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31화 (31/120)

제 목: 35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35

[주석] -3- 얀 이반(세명의 피실험자들.....) (7) -얀 이반(세명의 피실험자들)-숙소에 들어온 얀은 카인이 머물게 될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카루스와 카인이 있었다.

이카루스는 얀이 팔케넌과 대화하는 동안 카인에게 필요한 물건들과 숙소에서 지켜야할 일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얀이 들어오자 이카루스가 반겼다.

"얀. 카인씨에게 설명해야할 것들을 모두 가르쳐주었어요.

이제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해도 되지 않나요?"

이카루스의 말을 들은 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먼저 앞장서서 방을 빠져나왔다. 그 뒤를 따라 카인과 이카루스가 따라나섰다. 얀은 숙소 안에 있는 거대한 휴게실로 향했다. 이미 얀의 지시에 따라 다른 두명의 실험대상자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카인이 휴게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두명의 사람이 서있었다.

한명은 보통 사람처럼 생겼지만 왠지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 보이는 흐리멍텅해보이는 여자였고 다른 한 남자는 엄청난 거구에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져 마치 괴물을 연상케 할정도로 무식하게 큰 거인이었다. 체구가 체구니만큼 인상도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얀이 먼저 카인에 대해 소개했다. 멍청해보이는 여자는 실실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고 거인은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그냥 무뚝뚝하게 서있었다. 카인은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얀은 카인에게 멍청해보이는 여자에 대해 소개를 했다.

"이 친구는 레이(Lei)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라네 이 친구의 장기는 매너 포스를 사용할줄 안다는 것이지. 능력수준은 그랜드 포스 오너 수준이지만 그걸 사용할수 없는 처지라네.. 약간 자신을 잊어버린 불쌍한 친구지.."

얀의 설명을 들은 카인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완벽한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멍청이라 볼수 있었다.

얀은 자신보다 40센치는 더 커보이는 거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잭(Jack)이야 보시다시피 엄청난 힘을 가진 현대판 슈퍼맨이라 할수 있지.. 그의 손안에 잘못걸리면 갈비뼈가 으스러질테니 조심하게."

얀은 일부러 상막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농담을 던진 것이었는데 더 분위기만 살벌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유는 카인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때문이었다.

카인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보통 인간의 몸이 저렇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 생김새도 보통 사람하고는 약간 다른 듯 보였다.

카인의 머리속에서는 갑자기 카자마라는 사내가 떠올랐다. 기형인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사내.. 마치 사회 모든 것을 저주하고 부정하려는 듯 울부짖던 사내..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는 최후의 목표.. 카인은 왠지 그 사내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이 잭이란 친구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생길수 없었다.

적막한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은 이카루스의 한마디였다.

"배고프죠? 우리 뭐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자 레이가 따라웃었고 거구의 잭 역시 카인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일순간 분위기가 바뀌자 카인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얀은 이 세명의 각기 다른 피실험자를 데리고 과연 좋은 실험결과를 얻어낼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제2지역구 퉁지나 시티..

글랜시아시와 발카로스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퉁지나시는 규모는 작았으나 부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도시의 시설은 다른 도시들의 그것에 비해 정말 윤택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그런 퉁지나시에서 한명의 괴한이 온몸을 천으로 두른채 걸어가고 있었다.

'쳇. 역시 부자들만 사는 동네라 틀리군 젠장. 어째서. 내가 이 도시에 온거지.'

괴한은 어제 일을 떠올려보았다. 발카로스시에서 카인이란 사내를 이김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괴한은 갑자기 목표가 사라지는 충격을 얻어야했다.

카인이 등장하기 전에도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 때문에 유명한 사람들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검을 잘 사용한다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해치우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들이 자신보다 낳은 생활을 살고 있다는 것이 싫었기때문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중에 발카로스시에 도착했었다. 원래 목표는 발카로스시의 시장이었다.

평판도 좋지 않고 여성들을 데려다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파렴치한녀석이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돈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나같은 사람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썩을대로 썩은 자식들..'

하지만 녀석을 죽이진 않았다. 그 전에 카인과 마도란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괴한은 검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두명의 무인을 우연한 기회로 만날 수 있었다.

