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33화 (33/120)

제 목: 37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37

[주석] -4- 레이(죽는 것은 불행이 아닌 것을...) (1) 주석 4. 잃어버린 3장(흑운의 장)

-레이(죽는 것은 불행이 아닌 것을.)-벌써 쉐도우 프로젝트가 진행된지도 3년 남짓 지나고 있었다.

연구소의 분위기는 처음 시작할때와는 약간 변한 상태였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기때문이었다.

얀박사는 이카루스가 실종되는 사건을 겪었다. 사실상 그녀는 납치된것이었는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연구소 내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재단에서 발표한대로 다른 종족에 귀화(歸化)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껏 다른 종족과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종족친화론자는 있었어도 직접 귀화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기때문이었다.

종족친화론자도 아닌 이카루스가 그런일을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얀 소장은 처음 몇 달간은 무척 괴로워하며 지냈었다. 물론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카인은 그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다는 슬픔 카인은 얀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슬픔을 견디어냈다는 것과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꿋꿋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상 얀에게는 이카루스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기에 삶의 의지가 꺾이지 않은지도 몰랐다.

카인처럼 그의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더라면 그 역시 삶을 포기했을것이다.

하여간 얀은 강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벌써 그 납치사건이 일어난지도 15개월정도가 지났다.

그간에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20 유닛의 쉐도우 DNA 를 각성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셋 모두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삼년 그 시간은 세명을 모두 변화시키고 있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조용하던 잭은 레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꽤 말수가 많이 늘고 남을 재밌게 해주려는 행동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덩치에 그런 행동을 하니 안웃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약간은 백치같은 레이는 여전히 바보스럽고 이상했지만 전보다 카인과 잭을 잘 따랐다.

그의 그런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 최초 시뮬레이션의 천국같은 세상을 창조해냈다고 연구원들이 생각할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카인이었다. 어둡고 침울한 그의 낯빛은 어느덧 온화하게 바뀌어있었다. 가끔 혼자 생각에 잠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정상인들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던것이다.

그들을 보며 웃음지을수 있던 건 얀이었다. 이카루스를 잃은후에 그는 뭔가 머리속을 관통하는 한마디 메아리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그 외침은 그에겐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일에 매진했던 것이다. 삼년이란 시간은 그들의 생각과 행동.. 모두를 바꾸고 있었다.

21번째 유닛의 각성 시뮬레이션 준비를 하고 있던 얀은 모처럼 세명의 피실험자들을 데리고 야외로 놀러나가기로 했다. 티탄시는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엄청난 방어시설을 가진 도시였다. 그 뜻은 결코 다른 종족이 침입할수 없다는 뜻도 되었다. 광선형 돔 결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었다.

레이와 카인 그리고 잭은 티탄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아케론강을 찾았다. 물론 얀도 같이 말이다. 모처럼 밖에 나온 세명은 정말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들어 갈수록 실험이 힘들어지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아마 11번째 유닛을 각성할때였을 것이다. 10번째 유닛까지는 새로운 세상에서 유유자적하게 풍류(風流)를 즐기듯 생활했던 세사람이었다.

얀이 경고한 불안정한 유전자였던 11번째 유전자는 약간은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었지만 뭔가 달라진 점이 있었던 것이다.

완벽(完璧)의 아름다움이 어디서 부터인가 조금씩 깨어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얀과 연구진들은 아직 분석이 덜 된 유전자의 불안정성이 안정적이고 각성된 유전자들과 모종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안정유전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과도 기적 현상이라고 단정지었다. 그 후로 그런 현상은 계속되었고 밝은 햇살만 내리쬐던 그 세상에 먹구름(黑雲)이 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점점 더 유닛을 각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분 걸리지 않던 각성기간이 10번째 유닛 이후부터는 시간단위로 바뀌다가 15번째 이후 유닛부터는 일단위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고된 실험이 아닐수 없었다. 가장 최근의 실험이었던 20번째 유닛을 각성시킬때는 일주일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피실험자들은 최근 한 번의 시뮬레이션을 치루면 체중이 거의 10킬로그램 가까이 줄어들곤 했다. 그만큼 다른 세상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다는 말이었다.

