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72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72
[기가 슬렌더] -41- 라케프 한 푸조(라케프 노인의 비밀....) -라케프 한 푸조(라
케프 노인의 비밀.....)-
얀의 상처는 아크바레이의 빠른 응급처치 덕으로 금새 회복될 수 있었다. 단 하루 병원신세를 졌을 뿐인데 외관상으론 거의 멀쩡해 보였다. 얀이 정신을 차린 것은 입원한 다음날이었다.
얀이 깨어나기 전 아크바레이와 카인등은 HDTV 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느라 혼났다. 뉴스에는 '헤켈들의 대규모 도발' 이라는 대주제로 어제 발생한 4개도시의 헤켈 침공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이주계획을 진행중이던 2지역구는 물론 1지역구의 로레인시도 철저하게 파괴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전쟁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막상 바라고 바라던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들이 전쟁을 대신 하겠지 하는 바램이, 시체들로 도로를 가득 메운 페허가 된 전경 때문에 공포로 바뀌었던 것인가?
전쟁론 이제 엎질러진 물이다. 헤켈들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고 다소 준비가 소홀했지만 어느 정도 대안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오와 지크프리드의 전략은 바로 실시되었으며 2지역구의 이주계획은 '클론 리모델링' 을 가능한 한 실시하되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도시를 그냥 포기하도록 조치했다.
마테리온이나 다른 지역구 의원들도 유연성 있게 대처하여 2지역구의 주민들은 하루사이에 거의 대피를 완료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1지역구의 동부와 남부, 3지역구의 남부 방어시스템은 더욱 확장 운영되고 있었다.
비록 적의 기습으로 인한 피해가 막대했지만 그로 인해 그야말로 3국체제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바레이와 카인은 헤켈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얀에게는 애써 전쟁이 발발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안정이 중요했다.
처음 눈을 뜬 얀이 한 말은 놀랍게도 라케프 일행의 안전을 묻는 말이었다.
"아크바레이. 라케프씨는. 그들은 어찌 되었니?"
-
"선생님 그분께는 아직 연락이 없어요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길이 없어요 게다가 2지역구는 어제!! 아 아니에요"
아크바레이는 어제 2지역구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을 할뻔 했다가 다급히 얼버무렸다. 얀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큰일이구나.. 그들은 이미 우리가 연구소를 파괴하러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분명 위험에 빠졌을게다. 그래서 연락이 없는지도 몰라."
-
"아뇨.. 그렇지 않을겁니다. 파인리히 그 녀석은 쉽게 속아넘어갈 녀석이 아니에요.
그리고 마테리온시장이 보내준 지원군들도 있었고."
카인이었다. 카인은 전적으로 파인리히를 신뢰하는 듯 보였다. 처음에 그를 강도로 오해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얀은 그런 카인에게 애써 웃음을 지으려했지만 너무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함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지오 바로 그가 말일세"
-
"그 작자가 직접 말인가요? 선생님?"
"그래. 지오가 그랜드 포스 오너에 필적하는.
아니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에 그저 그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우리가 연구소를 파괴했어도 소용없는 짓을 한 것이었을게다."
-
"그게 무슨 소린가요?"
카인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얀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와 싸우는 도중에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포스 스트렝스 플랜에 대한 말을 꺼낼때부터 뭔가 꺼림칙했는데 난 내가 했던 모든 연구에 대한 자료를 모두 재단에게 보고했다. 그것은 다른 연구소들도 마찬가지 였을거야 그 뜻은 재단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연구든 재개할 수 있을거란 말이지. 그것에서 번뜩 떠오르는게 있었다.
포스 스트렝스 플랜은 도중에 사고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던 연구였다. 난 그것을 재단에서 위험하다고 중단시켰을 때 다소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 찬성했단다. 그런데 그들은 그 실험을 중단했던게 아니었어 보다 큰 가능성을 발견하고선 자신들의 주도하에 실험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J 라는 괴물을 모델삼아.."
-
"그럴수가. 그렇다면 우리가 연구소를 파괴했어도 그들에게 그 연구실적이 있는한 어디서든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렇단다."
얀은 지오가 '네 공이 컸거든' 하는 말에서 이 모든 것을 유추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추측은 정확한 것이었다. 지오는 포스 스트렝스 플랜에서의 놀라운 힘을 느끼고는 그것을 얀 모르게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였을 때 자신을 직접 실험대상으로 사용하여 그런 놀라운 힘을 얻은 것이었다.
"지오란.. 녀석은 분명 두려워 할만한 존재다.
포스 오너의 능력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그의 냉철한 두뇌가 더욱 무서운 것이다. 언젠가 그와 다시 겨룬다면 크게 낭패할지도 모르겠구나.."
-
"아뇨. 그런 작자는 살려둘 수 없어요!!
반드시 우리가 이겨야 한다구요."
"그래. 이제 좀 힘이 나는구나 그런데 코로니스 그 친구는 어디갔니?"
-
"어? 그러게. 안보이네."
카인과 아크바레이는 코로니스가 오늘 갑자기 안보이는 사실에 다소 꺼림칙했지만 크게 따져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난 지금 그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오늘 안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될거다..
그나저나 라케프 일행이 너무 걱정되는구나.
그들도 우리처럼 함정에 빠져서 위험했을텐데 연락이 안되니"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요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죠"
"알겠네 카인."
얀은 그렇게 말하고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코로니스들이 갑자기 말도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나 라케프들에게 연락이 없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정보가 유출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막막했다.
