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5회 -
[기가 슬렌더] -4- 파인리히 사담 -파인리히 사담-다음날 아침 '퍽'하는 소리에 잠을 깬 카인은 급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적이 나타난줄 알았던 카인은 자신이 약간 경솔했다고 느끼던 중 세느카와 눈이 마주쳤다. 세느카는 요리를 하던 중이었는데 히트레인지에 넣었던 핫케잌
이
그만 부풀어 터저버린것이다. 그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는 카인을 보고 세느카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휴. 어째서 날 안깨웠죠? 깜짝 놀랬잖아요"
카인은 쑥스럽다는 듯 투덜댔다.
"당신이 너무 잘 자고 있어서 차마 깨울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싸웠는데 피곤한게 당연할것같아서요. 요리를 했는데 조금 들어봐요. 맛은 별로겠지만"
대부분의 음식들은 히트레인지에 넣고 몇초만 기다리면 완성이었다.
그렇게 쉬운 요리방법에도 불구하고 세느카는 핫케잌을 실패했다.
카인은 서툰 세느카의 솜씨를 보고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를 먹어보더니 감탄사를 연발하며 세느카를 칭찬해주었다.
"와. 생각보단 정말 맛있는데요? 정말로요!"
세느카는 카인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을만도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생각보단???'
대충 식사를 마친 세느카과 카인은 답답한 호텔을 나서기로 했다.
어제 그 일도 있고 도시를 구경하는 일은 접기로 하고 다시 유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호버크레프트에 탑승한 둘은 펠로포타미아 유적을 향해 날아올랐다.
거대한 석회암 건축물들 건물 벽면에는 못생긴 인간들이 서로 죽이는 장면이 묘사되어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땅굴에는 수많은 기관장치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검은색 머리의 앳띈 모습을 한 한 소녀와 약간은 각져 있는 강인한 인상의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지하유적의 문앞에 서 있었다. 폴리에플린의 윤기가 흐르는 푸른색 옷을 입은 여자는 당시 유행과는 맞지 않는 검은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동료처럼 보이는 남자는 운동선수같은 몸매를 하고 있었다.
"카인. 이곳에 오면 이상하게. 슬픔이 느껴져요.."
세느카는 땅굴로 통하는 문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카인은 아무말 없이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보죠.. 솔직히 고대 유적들을 탐사한다고해서 문명의 기원을 알아낼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 좋은 경험이고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죠"
카인은 무표정으로 동의를 표했다.
"흠 그래요.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죠. 당신이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있다는 것 잘 알아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복받은 것이죠"
카인은 잠시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검(劍)과 수아 후우.'
카인의 말을 들은 세느카는 웃으면서 땅굴 아래쪽으로 발을 옮겼다.
땅굴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십미터를 갔을까? 지하에는 넓다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지하 광장을 연상케 하는 그 공간에는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그 옛 모습을 간직한채 그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곳을 책에서 본적이 있어요. 이렇게 와보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책에서 본것보다 훨씬 웅장해요."
지하유적은 웬만한 마을보다 훨씬 커보이는 공간에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물론 많이 파괴되어 그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걸 복구해낸 고고학자들의 숨은 땀이 어려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를 바래요."
카인은 세느카의 뒤를 쫓으면서 말했다. 세느카는 천천히 발을 옮기며 유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작은 집들은 고대인들이 몸집이 이상하게도 현재 인간들과 많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고학자들은 고대인들이 뛰어난 인간들이었을거라고 추측했어요.
왜냐면 죽음의전쟁(D.W)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다시 문명을 재건해내었으니까요 단 2000여년 만에 이정도 과학을 부흥시켰다는 것은 고대인들의 뛰어난 지혜때문이었을거라구요"
세느카는 광장 끝쪽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쫓다가 그 거대한 건물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와. 이 건물은 마치 굉장한 것을 모시는 신전같군요"
세느카는 카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목이 있군요. 맞아요. 이 건물은 바로 신전이에요. 아니 아직 확증된바 없지만 대부분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건축물을 신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우선 혼자의 힘으론 건설할수 없죠. 여러사람의 힘을 모아 만들어야하는데 여러사람의 힘을 모을수 있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여러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신밖에는 없죠.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카인은 세느카의 질문을 받고 적이 나타난줄 알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세느카는 카인이 오버한다고 생각하고는 이내 말을 고쳐 물었다.
