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화 반전의 시작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고 또 공격을 펼치느라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마른 모래가 물을 흡수하는 것 같군.
여기서 마른 모래는 적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물은 바로 자신들의 병력이었다.
물론 물이라기 보단 파도에 가깝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마치 마른 모래에 흡수되는 물처럼 사라질 뿐이다.
마켈그로이언은 허공에서 마법을 펼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용병단을 이끌며 이 자리에 올라온 바 있었다.
만약 그의 권능이 회유와 교언이 아니고 용병술과 관련된 것이 생겼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경험 많은 그의 눈에 지금 전황은 문제가 컸다.
-내가 파고들었던 약점이 이제는 우리의 약점이 된 것인가…….
하급마족에서부터 시작한 그는 자신모다 약한 존재들과 계약을 통해 무리를 만들었다.
보통은 약한 존재들을 흡수해 나가며 먼저 힘을 키웠지만, 마켈그로이언은 그러지 않았다.
먼저 집단을 만들었다.
그게 그가 이끄는 용병집단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제법 강대한 마족들을 양분삼아 커 왔고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마족들은 충성만으로도 강해지는 권능의 소유자인 군주가 아닌 이상 상대방의 힘을 직접적으로 흡수하여 강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더라도 전 투 그 자체는 각자의 싸움에 가깝다.
눈앞의 적을 꺽는게 익숙하고 거의 본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 본능을 파고든 것이 마켈그로이언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상대는 그게 아니다.
실력 하나하나는 마족들에 떨어지지도 않으면서도, 전투를 개인의 영역으로 두고 있지 않았다.
눈앞의 상대와 싸우면서도 근처에 빈틈을 보이는 또다른 적이 있다면 기어이 칼을 쑤셔 박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상대와 싸우고…….
지금도 크로드이언이 무너지고 있었다.
허무하게 말이다. 카르탈마니어를 밀어붙이나 했더니 그 주변에 있던 적들에게 후위를 연달아 내주었다.
그리고는 지금처럼.
콰작!
-크오오오오!
카르탈마니어의 주먹에 머리통이 박살이 나며, 한때 파괴의 군주라는 이명으로 불리던 크로드이언이 최후를 맞이했다.
크리팔의 상황도 별다르지 않았다.
-캬아악!
믿기 어려운 강함을 보이는 인간의 마법사와 좀 팽팽하다 싶었더니 틈틈이 날아온 화살에 시선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 찰나 한 자루 창이 날아와 몸통을 꿰뚫었다.
고작 창 하나에 몸이 꿰뚫린다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던진 이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대군주에게 굴욕을 준 적들의 대군주급 존재가 던진 창이었으니까.
그리고도 그는 이내 자신의 일을 하듯 주변의 마족들을 이리저리 자르고 베어나갔다.
물론 그런 그의 뒤를 노리는 마족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고 있는 말이 비정상적인 것인지 어김없이 뒷발길질로 몸통을 터트려버렸다.
-끄어어억!
그때 크리팔의 비명이 울려 퍼져왔다.
마켈그로이언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에는 ‘벌써?’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크리팔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창에 맞아 떨어져 내렸던지 그의 몸뚱이는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온몸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상처들이 쩍 벌어져 있었다.
전부 대동소이 했다.
마치 사냥당하는 것처럼.
누군가 하나가 잡고 나머지가 짬짬이 칼질을 했다.
이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몸에 베인 것이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절대다수의 적과 상대를 하는 것이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낭패다.
마켈그로이언은 조금 더 몸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 * *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지?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
탈력감이다.
마치 빠르게 지쳐 가는 듯한 기분은 생소했다.
“크윽!”
그의 시선이 눈앞의을지부루를 향했다.
대부를 지팡이 삼아 짚고 일어서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엉망인 상태.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팔팔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때 기오르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무언가 굵직한 것이 끊어지는 느낌.
-크로드이언?
비록 군주위는 회수했다지만, 최상급 마족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크로드이언과 이어진 선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굵직하여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달아 또 다른 기운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크리팔이었다.
-그래서였나?
기오르그는 이제야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잠시 관조를 하니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제법 큰 기운들이 연달아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저 뒤에 수많은 마족들이 남아 있기에 당장 그가 어떻게 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은 더러웠다.
-이렇게 한다고 날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재미있는 놈들이구나.
기오르그가 눈에 광기를 담아 말을 뱉었다.
“내래 입만 열면 원래 다들 빵빵 터지디.”
부루가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들 그런 말을 했으니까.
복장이 빵빵 터진다고.
“자, 좀 쉬었으면 다시 대 보자우!”
콰앙!
몸을 웅크렸던 부루가 바닥을 박차고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대부를 사선으로 휘둘러 왔다.
기오르그의 양손에 다시 뼈의 채찍과 대검이 만들어졌다.
촤라라락!
뼈의 채찍을 맴돌리자 그의 앞에 방패가 만들어졌다.
이어 아까처럼 방패가 부서지는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마력까지 충분히 둘렀다.
-더는 재주부리는 것을 보아 주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말을 뱉은 기오르그는 뼈로 만든 대검에도 죽음의 권능을 담았다.
