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36화 (36/120)

제 목: 40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40

[주석] -4- 잭(새로운 세계...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3) -잭(새로운 세계. 그

리고 죽음의 그림자..)-

얀 소장과 3명의 피실험자들은 21 번째 유닛을 각성하기 위한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바로 실험에 들어갈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포심으로 정신쇠약에 걸린 레이는 체중도 많이 줄고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하게 실험을 진행하는 것보다 약간의 휴식을 더 취하기로 한것이다.

사실 레이 자신이 실험을 거부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유 모를 공포심 때문에 레이는 21번째 유닛 각성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걸 모를리 없는 얀이 체력보충이란 명목하에 몇일 더 쉬도록 한 것이다.

이번 유닛 각성도 일주일 넘게 걸릴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레이의 체력으론 버티기 힘들것이다.

온갖 약과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었지만 극도의 공포심은 이길수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언제까지고 실험을 미룰수는 없었다. 재단에서 가하는 압력도 압력이었고 피실험자들 역시 계약을 한 만큼 성실히 일?을 해야했다.

평소보다 10여일 가까이 더 휴식을 취한후에야 실험에 들어갈수 있었다. 다행히 레이의 안색은 좋아보였고 체중도 많이 증가한 듯 보였다.

카인은 그런 레이를 보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백치같은.. 수아를 보는 듯 해서인가. 피실험자들 셋이 모이면 레이를 가장 잘 챙겨주는 사람은 카인이었다. 잭 역시 레이를 잘 따랐지만 오빠다운 면모는 없었다. 그런 카인의 노력덕분에 레이의 상태가 많이 좋아질수 있었다.

"어때? 레이.. 오늘 실험 할수 있겠지?"

카인의 질문에 레이는 가벼운 미소로 답했다. 말수가 적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꼭 대답을 하던 레이였기에 그 미소의 의미는 부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 카인과 잭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실험에 들어가는 것이리라..

"레이.. 너무 계약에 얽매여하지마.. 정 힘들면 포기해"

카인은 진심으로 걱정되어 그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레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이는 카인과 잭을 만난 후로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왠지 그들과 떨어져서는 안될것같은. 그런 느낌.

계약을 파기한다면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기밀에 해당하는 프로젝트였기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복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카인과 잭. 그들과 함께 있을수 없을거란 생각이 레이의 의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니. 난 괜찮아.. 카인이 지켜주잖아.. 잭도 그렇고"

레이의 말에 잭은 멋적게 웃었다.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말하는 그들이 약간은 우습게도 보였다. 그들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카인.. 너무 레이에 대해 걱정하지마. 그녀도 우리만큼 강하다구.."

잭의 말에 카인은 애써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잭의 말은 거짓이었다. 레이는 강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일것같았다.

피실험자 세명이 실험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얀이 실험실 안으로 들어왔다. 얀을 본 셋은 모두 인사를 했다.

"오늘 21번째 실험에 들어간다 모두들 준비는 되었겠지?"

얀의 질문에 셋 모두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얀은 자신의 친구들을 사지로 내모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늘 실험에 착수할때마다 같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재단의 명령을 거부할수 없었고 그래서 여지껏 계속 실험을 했던 것이다.

재단과 슈퍼컴퓨터. 둘다 실험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했다. 하지만 재단도 그렇고 슈퍼컴퓨터도 그렇고 믿을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어쩌면 얀의 육감이 더욱 정확할수도 있었다. 얀의 육감은 세명의 피실험자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반드시.. 위험해지면 반드시 실험을 중단시킬 것이다.'

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 그 상황이 닥친다면 그렇게 할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만큼 재단에서 가하는 압력이 강하기도했다.

얀은 천천히 본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피실험자들의 체력상태는 양호했다. 레이 역시 열흘 사이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얀은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실험실 내에 있는 연구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즉,실험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러자 한 연구원이 소리쳤다.

"DNA 각성 시뮬레이션 작동 준비!!!"

그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연구원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S 정신물질 주입!!!"

"맥박,혈압 정상!!"

"발작 보호장치 가동!!"

