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샘솟는 피
쿠쿠쿡!
순간 속절없이 밀리던 기오르그가 멈추어 섰다.
벌크업 된 근육처럼 보이는 것들이 모양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말이다.
아니 멈추어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기오르그의 몸뚱이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이유는 있었다.
-흡!
기오르그가 앞으로 퉁겨지듯 나가며 마치 고꾸라지는 몸뚱이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기우뚱거렸다.
그 순간 서늘한 소음이 연달아 울렸다.
서걱 서걱!
그와 함께 기오르그의 얼굴이 비틀리듯 일그러지며 한쪽 무릎이 땅바닥을 찍었다.
쿠웅!
그러나 이내 몸을 뒤로 돌리며 본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콰앙! 이미 그를 스치고 지나갔던 부루의 대부를 막아섰다.
동시에 땅바닥에서 뼈들이 송곳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이미 부루는 뒤로 한껏 물러서서 양손에 대부를 들고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기오르그가 이를 악물며 부루를 노려보았다.
그의 복부에는 X자로 갈라진 상처가 선명했다.
힘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 마치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처럼 밀어붙이던 부루가 힘을 빼며 파고들었던 것이다.
졸지에 막혀있던 본 브레이커가 허공을 가르며 기오르그는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퉁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부루는 그의 복부에 두 자루 대부로 깊은 상처를 만들어 내고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내래 봐준 거이야. 같은 사내끼리 거길 자를 순 없디 않네.”
양손에 대부를 한 자루씩 쥐고 틈을 노리던 부루가 시선이 마주치자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기오르그의 귓가에 그의 농담이 전혀 들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얼굴이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을 뿐.
갈라진 배에 뼈들이 자라나며 상처를 뒤덮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보랏빛 기운이 사방으로 낮게 깔려 나갔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의 사체들을 향해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그러자 사체들이 마치 자석에 달라붙는 쇳조각처럼 기오르그의 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대군주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와 을지부루를 향해 있었다.
둘의 대결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음…….
사자의 군주라 불렸던 만큼 숨쉬는 것처럼 발휘되는 기오르그의 권능에 부루가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오히려 부루가 이득을 얻고 있었다.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힘의 대결을 유도하듯 부루가 밀어붙이는 장면에선 그가 탄식까지 흘렸다.
-이런!
둘이 교차하는 순간 마켈그로이언의 굳어져 있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복부가 갈라진 모습.
그러나 그런 상처가 문제가 아니었다.
기오르그의 분노에 찬 모습에 다른 마족들은 두려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마켈그로이언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야만 했다.
이건 기오르그답지 않았다.
이 순간 기오르그의 권능이 주변 대지를 적셔가고 있었다.
이 엄청난 권능에 일부 마족들은 탄성과 공포를 터트렸지만, 마켈그로이언은 이 모습이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기오르그는 항상 압도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전쟁을 시작할 때는 이미 이겨놓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번 마계에서의 전쟁이 그 예다.
침식 전쟁에서 모두가 몰두할 때 기오르그는 통합을 위한 미끼를 뿌렸다.
그 결과 틈이 만들어지는 순간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마룡의 군주를 제압했다.
마켈그로이언이 기오르그에 대해 가장 마음에 끌렸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주변을 제어하여 완벽한 승리를 만들어 낼 줄 안다는 것.
그런 부분이 기오르그의 가장 강한 점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사자의 군주 자체가 죽음으로 일으킨 병사들을 운용하는 자.
그 특성 자체가 자신과도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와 다른 점은 언데드를 운용한다는 것과 용병을 운용한다는 차이뿐.
실제로 기오르그 역시 그 점을 높게 사서 마족들에게 터부시되던 마켈그로이언을 군주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니까.
그렇기에 지금 마켈그로이언은 기오르그의 모습에서 뭔가 크게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잘하는 싸움이 아닌 상대가 잘하는 싸움에 끌려가는 모습이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기오르그는 무투계가 아니었다.
마법계였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마치 무투계 군주처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상대방이 머리가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익숙하구나.
마켈그로이언은 두 대군주의 전장을 둘러싸고 있는 병력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말로 기오르그가 도주할까 봐 둘러싼 것이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조차 기오르그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
기오르그의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시체들을 잔뜩 끌어모아 몸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덩치가 순간 십여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터도 안되는 부루의 모습이 마치 작고 초라해 보일 지경.
그런데도 기오르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키워나갔다.
당연히 그 힘이 멀리 있는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정말이지…….
마켈그로이언은 순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십오 미터를 넘어가는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을지부루가 그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꼴이 꼭 괭이 같구나야!”
-이 몸에 상처 두어 개쯤 냈다고 승부를 자신하는 것인가? 어리석은 놈.
기오르그는 치밀어 올랐던 흥분을 어느 정도 털어버린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부루만이 담겨 있었다.
“기거이 아니? 괭이가 쌈질할 때 털을 바짝 세우디. 그거이 덩치를 부풀리는 거이야. 나 이래 쎄다! 이걸 보이고 싶은 거이디. 지금 네놈 꼴을 보니 딱 그거랑 같단 말이디.”
-그래? 그럼 어디 비교해 보도록.
동시에 기오르그의 팔이 부루를 향해 뻗어졌다.
동시에 그의 말에서 뼈들로 만들어진 채찍들이 부루를 향해 휘 몰아쳐 갔다.