"아니 이 건물이 다른 건물들보다 뭔가 다른것같지 않냐구요?"
세느카의 질문을 오해한 카인은 멋적은 웃음을 지며 두팔을 들어 알수 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 신전은 금속으로 지어진 건물이에요."
세느카의 말을 들은 카인은 이해할수 없다는 듯 갸웃거렸다.
"다른 건물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세월의 흐름속에 이산화탄소와 석회석이 반응해 많이 허물어졌죠. 물이 작은 수로를 통해 흘러내린걸 보면 알수 있죠. 하지만 이 건물은 거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석회석으로 덧칠하여 석회석으로 지어진 건물처럼 감쪽같이 위장하고 있죠. 마치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것처럼 하지만 역시 석회석들은 많이 침식되어 깍여나갔죠. 가끔 보이는 검은빛을 띄는 부분들은 아마 티타미넘의 원조격인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부분같아요."
카인은 단지 한 번 둘러보고 이 정도까지 알아내는 세느카가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흠 다음번부터는 성분분석기도 가져와야겠군요."
세느카는 카인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것처럼 느껴졌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핫 너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말아요. 이건 고고학자들중에서도 나왔던 가설이거든요. 전 그 가설이 맞다고 믿는 사람이구요. 이 고대 유적은 정말 잘 만들어진 것이에요. 특히 이 신전은.. "
세느카가 신전의 벽면을 더듬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세느카와 얀의 도시풍의 복장과는 반대로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한 사내가 소리친것이다. 그의 남루한 복장을 본 카인은 그가 유적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을 해치려는 강도거나 아니면 자신들을 위협하려는 헤켈이나 그 외의 사람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카인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입자폴리곤 단검의 손잡이부분을 꺼내 들었다. 입자폴리곤 단검은 쉐도우의 일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지니고 있어야했다. 손잡이 부분에 주인의 지문이 인식되자 대략 80센치미터 정도의 검신이 푸른 레이져빛을 띄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흥 웃기는 군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해치려들다니 더 웃기는건 어째서 로이안 리플을 사용안하고 이상한 검을 들고 있냐는거군 후훗.."
그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는 웃으면서 카인을 화나게 만들고 있었다.
붉은색 머리의 사내는 천조각으로 된 옷에 달린 모자로 머리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세느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라는 것을 눈짐작으로 알아차릴수 있었다.
"뭐? 웃긴다구? 관광객이나 위협해서 강도짓이나 하는 주제에. 누굴 비웃는다는 것이냐?"
카인의 말을 들은 사내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말했다.
"쳇 옷이 좀 낡았다만은 너처럼 허우대만 번지르하지 않아.
로이안 리플을 안가지고 있는걸 보면 정부사람은 아닌것같군 하지만 이상하게 생긴 검을 가진걸 보면 보통 사람도 아니겠어. 쳇 내가 정말 강도로 보인다면 한 번 공격해보시지. 샌님 선생!"
사내는 비꼬는 듯 카인을 놀려댔다. 자신을 샌님이라고 놀리다니 상대는 분명 미친게 틀림 없다고 생각한 카인은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느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 타격이 컸었던것같았다.
세느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저 거지 몰골의 사내가 강도가 아니라면 카인을 말려야하겠지만 강도일수도 있고 또 이 상황에서 무작정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뭐했다.
카인은 달려가면서 검을 일(一) 자로 그어들어갔다. 상대방 사내는 카인의 검술이 보통 경지가 아님것에 약간 놀란 듯 황급히 뒤로 물러서서 피했다. 그리고는 외쳤다.
