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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300화 (300/305)

제300화 부루의 진정한 권능

-제법 몸부림을 치는구나.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거세게 몸부림을 치는지 자신의 대지에서 샘처럼 솟아오르는 사자의 몸뚱이가 여기저기로 퉁겨져 올라가고 있었다.

잘리고 부서지고.

그러나 그뿐이었다.

동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침입자를 향해 몸을 날리고 또 날렸다.

마치 압살이라도 시키겠다는 듯. 더는 나아오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에 기오르그는 다시금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았다.

그렇게 여유를 되찾는 순간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 전까지의 자신이 느꼈던 분노와 고통 그리고 모욕 감이 모두 털어버리듯.

-이런 다양한 감정은 오랜만이었군. 그거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기오르그가 중얼거리며 천천히 앉았다.

그러자 그의 엉덩이를 떠받치듯 바닥에서 사자들이 뭉치며 만들어진 의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천천히 그가 앉은 자리가 솟구쳐 올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기림이 역시나 마음에 들었다.

마치 마지막을 감상하겠다는 듯.

그렇게 천천히 올라가는 그의 시선에 사자들로만 뒤덮인 을지부루가 있는 곳이 들어왔다.

간간이 튀어 오르는 사자들의 몸뚱이와 잔해들이 아직은 그가 싸우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만에 재미있었군.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짙어져 있던 미소가 변화를 멈추었다.

-음?

붉은 기운이 사자들을 뚫고 올라오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것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검은 기운이 다시 일렁이며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갔다.

-새?

새다.

검은 새.

날개를 양옆으로 활짝 피는 새의 형상. 그러나 발은 세 개.

익숙한 형태다.

밖에서 보았던 저들이 들고 휘두르던 것과 같았으니까.

-뭘까.

기오르그 입장에서는 반가운 형상은 아니었다.

권능의 발현처럼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 커다란 도끼가 온전한 권능이 아니란 말이지.

그럴 수도 있다.

그저 가진 무기의 기운이 강렬하게 권능처럼 발현될 수도 있으니까.

그가 가진 사자의 권능 발휘하는 힘이 여러 가지인 경우처럼 말이다.

-기분이 별로군.

을지부루와 관련된 변수는 다 그랬다.

희망을 꺾고, 충분히 짓밟았다 싶을 때 무언가가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것들은 그에게 아까 느꼈던 감정을 느끼게끔 했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권능이 발현된다 해서 무엇이 바뀔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기오르그는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애써 잡았던 여유가 사라진 표정이었다.

기오르그는 다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제 변수 따윈 별로야.

기오르그의 손이 뻗어진 방향으로 더 많은 수의 사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여흥은 여기까지인 걸로.

끼에에에에에!

사자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영혼까지 갉아먹어라.

기오르그가 서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기오르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붉은 깃발에 새겨져 있던 새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한 번의 날갯짓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던 사자들이 바람에 날리듯 튕겨 나갔다.

다시 힘차게 날갯짓이 이어지자 사자들이 또다시 이리저리 뿌려지듯 나뒹굴며 뿌려지듯 흐트러졌다.

그렇게 몇 번의 날갯짓을 한 새가 몸집을 키워나가더니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을지부루의 뒤에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입을 쩍 벌렸다.

꺄아아아아!

길고 긴 포효가 사자의 대지를 흔들었다.

꿈틀.

기오르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내 땅이?

권능이 흔들렸다.

순간 기오르그가 벌떡 일어서 더니 권능을 더욱 강하게 키워나갔다.

그의 몸 주변에서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뿌려져 나갔다.

그 기운들이 마치 이 공간을 지키려는 듯 퍼져나갔다.

지친 을지부루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물처럼 흘렀다.

지쳤음이다.

물론 그 역시 턱 끝에서 떨어지는 순간 먼지처럼 흩어졌다.

이 또한 현실이 아니라는 듯.

“길티. 아쉬우면 안 되디 않았습네까?”

부루의 뒤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던 삼족오가 대답하듯 다시 한번 길게 울음을 터트렸다.

꺄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삼족오의 까만 몸통에서 대답이 울려 나왔다.

“안 되지.”

그리고 마치 그것이 문이라도 되는 듯한 걸음 내디디며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고진천.

그리고 함께 달렸던 이들이 이 안으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리는 우리가 해 주마. 마무리는 네가 해라.”

부루가 웃었다.

역시 이것이었다. 아까도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다 가진 것 같았던 감정.

“이거디. 이거.”

부루의 주변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이 사자들을 향해 몰아쳐 나갔다.

으드득!

이를 갈 듯이 악다문 기오르그의 눈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권능이, 그의 땅이 침범을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의혹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의 대지가 밟히고 있었다.

-하아아.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기오르그의 손에 다시금 본 브레이커가 들렸다.

그의 발걸음이 부루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날개를 활짝 펼친 검은 새의 몸뚱이가 마치 문이라도 되듯 아까 보았던 존재들을 계속 뱉어내고 있었다.

나아가면서도 기오르그는 궁금했다.

저게 대체 무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권능이 발현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는 듣도 보도 못했다.

단지 문을 여는 능력?