"세 명의 피 실험자 모두 안정상태입니다!!"

"S 정신물질 주입 완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작동준비!!"

"제 21번 UNIT 각성 준비끝!!!"

드디어 21번째 유닛 각성 실험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마지막 준비끝 보고를 끝으로 얀의 손이 내려졌다. 동시에 얀이 외쳤다.

"Program ON!!!!"

얀의 외침과 동시에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기계음들과 연구원들의 보고 소리.. 금속으로 만들어진 침대위에 누워있는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알수 없는 수많은 물체들과 사람들이 머리속을 스쳐지 나갔고 이상한 기호들이 뇌를 관통하여 사라져갔다. 그리고는 이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늘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부짖음.. 말라비틀어진 나무들과 곳곳에 보이는 금속으로 된 집들.. 어느새 그 세상은 현실세상을 닮아가고 있었다.

"레이. 괜찮아?"

카인이 허리를 굽혀 숨을 헐떡이는 레이에게 물었다. 레이는 애써 허리를 피며 말했다.

"하악 하악. 난 괜찮아.. 걱정하지마."

카인은 레이가 전혀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잭을 바라본 카인은 잭의 표정 역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놀랐다.

지금껏 그 누구보다 강할것 이라고 생각하던 잭이었다. 적어도 카인에게 있어서 잭이란 존재는 정말 믿을만한 존재였다.

그런 잭 마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카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잭은 카인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고는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바뀐 표정변화가 어색한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카인은 잭의 마음을 알았는지 미소로 받아주었다.

"카인 이제 이곳에서 어떻게 하지? 언제까지 이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잖아"

잭의 질문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최초 등장한 곳 근처만 살피는 정도였다. 그 이상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모를 괴물들만 몇 만났을뿐 별 소득이 없었기때문이었다.

"나.. 난 무서워 이곳에 그냥 있으면 안될까?"

레이였다. 레이는 괴물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 레이의 모습에 카인은 마음이 아파왔다.

"그렇지만. 앞으로 내딛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할수 없어. 우리의 유전자가 각성된다는 것 역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행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것이라 생각해. 빠른 성과를 얻어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길은 우리가 우리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카인의 말에 잭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레이 힘들때일수록 더 맞서 싸워야하는거야. 움츠려들면 움츠려들수록 더욱 힘들어질뿐이야. 힘내!"

잭의 말에 약간 힘이 생겼는지 레이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소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카인,잭.. 우리 할수 있을거야.. 히힛.."

모처럼 이세계에서 웃음을 보인 레이를 보고 카인과 잭 둘다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셋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카인 일행이 십분정도 걸었을때였다. 전에도 보았던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계속 있던 일이었기에 카인들은 시큰둥했다.

"쳇.. 또 그 녀석들이군. 아직도 매운맛을 덜 봤다 이건가"

잭이 투덜거렸다. 괴물이 공격한적은 단 한 번 뿐이지만 그래도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런 잭을 향해 카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방심할순 없어. 저번처럼 또 공격한다면 위험할수 있다구 한두 녀석이 아니잖아.."

괴물들은 수십마리정도였다. 처음 공격을 당했을때는 두세마리가 따라오다가 그 중 한 녀석이 공격했었다. 그 공격은 잭의 주먹에 무산되었었다. 만약 녀석들이 모두 떼거지로 공격해들어온다면 결코 유리한 싸움은 될 수 없을것이다.

카인은 자신의 몸이 예전만 같다면 녀석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뇌리속에 '카자마' 라는 이름이 지나갔다.

'반드시 프로젝트에 성공해서 녀석을 이기리라'

카인은 왼팔로 허리에 매달려있는 광목검을 쓰다듬었다. 여전히 그곳에는 광목검의 손잡이가 있었다. 약간은 안심이 되는 듯 카인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조금 더 갔을때였다. 언덕을 막 지나쳐 앞을 내다보았을 때 거대한 도시 풍경이 앞에 놓여있었다. 적막한 도시.. 마치 티탄시를 보는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 도시가."

