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가슬렌더-24화 (24/120)

제 14회 검술 경연대회.

내놓으라 하는 무인들이 모두 출전한다는 검술 경연대회였다.

유명한 무인들은 이미 원서 제출을 마감한 상태였고 한 청년과 소녀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정말 내가 출전할 자격이 있을까?"

-

"오빠두 참. 검술을 그렇게 좋아했잖아 그럼 그걸 써먹어봐야지."

청년은 약간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그런 오빠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에이 오빠 무서워서 그러는구나?"

-

"무섭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들한테 한 번도 못이기고 질까봐 그러는거잖아."

-

"......"

청년이 말이 없자 약점을 잡은 듯 소녀는 계속 몰아부쳤다.

"오빠 실망이야.. 이렇게 원서조차 못낼거면 왜 이렇게 먼 2지역구까지 왔어?"

- "어 그건. 다른 사람들의 검술을"

"치이.. 오빠! 다른 사람들 실력을 구경왔다고는 말하지마!"

-

"어? 그러니까. 내 말은.."

"그래 오빠는 오빠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던 거잖아 솔직히.."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또 동생의 말에 놀아나고 있다는것을 뒤늦게 눈치챈것이었다. 소녀는 그러한 오빠의 행동이 체념이란걸 잘 알기에 살며시 다가가서는 귓볼을 만졌다.

"오빠 출전할거지???"

-

"그래 수아 네 말대로 할게.. 됐지?"

"와아 오빠가 최고다. "

수아는 약간 오버하며 오빠를 칭찬해주었다. 청년은 풀이죽은 듯 미소짓기만했다.

청년을 마지막으로 원서마감을 했다. 출전자는 모두 50여명에 달했다.

대회의 역사상 최고 수치는 아니지만 그와 맞먹는 타이기록이었다. 대부분의 검객이라 자신하는 사람들이 이 3년마다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지만 진정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예선전도 통과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보통 검을 다룰줄 아는 자들은 망신당할까 두려워 섣불리 도전하지 않게 되었고 그만큼 출전자의 수는 줄어들었었다. 그런데 모처럼 꽤 많은 지원자가 몰렸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청년과 수아는 대회가 열리는 발카로스시에 있는 작은 여관에 투숙했다. 비싼 호텔에서 묵을 돈이 없었던 그들에게 여관도 비싸게 여겨졌다.

청년과 수아는 같은 방안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남녀사이였지만 돈이 궁해 같은 방을 써야하는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청년에게 있어서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특히 아직까지 철부지처럼 행동하는 동생은 나이에 비해 머리가 안좋았다. 늘 오빠만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만쳤다. 청년은 그런 동생이 때론 지겹고 짜증났지만 늘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만큼 동생 수아를 사랑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런 동생을 뿌리치고 여행을 결심했었다. 집이 가난했기에 돈을 벌기도 했지만 틈틈히 검을 연마했었다.

아직 미천한 실력이었지만 청년은 늘 검술 경연대회라는 행사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다. 아니, 자신의 실력을 확인받고 싶었다. 남들에게 뽐내고 싶었다.

그에게는 늘 남에게 뒤지는 생활밖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런 청년은 끝내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달랑 편지 한통을 남겨두고서 하지만 철부지 동생을 생각못했다.

겨우 마련한 돈으로 1지역구에서 2지역구에 있는 이곳 발카로스시까지 올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만 동생 수아가 멋모르고 따라왔던 것이었다. 청년은 동생을 뿌리칠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없다면 동생이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었다.

수아는 늘 오빠를 찾고 칭얼거렸고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 수아에게 오빠가 없었더라면 수아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따라온 동생을 뿌리치지 못한 청년은 없는 돈이지만 쪼개고 아끼고 해서 이곳까지 올수 있었다. 검술 경연대회에 출전하려는 자격을 얻으려면 참가비를 내야했는데 그 돈까지 써버리니 돈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착한 여관주인을 만나 부족한 돈으로 숙식을 해결할수 있었다.

짐을 푼 청년과 소녀는 마주보고 앉았다.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자 소녀가 물었다.

"오빠.. 무슨 생각해? 두려운거지? 싸우는게?"

-

"아니 부모님께서 우리 걱정하실까봐.. 그게 마음에 걸려.."

"피이 엄마,아빠는 우리 걱정 안하실거야 우리가 없으면 더 편하실걸?늘 말썽만 피웠잖아.."

수아는 자신이 늘 잘못하여 혼나던 기억을 떠올렸다. 말괄량이라는 별명처럼 늘 말썽만 부리는 수아를 엄마는 늘 구박했었다. 사랑의 매였지만 수아는 그걸 이해하기엔 정신수준이 모자랐다.

"그렇지 않아. 부모님께서 우릴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다 우리 잘 되라고 혼내셨던거야.."

