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82화 (282/305)

제282화 하나로 모여들고 있다

투투퉁!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

-인간의 군주가 언제 저기에?

마족들은 자신들이 포위하고 있던 군주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화살을 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곤 동요가 일었다.

누가 봐도 같은 인물이었다.

콰콰콰콰콰!

그러나 그들이 맞이하는 공격의 종류는 전혀 달랐다.

공간을 꿰뚫고 날아드는 화살들은 그 사선에 존재하는 적들을 거침없이 뚫어내었다.

방패를 뚫었으며 몸통을 뚫고 또 뚫었다.

그 때문에 일부 마족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앞의 동료의 몸뚱이를 뚫고 나온 화살을 막을 겨를도 없이 똑같은 신세가 되어 쓰러졌다.

* * *

양현재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바둑판처럼 변해버린 모니터들을 향하고 있었다.

절망과 무력감. 그리고 포기라는 감정만이 가득했던 이곳에 무언가 희망이라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만 해도 모두가 켜 있던 모니터는 몇 개만이 남았다.

나머진 모두 검은 화면만 비출 뿐.

드론부터 항공과 인공위성 등에서 보내주던 영상들이 하나둘씩 먹통이 되면서 소수만 남았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남은 병력의 숫자가 적으니 필요 없지 않느냐고 대변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적들에 비하면 아군은 한줌이었다.

여전히 숫자는 마족들이 많다.

조금 전 거대한 힘의 파동을 감지했음인지 후방에 늘어져 있던 마족들이 앞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대략적으로 이십여 만에 달했다.

물론 숫자가 규모가 있는 만큼 조금은 늘어선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것이 없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알 대신 마족들의 머리통이 깔려있는 느낌이다.

물론 처음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숫자임은 맞다.

그나마도 대한민국이 핵심전력을 총동원해서 부딪혀왔고, 그리고 포탄하나하나가 마치 적들에게는 부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몽땅 쏟아붓는 비효율적인 전쟁을 벌여가며 전 투에 임했기에 이 정도라도 줄여놓은 것이다.

물론 그 결과 대 침식 이후 전 세계에서 육군 전력만으로는 3위 혹은 2위에 육박한다는 대한민국의 전력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감도 안 잡히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전력이 소모된 지금 새로운 희망이 연이어 나타났다 해서 승산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국군전력과 기동대 그리고 소환자와 강림자들로부터 시작된 2차 강림의 결과물을 모아봐야 이곳에 있는 숫자는 만 명에도 못 미쳤다.

그나마 2차 강림 덕에 숫자라도 불린 상황이었다.

물론 그중 2000여 정도의 숫자는 푸른색으로 일렁거리는 것이 마음이 든든해질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차라리 제대로 강림하지 못해 몸으로 스며든 경우가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그 외의 인원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후방으로 후송되었고, 또 밤낮을 이어가는 전투 속에서 탄을 모두 소모하고 이탈하고 또 후퇴하고 도망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도망을 칠 타이밍을 놓쳐서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약 오천이 넘는 병력이 더해졌다.

물론 이건 사실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사방에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다만 집회 영상을 분석하는 형식으로 계산을 하면 대략 그쯤 되지 않을까 판단될 뿐이었다.

“마, 맞습니다. 고, 고진천입니다!”

“맙소사…….”

“허…….”

사방에서 새로 나타난 강림자들로 보이는 존재들 중에서도 뭔가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되는 곳이 있었다.

보랏빛으로 진하게 물든 빛이 처음에는 마계에서 최상위 계층이라도 나타난 것인가 하며 절망했었더랬다.

그러나 그것이 모습을 완전하게 드러낸 결과 그의 정체는 바로 고진천이었다.

“그 뿐 아닙니다. 서울 테러를 저지른…… 아니 음.”

순간 흥분한 얼굴로 보고를 올리던 비서관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호칭에 곤란을 겪은 것이다.

분명 범법자로 분류된 존재들이었다.

당시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상대했던 이들이 전쟁용병이고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해도 말이다.

게다가 현직 국회의원까지 함께 사라진 일이니 말이다.

“잡아 가둘 수는 있고?”

그때 한쪽에 있던 국방장관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치 이 상황에서 뭔 고민인가 싶은 모습이었다.

“하기사 그리 따지면 저기 임꺽정은 조선시대지만 조직폭력그룹 결성에 살인, 방화에다가 어이쿠 쿠데타까지 있겠네.”

양현재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말에 추임새를 넣듯 말을 이었다. 그러자 비서관의 안색이 변했다.

“지금은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할 판이네.”

양 대통령의 말에 비서관은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열제께서는…….”

“…….”

뭔가 둑터진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비서관을 보며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양 대통령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전신카페 진성 회원인지라…….”

“뭐, 그냥 그렇게 부릅시다. 열제든 폐하든 대왕이든. 고진천씨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양 대통령이 농담을 던지며 고개를 돌리자 서늘한 표정들이 보였다.

‘설마 그런 소릴 할 건 아니지?’라는 표정들이었다.

“내가 꽤, 신뢰를 잃은 모양이군요.”

최근 막 나가기는 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반응이 격한 것이 왠지 좀 서글퍼졌다.

“이쪽도 확인 되었습니다! 계웅삼! 을지우루 확인되었습니다!”

“간달…… 아니 리셀 시아론 확인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 사태의 주역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에 누군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 이거 깃발의 상징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꽃 같기도 하고 전범기 같은 건 아닌데 묘하게 기분이 불쾌한 것이…….”