검술경연대회가 열리는 곳에 발카로스시의 시장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매복하고 있던 그였다. 매복하던 중에 카인과 마도란의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그 경기를 보면서 자신과 너무도 흡사한 검술을 구사하는 카인이란 녀석을 머리속에 새겼던 것이었다.

'그때 버인즈 녀석과 만난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후후훗.'

그는 카인이란 녀석을 머리속에 새겨넣은후 목표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대한 분노보다 검에 대한 집착이 컸기때문이었을까..

중앙회관에서 빠져나왔을 때 여러무리의 괴한들이 공격을 했었다.

바로 버인즈녀석을 필두로 한 종족차별주의자들이었다. 그의 외모가 추악했기때문일까. 그들은 다짜고짜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버인즈는 그런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바로 카인을 없애는데 도와달라는 제안 도와주기만 한다면 어떤 일도 도와줄수 있다는 말 역시 돈이면 다 되는줄 아는 녀석들의 개소리였다.

그때 폭발할 듯 솟아오르는 분노를 잠재울수 있었던 것은 카인과 조용하게 대결을 주선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그걸 받아들인후 카인과 대결할수 있었다.

카인이란 자가 어떤 녀석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그를 꺽는 것이 목표였다.

만약 카인을 꺽는다면 자신을 끌어들인 버인즈와 아버지의 부를 믿고 깝죽거리던 위그넌을 없앨 생각이었다. 물론 그럴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그는 목표를 달성했고.. 더 이상 목표가 없어졌다.

발카로스 시장을 공격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귀찮아졌다. 이상했다.

몇일 지나지 않아 수상한 자들이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실력은 대단한것임을 육감으로 안 그는 우선은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바로 어제만해도 녀석들에게 꼬리를 밞혀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었다.

하지만 쉽게 당할 그가 아니었다. 겨우 도망친 그는 퉁지나 시로 피해올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나를 쫓는것이지. 후훗 그리고 난 어째서 이렇게 돈많은 녀석들이 사는 곳으로 온것일까.. 아직도 그런 녀석들에 대한 분노가 무의식속에서 나를 이곳으로 부른것일까 젠장.'

그는 잠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쭈글쭈글하게 생긴 각질들로 덮혀있는 손등.. 인간의 손등이었지만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더럽고 추악해보였다. 아직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더라도 몸의 대부분이 헤켈처럼 변해있었다.

'젠장.. 난 헤켈이 아니라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 난 헤켈이 아닌 인간이라구 그런 아버지 자신도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카자마 그게 그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를 만난후 붙여진 이름.. 그 전에는 뭐라 불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치 숫자로 불렸던것 같은데 기억할수도 없었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추악한 외모를 싫어하던 인간들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던 카자마는 죽기 직전에 구원을 받았다.

죽어가는 카자마를 구해준 것은 카자마와 비슷하게 생긴 헤켈이었다.

아니,그도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이라 할수 없을정도로 헤켈처럼 변해있었다. 서로의 처지를 알고 있듯 둘은 그렇게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둘다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는 묻고 싶지 않았다. 다만 같은 처지의 동료를 얻은 기분. 그게 다였다.

카자마는 그를 아버지라 불렀다. 그도 그걸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카자마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런것들은 시기의 대상이 되거나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우리가 멸시의 대상일지언정 그들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카자마는 그 말을 이해할수 없었다. 아니,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욕을하고 손가락질 했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깨끗이 무로 돌려버리겠노라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카자마에게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상하게도 뛰어난 무인이었던 것이었다. 카자마는 살기위해.. 또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검을 배웠다. 카자마의 아버지였던 그 남자는 카자마의 눈속에 비친 살기를 느꼈지만 애써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분노를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솔직히 그 자신도 한때는 인간이었을때가 있었기에.

카자마의 실력은 어느새 그 남자의 실력에 이르렀고 남자는 떠나기를 원했다. 카자마는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리 슬플것까진 없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 후엔 볼수 없었다.

남자와 헤어진후 카자마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닥치는대로 살인을 일삼고 다녔던 것이었다.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 부여된 숙명인것처럼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카자마였다.

