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22회 - http://hoyanet.new21.net/zero/view.php?id=gigaselender&no=22
[기가 슬렌더] -11- 아크타리안(죽음....그리고 이별...) 2장. 회상의 장-아크타리안(죽음.그리고 이별.)-얀은 최고속도로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 엄청난 속도만큼 세라고닉에는 그 흔적이 길게 뻗여있었다.
세라고닉이란 금속은 세라믹스의 가장 중요한 재료로 알려진 실리카(Silica)를 물속에서 굳혔다가 녹였다를 반복해서 만들어낸 단열성이 높은 금속이었다. 세라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그 단열성에 있었다.
이러한 고온에도 견디는 능력을 가진 세라고닉에 열에 의한 흔적을 남기기란 상당한 노력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만큼 얀은 속도계의 경고도 무시한채 병원으로 내달렸다.
늘 마음속에 죄를 가지고 살아온것같은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바로 스승 아크타리안에 대한 기억. 얀에겐 형언할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있었다.
얀의 플라잉 머신이 병원의 플라잉 머신 전용주차장에 멈춰서자 얀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급히 중환자실로 달려간 얀은 아직 그의 스승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늘 폐만끼치고 아쉬울때만 손벌리고 이번 일도 저 때문에 이렇게 되신것같아 무척 괴롭습니다'
얀이 아크타리안의 손을 붙잡고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승의 초췌한 모습.. 엄청난 매너 포스 사용후 스승의 모습은 마른 장작처럼 홀쭉했다. 가뜩이나 많았던 주름살들이 그의 얼굴을 더욱 초췌하게 만들었다.
얀의 손의 촉감이 아크타리안에게 전해졌는지 아크타리안은 조용히 눈을 떴다. 자신의 앞에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제자가 눈에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거리며 앉아있었다.
"어서 오너라 얀.."
얀은 스승의 부름에 놀랐지만 기쁜 표정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볼위로 흘러내린 눈물은 그가 붙잡고 있던 아크타리안의 손등위로 떨어져내렸다.
"선. 아니. 스승님."
-
"헤켈들은 물리쳤느냐.?"
아크타리안은 얀이 자신을 스승이라고 부른 것을 내심 기뻐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티탄시의 안위가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헤켈들에 대한 것부터 물어본것이었다.
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크타리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얀에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이런 모습을 보여서."
얀은 스승의 초라한 몰골이 자신때문이라 자책하고 있어서 그런지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아닙니다. 스승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못난 놈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알수 없는 분노 그런건 아무런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승님께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스승님은 오로지 단 한분.. 아크타리안 당신뿐이라는것을요. 그리고 그 분은 한시도 제 스승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요.. 늘 이 말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아크타리안 역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란 것을 알았지만 상관없었다.
"다행이다.. 이젠 더 이상 네 눈에서 광포한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동안 많이 성장했구나.. 쿨럭. 쿨럭.. 늘 네게 불행한 미래가 닥칠까. 두려웠었다 쿨럭 그 불행 때문에 네가 고통받아 나쁘게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쿨럭.. 쿨럭 하지만. 그런 걱정은 더 이상 안해도 될것같구나 쿨럭"
얀은 스승이 갑자기 기침을 시작한 것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얀은 아크타리안의 말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란 것을 스승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네가 하는 일이.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쿨럭.. 네가 일하던 재단도. 뭔가 이상한 쿨럭. 쿨럭 것이 있었고 쿨럭 하지만 어쩔수 없을땐 필요악이 존재하듯.. 쿨럭 전쟁도 때론 필요함을 인정한다. 쿨럭 네게 바라는 점은. 쿨럭. 지금 그 마음가짐으로 .
쿨럭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쿨럭.. 것이었다.."
얀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위해 최후의 숨을 토하고 있는 스승을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아마도 그러겠노라는 긍정의 의미였으리라..
