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63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63
[기가 슬렌더] -34- 미시케 사이가르트(좋아한다면서.... 왜?) -미시케 사이가르트(좋아한다면서. 왜 말하지 않죠?)-다시 숙소에 돌아온 파인리히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미시케의 위로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미얀은 미안한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파인리히에게 말했다.
"쏘리(Sorry) 쏘리. 아이.. 참 어제일은 미안해요 쏘리? 오케이?"
- "뜨 오케.. 오케 -_-;;"
파인리히는 이미 어제 일은 다 잊었다는 표정으로 미얀을 대했다.
잘못을 비는것도 약간 일반인들과는 다른. 한마디로 넋살 좋은 미얀은 파인리히가 자신보다 더욱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파인리히와 같이 들어온 미시케의 표정도 한없이 밝았다. 일이 잘 된 모양이었다. 파인리히가 돌아오자 라케프는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잘도 일어났다. 파인리히의 표정을 한 번 훑어 보고는 미시케를 바라보고 말했다.
"음메. 미시케. 자네가 굉장히 잘 혔는가부네 아주 잘했당께? 잘해쓰.. 잘해쓰.."
-
"제가 뭘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헤헷. 목소리 큰 미시케하고는 또 다른 매력이 있구먼 음메..
노인네 노망난 소리 하는구먼쩝 미안햐.."
-
"할.아.버.지!"
"뜨끔 그려 미안혀 그나저나 이제 워쩐당가?"
- "제 생각인데요"
"오 그랴.. 그랴 미얀 처자 한 번 말해보랑께?"
-
"파인리히의 이름도 알았고 초기 실험대상자들이 고고학이나 전설쪽에 관심이 많은 자들을 선정했다고 돼있고."
"옳거니!!! 그렇구먼. 충분히 찾아낼수 있겠구먼 우와. 미얀 처자 밤새 많이 고심했는가보구먼. 그런 생각까지 해냈는걸 보믄"
-
"아뇨!!! 누가 고심했다구 그래요? 치잇!"
미얀이 꽥 소리치자 라케프는 가늘게 눈을 뜨고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했다.
"음메? 자네도 삐진당가? 워째 고로코롬 할애비한테 삐진당가 못쓰겄구먼. 쯧쯧"
- "으거걱 -_-;; 죄송해요 할아버지"
푸하하,라케프의 어설픈 삐짐이 표정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파인리히가 웃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저도 미얀의 생각에 동의해요 제 감각이 말해주듯 고고학과 저는 많은 관련이 있을것같아요."
- "다행이에요.. 파인리히 정말"
"후후.. 고마워요.. 미시케"
-
"으.. 둘이 사귀지도 않는다면서 왜 그리 끈적끈적하게 바라봐요?
아우 느끼해."
미얀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팔에 돋은 닭살을 털어내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런 행동에 파인리히는 약간 당황했지만 미시케는 수줍은 미소를 지을뿐이었다.
"내가 알아봐야쓰겄구먼. 요즘은 정보화시대 아니덩가 맞나? 정보화?
우짰거나 뭐든 MTM 한통이믄 안되는게 없다믄서 그려 인자 쪼까 기다려보시게."
라케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MTM 을 꺼내들었다. 놀랍게도 그의 MTM은 최신형 HDVD 12(만)줄 칼라 폴더였다. --;; 라케프가 연락을 취한 곳은 뜻밖에도 얀박사의 정신과학 연구소였다.
사실 은둔생활을 오래한 라케프로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얀 밖에는.. 그러고도 큰소릴 치다니 어쩌면 가장 넋살 좋은 인간은 라케프일지 모른다.
얀은 라케프의 연락을 받고 기뻐하며 말했다.
"라케프씨!! 잘 지내고 계시군요? 마침 저도 연락드리려던 참인데.. 잘됐군요."
-
"옴마. 자네도 나한테 연락을? 무신 일이 있당가? 나도 할말이 무진장코롬 많았는디.."
"이건 MTM 으로 애기하기엔 약간 그런데요?"
-
"흠. 고건 나도 마찬가지니께. 그럼 중요한 야그들은 나중에 만나기루 하고 우선 정보좀 검색해주면 안되겄는가?"
"어떤 것이죠?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
"파인리히 그 친구의 정보인데? 파인리히 가슈프 라는 이름을 한 번 찾아봤으면 좋겄구먼. 아. 파인리히가 성일수도 있응께 가슈프 파인리히도 찾아볼수 있음 찾아보구."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는 마세요.."
-
"그려 근데말이여 그냥 공식적인 정보를 찾는거에 덧붙여서 고고학이나 전설, 신화와 관련된 단체에다가도 정보를 얻을순 없는감?"
"흠. 글세요 가능하긴 한데요 왜요?"
-
"아무래도. 내 생각엔 말이여. 공식적인 정보는 다 지워졌을거란 말이지.. 이유는 차차 알려줄텡께 한 번 찾아보드라고?"
"알겠습니다.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런 단체들의 정보는 쉽게 빼올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수도 있습니다."
-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드라고. 아.. 우리가 티탄시로 가지.
그때까지 알아봐주랑께?"
"흠.. 그럼 그때 만나서 상의하도록 하죠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 "그랴 알겄네 그럼 고만 빠이~"
"헉. 그럼"
라케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거보랑께? 내가 한다믄 하는 놈이잖여 움훼휏"
-
""
라케프는 얀도 중요한 말이 있다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는지 티탄시로 가자고 말했다. 미시케와 파인리히도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렇다면 미얀은?