'젠장 나란 누구란 말인가'

카인을 이겼을 때 그는 카인을 죽였어야만 했다. 하지만 죽일수 없었다. 아니,처음으로 느껴보는 슬픈 감정이 있었다. 바로 카인이 느꼈던 그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야하는 슬픔. 그것 이었을까. 만약 자신을 보살펴준 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녀석의 손에 죽어간다면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카자마는 뒷처리가 확실했다. 그러나 카인만은 죽일수 없었다.

야릇한 죄책감.. 지금껏 수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검에 죽게 만들었던 그였지만 그러한 죄책감은 느껴본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복수가 하나하나 완성되어간다는 느낌뿐..

'나도 변하고 있는것인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것처럼.. 세상 모두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고..'

카자마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어쩔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이렇게 흉악한 몸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어쩔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피식 웃고 말았다. 잠시나마 회의감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잠시나마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희망때문이었으리라

'나에게 그런 희망은 없어..'

카자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방금전까지는 없던 살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런 카자마를 쫓는 자들이 있었다.

카자마의 검술이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근접전은 늘 회피했다. 상당한 매너 포스를 가지고 있던 그들로서는 근접전은 무의미했다.

카자마 역시 그들의 살기를 느낄수 있었다. 벌써 자신을 뒤따라 이곳까지 온것이었다.

'너희들이 누구든 반드시 없애버릴테다 흐흐흣'

요 몇일동안 이상한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했던 카자마는 일순간 그것들이 정리됨을 느끼며 오로지 살(殺)이란 단어만 머리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두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카자마가 걸음을 멈추고 자신들의 살기를 감지했음을 알았다. 더 이상 음지에서 그를 지켜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지오의 명령에 따라 ADIP 1호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이었다. 1호를 죽여서라도 데리고 오라고 했다면 그리 어려울것이 없었을것이었다. 하지만 산채로 그를 데려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만큼 1호의 능력은 탈출했을때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카자마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어째서 나를 쫓는것이지.. 너희들에게 빚진건 없는걸로 아는데?"

두명의 사내중에 키큰 사내가 입을 열었다. 키만 보았다면 운동선수를 연상케할정도로 큰 키를 가진 사내였다.

"1호!! 순순히 따라온다면 아프지 않게 다뤄주마.. 후후훗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가?"

장신의 사내의 말은 카자마의 귀엔 아무런 가치도 못느끼는 말로 느껴졌다.

"인간? 우습군. 난 날 인간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한적도 없어. 내 모습이 추한가 헤헤헷."

카자마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한때는 정말 인간이고 싶어했다. 아까의 그 잡념들도 인간적인것이 아니었던가..

'젠장. 만약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해도 인간이 되기엔 너무 늦었어..

후후훗. 모두 죽여버리겠다'

카자마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듯 키다리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물분자들이 서로 엉기기 시작했다. 마치 공기중의 수분이 하나로 응결되어 구름을 형성하는것처럼..

카자마는 그런 녀석의 행동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임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에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오로지 검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밖에......

키다리가 공격준비를 하자 옆에 서 있던 안경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생포해야돼 살살하라구.. 헤헷"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적을 비웃었다. 지금껏 자신들을 피해 도망만 치던 1호였다.

우쭐해질만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게 있었다. 카자마가 도망친 것은 잠시나마 살인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기때문이었다는 것을 키다리의 손에 물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물줄기를 카자마를 향해 뻗었다.

그의 공격은 날카롭고 강력했다. 물방울 각각의 응집력이 그 파워를 더해 엄청난 속도로 카자마를 향해 돌진했던 것이었다.

카자마는 물의 속도가 검을 내려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느끼고는 막을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옆으로 회피했다. 키다리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한 번 공격한 물질을 회전시키기란 상당히 고난도 기술에 속하는 것이었다.

카자마가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을 때 물줄기 역시 그가 피한 방향으로 굽이쳐 날아오고 있었다.

'젠장 위험하다!!'

카자마는 이미 검기(劍氣)라는 우주의 기운을 검에 싣는 것을 할수 있었다. 급히 검을 빼들어 물줄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기가 물줄기를 반으로 가르며 지나쳐갔다.

'윽!! 칼로 물베기!!!'