'마테리온은 믿을만한 작자가 아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야.. 코로니스들은 분명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케프씨가 무척 걱정되는군.. 그쪽의 전력이 우리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인네의 불같은 성격이 내심 걱정되는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지오가 우리의 공격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냐는 거군.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우리 중에 정보를 유출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
얀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니스같은 부하를 둔 마테리온이 재단에 그런 정보를 가르쳐 줬을리도 만무했다.
얀에게 부담주지 않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숨긴 카인과 아크바레이는 다소 마음이 복잡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 그들의 책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묘한 책임감을 느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글랜시아시 외곽 노후된 역사
한때 괜찮은 교통수단으로 각광받았었던 철도는 이젠 다 녹슬어 그 형체마저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역 뒤편에 조그만 폐가 세명의 남녀가 누워있었다. 약간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얼굴만 빼면 모두들 크게 다친곳은 없어보였다.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왔다.
온 몸을 천으로 칭칭 감아서 도저히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던 그 사내는 눈 부위만을 내놓은채 물통을 들고 다가왔다.
컵에다가 물을 조금 따른 후 세명의 남녀의 입술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물이 그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두들 목젖이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잠시 후 세명의 남녀중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노인이 눈을 떴다. 그 노인의 표정은 아직도 공포에 질린 듯했고 자신의 모습을 다급히 바라보며 살아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이었다.
"대.. 대체.."
-
"움직이지 마십시오 당신은 극심한 내력 소모로 인해 내상을 입었습니다."
"아!!! 그렇구먼. 그 폭발에서 살아남기 위햐."
그 노인은 바로 라케프 한 푸조였다. 라케프는 미얀과 함께 파인리히를 부축해 도망치려는 그 순간 엄청난 섬광에 휩싸이고 말았다.
갑자기 발생한 일이라서 보호막을 형성하는게 다소 늦었지만 자신의 모든 매너 포스를 끌어내어 폭발을 견뎠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론 5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안 그는 공포에 휩싸인채 정신을 잃었었다.
죽는줄로만 알았는데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급작스런 매너 포스의 사용으로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라케프는 괴인의 말에 따라 움직이려던 것을 멈추었다.
"고럼 워쩌케.. 우리가 살았당가요?"
-
"당신들이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말하셨습니다."
"도대체. 누가!!!"
-
"곧 그분을 만나게 될겁니다. 그분은 그 잔해들을 살피기 위해 잠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말 놓으십시오 기가스의 후예여"
"뭐시오? 기가스으 후예?"
- "전 카자마 에리히 라고 합니다. 그냥 카자마라 불러주십시오"
카자마는 대답을 회피하고는 파인리히와 미얀의 입속으로 계속해서 물을 조금씩 붓고 있었다. 라케프는 아무래도 카자마가 말한 그 분 이란 존재가 그들을 구출해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런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단 말인가 그가.. 그가.. 신이 아니라면.'
라케프는 갑자기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랜드 포스 오너라 해도 그런 폭발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그랬고 그 어느 누구도 견딜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제이드라 해도말이다. 그런데 그런 폭발에서 3명이나 되는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카자마의 노력이 성과가 있는지 파인리히와 미얀도 눈을 떴다. 아무것도 한게 없는 미얀은 얼굴이 그을린 것을 제외하면 가장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파인리히는 라벤더와의 혈전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가 진정 고통스러워하는 사실은 몸의 상처로 인한 것이 아니란 것을
"으메 일어났당가 파인리히 미얀처자 그랴 상태는 어떤가..잉?"
-
"전 괜찮아요. 할아버지!! 파인리히!! 어때요?"
"온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한것만 제외하면 저도 괜찮아요.. 어? 그러고 보니 내상이..
갈비뼈도???"
파인리히는 자신의 갈비뼈가 제자리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라벤더의 공격을 쉘리아드로 막고 벽에 부딪혀 쓰러졌을 때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라케프와 타렌이 그를 놓고 줄다리기를 할 때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갈비뼈가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댁의 상처는 저의 주인님께서 특별히 신경써주셨습니다."
카자마였다. 라케프는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을 파인리히와 미얀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래봐야 카자마와 그의 주인이 그들을 구출해 줬을거란게 다였지만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폭발이 일어났죠?"
-
"제이드.. 그 녀석이구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의 행동이 뭔가 꺼림칙한게 있었구먼. 누군가 배후에서 일을 꾸민게 틀림없당께. 마치 준비된 듯한 작전이었응께.."
"그럴수가.. 그가 염동법인지 뭔지 사용해서 작전을 정공법으로 바꾸자고 했을때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
"이미 늦었응께 신경끄더라고.."
파인리히는 나중에 반드시 이유를 밝혀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 언뜻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우로페는. 그녀는 살았을까 그런 엄청난 폭발에서'
미얀은 파인리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젠 그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정도로 깊어진것 같았다. 미얀도 한 여자로서 파인리히에게 호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미시케를 제치고 어떻게 해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파인리히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 또 파인리히를 보며 더욱 슬퍼할 미시케가 생각나자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옴마? 미얀처자!! 지금 살아나서 기뻐서 운당가? 신기한 일일세 그려 터프 우먼 빠워 미얀 처자가.. 울다니"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요? 전 멀쩡하다구요!!! 에잇!!"
미얀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아니면 터프한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듯 누워있는 라케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무리 무공으로 단련된 신체였지만 그건 미얀도 마찬가지 아닌가.. '퍽' 소리와 함께 라케프는 신음을 흘렸다.
"음메.. 워째.. 노인네를 팬당가.
노인네 살리시오. 노인네 살리시오.."
-
"자꾸 소리치면 한 대 더 맞을 줄 아세요!!!"
"하핫. 미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군요?
당신은 그 모습이 가장 보기 좋아요."