"미케노스!!!"
사내의 외침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작은 원형 생물체같은 것이 카인을 향해 덮쳐왔다. 카인은 순발력을 이용해 미케노스를 베어버렸다.
미케노스가 사라지자 사내는 약간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호오. 놀라운데? 미케노스를 단번에 막아내다니."
사내의 말을 들은 카인 역시 말도 안되는 상대의 기술에 놀라고 있었다.
"미케노스? 대체 그게 뭐냐? 아무래도 엄청난 능력의 매너포스를 지닌 자 같군 자신의 의지대로 대지의 기운을 이용해 공격하다니"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훗 옷은 화려하게 입었으면서 머리는 텅 비었군.. 이건 매너포스가 아니야. 완전히 별개의 기술이라구. 네 검술실력은 솔직히 인정할만해.
미케노스를 그렇게 쉽게 막아낼줄은 솔직히 몰랐거든 하지만 무식한건 못봐주겠어!"
사내가 무식하다고 놀리자 더욱 얼굴이 상기된 카인은 다시 공격해들어갔다. 엄청난 스피드로 /자 베기를 한 카인의 검을 보고는 사내는 외쳤다.
"쉘리아드!!!"
사내가 외치면서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왼손에서 원형으로 생긴 단단한 금속으로 몸이 둘러싼 생명체같은 것이 튀어나와 카인의 검을 튕겨내었다. 사내는 자신이 약간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을 간파하고는 외쳤다.
"볼캔샤이어!!"
사내의 오른손에서 붉은색으로 생긴 화염덩어리가-마치 새처럼 생긴- 카인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카인은 도저히 볼캔샤이어를 막아낼 자신이 없었는지 순간적으로 쉐도우와 접속하였다. 볼캔샤이어보다 쉐도우와 접속하는 시간이 훨씬 짧았는지 카인은 엄청난 스피드의 볼캔샤이어를 막아내었다.카인이 이상한 금속으로 온몸이 둘러싸여진 것을 보고 놀란 사내는 외쳤다.
"이봐? 이건 반칙이야. 변신하는게 어딨어?"
사내가 울먹이는 투로 카인을 놀렸다. 카인이 상대를 얕잡아본 것은 사실이지만 맨몸으로 상대와 싸워서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카인을 심난하게 했다. 카인은 쉐도우와의 접속을 끊으면서 말했다.
"풋 그래.. 내가 졌다. 쉐도우와 접속해서 이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지.. 내가 졌어."
사내는 카인이 패배를 시인하자 웃으면서 다가왔다.
"난 파인리히.. 파인리히 사담이야. 다시 말하지만 난 절대 관광객 등쳐먹는 강도가 아니라구!"
파인리히의 말을 들은 카인은 미안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세느카는 일이 의외로 별 사고없이 끝나 다행이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파인리히? 당신은 누구길래 이곳에 나타난거죠?"
세느카의 질문이 말이 안된다는 듯 파인리히는 검지손가락을 펴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흠.. 그건 내가 댁들한테 할 소리요. 댁들은 어째서 유적에 와서 신성한 유적을 손상시키려는 거요?"
세느카가 존대말을 써서 그런지 몰라도 파인리히는 어색하게 존대말을 구사했다. 세느카는 아까 자신이 신전 벽을 향해 손을 뻗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설명했다.
"그건 만지려던게 아니었어요. 다만 그 신전이 뛰어난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진것인지 알고 싶었을뿐이죠"
파인리히는 그녀가 고의로 그랬다는게 아닌 것이 밝혀지자 경계를 풀면서 말했다.
"아 그랬군요 후훗.. 그럼 내가 미안하네요. 당신들이 유적을 훼손시키는 무뢰한인줄 알았거든요. 당신은 고고학자인가요?
어떻게 저 신전이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죠?"
파인리히는 세느카의 행색을 보아 고고학자는 아닐거란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그녀가 신전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것에 한 번 의심해본것이다.