물줄기는 반으로 갈라졌지만 그것뿐이었다. 막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두 개로 나뉘어진 물줄기는 카자마의 몸에 적중되고 말았다. 물의 무게때문인지 엄청난 힘으로 카자마의 몸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강력한 피부를 지녔던 카자마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늑골이 부러지고 내상을 입었을법도 했지만 카자마의 몸은 보통의 그것이 아니었다.

'쳇 늘 저주했던 내 몸이 내 생명을 구한 것인가'

카자마는 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키다리는 자신의 공격을 맞고도 웃으면서 일어나는 1호를 보며 기가 질린 듯 서있었다.

그건 키다리 옆에 있던 안경쓴 사내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랜드 포스 오너는 아니었지만 둘다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는 포스 오너였다. 그래서 지오가 그들에게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맞고도 아무런 상처도 없이 일어나는 상대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쳇 우리가 너무 1호를 얕본것같군"

키다리의 한탄섞인 말을 들은 안경쓴 사내는 자세를 잡고 싸울준비를 했다. 키다리 혼자서는 꺽을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안경쓴 사내의 매너 포스 능력은 온도 변화 능력이었다. 키다리와 짝을 맞춘 것은 둘의 능력의 조화가 뛰어났기때문이었다.

키다리가 다시 주위의 H2O 를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손위로 물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자마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격을 당한다고 해도 자신은 별 상처 없이 일어날 수 있을것이었다.

카자마는 키다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그정도 거리는 금새 좁혀질게 뻔했다.

카자마의 빠른 스피드에 약간 주춤거렸던 키다리는 카자마를 위해 물줄기를 뿜었다. 카자마는 자신의 스피드를 검기에 실어 달려나간다면 물줄기를 반으로 가르면서 앞으로 나갈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검을 힘껏 내리치면서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카자마의 예상대로 물줄기는 검기와 부딪히는 순간 반으로 갈라지며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공간을 타고 달려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라운 시도였다.

하지만 안경쓴 사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내의 안경이 반짝하는 빛을 내는 듯 하더니 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빠른 스피드에 의한 수압으로 공격하던 물줄기가 순식간에 단단한 얼음으로 바뀌어버렸던 것이었다.

물줄기에 대해서 어느정도 통하던 카자마의 검기는 얼음을 3미터 정도 잘라내고는 얼음에 박혀 움직이질 않았다. 그 충격에 카자마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넘어지면서 얼음줄기는 뒤쪽에 있는 벽에 부딪혀 벽을 허물어뜨렸다.

적의 가공할 공격에 당한 카자마는 물줄기를 맞았을때보다 훨씬 강한 충격이 가슴에 전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젠장. 다른 녀석이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줄은..'

카자마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충격으로 인해 내장이 뒤흔들리는 고통을 맛봐야했다.

순간적으로 방심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 두가지 공격이 다라고 생각하니 아직 승산이 있는 게임같았다. 카자마는 아직도 얼얼한 가슴을 붙잡고 일어섰다.

키다리와 안경잡이는 자신들의 공격이 먹혀들자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여전히 키다리의 손에는 물줄기가 용트림하고 있었다.

일어서고 있는 카자마를 향해 키다리의 물줄기가 뿜어져왔다. 가슴의 통증으로 인해 피할수 없었다.

검기를 이용해 막아낼수는 있어도 분명 안경잡이의 얼음공격까지는 막지 못할것이었다. 카자마는 저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려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아마 이번 공격도 어느정도 강하긴 해도 최선을 다한 공격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훗. 꼭 검을 들고 있어야만 검법은 아니다.'

카자마는 온 힘을 다해 검기를 집중시켰다. 서슬퍼런 기운이 검 끝에 맺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검을 물줄기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아까처럼 물줄기가 반으로 갈라지며 분산되고 있었다.

안경잡이는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해 물줄기를 얼음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검은 얼음의 중앙을 뚫고 키다리를 향해 계속해서 날아가는 것이었다. 키다리는 온힘을 집중해 공격하던 중이라 검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콰광!!!'

굉음과 함께 카자마와 키다리 둘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

키다리는 복부에 검이 꽂힌 채로 즉사했고 카자마 역시 의식이 없어 보였다. 가운데는 뚫렸지만 계속해서 날아온 얼음덩어리에 명중당했던 것이었다.