파인리히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미얀의 볼이 불그스레 변했다. 라케프는 계속해서 엄살을 떨었지만 그다지 기분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카자마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보면서 왜 자신의 주인이 그들을 살려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순수함..
'저들이 가진 힘이란 게 그것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한 소년의 그림자가 역사를 비췄다. 아무도 모르게 등장한 그 그림자의 주인은 천천히 뒷편의 폐가로 향했다. 그는 다름 아닌 카에살레아 폰 발더스였다.
카에살레아는 방금전까지 본 광경에 치를 떨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작정을 하고 한 지역을 파괴시킨 듯 보였다. 글랜시아시에서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던 생체공학연구소 부지가 완전히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움푹패인 모양이 마치
'마치.. 소형 수소폭탄이 터진 모양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잔인한 짓을 한단 말인가.'
카에살레아는 전처럼 파인리히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저번에는 미얀의 도움으로 그가 쉽게 탈출했기에 나설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라벤더라는 괴물을 상대로 여지없이 지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위험이 있을줄은 몰랐다.
거대한 폭발 물론 연쇄적인 폭발로 하나의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낸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 안의 모든 생명체를 재로 만들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에살레아는 라벤더와 싸우는 파인리히의 모습을 원안(遠眼)의 법(法)으로 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그들이 섬광에 뒤덮히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라케프란 노인이 몇초나마 그들을 보호할 보호막을 형성했기에 카에살레아가 늦지 않았던 것이다. 카에살레아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다급히 그들을 지금의 역사 뒤 폐가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후우 다시 한 번.. 그런 일을 겪을순 없어.'
카에살레아는 뭔가 엄청난 슬픔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것을 느꼈다. 온 인류에 대한 고통. 그 죄악. 그것은 자책감이었다.
파인리히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 나서 다시 연구소 부지로 돌아간 카에살레아는 단 한 명의 생명체도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치를 떨었다.
비록 자신이 오래전에 봤던 참혹함보다는 그 규모가 훨씬 작다 하겠으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그것도 인간 자신이 자행한다는 사실에 분개할 뿐이었다.
'단 한 명의 생명체도..'
카에살레아가 라케프들에게 다가오자 라케프는 겨우 몸을 추스려 일어섰다. 파인리히와 미얀도 다가오는 그 존재가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란것을 알았는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가오는 자는 어린아이였다.
그것도 아주 곱상하게 생겨 이쁘다는 소릴 많이들을 법한 아이였다. 하지만 카자마가 급히 허릴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에 그가 말한 주인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깨어났습니다. 주인님"
-
"흠. 될 수 있다면 그들 눈에 띄지 말아야하는데.."
카에살레아는 방금 전에 본 너무도 처참한 광경에 그들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그들의 목숨은 구해주더라도 될 수 있으면 그들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카에살레아의 모습을 보았고 뭔가를 얻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바라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이대로 사라져버리기엔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저희를 구해주셨나요?"
파인리히의 질문이었다. 카에살레아는 카자마 이외의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었다.
한 번 세느카와 잠시 어린애인척하며 몇마디 주고받은 적은 있었지만 세느카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카에살레아는 다소 당황한 듯 카자마를 불러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리곤 그에게 뭐라고 속삭인 후 다시 파인리히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려고 했을까? 카자마가 대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
"당신은 도대체 워떤 존재인감유?"
"그건 말할 수 없으시답니다."
이번에도 카자마가 대답을 했다. 그제서야 파인리히일행은 그가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해낼 능력이라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말을하기 싫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릴 구해줬죠?"
-
"그건 당신들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그 곳에 우리말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나요?"
파인리히였다. 미얀은 그 질문이 의미하는것을 잘 알았다.
바로 아우로페에 대한 생사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카에살레아는 직접 고개를 흔들어 부정을 표했다.
파인리히는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쫙 빠져나감을 느꼈다. 최후의 순간에는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 편하게 보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되었는데.
그녀는 편하게 떠났을텐데. 왜 마음이 아픈건지..
"근디. 날 보고 기가스으 후예라고 하셨는디 무슨 뜻이당가요?"
라케프의 질문에 카에살레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리곤 카자마를 통해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언젠가. 그를 만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만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주인님께서 불편해 하십니다."
카자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릴 숙여 인사했다.
라케프들은 더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목례로 답했다.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땐 이미 그 자리앤 아무도 없었다.
사실 라케프와 파인리히는 카에살레아가 세느카를 납치했던 그 거한과 꼬마라는 사실을 몰랐다. 라케프는 그 당시 부상당해 정신을 잃고 있었으며 파인리히는 호크안에 있다가 그가 떠날즈음 카인을 구하기 위해 나왔으므로 카에살레아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말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자기 자신을 저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것보다도 카에살레아 자신의 바램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견딜 수 없었다. 폐허가 된 연구소 부지를 보면서 다신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다고 다짐한 그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시급한 일이 있었다. 그건 그가 이 모든 일을 엮은 이유이자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카자마와 그의 주인이란 자가 사라져버리자 라케프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놀랄만도 했지만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이유는 뭘까..
라케프도 카자마의 주인이란 자가 텔레포트를 사용할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정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자 깊은 존경심이 생겼다.
"그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인게 틀림없구먼."
- "그래요 일단 돌아가도록 하죠 미시케가 걱정하겠어요"
파인리히의 말에 미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미시케를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미시케가 머물고 있던 숙소에 도착한 파인리히들은 다행히 미시케에겐 아무런 일이 없음을 알았다.
대폭발이 제이드에 의한 것이었지만 다행히 미시케는 건드리지 않았다. 미시케는 일행들이 연락이 없다가 하루만에 돌아온 것을 보고는 목이 메이는지 눈물이 나는건지 훌쩍거리면서 일행을 반겼다.
