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64화 (64/120)

제 목: 71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71

[기가 슬렌더] -40- 카루이안 폰 발더스(큐탕 쿠 매지그와의 사투!) -카루이안 폰 발더스(큐탕 쿠 매지그와의 사투!)-5지역구(금단의 땅)프레일리아섬 프레제톤타빙산 지하세계 렘노스탑 최상층.!!!!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큐탕 쿠 매지그!!!"

기솔라벨카의 외침에 약속이라도 한 듯 주위는 고요해졌다. 이상한 안개들로 둘러싸여 전혀 앞이 보이질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7대사제들도 경험해보긴 했지만 기솔라벨카만큼 익숙하지는 않았다.

모두들 긴장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브라키온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가 온다. 불멸의 존재가.."

브라키온의 말대로 그들 모두는 엄청난 존재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안개로 인해 전혀 볼 수 없었다.

"쳇 그는 여전히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나보군"

루카누스였다. 기솔라벨카가 지도자로 선출된 이후 큐탕 쿠 매지그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다른 대사제들 역시 루카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루카누스의 비꼬는 말이 듣기 싫었는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행들의 눈앞에 거대한 존재가 서있음을 알았다.

세느카는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큐탕 쿠 매지그란 존재가 신전에서 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모습은 신전에서처럼 정말 거대했다.

키는 파리나타가 소환한 드라쿤 보다도 더욱 커보였다.

하지만 왠지 무척 가냘퍼 보였다. 그리고 세느카의 예상을 뒤엎기라도 하듯 세이렌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세느카는 그가 인간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그 존재는 절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렘노스 탑 최상층의 높이가 엄청나게 높았기에 망정이지 10미터만 낮았어도 큐탕 쿠 매지그는 무릎을 꾸부려야했을 것이다. 거의 5미터에 육박하는 그의 육중한 몸은 그 안의 모든 이들에게 이상한 공포심마져 안겨주고 있었다.

그런 공포심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처음으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그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바로 큐탕 쿠 매지그 인가요?"

- "후훗 바로 네가 그분의 예언에 나오는 세월의 검은돌을 가진 인간이로구나"

세느카의 질문에 불멸의 존재는 인간어로 똑똑히 대답했다. 그의 입에서 인간어가 나왔지만 아무도 의문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는 신이 아니던가 세느카의 용기 있는 행동에 모두들 정신을 차렸는지 파리나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솔라벨카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신이시여."

파리나타는 아직 진위여부가 확실히 가려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마지막에 신이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큐탕 쿠 매지그는 그 거대한 몸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모두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하게도 구름이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진동으로 발생한 산사태 때문이라도 구름이나 아니면 그 엇비슷한 것이라도 생겼어야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최상층에서 지상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한 적이 없는 그들로서는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세느카 역시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뭔가 이상한 그림자가 어려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큐탕 쿠 매지그가 다시 입을 열었기에 그림자를 놓치고 말았다.

큐탕 쿠 매지그는 그런 경치를 보여주는게 목적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는지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 말이 진실일 것이라 생각했느냐?"

-

"!!!"

그의 단호한 말투에 파리나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기솔라벨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솔라벨카가 거짓말을 할 위인이 아니란 것도 잘 알았다. 기솔라벨카도 억울했는지 한걸음 앞으로 나와 외쳤다.

"전 보았습니다!!! '유희..' 당신이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얼 생각하는지!!!"

-

"정말 보았다고 생각하는가?"

"그 그건!!"

큐탕 쿠 매지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아니,단 몇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자신들이 내린 결론에 대한 근거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기솔라벨카의 말대로 단지 즐기기 위해 전쟁을 부추겨 왔다는 것이냐?"

-

"."

"내가 너희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했던것은 이런 현실을 맞이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인간들과 헤켈들의 힘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음을 너희도 잘 알 것이다. 분열된 힘은 하나로 뭉쳐져야만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

"그. 그렇다면 어째서 과거에 그들을 이길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까?"