"정말 운이 좋군요? 여기서 그만 헤어지려 했는데 사실 저도 티탄시로 가야했거든요."
-
"그곳에 고용주가 있군요?"
"묻지 말아요 어쨌든.. 거기까지 같이 가도록 하죠."
-
"그럼.. 결정된겨. 티탄시로 꼬우(Go)!!"
""
라케프와 파인리히는 그냥 웃어 넘겼지만 미얀은 끝까지 한마디 놓치지 않았다.
"고우에요. 고우!"
- "미얀,미얀,미얀. 헤헤헷"
"미안한거 알면 됐어요.."
-
"옴마? 난 미얀 처자. 자넬 불렀지.. 미안하다고 안그랬는디?.. 우걀걀.."
"으 -_-++"
그렇게 해서 일행들은 다시 티탄시로 향하게 되었다. 라케프는 노망난 늙은이답게 까마득히 나이 어린 미얀과 티격태격하며 티탄시로 갔다. 라케프의 호크는 바람잘날 없었다.
티탄시에 도착한 파인리히일행들은 대충 숙소를 정하고 피로를 풀었다. 호크가 신형이라 두시간도 채 안되어 티탄시에 도착한 일행이었지만 라케프 호크 쑈! 때문에 요절복통 피로가 쌓였던 것이다. 물론 너무 웃어서 생긴 피로라 쉽게 풀리겠지만..
티탄시에 도착한 후 미얀은 볼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 라케프는 대도시의 정경에 묘한 향수를 느꼈는지 미시케를 졸랐다.
"웅? 나하구 놀아주라 웅? 구경좀 시켜달랑께? 웅? 아잉?"
- "헉.. 할아버지. --;;;"
"그래요.. 미시케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들어와요."
-
"하지만.. 파인리히 전 이곳 지리도 잘 모르는데요?"
"그냥 요 근처만 돌다가 들어와요."
-
"당신도 같이 가면 안되나요?"
"아뇨. 전 됐어요.."
-
"알겠어요휴우. 가요! 라.케.프.할.아.버.지!"
미시케가 한숨을 푹 내쉬며 허락하자 라케프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럴때보면 노망났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지도 몰랐다.
파인리히는 라케프들이 나가자 숙소에서 나왔다. 아직 얀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지만 무슨 하찮은 정보라도 알아낼것이 틀림없었다.
파인리히는 천천히 세라곤의 도시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세라곤 고층빌딩. 빌딩숲사이로 가지런히 뻗어있는 도로들..
도로를 빼곡히 매우고 있는 플라잉 머신들 적갈색 하늘위로 보이는 다양한 색상의 호버크레프트..
티탄시는 파인리히가 생각했던것보다 굉장히 넓었다.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질 않았으니 말이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했나? 길을 걷고 있던 파인리히의 눈에 미얀이 보였다.
미얀의 생기발랄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용주와의 일이 잘 안됐나?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선 파인리히는 뒤에서 미얀의 어깨를 잡았다.
'슈우욱. 퍽!!!'
"어머!! 쏘리 쏘리 괜찮아요? 파인리히?"
-
"우갸갸.. 우가.."
미얀은 누군가 뒤에서 기습하려는 것을 반사적으로 막아낸?
것이다. 물론 공격이 최강의 방어라고 생각하는 그녀기 때문에 회전돌려차기가 구사된게 문제였지만..
"으 윽. 코 코피가.."
- "에이 그러길래 왜 뒤에서 덮치구 그래요? 얼떨결에 공격해버렸잖아요!"
"때. 때려놓고. 화를.. 내다니"
-
"뭐라구욧? 한 대 더 맞고 싶어요?"
"허..거걱. 아뇨.. 아뇨.. 내가 잘못했어요"
- "그나저나 코피가 멈추질 않네. 허기야 내 발차기가 매섭긴 하지 헤헤헷"
자신을 때려놓고 저렇게 당당하게 웃고 있는 미얀이 너무도 얄미웠던 파인리히는 꿋꿋히 참는수밖엔 없었다. 무술 실력으로 미얀을 상대하려면 뼈도 못추릴거란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표정이 심각하던데?"
-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고용주와 뭔가 잘 안되었나보군요?"
-
"그런건 아니지만."
"헤헤. 역시 티탄시에 온 것은 고용주를 만나려했던거군요?"
-
"엇 당신 지금 유도심문한 건가요?"
순간 미시케의 표정이 극도로 사악하게 변하며 주먹을 쥐어올렸다. 파인리히는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유도심문이라뇨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
"말하기 싫어요. 술한잔 사줄래요?"
"술이요?"
미얀은 대답도 없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거절할 기회를 잃은 파인리히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을 안하니 파인리히로서는 답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먹이 무서워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숙소를 정한후 바로 고용주를 만나기 위해 나섰던 미얀은 고용주로부터 이상한 명령을 받았다.
'가상생명체 프로젝트에 대한 비밀을 아는 자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문서도 폐기처분해라.'
이 지령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다. 자신이 문서를 빼냈다는 정보를 고용주에게 말했을 때 고용주에겐 파인리히들에 대한 말은 일체 꺼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미 고용주는 모든 사실을 아는 듯 그들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힘들게 빼내온 자료를 모두 갈아버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을 고용한것인가?
