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화 아름다운 최후는 없다
-그어어어!
기오르그는 몸통을 붙이며 다가오는 부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부루가 밟고 있던 검은 대지가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악!
-끄윽!
그 와중에 하체가 무릎을 꿇고 일어서며 상체를 붙여 올렸다.
마치 허리가 길게 늘어난 것처럼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펼쳐낸 수법으로 부루의 몸뚱이가 검은 대지에 먹힌 것처럼 둘러싸였지만, 그건 오래 가지 못했다.
촤아아악!
한쪽이 뜯겨나가듯 터지며 부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건 또 뭔 지랄이네?”
부루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대부를 휘둘러 검은 것들을 찢어발기듯 치우며 기오르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부왁!
대부가 기오르그의 몸뚱이를 세로로 가르듯 내리 찍혀져 왔다.
아직 재생이 채 끝나지 않았던 기오르그는 그것을 막는 것보다 피하는 것을 택했다.
-크윽!
이젠 여유도 없었다.
그가 몸을 날리자 부루의 대부가 바닥을 크게 찍었다.
콰아앙!
검은 대지가 크게 파이며 일렁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부루가 기오르그가 몸을 날린 방향으로 내달렸다.
콰앙!
부루가 어깨로 아직 제대로 서지 못한 기오르그의 몸뚱이를 밀어쳤다.
그러자 기오르그가 크게 휘청이면서도 그를 향해 본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그런 그의 공격을 부루는 대부를 틀어잡더니 허리를 뒤틀며 다시 한번 비스듬히 올려 쳤다.
쩌엉!
-흡!
본 브레이커를 쥔 손이 튕겨 나가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쿠웅!
부루가 비켜 올려 친 대부의 방향으로 몸뚱이를 크게 맴돌리며 다시 발을 강하게 내디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그의 대부.
기오르그는 퉁겨져 올라간 본 브레이커를 급히 잡아당기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부루가 휘둘러오는 대부의 궤적으로 사자의 대지가 마치 촉수를 뽑아 올리듯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그의 대부를 잡아끌겠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부루의 대부는 거칠 것이 없었다.
투투투확!
솟구쳐 올라왔던 촉수들은 연달아 잘리며 전혀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
이어진 격돌.
콰작!
본 브레이커에서 들려온 소리에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졌다.
본 브레이커가 중간에서부터 잘려져 나간 것이다.
와그작!
-끄아아아아!
잘린 것은 본 브레이커만이 아니었다.
거의 이어 붙었다 싶었던 허리춤의 절반이 다시금 부루의 대부에 의해 박살이 난 것이다.
기오르그는 비명과 함께 잘린 본 브레이커를 쥐고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를 향해 부루는 더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라붙었다.
콰앙!
휘둘렀던 대부를 끌어당기며 그 자루 끝으로 골반 위를 찍어냈다.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골반과 허벅지 사이가 내려앉았다.
다시 휘청이는 기오르그의 몸.
대부 자루로 골반을 찍어낸 부루가 땅을 박차고 올랐다.
그러자 앞으로 기울어진 기오르그의 면상에 부루의 머리가 틀어박혔다.
콰앙!
기오르그의 면상이 움푹 패이며 고개가 반강제로 하늘로 쳐들렸다.
하지만,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박치기에 이어 부루는 다시 왼 무릎으로 기오르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우적!
옆구리가 크게 휘며 조금 전 대부로 잘린 부위가 더욱 크게 벌 어졌다
물론 기오르그의 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떡 벌려져 있었다. 밀려오는 고통을 채 표현하지 못하고 말이다.
-커흐으…….
기오르그는 침을 흘리면서도 반 토막이 난 본 브레이커를 부루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부루가 그의 품에 안기듯 바짝 들러붙었다.
터억!
휘두르던 팔의 팔뚝이 부루의 단단한 승모근에 턱 하니 걸렸다.
그 상태에서 부루가 대부를 손에 놓으며 토막이 난 본 브레이커를 쥔 기오르그의 팔꿈치 아래를 잡았다.
이어서 승모근으로 버티며 잡은 기오르그의 팔을 아래로 꺾었다.
우직!
팔꿈치가 반대로 꺾이며 허연 뼈가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캬아!
이어 부루는 덜렁이는 기오르그의 손목을 잡아 본 브레이커를 그대로 기오르그의 몸뚱이에 박아넣었다.
콱! 투투툭!
명치께에 박혀 들어가는 본 브레이커.
터덕, 터덕.
기오르그가 반 이상 잘린 허리를 제대로 재생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무기를 명치께에 박은 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부루는 그런 기오르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바닥에 놓였던 대부를 다시 잡아 휘둘렀다.
콰작!
미처 빼지 못한 다리 하나가 무릎아래에서 잘려 나갔다.
-크흐…….
기오르그는 비교적 멀쩡한 팔로 쓰러지는 몸뚱이를 버티고 세웠다. 하지만, 부루는 그 꼴도 보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다시금 휘둘러진 대부가 어깨 아래에서부터 그대로 잘라내 버린 것이다.
콰작!
마른 장작이라도 패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그대로 엎어졌다.
퍼억!
그가 엎어진 곳을 중심으로 사자의 대지가 출렁였다.
-나, 나의 권능이…….
자신이 거느리던 마족들에게서 힘을 회수하면서 강력해졌던 힘이 급격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켈그로이언과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시작이었다.
거기에 부루의 공격은 숨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거이 다이긴 싸움만 해본 티가 나는구만 기래. 힘만 쎘디, 무기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건 멍청한 거이디.”
그의 앞에 선 부루가 대부를 지팡이처럼 짚고 섰다.
그때 기오르그가 만들어내었던 세상에 구멍이 뚫렸다.