질문을 던진 사람은 휘페리언이었다. 휘페리언은 자신과 기솔라벨카가 느꼈던 신의 생각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신은 그렇지 않다고 발뺌하고 있는게 아닌가.. 혼돈스러웠다.

"우리 종족의 개체수는 다른 종족보다 월등히 적다.

아무리 우리의 전투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그 피해를 견뎌낼 정도로 우리에겐 큰 능력이 없다."

-

"하지만.."

"우리가 인간들을 공격해 그들을 멸망시켰다고 해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헤켈들이 그때를 노릴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피해를 복구하는데는 엄청난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희도 잘 알 것이다."

큐탕 쿠 매지그의 말에 반 정도는 수긍하는 눈치였고 다른 반 정도는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큐탕 쿠 매지그와 싸우기로 결심했던 마음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듯한 모습들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휘페리언과 기솔라벨카가 보았던것이 그들의 착각이란 것입니까?"

거대한 덩치라면 남부럽지 않았던 락토니즈가 그의 몸을 왜소하게 보일정도로 큰 큐탕 쿠 매지그에게 물었다. 큐탕 쿠 매지그는 천천히 돌아서며 미소지었다.

"그렇다 그들은 나의 마음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큐탕 쿠 매지그의 알수 없는 미소는 그의 승리를 확신하는듯한 미소였다. 그런데 누군가 입을 열자 그 미소가 엷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는 바로 전시안 브라키온이었다.

"당신은 정말 우리들의 신이 맞습니까?"

-

"..!!!"

브라키온의 질문에 정작 놀란 것은 다른 동료들이었다.

아무리 방금전까지 신과 대적하겠다고 생각한 그들이라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무례하구나!! 브라키온!!!"

-

"어째서 전쟁은 시작된 것입니까? 왜 우린 다른 종족과 싸워야만 하는 겁니까?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이유를 정녕 몰라서 묻는게냐!! 세상엔 서로 융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가 그런 것이다. 아니,운명일런지도 모르지!"

큐탕 쿠 매지그의 마지막 말에 세느카는 이상하게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큐탕 쿠 매지그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위선자!!! 당신은 신이 아니야!! 신이라면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운명? 신이라면 그런 운명따윈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나요?

당신은 거짓을 말하고 있어요!! 세상엔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구요? 당신은 다른 종족의 생명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있군요..이제야 알겠어.. 우린 옳았어요. 기솔라벨카.. 휘페리언"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기솔라벨카와 휘페리언을 바라보았다. 기솔라벨카와 휘페리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에 호응하듯 브라키온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아 우린 아까 얻었던 결론을 결코 잊어서는 안돼.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는 것"

-

"그래요.. 그리고 그런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저런 작자는 신이 될 자격이 없어요!"

세느카가 단호히 말하며 손가락으로 큐탕 쿠 매지그를 가리켰다. 그러자 큐탕 쿠 매지그가 광오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그랬나. 난 내 예언된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없던 것이었나.. 하하하하핫.."

큐탕 쿠 매지그의 왼팔이 들려졌다. 그러자 세느카가 큐탕 쿠 매지그쪽으로 빨려들어가듯 날아갔다.

"꺄아아악!!"

"공격이닷!!"

브라키온이 그렇게 외치면서 세느카를 구출하기 위해 달렸다. 아니,약간 공중에 뜬채로 날아갔다.

동료들은 그의 그런 능력을 본적이 없었기에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공격준비를 했다. 방금 전 신의 행동으로 그들은 모두 깨달은 것이다. 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큐탕 쿠 매지그의 손으로 빨려들어가던 세느카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편하게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알았다. 정신을 차린 세느카는 브라키온이 자신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급히 큐탕 쿠 매지그를 바라보았다.

큐탕 쿠 매지그는 예언대로 세느카만이 자신을 멸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지 세느카를 죽이려했었다.