미얀은 고심할수 밖에 없었다. 단 하루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아무리 스파이 출신이고 어쌔씬(암살자)이라지만 그 정도로 사악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하고 우울한데 누가 짜증나게 어깨를 잡아챈 것이다. 마침 스트레스 풀 기회를 잡은 미얀은 날렵한 발차기를 상대에게 먹였다.
공교롭게도 그 상대가 파인리히여서 문제였지만 파인리히와 술을 마시던 미얀의 모습은 파인리히가 하루동안 본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말 많고 장난기 많고 넋살 좋고 활달하고 때론 괴물같은 그녀였지만 지금 모습은 시련당한 비련의 여주인공같이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파인리히는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미얀을 여자로 본다는 자체가 우스웠고 아우로페와 미시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혹시 고용주가 애인인데 차인거 아니에요?"
파인리히에게 돌아온 것은 삼단크래쉬 펀치와 연속기로 이어진 캐논슈퍼킥이었다. --;;
"파인리히.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나같은 왈가닥한테도 잘해주고.. 미시케는 정말 좋겠어요 당신같은 남자친구를 둬서"
-
"으엑. 우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친구일뿐이라구요."
"후훗 여자의 직감을 무시하지 말아요 내 눈엔 그렇게 보이는걸.."
-
"많이 취했어요. 그만 돌아가요 미시케도 우릴 기다리고 있을거라구요."
"헤헤헤 거봐요 미시케 걱정하잖아요 그러면서 아니라고 하기는."
미얀은 그 말을 끝으로 곯아떨어졌다. 파인리히는 갑자기 달라진 미얀의 태도에 약간은 의아했지만 술버릇은 누구도 말릴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를 업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돌아온 파인리히를 본 미시케는 양 눈에 거대한 화로를 집어넣은 듯 불똥이 활활 타올랐다. 파인리히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미얀을 눕히고는 말했다.
"아 미시케 그냥.. 요 앞에서 우연히"
-
"우연히 만나서 술한잔 해서 저렇게 인사불성될때까지 마셨다?
좋아요.. 알겠어요.. 잘해봐요!!"
"미시케!!"
미시케는 자신이 왜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고 나가버렸는지 이해할수 없었지만 한 번 나간 이상 다시 들어가기도 그래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파인리히와 미시케를 본 라케프가 한마디 했다.
"쯧쯧 미시케는 나랑 놀아주느라 오늘 엄청코롬 스트레스 받았당께 내가 쪼까 그렇잖여. 어서 따라가 보랑께. 또 다시 목소리 큰 미시케로 만들지 말라니께?"
-
"알겠어요."
파인리히는 미시케를 따라 나갔다. 미시케는 그다지 멀리 가지 않은 상태였다.
"미시케!! 미시케!! 잠깐만요 얘기좀 해요.."
-
"난 당신과 할 말 없어요!!"
미시케는 뒤도 안돌아보고 말했다. 파인리히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정말 왜 그래요?"
파인리히의 질문에 미시케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그래요?"
-
"."
파인리히는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미시케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기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에겐 이런 상황이 난감하기만 했다.
"정말 모른다면.. 차라리 다행이네요."
미시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파인리히는 이대로 그녀를 보내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아니,그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미시케!! 잠깐만요!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요.."
파인리히의 말에 미시케는 가던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파인리히는 천천히 다가서면서 말했다.
"알아요. 당신의 마음. 잘 알아요 하지만 그 마음 받을수 없어요."
- "왜죠? 왜 안된다는 거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아우로페라는"
"당신.. 알고 있었군요.."
-
"잘은 모르지만.. 그럴거라 생각했어요 날 구해줬을 때 기억나나요?
날 아우로페라고 불렀던 걸. 난 그녀가 누군지 몰라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난. 난 안되죠?"
"그녀는 죽었어요. 그것도 나 때문에. 난 그녀를 잊지 못하는게 아녜요 그리고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것도 아니에요. 다만.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아뇨,두려워하는거죠 사랑이란 것을 두려워하는거에요."
-
"......"
"그녀는 당신보다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다고 똑똑하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앞을 볼수 없었죠 그녀는 나만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어요. 날 위해 목숨을 버렸죠. 그런 그녀에게 난 아무것도 보답한게 없어요.. 심지어 그녀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죠..
그녀와 약속 한게 있는데 그것도 지키지 못했어요 난 두려워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게 어떤기분인지. 난 너무도 잘 알아요 당신까지. 위험에 빠뜨릴순 없어요."
어느샌가 파인리히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아우로페에 대한 생각으로 눈물이 고였던 것이다. 파인리히의 양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미시케가 닦아주었다. 그리곤 파인리히의 품에 스르르 안겼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아요 난 늘 생각했어요 내가 그 아우로페라는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여자를 생각하는 것만큼.. 아니 그 반의 반 만큼이라도 날 생각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당신은 늘 나에게 처음과 똑같이 대했죠 난 그래도 좋았어요 당신을 바라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미안해요. 당신이 그런 마음의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는것조차도 모르고. 그런 두려움에 휩싸여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날 용서해요 하지만 이젠 두려워말아요 나 역시 죽음따윈 두렵지 않아요 무의미하게 사느니 차라리 당신을 위해 죽겠어요."