아케론강은 폭은 좁지만 물살이 굉장히 빠른 강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보통 강을 유람하기 위해 배를 타는 다른 강들에 비해 아케론강에서는 강변을 거닐며 강을 관람하는 광관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얀 일행역시 강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아주 오래전.. Death War(죽음의 전쟁)이 있은후 세상은 온통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물과 공기 토양. 모든 것이 오염된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아케론강은 바닥이 비칠정도로 맑았다.

모처럼 밖에 나온 것이 너무 즐거운 듯 레이가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3년전보다 훨씬 말라있었고 두눈 역시 퀭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나의 실험이 끝난후 꽤 오랜시간을 휴식한다고는 하지만 최근들어 급격히 떨어진 그녀의 체력은 언제까지 그녀를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카인 너무 이쁘다. 그치? 우리가 가본 세상에도 저런 강이 있었는데"

카인은 레이의 생각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 세상에도 아름다운 강이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손을 데면 더러워질까봐 그럴수 없던 아름다운 강.. 어느날부터인가.. 하늘에 드리워진 먹구름에서 검은 비(黑雨)가 내려왔다. 카인 역시 그때의 그 적막함을 잊을수가 없었다.

숨이 멎는듯한 느낌.. 아름다운 강은 어느덧 흑빛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더 이상 그 세상은 천국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분명 어딘가 잘못된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에 가고 싶어하던 셋은 더 이상 그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실험을 꺼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곳은 지옥도(地獄圖)를 연상케 할만큼 끔찍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카인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레이의 말뜻을 이해한다는 표시였다.

옆에있던 잭 역시 침울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최근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주는 유머리스트가 된 잭은 늘상 환한 표정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무슨 일을 겪든 그것을 바깥세상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신력이 강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방금전 레이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수는 없었다.

"그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군"

잭의 굵은 목소리가 메아리쳐나갔다. 작게 중얼거렸음에도 카인의 머리속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잭의 말대로 1년정도 되었을것이다.

이상하게 그 세상에서의 기억은 바깥세상에서도 또렷했고 종종 꿈에도 등장하여 그들을 괴롭혔다. 그 고통은 말할나위없이 심했다.

'한없이 상막한 공간 도대체 어째서지. 그렇게 아름다웠던 세상이 단 몇일사이에..'

카인은 얀의 분석결과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피실험자들의 불안감때문이라고 그 불안감이 가중될수록 그 세상은 더욱 추악하게 변해져만 간다고.

그건 악순환(惡循環)이었다. 처음의 미세한 불안감은 완벽한 세상의 헛점을 만들어내었고 그 헛점이 만들어낸 이상한 현상은 다시금 피실험자들의 불안을 자아내었다.

그 불안은 더큰 헛점을 만들어내고 이상한 일들은 더욱 증폭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겉잡을수 없게되버린 그런 현상은 피실험자들을 한 번 실험에 10Kg이상 체중을 줄일정도로 공포스럽게 변해있었다.

'공포는 극복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카인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느끼는 공포는 그런 세상의 적막함 따위가 아니었다. 그 세상이 그렇게 변한것의 주된 원인은 레이였던 것 같았다. 가장 순진하고 착한 레이가 그런 공포스러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카인도 그렇고 잭도 그렇고 그정도 환경이 바뀌었다고 두려워할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 두려운 것이 있었다. 아직 그 세상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세상에 존재하는것처럼 느껴지는 두려운 존재. 카인에게 있어서 어쩌면 극복해야할지도 모르는 강한 존재. 바로 카자마란 존재였다.

'어쩌면 현실세계의 공포가 그 세상에서 마각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은 카인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연구를 하는 중간중간에 이번 연구의 특성에 대해 세밀히 분석하던 잭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잭은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한 번 본 것은 거의 잊지 않는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외모만 그렇다뿐 보통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잭이 밝혀낸 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이번 실험을 위해 고른 자신과 레이,카인 이 세명의 피실험자는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DNA 적인 문제였는데 이것을 밝혀내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했다. 들키지 않고 이정도를 밝혀낸것도 엄청난 것이다.

DNA 적인 문제.. 잭,카인,레이. 세명에겐 정상인들과는 약간다른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잭은 선천적으로 태어날때부터 그 유전자구조가 달랐으며 레이와 카인은 후천적인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그 유전자구조가 변이되었던 것이다.