하지만 광마 휘페리언이 엄청난 스피드로 공격해오는 바람에 그녀에게 보냈던 힘을 풀었던 것이다.

휘페리언은 거대한 큐탕 쿠 매지그를 향해 수도(手刀)공격을 펼쳤지만 상대는 역시 신다웠다. 광속과 맞먹는 공격을 당해도 작은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크악!!"

큐탕 쿠 매지그는 마치 귀찮은 파리를 떨구듯 휘페리언에게 가벼운 손짓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휘페리언은 선혈을 토하며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에 모두들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하지만 굴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기솔라벨카가 그의 거대한 날개를 펴서 날아올랐다.

세이렌중 유일하게 날수 있는 자가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다. 그의 거대하고 강력한 날개로 공격하기 위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큐탕 쿠 매지그는 날아오는 기솔라벨카를 향해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가 쥐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너와 휘페리언이 내 생각을 읽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것은 다른 녀석들보다 더욱 뛰어난 너희에게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배신을 하다니!!!"

공중에서 거의 수직으로 급강하하던 기솔라벨카는 큐탕 쿠 매지그의 손에서 쥐어짜지기라도 하듯 온몸이 비틀어지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기솔라벨카마저 당해버리자 모두들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신이고 뭐고 없었다. 동료들을 공격한 괴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드라쿤!!!"

파리나타가 외치자 외형적인 덩치만으론 큐탕 쿠 매지그와 맞먹는 괴물이 튀어나왔다. 드라쿤이 공격을 하기 위해 달려나가자 락토니즈도 그의 스토퍼를 번뜩이며 달려나갔고 세이타르도 금속오른팔을 휘두르며 달렸나갔다.

플루토스와 루카누스만이 멍하니 있을뿐이었다.

플루토스는 부상을 당해 더 이상 공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루카누스는 자신이 별 도움이 안될거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가만히 있는 듯 보였다.

드라쿤의 8개의 팔이 큐탕 쿠 매지그를 잡기 위해 뻗어졌다.

"이깟 녀석이 소용이 있으리라고 보는가!!!"

큐탕 쿠 매지그의 왼팔이 드라쿤의 첫번째팔 공격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 손바닥이 드라쿤의 왼쪽 어깨쪽으로 향해졌다.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쿤이 뒤로 물러서다가 넘어졌다.

드라쿤의 왼쪽 어깨부터 팔 3개가 터져버렸는지 보이질 않았다. 크리에이쳐였지만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그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다. 파리나타는 드라쿤이 죽기 전에 소환해제하여 돌려보냈다. 드라쿤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락토니즈의 스토퍼가 큐탕 쿠 매지그를 찔러들어갔다.

"이런 무식한 녀석이!!!"

락토니즈의 스토퍼는 큐탕 쿠 매지그를 코 앞에 두고 웨이브를 추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락토니즈는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더 이상 전진하지 않음을 알고는 고함을 질렀다.

큐탕 쿠 매지그는 더 이상 재미 없다는 듯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브라키온이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는 다급히 달려가며 외쳤다.

"안돼!!!! 락토니즈!!!"

큐탕 쿠 매지그의 손에서 뭔가 튀어나와 락토니즈의 왼쪽 심장에 박혔다. 락토니즈는 엄청난 고통에 그대로 혼절해버린 것 같았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브라키온은 가장 좋아했던 락토니즈가 당하자 미친 듯이 미끄러져갔다.

그리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극소력(極小力)을 이끌어냈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큐탕 쿠 매지그를 향해 돌진했다. 큐탕 쿠 매지그는 락토니즈를 집어던지고는 브라키온을 바라보았다. 플루토스가 보기에 이미 승패는 정해진 듯 보였다. 아무리 전시안이라 하더라도 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세이타르의 공격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7대사제들보다 약했던 세이타르는 접근도 하지 못한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쓰러져버렸다.

브라키온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큐탕 쿠 매지그의 약점을 간파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어떠한 약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큰일이다.. 그는 진정 완벽한 존재란 말인가!!!'

