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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90화 (290/305)

제290화 감히?

그의 곁에서 스쳐나가는 이의 뒷모습에 진천이 입술을 꾹 다물며 한쪽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뭔가 복잡한 기분을 표현하듯.

그때 분노로 범벅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가아아암히!”

-응?

갑자기 뭔가가 크로드이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눈앞에 알짱거리는 것들 때문에 짜증이 솟구치는 상황이었는데, 또다시 뭔가가 끼어드니 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부와아아앙!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눈앞에 끼어든 존재를 향해 거대한 도끼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그저 빨리 눈앞의 것들을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가 원하는 마음일 뿐이었다.

쩌어엉!

도끼를 휘두른 손이 내려간 속도보다 빠르게 튕겨 올라왔다.

-이 무슨…….

두 눈은 부릅떠져 있었다.

이게 진짜인가 싶은 감정이 잠시 뇌리를 스쳤지만, 튕겨 올라오는 무기를 쥔 손아귀의 저릿한 느낌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감히!”

눈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안광을 번뜩이며 달려든 것은 대무덕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거대한 도끼로 내려찍는 것을 환두대도로 그대로 올려 쳐버린 것이다.

-감히? 감히라고?

잠시나마 황당 감에 물들었던 크로드이언의 눈가가 붉어지며 광포함이 찾아왔다.

퉁겨져 오르던 손이 멈추고 반대편 손에선 마력구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그는 마력구를 자신의 도끼를 퉁겨낸 대무덕을 향해 던져주었다.

퍼엉!

그러나 그 마력탄 마저 도끼를 퉁겨내느라 뒤로 밀려간 환두대도를 그대로 맴돌려 찍어냈다.

동시에 강렬한 발길질이 크로드이언에 작렬했다.

뻐어어억!

-……!

그 일격은 크로드이언의 눈앞에 순간 수많은 별이 명멸하며 지나가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아, 이건 네, 네놈이 쓸데없이 덩치가 큰 탓이니라!”

살짝 당황한 감정을 담은 대무덕의 외침이 이어졌지만, 연신 뒷걸음질을 치는 크로드이언의 귓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달려온 마법사들이 연신 치유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치유마법의 빛이 그의 가랑이 사이를 뒤덮었다.

-치, 치유가 아니라, 재생마법을 써야 해!

-두 쪽 모두! 빨리!

가물가물 들려오는 마법사들의 외침에 크로드이언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크읏!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단 이 상황이 세상 그 어떤 때보다도 치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짜로 고통 때문이 아니라 치욕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이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쯧. 싸우는 데 그리 걸리적거리면 잘라 내던지.”

그때 아까 처음 걸리적거렸던 놈이 고통에 불을 지르듯 한마디 하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자신의 조언에 불쾌함을 드러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였지만, 그도 적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병력을 잠시 뒤로 물려서 재정비를 시켰다.

그러나 다시 맞닥트린 지금 자신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적들의 예봉이 세 곳이었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세 곳이 그대로 이쪽 대열을 꿰뚫고 있었다.

그중에 압권은 정면이었다.

을지부루와 그 일행들이 있는 정면은 그야말로 말이 달려 나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마족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막는 것은 고사하고 시간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자신의 용병부대를 좌우의 날개 쪽으로 보내었다.

정면에는 크리팔과 크로드이언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면으로 보냈다간 자신의 기반이 아예 날아갈 것을 걱정한 것이기도 했다.

비록 한 대군주의 휘하에 있다고 하지만, 마계의 존재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존재들에게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 할 리가 없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남은 자들의 투쟁이 또 이어질 것이 뻔했다.

일인자 자리가 불가능하다면 이인자 자리가 최고의 자리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병력을 보전하는 게 맞았다.

물론 병력을 다 갈아 넣더라도 상대방 군주를 꺾고 그 힘을 흡수한다면야 할 만하지만, 지금 마켈그로이언의 촉으로는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병력이 없었을 때도 군주 둘을 상대로 팽팽한 모습을 보이던 이가 바로 을지부루였다.

그런데 지금 더 강해진 전력을 이끌고 오는 그를 상대로?

냉정한 판단으로는 을지부루는 결국 기오르그의 몫이 될 뻔한 상황이다.

그때 마켈그로이언이 찌릿한 느낌을 받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음.

은발의 사내가 자신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정령을 부리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 부리는 방식이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모르는 방식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잊힌 방식에 가까웠다.

정령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방식.

정령과 일체가 되는 방식에 가까웠다. 즉 정령을 부리는 느낌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방식이었다.

초기에 정령을 부리는 이들이 이러한 방식을 썼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강하지만, 그 덕에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지금은 잊힌 방식.

누구는 낡은 방식이라고도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했다.

이게 이 정도로 강하다는 점.

그런 그의 주변으로 노란 종이들이 뿌려졌다.

그리고 그 종이들의 일부가 화염의 형태를 한 나비로 변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리고 일부는 소용돌이치며 마켈그로이언을 향해 날아왔다.

-아까 그 재주나 부려 보아라.

마켈그로이언이 콧잔등을 살짝 찌푸리며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력탄이 집중적으로 그의 손에서 뿌려졌다.

퍼퍼퍼펑!

마력탄들이 날아드는 불꽃을 뒤덮었다. 여기저기에서 폭음이 울려 퍼져왔다.

-재미있는 수법이구나.

그러나 그 불꽃들은 터져나가며 더 잘게 쪼개지기만 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회오리바람을 연상시키듯 소용돌이를 치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쯧.

이어 다른 손을 펼치자 마력의 줄기가 커다란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안으로 마법의 도형이 빼곡히 채워졌다. 그러자 마력의 줄기로 만들어낸 원에서 커다란 얼음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하늘에서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지듯.