아크타리안은 헤켈과의 전쟁을 위해 자신을 초청했다는 얀의 말을 들었을땐 거절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도 뭔가 잘못된 점이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의 부탁을 거절할수 없었다. 아니,제자를 보고 싶어서라도 초청에 응했던 그였다.
비록 자신의 힘으로 헤켈들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살생을 도왔다.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낄줄 알았던 아크타리안이었지만 죄책감같은 것은 없었다. 필요악(必要惡) 어쩔수 없는 건 어쩔수 없는거였다.
얀을 위해서 피를 내뿜으며 싸웠던 아크타리안은 몸 속의 모든 진기(眞氣)가 소진되는것도 아랑곳 않고 최선을 다했었다. 이미 자신의 마지막 업적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를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그였다.
이젠 더 이상 목숨을 이어갈 힘마져 없어 생명유지 장치로 온몸을 두른 그였지만 얀의 모습을 보고는 기쁨을 감출순 없었다.
"제발 돌아가시지 마세요..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지 할테니 제발 돌아가시지말아요 스승님."
얀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스승에게 말했다.
아크타리안도 이해할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얀의 모습이 자신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이미 늦었어. 쿨럭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네. 쿨럭.."
얀은 스승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수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실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주 아크바레이란 녀석을 본적이 있던가? 쿨럭 쿨럭."
아크타리안은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진것 같았다. 얀은 스승과 그의 손자를 본 것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얀의 아내가 실종된 소식을 들은 아크타리안은 얀의 연구소를 방문했었다. 아크타리안은 걱정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얀이 이성을 잃어버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분노에 의해 악마로 돌변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크타리안의 예상은 틀린것이었다. 그가 그의 손자 아크바레이와 함께 얀을 찾아갔을 때 얀은 따뜻하게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서 선배님. 어서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아크타리안은 속으로 놀라긴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는 말했다.
"어. 잘 지냈는가? 자네 안색이 안좋아보이는군. 무슨 일 있었나?"
얀은 그의 스승이 이미 모든 사실을 듣고 달려온 것을 알았지만 무안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가 실종되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지만 찾을길은 없습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선배님"
얀은 자신을 위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온 그의 스승이 한 없이 고마웠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 이외에 다른말은 목구멍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크타리안은 그런 얀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아차 이 아이의 소개가 늦었군 언젠가 내가 얘기한 적이 있었지 자네 만큼이나 뛰어난 아이라구.. 내 손자녀석일세 이름은 아크바레이라고"
아크타리안의 소개를 받은 15세 남짓 되어보이는 소년이 인사를 했다. 아크타리안의 칭찬답게 상당히 똘똘해보이고 잘생긴 소년이었다.
"반갑습니다. 얀 선생님.. 조부님께서 많이 얘기해주셨어요 뛰어난 포스 오너시라고. 영광입니다. 만나뵙게 되서 "
조그만 소년이 당차게 말하자 얀도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래 나도 만나서 반갑네 선배님의 말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너였구나.. 아주 당차게 생겼는걸?"
아크바레이는 숙쓰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것이 얀과 아크바레이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에는 만날기회가 없었지만 간혹가다 MTM(Mornitoring Telecom Machine :
화상통신기) 으로 연락은 취했었다. 얀이 그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본적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기질을 가진 녀석이었죠 아주 당차고.
착한 호남아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었는데."
얀은 아크타리안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수 있었다. 바로 손주를 부탁하려는 것임을 말이다.
"쿨럭 쿨럭. 그래. 죽을때가 다되니 쿨럭 기억력까지 나빠지는군 쿨럭 그 녀석 쓸만한 녀석 이지만 쿨럭 아직 자신의 힘을.. 사용할줄을 모른다네. 내가 일부러 쿨럭.. 많은..종류의 것을.. 가르치지 않았겠나."