마치 녹아내리듯 뚫린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틈과 구멍이 생기며 그의 세상이, 권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계웅삼의 장도가 허공을 갈랐다. 상대가 피한 건 아니었다.
“응?”
사자의 대지에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솟구쳐 오르던 검은 인형들이 갑자기 힘을 잃고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은 사방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현상이었다.
이내 검기만 했던 세상에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밖의 광경이 점점 넓어지는 구멍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역시 공기는 이쪽이 좀 나은가?”
응삼이 장도를 어깨에 올리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어?”
갑자기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물러서기 시작하는 마족들을 보며 잠시 숨을 돌리던 군인들의 시선이 저절로 한쪽으로 향했다.
아까 기오르그와 부루가 사라졌던 곳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가 녹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그 틈으로 부루와 함께 빨려들 듯 사라졌던 가우리의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다시 보이고 있었고, 그들이 딛고 있던 검은색 땅이 한쪽으로 빨려 들어 가듯 사라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군인들과 소환자 강림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검은 기운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곳에 눈에 익숙한 존재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지옥을 만들어낸 존재.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
그가 부루의 앞에 한쪽 팔다리가 하나씩 잘린 채 엎어져 있었다.
멀리서 퇴각하던 마켈그로이언이 다시 나타난 기오르그의 기운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설마 했건만…….
그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처참한 기오르그에게서 거만하고 오만했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켈그로이언은 스스로 기오르그와의 서약을 배제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선언하는 마족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의 세력을 더 키울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뭐, 반쯤은 내 탓인 건가?
하지만, 기오르그가 저리된 것의 원인 일부는 자신이 제공한 것이었다.
맞지 않는 계약 파기를 거부한 것은 둘째치고 기오르그 휘하에 있던 마족들에게 맹약을 파기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라며 선택을 강요했으니까.
이곳에 있는 상당수 상급 최상급 마족들은 거의 다 그에게 넘어왔으니 기오르그의 권능이 약해졌을 것이 뻔했다.
아쉽지만 여기서 더 버티는 것은 위험했다.
-마계 역사에 길이 남을 비참한 패배군.
마켈그로이언은 씁쓸한 뒷맛을 느끼며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휘하에 있던 마족들 역시 그를 따라 빠르게 물러났다.
남은 것은 기오르그와 맹약이 파기되어 그들에게 사냥을 당하던 마족들과 혹은 아직 파기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마족들뿐이었다.
-대, 대군주께서…….
흔들리는 시선들이 기오르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뇌리로 기오르그의 명이 떨어져 내렸다.
-마켈그로이언이 배신했다. 날 구하러 오라…….
하지만, 마족들은 얼굴을 굳힐 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배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맹약 관계를 일방적으로 깬 것은 기오르그였다.
아직도 곁에는 그렇게 맹약이 깨어지고 힘을 빼앗긴 마족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아직 그들의 군주는 기오르그였기 때문이었다.
기오르그의 수하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힘을 쏟아내며 몰려가기 시작했다.
처음과 달리 꽤 초라해진 숫자가 기오르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적은 수는 아니었다. 족히 수천 이상은 되었다.
이쪽의 숫자는 그보다 많기는 했지만, 이미 모든 힘을 뽑아 쓴 상황이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이게 마지막 전투라는 것을 감지라도 한 듯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함성을 내지르며 마중을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끼어들 구석은 없었다.
두두두! 두두두!
순간 기마들이 그들을 스치고 먼저 달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대무덕이 병사들을 이끌고 마중 나가며 외쳤다.
“네놈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느니라!”
그렇게 달려 나간 가우리군이 힘을 쥐어짜 덤벼오던 마족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달리던 군인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
“파, 파이팅!”
본능적으로 저기 끼면 걸리적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 아아아…….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비틀거리며 일으켜 세워졌다.
잘린 팔에서 허연 뼈가 솟아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다리도 비슷한 형태로 복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비척이며 뒷걸음질을 치는 기오르그를 보며 부루가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었다.
“추하디 않네?”
-나, 나는…….
“차라리 아까처럼 건방을 떠는 거이 났디.”
“그러게요. 깨는데요?”
옆에선 고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최종 보스치곤 그 끝이 너무 구질구질했다.
그때 그를 본 기오르그가 눈을 빛내었다.
부루의 소환자.
-네놈!
그만 없다면, 부루 역시 없다.
기오르그가 눈을 부릅뜨자 빈의 뒤에서 뼛조각들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차라리 몰래 하던지.”
투투퉁!
그런 그의 기습을 빈이 대부를 휘둘러 쳐내었다. 하지만 기오르그는 빈을 향해 비척이는 몸뚱이를 날렸다.
마치 이것만이 살길이라는 듯.
그때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
뒤늦게 들려오는 소리.
콰자아악!
빈을 향해 나아가던 기오르그의 상체가 앞으로 빙그르르 돌며 날아갔다.
동시에 내달리던 하체는 그대로 땅에 널브러졌다.
또다시 몸통이 두 쪽 난 것이다.
“바보도 아니고. 허섭한 짓을 왜 하는 거이간?”
빙그르르 돌아가며 날아가는 기오르그의 귓가로 한심하다는 감정을 담은 부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웅!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바닥에 크게 박혔다.
-흐으으…….
바닥에 널브러진 기오르그의 시야에 하늘과 그 하늘을 등지고 도끼를 치켜 올리고 있는 빈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빈이 중얼거렸다.
“사자의 대공이라며? 죽은 자의 왕이라며? 그런데 왜 죽음 앞에서 추잡스러울까?”
-나, 난 …….
기오르그가 허망한 시선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빈은 그의 중얼거림이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닥치고, 막타다. 이 새까.”
동시에 하늘로 치켜올렸던 빈의 도끼가 그대로 기오르그의 미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