어떠한 계기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로인해 셋은 비슷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은 잭만이 알아낸 사실이었다. 사실 얀도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DNA 에 관한 분야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잭은 그렇지 않았다. 세명의 피실험자의 공통점은 오직 그러한 유전자적인 문제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런 유전자를 가진 우리들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했다면..

어쩌면 의외로 간단할런지도 모른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정상인이 아닌 우리들로 실험을 진행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유전자 구조가 필요한것이지??'

거기까지는 추측이 가능했으나 마지막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한 잭이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그것마져 밝혀낼 생각이었다.

그런 잭에게 요즘들어 이상한 그림자들이 주위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이제는 확연하게 느껴질정도로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어느정도 위험부담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녀석들이 이토록 빨리 눈치챌줄이야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건만'

잭은 알고 있었다. 재단에서 자신의 행동을 눈치채고 감시를 붙였다는 사실을 이 사실은 더 이상의 행동은 위험할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의 불안감이 시뮬레이션 속의 그 가상의 세상속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카인과 잭 둘다 현실의 불안감으로 인해 무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아 이거 먹어봐봐.. 내가 만들었어!!"

환한 웃음으로 먹을걸 꺼내놓는 레이는 현실속에서만큼은 다른 어느누구보다 행복한 듯 보였다. 레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던 카인은 칭찬의 한마디를 했다.

"와.. 정말 맛있다.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인데..?"

카인의 칭찬을 들은 레이는 뭔가 서글픔이 서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레이가 카인을 걱정할때마다 카인은 무뚝뚝하게 받아들이거나 화를 내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카인은 동생이 만들어주던 빵 생각이 났던것이다. 비록 칭찬을하기 위해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정말 씁쓸한 기분은 어쩔수 없었다.

그걸 레이가 알았는지 시무룩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슬픈표정짓지 말라는둥 아파하지 말라는둥 이상한 소릴 했을텐데 오늘따라 아무말없이 조용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은 미안한 감이 들었는지 카인은 한조각의 빵을 들면서 연신 맛있다는 말을 내뱉으며 꾸역꾸역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얀은 잭을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잭 요즘 뭔가 안좋은일이라도 있나?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여?"

얀은 재단에서 몇 명의 사람을 보내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몰라도 결코 좋은 목적으로 보냈을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 목적이 잭과 연관이 있는것같아 돌려서 물어본 것이다.

잭역시 얀의 의도를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믿을수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얀이 우직하고 청렴한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해도 그런 비밀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세상에서 속을만큼 속아봤던 잭이었다.

"아무일 없습니다. 다만.. 요즘들어 실험이 너무 힘들어져서요.. 헤헷.."

잭은 힘없이 웃었다. 얀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얀은 실험의 위험성이 커지게 되면 실험을 중단시켜서라도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할생각이었다. 아직까지는 위험하다는 판정은 내려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단과 컴퓨터가 내린 결론이고 얀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피실험자들의 초췌해진 모습은 늘 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J 그는 아직 살아 있을까'

얀은 강의 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빠른속도로 흘러내려가는 강물은 자신의 걱정을 싹 쓸어내려가듯 힘차게 격동하고 있었다.

그런 얀에게 카인이 다가왔다. 평소 카인을 좋게 보고 있던 얀인지라 둘은 꽤 사이좋게 지내고 있던 편이었다. 카인이 다가오자 얀이 미소지었다.

"소장님. 시뮬레이션으로 접속한 그 이세계는.. 점점 우리의 현실처럼 변해가고 있어요.. 아름다웠던 자연환경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고 최근 실험들에서는 상막한 공간속에 이상한 생명체들이 지나다니곤 했죠"

카인은 17번째 유닛을 각성할 때 등장했던 이상한 생명체를 생각해냈다. 그 녀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셋을 향해 덤벼들었었다. 검을 가지고 있지 않던 카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허리를 쳐다보았는데 허리에는 광목검(光木劍)이 매여 있었다.