파인리히는 품에 안긴채 울먹이며 말하는 미시케를 꼭 껴안았다.
하지만 사랑할수 없는 여자였다. 아니,자신은 그 누구와도 사랑해선 안되는 운명이었다. 파인리히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미시케의 흐느낌이 멈출때쯤 둘은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다. 숙소에 도착할때까지 둘 사이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미시케도 느낄수 있었다. 파인리히의 마음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해도 상관없었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볼수만 있다면 그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다시 돌아온 파인리히와 미시케의 얼굴이 퉁퉁 불은게 영 심상치가 않자 라케프가 말했다.
"둘이 치고박고 했구먼 눈덩이가 부풀어 올랐는디?"
- "그만 들어가볼게요"
미시케였다. 라케프의 말에도 큰목소리 공격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라케프는 묘한 분위기를 직감했는지 그녀가 사라지자 파인리히에게 말했다.
"무신 일이당가. 혹시 자네. 미시케 처자를 찼당가?"
- "할아버지도. 누가 누굴 차요. 우린 좋은 동료일뿐이에요.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좋은 동료라구요"
"음마? 이거시 시방 나를 늙었다고 깔보는겨? 내가 둘 사이의 그 뭐시냐 끈적끈적함을 놓쳤을성 싶은감?"
- "그만하세요. 저도 심난해요"
"흠 그려. 미안혀 내가 장난이 심했구먼 어서 들어가 자드라고"
-
"네에.."
파인리히마저 방으로 들어가자 라케프는 쎌쭉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조용히 말했다.
"워째 초저녁인디 늙은 노친네보다 먼저코롬 잔당가.쩝.."
하지만 라케프도 금새 곯아떨어졌다.
프레제톤타 지하세계. 락토니즈의 성채와 더불어 휘페리언의 성채는 렘노스 탑보다 낮은 건축물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지하세계의 전경이 다 내려다 보이는 유리한 고지이기도 했다.
브라키온은 휘페리언이 일을 무사히 마쳤음을 알고 그를 찾았다. 사실 휘페리언이 세느카를 납치하긴 했지만 그 이상 무얼 어쩌겠는가? 그에겐 별다른 계획이 없이 자행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기솔라벨카가 세느카를 가지고 있는것보단 세력분할에 보다 안정적인 위치이긴 했다. 브라키온이 찾아오자 휘페리언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삼각턱이 미소로 인해 더욱 날카로워보였다.
"어서 와. 브라키온.. 후후훗 역시 빠르군 내가 그녀를 납치한걸 알고 온거겠지?"
- "후훗 내 도움이 있었기에 그녈 납치할수 있었잖아"
"응? 그럼 파리나타와 플루토스를?"
-
"그래. 원래는 루카누스까지 붙잡아 두려했지만 녀석과 내 사이 잘 알잖아?"
"흠 그렇군.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어."
휘페리언은 자리를 권하며 자신도 앉았다. 역시 휘페리언의 방은 전망이 좋았다. 밖이 훤히 내려다보여 마치 온 세상을 발 아래 둔 기분이 들었다. 브라키온은 창밖을 한 번 살펴본 후에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어쩔 셈이야?"
-
"글세. 큐탕 쿠 매지그를 멸하기라도 할까? 후후후."
"그래 원하던 바야"
-
"뭐???"
휘페리언이 농담삼아 던진 말을 브라키온이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놀라 되물었다. 하지만 브라키온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난 지금 우리 종족의 신인 불멸의 존재를 멸한다고 말했다구!!"
- "그래.. 알아"
"난 농담이었단 말이야!!"
-
"아니,난 네 녀석의 마음을 잘 알아.. 농담이라고 말하곤 있지만 절대 농담을 그렇게 쉽게 내뱉을 녀석이 아니라는걸."
"후훗 전시안을 속일순 없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뿐이라구 우리 능력밖이야.."
-
"우리에겐 세월의 검은돌을 가진자가 있잖아."
"푸하하하 우리중 가장 머리가 좋은 네 녀석이 그따위 전설이나 믿는다는거야? 그건 기솔라벨카가 지어낸 얘기야!"
-
"과연 그럴까..?"
휘페리언은 진지한 브라키온의 행동에 움찔했다. 전시안 브라키온..
그는 알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할 때는 분명 틀림없는 이유가 있고 정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신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아무리 전설속에 그를 멸할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우선 그렇다. 신은 죽지 않기 때문에 신이다. 그런데 신을 죽일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또 그 전설의 신빙성 문제다.
수천년을 흘러내려온 전설도 아니고 고작해야 몇백년된 전설이다. 그건 휘페리언과 다른 7대사제들이 살아온 나날들과 그리 차이나는 세월이 아니다.
물론 다른 세이렌들의 생명력보다 질긴 그들이었기에 그런거지만.
마지막으로 전설이 맞다고쳐도 세느카란 여자가 그 세월의 검은돌을 가진 인간인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껏 과학자들이 밝혀낸 세느카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일개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브라키온.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
"그래.. 신에게 우린 그저 도구일뿐이야 너도 그런 도구로 남는건 원하지 않았잖아.."
"그게 무슨?"
-
"난 다 알아. 너와 기솔라벨카 난 너의 선택이 그런 도구가 되길 원하지 않았기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린가?"
"너 다 알고 있었구나?"
- "내색하지 않을뿐이지"
"무서운놈. 가장 무서운 녀석은 바로 네 녀석이었어.."
