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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89화 (289/305)

제289화 알짱거리지 마라

파괴의 군주 크로드이언과 공포의 군주 크리팔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개망신을…….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 다가와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설마 저들을 만만히 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고작 줄타기 잘해서 군주 자리까지 얻은 주제에 감히 우리에게?

크로드이언이 으르렁거리듯 마켈그로이언을 향해 날이 선 말을 쏟아부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신 것이오?

순간 마켈그로이언이 인상을 굳히며 묻자 크로드이언이 다시 발끈했다.

-감히!

-틀린 말도 아니지.

그때 크리팔이 끼어들었다.

-뭐?

-군주씩이나 되어서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가?

-흥! 저놈이야 이미 군주의 힘을 흡수했기에 우리가 고전한 것이고…….

-그래. 고전했지. 그런데 갑자기 세력이 늘었네? 가둬놓고 공략해도 힘들었던 놈이 말이야.

크리팔의 말에 크로드이언은 입을 다물었다.

뼈를 때리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게다가 저 군주 놈이 마치 모시는 듯한 존재까지 나타났지. 적어도 지금처럼 힘을 얻기 위해 이전투구를 할 때가 아니란 거다.

크리팔의 설명에 크로드이언은 그제야 감정을 가라앉혔다.

성격이 폭급하다 뿐이지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크로드이언의 중얼거림에 마켈그로이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대군주께서 병력을 물리신 이유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마켈그로이언이 이제야 차분해진 목소리로 기오르그를 언급했다. 그러자 크로드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인정하지. 이건 전쟁이란 걸.

-마계의 역사에서 이렇게 우스운 꼴은 처음이겠군.

크리팔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버러지들에게 마계가 어떤 곳인지를 확실하게 인지시켜주지.

그 말과 함께 크리팔이 천천히 몸을 띄웠다.

콰드드드! 그의 몸에서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희끄무레한 것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포의 군주가 다루는 유체상태의 스펙터들이었다.

이어 그의 등 뒤로 마력탄이 연이어 생성되었다.

그때 크로드이언이 달려 나가며 외쳤다.

-육신을 찢고 피를 뿌려 이 세계에는 절망만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구구구구구!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리고 대기가 진동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숫자의 병력이 양쪽을 향해 맹렬하게 달러가는 모습에 바라보는 사람도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양측의 병사들은 오히려 열기를 띤 표정이었다.

전쟁이라는 열기에 중독된 것이다. 그 열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열기와 전의는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양측 병력은 그 어떠한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용맹한 병사들이다.

후우우우우우!

바람을 타고 공포의 군주인 크리팔이 소환해낸 스펙터들이 심령을 흔드는 듯한 울림을 만들어 내며 빠르게 나아왔다.

멀리서 보면 그게 스펙터가 아닌 회색 안개처럼 보일 정도였다.

투투투퉁! 투투투퉁!

그 짧은 사이 모자란 탄을 끌어모았는지 후미 대열에서 달려오던 군인들이 하늘을 향해 대마물용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하늘로 화살들이 연이어 솟구쳤다.

안개로 보일 정도로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온 스펙터들은 대마물 탄에 맞자 진짜 안개처럼 퍽 하고 흩어졌다.

끼에에에에!

하지만 스펙터는 소멸하는 순간 찢어지는 비명을 남겼다.

전설이나 판타지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만드라고라가 뽑혀질 때 내지르는 비명이 어쩌면 이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떠올릴 만한 그런 소리.

효과가 있었는지 강림자나 소환자 혹은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은 이들과는 달리 일반 군인들은 순간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부분일 수 있으니까.

그때 뒤쪽에서 찢어지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대~애 한민국!]

월드컵 때마다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다.

판도라 멤버들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지른 것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 울려 퍼지는 원곡의 음원.

부서진 차량과 뒤따라 달려오는 차량이 스피커를 최대로 올려서 동시에 같은 채널로 튼 모양이었다.

찢어지는 비명에 군인들이 몸을 움찔거렸던 것처럼 노랫말이 울려 퍼지자 조건반사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물론 가사를 외치는 목소리는 박자만 있을 뿐 기교도 뭣도 없었다.

딱 군인들이 군가를 악쓰며 부르듯 외치는 그런 정도.

하지만, 한목소리로 구간 반복이라도 하듯 외치자, 이쪽도 마법이 펼쳐졌다.

스펙터들이 죽어 나가며 울리던 비명이 뒤덮인 것이다. 진짜로 펼쳐낸 마법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마법이나 마찬가지다.

용기를 부르는 마법.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응원이라는 마법이었다.

그런 스팩터들 사이로 마력탄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마력탄을 리셀이 매직 에로우를 뽑아내며 상대해 나갔다.

허공에 뜬 리셀의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생성되어 마치 개틀링처럼 미친 듯이 쏟아져 나갔다.

끼아아!

퍼퍼퍼펑!

오오! 오오 오오오!

스펙터의 비명과 마력탄과 매직 미사일이 맞부딪히며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소리.

거기에 악쓰듯 부르짖는 노래가 어우러졌다.

불협화음이었지만, 마치 불협화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묘한 어울림이었다.

마족병들 주변으로 수많은 마족 마법사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그들이 마력탄부터 시작해서 불덩이와 얼음덩이 등 갖가지 마법을 사방으로 쏟아부어 내었다.

이쪽에서도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쪽에선 헤게루이안이 이끄는 마족 마법사들이 마력을 바닥까지 쥐어짜며 대항해 나갔다.

콰쾅! 쾅! 콰아앙!