- "아니야. 사랑하면 때리지 않아! 우리가 없어진걸 좋아하고 있을거라구"

청년은 수아에게 뭐라 설명해야할지 몰랐지만 그냥 대충 웃어넘기기로 했다. 너무 피곤한 여정이었기때문이었다.

"그래 그래 우선 오늘은 이만 쉬자.. 내일부터 예선경기가 시작되거든? 오빤 쉬어야해.."

-

"쳇 쉰다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앉아있어?"

"이건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이걸 한 후에 잠자리에 들면 피로가 풀리거든 너도 해볼래?"

-

"싫어! 난 그런거 힘들어서 하기 싫어!"

수아는 다시 눈을 감는 오빠를 보며 투덜댔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누워버렸다. 청년의 동생은 잠이 빨리드는 편이었다.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잡념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계속해서 머릿 속의 잡념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검(劍).

조그만 방안에서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소년이 있었다. 그들의 얘기는 평소 느끼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말들이었다.

"어째서 이런 촌 구석에서 살고 있나?"

아버지의 친구가 아버지를 안쓰러운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핫. 여기가 어때서 그래? 난 이곳이 좋아.."

-

"자네 여전하군 다시 검을 잡을 생각은 없나?"

친구분은 아버지에게 뭔가 권유를 하려고 온것같았다.

"그럴 생각은 없어 난 검을 쥘 자격이 없는 녀석이란걸 잘 알지 않은가. 나 때문에 사부님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자네가 더 잘 알잖아!"

아버지는 뭔가 안좋은 기억을 떠올리듯 표정이 굳어졌다.

친구분은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전적으로 자네 탓이라고만 할수 없는 사건이었네.."

-

"아니.. 내가 검에 미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테지."

아버지의 눈에서는 알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흠. 그래 자네 말대로 사부님이 자네를 구하려다 그렇게 된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자네 실력을 썩히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라서 그래!"

-

"아니. 다시 말하지만 난 거절하겠네! 오랜만에 온 친구를 겨우 이런 일로 돌려보내고 싶진 않아!"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다신 그 일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친구분은 더 이상 검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년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분이 집을 나설 때 뒤따라갔다. 얼마가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분은 소년의 미행을 알아챘다.

미행이 발각된 것을 소년도 알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그분의 앞으로 나섰다.

"오오.. 네가 바로 카인이구나. 네 아버지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다. 굉장히 어른스럽다지?"

-

"과찬이세요. 전 아직 어린아이랍니다.."

"어린아이라.. 몇살이지?"

- "이제 겨우 6살인걸요"

"후훗.. 녀석 6살이면 다 큰거나 다름없지. 험험.. 근데 어째서 나를 따라온게지?"

-

"그냥 아저씨가 궁금해졌어요. 우리 아버지의 과거도 알고 싶고. 전 절대 아버지께서 능력이 없어 우리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믿지 않거든요."

"오호.. 아주 기개가 있는 녀석이로구나.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네게 해줘도 될지 모르겠구나. 네 아버지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이야기일수도 있거든.."

소년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전 아버지의 자식이에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너무 궁금해요! 그 검(劍)이라는 것에 대해."

남자는 순간 고민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소년의 기세에 눌린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소년의 모습이 어린시절 그의 친구였던 소년의 아버지와 비슷하단 것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좋다. 네 기백이 마음에 든다. 우리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자 여기서 우리집이 얼마 멀지 않으니 우리집으로 가자꾸나. 잠시 이곳으로 쉬러온거란다."

남자는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다. 소년은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의 말대로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검술이 더 이상 정진되지 않는것에 회의를 느껴 잠시 쉬러 이곳에 놀러온것이었다. 특히 이곳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맞수였던 소년의 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그와 만나고 싶기도 했다.

남자의 집안에 들어간 소년은 처음으로 검들을 보았다. 남자의 방안은 온통 반짝거리는 검들로 진열되어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보검들이었다. 소년은 처음으로 따뜻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남들은 냉한 기운을 느꼈을법한 방에서 따뜻한 기분이 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자아 여기에 앉거라."

남자의 권유대로 소년은 자리에 앉았다. 늘 가부좌를 틀어 앉는 버릇이 있던 소년은 남자 역시 자신처럼 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언뜻 그가 아버지의 친구란 사실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소년에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셨었다.

"그래 네가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

-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것이요"

"이곳까지 왔으니 당연히 말해줘야하는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걸 네 아버지한텐 말해선 안된다. 그 친구가 싫어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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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로써 약속할게요!"

"하하핫 녀석 역시 당차구나! 좋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지만 간단히 줄여서 말해주도록하마.."

소년는 귀를 종긋 새우고는 경청하기 시작했다.

"사실 네 아버지는 천검법(天劍法)의 달인이셨던 아이자크님의 수제자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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