얀은 스승의 말을 들으며 예전에 그가 한말이 떠올랐다. 바로 얀 자신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여러 가지 매너포스를 가르쳐주면서 진정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법(法)은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흠 아크바레이를. 제가 보살피라는 말씀이시군요.."
아크타리안은 미소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녀석에겐. 쿨럭.. 슬픈 과거가 있다네 쿨럭.. 쿨럭.. 아직 그 녀석은 모르지만 자네처럼.. 쿨럭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같은.
녀석일세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가르쳤지 녀석이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쿨럭 무슨 일이 쿨럭.. 쿨럭..
벌어질지.. 모르니까.쿨럭"
얀은 아크타리안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역시 얀의 짐작대로였다.
스승이 손주를 마음먹고 가르쳤다면 어찌 뛰어난 포스 오너가 되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아크바레이는 뛰어난 포스 오너가 아니었다.
이미 그랜드 포스 오너에 반열에 이른 유명한 포스 오너들에 비하면 애송이 중에 애송이였던 것이었다.
이제서야 스승의 의도를 알게 된 얀이었다. 얀과 비슷한 존재 아크바레이. 아주 당찬 소년이라고 생각했던 얀은. 그것이 슬픔을 감추는 아크바레이만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그럼. 아크바레이를 제가 가르쳐야합니까.."
아크타리안에게 얀은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얀은 아크바레이의 재능을 썩히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후훗 쿨럭. 그렇다네 그 녀석의 운명은 쿨럭 어쩔수 없이. 쿨럭.
살생(殺生)의 살얼음판위를 쿨럭. 거닐게 되어 있어. 녀석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이네 쿨럭."
얀은 마지막 단어들을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마지막 가르침. 그 마지막 가르침이란 것이.. 바로 나였단 말인가'
얀은 아크타리안의 숨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후후후. 쿨럭쿨럭. 이젠 다 된것같군 쿨럭쿨럭 내 부탁. 쿨럭..
쿨럭.. 잊지 말게.. 쿨럭. 그리고. 쿨럭 그 녀석의. 과거에 대해서는 쿨럭 아예 쿨럭.. 모른척하게 쿨럭.. 자네나.. 쿨럭 그 녀석이나 서로 모르는게.. 쿨럭.. 낳을거야 언젠가는.. 쿨럭.. 자연히 알게.. 쿨럭..
될 날이 오겠지. 쿨럭 쿨럭.. .."
얀은 잡고 있던 아크타리안의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스승님!!!!!!!!!!!!!"
이미 그는 심장이 멎은 상태였고 더 이상 다른 어떠한 조치도 무의미했다. 얀의 눈에서는 이미 많은 눈물이 흘러내린 듯 붉게 충혈되어있었으며 스승의 죽음을 믿을수 없다는 듯 계속 아크타리안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얀의 손이 스승의 눈에 다가갔다. 스승의 눈을 감긴후 얀은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스승의 죽음.
얀은 필터를 꺼내고는 연신 빨아들였다. 아니.. 몽땅 들이키고 싶었다. 하지만 숨이 막혀와 그럴수 없었다. 병원밖이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품 속의 MTM 을 꺼내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자신보다 더 슬퍼할 사람에게 슬픈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일이었다.
얀이 아크바레이에게 연락을 했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아크바레이는 무너져내렸고 얀은 급히 이쪽으로 와주길 원했다. 아크바레이는 그러겠노라 했고 얀은 그를 기다렸다.
방안으로 돌아온 아크바레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안 카인이 물었다. 그의 표정은 어쩌면 티탄시의 존망여부가 불투명할지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아크바레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생긴거야?"
카인의 말을 들은 아크바레이는 세느카를 보고 말했다.
"나.. 잠시 너희들과 헤어져야겠어. 조부님께서 돌아가셨거든 가서 장례식을 치뤄야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은 세느카 하나뿐이 아니었다. 미시케만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을뿐 나머지들은 모두 불안감을 지울수 없었다.
