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화 대부 두 자루
* * *
폭풍이 지나갔다.
그 가운데에 서 있던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와 을지부루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역시 스승님이구나야.”
-이 무슨…….
둘의 표정은 상반되어 있었다.
여유 있어 보이는 부루와 달리 기오르그는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왜? 간덩이가 쪼그라든 건 아이디? 설마 지리기라도 한 거이간?”
부루가 던진 농담에 기오르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어차피 수족들은 다시 채우면 그만. 네놈은 그 주둥이로 명을 더 재촉했다고 생각하거라.
기오르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통이라면 몇 마디 더 섞겠지만, 조금 전의 모욕과 지금 이어진 모욕에 화가 극도로 치솟은 그는 곧바로 부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퍼퍼퍼펑!
마치 전투기의 소닉붐을 연상시키게 하는 파열음이 그가 지나온 곳에서 터져 나왔다.
나아가는 그의 몸에서 허연 뼈들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삐죽이 뽑혀 나오더니 이내 살아있는 덩굴처럼 꼬이더니 거대한 창날들처럼 변했다.
쿠콰콰쾅!
연달아 꽂히는 뼈의 창들 사이로 부루가 이리저리 몸을 맴돌리며 대부를 휘둘렀다.
떵! 떠덩! 떵!
마치 통나무를 두들기는 듯 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뼈처럼 보였지만 그 강도가 강철 이상이었는지 흠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부루도 그것을 부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치고 맴도는 모습이 마치 쳐내는 힘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힘을 쌓아가는 것 같았다.
-버러지 같은!
역시나 부루가 순식간에 안쪽으로 파고들자, 기오르그가 이를 악 물며 몸을 뒤집었다.
파아아!
그가 몸을 뒤집는 순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쳐진 부루의 대부가 파공음을 만들어 내었다.
이내 몸이 띄워진 부루를 향해 뼈의 창이 날아들었다.
“기거이 너무 단순하디 않아?”
하지만, 부루는 콧방귀를 뀌며 날아드는 뼈의 창의 궤적을 간단하게 허리를 뒤트는 것으로 피해 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마치 재주라도 부리듯 찔러 오는 뼈의 창대 위에 몸통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창대에서 몸을 퉁겨 올렸다.
그런 부루를 향해 또 다른 창들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그것들을 보며 부루는 부딪히기보다는 파고드는 것을 택했다.
부루 같은 근육덩이가 이렇게까지 기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듯 이리저리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물론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론 날아드는 창을 손으로 밀어치고 잡아서 당겼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대부의 날로 걸어 따라 붙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묘기를 부리듯 벌어진 일.
-제법 재미있는 재주를 부리는구나!
하지만 기오르그 역시 부루보다 배 이상은 큰 덩치로 더욱 빠르게 허리를 젖히며 하늘에서 아래로 내리 찍는 듯한 부루의 대부를 피해내었다.
하지만, 그 여유로움이 독이 되었다.
콰작!
-……!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졌다.
그의 눈앞으로 물밖에 나온 생선마냥 팔딱하고 튀어 오르는 것 하나가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튕기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네놈!
“니런. 발가락 병신이 되어 버렸구만 기래.”
잘려 나간 것은 그의 엄지발가락이었다.
비록 몸통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앞으로 발가락이 잘려서 튕겨 올라오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어이없었다.
그때 부루가 뒤로 몸을 퉁기는 기오르그를 향해 빠르게 활을 빼 들어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투투퉁!
근거리에서 연달아 쏘아진 화살들은 그의 양눈을 꿰뚫기라도 하겠다는 듯 곧바로 날아들었다.
그것을 귀찮다는 듯 팔로 거칠게 퉁겨낸 기오르그는 다시 눈앞에 다가와 있는 부루를 볼 수 있었다.
다시 하늘로 들어 올린 대부.
그리고 부루의 시선은 다시금 그의 발가락을 향하고 있었다.
“차근차근 다져주갔어!”
-버러지다운 생각이구나!
