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저 놈만 안걸들면 되지
콰아앙!
“우앗!”
“어이쿠!”
을지부루와 기오르그의 무기가 부딪치며 만들어낸 충격파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몸뚱이가 휘청였다.
마족들도 다르진 않았다.
“흠.”
그 모습에 고진천은 뭐가 불만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가끔 다리를 움찔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참으시죠.”
그런 진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연휘가람이 다가와 한마디 건네었다.
“알아.”
부루를 믿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이 강하다는 것도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뭔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마치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거기에 이곳에 오는 순간 분명하게 적아가 구분되었다.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말이다.
거기에 평소에 할 수 있는 이상의 힘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이 안 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나뿐이었다.
이게 꿈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라 해도 또 꿈이라 해도 이겨야 한다는 것뿐.
그때 진천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거기.”
-예?
“그래. 아픈 얼굴하고 있는 너 말이다.”
보랏빛이 감도는 마족 특유의 피부색이 마치 병 걸린 것처럼 보였나 보다.
진천의 부름에 헤게루이안이 쩔쩔매며 다가왔다.
“지금 상황이 뭔지 말해봐라.”
“그, 마족들의 대군주가 침공을 해온 상황입니다.”
“마계?”
마계라는 말에 진천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마계란 말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처음 하이안 대륙에 떨어졌을 때 마족 운운했으니까.
“네놈도 마족인가?”
-그러하옵니다.
“그런데도 부루의 수하다?”
진천의 설명에 헤게루이안은 그들이 투항해서 함께하게 된 사연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군주가 있는 마족과 없는 마족의 차이도 이야기했다.
은총에 관한 것이라든지 말이다.
“아까 그놈들도 군주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차이가 크지?”
-그렇기는 하지만, 저기 있는 기오르그는 그들을 굴복시켜 대군주의 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군주 자신의 힘도 중요하지만, 거느리고 있는 힘 자체도 그들의 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숫자를 말함은 아닙니다.
무언가 복잡한 이야기지만 대충은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러니까 저놈이 쎈 이유는 네놈 같은 놈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 그러하옵니다.
군주가 세력을 늘리는 방법의 하나가 은총을 주고 그 은총을 받은 마족이 일정한 힘을 가지게 되면 그 힘은 군주의 권능이 강화되게 된다.
그 설명을 들은 진천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럼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지.”
진천의 시선이 돌아갔다.
“폐하?”
“저거만 안 건들면 되는 거잖나?”
기오르그를 턱 끝으로 가리키는 진천을 보며 휘가람은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구경만 하면 안 되지.”
그때 헤게루이안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 그나마 기오르그의 명으로 지금 군주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다간 다시 전면전이…….
“그 명령을 우리가 따라야 하나? 그리고 지금 딱 좋지. 몰려 있으니까.”
-그, 그거야…….
헤게루이안이 당황 섞인 표정으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이쪽이 마치 기오르그를 포위한 형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더 넓게 저들이 이들을 반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지금 상황을 기오르그가 포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기오르그는 강하다.
거기에 최상급 상급 할 것 없이 최강의 전력이 그 주변에 몰려 있었다.
거기에 군주인 마켈그로이언과 당장 군주의 권능을 빼앗겼지만, 크로드이언과 크리팔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저들로서는 이 상황이 포위당했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두 군주가 자리를 회수 당한 이상 이후에 공을 세운 최상급이나 그에 필적하는 상급 마족은 빈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앞쪽에 잔뜩 몰려 있었다.
그 모습에 헤게루이안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진천은 기회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명만 내리면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
카르탈마니어였다.
“뭐지? 이 되다 만 도마뱀은.”
-…….
-되, 되다 만…….
순간 헤게루이안은 고개를 황급히 돌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막았고, 졸지에 마룡족 출신 최상급 마족인 카르탈마니어는 되다 만 도마뱀이 되었다.
마룡족인 만큼 용의 외형과 인간형의 외형이 섞여 있는 건 맞았다.
그걸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카르탈마니어는 울상을 지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단순했다.
그들은 군주와 연결된 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진천은 군주의 군주 즉 대군주와 같은 연결고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당연히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조금 전 잠깐이지만 기오르그를 상대하는 모습에서 충분히 괴물임을 증명했다.
“뭐, 그래도 말은 마음에 드는군.”
그 말에 헤게루이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말릴 생각은 없고 이미 시선이 저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자.”
진천이 그 말을 끝으로 강쇠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콰콰쾅!
기오르그가 부루의 발목을 잡아 연신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나 그 와중에 부루는 기오르그의 손목을 대부로 잘라내듯 내리쳤다.
그 순간 기오르그의 손목으로 뼈들이 둘러싸며 마치 완갑처럼 변했다.
그러나 부루의 도끼는 그것을 박살을 내며 기어이 손목에 박혀 들었다.
콰작!
피가 튀었다.
기오르그의 눈가가 꿈틀거리며 이내 다른 한 손을 부루를 향해 뻗었다.
투투투퉁!