휘페리언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가를 기세였다. 하지만 브라키온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도리어 미소짓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보고 도리어 당황한것은 휘페리언이었다.
'내가 공격하지 않을것까지도 예상했단 말인가..'
"앉아 휘페리언 난 널 도우려는거지 싸우려는게 아냐.. 락토니즈까지 가세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
"락토니즈 녀석이 우리편에?"
"후훗.. 물론. 그 정도는 나에게 맡겨."
- "하지만 상대는 신이라구. 기솔라벨카라면 1:1 다이 붙어도 할만 하겠지만 큐탕 쿠 매지그는 다르다구"
"그래서 그 인간이 필요한거야 그를 멸하기 위해.."
-
"그럼 그녀의 능력을 넌 안다는 거야?"
"후훗.. 아니.."
-
"그럼 대체 뭐야?"
"그녀의 능력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제로기 때문에 우린 이길수 있는거야."
-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그건 차차 알게 될거야."
브라키온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녈 잘 지켜 우리 세이렌의 희망이야. 아니,전 종족의 희망이지 그럼. 아!! 기솔라벨카와의 일전을 준비해두는게 좋을거야 녀석이 가만있지 않을것같거든."
휘페리언은 그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브라키온을 붙잡지 못했다.
너무도 알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말에는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마력이 숨겨져 있었다. 거부할수 없는
티탄시 다음날 아침. 역시 노친네답게 라케프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체조를 하고 있었고 미시케 역시 일찍 일어나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 술을 마신 파인리히와 미얀을 위한 음식이었다.
원래 파인리히는 잠이 많은 녀석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명상을 즐기곤 했는데 오늘따라 일어나질 않았다. 물론 어제 술을 마시긴 했지만.
사실 파인리히는 이미 오래전에 깨어있었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뿐 그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그냥 누워있었던 것이다.
미시케 파인리히가 생각하는 미시케는 착하고 발랄하고 소박하고 예쁘고 성격좋고 한마디로 과분한 여자였다. 어찌보면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녀였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그녀를 위한 길이 아니야.'
파인리히는 자신이 그런 고민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언제나 과거를 찾는것만이 그의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문제가 도리어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얀 역시 잠에서 깨어있었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이 왔지만 그것보다 더욱 아픈건 마음이었다. 고용주의 명령을 어긴다? 이것은 스파이 세계에선 있을수 없는 일이다. 특히 프리랜서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미얀으로서는 고용주의 명령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사실 지금껏 고용주의 명령을 어겨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물론 살인을 시킨 고용주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쌔씬 수업을 받았던 그녀였지만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고용된 이상.
'아니야!! 난 살인하기 위해 스파이 짓을 하는게 아니라구'
미얀은 그렇게 악하지 않았다. 절대하지만 그냥 지나칠수만도 없었다.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가.. 미얀은 고아였다. 자살을 시도한것도 수차례.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미얀을 길러준 여자는 산업스파이었는데 미얀을 동정한것도 사랑한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후계자를 기르기 위해 미얀을 먹여살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도 고용주와 적의 이중첩보망의 함정에 걸려 죽고 말았다. 다행히 미얀이 스파이 노릇을 어느정도 할 때의 일이었다.
그 여자가 미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떻게 스파이로서 성공하느냐였다. 그렇게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 거의 최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미얀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용주를 배신하게 된다면 자신은 스파이 세계에서 생매장 당할것이 분명했다. 최고의 스파이로 남느냐 신용잃은 별볼일 없는 스파이로 전락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고개를 가로젓던 그녀는 양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파인리히가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미시케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속은 좀 어때요? 파인리히? 당신을 위해서 숩(Soup)을 만들었어요"
-
"우와 정말 먹음직스러워보이는데요?"
미시케는 일회용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직접 손으로 만든 숩을 파인리히에게 내놓았던 것이다. 미시케의 음식솜씨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세느카마져도 부러워했던 솜씨가 아니던가.
파인리히와 라케프가 미시케의 음식솜씨를 연신 칭찬하고 있을 때 미얀이 걸어나왔다. 미시케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미얀 미얀도 이거 먹어봐요 속이 풀릴거에요."
-
"그러죠 와.. 맛있어보이네요?"
미얀은 그렇게 말하고는 활짝 웃으며 숩을 한수저 떴다. 파인리히가 본 미얀의 모습은 어제의 무너진 모습과는 다른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역시 그녀는 파인리히 생각처럼 강한것같았다.
"우와.. 구..드 베리 굿(good --;)"
미얀이 굿을 연발하자 미시케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자 라케프가 입을 열었다.
"파인리히 자네는 내하구 얀박사를 만나러 가야하는구먼.."
-
"예.. 알겠어요.."
"할아버지!! 저도 같이 가면 안될까요?"
-
"잉? 미얀 처자도? 자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디?"
미얀은 순간 자신이 왜 같이 가자고 했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들을 따라가서 어쩌려고 했던 것인가. 세차게 고개를 흔든 미얀은 지금이라도 그들을 없앤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라케프와 파인리히 개개인의 실력은 굉장한 것이지만 방심한 그들을 없애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보다 쉬웠다.
앗 비유가 틀렸다. --; 어쨌든
"아냐 아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니? 미얀!"
미얀이 갑자기 자신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지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러자 미얀은 얼렁뚱땅 미소작전으로 대처했다.