콰콰콰콰!

날아간 우박들은 소용돌이치며 날아드는 화염의 회오리를 그대로 상쇄시켰다.

그러자 희뿌연 물안개가 사방을 채웠다.

-이런 이걸 노린 건가?

시야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투확!

그때 안개를 뚫고 화살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우습구나.

고작 생각 해낸 게 이건가 싶었다.

이내 마켈그로이언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마력 방어막을 생성했다.

기습적인 화살 공격이었기에 마법사 몇이 맞고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었다.

-한번은 모르지만 계속 이리 무의미한 짓을 하다니 머리가 나쁜 건가 아니면, 우리를 무시하는…….

말을 내뱉던 마켈그로이언이 황급하게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그의 앞에 수십여 겹의 마력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쩌저저저정!

하지만 순간적으로 생성되는 마법 방어막이 연달아 깨져나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만들어낸 마법 방어막이 아니었다면 벌써 몸통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퍼억!

-큭!

결국 한발 늦은 탓에 막 생성되던 마법 방어막이 모조리 깨어지며 날아온 화살이 그의 손바닥에 틀어박혀졌다.

-이거…….

아직 발아래에 안개가 끼어 있기에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인지 예상은 갔다.

을지부루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존재.

그가 분명 거대한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 그의 손바닥을 뚫은 화살은 그 정도로 큰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었지만, 담긴 힘은 확실히 강했기 때문이었다.

퍼억! 퍽!

연달아 그의 좌우에 있던 마법사들이 몸통과 머리통에 화살을 맞고서 하나둘씩 떨어져 내렸다.

-이런…….

이제야 알았다.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화살을 왜 쏘았는지 말이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쏘아진 화살 중에 치명적인 것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다.

가볍게 방어막을 엷게 펼쳤던 마법사들은 그 덕에 왜 죽는지도 모르게 화살에 저격당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킁!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아! 뭣하느냐!”

삼두표가 강철의 봉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날뛰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냥이 역시 마음껏 날뛰고 있었다.

마물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마수 자체가 마물보다 상위의 존재.

영수에 가까운 것이 바로 마수다.

물론 냥이는 마계의 마수와는 그 존재가 구별되는 마수였지만, 상두표와 함께하는 냥이는 그 어떤 마수보다도 용맹했다.

그 때문인지 마족병들은 냥이의 앞발과 굵은 송곳니 두 개에 그대로 고지에 꿰인 것처럼 꿰뚫려 흐느적였다.

그렇게 두표와 냥이가 한 몸처럼 이리저리 두들기며 나아가는 그 위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콰자자자작!

“어우 깜짝이야!”

순간 삼두표가 화들짝 놀랐다.

그의 머리 위로 마족병의 몸뚱이가 날아올라 떨어져 내리는 뇌전을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머리 위에 제대로 안 보냐!”

그 곁에 몽류화가 발끈하며 외쳤다.

“킁, 눈이 거기에는 안 달려서.”

그들의 위쪽에 마족 마법사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 좀 던져!”

그때 부여기율이 두표에게 손을 뻗었다.

두표는 기율의 손목을 잡더니 크게 반 바퀴 돌리며 그의 몸뚱이를 위로 던져 버렸다.

바우웅! 던져지는 순간 공처럼 몸을 굴린 기율이 투석기의 탄체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허헛!

갑자기 날아온 덩어리에 화들짝 놀란 상급 마족은 눈앞에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그 순간 눈 앞에서 날아오던 덩어리에서 팔다리가 훅하고 튀어나왔다.

“어딜!”

날아올랐던 부여기율이 양손에 쥔 쌍부를 휘둘렀다.

콰카카카칵!

순간 방어막이 연달아 찢기며 기율이 휘두른 쌍부에 몸통 여기저기에 자상이 만들어졌다.

-크윽!

순간 신음이 흘렀지만, 그 몸뚱이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블링크라는 순간이동 마법이었다. 그의 몸은 기율이 떠 있는 곳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염병!”

이미 다시 하강을 시작하는 기율의 얼굴이 구겨졌다.

낭패감을 담은 그의 표정을 보며 상처 입은 상급 마족은 이를 악물고 분풀이라도 하듯 양손에 뇌전을 끌어모았다.

-싹 다 구워주마!

콰차차차착!

그의 양손에서 섬광이 일었다.

거기에 별도 보였다.

콰앙!

양손을 좌우로 펼치고 뇌전을 끌어올리던 그의 머리통이 앞으로 훅 수그러져 있었다.

-커억!

“파이어!”

언제 날아왔는지 트렌든이 마치 인간 대포알처럼 날아오더니 그대로 뒤통수를 머리로 받은 것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양손을 깍지끼어 머리 뒤로 힘껏 끌어올리더니 마치 배구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양손에 불길을 모아 강스파이크를 펼쳤다.

“스파이크으으!”

콰아앙!

-으아아아아!

동시에 상급 마족은 그대로 땅 아래로 내리꽂혀져 갔다. 불시의 기습에 당황했지만, 그 역시 백전노장이었다.

떨어져 내리면서도 양손에 끌어모으던 뇌전은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떨어지는 몸뚱이를 바로잡으며 더욱 양손에 뇌전을 끌어올렸다.

그런 그의 시야에 또 다른 뇌전이 들어왔다.

콰콰콰콰콰!

노란 머리의 사내가 검에 잔뜩 뇌전을 뽑아 올리며 그를 향해 뿌리고 있었다.

“썅!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왜 이걸 따라 해!”

뭔가 알 수 없는 분노의 외침을 터트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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