"아뇨 전 고고학자가 아니에요. 다만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여자일뿐이죠."
파인리히는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것에 흐뭇해하며 말했다.
"후훗 그렇군요. 안목이 대단하네요. 그래요. 이 건물은 아마 엄청난 지식을 가진 녀석들이 만들어낸 걸거에요. 바로 자신들을 추앙할 인간들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려 한것이죠. 왠지 자만심과 허영이 가득차 있는 건물이에요"
파인리히는 자신의 견해를 솔직히 말했다. 세느카는 파인리히를 다시 한 번 본후 신전을 바라보았다. 파인리히의 말대로 자만감이 가득 베어있는 모습이었다.
"당신은 고고학자인가요? 아니면 역사학자?"
세느카의 질문을 들은 파인리히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양팔을 벌려 살짝 들어올려 제스쳐를 취했다.그리고는 아리송한 말을 꺼냈다.
"고고학자일수도 있고 역사학자일수도 있고 건축가일수도 있고 과학자 일수도 있고 저기 저 친구처럼 검객일수도 있고 당신처럼 백수일수도 있죠.. 후훗.."
파인리히는 세느카를 가리키며 웃었다. 세느카는 자신을 백수라고 놀린 것을 별로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파인리히란 자가 유적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것처럼 보였기에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졌다. 옆에서 묵묵히 있던 카인은 파인리히가 세느카를 백수라고 놀리자 입을 열었다.
"쳇 그럼 백수가 틀림 없군.. 이런곳에서 할 일없이 노닥거리니.."
파인리히는 카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웃어버렸다. 카인은 파인리히의 행동이 자신을 무시하는것처럼 여겨졌는지 집어넣었던 입자폴리곤 단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속이 너무 좁았던것은 아닌가 생각하고는 손의 힘을 풀었다.
"파인리히? 파인리히라고 했죠? 우릴 도와줄래요?"
세느카의 갑작스런 말에 놀란 것은 파인리히가 아니라 카인이었다.
저런 괴짜녀석을 뭐할려고?? 라고 말하는 것이 얼굴에 쓰여있었다.
파인리히는 세느카의 말을 듣고는 말했다.
"어째서 당신을 도와야하죠? 저런 이상한 검이나 들고 다니는 녀석을 보디가드라고 데리고 다니는 당신을???"
은근히 카인을 깍아내리면서도 자신의 경호원 임무를 맡고 있는 카인의 신분을 알아낸것에 대해 세느카는 파인리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죠. 전 세느카 아이리스라고 해요. 이쪽은 카인. 우리는 인류의 기원을 뒤쫓고 있어요. 세이렌과 헤켈들의 기원도 말이죠. 전 세이렌과 헤켈 그리고 인간들의 분쟁이 더 이상 지속되길 바라지 않아요.
그들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 밝혀내는게 제 사명이죠."
파인리히는 세느카의 말을 듣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당신이 무슨 엄청난 인물이라도 되는것처럼 말하는군요. 그런건 풀수 없는 비밀이고 간직되어야하는 신비에요. 그런걸 풀어서 뭐에 쓰려고 하죠? 평화? 웃기지도 않는군요. 허황된 꿈을 꾸고 있어요. 말도 안되는 꿈을."
세느카는 파인리히가 그렇게 말하는게 틀리지는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제가 하는일이 저도 솔직히 왜 해야하고 왜 여기 와 있고 또 왜 당신에게 부탁하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여기 와있고 인류의 기원을 밝히고 싶고 또 지금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파인리히는 세느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거짓이나 악의 같은 것은 찾아볼수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그들과 동행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파인리히는 세느카의 말중에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아니.. 자신이 근본적으로 늘 고민하던 문제가 그것이기도 했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구사할수 없는 능력을 지닌 파인리히는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문화유적을 뒤진다고 밝혀지는 일은 아니지만 파인리히 자신도 유적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점에선 세느카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당신들은 나에게 무얼 해줄수 있죠?"