안경잡이는 비록 동료가 죽었지만 그것보단 임무가 중요했다. 어차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었으므로..

안경잡이가 천천히 카자마에게 다가가 살펴보았다. 몸을 가리고 있던 모자달린 남루한 옷은 다 찢어져 그의 흉측한 몰골을 내비치고 있었다.

"끔찍하군.. 다행이 죽지는 않은것같군 이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인가 후후훗"

안경잡이가 성공을 지레짐작하며 도취하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카자마의 눈이 열리며 시퍼런 검날이 안경잡이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속에 박힌 검을 카자마는 사정없이 내려그었다. 안경잡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쿨럭.. 후훗 끝까지 방심하면 안돼지..쿨럭"

카자마는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여러군데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일어설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의식을 잃은척해서 적을 유인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카자마는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것처럼 원래는 Double-Sword 를 사용했다.

하나의 검만 가지고 싸우던 카자마는 검을 던져 키다리를 없앨수 있었다. 그런 그의 왼손에는 숨겨져있던 또 다른 검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걸 몰랐던 안경잡이는 방심한탓에 자신의 제대로된 실력도 보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던 것이었다.

카자마는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최후의 공격이었던 만큼 엄청난 내력을 소모했던 것이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지오는 급히 타렌의 연락을 받았다. 1호를 쫓던 두명의 대원이 행방불명된것이었다. 그 말은 1호에게 당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멍청한 것들.. 몇일간 추격하면서 너무 오만해졌던게군.. 그런데 생각보다 1호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다른 종족과 맞먹는 강인한 신체였는데. 후후훗. 그런 신체와 검의 조화라..

믿을수 없는 일이로군..'

깡 마른 지오는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강한 포스 오너들을 상대로 검을 가지고 상대한다는 것은 미친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1호는 이기지 않았던가.. 더욱 1호가 탐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지오의 표정이 서릿발 내리듯 변했다. 그래도 대원을 잃었다는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타렌에겐 V.C 프로젝트에 대한 임무를 부여했지만 여전히 그 실험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믿을만한 사람은 타렌밖에 없었다.

'후우.. 1호와. 쉐도우 프로젝트.. 그리고 V.C 프로젝트. 어쩌면 실현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후후훗 만약 그 모두가 성공하게만 된다면..'

"하하핫."

지오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근처에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를 미친놈이라고 오인했을것이었다.

지오는 가장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V.C 프로젝트에서 타렌을 잠시 쓰기로 결정했다. 우선 1호를 손에 넣는게 중요했다. 거의 10년만에 나타난 1호였다. 다시 그의 뒤를 놓치게 된다면 언제 다시 그를 찾을수 있을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1호를.. 되찾는다.. 그래야 종결되었던 1차 플랜을 성공시킬수 있다.. '

지오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눈살을 찌푸리던 지오는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집무실 밖으로 나온후 거대한 유리창 밖을 내려다 보았다.

'한때는 아름다웠던 지구. 그런데 이젠 뿌연 먼지로 뒤덮혀 푸른 바다를 볼수가 없군'

원자력천공위성 안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형편없어 보였다. 온통 갈색 먼지들로 뒤덮혀있는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한숨을 내쉰 지오는 급히 T.T(Think Tank) 본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앙 도브를 지나 거대한 회의실 같은 것이 보였다.

회의실 안은 아무도 없어 썰렁했다. 회의실 안을 지나 안쪽의 문 앞에 선 지오는 홍채인식장치에다가 눈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장치는 환영의 인사말을 하며 자동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지오를 보고 몇 명의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그들은 원자력천공위성의 두뇌(Brain) 라고 할수 있는 천재들이었다. 지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실험들은 그들의 머리속에서 창조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능력은 가히 놀랄만한 것들이었다.

"지크프리드! ADIP 1차 계획을 재개하도록 한다."

지오의 말을들은 지크프리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차계획은 ADIP 1호의 탈출로 인해 백지화되었던 것이었다.

인공 DNA 삽입계획.. 그 무시무시한 계획의 시발점이었던 1차 계획이 실패했을땐 ADIP(Artificial DNA Insertion Plan)라는 것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에까지 직면했었다. 하지만 지오의 꾸준한 노력으로 2차 계획을 세울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V.C(Virtual Creature)프로젝트였다.

