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차원을 초월한 인연의
“제, 젠장! 주변에서 화살들이 다 흩어져!”
“비, 빌어먹을!”
마치 이게 끝인가 싶을 절망 섞인 음성이 연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쏘아낸 화살들은 마물이 강하하며 만들어내는 와류를 뚫지 못하고 수숫대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짧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한 발을 쏴도 제대로 쏴야지. 이 친구들아.”
낯선 목소리였지만 고개를 돌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순간, 시위가 강하게 튕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파앙!
낯선 이가 쏘아 올린 화살은 그 어떤 화살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솟구쳐 올랐다.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담은 채 말이다.
키에에엑!
그리고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는 빠르게 하강하던 공중형 마물이 비명을 내지르며 방향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누, 누가?”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누가 구해준 것인가 싶었던 궁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
“누, 누구십…….”
그들이 돌아본 곳에는 처음 보는 이가 화살을 들고 서 있었다.
“가, 강림자?”
“묵갑귀마대?”
“거참 꿈도 요상다. 뭔가 싶네.”
사내는 당황한 얼굴을 한 궁사들의 관심에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응? 나? 춘삼이라고 하지. 저런 건 예전에도 잡아봤거든. 흐흐흐.”
활로는 을지우루에 가려지고 자신보다 세이렌 부인이 더 유명한 남자인 비운의 천재 궁수 춘삼의 등장이었다.
전장에 남녀 구분이 없듯 마족병들의 무기에도 남녀 구분은 없었다.
“꺄악!”
트럭들을 방패 삼아 뒤쪽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간호장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그녀와 부상자들을 바라보며 트럭 위에 올라선 마족병들이 눈알을 번들거렸다.
-여기 버러지들이 있다!
-빨리 처리해!
마족병들이 살의를 담아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그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 순간 비명을 질렀던 간호장교가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대 마물용 소총을 들고 긁었다.
투투투퉁!
-케엑!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마족병이 피를 뿌리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하지만 마족병들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마력 방어막을 소환하여 지근거리에서 쏘아낸 마물탄을 막아내었다.
테테텡!
허무함이 담긴 소리와 함께 탄이 전부 튕겨 나갔다.
“으아아아!”
그런데도 탄창에 탄이 모두 소모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도주하지 않고 쏘아내었다.
철걱!
탄을 모두 뱉어낸 마물용 소총이 후퇴 고정되며 멈추어 버리자 그녀는 그제야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도 피하지 못했던 것은 이곳에 그녀가 돌보던 환자가 십여 명이나 되었었기 때문이다.
“아…….”
짧은 탄식이 흘렀다.
이어 공포가 짧게나마 스쳤고 이후로는 포기라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자리를 잡았다.
-캬아아!
분노 섞인 외침.
동료가 죽어서인지 아니면 방금 자신들을 귀찮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눈알이 뒤집힌 마족병들이 마치 메뚜기떼처럼 트럭을 우루루 뛰어 넘어와 그녀를 향해 제각각 무기를 휘둘렀다.
차마 자신의 마지막을 볼 용기는 없었는지, 간호장교는 자신의 옆에 있던 군인들의 눈을 가려주면서 자신도 눈을 질끈 감았다.
카라라라라랑!
순차적으로 연달아 울리는 쇳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들.
-케켁!
-컥!
-카아아!
질끈 감았던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귀에 들려온 비명은 분명 마족병들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자 방금까지 내리쳐지던 무기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뛰어 내려오던 마족병들은 제각기 목과 가슴과 배 등을 부여잡고 사방이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위로 솟구친 한 남자가 긴 창을 들고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촤촤촤촤촤!
부챗살처럼 창대가 펼쳐졌다. 아니 그 정도로 빠르고 화려하게 창을 내지른 것이다.
-케켁!
-컥!
아직도 트럭 위를 뛰어넘던 마족병들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후두두둑!
그들에게서 나온 피가 비가 뿌리는 것처럼 사방으로 뿌려져 내릴 때 창을 든 남자도 가볍게 내려섰다.
그리고는 간호장교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아름다운 분이 위험에 빠질 뻔했군요. 혹시 부군이 계시오?”
“예? 아, 아뇨. 도, 돌싱인데요?”
“돌싱? 아! 과부! 이런 또 공교롭게도…… 난 몽류화라 하오. 이 전쟁이 끝나면 차라도 한잔…….”
순간 도끼 한 자루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태앵!
몽류화가 그걸 쳐내는 순간 짜증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이씨! 정신 안 차릴래? 개가 똥을 못 끊는다더니…….”
“닥쳐! 넌 장가도 갔잖아!”
몽류화가 창을 고쳐 잡으며 버럭 소릴 내질렀다.
그리고는 트럭 위로 올라서다가 다시 한번 간호장교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한번 지어주곤 사라졌다.
“쿨룩. 뭐, 뭡니까. 저 느끼한 남자는…….”
부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뻔했던 부상병의 질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녀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멍한 눈빛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난 원래 크림파스타 같은 거 좋아해. 좋잖아 느끼한 거.”
“…….”
부상병은 한숨을 내쉬며 옆에 굴러떨어진 붕대를 스스로 감기 시작했다.
