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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77화 (277/305)

제277화 그리운 얼굴들을 만났습니다

* * *

“2, 2차 강림인가?”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푸르른 형상의 병사들을 보며 다들 떠올린 것은 2차 강림이었다.

형태로 보아선 그게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 2차 강림을 끌어낸 강림자가 누구인지 주변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푸른 선들은 여기저기 얼기설기 이어져 있을 뿐 그 주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대체 뭐냐고!”

오기원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압박감과 불길함을 담은 외침이 재차 터져 나왔다.

이 현상의 해답을 요구하는 외침이었다.

그는 이게 단순한 2차 강림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에 대한 답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쿨룩!”

입안이 터졌는지 기침과 함께 피를 뱉어낸 임병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때 그의 곁으로 달려와 회복 마법을 걸던 마법사가 눈에 띄었다.

“이거 2차 강림이요?”

병화의 질문에 마법사는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형태는 2차 강림 같은데 느껴지는 힘이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2차 강림이 있다는 건 그 어디에도 들어 본 바가 없습니다.

“형태가 완전하지 않은데…….”

병화도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았기에 어느 정도 마력이라던지에 민감해진 상황이었다.

다만 그게 전부일 뿐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몰랐다.

다만 이 현상이 형상이 완벽하게 되어 강림하는 것과 달리 아직 푸른 빛을 띠는 것이 불완전 강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병화의 중얼거림에 마법사는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부, 불완전 강림이 이런 힘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강림은 진행형이라는 겁니다.

드드드드드!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땅이 울리고 있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수많은 함성이 맞물려서 공명하는 듯한 그런 진동이었다.

순간 병화는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느낌은 소름이라고 할 게 아니다.

“아니 소름이라기보단…….”

병화는 스스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전율.

이건 전율이었다.

벅찬 자릿함.

“왠지 든든한 것 같지 않아?”

그때 다가온 구도원이 멍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다가 동의를 구하듯 질문을 던졌다.

“그래. 왠지 든든하네.”

이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현상을 감상하듯 바라보다가 어느 한쪽에서 멈추었다.

본능적으로 이 현상의 중심을 찾은 것이다.

바로 세인.

“설마 세인이 소환자로 각성이라도 한 건가?”

병화의 중얼거림에 도원이 그저 멀거니 세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만신창이던 그녀가 푸른 형상에 구함을 받고 안겨 있는 모습에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 있었다.

“아…….”

푸른 연기 혹은 빛.

그것으로 뭉쳐진 듯한 인간의 형상.

세인은 피투성이인 얼굴로 그 형상의 얼굴 즈음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말을 잃은 사람처럼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입만 벌린 채 짧은 탄식만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를 안도감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그 형체가 천천히 한 손을 뻗어와 그녀의 눈물을 훔쳐내었다.

위로하듯.

혹은 잘 싸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태양을 등지고 선 그가 이내 그녀를 내려놓고 송가은에게 다가가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켜 주었다.

대충하는 듯 무뚝뚝한 행동에 뭔가 따스함과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때 옆에 있던 제이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천 오래비?”

순간 크게 울리기만 하던 심장이 덜컥하고 멈추었다.

“이거?”

바닥에 나뒹굴던 천유화가 멀거니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뿐 아니라 묵갑귀마대 등 가우리의 병사들 모두가 비슷한 표정이었다.

푸른 형상의 병사들이 마치 장난스럽게 그들의 어깨나 등을 두들겼다.

쓰러진 이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친근했다.

-카악! 어딜 보는 것이냐!

중급 마족 하나가 그 꼴이 영 볼썽사나웠는지 기함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빠아아악!

그 순간이었다.

통쾌한 타격음과 함께 달려들던 중급 마족의 머리통이 몸통 안으로 말려들어 가며 비틀대다가 나자빠졌다.

함께 달려들던 마물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마물은 또 다른 마물…… 아니 마물과 같은 푸른 형상의 짐승의 아가리에 그대로 으드득하고 온몸이 바스러졌다.

마치 그 형상이 거대한 호랑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급 마족을 날려 버린 푸른 형상의 사내는 그 거대한 호랑이 형상 위에 앉아서 왠지 익숙한 봉을 한 바퀴 휘두르곤 어깨 위에 턱 하니 걸쳐 올렸다.

“아니겠지?”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오라질, 이 얼굴들을 벌써 본다고?”

그때 수많은 푸른 형상의 병사 중 일부가 그 모습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갑주가 생겨났다.

그 갑주의 형태는 익숙했다.

그들의 것과 같았다.

즉 가우리의 병사라는 의미.

이어 얼굴이 선명해졌다.

“어? 너!”

순간 누군가가 경악을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래요?”

“너! 맞지! 막둥이!”

“어이구 형님들! 왜 이리 늙으셨어요?”

이내 서로 아는 체를 한다.

그렇게 하나둘씩 선명해지는 얼굴들.

“이거 뭐지?”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땅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약간의 혼란이 찾아왔다.

말 그대로 고진천과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함께 동거하며 동고동락하다가 먼저 전장에서 보내야 했던 전우들이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그 반가움은 더했다.

“이야! 너 창질 좀 늘었냐?”