"설마.. 헤켈들이 티탄시를 점령한거니?"
세느카의 질문이었다. 아크타리안의 죽음도 놀라웠지만 티탄시 문제가 더 급했다. 만약 티탄시가 점령당했다면 다른 도시들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었기때문이었다.
"아니. 헤켈들은 모두 물리쳤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이겼데.
우리 조부님께서도 그 때문에 부상을 당하시곤 병원으로 옮겨지셨지만 어쩔수 없었나봐"
카인은 안심하며 안쓰러운 눈으로 아크바레이를 바라보았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늘 무뚝뚝하게 쏘아부치던 파인리히도 이번에는 뭔가 암울한 기분에 빠졌다.
"정말 안됐구나 아크바레이. 난.. 이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어.
미안하다."
파인리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줄이야.. 모두들 파인리히의 소심한 성격을 의심했다. 아크바레이는 살짝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아 우리 조부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시고는 도시를 구하셨어. 난 조부님이 자랑스러워.. 그걸로 됐어. 난 티탄시로 가봐야겠어 그동안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어 특히.. 세느카 아이리스 네게 감사한다.."
아크바레이는 웃으면서 말하곤 있었지만 슬픔이 베어나는 목소리는 어쩔수 없었다.
세느카는 그의 그런 모습에 슬픔이 밀려왔는지 눈물이 하나가득 고여있었다.
"그래.. 언젠가는 다시 볼수 있겠지. 너무 힘들어하지마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우린 친구라는걸 명심하고.."
세느카의 마지막 말은 아크바레이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친구'
그런 단어는 그에게 있어 친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세느카들을 한 번 둘러본 아크바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미시케는 전후사정을 잘 몰랐지만 아크바레이의 조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듣고는 아크바레이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도움을 줄수 없었다. 위로의 말조차 건넬수 없었다.
무언가 벽이 느껴지고 있었기때문이었나아크바레이는 재빨리 호크에 탑승했다. 호크가 한 대뿐이어서 어쩔수 없이 그 호크를 아크바레이에게 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다만 아크바레이와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을뿐이었다.
아크바레이가 티탄시를 향해 부상하자 세느카는 아크바레이의 이름을 외치며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그가 들었을지 못들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었을뿐이었다. 세느카의 얼굴에 한줄기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세느카는 얼른 눈물을 훔쳐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그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카인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파인리히 역시 고개는 끄덕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자신을 골탕먹인 유일한 인물이 아니던가.. 파인리히는 생각했다.
'반드시 또 만날날이 오겠지 아크바레이. 넌 내가 인정한 유일한 녀석이니까. 날 잊으면 안돼.. 친구..'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들은 소리없는 미소를 지으며 미시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미소의 의미는 아크바레이에 대한 신뢰의 의미였을 것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의표를 찌르는 생각과 뛰어난 매너 포스 능력 모두 아크바레이가 금방 보고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자신들에게 선심을 베풀어주었던 아크타리안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정적을 깬 것은 미시케였다. 차가운 냉기가 방안을 가로지르는것을 더 이상 볼수 없던 그녀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들 있을거에요? 떠난 사람은 떠난거고 남은 사람들은 남은거 아닌가요? 언제까지 우울해 있을거죠?"
미시케의 외침은 맞는 말이었다. 그 말에 동의한 사람은 역시 냉정하기로 소문난? 파인리히였다.
"그래 미시케님의 말이 맞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수만은 없지 아크바레이는 그 녀석 나름대로 잘 살아나갈거야 그 녀석처럼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어 우리도 그에 못지 않게 열심히 뭔가를 해야되지 않겠어?"
파인리히의 말은 카인과 세느카의 마음속 깊은곳에 자리잡았다.
파인리히의 말대로 하는 것이 어쩌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그래.. 세느카 파인리히의 말이 일리가 있어.. 우린 우리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만날 수 있을거야.."
