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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84화 (284/305)

제284화 격이 다르다

속삭임들이 퍼져 나갔다.

설득 회유.

달콤하고 또 달콤한 이야기.

그의 손을 잡으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이야기.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이루어 주겠노라.

그렇게 각자 가진 욕망에 맞는 것들이 형상화되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속삭임들이 각자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이 많은 숫자 중 일부만 손을 잡기만 하면 된다.

원래 시작은 작은 구멍부터다.

그렇게 작은 구멍은 점점 큰 균열을 가져온다.

마켈그로이언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펼친 권능이 가져오고 있는 답을 천천히 귀에 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지랄이래?

감정들이 되돌아오는 순간 눈을 감은 마켈그로이언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들이대려면 제대로 들이대던지.

-이 인간 로망을 모르네? 내가 아무리 세이렌에 미쳤어도 남이 해 주면 얼마나 모지리 취급을 받겠어? 이거 지능적으로 엿 먹이는 거 아냐?

-오, 뭔가 꿈이 재미있는데?

-저거 기어오르곤지 뭔지 하는 새끼 멱따는 거 도와주면 생각해 보고.

마켈그로이언의 온몸에서 진땀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거 제의한 새끼 알아서 뒈지면 한번 생각은 해 보고.

심지어 눈을 감고 양손을 앞으로 뻗고 있는 그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귀에 맴도는 비슷한 내용들의 감정들이 마치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빨랑 조지고, 한잔해야지.

-빨리 조지고, 저 양반 얼굴이나 보러 가야지.

-빨랑 조지고, 뭔 일인지 물어나 봐야겠다.

-빨랑 조지고, 저승생활 할 만한지 물어봐야겠다.

-빨랑 조지고, 저놈들 사는 세상도 쳐들어가 볼까?

순간 마켈그로이언이 눈을 부릅떴다.

-푸헙!

그가 펼쳐 내었던 권능의 반작용이 밀려들어왔다.

순간 그의 몸이 휘청거리며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 무슨…….

그 순간 마법사들이 솟구쳐 올라와 그의 양 팔을 부축하며 천천히 내려섰다.

그 와중에 한 명은 그의 등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고 마력을 주입시켜 회복을 도왔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마법사들도 놀란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으음.

마켈그로이언은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궈, 권능이 튕겨져 나온다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강렬한 반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나오는 영웅급의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저 많은 숫자가 영웅급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기운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마켈그로이언은 당황 어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불쾌한 표정으로 적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대군주 기오르그가 있었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판도라 멤버를 찾으며 권능을 썼지만, 이런 반탄력은 없었다.

그저 안 받아들이게 되면 사라지게 되는 게 일반적. 그러나 지금은 권능의 그릇과 마력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조금 전 그가 바라보았던 대군주 기오르그처럼 상위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이끄는 존재들일 경우였다.

즉 자신의 권능 이상의 장악력이 존재할 때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권능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아까는 이런 일이 없었고 지금은 있다.

그러면 그 원흉은 하나다.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자.

-미치겠군.

마켈그로이언은 그를 보며 온몸에 소름이라는 것이 오소소 돋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고야 말았다.

바우우우!

대무덕의 몸뚱이가 말위를 박차고 하늘을 날았다.

그를 향해 마법들과 투사무기들이 집중되어 날아들었지만, 그의 몸에 다다르기도 전에 먼지처럼 소멸 되었다.

그 뒤에 홀로 고고하게 떠서 나아가는 존재.

리셀 시아론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인 군단이라고 부르며 무한의 마력을 가진 대마법사 리셀의 위력은 이곳에서도 발군이었다.

그의 방어마법은 적들의 공격이나 마법이 대무덕의 터럭하나 건들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을지부루를 가장 안타까워했던 이는 대무덕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실제 가르친 것은 이곳의 생활이나 언어 혹은 여러 잡다한 일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그에게 스승이라 부른 이가 바로 을지부루와 을지우루였다.

당연히 을지부루를 그리워한 것은 리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때 리셀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저 멀리 포위망 안쪽에서 강렬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위에서 마력을 거의 쏟아붓고 있는 존재가 리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를 향해 리셀이 다른 한 손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한 손에서는 대무덕을 향한 방어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의 등 뒤에서는 수많은 마력 화살이 생성되어 거의 소나기처럼 뿌려져 나아갔다.

다가지 마법을 거의 쏟아붓는 상황에서 들어 올린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트, 트리플? 저 상태로?

카르탈마니어와 함께 포위하고 있는 적을 상대하던 헤게루이안이 경악에 찬 얼굴로 한 쪽을 바라보았다.

카르탈마니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게 가능한 것인가?

단순한 트리플 캐스팅이 아니다.

한손으로 미친 듯이 방어 마법을 펼치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낮은 수준이라지만 마력 화살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보통은 트리플 캐스팅이면 세 종류의 마법을 거의 동시에 만들어 내서 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마법 세 개가 날아가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미친 듯이 두 가지 마법이 계속 시전 되는 상황에서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고위마법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인간계에 저런 괴물이?

저런 게 가능한 존재라면 이미 소멸된 마룡의 군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이었다.

아무리 지금 정신체에 불과하다지만 저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도 말이다.

그들이 놀라 있는 순간 떠올라 있던 구체는 붉게 타오르다가 점점 청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백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이 이곳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허, 허억!

