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화 사자의 대지
마켈그로이언이 황급히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그의 상체를 스치고 창 한 자루가 스쳐 지나갔다.
겨우 창 한 자루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창 한 자루에 담긴 힘 자체가 달랐다.
이것이 날아오는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며 위험경고를 울렸으니까.
이내 아래를 바라본 마켈그로이언은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태연하게 이쪽을 바라보며 다시금 창을 건네받고 있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보며 마켈그로이언은 긴장을 안 할 수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아까 기오르그에게 한방을 먹였던 존재였다.
가늠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한 수만으로도 최소한 군주급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은 자신이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방금과 같이 공격을 하겠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방금 대규모 마법으로 인해 분명 기오르그에게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군주에게는 휘하의 세력이 곧 힘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마족들이 기오르그의 힘 전부는 아니었다.
비록 이곳의 병력이 주력이지만 마계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고, 또 미국에도 군주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자신 또한 군주였고, 두 명의 군주는 직접 힘을 회수해갔다.
냉정하게 판단하건대 비록 기오르그가 권능에 타격을 입었다 해도 대군주의 힘이 어디가지 않는다.
일곱의 군주중 다섯의 힘을 가진 이가 이제 겨우 두 군주의 힘을 아우른 을지부루에게 당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기다릴 때인가.’
마켈그로이언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기오르그에게 돌렸다.
다리가 잘려나간 기오르그를 보면서도 질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막대했으니까.
그의 군주위는 대군주인 기오르그가 내려준 것이다.
즉 그와는 주종관계면서 권능으로 이어져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상황을 이어나가는 것이 맞았다.
자칫 저들이 끼어들면 그때는 솔직히 복잡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마켈그로이언은 천천히 몸을 띄워 뒤로 물러섰다.
마치 이 대결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듯 말이다.
고통.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크아아!
기오르그가 눈을 부릅뜨자 파열음과 함께 달려들던 부루의 몸뚱이가 뒤로 나뒹굴었다.
거의 백여 미터는 미끄러지며 날아간 것이다.
“아이쿠! 그놈 눈깔로 재주도 부리는구나야!”
그렇게 나뒹굴던 부루가 다시 발을 박차며 농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농담을 던지는 이의 시선이 아니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기오르그는 얼굴이 벌게졌다.
그 시선이 향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저 시선은 마치 자신을 먹잇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기오르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잘려나간 발목에서 뼈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꽤 많이 잘려 나갔던 탓인지 더디게만 느껴졌다.
그때 기오르그가 달려드는 부루를 바라보며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박아 넣었다.
우직!
그의 손이 살을 가르고 박혀 들어갔다.
“뭐이야? 무서워서 돌아버린 거간? 왜 스스로 가슴팍을 가르고 지랄이네?”
부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우두둑!
부루가 던져대는 격장지계에 기오르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에서 갈비뼈들을 뽑아내었다.
그러자 그걸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콰우우우우!
순간 갈비뼈가 박혀 들어간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검게 물들어갔다.
사자의 대지.
기오르그의 권능인 사자의 대지였다.
대지소환 마법이라는 특이한 것으로 죽은 자들의 땅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땅에서 느물거리며 검은 형상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달려오고 있는 부루를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물론 부루가 그걸 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 두 자루로 나뉜 대부가 춤을 추었다.
그 현란함은 두 자루의 부를 무기로 삼던 부여기율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서거거걱!
검은 형상들이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마치 물을 베듯 그것들은 그대로 다시 합쳐지며 부루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으잉?”
그것들이 들러붙자 부루의 몸뚱이가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늪에라도 빠진 것처럼 말이다.
그때 기오르그의 몸이 마치 녹듯이 땅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
기오르그가 서늘한 눈으로 부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검은 땅으로 완전히 스며들어가는 순간 검은 것들에게 온몸이 뒤덮였던 부루 역시 땅으로 스며들어갔다.
마치 두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남은 것은 사기를 풍기는 검은 땅 뿐이었다.
-그렇지.
마켈그로이언이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기오르그도 느낀 것이다.
이 전투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사자의 대지는 바로 그런 것이다.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는 일종의 공간분리 마법이었다.
이제 저들로써는 도울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마켈그로이언은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남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름이 끼쳤다.
전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
별로 좋지 못한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마켈그로이언은 조금씩 뒤로 더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라도 되었는지 마치 싸움판을 만들어 주듯 둘러싸고 있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마켈그로이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 * *
쿠우웅!
검은 대지.
마치 마계와도 닮았지만, 또 달랐다. 끈적끈적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시체 썩는 냄새.
“뭐이간?”
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혀를 내둘렀다.
어스름한 보랏빛만이 감도는 대지. 부루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툭 쳐내었다.
철떡.
진창과 같이 뭔가가 발에 채여 날아갔다.