브라키온은 큐탕 쿠 매지그가 자신을 향해 팔을 내뻗는 것을 보고는 급히 대각선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가 있었던 자리가 움푹 패여버렸다. 브라키온은 큐탕 쿠 매지그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다.

공간을 뛰어넘는 공격.. 한마디로 어느 위치에 있든 큐탕 쿠 매지그는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큐탕 쿠 매지그가 재밌다는 듯 브라키온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협지에서나 등장할법한 탄지공같은 공격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무언의 힘이 손가락 하나 하나마다 튀어져 나왔다. 아무리 빠른 휘페리언이라도 피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그건 브라키온도 마찬가지였다. 큐탕 쿠 매지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의 공격을 예상했지만 그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그 무언의 힘은 자신을 공격했다.

'퍽! 퍽! 퍽! 퍽! 퍽!'

맨살을 야구방망이로 후려치는 소리가 들리자 브라키온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몸에 다섯군데의 상처가 나있었다. 상처에선 자신도 놀랄 정도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참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거의 몸 안으로 10센치 가까이 파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브라키온은 쓰러지지 않고 안간힘을 쓰며 서있었다.

휘페리언과 기솔라벨카도 어느샌가 정신을 차렸는지 큐탕 쿠 매지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길 수 없어"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솔라벨카였다.

그마저 그렇게 말하다니. 모두들 낙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브라키온은 패배를 시인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순 없어!! 우리에겐 세월의 검은 돌을 가진 인간이 있잖아!!!"

-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녀에겐 아무런 힘이 없는데!!!"

그때였다. 세느카가 무언가를 본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투명한 얼음창으로 쏠렸다. 그녀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건 모두 거짓이야.."

그리곤 천천히 루카누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은 큐탕 쿠 매지그였다. 세느카의 돌발 행동에 큐탕 쿠 매지그는 다급히 세느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처럼 그녀는 그 손에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큐탕 쿠 매지그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세느카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

'설마 정녕 그녀가 지금껏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큐탕 쿠 매지그는 놀란 듯 세느카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 그를 브라키온과 기솔라벨카 휘페리언이 막아섰다. 약간의 희망이 생긴 지금 세느카를 위험하게 놔둘순 없었다.

휘페리언과 기솔라벨카가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듯 큐탕 쿠 매지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휘페리언의 손이 빛을 발하며 공격했고 기솔라벨카의 날개도 검을 능가하는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다. 큐탕 쿠 매지그는 약간이지만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세느카를 향해 집중되어있었던 것이다.

세느카가 루카누스 앞에 다다르자 플루토스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기솔라벨카와 휘페리언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이 상황에 루카누스에게 도대체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것인가.

세느카가 가까이 다가섰는데도 루카누스는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퍽!!!!'

세느카의 발이 루카누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별로 아프지 않은지 루카누스는 가만히 서있었다.

'퍽! 퍽! 퍽!!' 세느카는 계속해서 루카누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루카누스도 약간의 고통을 느꼈는지 한쪽 무릎을 꿇고 정강이를 손으로 매만졌다.

세느카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루카누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쎄게 때렸다.

'짝'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고 루카누스의 고개가 여러번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루카누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동시에 거대한 5미터 크기의 큐탕 쿠 매지그는 사라져버렸고 7대사제들이 입었던 상처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없어져버렸다. 투명한 얼음창으로 보이던 지상의 모습도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무. 무슨!!!!?"

-

"그가. 큐탕 쿠 매지그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환상과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요?"

세이타르의 질문에 모두들 세느카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그들은 신이 루카누스를 이용해 만든 환상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환상은 너무나 정교해 거짓일거란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었다.

그 상처와 고통들.. 너무도 생생했다. 그런 신의 환상을 눈치챈 사람은 오로지 세느카뿐이었다.