헤게루이안과 카르탈마니어 둘이 경악하며 마력 방어막을 일행들 머리위에 펼쳐내었다.

콰르르르르!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열기를 품은 구체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 열기에 공포의 군주 크리팔이 경악하며 을지부루를 향해 뿌려대던 저주 계열의 마법을 멈추고는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그의 앞에 얼음의 벽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마력 방어막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던 것이다.

상성을 활용한 얼음벽이 만들어지자 그 위로 백열하는 구체가 날아와 박혔다.

촤아아아!

순식간에 얼음벽이 녹아내리며 수증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크어억!

-캬악!

그 주변에 있던 마족병들과 마물들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각자 뜨거운 열기에 마력으로 방어막을 펼치고는 있었지만, 두 마법이 만나며 만들어 낸 수증기에 몸뚱이가 익혀져 버린 것이다.

일부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콧속이 그대로 익어 버린다든지 말이다.

촤아아아아!

연이어 펼쳐진 얼음의 벽은 계속해서 녹아내렸다.

그 모습에 이를 악물던 크리팔이 양손으로 마력을 뽑아 그 역시 보랏빛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빠르게 만들어 낸 마력탄이 그 크기를 키워 나가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얼음벽을 연신 겹겹이 만들어 위력을 반감시켰다.

-기습한다고 당할 것 같더냐!

크리팔이 공을 들여 만들어 낸 마력탄을 쏘아내자 두 구체가 중간에 만났다.

콰콰콰쾅!

이내 그 여파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백색과 보라색이 반반 나뉘어 사방으로 빛을 뿌렸다.

그 주변에 있던 마족들은 물론이고 땅거죽마저 녹아내렸다.

바우우웅!

이내 하늘로 버섯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흥. 제법 강력하지만 겨우…….

빼어억!

크리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뭔가가 날아와 복부에 박혀들었다.

거의 꽁지까지 박혀들은 것은 대형 화살이었다.

-이거?

아까도 날아왔던 화살이었다.

지금 상대하는 군주와 똑같이 생긴 자가 날린 화살.

-이런 빌어먹을!

크리팔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화살대를 잡았다.

이내 연달아 날아온 화살은 다른 손으로 퉁겨 내었다.

방금 전은 마법대결로 인해 틈이 생겼으니 맞았던 것일 뿐.

사방이 자욱한 안개로 덮여 있었지만, 이후 날아드는 화살들은 어렵지 않게 쳐낼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야아아아!

그때 아래에서 비명과 같은 외침이 울려 퍼져 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파괴의 군주 크로드이언이었다.

-뭐기에…….

그 잠시를 버티는 것도 못하느냐는 핀잔을 주려 하던 크리팔이었지만, 순간 마력을 끌어올리며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구덩이 아래의 피웅덩이가 드래곤을 닮은 기괴한 괴수의 형상을 하고 크로드이언은 입에 물고 솟구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뭐, 뭐지? 마법이 아까가 끝이 아니었나?

크리팔은 방어마법을 펼치며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케엑!

-캬악!

조금 전 두 마법이 충돌해서 만들어졌던 여파에 부상당하여 쓰러져 있던 마족들이,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들의 상처에서 피가 연신 뽑혀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크흐윽!

크리팔은 서둘러 배를 관통한 화살을 뽑아내고는 그대로 마력을 손에 뽑아 상처를 지져 버렸다.

그 사이에 한바가지는 될 법한 피가 뽑혀져 나갔다.

-흐, 흡혈의 마법이라도 되는 건가?

-마력의 움직임과 달라! 권능과 정령력이 섞인 느낌이라고! 나 좀 도와주라고!

크로드이언이 마력을 몸에 두르고 겨우 버티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를 악물은 크리팔이 그를 향해 마력탄을 날렸다.

퍼어억!

-컥!

크로드이언이 마력탄에 맞아 퉁겨져 나갔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나름 확실하게 괴수의 아가리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

먹잇감을 놓친 괴수의 형상이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던 마족들과 마수들을 그대로 물어뜯으며 구름 위로 사라졌다.

-이, 이건 대체?

건조해진 공기를 느끼며 크리팔은 몸을 일으키는 크로드이언과 함께 바짝 붙었다.

그 사이 구덩이에서 을지부루가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니보라. 아까는 당당하디 않았네? 왜 이리 찌부러진 거간?”

부루가 이죽거렸지만 둘은 웃을 수 없었다.

상황이 고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음.

회유와 교언의 마족 마켈그로이언이었다.

-지금은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닌 듯하군요.

그의 안색을 본 두 군주는 얼굴을 굳혔다.

-권능이 튕긴 것인가?

-제대로 당했지요.

크로드이언은 그 타격을 짐작할 뿐이지만, 마찬가지로 정신계 권능을 활용하는 크리팔은 그것이 의미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공포의 권능 역시 비슷하게 심상에 구현되는 것이지만, 반탄력은 이쪽이 더 크다.

회유와 교언의 경우는 제의 그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이기에 그 반발력이 적은 편이니까.

그런데도 이런 꼴이라는 것은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쪽도 마찬가지. 놈이 점점 강해진다고나 해야 할까.

-으음.

-저쪽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군주에 필적하는 존재가 있는 듯합니다.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크리팔이 기분 나쁘듯 대꾸했다.

-흥.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격이 같단 게 아닙니다.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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