레이였다. 레이는 마치 죽음의 도시를 연상케 하듯 어두운 분위기의 도시를 보고는 표정이 약간 상기되어있었다.

"이번 유닛은 저 도시에 난관이 있겠군"

잭이 중얼거렸다. 이세계(離世界)에서의 행동양식은 DNA 를 각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요소였다. 그걸 잘 아는 그들로서는 이제 맞딱뜨린 도시에서의 벌어질 일들이 실험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카인.. 저곳에 갈꺼야?"

레이의 질문이었다. 약간은 겁먹은 듯 보이는 그녀를 카인은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차게 말했다.

"물론!! 우린 잘 할수 있을거야!!"

잭 역시 아무말 안했지만 무언의 동의로써 이를 악문채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천천히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도시의 모습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금의 도시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에 아스팔트 도로. 그런 모습들을 가진 도시가 아직 여러군데 남아있었기에 그들은 다소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적어도 괴물이 사는 소굴처럼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도시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건가."

잭이 혼자 중얼거렸다. 잭의 목소리가 워낙 굵기에 그 작은 중얼거림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얀 박사님께서 그랬어.. 현실세계에서의 공포심이 지금 이세계(離世界)에서 현실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이 맞다면 이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점점 변해갈거야"

카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레이가 말했다.

"맞아 티탄시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말은 생략했지만 카인과 잭은 이해하고 있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일행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어? 녀석들이 사라졌어!"

카인의 말에 잭과 레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그랬다.

지금껏 그들을 호위?하듯 따라오던 괴물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이상할 노릇이었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이제 뭐하지 아무도 없는 것같은데.. 나 배가 고파"

레이는 한손으로 배를 만지며 배고픈 시늉을 했다. 잭 역시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카인은 하는 수 없이 도시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세계에서의 모든 것들은 현실과 같았다. 배고픔,수면욕,배설욕 등등 말이다.

카인 일행이 주위를 둘러본후 한 음식점을 찾을수 있었다. 음식점이라기보다 빵집에 가까운 점포였다. 점포 안으로 들어간 셋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빵 하나를 집은 레이는 천천히 빵을 한입 먹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우와! 정말 맛있다.. 카인! 잭! 어서 먹어봐 굉장히 맛있는데?"

레이의 외침에 카인과 잭도 빵을 하나씩 집어들어 먹기 시작했다.

레이의 말대로 상당히 맛이 좋았다. 입에 가득 빵을 머금은채 잭이 말했다.

"와. 정말 맛있는데? 레이 네가 만든것보다는 못하지만 말야 헤헷"

잭의 칭찬에 레이는 기분이 좋아진 듯 활짝 웃었다. 그때였다.

'쨍그랑!!!'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레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먹던 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슨 소리지?"

카인과 잭은 서둘러 가게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엄청난 광경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럴.수가. 도대체.."

카인이 절망에 가까운 신음소릴 내었다. 잭 역시 암담한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지금껏 그들을 쫓아왔던 못생긴 괴물 수백마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그 울부짖음에 유리창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무서운 광경이 아닐수 없었다.

뒤늦게 카인을 따라나온 레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엄청난 공포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던 것이다. 그 괴물들은 늑대처럼 생긴 외모에 붉은 눈과 6개의 다리,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머리부분도 굉장히 추악하게 생겨 쳐다보기만 해도 토악질을 해버릴것 같은 괴물들이었다.

카인은 레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이상한 점은 녀석들이 향하고 있는 곳이 일행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행과는 약간 떨어진 쪽을 바라보며 수백마리의 괴물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잭. 저들의 목표가 우린 아닌것같은데?"

카인의 질문에 거구의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녀석들이 향하고 있는 저 건물에 뭔가가 있다고밖에 생각할수 없어.. 우린 안중에도 없잖아.."

둘의 대화를 들은 레이는 다소 안심이 되는 듯 카인에게 바싹 붙어있던 몸을 약간 떼었다. 카인 일행은 괴물들의 행동을 주시하기로 했다.

아직 녀석들의 위협이 없는 상황하에서 돌발적인 행동을 할수는 없었다.