“젠장. 이게 뭐야?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몽류화의 삽질을 막아낸 부여기율은 양손에 도낏자루를 단단히 쥐고 주변을 살폈다.
방금 그가 골로 보낸 마족병들의 시신이 그득했다.
“헐? 꿈이 맞나?”
주변을 보니 어딘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현실이라면 볼 수 없는 얼굴들도 있었다.
죽은 이들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당과의 전쟁이 한창일 때 죽은 이들도 있었다.
“정신 안 차리냐?”
“여, 영감탱이까지?”
부여기율은 자신에게 호통치는 노인을 보며 기겁했다.
“딱 보면 모르냐? 뭘 조져야 할지!”
노인은 그렇게 외치며 눈앞에 달려들던 마족병의 머리를 도끼로 쪼갰다.
그 노인은 특이하게도 두 개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부여기율처럼 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노 대형?”
대형의 직위에 있는 노웅.
그는 부여기율에게 쌍부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이였다.
무엇보다, 당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포위에 갇힌 부여기율과 수하들을 구하고 대신 죽음을 맞이했던 이였으니까.
“허, 백제 찌끄레기 놈 우냐?”
“노 대혀엉!”
“저승에 오긴 이르니 싸우자꾸나!”
기율은 노웅의 외침에 환한 얼굴로 쌍부를 휘둘렀다.
그가 몸을 날리며 상부를 휘두르니 마족병들의 머리가 잘 익은 열매처럼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노웅이 혀를 찼다.
“저 방정맞은 놈. 겉멋만 들어가지고.”
그리 말을 하면서도 그는 기율을 대견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웨이는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 편이구나!”
2차 강림이라는 것을 확인한 장웨이는 분위기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포 봉선 역시 주변을 둘러싼 마족병들을 방천화극으로 베어내고 새로운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응?”
그 순간 장웨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뭐야?”
“당군은 아닌가?”
뭔가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
특히 여포를 향한 눈빛이 꽤 번들거리는 것이 왠지 아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이. 거기 덩치 큰 놈. 말좀 해봐라. 어디 말을 쓰나.”
여포뿐 아니라 그를 따라온 중국 쪽 강림자들을 향한 시선이 따갑다 못해 못 잡아먹을 지경이 되었다.
순간 당황한 장웨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자, 잠깐 우리는…….”
장웨이의 입에서 유창한 모국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가우리 군들이 외쳤다.
“당병이다! 쳐라!”
“왕빠단!”
“이 호로잡놈이 욕질을 해!”
사방에서 거센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순간 을지부루와 함께 하던 묵갑귀마대원들이 나서며 말렸다.
“아군이다! 아군!”
“아군? 흉노 쪽인가?”
“저거 욕한 놈 저놈은 아닌 거 같은데?”
“저놈은 당의 장수 아냐?”
수만 가지 의혹이 쏟아졌다.
“2, 2차 강림이 왜 이래!”
2차 강림자치고는 너무 생생한 반응들이었다.
그도 을지부루나 묵갑귀마대와 함께 하며 그들이 당과 전쟁을 하던 때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시비는 있었어도 그들과는 이런 마찰이 없었기에 안도했다.
다행히 소요는 오래 가지 않았고, 그들 역시도 본능적으로 상대해야 할 적이 무엇인지 알았는지 칼날을 적들에게로 향했다.
“푸흐흐!”
“웃지 마!”
구도원의 웃음에 장웨이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왠지 창피했다.
* * *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회유와 교언의 마족인 마켈그로이언이 굳은 얼굴로 대군주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에게 의견을 내비쳤다.
-더는 유희를 멈추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지금까지야 그의 유희에 따랐다.
어차피 한 걸음이니까.
마계의 왕에 어울리는 대관식을 거행하기 위한 유흥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다행히 수가 적습니다. 여흥을 위해서라도 방해가 될 법한 이들을 정리하는 게 어떠하신지요.
마켈그로이언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존재감을 애써 외면하며 다시 의견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나 기오르그는 뭔가가 궁금한 듯 의견에 대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뭘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온지.
-저 존재들. 대체 무엇일까. 별의 찌꺼기라고 생각하는가?
기오르그의 질문에 마켈그로이언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저 길이 문제인가?
그때 기오르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응?
분명 바닥에서 올라오는 푸른빛이 원인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별의 잠재된 힘이 너무 방향이 컸다.
처음부터 이런 힘을 가진 별은 침식 대상으로 삼지 않기에 이 현상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철저히 영리했다. 변수가 없는 먹잇감만을 대상으로 침식을 펼쳐왔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침공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마켈그로이언이 기오르그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희미한 빛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멀어서 그런지 마치 작은 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낮 밤을 멈추지 않고 전투를 이어가며 다시 날이 밝았기에 알아보지 못한 빛줄기였다.
그 빛줄기가 이어진 곳은 아까 처음 큰 힘을 느꼈던 방향이기도 했다.
-끈?
-저런 게 가능한 것인가?
멀고 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힘이었다. 확실히 이곳의 것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시작된 힘이다.
그것이 바닥에서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찌꺼기가 아니었나? 아니 별의 찌꺼기는 하위소환의 개념이 분명한데…….
을지부루에 그 빛의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진해져 갔다.
바닥에 깔린 푸른 운무 형태의 빛과 선명히 구분되는 붉은 빛의 선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