"파인리히!!! 너무 못됐어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느냐구요!!"
- "진정해요.. 미시케 연락못한 것은 정신을 잃고 있었기때문이에요"
파인리히는 미시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시케는 그 말도 안돼는 존재에 대해 몇번 질문을 하고는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연구소 대폭발 사건은. 어제 일어난 다른 사건에 비하면 뉴스거리도 아니었다구요"
미시케는 일행들이 걱정되어 방안에서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HDTV 로 나오는 뉴스들은 전부다가 헤켈들의 침공에 대한 것들이었다. 너무도 참혹한 광경에 미시케는 제대로 화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글랜시아시의 대폭발 사건이 보도 되었다.
처음에는 헤켈들의 공격이라고 판단했는지 대대적인 보도를 하던 방송국에서는 일반 폭발 사고로 일단락 지어버린 눈치였다. 허기사 반경 10Km 이내의 생명체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니.. 증인이 없는 것도 이유였다.
미시케는 연구소 폭파 작전이 성공한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행들에겐 그 정도의 폭발을 유도할만한 폭발물이 없었다. 단지 조그만 건물 한채를 박살낼 정도의 폭약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약간 이상했는데 연락이 없자 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미시케의 설명에 모두들 전쟁이 일어난 것을 알고 놀라는 눈치였다. 아무리 전쟁론이 선포되었다고는 해도 너무나 빠른 시기가 아닌가.. 그것도 인류가 먼저 선제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기습을 당해 4개의 도시를 무참히 짓밟혔으니..
다른 종족과 싸워본 적이 있는 파인리히와 라케프였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온 몸이 저절로 떨리기까지 했다. 그런 총공세는 역사상 처음이었다. 지금껏 말하는 헤켈대전이나 세이렌 대전은 한 장소로 국한되어있었던 소규모 도발이었던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큰일이구먼.. 연구소 파괴는 이래선 아무런 의미가 없구먼. 재단에서 워떤 일을 하건간에 일단 다른 종족으로부터 안전해야만 그들을 막을수가 있는거시 아닌감.."
-
"맞아요.. 할아버지 정말 큰일이네요. 어쩌면 재단에서 바라는 쪽으로 일이 진행된 건지도 몰라요."
"잉? 워째서 그렇게 생각한당가?"
파인리히의 대답에 라케프가 머릴 긁으며 물었다.
"그들이 가진 힘을 생각해보세요 어쩌면 이번 전쟁발발로 인해 나같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정당화시킬지도 몰라요. 언론과 시민들에게 신병기라고 속여서 말이죠 물론 다른 종족과 유전자 재결합을 해야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
"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전쟁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하는 건지. 아니면이 전쟁을 이길 힘을 가진 재단을 공격해 그들을 무찔러야하는 건지.."
-
"흠. 이건 아주 결정하기 힘들군요.."
파인리히의 한숨섞인 말에 미얀이 대답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떤 결정도 옳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모든 방어시스템-광선형 돔 결계-이라던가 공격 유닛-가오사이보그-등과 같은 것들은 그 어떤 것도 재단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재단을 공격한다면 필히 전쟁에 영향을 미칠테고.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재단이 하는 짓들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시국을 재단이 이용하려 든다면 더욱 비참한 일들이 자행될지도 몰랐다.
"어려워..아주 어렵구먼"
-
"얀 박사님과 상의해보는게 어떨까요?"
"흠. 그거시 낳겄구먼.. 아차!! 얀은 성공했는가 모르겄구먼. 연락한번 넣어보드라고."
라케프는 이제야 얀 일행의 일이 생각났는지 파인리히에게 급히 연락을 시켰다. 파인리히가 얀에게 MTM 을 걸자 신호음이 몇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얀이 받았다.
얀의 얼굴도 많이 헬쓱해져 있었다. 또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이 작전이 실패한 듯 보였다.
그것은 라케프 일행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얀도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파인리히였다.
"박사님 괜찮으신가요? 모두 무사한가요?"
-
"우린 모두 무사하다네. 자네들은 어떤가?
무척 걱정했다네. 사실 모든 것은 함정이었다네.."
"옴마? 그걸 자네도 안당가? 사실 제이드란 녀석이 우릴 몰살시키려고 했구먼?"
-
"네에???"
얀은 라케프의 말을 듣고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라케프는 얀의 반응이 약간 이상한 것을 보고 그 함정이란 의미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드가 배신을 했단 말입니까? 라케프씨?"
-
"그렇구먼 혹시 그짜께로 간 코코넛인가하는 작자는 별일 없당가? 우린 제이드란 놈이 폭발물을 설치해서 다 죽을뻔 했구먼."
"그럴수가.. 코로니스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의 일행들과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 "다행이구먼"
"전 재단에서 우리의 공격을 눈치채고 있었다는것을 말했던 겁니다. 함정이었거든요 재단의 함정보다도 마테리온의 숨은 함정이 있을 줄이야.. 그건 몰랐습니다."
-
"어쨌든 정말 다행이에요. 우린 사실 죽은 목숨이었거든요.."
파인리히는 비록 연구소는 파괴했지만 제이드로 인해 죽을뻔한 위기에 닥쳤으며 그때 카자마와 그의 주인을 만나 구출된 얘기를 얀에게 했다. 얀은 그 설명을 들으면서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뭐라? 왜 그려? 얀 선상. 무슨 일이감?"
-
"그의 생김새. 그가 데리고 있던 거한.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세느카를 납치했던 바로 그들!!!"
"뭐라구요!!!"