파인리히의 말에 세느카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우린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드리도록 하죠."
파인리히는 갑작스럽게 굳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돈으로 해결하겠단 뜻이군요. 쳇 난 관심없어요. "
파인리히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려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세느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그런뜻이 아니에요. 당신이 찾고 있던게 뭔지 모르지만 우리 같이 찾아요. 당신도 유적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것같은데 힘을 합치면 서로 좋은 결과를 얻게 할수 있을거에요"
세느카의 말에 카인도 한 몫 거들었다.
"이봐 우릴 너무 금전적으로 평가하는데 우린 돈많다고 자랑한적도 없고 널 무시한적도 없어. 세느카의 말은 진심이야. 그런데 넌 우리 겉모습만 보고 우릴 멸시하려 들고 있어. 너와 더 이상 말다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엔 니가 잘못했어!"
카인의 말을 들은 파인리히는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서서 말했다.
"흠 듣고보니 맞는말이군 솔직히 내가 약간 열등의식을 가진건 사실이니까 좋아. 그럼 한가지 제안을 하지. 내가 너희들을 돕는 대신 너희들은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마. 그 어느것도 말야. 너희들에게 해줄말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지 유적을 조사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야.
이렇게 한다면 너희들과 함께 가겠어!"
세느카는 파인리히라는 녀석에 대해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엔 그의 실력이 아까웠다.
"흠 좋아요.. 파인리히. 당신이 그런 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드리도록 하죠. 서로의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선 서로 질문 안하기로 해요. 이제 됐죠?"
세느카의 말은 일방적으로만 당하진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파인리히는 그런것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기때문이었다.
카인이 파인리히를 보고 말했다.
"파인리히.. 우리랑 동행한다면 위험한 순간이 많을수도 있어. 이건 다른 종족들과도 관련된 일이니까 공격받을수도 있다구. 네 몸은 네가 보호해야해"
카인의 말을 들은 파인리히는 웃으면서 말했다.
"후훗 너나 잘 보호해. 남 걱정 하지 말고.."
파인리히의 비꼬는 말에 기분은 상했지만 이왕 동료가 되었으니 잘 지내보려고 카인은 내색하지 않았다. 세느카는 파인리히의 성격이 약간 꼬여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에겐 삶 자체가 아주 힘든것같았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려했기때문이었다.
세느카 일행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신전 내부를 탐사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전 내부는 고대건물이지만 마치 현대의 상막한 세라곤 건물들과 같은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답답하군요."
세느카가 말했다. 카인역시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파인리히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추리는 맞는것같아. 이 건물은 엄청난 실력을 가진 과학자가 만들어낸 건물이야. 너무나 정교해 밖에 있는 건물들과는 차원이 틀려. "
파인리히의 혼잣말같은 말을 듣던 세느카는 파인리히가 반말하는것이 귀에 거슬렸다. 아무리 매너 없는 남자라지만.
"그래. 그걸 느끼고 있었지 흠 저 석상은 마치 위대한 신같군.."
세느카는 일부러 파인리히가 들으라고 반말을 한거였지만 파인리히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파인리히의 과거에 대해 물을 수 없었던 세느카는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기에 그냥 계속 말을 놓기로 했다. 세느카보다 5살이나 연상이던 카인역시-솔직히 이 시대에 5살은 연상도 아니었다.-얼떨결에 말을 놓아버렸다. 카인은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게 당한것같았지만 세느카를 봐선 차마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세명은 커다란 석상앞에 서 있었다. 그 석상은 인간처럼 생긴 신을 묘사해놓은것같았는데 거대한 석상의 몸집에 비해 신의 몸은 왜소하기 그지 없었다. 아니. 정말 뼈밖에 안남은 모양이었다.
"후훗 옛날 신들은 무척 가난했나보군.. "
카인이 말했다. 파인리히는 맞장구를 치며 석상을 살펴보았다.
"거대하지만 깡마른 체구. 이들이 우리 인간을 창조해낸것이었을까..