“마, 마로 대형?”

천유화도 경악했다.

그를 아는 채 하는 이는 바로 그에게 창술을 가르쳐 주었던 마로였다.

물론 그 역시 아주 오래전 이 땅에서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이였다.

“이거 재미있는 판을 벌여놨구나? 대사자님은 어디 계시냐? 어?”

호쾌하게 웃으며 천유화의 어깨를 두드려준 그는 이내 대사자를 찾았다.

그가 말하는 대사자는 한 명이 바로 고진천.

“여, 열제께선…….”

“뭐야! 대사자 그 양반이 대왕이 되신 거냐?”

뭔가 시간의 간격이 느껴지는 질답.

그때 그가 순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저 양반은 왜 저렇게 맞고 앉았어? 네놈들은 왜 구경 하고 자빠졌고?”

그때야 정신이 돌아온 듯 다들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다시 전투를 시작한 을지부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적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이거 참, 놀라는 재미는 있었다. 그래도 윗분 노는 곳에는 가는 건 아니지.

거구의 마족과 마족병들이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마치 이 앞으로는 가지 못한다는 듯.

그러자, 마로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슨 개소리야? 얘들아 가자!”

순간 마로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족병들 역시 전력으로 그들을 향해 맞부딪혀 왔다.

콰콰쾅!

그때였다.

여전히 푸른 형상을 지키고 있던 인형 하나가 푸른 막대를 휘두르며 나아왔다.

이내 푸른 막대는 환두대도로 변했고, 그 환두대도를 쥔 손 역시 제 모습을 찾아왔다.

-크아악!

마족들의 목을 연달아 치며 나타난 그의 몸에 그들의 피로 흠뻑 젖은 인형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거 오랜만에 기분 좋은걸.”

그를 본 천유화가 크게 웃었다.

“이야! 다 보는구나! 다 봐!”

“그러게. 다시 같이 싸운다는 게 이런 건가?”

그를 본 천유화가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바로 이곳이 아닌 저쪽 세상에서 전사한 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검무휼이다!”

와아아아아!

그리운 얼굴들 하나하나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환호는 점점 커졌다.

“이거이 뭔가 재미있는 거 같지 않네?”

을지부루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상황이 더욱 험악해졌다.

-이 빌어먹을 무슨 수작인 거냐!

크리팔이 분노어린 외침과 함께 양손에 마력을 모았다.

동시에 크로드이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부루의 몸뚱이를 부여 잡았다.

콰직!

“사내새끼가 지분거리디 말라!”

물론 반사적으로 부루가 크로드이언의 안면을 팔꿈치로 후려쳤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콰콰콰콰콰!

크리팔이 쏘아 보낸 마법이 부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빛줄기.

퀘애애애액!

길고 커다란.

화살보다는 창에 가까운 크기의 푸른 빛이 나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그것이 날아드는 궤적에 있던 모든 것들을 꿰뚫으며 말이다.

퍽! 퍽! 퍽! 퍽!

거침없이 날아온 그것은 그대로 크리팔이 쏘아 보낸 마법과 그대로 맞부딪히며 폭발을 만들어내었다.

퍼어어엉!

거대한 폭음과 함께 강맹해 보이던 마법이 그대로 사그라져 버렸다.

-이건 또 무슨…….

자신의 마법을 방해한 이를 찾으려 시선을 옮긴 크리팔이 본 것은 거대한 활을 든 푸른 형상의 빛무리였다.

-으응?

순간 크리팔이 당황한 얼굴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 활을 든 형상의 빛무리를 보았다.

-이, 이건 뭐냐!

생김새는 알 수 없었다.

아직 그 형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놀라 번갈아 본 이유는 하나였다.

생긴 건 몰라도 알 수 있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의 체형이 너무도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만 아니라면 저기에 그림자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그런 착각하게끔 만드는 체형이었다.

그건 부루가 착각하기도 힘든 체형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내래 꼴사나운 꼴만 보여줘서 미안하구나야.”

부루가 거대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그곳에 있던 푸른 형상이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부루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고 있었다.

이건 목소리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꼴좋다는 듯 놀리는 모습이었으니까.

“닥치라우!”

반가움도 잠시 부루는 얼굴이 벌게진 채 고함을 내질러야만 했다.

“저, 저게 가능해?”

“저거 활 맞아?”

“활이 아니라 석궁이나 노 같은데?”

“세상에 저만한 석궁이 어디 있어!”

한쪽에서 강림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투를 벌이고 있던 양궁과 국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조금 전 이적을 보여준 푸른 형상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적어도 활에 있어선 다들 세계 최고라 불리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그때 위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키에에엑!

“제, 젠장 언제!”

괴성이 울려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반사적으로 활을 들어 올렸다.

투투투퉁!

이어서 표적을 확인하는 즉시 쏘아 올린 화살들이 하늘로 솟구쳐 날았다.

하늘에서는 하늘을 나는 마물들이 일제히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하강하는 새들처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쏜 화살들은 목표를 꿰뚫지 못했다.

누군가가 절망 어린 외침을 내지르며 통하지 않는 화살을 다시 쏘아 올렸다.

“제, 제바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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