정보요원이 난감하다는 듯 녹색 무리가 들고 달리는 깃발을 보며 질문을 던지자, 그것을 바라보던 국무위원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국회 뱃지 그림이구먼.”

“그, 전범기 소리는 제 실수로…….”

국회의원 출신 국무위원이었기에 충분히 기분 나쁠 만했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너그러워진 모양이었다.

덤덤한 얼굴로 화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뭐, 비슷한 취급 받기도 했으니 자업자득이네. 그런데 왜 이 문양이 군에 있지?”

“아, 군은 아니고 조금 전 대규모 강림 때 강림해온 인원인데 인간은 아닌 듯합니다.”

“확실히 아니군.”

그 덩치가 딱 봐도 인간은 아니다. 거기에 마침 화면을 잡은 것이 몇 안 남은 드론 중 하나였는지 해상도가 꽤 높았기에 그 터프하게 생긴 면상이 그대로 비추어졌다.

“마족은 더 아닌 것 같고, 상대하는 적이 공통인 부분과 삼족오기를 함께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종족이지만 아군 같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지휘자로 보이는 이가…… 아, 사람? 사람이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음. 확실히 사람이 맞…….”

말을 하던 국무위원의 눈이 점점 커졌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 떨리며 열렸다.

“우, 우 의원?”

십 년 전 서울 테러사건의 유일한 피랍자.

분명 살은 확 빠지고 뭔가 거친 남자 분위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국회의원 시기에 함께 지내며 봐 온 그의 눈에는 분명 우중만 의원으로 보였다.

사실 대학동기이기도 했으니 더 잊을 수 없었다.

그가 입을 떡 벌리고 중얼거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전황을 바라보던 양현재 대통령과 상황실의 인원들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딱 봐도 병력차가 십 배수가 넘어 보였다. 물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이 적지 않음인지 여러 뭉텅이들이 한 쪽을 향해 이동하며 급격하게 덩어리를 늘리고 있었다.

마치 십 수 개의 송곳이 중간에 하나둘씩 모여들어 여러 자루의 단검처럼 굵어졌다. 그리고 아직 그들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 목표는 바로 을지부루가 포위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그가 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마치 연어가 바다에서 고향을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뭉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부스러기처럼 흩어져 있던 병력들이 조금씩 뭉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낙오되고 도주했던, 혹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머리를 박고 있던 패잔병들이 뭉치나 보다.

그런데 그들의 방향이 후방이 아니었다.

전방이었다.

저 무리들이 향하는 곳이다.

그 뒤를 따라 사방에 흩어져 있던 모래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양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벙커 인근에 병력 남아있지요?”

“예? 그, 그건…….”

양 대통령의 질문에 경호처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수방사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쯧. 남기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남겨서 뭐합니까.”

“기동력을 최우선으로 병력 구성을 하면서 남은 예비 병력일 뿐입니다.”

수방사 사령관이 조심스럽게 해명을 했다.

사실 그리 많은 병력이 남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 있는 만큼 상징성이라도 지키기 위해 약간의 병력정도는 남겼을 것이다.

“그러지 맙시다. 아까도 느꼈잖소. 살아남으면 무엇 할 수 있겠습니까?”

“좀 가봅시다.”

“예?”

양 대통령의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했다.

“어차피 총리님도 있고. 그리고 도저히 여기 못 있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병력이라도 내가 움직이면 같이 가지 않겠습니까?”

“전장을 봐서 아시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뭔가 때릴 수 있다고 하기보단 최소한 싸울 만큼 싸우다 다 친 사람들 좀 편히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적십자정신 따윈 없는 전장이지만 그 역할이라도 혹은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을 위한 방패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때 또다시 몇몇 모니터가 꺼졌다.

남은 것은 위성과 연결된 것들 몇몇뿐.

그나마도 어떻게 알았는지 마족들이 위성도 찾아내어 고철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벙커는 의미 없고…… 지금 상황에선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께서 지휘에 문제가 있으므로 전투 상황을 살피기 쉬운 곳으로 이동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이곳을 경호하는 책임자는 아니지만, 남은 예하 병력의 대부분을 차준우 사령관에게 빼앗겨버려 낙동강 오리알이 된 수방사 사령관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뱉었다.

결국 대통령과 동조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군인.

이곳이 불편했던 것이다.

“장비 챙겨! 이동한다!”

순식간에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 * *

쾅! 쾅! 쾅!

서걱 서걱!

연달아 날아온 마법이 을지부루의 등짝을 때렸고, 동시에 갖가지 병장기가 갑주를 가르고, 몸통의 살 거죽을 갈랐다.

물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쩌억!

을지부루가 휘두른 대부가 몸통을 쪼개고 머리통을 부쉈다.

다른 한손으로 달려들던 마족의 머리통을 그대로 거머쥐고 힘을 주었다.

퍼석!

마치 수박이 깨어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머리 일부가 박살이 났다.

투투툭!

옆구리를 뚫고 들어오는 창날이 있었지만 오히려 배에 힘을 주었다.

근육이 오밀조밀하게 조여지며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밀려들던 창날이 그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신 창대가 능청이며 휘었다.

“크형!”

이내 부루가 크게 한 걸음 내딛자, 능청이며 휘어졌던 창대가 뚝 부러졌다.

-어헛!

순간 무기가 부러져 휘청이던 고위 마족을 향해 부루가 대부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쩍하고 박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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