"우선 가게 안에서 녀석들의 행동을 살펴보도록 하자."

카인의 제안에 모두들 동의하였다. 셋은 재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괴물들의 동태를 살폈다. 괴물들은 한참을 울부짖더니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누군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괴물들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추하게 생긴 녀석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괴물들이 약간씩 뒤로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대장처럼 보이는 괴물앞에는 한명의 사내가 서있었다. 그 사내의 손에는 검 한자루가 쥐어져있었다. 마치 둘은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는듯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잠시 후 대장 괴물이 사내를 향해 돌진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 속도에 놀란 것은 카인이었다. 다른 괴물들과는 차원이 틀린 속도였다. 하지만 더 놀랄일은 그 사내의 대응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단 한 번의 검이 움직였을뿐이었다. 카인은 그 사내의 움직임을 간신히 볼수 있었다.

아무리 몸은 폐인이라지만 상대를 파악하는 그 관찰력까지 폐급은 아니었다. 상대의 실력이 엄청남을 깨달은 카인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검의 움직임처럼 말이다.

사내의 한 번의 일초로 대장괴물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사내의 놀라운 실력을 깨달은 괴물들은 모두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괴물들은 몇분도 되지 않아 도시 밖으로 도망친것처럼 보였고 남은 것은 사내뿐이었다.

아군인지 적인지 모를 사내에게 일행의 관심이 쏠렸다. 어찌되었든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인간이었다. 그 사실이 일행의 발걸음을 사내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사내는 세명의 인간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약간 경계하는 듯 보였다. 검 손잡이를 어루만지는 사내를 본 카인은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마도란씨!!!!"

사내는 마도란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카인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마도란? 난 마도란이 아니오. 당신들은 누구길래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게요? 이곳은 무척 위험한 곳이오."

사내의 목소리와 생김새.. 모든 것이 마도란과 일치했다. 하지만 사내는 마도란이 아니라고 말했다. 카인은 대충 정황을 알수 있었다.

자신의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은인인 마도란이 이세계(離世界)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공포감이 이 세상에서 등장하듯이 뇌리속 깊숙히 존재했던 기댈수 있던 존재 마도란도 나타난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도란이 아니었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의해 약간은 변형된 이성을 지닌 다른 하나의 인간으로 재창조 된것이다.

그런것이야 어쨌든 상대는 적이 아닌 아군이었다. 아니,아군이란 확신은 없었지만 적이 아니란 확신은 있었다. 카인 일행을 경계하기는 했지만 해칠의사가 없음은 틀림없었기때문이었다.

"카인.. 아는 사람이야?"

잭의 질문에 카인은 간략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공포심만 이 세상에 나타나는게 아닌것같아. 한때 나와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인데.. 등장했어.."

카인의 말을 잭은 쉽사리 이해했다. 극도의 공포심이 만들어낸 괴물들처럼 다른 한편에 자리잡은 이성이 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었다.

카인과 잭의 대화를 이해할수 없다는 듯 사내는 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난 듯 서둘러 말했다.

"우선 이곳을 피하고 봅시다. 이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오.. 다른 장소로 이동해 다음 행동을 취하도록 합시다."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도시 외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스피드였다. 카인은 그를 따라 달렸고 잭은 걸음이 느린 레이를 안고 뛰기 시작했다.

일행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때쯤이었다. 흩어졌던 괴물들이 더 많은 수의 동료들을 이끌고 도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일행은 사라진 뒤였다. 거친 숨을 내쉬는 카인 일행을 본 사내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댁들은 누구길래 그런곳에서 있는게요? 그곳은 괴물들이 장악해버린 도시란 말이오.."

걱정하는 투로 물어본 것이었지만 레이는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는 아저씨는 왜 그곳에 있었던 거죠? 또 왜 그런 괴물들과 싸우는거죠?"