"뭐시여???"
얀은 그렇게 말하고는 기억력을 돌이켜보았다.
그의 기억력은 그 당시 파인리히와 라케프가 그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랬군요 이제 기억납니다. 그때 라케프씨는 부상으로 정신을 잃었었고 파인리히 자네도 완쾌되지 않아서 호크 안에있었지.. 그래서 몰랐군. 라케프씨. 라케프씨가 말한 그들은 바로 세느카를 납치한 그들입니다. 우리가 꼼짝없이 당해야했던"
-
"그 그럈구먼. 내도.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만 놀랐을뿐.
설마 그때 그 엄청난 존재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먼.. 이제쪼까 이해가 되기도 하는구먼."
"흠."
-
"그랬군요..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빨리 떠나려고 한거군요. 하지만 왜 우릴 구해주었을까요?"
파인리히는 얀에게 말한 것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그것은 라케프에게 한 질문이었다.
라케프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머리가 아픈지
"글씨 모르겄구먼 우리가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거라고 그러지 않았는감? 그래서 구해줬다구"
-
"그건 핑계에 불과해요!! 세느카를 납치한 자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그래도 우리 생명을 구하지 않았는감 일단 진정해보드라고. 우리가 결정하려던것은 그 문제가 아니지 않은감.."
-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군요 그들이 누구이며 왜 그런 일들을 해왔는지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하죠 지금 알아내고 싶어도 전혀 실마리가 없기도 하구요 그래도 다행이군요 그쪽 연구소만이라도 파괴했으니..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을테지만."
"잉? 워째 소용없당가? 우린 목숨을 걸고 그럈구먼?"
얀은 라케프의 질문에 지오란 녀석이 어떻게 그랜드 포스 오너의 힘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라케프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다시 질문하였고 얀은 차분하게 대답해주었다.
라케프는 그런 가공할 실험-포스 스트렝스 플랜-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잘난척 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연구소는 그저 재단의 외부적으로 드러난 몇 안되는 연구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얀의 말대로 연구소 파괴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랬구먼 그 지오란 녀석이. 함정을 판 것이었구먼 그래도 우리으 작전을 어케 알아채서 그랬을꼬"
-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그랜드 포스 오너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것을 알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중에 스파이가 있을리도 만무허구 말여.."
라케프가 그렇게 말하면서 미얀을 살짝 쳐다보니 미얀이 괴기스런 표정을 지으며 슈퍼 캐논 3단 크래쉬 메가 펀치를 날렸다. 라케프는 미얀이 그렇게 대응하자 잠시나마 의심한 자신을 책망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중엔 없을 거시여 아무래도 마테리온 그 친구 쪽이 구린 것 같은디"
-
"마테리온 시장은 재단에 상당히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라케프씨를 해치려 했으니 한 번 용의자로 생각해 볼수도 있겠죠.."
"그려. 흠 그럼 그 짝은 워떤감?"
-
"그 짝이라뇨?"
"아.. 글씨 그거시 말여.. 응 그려 재단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하지 않았는감 그 친구는 믿을만한가 이말이제."
-
"물론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아주 아끼던 분이 직접 천거해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그랬을리는."
"아니여 한 번 생각해보드라고. 우리의 작전을 지휘했으니 우리으 작전을 가장 잘 알것이 아닌감.?"
-
"그렇군요. 목숨을 걸고 일을 진행시킨 우리들보단 뒤에서 지켜본 자들이 더욱 가능성이 높겠죠"
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소 씁쓸한 표정이었다.
쟈코모란 자를 만나봐서 알지만 결코 남을 속이거나 함정에 빠뜨릴 위인은 아니었다.
"일단 만나자고. 이번 헤켈 전쟁에 대해서 상의할것도 있고 앞으로 일에 대해서도"
-
"네? 전쟁이라뇨???"
"옴마? 아직 모른당가? 헤켈들이 전쟁을 일으킨 사실을!!"
-
"그럴수가!! 전 어제 병원에 입원해서 오늘에서야 깨어났습니다. 이런 카인, 아크바레이!! 이 녀석들. 내게 한마디도 안해주다니!!"
"잉? 그거시 사실인감??? 그럼 우리가 티탄시로 갈텡께 그들에게 상황을 물어보드라고"
-
"알겠습니다. 서두르십시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시간의 개념이 중요한 때입니다."
"알겄구먼.. 금새 달려감세"
라케프가 MTM에서 사라지자 얀이 소리쳤다.
"카인!!! 아크바레이!!!!"
라케프와 파인리히,미얀,미시케는 바로 라케프의 호크에 탑승했다. 물론 전쟁이 발발해서 글랜시아 시 대부분의 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간 것도 이유가 되었지만 얀과 급히 상의해야만 했다.
파인리히는 호크를 타고 공중에 떠오르자 지상으로 보이는 상막한 광경에 주먹을 쎄게 거머쥐었다. 누군가 맛있게 생긴 파이의 알맹이만 파먹은듯한 모습의 땅은 바로 폭파된 연구소 부지였다. 저 곳에서 죽었을 아우로페를 향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인리히'
"헉!!!! 아우로페!!! 어디. 어디에."
파인리히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것은 환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옆에서 파인리히를 바라보던 미시케는 파인리히가 새삼스럽게 아우로페의 이름을 불러대자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미얀은 미시케에게 연구소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까 하다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라케프 할아버지!! 이제 이 호크 제꺼죠?"
-
"잉? 뭐라 했당가? 워째 미얀 처자것인감???
미얀 처자가 뭘 했는감??"
"와 이제 와서 발뺌하기에요? 제가 연구소 중앙제어본부까지 안내했잖아요!!"