그 안에 허연 것이 살짝 드러났다. 부루는 그걸 대부 끝으로 툭하니 쳐냈다.
그러자 마치 큰 돌이 빠지듯 그게 빠져나왔다.
해골이었다.
“취향이 참 고약하군.”
부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야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흙이 아닌 썩어가는 살점이었고 질척이는 것은 역시나 끈적끈적하게 섞여있는 썩은 피였다.
그리고 돌처럼 여기저기 허옇거나 회색을 띄고 박혀 있는 것들은 모두가 뼈였다.
그때 그의 앞에 뭔가가 천천히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오르그였다.
-사자의 대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다시 솟구쳐 오른 기오르그의 발목은 언제 잘렸냐는 듯 멀쩡하게 되돌아가 있었다.
복부도 마찬가지.
상처를 내었던 이 입장에선 환장할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부루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취향이 거지같은 거 아이간?”
-사자의 대지에 온 것을 환영하지. 이곳에 발을 들인 두 번째 존재다.
“나 말고도 이딴 곳에 온 불쌍한 이가 있었어?”
부루의 질문에 기오르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있었지. 고마운 이였지. 이곳에서 나에게 군주의 자리를 주었으니까.
그가 최초로 군주위에 오를 때 죽였던 상대.
즉 전대 군주를 이곳에서 묻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기오르그에게는 이곳이 영광스러운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오르그의 몸은 다시 줄어들어 있었다.
이곳 자체가 그의 권능인 만큼 본신의 크기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래도 이미터에 달하는 키는 부루에 비해 머리 하나 이상은 커 보였다.
-그래도 내게 이곳을 열게 한 것만큼은 칭찬해 주도록 하마.
기오르그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분명 예상외의 강함을 보여주기는 했다.
고통이라는 감정을 가지게도 해 주었다.
하지만, 그 뿐.
조금 아까 마켈그로이언이 끼어들려다가 만 순간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은 사자의 군주.
그러나 조금 전까지의 싸움은 그답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근접전을 펼쳤던 것이다.
사자의 군주는 죽음을 무기로, 또 방패로 삼아야 하건만 말이다.
-영원한 죽음의 늪이니 더는 저항 말라.
기오르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무수한 시체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때려잡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나갔디. 기다리라우. 마지막엔 네 차례니까네.”
부루는 냉소를 던지며 다시 두 자루의 대부를 휘두르며 몸을 일으킨 시체들을 부수며 나아오기 시작했다.
-과연 끝이 있을까?
이곳자체가 무수한 죽음들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그런 만큼 끝이 있을 리 없었다.
마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부루는 이곳에 훌륭한 양분으로 흡수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의 권능의 일부가 될 것이다.
기오르그는 비로소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건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 땅에 끌려 들어온 순간 끝이 난 것이다.
권능에 대한 무지.
놈은 겨우 은총을 내리는 것과 자신의 권능을 무기로 형상화 하는 수준까지밖에 구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는 자신의 권능에 대해 깨달은 것이 없었다.
군주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권능에서 나오는데 그걸 제대로 깨 닳지 못한 상태인 만큼 자신의 전장에선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두르며 나아오는 부루의 앞으로 부수어진 것들보다 더 많은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크크크크크!
기오르그의 웃음소리가 공간에 널리 울려 퍼져 나갔다.
흡족했다.
이제 이곳에서 나가면 그는 진정한 왕이 될 것이다.
부수고 또 부수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앞에 기오르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죽은 자들이 달려들 뿐.
죽은 자 뒤에 또 다른 죽은 자.
성질이 났다.
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멈춘다면 그 결과는 패배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권능.
이것이 바로 놈의 가진 진짜 힘이라는 게 조금 실감이 났다.
조금 전까지 주변을 함께 지켜 주던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싸움 중에 이토록 외로웠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항상 함께 웃고 울었다.
언제나 함께였다.
같은 깃발 아래에 싸우는 이들이 항상 함께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다.
문득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머리에 되살아났다.
그때 떠오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두려움?
아니다.
지켜내었다는 마음?
솔직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죽는 순간 여러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면 그리움이었을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움도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적 희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을지우루.
형제.
날때부터 함께 했던 형제가 있었다. 그리고 철이 들 때 즈음, 함께 말을 달리던 작은 주군이 있었다.
‘내래 이렇게 외로움을 탔었구나야.’
이제 확신이 들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감정은 바로 아쉬움 이었다.
붉은 바탕 안에 세겨진 삼족오 문양. 그 깃발 아래에 함께 달리던 이들과 더는 못한다는…….
그 감정.
아쉬움.
“아쉽구나야.”
이제야 알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부루의 등 뒤로 붉은 색이 몽실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검은 것이 일렁이며 한 마리 새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