당돌한 아가씨의 질문에 사내는 약간 황당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이내 '피식'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도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은 없었소. 다만 당신들이 죽음의 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만 둘수 없어서 쫒아 들어갔던거요"

사내는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카인 일행을 보고 뒤따라 가던중 괴물들과 싸웠던 것이다. 사내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을 안 괴물들이 실력을 시험해본후 도망쳤던 것이다. 퉁명스런 레이에 비해 카인은 천천히 목례를 한후 말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저희들의 생명을 구해주셔서요.. 제 이름은 카인입니다. 이 덩치 큰 친구는 잭이고. 이 예쁜 친구는 레이라고 합니다."

카인이 정중하게 인사하자 사내 역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만나서 반갑소 난 운(Un,雲)이라고 합니다. 그냥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검객이라오.. 후후훗."

운이란 사내는 맥없이 웃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에게서 엄청난 자신감을 느낄수 있었다.

'운의 전신은 마도란씨다. 검술이 고강한게 이상할리 없지.

여하튼 우리의 여행도 여기서 전환점이 생기게 되는구나.'

카인은 운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는 뭔가 야릇한 느낌이 드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공포' 였다.

'운 처럼.. 카자마 역시. 이 세상에 등장한 것인가. 어째서 녀석의 느낌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지..'

카인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 운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운은 카인이 이상한 질문을 하는것에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질문을 했으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당신은 마치 다른 세상 사람같군. 이곳은 어느 순간부터 악마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악마의 소행으로 알고 있소. 난 다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오."

운은 최근 있었던 몇가지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평화롭던 세상에 먹구름(黑雲)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름 모를 괴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괴물들은 악마의 지배를 받는 것들이어서 사람들을 공격하여 도시를 빼앗는다는 얘기들이었다.

운의 말에 카인 일행은 다소 슬픈 표정이 되었다. 운과 같은 이 곳 사람들은 그 이유도 모른채 괴물들의 피해자가 되어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인 일행은 그 이유가 자신들 때문이라는 사실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지배를 받는 괴물들이라는 말은 소설책에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였지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카인들이 있는 이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 속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악마란 존재는 없다. 분명 우리 셋중 누군가의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일 것이다. 그 존재가 무엇이든.. 그 존재를 극복하지 못하는한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

카인은 알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의 중요 영향 요소중 최후의 난제가 바로 운이 말한 그 악마일 것이라는 것을 잭 역시 카인과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세상이지만 하나의 세상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게 틀림없었다. 그러한 세상이 알수 없는 변화로 인해 붕괴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잭 자신의 사명은 그 세상을 구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악마는 바로 내 안에 있겠군.. 나 자신과의 싸움인가'

잭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은 구름으로 뒤덮혀있는 하늘은 다시금 햋빛을 내리쬘수 있을지 의문스러울정도로 짙은 검은색이었다.

레이는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악마의 지배를 받는 괴물들이 판을 친다는 말에 두려운 듯 몸이 떨리고 있었다. 어느샌가 카인옆에 바싹 붙어있던 레이는 카인의 팔을 붙잡고 기대었다.

카인은 레이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은후 운을 바라보았다. 운은 마도란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운과 함께 이 세상에서의 나 자신의 적과 싸워야할것이다.

'그 적이. 카자마. 너라면. 반드시 이기리라.'

운과 카인 일행은 천천히 발걸음을 딴 곳으로 옮겼다.

푸른색 머리에 다소 어린 듯 귀여운 얼굴을 지닌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하는 일도 상당히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지 누가봐도 지적으로 생겼다고 말할정도였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봐.. 요즘 너무 우울해 있는거아니야?"

-

"후훗 우울하긴. 누가 우울하다구 그래?"

사내의 질문에 답한 남자는 사내의 머리색과는 상반되게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바싹 말라있어서 그런지 웃으면서 대답한것이 화내는 투로 들릴정도였다.

"자네가 그렇게 대답할때는 우울한게 틀림없어. 우울하지 않다면 아무말도 안했겠지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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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역시 자넨 못속이겠군. 요즘에 걸리는 일이 너무 많아.. 모든 일이 엉키고 있다구.."

"아직도 파인리히 생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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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리히것도 그렇고 오래전에 1호 일도 그렇고. 요즘엔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는 쉐도우 프로젝트도 말썽이야.."