자신의 수족들이 죽음으로 인해 힘이 줄어든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의 힘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기오르그는 항상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 왔다.
절대 지는 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방심 또한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 완벽하게 꺾고자 하던 마음을 버렸다.
상대방을 말리듯 만들어 최후를 선사하여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원래 그의 전투방식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때였다.
콰득!
-응?
부루가 휘두른 대부가 채찍으로 만들어낸 원형방패를 두들기는 순간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확대 되었다.
예상했던 충격이 아니었다.
이어 방패를 든 그의 팔이 아래로 살짝 휘청이며 내려갔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방패위에 걸치듯 올라가 있는 도끼날이 보였다.
지금까지 계속해왔던 것처럼 방패를 두들겨 부순 것과 달리, 방패를 도끼날의 아래 부분으로 걸어 내리듯 당긴 것이다.
그 때문에 힘의 방향이 어긋나 아래로 휘청인 것이다.
-갑자기 어설픈 재주를…….
기오르그가 버티며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뼈 대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빠르게 방패에 건 도끼를 당긴 부루의 몸이 마치 재주넘듯이 거꾸로 넘어왔다.
그런 부루를 향해 베어 가는 대검.
부와아악!
그러나 그보다 부루가 한 발 빨랐다.
부루가 오버헤드킥을 하는 것처럼, 어쩌면 격투 게임의 캐릭터가 기술을 부리는 것같이 거꾸로 넘어오다가 발을 아래로 초승달의 궤적을 그리며 내리 찍은 것이다.
콰작!
그 발길질은 정확히 뼈 대검을 올려치던 팔의 어깨에 내리 꽂혔다.
얼마나 강력한지 어깨가 주저앉았다.
이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고통이 기오르그의 온몸에 전달되어져 왔다.
-크아아아악!
기오르그의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쿠우웅!
이어 무릎이 땅에 닿았다.
휘둘러지던 뼈 대검은 이미 도로 떨어져 내렸다.
어깨가 반쯤 함몰되었는데 휘두르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나 기오르그는 고통에 찬 얼굴을 하면서도 만들었던 방패를 풀어 채찍으로 변화시키며 손목을 털었다.
그러자 자신의 어깨를 박살내고 거꾸로 등을 보이고 선 부루를 향해 살아 있는 뱀처럼 휘둘려졌다.
이어서 이제 막 착지한 부루의 양팔을 휘감았다.
그때 부루가 기분 나쁜 행동을 했다.
퍼억!
갑자기 엉덩이를 기오르그에게 쭉 뻗듯이 튕겨 올린 것이다.
-큭!
키 차이가 배는 났지만, 한쪽 무릎을 꿇은 덕에 가랑이 사이에 충격이 왔다.
물론 사자의 군주인 만큼 그의 몸뚱이는 언데드 상태나 다름없어 크로드이언처럼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콰악!
부루가 양손을 휘감은 뼈의 채찍을 오히려 꽉 쥐고 엉덩이를 쳐올려서 만들어 낸 공간으로 쭈욱 빠져나갔다.
정확히는 기오르그의 가랑이 사이로 말이다.
-어억!
순간 기오르그가 채찍을 들었던 팔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몸뚱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어서 땅바닥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콰앙!
면상을 박았다.
그 순간 기오르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치욕스럽다는 감정뿐이었다.
“좀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적들의 강자들을 다수 꺾으며 전선에 균형을 깨트렸지만, 아직도 적들의 숫자는 많았다.
거기에 상대방의 군주 하나가 꽤 머리가 좋은지 뒤로 빠지더니 병력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을 끌 듯 말이다.
이쯤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느낀 리셀이 천천히 뒤로 몸을 날리며 마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런 리셀의 앞에 휘가람이 부적을 뿌려 만든 새 위에 서서 호위하듯이 멈추어 섰다.
드드드드드드!
리셀의 머리 위에서 대기가 소용돌이치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나 드레인.
대규모 마법을 펼칠 때 항상 펼쳐지던 이적이다.
준비가 길지만 그 결과는 항상 실망을 시켜본 적이 없었다.
그 모습에 마족들이 놀란 눈을 했다.
이렇게 세상을 진동시킬 정도의 과격한 마나드레인은 그들로써도 드물었던 모양이었다.
마족들의 마법이야 거의 본능처럼 사용하는 것이 많아 외부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형식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위험하다는 것쯤은 그들도 느꼈는지 주변에 남아있던 비행형 마물과 그 위에 올라탄 마족들 거기에 비행이 가능한 마족들이 일제히 솟구치며 그를 향하여 날아들었다.
그들을 본 연휘가람이 부적을 뿌리자 그 주변으로 수많은 불의 나비들이 날개 짓을 하며 떠올랐다.
연휘가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수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그러나 뒤쪽에서도 아군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트렌든이 양손에 불덩이를 만들어내며 날아왔고, 크리팔을 죽이며 더욱 강해진 마력을 갖춘 헤게루이안이 마력을 끌어모으며 다가왔다.
그때 그들의 뒤쪽에서 바람을 가르며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이이익!
그들을 스쳐 지나간 것은 드론들이었다.
이어서 그들의 좌우에서 비행체들이 그 뒤를 따르며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