아니면 헤켈을? 세이렌을?? "
파인리히의 말을 듣고 있던 세느카는 쉽게 단정하긴 이르다는 듯 반박했다.
"이 석상은 단지 석상일뿐일수도 있어. 어쩌면 이 유적에서 문명을 이룩해낸 인간들중의 한명일수도 있지. 아무런 단서가 없어.
어? 이건???"
세느카는 석상 뒷편에 놓여진 원형 단상위에 쓰여진 문자들을 발견했다.
"그건 고고학자들도 발견해냈던 고대문자야. 아직 어떤 문자이거나 해석이 어떻게 된다거나 하는 것은 밝혀내지 못했어. 해석된다고 해도 크게 도움될지도 의문이고 말야 "
세느카는 이상한 모양의 문자를 자신의 수첩에다 적었다. 더 이상 유적안에서 발견할게 없음을 안 셋은 푸치니 시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세느카가 발견한 문자=GiGa Slender) 유적에서 나온 일행은 호버크레프트에 탑승하였다. 카인은 파인리히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행색을 보면 이런걸 타봤을리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많은 지식을 가진 파인리히였기에 무시할수 없었다. 카인은 자신이 파인리히를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자신이 패배했기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한 카인은 부끄러워졌다.
파인리히는 호버크레프트 중앙에 있는 휴식공간에서 옷에 붙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는 졸고 있었다. 호버크레프트는 대부분 자동조종이었지만 카인은 신경 쓰이는 듯 대부분 자신이 직접 조종하였다. 할 일이 없었던 세느카는 파인리히에게 말을 걸까 하다가 그가 자는 모습을 보고 차마 깨울수 없어 다시 조종실로 돌아왔다. 카인을 향해 세느카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카인. 당신은 파인리히를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군요."
카인은 세느카의 의도를 금새 알아차리고는 그녀의 농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화제를 딴곳으로 돌렸다.
"훗 왜 갑작스럽게 존대말을 하죠? 아까는 서슴없이 반말했잖아요.
파인리히하고도 그리고 나한테도"
세느카는 은연중에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표현한 카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래.. 맞아. 거추장스럽게 존대말 할 필요가 없지? 안그래 카인???"
세느카의 웃는 얼굴에 카인은 두손두발 다 들었다는 듯 포기의 눈빛으로 말했다.
"후.. 그래.. 세느카.. 너의 입심에는 당해낼 수가 없어. 허기야 완전히 처음 만난 사이도 아니고 어차피 앞으로도 많은 일을 같이 풀어나가야 하니까. 말 놓는게 편할거야. 후훗"
카인은 체념의 웃음을 보였다. 세느카는 단지 놀린것뿐이었는데 카인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장난이었다고 하면 카인을 더 놀리는 꼴이 되니 그냥 아무말 없이 있기로 했다.
"저 파인리히란 녀석 말야.. 어디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지? 우리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 녀석에 대한 아무런 데이터도 없이 동행시킨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세느카는 카인이 파인리히를 시기하거나 미워해서 저런말을 하는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심어린 미소를 보내며 말을 했다.
"난. 왠지 그가 외로워보였어. 무언가 부족해보이는. 그런 느낌 나하고 비슷한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 그에 대해 아는건 없지만 왠지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고 할까. 하여간 그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우릴 해쳤을테지 안그래?"
어느덧 서로 반말하는게 익숙해진 둘은 게속 대화를 나누었다. 카인은 세느카의 경솔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미칠지는 몰랐지만 세느카를 믿어보기로 했다.
"훗 그래 지금 대장은 너니까 네 결정에 따르겠어. 나의 임무는 널 보호하는거니까. 하지만 파인리히가 언제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보고만 있지는 않겠어. "
카인의 말을 듣고 세느카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니 그럴일은 아마 없을거야.. 아마도"
어느덧 호버크레프트는 푸치니 시의 검문 절차를 통과하여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셋은 조웬호텔에 들어가 피로를 풀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