남자의 말에 푸른색 머리의 사내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데? 설마 쉐도우 프로젝트도 난관에 봉착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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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아니야 셋다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아마 계속 실험을 진행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2명 이상 성공할수 있을거야."

"그럼 된거 아니야? 제외된 한명은 그 레이라는 소녀겠지? 어차피 그녀는 애당초 성공할거란 보장이 없었잖아 그것 때문에 그래?"

사내의 질문에 붉은색 머리의 남자가 한참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필터를 하나 꺼내어 물고는 힘껏 들이마셨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사내는 답답한지 남자를 계속 응시했다.

"레이는 네 말처럼 걱정하지 않아. 잭이란 녀석이 문제지.. 녀석이 우리의 ADIP 계획을 파헤치려하고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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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구???"

"그게 그런 계획인지는 모를테지만. 어쨌든 녀석이 우리 재단에 대해서 알아보는것같아 감시를 붙여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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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를 붙인 후에 녀석의 행동은 어떤데?"

"녀석도 눈치는 있는지 행동이 많이 둔화되긴 했어. 하지만 놀랍게도 녀석은 피실험자들의 유전자 구조가 묘하게 일치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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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조금만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다면 왜 그래야하는지도 알아냈겠군.."

"이봐 지크프리드!! 말이라도 함부로 해선 안돼!!"

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지크는 양손을 흔들며 웃었다.

"이봐.. 지오!!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잖아.. 난 단지 일을 확실히 해두고 싶은 마음에서 한 말이라구 이왕 그렇게 된거 녀석을 없애버리는게 어때?"

지크란 사람의 귀여운 이미지와는 다른 무서운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런 지크를 지오는 한숨을 내쉬면서 바라보았다.

"녀석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명분이 없어. 특별한 단서를 잡은것도 아니고 심증만 가지고 그럴순 없는 일이야. 그렇다고 해서 가만 둘수도 없는게고.. 그래서 요즘 이렇게 짜증이 나는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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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지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게 어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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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쉐도우 프로젝트 말야. 그 시뮬레이션 프로 그램을 약간만 개조한다면 녀석을 죽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지크프리드의 말에 지오의 눈빛이 묘하게 이글거렸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던 지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후후훗.. 그런 방법이 있었군.. 요즘 원로원으로 보고되고 있는 얀소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이세계(離世界)가 아주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다지..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도 녀석들은 눈치 못챌거야.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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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잭이란 녀석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거 아니야?"

"후훗 처음 실험예상결과는 그랬었지 하지만 실험을 할수록 이상하게 카인이란 녀석의 수치가 더욱 좋게 나오고 있어. 녀석은 그 세상에 들어갈수록 정신력이 강해지고 있다구.. 이상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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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말 이상한 친구로군. 그렇다면 뭘 망설이나? 우리의 목표에 방해되는 자들은 하나도 남겨놔서는 안돼. 더 이상 실패는 불필요하다구.."

지크프리드의 말에 지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무엇을 상상이라도 하듯.

낡은 옷을 입고 그것에 달린 모자를 써서 붉은색 머리카락이 보일까 말까 하는 사내가 세라고닉으로 만들어진 거릴 걷고 있었다. 묘한 옷차림때문인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이는 그는 파인리히였다.

'도대체 나를 쫓는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나의 기억은 어째서 아우로페에 대한것뿐이란 말인가'

파인리히는 아직도 과거의 기억을 되찾지 못한 듯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작자.. 즉 타렌의 추격에서 겨우 겨우 도망치고 있던 중이었다.

저번 전투에서 타렌을 물리쳤다고 생각했었는데 왠지 그를 또 마주칠것만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우로페 너와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라도.. 난 반드시 과거를 알아내겠어 나의 손에 흐르는 이 느낌.. 뭔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향수 전설.. 기억.. 과거.. 아직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지만 반드시 알아낼거야'

파인리히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언젠가는 글랜시아 시로 다시 돌아갈 날이 올것이라는 것을.........

'그곳이 내가 기억할수 있는 가장 첫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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