크리에이쳐인 드라쿤도 속았고 심지어 전시안이었던 브라키온마져도 속은 환각 그것을 어떻게 그녀가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녀가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환상 속에서 자신이 죽으면 실제로도 죽을만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이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까 창문에서 이상한 그림자를 보았죠. 그게 아마도 진짜 큐탕 쿠 매지그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상하게도 그는 루카누스를 계속 바라보고 있더군요. 비록 환각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겼지만 그의 잔상이 얼음창에 어려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같았어요."

세느카의 설명이 끝나자 어디선가 공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실내의 모든 생명체를 공포감으로 압도했다. 진정한 큐탕 쿠 매지그였다.

"역시 그대는 내가 두려워할만한 존재구나..

설마 나의 환각을 이겨내는 생명체가 있을 줄은 몰랐다."

큐탕 쿠 매지그는 비록 루카누스를 이용해 환각을 사용했지만 루카누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력한 환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걸 풀어낸다는 것은 용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 한 점의 공포심도 없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세느카가 그걸 발견해내다니..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아무런 공포심도 느끼고 있지 않단 말인가..

큐탕 쿠 매지그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명한 얼음창으로부터 한 사람이 걸어나오는 듯 보였다.

시각적인 차이였지만 그의 안 보였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큐탕 쿠 매지그는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구름이 없어 지상이 내려다 보일정도로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구름이 있는 상태에선 빛의 굴절율이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환각이 들통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인데 세느카에겐 통하지 않았다.

7대사제와 세이타르. 그리고 세느카는 자신들 앞에 등장한 큐탕 쿠 매지그란 존재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늘 하루동안 놀랄일이 많이 일어났다지만 지금처럼 쑈킹한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큐탕 쿠 매지그.. 불멸의 존재는. 인간의 모습을하고 있었다!!!! 그것도 거대한 5미터짜리 괴물의 모습이 아닌 정말 아름답게 생긴 미소년의 모습이었다.

세느카는 불멸의 존재의 모습을 보고는 뭔가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있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아주 아름답게 생긴 소녀였다. 아니,그는 소년이었다.

최근 기억이 형편없이 일그러져버린 세느카로서는 그 정도 느낌을 받은게 고작이었다. 그 미세한 기억을 더듬으며 세느카가 물었다.

"당신 우리 만난적이 있던가요?"

-

"아니,우린 만난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기가 슬렌더라면 만났을 수도 있지."

세느카는 아까 자신이 예상했던 '기가 슬렌더'란 존재들이 세 종족의 신일거란 생각이 왠지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인간들의 신도 헤켈들의 신도 만난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그때였다. 브라키온이 분노한 표정으로 불멸의 존재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리기까지 했다.

"어 어째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브라키온의 질문에 다른 7대사제들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느카와 이카루스를 많이 봐와서 그들에겐 인간에게 대한 호기심같은 것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브라키온이 콕 찝어냈던 것이다.

"저 정말. 왜 우리의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

-

"빌어먹을!! 어떻게 된거야!!!"

-

"도대체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냐구!!"

7대사제들은 너무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몹시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자신들을 만든 신이 세이렌족이 아니라면.. 아니,세이렌족이 아닌 전능하신 존재라고 해도 어째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너무도 황당했다.

게다가 그 신이란 작자는 지금껏, 아까 나타났었던 5미터 짜리 거대한 괴물로 자신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신들은 그에게 농락당해 왔다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사정인지 너무도 화가났다.

"난 너희들의 창조주다. 그런 내가 무슨 모습을하고 있든 그게 중요한 것인가."

-

"뭐? 그게 창조주라는 당신이 우리들에게 할 소린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양심이 있어야지!!!

나타날려면 세이렌 모습을 하던가!! 좀 더 신기하거나 놀라운 모습을 해야 하는거 아니야??"

부상당한 플루토스였지만 지금은 용감하게 신에게 대들고 있었다. 불멸의 존재는 코웃음을 치더니 금새 표정이 굳어졌다.