놀란 나머지 검을 빼어들어 공격을 했지만 이미 무인으로선 폐인이었던 카인은 그 괴물을 베어내지 못했다. 다행히 카인을 죽일 듯이 달려들던 그 괴물은 잭의 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그 공격으로 호되게 당했는지 주위를 서성댈뿐 더 이상 공격하지는 않았었다.

그 이후로 그 생명체와 다른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은 셋의 주위를 늘 배회하고 있었다. 얀에게는 괴물과 한차례 싸움이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얀이 걱정할까봐 셋은 말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최근 실험에서 주된 불안감은 바로 그 괴물들때문이었다.

"그래. 카인.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장담할수 없어. 비록 20번째 유닛까지는 견뎌왔다고는 해도 27번째까지 성공하리라곤 장담할수 없어. 조금이라도 잘못될 경우 난 바로 실험을 중단할 생각이네. 재단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나에게 어떠한 처벌을 내리든.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는 말이야."

얀의 말은 진심이었다. 카인은 얀의 맑고 깊은 눈을 보며 진심임을 느낄수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상대는 얀뿐이었지만 그런 얀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어쩔수 없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는 카인에게 얀은 천천히 어깨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약간의 힘을주어 어깨를 움켜쥐었다. 격려의 표시였다. 그런 얀에게 카인은 미소로서 대답을 했다.

제 2지역구. 글랜시아시. 생체공학연구소푸른색 장발의 이지적인 얼굴을 지닌 사내는 몸이 많이 안좋은 듯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벌써 그렇게 요양을 한지 3달째였다. 사내는 그랜드 포스 오너로서 타렌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제기랄 이렇게 누워있는것도 이젠 지겹군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군..'

타렌은 씁쓸한 듯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상처는 다 낳았지만 아직 움직일수 없는 단계였다. 극도의 방어용 매너 포스를 사용한 휴유증으로 몇 달동안 요양해야했던 것이다.

'파인리히 어째서. 녀석에게 내가 세 번이나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는가. 젠장'

타렌은 카드모스마을에서 세이렌들과 전투를 벌이느라 한 번 이랬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1년여 가까이 파인리히라는 녀석을 쫓아다니던 중 3개월전에 녀석을 붙잡을수 있었다. 아니, 거의 다 붙잡았었다. 하지만 파인리히의 최후의 역공으로 엄청난 부상을 입고 이렇게 누워있던 것이다.

타렌은 침울한 표정으로 멍하니 생각에 잠기었다. 그리고.........

3년전.

타렌은 카자마를 데리고 중앙지역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우주공간으로 도약할수 있는 셔틀크루져였다. 초강력 티라늄으로 만들어진 셔틀크루져는 전자기파의 방해에도 무관하게 먼지층을 뚫고 우주공간으로 도약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지오의 명령대로 카자마를 원자력 천공위성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중앙지역구 크레타시에 도착한 타렌은 그곳에서 접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접선자와 만나기로 한 곳은 크레타시의 한 외곽지역의 작은 역이었다. 오래된 역이라 더 이상의 운행은 없었고 거의 폐가의 형태를 띄는 곳이었다.

카자마는 도망칠 구멍을 찾아보았지만 그때까지 타렌의 헛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수 없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타렌이 말한 '그곳'에 쏠려 있었다. 차라리 그곳에 순순히 붙잡혀 가서 무슨일인지 알아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던 것이다.

접선자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역에 나타났다. 그들은 그들만의 암호로 서로를 알아본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셔틀크루져는 이 장소에 있습니다. 타렌씨.."

접선자는 종이쪽지 하나를 타렌에게 건네주었다. 그 종이에는 셔틀크루져가 위치해있는 곳의 약도가 적혀있었다. 타렌은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접선자는 자신의 임무가 끝이 났음을 확인받고는 사라져갔다.

타렌은 카자마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그곳에 갈수 있다. 후훗 아마 가보면 기억이 되살아나겠지.."

카자마는 타렌이 자신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사실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말을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 질문은 자신을 향해 던지는 궁극적인 목표였다.

'기억을 되찾는다 무슨 소용이지 난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 아니, 만족할수 없을지는 몰라도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다. 난 이제 새로 시작하려하고 있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 그렇다고 과거를 알고 싶지도 않다. 난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고'

카자마는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길을 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굳이 '그곳' 에 갈 필요는 전혀 없던 것이다. 아니,어쩌면 '그곳'에 가게 되면 더욱 추악한 나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나에 대해 잘 안다면 어쩌면 날 이렇게 만든 녀석들일지도 모른다.'