-
"그래 알겠어. 그 일은 그만 접어두고.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지내자.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으니까."
세느카의 표정에 웃음이 어렸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자 다른 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있었다. 마음 속의 씁씁한 마음을 모두 지울수 없었지만 앞을 향해 한발을 내딛을 준비는 할수 있었다.
아크바레이가 호크를 타고 간지 거의 반나절.. 어느덧 수평선아래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얼마 있으면 티탄시가 보일것이었다.
아크바레이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의 조부가 했던 말들이 각인되고 있었다.
'언제나 남을 위해 생각하고 남을 위해 행동한다면.. 이런 매너 포스의 힘은 필요치 않게 될 것이야. 네 능력이 뛰어나다만은 능력보다 먼저 남을 배려할줄 아는 생각을 길러야한다. 능력은 없어도 있고 있어도 없는 것 네 마음을 좋은곳에 쓴다면 절로 능력이 생길것이고 그렇지 않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나쁜일에 쓴다면 공허(空虛)하게 될 것이었다 난 네가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언제나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을 뿐이란다.
남은 여생을 말야 허허헛..'
아크바레이는 늘 자신을 아끼던 조부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생각했다.
그의 호크가 병원건물 옥상에 마련된 호크전용착륙장에 내려앉았다. 그의 도착을 연락받은 얀은 이미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단번에 얀을 알아본 아크바레이는 얀을 향해 달려갔다.
"얀 소장님.."
얀은 초라한 몰골의 아크바레이를 보고 마음고생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약간은 헝클어진듯한 머리에 눈은 붉게 충혈된 것이 그의 슬픔을 짐작케 했다.
얀과 함께 내려온 아크바레이는 조부의 시신을 확인했다.
마지막 순간을 편하게 보냈는지 미소짓고 있었다. 아크바레이는 조부의 시신을 바라볼 때.. 도리어 담담해졌다. 아니.. 뭔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 조부님께서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얀은 그의 그런 모습에 내심 안도하며 말했다.
"자네를. 나에게 맡기셨네. 자네를 강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셨네"
-
"네???"
아크바레이는 이해할수 없었다. 늘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조부님이셨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신을 강하게 만들라니. 이해할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평범한 운명이 아닌 아크바레이를 위한 마지막 부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얀은 대답했다.
"그분께서는 네가 슬픈 운명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길 원하지 않으셨어. 그런데 기연에 의해 그 운명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것을 아셨던게지 네가 강하게 크지 않는다면 그 못된 운명의 여신의 손길을 피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셨을테구 근데 그건 오산이었지. 운명은 쉽게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수없이 운명을 바꾸고 싶어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생각났다. 자신의 스승마져 손자의 운명을 어쩌지 못했는데.. 미비한 얀 자신이 아내의 운명을 바꿀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털어버리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런 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크바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어찌되었든. 소장님께서 절 지도하신다니.. 이제부터는 확실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조부님의. 조부님의 마지막 바램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아크바레이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얀의 심정도 착찹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제자가 되어버린 아크바레이앞에서 눈물을 보일수는 없었다.
얀과 아크바레이는 얀의 스승이자 아크바레이의 조부였던 아크타리안을 장사지내었다. 너무 초라한 식.. 아크타리안에겐 가족이 없었다. 아크바레이의 부모는 아크바레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죽고 없었다. 다른 친척들도 없었기에 아크타리안의 장례식은 단촐하게 이뤄졌다.
식이 끝나고 얀과 아크바레이는 아크타리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하늘위로 날아올랐다. 거대한 호크가 최대상공으로 부상하자 해치가 열렸다. 차가운 바람이 호크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건 개의치 않는 두사람이었다.
아크바레이의 손에서 조부의 마지막 영혼의 가루가 흩어졌다.
아크바레이의 눈은 더 이상 슬픔을 간직한 눈이 아니었다. 뭔가 결심한듯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얀과 그의 제자인 아크바레이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