"난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뿐.. 그 외엔 아무런 뜻도 없다. 그리고 불멸의 존재라는 내 칭호도 단지 너희들을 지배하기 위해 고른 단어에 불과하다."

-

"쳇 신이란 작자가 그렇게 시간이 남아 도나? 아니면 원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건가???"

루카누스의 비꼬는 말투에 불멸의 존재는 다소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난 엄연히 '카루이안' 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내 이름을 아주 사랑하지"

카루이안의 말에 브라키온이 한 발짝 걸어나간후 말했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면 인간입니까?"

-

"하하하핫 난 너희들을 창조해낸 신이다!"

"신은 무슨 얼어죽을 신!!! 너같은 녀석이 우릴 만들었다구? 차라리 하수구에서 미생물끼리 수천년간 돌연변이를 일으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하는게 더 낳겠다!!!"

플루토스의 가시돋힌 말에 카루이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미 다 죽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시체들을 바라보는 듯한 냉혹한 표정이었다. 그리곤 나지막히 말했다. 그 말이 너무도 섬뜩해서 모두들 눈치만 살필뿐이었다.

"한번 더 기회를 주마. 살아서 내 종이 되던지..

죽어서 혼이 되어 다른 종족을 멸망시키는 우리 종족의 모습을 지켜보던지.."

그때였다. 누군가 슬픈 목소리로 카루이안에게 외쳤다.

"그 건.. 죄악이에요!! 어째서 이들에게 자신의 동족이 그런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방관하도록 만들려는거죠?"

세느카였다. 세느카의 머리속에선 세이렌족에 의해 인간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영혼이 되어 동족들을 슬피 바라보는 7대사제들이 보였다.

그건 그건 옳지 못했다. 단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렇게 큰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은.. 그들이 신의 유희의 한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 그런 죄를 서슴없이 행해야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이제 겨우.. 신들의 아니,기가 슬렌더들의 목적을 알아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알아냈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세느카의 마음속에는 카루이안에 대한 공포심이나 거부감같은 것이 없었다. 단지 그를 막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그럴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카루이안의 엄포에 모두들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방금 전 그 고통과 공포가 너무나 생생히 기억났다.

그것은 비록 환각이었지만 그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환각 이상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의 종이 될 것인가.. 그와 맞서 싸워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브라키온은 카루이안을 향해 용감하게 말하는 세느카를 보았다. 그녀는 정말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듯 매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 지도자는 기솔라벨카였지만 지금 그들을 주도해야하는것은 자신이라 생각했다. 브라키온은 카루이안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우릴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굴복시킬수는 없어. 절대로."

-

"하하하하핫. 역시 내 분신이라 가장 배짱이 있구나!"

"뭣?"

-

"너희들이 아까전에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난 내 뜻대로 모든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저 인간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전까지는 내 생각대로 되고 있었지. 기솔라벨카와 휘페리언이 어떤 결정을 했든 너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것은 결국 너희의 힘을 하나로 모을 것이고 그 힘으로 다른 종족을 파괴하리라 믿었다.

그게 신을 위한 것이든 종족을 위한 것이든간에 말이다. 거기까지는 넌 또 하나의 나로서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내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뭐라구?"

-

"니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시안이 된 것은 니가 또 하나의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그런 능력을 너같은 미천한것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나?"

"내가 또 하나의 너라구??"

-

"후훗. 물론 눈치챌 수 없었겠지 넌 나의 일부에 불과하니까. 난 내 생각대로 모든게 진행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거기엔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한 명 있더군 바로."

카루이안이 손가락으로 세느카를 가르켰다.

"저 인간이었다."

-

"그.. 그랬군..그래서.. 그래서. 기솔라벨카와 휘페리언의 깊은 잠재의식 속의 감춰진 비밀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이군. 물론 당신의 의도였겠지만 사실 당신의 계획은 거의 성공이었어! 나도 처음엔 신의 유희를 위한 전쟁은 하고 싶지 않았었지만 다른 종족을 멸망시키는데는 동의하고 있었지. 세느카를 만나기 전까진"

"."