기오르그는 두 번은 이런 치욕을 당하기 싫다는 듯 발을 뒤로 빼며 반대편 주먹을 부루를 향해 휘둘렀다.
그 순간 부루가 대부를 당기며 몸을 공처럼 말았다.
패앵!
동시에 부루가 마치 팽이마냥 빠르게 돌았다.
그리고 다시 휘둘러진 대부.
콰작!
부루를 향해 휘둘렀던 주먹과 대부가 부딪혔다.
이번에도 뭔가가 날았다. 새끼손가락이다.
“발가락을 쳐다본다고 발가락을 썰줄 안 거간? 이거이 근접전은 맹탕이구나야!”
새끼손가락을 잘라내며 내려선 부루가 발을 툭툭 차올렸다.
그러자 잘려 나간 그의 엄지발가락과 새끼손가락이 그의 대부 날 위에 올라왔다.
“좀 씻으라우. 고랑내가 지독하니까네.”
그와 동시에 퉁 쳐올리더니 대부의 넓은 면으로 그의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을 쳐내었다.
패팩!
그것을 본 기오르그가 눈에 빛을 발하자 날아오던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순간 재가 되어 타버렸다.
“니런. 선물이 마음에 안 드는 거이네? 원래 주은 건 되돌려 주는 거이 이 바닥 정인 걸 모르는 거간?”
한쪽 입 꼬릴 끌어올리며 이죽거리는 부루를 바라보며 기오르 그가 이를 악물며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간 손바닥을 펴보였다.
순식간에 그의 새끼손가락이 잘려진 곳에서 자라났다.
마찬가지로 잘려나간 엄지발가락도 이미 재생을 마쳤다.
“야! 그거 신기하구나? 그걸로 밥벌이 하면 굶디는 않갔어. 기런데 잘린 발가락이랑 손가락은 붙일 수는 있는데 조각난 자존심도 붙일 수 있는 거간?”
부루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오르그는 한 손을 허공으로 뻗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시 뼈의 검을 소환해 내었다.
허공으로 손을 뻗은 곳에 보랏빛 기운이 맴돌더니 수십 수백은
되어 보이는 뼈의 화살들이 만들어졌다.
-크아아아!
노기에 찬 외침과 동시에 손을 뻗자 수십 수백의 뼈화살들이 부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기오르그는 부루를 향해 달려 나갔다.
“어이쿠! 성난 거간? 이거 무서워서 농이라도 하갔네?”
부루는 기어이 농담을 던지며 마주 달려 나갔다.
마치 새찬 바람과 함께 폭설이 뿌려지듯 날아드는 뼈화살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대부를 마치 방패마냥 잡았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자 뒤에서 ‘엇!’하며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엇!”
아빌런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대부가 부루에게 날아가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터트렸다.
“놀라긴. 원래 주인에게 가는 것 아닌가?”
옆에서 마족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던 하일론이 웃으며 대꾸 했다.
“뭐, 그건 그렇지만. 영감님은 오랜만에 하는 도끼질이 좀 손에 익습니까? 여긴 성도 아니잖습니까.”
“성이 왜 필요 하나? 이 자체가 움직이는 성체와 같거늘.”
하일론의 말에 아빌런은 피식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상황에서도 단단하게 대열을 만들고 있는 가우리군의 모습은 그의 말마따나 하나의 성채처럼 보였다.
더없이 든든한 모습이었다.
터억!
마치 형제인 을지우루와 부루처럼 똑 닮은 대부가 반대편 손에 쥐여졌다.
심지어 손에 쥐여지는 촉감마저 같았다.
다른 점은 손잡이에 가죽 끈이 묶여있다는 점이다.
그 가죽을 본 부루는 대충 왜 이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아빌런은 자신이 맡긴 이 대부를 죽더라도 놓지 않기 위해 가죽 끈과 손을 동여매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에게도 이 대부가 넘어가지 않은 것을 보니 더 악착같이 이것의 주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을 것이 절로 상상이 되었다.
대견했다.
대견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시간이 없었다.