반투명한 보랏빛 구체가 부루의 몸뚱이를 연신 두들겼다.
이어 굉음이 연이었다.
하지만, 이미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부루는 연신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하거나 도끼로 쳐 내었다.
그러면서도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기오르그를 향해 대부를 휘둘러대었다.
콰작! 쾅!
두 방을 맞아도 기어이 한방을 꽂아 넣겠다는 의지였다.
그때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그들의 전투에 멈추어있던 전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버러지 같은 것들 명을 재촉하는구나.
기오르그는 자신이 내려준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어리석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한눈판 댓가는 적지 않았다.
부와악!
부루의 대부가 목줄을 노리고 날아든 것이다.
그것을 순순히 맞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빠르게 한 손으로 마력 방패를 만들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런데 부루의 대부는 방패를 거슬러 올라갔다.
서걱!
깔끔한 소리와 함께 기오르그의 손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갔다.
“모가지는 아니지만 되끼를 휘둘렀으니 뭐라도 잘라야 하디 않 났네?”
부루의 천연덕스러운 중얼거림에 기오르그의 눈자위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우습구나. 그래서 만족하느냐?
그렇게 말을 하며 잘린 손가락이 있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위로 뼈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의 손가락과 다르지만, 뼈로 만들어진 손가락으로 재생하는 모습에 놀랄 만도 하건만 부루는 천연덕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대가릴 잘라도 그케 할 수 있는디 궁금하구만.”
부루의 질문에 기오르그가 웃으며 대꾸했다.
-할 수 있으면 확인해보아라.
그와 동시에 기오르그가 다시 부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감히!
크로드이언이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날려오는 존재를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감히는 무슨. 군주의 자리도 박탈당한 주제에!
그렇게 외치며 달려든 존재는 바로 카르탈마니어였다.
순식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 우스운 포위망을 두텁게 하려고 몰려오는 줄 알았다.
걷을 타고 기마들이 빙 둘러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대편으로 몰려오더니 그대로 그들의 정면으로 달려든 것이다.
물론 뻔히 보는 상황이라 기습이라 볼 수도 없었다.
오히려 구경만 하고 있던 마족들은 눈에 불을 켰다. 마치 이게 웬 떡이냐 하는 눈빛이었다.
기오르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격돌이 시작되자 상황은 순간 이상해졌다.
콰콰콰콱!
오는 족족 쓸어버릴 것 같았던 마족들이 순간 뒤로 밀린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치 먹이를 노리듯 강자들을 향해 저들이 몰려온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주제를 알려주마!
크로드이언의 손에 들린 도끼가 카르탈마니어를 후려쳤다.
순간 카르탈마니어가 건틀릿으로 막으며 반대편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아무리 군주의 자리를 회수당했다 해도 크로드이언은 단순하게 최상급 마족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콰작!
-크어억!
크로드이언의 주먹이 뻗어오던 카르탈마니어의 주먹을 마주쳐 박살 내버린 것이다.
기괴하게 비틀려진 주먹에 카르탈마니어가 비명을 내질렀다.
-네놈을 양분 삼아 다시 내 자리를 찾을 것이다!
크로드이언이 광기가 어린 눈빛으로 외쳤다.
순간 카르탈마니어가 낭패감 짙은 얼굴로 부서진 주먹이라도 다시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서걱!
-큽!
크로드이언의 눈동자가 부릅떠 졌다.
퍽!
무언가가 썰리는 소리와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화살이 가슴팍을 꿰뚫었다.
크로드이언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뒤를 먼저 돌아보았다.
“뭘 봐?”
뒤에선 꽁지머리의 사내. 계웅삼이 그의 발목을 발로 툭 밀어 차고 있었다.
그러자 무릎아래가 잘려서 넘어가고 있었다.
지지대가 사라진 크로드이언이 기우뚱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이!
분노를 터트리며 가슴팍에 박혀 있던 거대한 화살을 잡아갔다.
그러나 그게 또 실수였다.
퍼어억!
-크어어억!
또다시 날아온 거대 화살이 화살을 뽑으려 가져간 손의 팔뚝을 관통하고 다시 가슴팍에 박힌 것이다.
“반 토막 도마뱀 새끼래 구경났네? 손모가지 하나 나갔다고 놀고 있을 거간?”
순간 저 멀리서 화살을 날린 을지우루의 외침에 카르탈마니어가 정신이 바짝 든 표정으로 멀쩡한 반대편 주먹을 날리며 외쳤다.
-아, 아닙니다!
-이익!
그러나 크로드이언도 반대편 주먹을 마주 휘둘러갔다.
그러나 그의 반대편 팔은 이내 가벼워졌다.
썽둥!
“웃차!”
조금 전 자신의 다리 한 짝을 잘라낸 계웅삼이 그의 다른 편 팔마저 잘라버린 것이다.
-이…….
무어라 외치려던 크로드이언의 면상으로 카르탈마니어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콰작!
안면이 뭉개지며 그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그 위로 올라탄 카르탈마니어가 광기가 어린 얼굴로 주먹을 내리쳤다.
마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