-
"그것땜시 성공한게 아니제. 워째 그렇게 치사하게 군당가???"
"말도 안돼!! 누가 치사한데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 남자가 돼서 그것도 나이 먹은 어른이 되어가지고. 약속도 안지키나요?"
-
"뭐 뭐.. 뭐시여??? 나이 쪼까 먹었다고라고라!!"
"그럼 안먹었나요? 빨리 도장 찍어요!! 싸인도 괜찮아요!!"
- "음메 이건 완죤 날강도구먼"
"계약은 계약이에요 할말 없죠?"
-
"으.. 이거 완전 코껴부렀으야..
파인리히 워떠케좀 해보드라고.."
라케프가 파인리히를 보며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파인리히는 미얀의 폭력적인 공격이 두려워 그 시선을 외면하고 말았다.
사실 미얀이 라케프 뒤에서 주먹을 들어보이는 시늉을 한 것도 원인이었다. 라케프는 파인리히가 시선을 외면하자 최후의 보루로 미시케를 삼았는지 미시케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라케프 할아버지 그냥 손녀한테 물려주신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주세요. 그녀 정도면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허거걱.. 유산??? 난 아직 멀쩡허구먼 왜 내가 유산을 줘야하는디? 잉? 이해를 못하겄구먼!!!"
"너무 화내지 마세요!! 몸에 해로와요!!
자자자.. 빨리 싸인하세요."
-
"흑흑내는. 실지로 대빵 불쌍한 영감이구먼. 흑흑흑 가진것도 없고.
피붙이도 없구먼 흑흑 이래도 안봐줄껴?"
라케프는 짐짓 눈물을 떨구는 표정을 지으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미얀은 하마터면 그 수법에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미얀도 보통 내기가 아닌지라 단호히 손가락을 흔들었다.
"노노노노노!!!(No!!) 어림없죠 정말 이렇게 째째하게 구시기에요? 이깟 호크 때문에 뛰어난 라케프 할아버지의 인격을 송두리째 버릴 작정이시냐구요?"
-
"잉? 나으 인격??"
라케프는 미얀의 고난도 자존심 건드리기 작전에 걸려들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나으 인격은 겨우 이 깟 것에 얽매이지 않는 그 뭐시냐. 청렴함을. 근본으로 하여. 그러니까. 참 본받을만 하단 거시지 그랑께거시기 하여.."
-
"싸인 한다는 뜻이죠?"
"■.■ 그랴"
라케프는 끝내 싸인을 해주고 말았다. 그래서 라케프의 호크는 실질적으로 미얀의 것이 되어버렸다. 미얀은 호크를 얻은 기쁨도 있었지만 잠시나마 기분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 파인리히와 미시케를 웃게 만들었다는것이 더욱 기뻤다.
'후훗. 내가 이런 일을. 호호.
나도 변해가나봐.'
미얀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왠지 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뭔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1지역구 로레인시. 소형도시였지만 헤켈의 아크로나딘 산맥과 인접해있던터라 그 방어력은 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큰 것이었다. 광선형 돔 결계는 단 한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아무리 100여개체가 갑작스런 기습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한시간도 버티지 못했는지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광선형 돔 결계의 방어력은 아주 믿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알지 못했다. 로레인 시를 공격한 마타 륭의 주작단이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바로 3대현자중 가장 노련한 드라시안이 이끄는 오펜션 조력단 이란 사실을.. 드라시안의 조력단은 단시간동안 마타 륭의 주작단의 공격력을 거의 배가시키며 광선형 돔 결계의 파괴를 주도했다.
사실 광선형 돔 결계는 그것만으론 완전한 방어시스템이라 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 지원군이 오는 시간을 버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을 안 마타 륭의 주작단은 가장 방어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 로레인시에 드라시안의 조력단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광선형 돔 결계는 미처 지원군이 오기 전에 파괴되었고 그로 인해 로레인 시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마치 폐허로 변해버린 시가지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헤켈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헤켈들은 다른 곳으로 진지를 이동시킨것 같습니다. 전선이 1지역구의 남부와 2지역구의 중남부로 확대되었습니다. 보다 낙후된 2지역구쪽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
""
보고를 들은 사람은 다름 아닌 카에살레아였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카자마는 지금껏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의 주인이요 몇일새 갑작스레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카에살레아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황량한 시가지의 모습을 보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모든 힘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카자마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카에살레아의 손은 꽉 쥐어진채 엄청난 힘이 모아지고 있던 것이다. 카에살레아는 자신이 순간적인 분노로 잠시 이성을 잃을뻔했음을 깨닫고 손에 모아진 힘을 조심스레 날려보냈다. 하마터면 그들과 똑같아 질뻔하지 않았나..
'너무 처참하다.. 오래전. 그 때보다도 더'
카에살레아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몇십개의 도시가. 몇 개의 국가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 애썼다. 그 뒤의 세상은 온통 황량함뿐이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에 비해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은 온통 인간들의 시체들로 산을 이루고 있으며 붉은 피는 대지를 적셔, 그 대지는 태양빛을 받아 더욱 붉게 보였다.
온통 부숴진 건물들이며. 도로들.. 곳곳에서는 알 수 없는 연기들이 피어올랐고 시체들의 썩어가는, 속이 뒤집히는 비릿한 냄새들도 코를 찔러왔다.
차라리 지옥이라도 이곳보단 낳았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단 말인가..
카발리에레 어째서 네 결정과 그분의 예언이 왜 결국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이젠 스스로의 존재 가치마져도 뭉개버리려하는 것인가.. 차라리'
카에살레아는 더욱 더 세상을 살아가기가 싫어졌다.