가상생명체 계획은 아직까진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결과가 주목될만했다.

거기에 덧붙여 새로 시작되려하는 쉐도우 DNA 프로젝트가 바로 ADIP 3차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2,3차 계획들의 불안정성도 엄청난 부담이었는데 이제와서 1차계획을 다시 재개하라니.. 지크에겐 충격적인 말이 아닐수 없었다.

"지오! 그건 말도 안돼! 우선 1호처럼 그런 일이 발생할수도 있고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어 너무 부담이 크단말이야!"

지크프리드가 역성을 내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오는 웃으면서 말했다.

"놀라지마. 1호를 발견했어. 조만간 녀석을 데려올거야."

지오의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어쩌면 가능성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면 정말 놀랄일이군. 1호만 다시 데려온다면 실험을 재개할 수는 있을거야.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크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지오는 안심하며 말했다.

"그래 그건 너한테 맡길테니까 문제없이 처리해줬으면해 1호는 타렌에게 말해뒀으니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거야"

지크프리드는 지오에게서 타렌에 대해 여러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랜드 포스 오너로서 엄청난 능력에 못지 않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친구라고. 그만큼 신뢰할만 하다는 뜻이었다. 지크프리드 역시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T.T본부에서 나온 지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욱'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기분도 상쾌해지는 듯 했다.

'운이 따르는 건가.. 아니면 신도 바라는 것인가.'

지오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유리밖으로 보이는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중앙지역구 티탄시의 중앙에서 약간 비껴있는 외곽의 한 연구소..

이름은 정신과학 연구소였다. 급박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이어 연구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DNA 각성 시뮬레이션 작동 준비!!!"

"S 정신물질 주입!!!"

"맥박,혈압 정상!!"

"발작 보호장치 가동!!"

"세 명의 피 실험자 모두 안정상태입니다!!"

"S 정신물질 주입 완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작동준비!!"

"제 1번 UNIT 각성 준비끝!!!"

연구원들중 한명이 준비끝 보고를 했다. 얀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드디어 쉐도우 DNA 프로젝트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얀이 해야할 것은 팔케넌이 가르쳐준 쉐도우를 각성시키는 27 유닛의 DNA 를 하나씩 깨우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전자를 깨우는 것보다 어떤 유전자가 쉐도우 유전자인지 밝혀내는 과정이 훨씬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나 재단에서는 그것을 쉽사리 밝혀내어 어찌 보면 쉬운 임상실험을 지시한 것이었다.

재단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얀은 첫 번째 실험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 이 순간 첫 번째 유닛을 각성시키려는 찰나였다. 모든 연구원들의 눈이 얀에게 쏠렸다. 얀의 지시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얀은 굵고 정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Program ON!!!!!!"

얀의 명령과 동시에 연구원들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기계음이 들려왔고 마치 금속으로 만들어진것같은 침대위에 누운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얀.. 안전하겠죠?"

이카루스의 질문이었다. 얀은 계속 피실험자들을 관찰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가장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얀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내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자신을 다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실험은 성공할수 없을테니.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각성 시뮬레이션에 의해 또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수많은 물체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와 스쳐지나갔고 알수 없는 기호들이 머리속을 파고들어갔다. 그리곤 이내 번쩍 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카인과 레이 그리고 잭은 모두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있었기에 같은 세상속에 모습을 드러낼수 있었다. 즉 서로를 인식할수 있었던 것이었다.

첫 번째 유닛이 각성되면서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셋은 잠시나마 주위를 살필수 있었다.

자연의 세계.. 어쩌면 셋 모두가 꿈꾸는 세상일지도 몰랐다. 온통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 그리고 새들.. 어디선가 들리는 시냇물 소리. 맑은 공기.. 너무나도 상쾌해지는 기분. 어쩌면 극락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죽어서 이런 천국에 오게 된것인가."

거구의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레이가 대답했다.

"너무 좋다. 만약 죽어서 이렇게 된것이라면 이대로 죽고 싶어.."

자기 자신을 인정하려하지 않는 레이.. 죽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카인은 주위를 살피며 어찌되었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피실험자들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던 물체들과 기호들이 역방향으로 흘러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서 기계음이 분주하게 들리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하느라 정신 없었다. 1번 유닛. 그것을 각성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프로그램 off"

얀의 입에서 1번 유닛 각성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연구원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S 정신물질 삽입구 제거!!!"