"헤헷 요리를 배워볼까 생각했었거든요."
-
"아하~ 미얀처자 포기혀. 사람이 노력해두 되는거시 있는거시고 안되는거시 있는 거시여.. 포기혀.."
라케프는 미얀을 놀린후 이어질 미얀의 광폭한 반격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나 표류했다.
"그렇겠죠? 역시 포기할래요 요린 너무 어려워"
-
"헉.."
모두들 라케프가 미얀을 놀린 대가를 철저히 치룰줄 알았는데 의외로 미얀이 숙이고 들어오자 할말을 잃었다. 그런 미얀의 모습을 본 파인리히는 아직 어제의 충격에서 미얀이 벗어나지 못했을거란 생각을했다.
"워쩔껴? 따라갈텐감?"
-
"아뇨 전 그냥 미시케랑 여기 남아있겠어요.. 제가 가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랴? 그랴.. 그럼.."
한 번 한다면 꼭 해버릴것같은 여자, 미얀이 또 한 번 숙이고 들어오자 장내는 엄숙해졌다. 하지만 라케프의 개걸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자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우걀걀걀 그랴 오늘은 쪼까 여성스럽구먼 움훼휏 이제 아침도 다 먹었응께 자네는 나하고 나가보드라고?"
-
"알겠어요.. 할아버지.."
라케프와 파인리히는 식사를 마치고 얀을 만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던 미얀과 미시케는 여자들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옛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중 미시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미얀 우리 차 마실래요? 마침 녹엽(綠葉)차가 있거든요?"
-
"와.. 그거 잘됐군요 좋아요 한 번 마셔보도록 하죠.."
미시케는 웃으면서 히트레인지로 물을 끓였다. 금새 끓은 물은 녹엽가루가 뿌려져있는 잔 위로 부어졌다. 잘 섞은 미시케는 미얀에게 가져다 주었다.
"자아.. 어서 음미해봐요.."
- "우와.. 아무맛도 안나요! --;;"
"그럴리가요?"
미시케 자신도 한모금 입안에다가 넣고는 혀를 굴려 맛을 음미했다.
부드럽고 따스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혔고 뒤이어 프레져향이 입안을 멤돌았다. 너무도 은은한 맛이었다.
"전.. 정말 맛있는데요. 사실 이 녹엽차는 스타게이져라는 꽃나무의 나뭇잎으로 만드는 거에요.. 스타게이져는 별을 바라보는 꽃이죠 꿈을 먹고 자란데요 이젠 먼지로 가려져 별을 볼수 없지만.."
-
"와.. 당신은 별걸 다 아는군요?"
"아뇨.. 주워들은거에요."
-
"네에."
잠시 다시 썰렁해지려는 분위기를 미시케가 입을 열어 막아냈다.
"당신은 마치 가면을 쓴 사람같아요.."
-
"네??"
미얀은 순간 자신이 고용주에게 받은 명령에 대해 미시케가 아는 줄로만 알고 깜짝 놀라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자신을 강하게 만들려는것같아요 때론 약해지는것도 좋은데. 울고 싶을땐 울어버리는게 좋은데.."
-
"그게 무슨소리에요? 전 이해할 수가."
"당신의 두 눈속에 있는 그 슬픔. 애써 부인하려하지 말아요 난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이건 잘 알아요.. 누군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요."
- "미시케"
"제 어머니는 저를 낳고선 돌아가셨어요.. 아버진 그 후로 계속 술만 드시다가 어느날 집을 나가셨어요.. 그뒤론 한 번도 보지 못했죠..
그분이 살아계실거라 믿고 있지만 제 바램일뿐이죠 그렇게 고아나 다름없게 자랐어요.. 하지만 전 다른 고아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애써 태연한척 강한척 과장되게 행동하고 다녔었죠..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었어요.. 제겐 꿈이 있었거든요.. 스타게이져꽃처럼 제겐 도시로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전 그 꿈을 먹으며 열심히 살아왔죠.. 하지만 때론 울기도 많이 했어요.. 왜냐면 울고 싶을땐 우는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거든요 그렇게 살다가 파인리히를 만났어요.. 그리고 그의 깊은 슬픔을 알수 있었죠.. 그를 도울수 없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 "미시케. 이리와요"
미얀은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미시케와 미얀은 공통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얀은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살아왔다는 것이고 미시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말하긴 싫었다. 아니,여태껏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었다. 오로지 스파이로서 성공하기 위해,그 꿈을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나도. 스타게이져인가 푸훗'
미시케는 자신을 다독거려주는 미얀에게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잘못봤나봐요 어제 파인리히에게 퇴짜맞고선 너무 슬픈 나머지.. 이상한 소릴.."
-
"아니에요.. 미시케 그 녀석이 사람 보는 눈이 없군요.. 제가 때려줄까요?"
"네? 푸하.. *^^*"
- "앗 당신 웃었군요? 호홋.. 웃으니 예뻐요"
"당신도 정말 아름다운 걸요?"
미얀은 미시케의 말에 얼굴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어졌다. 지금껏 그런 말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같은 여자한테 들은 말이지만 묘한 설레임이 되어 다가왔다.
그렇게 둘은 서로 띄워주며 프린세스 메이커에 여념이 없었다. ^^;;
얀이 말한 바(Bar)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한참을 돌고서야 바를 찾은 라케프와 파인리히는 안으로 들어가서 바텐더에게 주문을 했다.
