라지만 몸은 흉켈리스의 몸. 세이타르의 금속 팔은 이제 더 말하기 귀찮을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으므로 카발리에레의 팔이 부러진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신도 부상을 당하나?

카발리에레는 이카루스를 옆으로 팽개치고는 세이타르를 향해 왼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붉은색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세이타르는 그 엄청난 공격에 자신의 오른팔을 가져다 대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쥬데카는 즉시 몸을 돌려 양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신검 카켄. 그는 이미 무념의 경지를 넘어서 검기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조화경의 수준이었다. 쥬데카의 검이 카발리에레의 다리를 자를 듯 '시우웅' 하면서 베어졌다.

카발리에레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검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쥬데카는 검을 놓치며 뒤로 10미터 가량 굴러갔다. 카발리에레는 자신의 다리에 약간의 검상을 만들어낸 쥬데카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난 너희들같은 조무래기들이 상대할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말한 카발리에레는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바로 치료해버렸다.

드라시안이 사용했던 바로 그 권능이었다. 뭐 신이 자신의 권능을 남발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순 없겠지.

카발리에레는 분이 덜 풀리는 듯 다시 세이타르와 이카루스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또 부상당한 세이타르와 이카루스가 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세느카는 쥬데카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는 카발리에레를 노려보았다.

카발리에레는 그깟 칼이 자신에게 무슨 위협이 되느냐는 표정으로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게 나 때문인가요? 헤켈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 그리고 카루이안이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것.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 그게 모두나 때문인가요???"

-

"모두라곤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것은 너 때문이라 할 수 있지. 뭐. 계약을 어긴 카안드리아스의 잘못도 있지만"

카발리에레는 아까와 다름없이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계약?

"도대체.. 그 계약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

"후훗.. 우리의 유희를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느냐하는 대목이지. 뭐 몇백년간에 걸쳐서 하다보니 다소 변질되고 끝낸 파기 되었지만. 후후훗.."

"결국 이 모든 것의 정점은 바로 저군요. 제가 있으므로 해서 당신과 그들이 서로 증오하게 되었고.서로 살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려 하는거군요.

결국 나 때문에."

-

"후후훗. 세상은 파멸해도 한 명은 살아남는다. 우린 신이야. 신이기 때문에 세상은 다시 재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명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이 모든게 무의미해지겠지."

"그렇군요 정말 모든 것이 무의미하군요 살아 있다는 것조차도."

세느카는 그 말과 동시에 쥬데카로부터 받은 검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순간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런 미친XX!!"

그 모습에 카발리에레는 세이타르와 이카루스를 내팽개치고 세느카에게 달려갔다. 쓰러진 그녀는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지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세이타르와 이카루스도 놀란 나머지 재빨리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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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슬렌더도 어느덧 50편째가 되었네요. 이제 한 30편만 더 연재하면 완결되는군요...... 아웅..... 빨랑 연재해야징. ^^; 자살을 선택한 세느카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많은 코멘트 바랍니다. 맞추시는 분께 상품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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