그 공격을 부루는 정면으로 맞이했다.
두 자루의 대부가 교차하며 휘둘러지자 그가 뿌린 뼈 채찍들이 동강 나며 이리저리 뿌려졌다.
동시에 부루가 기오르그를 향해 내달렸다.
무릎아래도 오지 않는 덩치의 부루가 달려들자 기오르그는 그를 걷어차듯 발을 뿌렸다.
부와악!
그러나 그사이 부루는 공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두어 바퀴를 구르며 발길질을 피한 부루가 그대로 앞으로 튕겨 나가며 대부를 휘둘렀다.
쩍!
반대편 발의 발목 뒤.
소위 아킬레스건이라 부루는 부분에 대부 한 자루가 찍혀졌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반동으로 반대편에 쥔 대부를 쭉 뻗어 무릎 뒤 오금을 찍은 것이다.
그 사이에 발목 뒤를 찍었던 대부를 뽑아 마치 뱀이 감싸고 오르듯 그의 다리를 연달아 찍어 올렸다.
과작! 콰작! 과작!
-크악!
기오르그가 그런 부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내 뼈의 창들이 만들어지며 그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렇지만 그 순간 부루는 그의 허리에 대부를 찍더니 몸을 뒤로 날렸다.
퍼퍼퍽!
뼈의 창들이 속절없이 빗나갔다.
아니 빗나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허리춤에 박혀 들었다. 자신이 휘두른 무기에 자해를 한 꼴이었다.
하지만 고통보다 앞선 것은 오로지 부루를 죽여야겠다는 감정 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부루를 향해 다시금 바닥에서 뼈들이 빽빽하게 솟구쳐 올랐다.
“피하기만 하니까 이딴거이 무서워 그러는 줄 아는 거간?”
그렇게 한마디 던진 부루가 두 자루의 대부를 땅으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순간 바닥이 푹 꺼지며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부루의 몸뚱이가 뱅그르르 돌며 조금 전 자신이 등반하듯 올랐던 다리의 발목에 대부를 휘둘러 갔다.
콰자작!
뼈가 튀었다.
다시 빙그르르 돌며 또 한 번.
콰아악!
뼈도 튀고 살도 튀고 피도 튀었다.
-크어어어!
기오르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에 의한 표정 변화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고통이란 감정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부루를 향해 연달아 뼈와 창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어서 반쯤 쪼개진 발목을 들어 올렸다. 고통에 대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루는 떠나간 목표에 미련을 가지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다른 쪽 발목에 다시금 대부가 박혀 들었다.
마찬가지로 뼈가 튀었다.
그때 부루가 양손으로 교차하듯 찍어대던 두 자루 대부를 한 손으로 모았다.
그러자 두 자루 대부가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합쳐졌다.
동시에 부루의 발 하나가 강하게 내딛어졌다.
콰앙!
그의 발이 디뎌지자 땅이 고통스레 울었다.
대지가 마치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와 동시에 땅을 딛은 부루의 앞발이 돌았다.
그를 따라 무릎이 돌았고.
이어서 허리가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
양손에 쥔 대부가 한 줄기 빛처럼 뒤따라 날아왔다.
서억!
한줄기 섬광이 기오르그의 발목을 통과했다.
여태 울렸던 파열음은 없었다.
무언가 엇나가는 듯한 얇은 소음만 들렸을 뿐.
그 순간 부루의 몸뚱이가 마치 허공에 도끼질이라도 한 것처럼 뒤뚱이며 앞으로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기오르그가 놓치지 않고 몸집 따라 더 거대해진 본 브레이커를 역수로 쥐어 찍어 내렸다.
그러나 부루가 운이 좋은 것인지 기오르그가 실력이 좋지 않은 것인지 본 브레이커는 그저 부루의 곁에 박혀 들었을 뿐이다.
콰콰콰콰콱!
족히 오륙 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길어지고 커진 본 브레이커가 절반이나 땅을 파고들었다.
조금만 옆으로 찍었어도 부루의 몸뚱이를 갈랐을 것이었다.
충분히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 순간 기오르그는 괴성을 내질렀다.
-크어어어어어!
하지만, 안타까움에 내지른 외침은 아니었다.
괴성과 함께 기오르그가 뒷걸음질을 쳤다.
콰앙!
그의 발이 땅을 디디었다.
그러자 발이 디뎌진 땅 위에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붉은 피가 마치 샘물이라도 터진 것처럼 솟구쳐 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땅을 딛던 것은 발이 아닌 발목이었지만 말이다.
그의 발목 아래는 여전히 원래 있던 자리에 있을 뿐이다.
부루는 헛손질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갈 때 부루는 다시금 양손으로 대부를 잡고 피가 콸콸 솟구치는 다리를 향해 다시 한번 휘둘러갔다.
-이, 이런 낭패가!
마켈그로이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눈동자에 기오르그의 거체가 옆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이런 광경은 한 번도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비록 오만하고 수하들의 희생을 보며 여흥으로 생각하던 모습을 보면서도 강자의 여유라 생각했었다.
그랬던 기오르그가 지금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켈그로이언은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비록 대군주인 기오르그는 원치 않겠지만, 이대로 지켜봐선 안 될 일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쾌애애액!
뭔가가 그의 몸을 향해 솟구쳐 오르며 날아왔다.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