그랬다. 카자마의 아버지는 카자마에게 늘 그런 말을 했었다. 넌 원래는 인간이었다고 그의 말에는 뭔가 섞연치 않은 것이 있었다.

원래는 인간이었지만.. 누군가 인위적으로 괴물을 만들었다는 뜻인가.

카자마는 두가지 결정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타렌을 따라가서 과거를 알아내느냐.. 아니면 탈출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느냐 전자는 미래가 불안한것이었고 후자는 확실히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는 안정성이 있는 것이다.

'더이상 세상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카자마는 결심했다. 그리곤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몇일이 지나서 그런지 상처가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보통 사람의 몸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성을 지닌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카자마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상이 많이 회복되었음에도 그는 상처가 심한 듯 행동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방심은 아무리 강한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것.'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타렌에게 씁쓸한 미소를 보낸 카자마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라도 한다는 듯 타렌은 앞서서 걸어나갔다.

약도에 그려진 곳에 도착한 둘은 앞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을 볼수 있었다. 언뜻 보아도 문을 닫은 공장같아 보였다.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된 듯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고 거미줄도 군데군데 보였다.

'이런곳에 셔틀크루져가 있을줄이야 정말 놀랍군..'

타렌은 지오의 부하였지만 재단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했다. 그는 그랜드 포스 오너였지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타렌이기에 카안드리아스 재단의 놀라운 재력과 숨겨진 힘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안으로 들어간 둘은 공장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이제는 쓸모 없어져버린 기계들이 수없이 놓여있었고 한쪽 구석에 셔터로 된 문이 달려있었다.

"저곳이군"

타렌은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카자마는 바로 이때 타렌의 긴장이 극도로 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 절호의 공격 찬스였던 것이다. 카자마는 잘 알고 있었다.

살기를 내비치는 것은 적에게 공격신호를 보내는것과 같다는 것을.. 이미 우주(宇宙)와 하나가 되는 법을 아는 그였다. 근처의 쇠파이프를 하나 주워들은 카자마의 행동을 타렌은 눈치챌수 없었다. 왜냐면 셔터에 달려있는 잠금장치를 해제시키는 중이었기때문이었다.

카자마는 쇠파이프를 힘주어 쥐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검기는 나뭇가지를 쥐어도 만들어낼수 있다는 것을 이곳저곳에 상처가 남아있긴했어도 부러졌던 뼈들은 다 붙은 상태였다. 카자마는 숨을 죽이며 타렌에게 다가갔다.

타렌은 잠금장치를 보안카드와 비밀번호 장입으로 해제시킬수 있었다. 셔터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쉬이이이익!!'

엄청난 금속이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타렌의 귓전을 때렸다.

아무리 카자마가 살기를 없앤후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살수(殺手)를 뻗치는 순간에 살기는 없애지 못했다. 정말 경쾌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타렌의 목은 순식간에 날아갈 판이었다.

그 짧은. 단 1초도 안되는 시간에 타렌은 살기를 느낄수 있었다.

카자마가 너무 쉽게 자신에게 굴복한 것이 이상했지만 그 뒤로 한 번도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아 약간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타렌은 피하기엔 늦은 것을 깨닫고는 오른 팔을 들어 쇠파이프를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카자마의 기(氣)가 실린 쇠파이프를 그대로 막는다면 팔이 잘리면서 목도 잘려나갈것이다. 타렌은 오른팔을 들면서 거대한 매너 포스를 집중했다.

포스를 집중하는 것은 강한 포스일수록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단시간내에 포스를 집중한 타렌은 오른팔주위의 공기입자들을 방어막으로 사용해 막아내려했다.

하지만 역시 짧은 순간에는 많은 힘이 모이지 않았다. 쇠파이프는 공기입자로 된 방어막을 순식간에 뚫은 후 타렌의 오른팔에 적중했다.