이런 날이 오리란 것을 알고 그렇게 막고 싶어 노력했던 그였다. 물론 아직 인류가 멸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작된 이상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자살 카에살레아가 처음 생각한 것은 자살이란 도피처였다.
그도 다른 그 만큼이나 냉정하고 공포스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여린 순수한 마음이란 것이 있었다.
세상의 일에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던 그의 맹세는 이미 오래전에 지켜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자살할 수 없다 아직은'
카자마는 그의 주인의 몸에서 살기가 흐르다가 사라지고 다시 몸을 휘감다가 사라지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다. 뭔가 엄청난 분노를 느꼈고 그것을 참아내는 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주인 그의 주인에게서 '기가스(Giga Slender)' 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주인이 진정 원하는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주인의 말을 이해하기엔 그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의 주인은 분명히 엄청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스스로 죽지 못하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카자마는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었다. 뭔가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사명이 있기에 그는 지금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
"나도.. 알 수 없다.."
"!!"
카에살레아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역겨운 장면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자신은 예언된 자 세느카와 그 예언과 묶인 자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충분히 애썼다.
비록 세이렌 쪽으로 세느카를 넘겨주긴 했지만 그것 또한 그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무언의 직관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만이 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
".."
카에살레아는 세느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세이렌족에게 납치당한 것이 전쟁이 난 지금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언된 자에겐.. 아무리 카루이안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분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한계이기 때문에'
천천히 뒤를 돌아 걸어가는 주인을 카자마가 급히 뒤따랐다. 카에살레아는 천천히 걸어가다가 잠시 한 번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우리의 한계이지만.. 그분의 뜻대로만 되도록 놔둘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고 죽지 못하는 이유다!!'
카에살레아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당위성을 설명하듯 마음속으로 힘차게 내뱉고는 카자마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슬펐던 표정은 다시 싸늘히 식어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로레인 시에서 보이질 않았다.
4지역구 아크로나딘 산맥. 바쿤신전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추한 헤켈들의 외형적인 모습을 봤을땐 언밸런스한 신전이었지만 헤켈들에겐 자랑스러운 건축물이었다.
거대한 바쿤신전 수백개의 방 중 가장 가운데 위치한 가장 거대한 방안에 한 명의 저주받은 운명이 뒷짐을 쥔 채 앞뒤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한 그의 표정은 잠시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흉켈리스 매지드헬.. 그는 천천히 한쪽 구석에 마련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원형의 문양. 바닥에 그려져 있던 반경 10미터가 넘는 거대원은 흉켈리스가 가운데 올라서자 갑자기 수직 상승을 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느려 흉켈리스는 중심을 잃지 않았다.
지상에서 약 5미터 정도 솟아오른 거대원은 마치 물처럼 투명하게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비르수 라 드뮨 대륙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것은 거대한 전략적 맵이었다.
흉켈리스가 2지역구의 뤼캐브린 해협쪽으로 걸어가자 흰색의 화살표가 어디론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라빌노스시에서 약간 북서쪽으로 치우쳐진 오라닌 시를 향하고 있었다.
르부뤽의 백호단이었다. 백호단은 라빌노스시를 철저히 짓밟은 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라닌 시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것이다.
그 옆에는 검은색 화살표가 다크네시로부터 퉁지나시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락켄신의 현무단의 움직임이었다. 흉켈리스가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푸른색의 화살표가 리메논시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갈로디아시를 향해 북진중이었다.
쟈칼의 청룡단의 움직임이었다.
흉켈리스는 그들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괴소를 흘렸다. 오라닌시는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라빌노스시나 리메논시와는 비교되지 않을정도로 거대한 공업도시였다. 그렇다고 방어력이 강할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퉁지나시는 부호들이 많이 사는 만큼 시의 규모는 작아도 그 방어력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락켄신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갈로디아시.. 쟈칼의 청룡단에겐 너무 쉬운 임무처럼 느껴졌다. 호랑이보고 쥐새끼를 잡으라는 격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문제는 붉은색 화살표였다.
1지역구의 로레인시를 철저하게 박살낸 마타 륭의 주작단 생각보다 쉽게 격파하였지만 더 이상 진격이 어렵게 된 상황이었다.
'분명 1지역구의 방어력은 2지역구를 능가한다.
주작단이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기습이라는 이점과 드라시안의 오펜션 조력단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단 말이야.'
흉켈리스는 자신들의 기습을 받고 취한 인간족의 행동에 대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1,3지역구의 전선 방어력은 엄청나게 증강된 반면 2지역구에는 별다른 군사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는 시민들의 움직임만 포착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공격이 2지역구로 집중되었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2지역구의 방어력을 올리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설마 2지역구를 그냥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녀석들은 자신들이 일궈놓은 터전을 쉽게 포기할 놈들이 아니다. 그랬다면 아크로나딘 산맥과 접해있는 도시들이 계속 완강하게 버티지 않았을터'
흉켈리스는 초반에 승기를 잡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약한곳부터 하나하나 격파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타 륭의 주작단은 1지역구 쿼터드시로 향하게 한 후 방향을 돌려 쿼터드 시 동쪽에 위치한 2지역구 발카로스 시를 공략하기로 했다.
작전의 성공여부는 각각의 지휘관들의 몫이었다.
흉켈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자신이 전투를 안 해본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건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처박혀서 지도나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대로 나설수도 없는 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쥬데카의 흑풍 혈마단을 이곳에 둔 상태였다.
'아무리 녀석들이 대단하다 해도 이 산맥의 최고봉까지 기습하려는 생각은 못하겠지 그래도 뭔가 꺼림칙하단 말이야..'