파인리히는 블루 샤인을 주문하였고 라케프는 레드 볼케논을 주문했다. 바텐더가 보기에 둘은 참 개성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문하는것도 개성대로, 한 잘 생긴 청년은 감미롭고 달콤한 도수가 낮은 블루 샤인을 다른 한 터프하게 생긴 노인은 쓰디 쓴 레드 볼캐논을 시켰던 것이다.
천천히 첫잔을 음미하고 있던 일행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러자 바텐더가 그를 보며 희미하게 웃고는 레드 볼캐논을 한잔 따르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다름 아닌 얀 이반 박사였다.
"잘 지내셨죠? 라케프씨?"
-
"으메. 반갑구먼 그려 우째 이렇게 찾기 힘든데로 불렀당가 하마터면 못찾을뻔 했땅께?"
"그냥.. 보안 유지 차원에서라고 해두죠 잘 지냈나? 파인리히?"
- "네에 건강해보이시는군요? 얀 박사님"
얀은 웃음으로 대답한 뒤 레드 볼캐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선 파인리히 자네의 정보에 대한 말부터 하겠네.. 역시 라케프씨 예상대로 일반정보들은 모조리 삭제되었네 아.. 우선 난 두가지 가정을 세웠지 자네가 무슨 특별한 이유로 기록을 삭제당했거나 아니면 아예 기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이 두가지였어 두 번째 경우는 아주 특별해서 거의 그럴일이 없지 물론 전자의 경우가 맞는 경우였어"
-
"그럼 일부러 누군가가?"
"그래.. 그렇다네.. 자네 신상에 관한 모든 정보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모두 삭제되었네.. 하지만 라케프씨 말대로 고고학이나 신화 전설 분야에서의 자네의 기록은 일부 남아있었던 거야"
- "역시.. 그렇구먼"
"특히 자네는 고고학분야에서 알아주는 친구더구만 하지만 자네 기록을 없앤 녀석들도 그것을 알았는지 고고학분야에선 별다른 기록을 찾을수 없었어 파인리히 가슈프 라는 자가 한때 존재했었다는 정도?
하지만 신화 분야에서는 달랐지 자네는 신화에 관한 모임중 가장 유명한 모임으로 손꼽히는 갓 노우즈(God Knows)의 초대회장이었어. 그 모임에서 활동하던 자네와 아벨 그레고리,티리건 모스 이 세명은 5년전에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더군"
-
"아벨."
"아마도 누군가가 자네와 자네 친구들을 납치한후 실종처리한 뒤 기록을 없애버린것같아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고.."
- "우린 그 이유를 알고 있구먼"
라케프의 말에 얀의 시선이 라케프를 향했다. 라케프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파인리히가 받았던 실험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그럴수가. 설마 재단에서 연구하던 가상 생명체 프로젝트마져도."
얀은 자신의 앞에 있는 파인리히 역시 카인과 같은 희생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라시드박사가 말했던 세이렌의 변종 뇌하수체가.. V.C 프로젝트에 이용되었단 말인가'
얀이 생각을 정리할 때 라케프와 파인리히는 옆에서 조용히 함으로써 그를 도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얀은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카인 역시.. 자네와 같네"
얀은 자신이 했던 쉐도우 프로젝트 역시 같은 맥락의 실험이었음을 말했고 카인 역시 그 실험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얀의 말에 파인리히와 라케프는 침통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카안드리아스 재단이란 곳은.
천인공로할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인리히 이제 워쩐당가?"
-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갓 노이즈(Got Noise)라는 곳을 한 번 찾아가보지 않겄남? 뭔가 얻을게 있을지도 몰르니께"
- "하지만(갓 노우즌데 --;;)"
파인리히는 라케프가 말한 것처럼 하는게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카인과 자신같은 희생자가 더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최근들어 V.C 프로젝트는 다른 피실험자를 이용해 거의 성공단계까지 이르르지 않았던가..
'이런 빌어먹을.'
얀은 파인리히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했다. 사실 파인리히는 희생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도와주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그의 의사였다. 그걸 존중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카안드리아스 재단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더 이상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게 더 중요한일 같아요."
-
"파인리히 고롬 자네 생각은?"
"네.. 맞아요 누군가 말했죠 과거를 밟아가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보다 때론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위해 움직여야할때에요."
-
"흠 그럼 나와 카인을 도와줄텐가?"
"하지만 말이여 얀박사 그 재단이란 곳은 우리정도가 덤빈다고 될곳이 아니여. 심지어 그 본부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모르지 않는감?"
라케프는 오지에서 몇십년 살아온 노인답지 않게 재단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었다. 허기사. 그 노인이 신비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있겠냐만은......
"그 본부의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우주죠.."
-
"우주???"
파인리히와 라케프가 동시에 반문했다. 우주에 본부가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먼지층 때문에 우주로 나갈수 없다는 것은 3살짜리 꼬마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주라니? 파인리히는 고개를 흔들면서 웃었다.
"그럴리가요. 먼지층에서 멀쩡한 기계가 없을텐데"
-
"그러니까 그 재단이란 곳이 무서운 곳이란거지."
"뭣시여? 고렇다면 벌써 우주로 나갈수 있는 비행선이 개발되었단 말인감?"