"혈압,맥박 정상!!!"

"발작 보호장치 해제!!"

"DNA 각성 시뮬레이터 작동 해제!!!"

"시뮬레이션 소켓 분리!!"

"세명 모두 정상입니다!!"

"의식 회복제 투입!!"

"1번 유닛 각성 성공 확률 99%!!!"

"상황종료!!!"

마지막 연구원의 상황종료 보고를 들은 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그런 미소는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카루스 역시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99% 라면 성공이군요.."

이카루스는 첫 번째 실험이 성공이란 말을 내뱉음으로써 재차 확인했다. 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100%성공이란 솔직히 있을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슈퍼컴퓨터라 해도 100%의 수치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실험하기 직전의 경직된 표정이 아니었다. 모두들 다른 세상에서 아름다운 뭔가를 본 듯 황홀한 표정들이었다. 얀은 그중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카인에게 다가갔다.

"카인 어떤가. 첫 번째 유닛이 성공적으로 각성되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으니 앞으로도 잘 될걸세.."

카인은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얀을 보면서 말했다.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레이와 잭. 모두 새로운 세상을 봤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상. 몇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웠어요."

카인의 말에 맞장구를 친 것은 거구의 잭이었다. 그는 덩치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맞습니다. 푸르른 나무들 지저귀는 새들.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맑은 공기. 마치 천국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었을것같다는 느낌마져 들었습니다."

거인 잭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오자 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큭큭 거리는 것은 얀뿐만이 아니었다. 카인과 레이도 웃고 있었다.

"박사님.. 빨리 2번 유닛을 각성하고 싶어요 그 세계에 또 가고 싶어요. 지금 당장 하면 안될까요?"

레이였다. 한 번 각성하는데 꽤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 세상에 도취되어 빠져나오기 싫었던 것이었다. 그런 레이를 보며 얀은 웃으며 타일렀다.

"첫번째 유닛은 안정적(Stable)인 유전자여서 쉽게 성공한걸세.

우리가 잘 아는 안정적인 유전자부터 개량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은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 조금만 참게.. 레이."

레이는 약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웃는 얼굴을 했다. 카인은 그런 레이가 왠지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은 백치같았던. 수아..

세명의 피실험자들은 쉬라는 얀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왔다. 셋은 어느덧 꽤 친해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항상 붙어다녔기때문이었다. 첫 번째 각성이 성공했다. 그런데 그건 별로 기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한 세상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들뿐이었다.

카인 역시 그러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 일을 하기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실험에 성공해야했다.

숙소에 돌아온 셋은 각자의 개인시간을 갖아야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유란 것은 극히 부족했다. 연구소 내에 격리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연구소 안에서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밖으로 나갈수 없다는 면에서는 자유가 박탈당한것이었다.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레이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았으며 잭은 밖에 있는것보다 연구소 안이 더욱 편하다고 생각했다. 밖에 있으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피곤했다.

카인 역시 티탄시에 아는 사람도 없는 처지에 나가봐야 할 일도 없었다. 연구소 안에서 개인시간에 검을 만지는일이 그의 주된업?이었다.

카인은 자신의 광목검(光木劍)을 손질하던 중이었다. 그 검은 카인의 사부였던 카켄이 쓰던 검중에서 가장 낡고 보잘 것 없는 검이었다. 아니,누구나 그렇게 보았어도 할말 없을만큼 낡은 검이었다. 하지만 나무빛을 띄는 광선검이었던 광목검은 카인에게는 소중한 검이었다.

사부가 목검을 연습하던 카인에게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하라고 준 검이었기때문이었다. 비록 다른 검들처럼 자체적인 출력이 엄청나서 엄청난 파워를 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수수한 모양과 따스한 느낌을 주는 나무빛.. 그리고 카인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듯한 은은함이 배어있었다.

적어도 카인에게는 좋은 검이었다. 주인을 알아보는 듯 그 검은 늘 카인과 붙어다녔었다.

검을 손질하는 것을 본 레이가 카인에게 다가왔다. 레이는 아무말없이 카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카인은 그런 레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그래? 뭐 할말이라도 있는거야?"