두 자루의 대부가 그의 손에 쥐여지는 순간 뼈의 화살이 소리 없이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순간 부루의 양손에 들린 대부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게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잘게, 잘게.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손목을 틀어가며 흔들리듯 움직였다.
그와 반대로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빨랐다.
마치 질풍처럼.
다른 때라면 부루의 움직임을 보고 누군가 놀렸을 것이다.
짧은 다리로 바쁘게 잘도 움직인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놀림 따위는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정말로 그의 다리가 두껍고 짧은가 의아할 정도로 한걸음 한걸음이 컸다.
마치 거인의 발걸음처럼.
그런 그의 주변으로 대부의 넓은 면을 두들기고 나서 힘없이 퉁겨 나가는 뼈화살들이 흩어져 나갔다.
콰두두두두!
기오르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물론 이것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상대를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운 좋게 군주의 자리를 차지해 살아남은 존재가 아닌 실력으로 거머쥔 이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건 예상 밖이었다.
어디선가 똑같은 도끼를 한 자루 더 가져오더니 마치 그 넓은 면으로 방패처럼 활용하며 빠르게 나아오고 있었다.
이게 예상 밖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력이 담긴 본 에로우들을 막는 건 할 수 있다 쳐도 거기에 담긴 힘까지 생각한다면 제자리에서 막아내거나 밀려나야 맞았다.
그런데 상대는 그것들을 퉁겨내며 질주해 오는 것 아닌가.
-저걸? 저렇게 비껴낸다고?
기오르그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양손에 들린 두 자루의 대부가 잘게 움직이며 각도를 빠르게 바꾸어내고 있었다.
그 각도에 따라 날아든 본 에로우들이 그대로 비껴 맞아 힘없이 튕겨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반구처럼 둥그스름하게 만들어진 원형방패에 빗맞은 화살마냥 말이다.
하지만, 감탄은 잠시였다.
어차피 진짜 공격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반대편에 든 그의 칼, 본 브레이커가 예상보다 빠르게 휘둘러졌다.
푸와악!
자신이 쏘아낸 뼈의 화살을 가로지르며 휘둘러진 허연 칼자루가 부루를 두 쪽 내듯 내리그어졌다.
콰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심지어 기오르그가 부루에게 날렸던 화살들도 그 충격파에 사방으로 뿌려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기오르그의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굉음이 울렸다는 것은 막혔다는 것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휘두른 검을 두 자루의 대부로 교차해 막았던 것이다.
아니 막은 채 밀어붙여오기 시작했다.
콰콱!
순간 금이 갔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기오르그는 두 발을 땅에 박아 넣으며 본 브레이커에 남은 한손까지 보태어 두 손으로 자루를 거머쥐었다.
카득!
교차된 두 자루의 대부로 내리 그어졌던 기오르그의 본 브레이커를 밀어붙이던 부루의 발걸음이 잠시 덜컥하며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두 자루 대부를 쥔 양 어깨와 그의 허벅지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다시 나아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드!
-뭐?
순간 기오르그는 이게 꿈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주변 풍광이 뒤로 지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눈앞으로, 정확히는 부루의 양옆으로 마치 밭고랑처럼 길게 패인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것을 만든 것은 자신이 땅에 박아 넣었던 두 발이었다.
-크오오오오오!
분노한 기오르그의 등 쪽에서 뼈들이 살을 가르며 튀어 나오더니 양 어깨위로 마치 뱀들이 뭉치듯 휘감아지며 팔까지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허리 뒤쪽에서 튀어 나온 뼈들은 속절없이 밀리고 있던 두 다리에 허벅지부터 아래로 휘감으며 내려갔다.
허연 뼈들이었지만, 그 모습이 마치 잔뜩 벌크 업이라도 한 헬스광 같이 보였다.
이어 허연 뼈들로 만든 근육위에 보랏빛 마력이 꿀렁이며 뒤덮여나갔다.
-감히 내게 도전한 자에게 그 어떤 힘으로도 이기지 못하는 절 망을 보여주마!
기오르그가 온몸의 마력을 폭주시키며 광오한 외침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