쥬데카는 세느카 납치 임무의 실패로 이번 전쟁에서 후방의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물론 그를 견제하려는 3대 현자들의 물밑 공작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쥬데카의 능력은 다른 4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과거가 다른 헤켈들에겐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흉켈리스는 얼마후면 들려올 승전보를 기대하며 거대한 기둥이 있는 중앙부로 걸어갔다. 하늘을 떠받치듯 높게 솟아오른 4개의 기둥아래 거대한 석상이 서있었다.
흉켈리스는 그 석상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은 후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바쿠듀므 란케'라는 신에게
같은시각 티탄시 시티 홀
강인한 인상의 백미(白眉)의 노인이 그보다 훨씬 작고 늙어 보이는 사내에게 말했다.
"이주계획은 생각외로 잘 진행되고 있더군."
-
"그렇습니다. 마테리온님 게다가 언론에서도 협조를 잘 해주어 여론도 의원장님께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후후훗. 마르스 시장인 베아트리체의 '클론 리모델링'이론은 상당히 괜찮은 것이었네만..
쓰레기 같은 녀석들의 생명까지 구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썩 내키지 않았었네."
마테리온은 다소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있어 못가진 자들은 쓰레기같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게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헤켈들이 공격해 들어왔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런 자들은 살아봐야 다른 이들에게 짐만 될 뿐이죠 후후훗"
작은 체구의 사내.. 게류온 아라고네는 저번 전지역구의회를 통해 마테리온에게 더욱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는 처세술에 능한 자였기에 최대 권력을 구가하고 있는 마테리온의 곁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녀석들이 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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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씀이십니까?"
"그런 쓰레기들의 우습지도 않은 생명을 구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는 자들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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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1지역구 동쪽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남은 빈민들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하지만 그들의 힘이 모여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도우러갔다가 희생되는 사람들의 수 또한 굉장하다고 들었습니다."
게류온의 말에 마테리온은 다소 화색이 도는 듯 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나저나. 에리네 쪽의 상황은 어떤가.."
- "이해할 수 없는 친구입니다. 야망이 큰 친구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약한 구석이 있더군요"
"역시. 그런건가.."
마테리온은 뭔가 생각에 빠진 듯 아무말이 없었다.
게류온은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마도 에리네와의 반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원장님을 믿고 따르던 그가 이렇게 될 줄은."
마테리온은 최근들어 에리네의 행동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에리네는 클론 리모델링의 근본 취지를 잊지 말자고 주장했었다. 그것은 모두 잘 사는 방안이었다. 잘 살던 사람들만 계속 잘 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버리자는 방법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 역시 그런 생각으로 그런 이론을 개발해낸 것이다. 그런데 마테리온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이 나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 했다.
언론들은 이미 2지역구의 80%이상이 이주했고 나머지 20%의 사람들도 곧 이주해 갈 수 있을거라 말했지만 그것은 마테리온들에 의해 조작된 근거 없는 사실이었다.
에리네는 자신이 마테리온을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우리 인류의 힘을 키워 다른 종족으로부터 헤어나오고자 했다. 그래서 3국체제론을 주장했고 전쟁론을 주장했다.
이주계획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낸 것이었다.
이것은 모든 인간들이 타 종족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궁극적인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마테리온은 나아갔다.
"에리네는 지금 무엇을 꾸미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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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접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2지역구로 향했습니다. 정말 할 일 없는 친구죠.."
"흠 정말 아깝군 아까워. 그의 총명함은 내 후계자로 모자람이 없었거늘"
마테리온은 정말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게류온의 눈엔 그것이 에리네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말로 들렸다.
"이대로 두어선 안됩니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대항하려 들지 모릅니다. 의원장님.. 혼란한 틈을 이용하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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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훗.. 역시 자네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만 나도 그 생각을 안해본것이 아닐세. 흠. 그래.. 에리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2지역구 갈로디아 시에 있습니다. 아마 오후 3시경에 헤켈들이 들이닥칠 것이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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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핫.. 인재는 곁에 두었을 때 힘이 되지만 적이 된다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법이지 코로니스들을 이용하게.. 에리네 정도라면 쉽사리 해치울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게류온은 자신의 경쟁자 한 명을 말 몇마디로 제거할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무거워 보였다. 그의 처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였다.
코로니스는 마테리온의 명령을 받고 갈로디아 시로 떠났다. 이번 임무는 될 수 있는 한 조용히 처리하라 하였기에 가오그는 가져가지 않고 부하 셋만을 데리고 갔다.
마테리온이 이번 일에 제이드를 쓰지 않은 것은 코로니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저번에 주었던 암살 계획에서 제이드는 라케프일행을 몰살시키는 공을 세운데 반해 코로니스는 얀일행을 단 한명도 죽일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코로니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레이를 구출한후 라이오네와 함께 아크바레이가 도망치기로 되어있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카인과 얀을 죽이고 나중에 아크바레이와 라이오네를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아크바레이는 도망치지 않고 다시 돌아왔으며 5~6대로 예상했던 연구소소속 가오그는 벌써 증원되어 10대나 되었다. 그렇게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도망치는 것에만 급급했다.
물론 라케프들을 해치운 제이드가 공을 독차지 한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연구소 파괴 작전도 실패하고 얀 암살 계획도 실패한 코로니스에겐 만회할 기회가 필요했다.
마테리온 그 늙은 너구리도 그런 코로니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번 임무를 내린 것이다. 에리네 정도라면 충분히 코로니스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리네는 학자였기에 검술의 달인인 그들에게 당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에리네..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 후환이 될 씨앗은 미리 없애는게 좋겠지.. 후후훗.'
마테리온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