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비슷하지만 다른 점
* * *
콰앙!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바닥을 크게 뒹굴었다.
그 덩치가 밖과 달리 작아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강함과 크기는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크아아!
기오르그가 노성을 터트리며 눈을 부릅뜨자 부루의 주변에 있던 사자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갔다.
퍼퍼퍼펑!
기습적인 폭발.
하지만 부루의 몸 주변에는 언제 둘러졌는지 마법 방어막이 펼쳐져 있었다.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휙 돌아갔다. 그곳에는 시아론 리셀이 한쪽 입꼬릴 올리며 손을 거두고 있었다.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 수는 거의 기습처럼 펼친 것이다.
보거나 느꼈다 해도 대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야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자신이 다루는 사자들과 그들을 바라보았다.
쉽없이 솟구쳐 올라 적을 향해 몸을 날리는 사자들. 굳이 명령도 필요 없었다.
그의 의지가 곧 명령.
비록 하나하나가 저들보다 약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까지 밀린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숫자는 그저 착각에 불과했다.
그가 부리는 사자들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이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수의 병력을 운용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명령전달체계가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지금처럼.
슈우우우!
적들의 전력이 비어있어 보이는 쪽으로 자신의 사자들을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는 사자들이 몸을 일으키며 적들의 후미를 파고들 듯 달려 나갔다.
기습이었다.
그 순간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별다른 명령이 없었음에도 그쪽으로 적들의 병력이 몰리며 기습해오는 자신의 수족들을 썰어나가고 있었다.
-수가 많은 게 아니었군.
기오르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을지부루의 능력은 자신의 권속들을 소환하듯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소환된 듯 해 보이지만, 처음부터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 이순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냐면 자신의 권능과 닮았으니까.
다른 점은 자신은 사자들을 부리는 것이고 저들은 그저 함께 공유하듯 알아서 움직인다는 것.
모두가 머리고 모두가 눈이며 모두가 칼.
콰앙!
다시금 부루의 대부가 내리 꽂히자 기오르그가 본 브레이커를 들어 다시 막아내었다.
하지만, 이내 부루가 발로 가슴팍을 내질러 버렸다.
퍼억!
그대로 뒷걸음질을 몇 번 치다가 뒤로 나자빠졌다.
크게 한 바퀴 구르며 몸을 튕기며 일으켰다.
쩌억!
그 순간 자신의 옆구리에 대부가 날아와 박혔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드리워졌지만, 기오르그의 시선은 부루의 몸 주변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 너울거리는 푸른 선들이 가느다랗게 여기저기로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전투를 해오며 중간 중간 별의 의지가 최후까지 뽑아내는 힘의 찌꺼기로만 알았던 그 푸른 선이었다.
그러나 지금 단순하게 별이 남긴, 별이 쥐어 짜낸 찌꺼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푸른 선은 여기 있는 모두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마치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얽기설기 엮여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을지부루가 있었다.
그로 하여금 만들어진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끌고 오고 또 끌고 온 것이다.
그 선은 서로를 향해 오가고 있었다.
흘러갔다가 다시오고.
또다시 어디론가 흐르고.
쉴 새 없이 움직이다가 다시 한 쪽으로 모였다.
바로 부루에게로.
그걸 보며 기오르그는 자신의 몸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기운이 자신이 디디고 있는 사자의 대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이 대지를 밟고 있는 한 그의 권능은 사자의 군단을 계속해서 뽑아낸다.
그런데 이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다.
기오르그는 자신의 힘을 나누어 부리고 부루는 마치 응원이라도 받듯 힘을 모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한다는 저 권능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기오르그가 허리춤에서 대부를 뽑아내려 하는 순간 부루가 턱하고 발을 밀어 찼다.
쑤욱!
-크어억!
옆구리가 시원해졌다.
박혀있던 큼직한 대부가 빠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대응을 하면 되었다.
기오르그가 이를 악물었다.
순간 그의 몸 주변에 보랏빛 기운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 * *
-죽어라!
“허어억!”
마족 하나가 멱살을 잡은 마갑주병을 향해 다른 한 손에 마력으로 피워낸 화염을 피워 내었다.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
그 순간이었다.
-이, 이게?
순간 마갑주병의 머리를 향해 뻗어가던 그의 손에서 불꽃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사그라져들었다.
“으응?”
그 뿐만이 아니었다.
멱살을 잡힌 체 매달려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던 마갑주병이 멱살을 잡은 마족의 손에 힘을 주자 몸이 풀렸던 것이다.
아주 손쉽게.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풀려났다는 점과 상대방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풀려나며 바닥에 한쪽무릎을 꿇었던 마갑주병의 손에 벌목도로 쓰이는 나대라는 도가 들려 있었다.
그가 나대를 휘둘렀다.
-가, 감히!
순간 정신을 차린 마족이 손으로 그의 도를 막아갔다. 하지만, 강철보다도 더 단단했던 그의 손은 도를 막을 수 없었다.
서걱!
-이…….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막으려 했던 손의 윗부분이 꼭 수숫대처럼 썰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마갑주병이 또 바닥에서 주워 올린 도끼와 나대를 교차하 듯 휘둘러오자 온몸에 고통이 찾아왔다.