카자마는 타렌의 오른손이 잘려나가면서 목이 잘려나갈 것을 예상했지만 그것은 빗나가고 말았다. 오른손을 잘라낼 듯 파고 들어가던 쇠파이프는 타렌의 뼈와 부딪히는 순간 형언할수 없는 힘에 의해 뒤로 밀려났던 것이다.

타렌은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을 뚫고 자신의 팔에 적중한 쇠파이프에 매너 포스를 집중했던 것이다. 어떠한 물체라도 매너 포스를 이용하면 못움직일것이 없었다. 카자마의 공격을 뒤로 튕겨낸 타렌은 왼팔로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이미 오른 팔에서는 선혈이 낭자했다. 직접압박법으로 지혈을 했다.

"이런 젠장할 자식.."

타렌은 카자마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 타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카자마는 타렌이 쉴 틈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매너 포스란 것의 무서움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카자마가 다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공격해오자 타렌은 급히 왼손에 매너 포스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방금전의 기습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순식간에 그의 왼손에는 거대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타렌은 생사의 고비에서 생명을 단축시키면서 두배의 매너 포스를 끌어올리고 있던 것이다. 엄청난 공기의 소용돌이가 그의 왼손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카자마는 아랑곳 않고 \자로 베어들어갔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적의 약점을 끝까지 물고늘어져서라도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부상당한 타렌의 오른팔쪽을 약점삼아 공격하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타렌은 연신 입을 이죽거리며 왼팔에 모아두었던 공기의 소용돌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발산하며 몸을 틀었다.

거대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카자마의 쇠파이프를 향해 돌진했다.

카자마는 내력을 모아 있는 힘껏 소용돌이를 베어나갔다.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소용돌이었지만 엄청난 기(氣)가 실린 카자마의 쇠파이프를 막아낼수는 없었다.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었다.

카자마의 쇠파이프는 소용돌이를 뚫고 타렌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타렌은 차마 부상당한 팔로 쇠파이프를 막는 모험은 할수 없었다.

다만 부상당했지만 매너 포스를 집중할수 있는 오른팔로 약간의 방어막을 형성시킬수 있었다. 그 방어막은 꽤 역할을 잘 수행해내었다. 소용돌이를 뚫느라 파워가 줄어버린 쇠파이프를 옆구리에 강타당하기 일보직전에 멈추었던 것이다.

카자마는 쓴 웃음을 지었다. 빨리 기선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불리한 게임이었다. 상대는 원거리에서도 충분히 공격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들고 있는 쇠파이프조차 분해해버릴수 있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이번 공격이 실패한 것에 카자마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렌은 엄청난 피로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할수 없었다. 겨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는데 이제와서 다시 약한 모습을 보일수 없었기때문이었다.

타렌의 왼팔에 다시금 공기의 소용돌이가 모아지기 시작했다.

카자마는 다시 한 번 우주의 기운을 쇠파이프에 담아내고 있었다.

서슬퍼런 기(氣)가 주위를 은은하게 멤돌고 있었다. 카자마는 이대로는 이길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오른팔 부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왼팔로 공격을 하든 방어를 하든 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왼팔에 모인 저것만 피한다면 녀석에게 남은 것은 맨 몸뿐이다 후후훗'

카자마는 금새 타렌의 약점을 간파해내고 있었다. 한 번 공격을 막은후에는 꽤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짜낸 작전은 바로 허초공격이었다.

카자마의 쇠파이프가 타렌의 심장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날카로운 검은 아니지만 압도하는 파워가 실려있었다. 타렌은 막아내지 못한다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렌이 왼팔을 들어 소용돌이를 쇠파이프를 향해 발사했다. 그러자 거대한 소용돌이 안으로 쇠파이프가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카자마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져 왼쪽으로 굽이쳐 돌고 있었고 쇠파이프 역시 타렌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그어지고 있었다.

'이겼다!!!'

카자마가 약간의 확신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앞으로 나아가는것같던 공기의 소용돌이가 어느새 카자마의 등뒤에서 그를 덮치고 있는게 아닌가.

'퍼퍼펑!!!!'

간반의 차이로 타렌은 카자마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자마는 공기의 소용돌이를 배후에서 정통으로 맞고 옆으로 약 3미터정도를 미끄러지다가 쓰러졌다.