그러나 숫자는 무시할 수 없었다. 적잖은 수의 마법들이 그대로 내달리고 있는 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폭발했다.

일부는 주변의 강림자들이 나서서 막아내었지만, 그러지 못한 곳은 그대로 타격이 들어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폭발하며 튄 파편에 맞아 비틀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끼히히힝!

말을 타고 달리던 강림자도 엎어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쪽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하늘로 솟구쳤던 화살들이 떨어져 내리며 마족병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여기저기에서 마족병들이 한 손으로 마력 방어막을 방패처럼 펼치거나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들 역시 모두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퍼퍼퍽! 퍼퍼퍼퍽!

화살에 맞은 마족병들이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일부는 그대로 비틀거리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아군들의 발아래로 빨려 들어가 그대로 넝마가 되었다.

그런데도 양쪽은 이것이 마치 일상인 듯 혹은 당연하다는 듯

뒤떨어지거나 쓰러진 이들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적들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그때 마켈그로이언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궁!

그와 함께 땅이 그대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쿠구구!

쿠쿠구궁!

고진천이 이끄는 기마들의 앞으로 벽이 세워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십여 미터에 달하는 벽이 만들어졌다.

그대로 달려 나가면 피떡이 되고도 남았다.

그것을 본 고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강쇠의 고삐를 틀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면서 안장에 달린 단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집어 던졌다. 그게 날아가 어찌 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연달아 남은 단창을 던졌다.

쇄애액!

그대로 날아간 단창이 앞에 세워진 벽을 꿰뚫었다.

콰아앙! 쾅! 쾅!

단창들이 연이어 날아가 그대로 벽면을 터트려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좌우에서 달리던 전열의 기마들이 각자 무기를 투척하였다.

연이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벽면들이 뒤로 넘어가고 무너져 나갔다.

그 자체만으로도 장애물이 될법 했지만, 이들에게는 의미 없었다.

끼히이잉!

강쇠가 무너진 벽을 그대로 날 듯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벽을 훌쩍 넘어 날아오른 강쇠의 위에 있던 진천이 활을 들어 다시 화살을 재어 쏘았다.

투웅! 투웅! 투웅!

마치 활쏘기는 기본소양이라는 듯 연달아 쏘아낸 화살들이 그대로 마족들의 선두 열을 향해 날았다.

마찬가지로 좌우에 늘어진 이들이 쏘아낸 화살들이 그대로 적들의 대열을 향해 쏟아졌다.

투둥! 투투퉁! 퍽! 퍽!

그렇게 쏘아진 화살이 일부는 방패에 튕기고 몸통에 박히고 팔 다리에도 박혔다.

때론 방패와 몸통도 함께 꿰뚫었으며, 운 나쁘면 이마로 들어가 뒤통수로 화살촉이 고개를 내밀었다.

화살은 이쪽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반대편에서도 화살들이 쏟아져 왔다.

그러나 반대로 이쪽은 날아드는 화살을 거의 퉁겨내었다.

화살 공격만큼은 이쪽의 압승.

그리고 돌입 전 진천이 양손에 손도끼를 뽑아 들고 앞으로 손을 교차하며 날렸다.

쾌래래랙!

은빛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도끼들이 다시 한번 선두를 두들겼다.

화살에 이어 도끼들이 날아가 박히며 대열을 흔들었다.

그 도끼들 사이를 거슬러 올라오며 마력탄들이 날아들었다.

콰콰쾅!

날아드는 마력탄을 튕겨 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막지 못하거나 운 나쁘게 땅으로 날아와 터진 마력탄 때문에 엎어지는 기마들이 속출했다.

끼히히힝!

퓨켈등의 기마들이 구덩이에 빠져 자빠지고, 혹은 마력탄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자빠졌다.

그러나, 그 순간 묵갑귀마대원들은 관성에 따라 앞으로 퉁겨 나가듯 날아가다가 그대로 공처럼 몸을 말았다.

더그럭! 더걱!

찰갑이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은 그대로 두어 바퀴를 구르다가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갔다.

마치 처음처럼 달려왔다는 듯.

그런 그들의 주변으로 기마들이 스쳐 나아가며 기병용 창인 삭을 들어 올려 격돌을 시작했다.

콰과콰콱!

드디어 기마들의 돌파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마족병들 가장 앞의 대열이 순식간에 잡아먹히듯 무너졌다.

아직 살아남은 거대한 덩치의 마물들이 반도 안 오는 크기의 기마들을 향해 손을 휘두르거나 꼬리를 휘저었다.

부와아악!

어른 몸통만 한 꼬리가 고진천을 향해 휘둘러져 왔다.

그러나 고진천은 그대로 환두대 도를 마주 휘둘렀다.

성둥!

그 질긴 거죽이 마치 두부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꾸어엉!

공룡을 닮은 마물이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대로 입천장을 뚫고 정수리로 튀어 나갔다.

“어데 꼬랑질 휘두르는 거이간?”

을지우루가 연신 화살을 쏘아붙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진천과 강쇠는 마족들을 난도질 치며 그대로 뚫고 나아갔다.

그때 강렬한 살기가 뿌려져 왔다.

-가로막지 말고 나와라!

파괴의 군주 크로드이언이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오로지 못다한 승부를 내고 싶다는 듯 을지부루를 향해 나아왔다.

문제는 그 앞에 고진천이 있다는 점이었다.

-얼쩡거리지 말란 말이다!

크로드이언이 연이어 고함을 터트렸다.

그 순간 진천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눈썹이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열받았다.

그 순간 진천의 앞으로 뭔가가 스치듯 튀어 나갔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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