손 위가 아니라, 팔뚝 아래가 잘리고 옆구리가 갈라지며, 내장이 주르륵 쏟아졌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나대가 왼쪽 승모근을 통과해서 반대편 어깨 죽지 바로 아래까지 가르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쩍하니 벌어진 자신의 상체의 틈바구니를 바라보았다.
심장 일부가 펄떡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
어이없음에 뭔가 말하려 하던 마족의 입에서 울컥하고 역류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 갈라진 몸통사이에서 펄떡이며 뛰던 심장에 도끼날이 퍽 하니 찍혀들었다.
동시에 마족의 눈에 빛이 사라져 버렸다.
이 마족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방이 그랬다.
“놈들이 갑자기 약해졌다!”
“으아아!”
“죽여어!”
물론 약해졌다고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이 드라마처럼 펼쳐지지는 않았다.
마갑주병은 그래도 마족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유일한 병과중 하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약해졌다는 것은 팩트였다.
“으아아아!”
누군가가 방패로 밀어 붙이고 있었고 그 양 옆으로 창과 도끼 같은 걸 든 군인들이 연신 찍어 내고 있었다.
그들의 합공에 마족의 온몸에 피가 튀기 시작했다.
그때 한 마족이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으, 은총이?
-서, 설마 대군주께서?
그들에게서 은총이 사라진 것이었다.
대군주와 그들 사이에 오가며 서로를 증폭해주듯 존재하던 은총이 삽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 차이는 컸다.
마력의 양이 확 줄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자의 군주인 만큼 그가 내려주는 권능은 특별했다.
은총을 받은 존재들로 하여금 주변에 시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기를 흡수하여 마력의 근원으로 삼도록 한다.
즉 죽은 존재가 많을수록 그들에게는 또 다른 힘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기오르그가 수하들의 죽음에 민감하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양분삼아 더 강해지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힘이 순간 사라지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죽음이야 말로 싸울수록 강해지는 힘의 근원.
부여된 힘이 빠져나가자 마족들은 순간 가진 탈력감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상대편에게로 하여금 기회가 되었다.
콰아앙!
-꾸웨에에엑!
콰콰쾅!
그때 카르탈마니어가 마켈그로이언에게 크게 한방을 맞아 바닥으로 처박혔다.
-아니야! 그건!
마켈그로이언은 이게 대군주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대군주와 은총으로 엮여진 상태.
그때 그에게로 게르하이오 기오르그의 목소리가 뇌리로 울려왔다.
-……다오. 내게…….
순간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뭡니까? 이긴 겁니까?”
마족들을 상대하던 광호가 임꺽정과 함께 또 하나를 쓰러트린 뒤 불에 그슬린 채로 몸을 일으키는 헤게루이안을 부축하며 질 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치 예전 자신들처럼 순간 힘의 공백을 느끼는 마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자신들보다도 더했다.
어쩌면 자신들이야 군주의 은총을 받았던 것이고, 저들은 대군주와 연결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더 큰 탈력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판단은 되었다.
그런데 그게 대군주의 죽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새롭게 대군주에 오른 부루의 격이 오르며 자신들의 힘이 더 커져야 하건만 그러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일부 마족들은 전혀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바로 회유와 교언의 마족인 마켈그로이언.
그의 수족들이다.
그때 헤게루이안의 머릿속에 군주위를 회수당한 두 존재가 떠올랐다.
공포의 군주였던 크리팔과 파괴의 군주였던 크로드이언.
둘은 대군주의 명을 이행하지 못한 죄로 힘을 회수 당했던 것이다.
물론 군주쯤 되면 아무렇게나 힘을 빼앗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미 대군주가 내어준 기회를 스스로 무너트린 것이다.
즉 빌미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강탈당한 것이었다.
그럼 저들은?
저들은 그저 회수하면 회수당하는 존재다.
군주들과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힘을…… 힘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힘이요?”
-기오르그가 모든 은총을 거두어들이고 있단 말입니다!
헤게루이안이 환한 얼굴로 외쳤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광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질문을 하자 헤게루이안이 몸을 털고 일어서며 대답했다.
-은총을 회수한다 해도 일방적인 파기나 마찬가지기에 모든 힘을 회수하지 못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이러는 것은 지금 기오르그가 몰릴 대로 몰렸다는 겁니다!
헤게루이안의 대답에 광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어 그가 옆에 엎어져 있는 차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 위에 올라서서 외쳤다.
“기오르그가! 지금 쫄려서 발악한단다아아아아!”
그 외침.
순간 사방에서 잔뜩 갈라지고 쉰 목소리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으야아아아!
“으아아아아!”
광호가 마치 이겼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외쳐서 힘을 내자는 듯.
그런데 그때 마족들의 일부가 뒤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전의를 잃은 것처럼 말이다.
일부 마족은 옆에 쓰러져 있던 동족의 목숨을 취했다.
소속감이 사라진 마족들이 죽어가는 또 다른 마족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죽여서 자신의 힘을 늘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