이건 아니다.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자신의 권능에 끼어든 만큼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저 존재들이 자신의 땅에서 샘솟듯 솟구치는 사자들을 마치 벼를 베듯 썰어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부루가 양손에 대부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계에 크로이들이라는 벌레가 있지. 별건 아닌데. 이게 꽤 재미있는 놈이야. 밟고 또 밟아도 죽지를 않아.

기오르그의 말을 들으며 부루가 계속 다가왔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래? 재미있구나야.”

-그래서 죽었다 싶어서 지나치면 언제 죽었냐는 듯 다시 살아나 움직이지. 네놈을 보니 딱 그게 생각나는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있구나. 무서워서 친구들을 부른 것이냐? 재주도 좋구나. 친구를 부르는 권능이라.

기오르그가 던진 질문에 부루가 뒤를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래 몰랐는데 말이야. 이거이 내 권능이라면 할 수 있갔어.”

-그래? 그 권능이 친구를 부르는 것이라는 건가?

“거창한 거 없어야. 내 권능이란 건 함께 달리는 거이디. 저 깃발 아래에서 말이야.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길티. 가우리 됴티 않네? 그 이름. 그 이름 아래에서 함께 달리게끔 만드는 거이디.”

-끝? 정말 그게 끝?

기오르그의 입이 쭉 찢어졌다.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알아내는 것이었다.

적의 능력을 아는 것.

그게 변수를 차단하는 일이기 때문이니까.

확인해보니 우스웠다.

-같이 한다. 우습구나. 그게 권능이라니.

“말하는 꼴을 보니까네, 등을 맡길 친구 하나 없군 기래. 기거이 네놈과 나의 큰 차이인 거이디.”

-그래. 큰 차이지. 지배자와의 차이.

“등신 아이간? 헛똑똑이구나야. 그건 지배자가 아니라…….”

뭔가 비유할 만한 게 기억날 듯한데 기억이 안 났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따요. 왕따.”

고빈이 히죽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기래. 왕따. 그런데 넌 여기 어케 온 거이네?”

“아저씨랑 운명공동체인가 보죠.”

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랄말라우.”

부루가 웃으며 다시 화답하고는 양손에 들고 있던 대부들을 하나로 합쳤다.

푸른 파동이 그의 대부에 감돌았다.

“어서 마무리하고 고기부페나 가서 실컷 먹자. 알간?”

“못 가요. 소문나서.”

빈의 대답을 뒤로하고 부루가 기오르그를 향해 대부를 휘둘렀다.

콰아앙!

* * *

“지금 무슨 일이야?”

다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검은 새의 형상이 떠오르더니 가우리의 군세가 그쪽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동시에 전투를 벌이던 이들은 모두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자, 잣된 건가?”

사기가 충천해 있던 군인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신 차려! 아직 안 끝났어!”

강문호 중령의 외침에 다들 다시 무기를 고쳐잡았다.

“으아아아!”

그제야 멈추었던 전투가 다시 이어졌다.

사방에 흐트러져 있던 마족들의 숨통을 끊으면서 동시에 뒤에서 몰려온 차량들로 다시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숨통 붙어 있는 놈들 확인 사살 확실히 하고, 방어선 유지해! 조금 있으면 뒤에 살아남은 마물들이 몰려온다! 빨리!”

살아남은 간부들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명령을 전파했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시를 내리며 몰아붙였다.

그때 차준우 사령관이 외쳤다.

“조금만 버텨! 을지부루 장군을 구하러 갔으니까! 조금만 버티면 되돌아올 거다! 버텨어!”

차 사령관의 외침에 다들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 겁니까? 혹시 저들이 말해 준 겁니까?”

강 중령이 다가와 놀란 눈으로 헤게루이안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차 사령관이 대답했다.

“몰라.”

“예?”

“쉿. 조용해. 나도 모르니까.”

“…….”

차 사령관의 말에 강 중령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지금 그의 명령만큼 상황에 잘 어울리는 게 없었다.

강 중령이 다시 소리쳐 외쳤다.

“버텨! 버텨라! 조금만 버티면 된다!”

하얀 거짓말이다.

이럴 땐 이게 필요했다.

차 사령관의 행동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사기가 떨어지는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었으니까.

-제,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카르탈마니어가 당황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다만, 군주님의 기운이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도 그건 알아! 젠장, 처음부터 대군주에게 대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지금 그게 할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쿠우우우우!

커다란 기운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둘은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헤게루이안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잠시 끊어졌던 대화를 이었다.

-……저놈을 막는 일입니다.

그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마켈그로이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그래. 이참에 나도 군주가 되는 거지. 안 그래?

카르탈마니어가 왠지 자신 없는 얼굴로 애써 만든 미소를 입에 배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헤게루이안 답했다.

-맞습니다. 이건 기횝니다.

애써 비위 맞추듯 말해 주었다. 그러자 카르탈마니어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젠장. 엄청나게 힘이 솟는군.

카르탈마니어가 피식 웃으며 마켈그로이언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도로 땅에 처박혔다.

-하아.

시간이라도 제대로 끌 수 있을까 하는 후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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