기술을 굴절시키는 것은 굉장히 고급 매너 포스였다. 90도를 굴절시키는데는 엄청난 매너 포스가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번것은 180도 이상 굴절시킨 공격이었다. 그만큼 타렌은 뛰어난 실전경험을 가진 그랜드 포스 오너였다.

소용돌이를 맞고 쓰러진 카자마는 한모금 피를 토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강력한 피부가 그에게 큰 상처를 당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자신의 공격을 맞고 일어서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타렌은 사색이 된채 카자마를 응시했다. 급작스런 포스의 집중으로 타렌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줄 알았던 공격에 당하고도 버젓이 상대는 일어섰던 것이다.

"후훗 게임이 재밌어지는군.."

타렌은 역시 뛰어난 지략가였다. 가장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냉정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카자마는 타렌의 그런 당당한 모습에 아직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리란 추측을 하고야 말았다.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카자마는 그 나름대로 우주의 진기(眞氣)를 끌어모으느라 여념이 없었고.. 타렌은 대부분 소진되어버린 매너 포스를 다시 이끌어내는데 정신없었기때문이었다.

"후후훗.. 오늘 네 녀석의 제삿날이다"

카자마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했던 그 카자마가 아니었다. 피맛을 본것인가. 야수와같이 변해버린 카자마의 눈에는 오직 살기만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타렌은 녀석의 말장난에 놀아날 수 없다는 듯 응수했다.

"웃기는 소리 난 누구에게도 져본적이 없으신 분이다. 너같은 기형생명체에게 진다는 것은 수치일뿐이야. 난 너의 비겁한 기습에 당한 것 뿐이라구.헤헷.."

타렌의 말은 맞는 소리였다. 기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카자마에게 이토록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리 없었다. 그렇다고 질 카자마가 아니었다.

"적끼리 기습은 있을수 있는 것이다. 방심한 네 잘못이지 그건 비겁한게 아니야. 멍청한 녀석 우헤헤"

카자마의 비웃음을 듣고 충분히 화가날법도 했지만 타렌은 아무말없이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었다. 더욱 강한 힘을 모을수록 그의 오른팔에는 피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둘다 이번 공격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남은 힘도 없거니와 시간을 끌면 둘다 동귀어진할 공산이 컸기때문이었다.

카자마의 쇠파이프는 이상한 기운들로 시퍼런 빛을 내뿜기까지 했고 타렌의 왼팔에는 공기가 분해되어 만들어진 입자들이 그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카자마의 기합소리와 함께 타렌 역시 소릴지르며 공격했다.

카자마의 쇠파이프가 타렌의 정수리를 향해 베어져내려왔다.

거대한 힘이 위에서부터 짓누름을 타렌은 느낄수 있었다. 타렌은 카자마의 비어있는 복부부분을 공격할까 하다가 쇠파이프를 향해 입자들을 발산했다. 일단은 살고 볼일이었다.

공기의 입자들과 검기가 서로 엉키어 엎치락 뒤치락 했다. 어느 하나의 힘도 우세하다고 판가름 할수 없었다.

잠시 후 쇠파이프의 미세한 분자구조의 틈새를 파고든 공기의 입자들이 카자마의 몸에 적중했다. 카자마는 순간적인 위험을 감지하고는 쇠파이프를 버린채 뒤로 덤블링했다.

공기의 입자들이 카자마의 몸에 닿았기는 했지만 그의 단단한 피부에 닿으려는 순간 덤블링으로 피해 큰 상처는 입지 않고 피할수 있었다.

카자마의 쇠파이프는 마치 불에 녹인 듯 일그러지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타렌이 뒤로 쓰러졌다. 카자마는 타렌이 쓰러진 모습을 보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미 모든 진기를 소모해버려 더 이상 걷지도 못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타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른팔의 부상으로 인한 출혈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무승부였다. 둘다 더 이상의 싸움은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그들의 일전은 끝이 나고 말았다.

'정녕 무서운 녀석이다. 녀석이 틈을 보이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기습에 당하지만 않았다면 난 이렇게 두눈을 뜨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카자마는 조용히 두눈을 감고 흩어져버린 기운들을 천천히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타렌은 카자마의 몸이 회복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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