- "그렇습니다. 셔틀크루져라는 비행선이죠 전혀 전자기파의 방해와 무관한 인류 최초의 우주선"
"말도 안돼"
파인리히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믿을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종족과 결합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생각하면 그게 도리어 믿기 쉬울지도 몰랐다. '젠장..'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죠?"
-
"바로 그 재단 본부 원자력 천공위성에 쳐들어가는거라네.."
"엥? 얀박사. 그건 너무 추상적이랑께.. 거기 침입해서 뭘 어쩐당가?
위성을 통째로 부수기라도 할텐감?"
-
"라케프씨 말대로 우리가 상대하기엔 상대가 너무도 거대합니다.
게다가 그런 상대를 각개격파할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재단 내부에서도 재단에 대해 반발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들과 내통중입니다. 그들의 의견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재단에 침입해서 그들의 의도를 막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그렇지만"
-
"그들의 목적이 뭔지 아는가? 파인리히?"
"목적이요?"
-
"그래.."
"설마.. 나 같은 괴물들을 대량생산해서"
-
"워째 고로코롬한..생각을.."
파인리히와 라케프 둘다 순간 알아챘던 것이다. 재단의 음모라는것이 바로 전 종족을 제압할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내어 전쟁을 일으킨 후에 모든 종족을 지배한다는.
물론 이 생각은 카안드리아스의 생각은 아니었다. 지오의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위대하신 분 역시 궁극적인 목적으론 그걸 생각하지 않았다고는 할수 없었다.
"다른 종족들보다 더 무서운 자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군요..
바로 인간.."
- "아니,우린 우리의 미래를 바꿀 의지가 있네. 결코 그들의 예기에 꺾일 나약한 의지가 아니란 말이네"
"역시 그랬구먼 그의 생각은.."
-
"네??"
"옴마? 내가 뭐라 했간디? 와 그리 놀라는디?"
-
"아니에요.."
파인리히는 얀의 말을 다시금 돌이켜보았다. 얀이 거짓을 말할리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전 지역구는 전쟁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추세이고 자신같은 괴물이 대량생산된다면 다른 종족과 결코 불리한 싸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세상은 소수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들의 힘을 막는 자 역시 소수가 아니던가..'
파인리히는 고개를 들어 얀을 바라보았다. 뭔가 확고한 의지를 가진 모습이었다. 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인리히는 자신의 과거보다 인류의 미래. 더 나아가서 전 종족의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그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실을 결정지은 것이다.
"위성으로 침입할 시기는 그들이 알려줄겁니다. 라케프씨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재단 소속 연구소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 " !"
"특히. 제가 연구했던 정신과학 연구소와 생체공학 연구소는 반드시 파괴해야합니다."
-
"난. 이 일이 옳은지 모르겄구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라케프 할아버지?"
라케프는 얀과 파인리히가 생각하는 그러한 실험들이 옳지 않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험결과들을 파괴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세 종족이 공존하지 못하는 한 어느 한종족, 바로 인간이 우세해야했다. 하지만 인간은 가장 나약한 종족이었다.
차라리 그런 능력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 실험을 파괴한다면 다른 종족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랑께?"
-
"하지만 그건 반 인륜적이란 말이에요!!"
"때로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악을 써야한당께!!"
묘한 언어유희로 분위기 쇄신을 꾀한 라케프에게 파인리히의 쓸쓸한 대답이 들려왔다.
"나같은 괴물은. 나 하나로 족해요."
파인리히는 인류가 다른 종족에게 어떻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괴물이 되어 싸우느니 차라리 보통 인간으로써 그들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면 그것이 더욱 영광스러울지 몰랐다. 라케프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는 진정 인류를 생각해왔지만 파인리히의 말대로 괴물이 되어서까지 인류를 지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알겄구먼.. 나도 연구소를 파괴한다는데 동의하는구먼. 하지만 녀석들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것이여 이미 우리와 얀 박사에게 정보를 빼앗겼응께."
-
"맞습니다. 라케프씨. 저와 카인 그리고 아크바레이는 제가 소장으로 있던 정신과학 연구소를 파괴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케프씨는 파인리히와 함께 생체공학연구소를 파괴하도록 하십시오"
"알겄구먼. 우리 힘으로 될지는 모르겄지만.."
라케프는 생체공학연구소를 간신히 탈출한 생각을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 정도도 굉장히 보안이 잘 되어있었는데 정보를 빼앗긴 지금에야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미얀이 도와준다면 가능성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얀은 그곳에서 경비대원으로 있으면서 지리에도 빠삭하고 스파이라 이런일엔 적합했다.
"흠냘. 미얀처자가 도와주면 될텐디"
-
"전 카인과 함께 정신과학 연구소를 파괴하겠습니다. 저야 그곳 소장이니까 별의심없이 성공할수 있을겁니다."
"알겠구먼. 일단 연구소를 파괴하도록 하고. 그 다음엔 재단 본부에 쳐들어가자꾸먼"
-
"좋아요."
-
"좋습니다."
카안드리아스 라는 재단에 대한 비리를 모두 안 얀과 파인리히들은 진정 인류의 미래를 위해 옳은일인지 반신반의하면서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인류가 살길은 다른 종족을 이기는 길.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하려는 일은 다른 종족을 이길수 없도록 만드는 일..
'정의는.. 정의라서 지켜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져야하기 때문에 정의다.. 비록 정의의 최후가 절망이라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