-

"아니. 그냥.. 넌 어째서 그렇게 슬픈거니."

레이의 눈은 맑은 정기를 뿜는 듯 깊어보였다. 카인은 그녀가 매너 포스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독심술을 이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엿보고 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지금은 슬프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내가 슬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카인은 자신의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듯한 레이의 눈을 보면서 은근히 떠보았다.

"모르겠어. 그냥 네 곁에만 가면 나도 모르게 슬퍼져."

그 말과 함께 레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카인으로서는 정말 어이 없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레이라는 녀석에대해 도무지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왜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울린줄 알거 아냐? 울지마!!"

카인은 갑자기 수아가 생각났다. 수아가 울때도 항상 당황하던 카인이었다.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깔깔. 너무 우스워. 헤헷 좋은 생각만해. 바보!!"

레이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바뀌더니 웃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보라는 말과 함께 돌아서서 걸어갔다. 카인으로선 정녕 황당할 노릇이었다.

자신의 슬픔을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 정말 알수 없었다.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다는 말인가..'

카인은 스스로 코웃음을 쳤다. 레이는 어찌보면 바보였다. 그런 바보에게 바보라는 소릴듣다니..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검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서서 둘을 바라보던 잭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오늘 실험때 보았던 세상.. 확실히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아니,너무나도 완벽한 세상이었다. 완벽. 완벽의 아름다움. 그것의 헛점은 부족한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너무 완벽한 것이 바로 결점이었던 것이었다. 잭은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뭔가가 있다.. 나와 레이 그리고 카인. 우리들의 공통점에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걸 알아내야해.'

잭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내였다. 온몸이 근육질로 덮혀있었고 얼굴도 무식하게 생겨도 한참 무식하게 생긴 사내였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 만큼은 철두철미했다.

처음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을 때 뭔가 캥기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구린내가 났던 것이었다.

비록 기형인간이었지만 잭은 그것을 극복했었다. 물론 다른 기형인간들의 추악한 외모에 비해 잭은 거의 정상인에 가까웠다.

몸이 거대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다른 기형인간들이 인간들에게 철저히 배타당했던것과는 달리 잭은 열심히 일한만큼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래도 완벽하게 보통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실험에서 자신과 레이,그리고 카인이란 사내. 세명이 피실험자로 선정된 것이 의아했었다. 이중에서 가장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카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카인도 정상은 아니었다.

이미 온몸의 중요한 경맥이 단절되어 제대로 된 싸움을 할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자였던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 다른 종족과 싸우는 병기를 만드는것인데 그런자를 쓴다는 것이 이상했었다.

여기서 의문점은 하나로 압축되었다.

'어째서.. 정상인들을 데리고 실험하지 않는것이지. 그들이 정상이기 때문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럴만한 집단이라면 이런 실험 자체를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분명.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

잭은 의심이 많은 사내는 아니었지만 이번 일 만큼은 의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진난만해서 바보같은 레이. 뭔가 갈구하는듯한. 고독한 카인..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무시무시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과연.. 인류를 위한 것인가.. 후훗 내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게 될줄이야.'

잭은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 잭을 카인 역시 주시하고 있었다.

카인은 첫인상보다는 잭이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식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섬세한 면이 있었기때문이었다.

나이는 카인보다 훨씬 많았지만 셋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기로 했었다. 그만큼 포용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잭은 거의 말이 없었다. 아니,카인도 그랬다. 잭은 카인이 처음 생각했을 때 카자마처럼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진 사람이라 느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줄 아는 사내였던 것이었다. 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카인은 점점 잭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만약.. 실험도중에.. 누구하나라도 잘못된다면 분명 이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실험이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도 있어.. 그것이 잭이든 레이든.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후훗 벌써 그들에게 동료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카인은 조용히 검 손질을 마치고 일어섰다. 숙소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연구소 건물들이 전부여서 상막한 느낌이었지만 호크에서 내려다본 티탄시의 정경에 비하면 낳은 편이었다. 적어도 카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후아. 이제 26개 남았다. 난 해낼수 있을거야!"

카인은 자신을 다잡았다. 길게 심호흡을 하던 카인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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