-

"그녀를 만나고나서 그녀의 심연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었지.. 그 힘은 그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내가 아는 그 어떤 힘보다 강한 그 무엇이었지. 그리고 그녀 마음속에 있는 외침을 난 들을 수 있었다.."

브라키온은 기솔라벨카의 회유를 뿌리쳤을 때 휘페리언처럼 신의 유희를 위해서는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 전쟁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세느카를 만나고나서였다.

단지 한 번 스쳐지났을뿐인데 그녀에게서 그녀의 모든 생각을 읽었다. 단 한 명의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던 그녀의 감정들자신을 납치해온 세이타르에 대한 의지. 공포에 떨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들의 아픔을 감싸주려는 이해못할 용기.. 언젠가는 세 종족이 서로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확고한 믿음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그 생명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사랑..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의 능력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제로기 때문에 우린 이길 수 있는거야.' 라고 휘페리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다.

그런 의지와 용기,믿음,사랑은 전투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그녀에겐 아무런 힘도 없었지만 강한 자들이 가지지 못한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브라키온은 그 마음을 믿었다. 왠지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전쟁을 아예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카루이안의 작전은 성공하기 일보직전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거.. 실망이군 저 인간의 말에 너희가 동조할 줄은 몰랐다. 특히. 브라키온. 네 녀석만큼은 그래서는 안되었어. 그럼 넌 내가 아닌게 되니까.."

-

"웃기지마라.. 난 나일뿐. 절대 다른 누구가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루이안은 더 이상 자신의 일부가 아닌 브라키온을 보고는 냉소적인 웃음을 보였다.

'설마 무의식중에 내 두려움이 녀석을 저렇게 바꾼게 아닐까 죄를 느끼지 못하는 죄의식이..'

대화를 듣고 있던 휘페리언이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

"나도 브라키온의 말에 찬성이야! 내 양심을 속이면서 네 녀석의 하수인이 되느니 이 자리에서 죽을때까지 싸우겠어!"

휘페리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그들의 눈에선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카루이안이 말꼬리를 흐리자 알 수 없는 바람이 그를 휘돌며 회오리쳤다. 마치 엄청난 힘이 그를 주위로 멤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안 브라키온이 조용히 뒤로 물러서 세느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이마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

그런 브라키온의 모습에 약간 당황한 세느카는 머릴 뒤로 빼려다가 멈추었다. 브라키온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소짓던 브라키온은 손을 떼고 루카누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지금껏 그를 대했던 말투와는 다른 부드러운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게 될거야.."

-

"무슨 소릴하는거야?"

"후훗. 니가 날 싫어한다는거 알아.

하지만 두가지만 부탁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루카누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루카누스는 무언가가 두뇌로 밀려들어오는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브라키온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너. 설마.."

- "이대로 해줘. 부탁이야"

다소 당황해하는 루카누스를 뒤로 한 채 세이타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세이타르는 브라키온의 눈에서 발하는 맑은 기운을 느꼈다. 브라키온의 말을 다 들은 세이타르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일순간!!! 광포한 바람의 돌기들이 사그라들자 카루이안은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힘들이 충만한지 푸른색 기운들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그의 푸른색 머리카락은 그 기운들에 의해 춤을 추듯 일어서 있었다. 그 모습은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때 루카누스가 모두에게 희망적인 말을 건네었다.

"겁먹지마!! 아까 그 환각은!! 한 번 걸리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거야!! 하지만 환각이 아니라면 그렇게 쉽게 지지 않을거라구!!"

루카누스의 말이 맞았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환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카루이안에게 상처를 입힐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쉽게 당하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세이타르는 조심스럽게 세느카에게 다가서서는 그녀를 뒤편에 안전해보이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7대사제들보다 약한 그로서는 그것이 가장 최선의 역할일 것이다.

이제 큐탕 쿠 매지그인 카루이안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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