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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75화 (275/305)

제275화 대체 뭐냐고!

세인은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잘 안되었다.

머리가 먹먹했다.

마치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느낌.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는데 왠지 마음과 달리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마치 영화에서 보면 폭발 후에 주변에서 이명이 울리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상태가 딱 그랬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잡아주었다.

피투성이의 군인이었다.

자신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는데 세인을 부축하며 끌어올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다행히 제이와 레이니 그리고 전창걸 대표도 엎어진 차체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해지나 싶었지만 익숙할 수 없는 모습.

심지어 그녀들을 구하려다 이렇게 된 것인 만큼 더욱 가슴이 미어져 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묵갑귀마대원들은 벌써 몰려오는 마족병들에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그들 덕에 지금 이렇게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을 것이

‘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세인은 주변으로 다시 모여드는 군인들과 강림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다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면서도 방패를 지팡이 삼아 다가와 다시 앞에 벽을 쌓았다.

처음에는, 뒤에 남아 있었다 해도 과연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자신들이 뭐라고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도 호위 계획이니 뭐니 하며 인원을 빼서 배치하고 있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나온 길이다.

어차피 승리가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결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나섰다.

최소한, 의지는 보여주어야 했다. 만약 잘못되더라도 전장에 나선 이상 감내해야 한다는 다짐도 받았다.

물론 그 다짐을 받는 을지부루의 얼굴은 오히려 대견하다는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앞에서 마족병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오기원의 말마따나 민폐 캐릭터가 된 것 같아 후회되고 미안했다.

그때 대열 한쪽이 흔들렸다.

-크아아!

콰아앙!

기괴한 모습의 마족병이 메이스를 휘두르자 방패를 들고 있던 군인들이 밀려 넘어진 것이다.

그 모습마저 미안했다.

그때 그 마족병이 휘두른 메이스 끝에 엉겨 붙은 누군가가 보였다.

“으야아아아!”

육의찬 감독이 메이스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엉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옆을 스치고 누군가가 달려 나갔다.

쩌어억!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게 내려찍는 도끼질.

반면에 그 도끼를 들고 있는 이의 등판은 오밀조밀한 근육과는 달리 호리호리하다 못해 가냘프 게 느껴졌다.

“가은 언니?”

송가은 작가가 마족병의 머리통을 그대로 찍어 쪼갠 것이다.

그러고도 비틀거리는 마족병을 향해 몇 안 남은 마물탄을 쏘아내었다.

제이였다.

“좀 뒈져라!”

“세인 언니 정신 차려!”

이제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도 정상을 되찾았다.

옆에서 멱살을 잡아 흔드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니였다.

“미안.”

순간 마음속에 남았던 후회가 다시 밀려 나갔다.

동시에 단창을 집어 막 방패 사이로 고개를 내밀려는 또 다른 마족의 면상에다가 내질렀다.

콰작!

-키에에엑!

비명을 내지르는 마족병에게 세인이 꽉 막혔던 마음을 터트렸다.

“누가 민폐래! 이 세상 팔아먹은 놈이!”

“우와아아!”

그 한마디가 그리 통쾌했는지 다들 목이 쉰 채로 함성을 내질렀다.

이러다 죽더라도 민폐로 죽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찌르고 넘어지고 뭔가를 집어 던졌다.

서걱! 서거걱!

그때 연달아 뭔가가 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한쪽에서 마족병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묵갑귀마대원들이 마치 무덤을 뚫고 나오듯 튀어나왔다.

후두두둑!

사방에 마족병들의 피와 살 그리고 신체 일부가 후두둑 하며 뿌려졌다.

그리고는 다시 대열의 앞에 와 멈추어 섰다.

갑주는 넝마가 되어 있었고, 온몸에는 칼과 창 그리고 부러진 손톱과 쇠붙이들이 온몸에 박혀 있었다.

피 대신 빛 가루가 그들의 몸에서 연신 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곳이 제자리인 듯 멈추어 몰려드는 마족병들과 마물을 상대로 함께 싸웠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른 모양이었다.

-크어엉!

거대한 체구의 마족이 사람 덩치보다도 큰 도를 휘둘러왔다.

서거걱!

방패를 든 군인도 강림자도 그리고 그녀들 앞에 있던 묵갑귀마대원도 그것만큼은 막지 못했다.

그리고 눈앞이 열렸다.

“크, 크윽!”

몸이 동강이 난 채로 괴로워하던 묵갑귀마대원이 주변의 무기를 다잡으려 했다.

하지만 잡으려 하던 손은 이미 빛 가루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이 세인과 맞닿았다.

“죄송합…….”

말을 끝내기도 전에 머리가 날았다.

잠시나마 용맹했던 마음도 순간 얼어붙었다.

눈물은 왈칵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앞에 마족병들을 호위처럼 거느린 오기원이 당당하게 다가와 섰다.

“맞잖아 민폐.”

오기원이 눈알을 번들거리며 그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으아아아!”

임병화와 구도원은 임꺽정 등 강림자들과 함께 길을 뚫어내고 있었다.

오기원이 가 있는 방향.

그곳에 판도라 멤버들이 있었다.

딱히 그녀들을 을지부루가 지켜 달라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최소한 오기원이 그녀들을 붙잡아 의기양양한 꼴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오기원 이 개새꺄!”

임병화가 마족병을 쓰러트리며 전방을 바라보며 욕설을 뱉었다.

구도원이 살짝 열린 틈으로 도발도 해 보았다.

하지만, 오기원은 이쪽을 슬쩍 보더니 히죽 웃으며 세인을 향해 창을 들어 올렸다.

퍼억!

그때 육의찬 무술감독이 달려들었지만, 오기원이 휘두른 창대에 저 멀리 날아가 널브러졌다.

전창걸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가 맞아 쓰러지자 판도라 멤버들이 그를 몸으로 감쌌다.

하지만 오기원은 그 모습조차 즐거운지 창대로 연신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제이와 레이니가 전창걸의 몸을 덮은 채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사이 송가은 작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렇지!”

빠악!

순간 오기원의 턱이 들려 올라갔다.

깔끔한 플라잉 니킥.

하지만, 오기원은 얼굴을 일그러트린 체 아직도 공중에 떠 있던 그녀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힘주어 내리쳤다.

퍼억! 퍽! 퍽!

오히려 그녀를 무기 삼아 미동도 하지 못하는 제이와 레이니를 내려쳤다.

송가은 작가도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 들고 있던 창은 총을 거꾸로 잡아 휘두르며 달려드는 세인의 몸통에 찔러넣었다.

“여기 좀 보라고 이 개새끼야아아아!”

임병화의 절규 어린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하, 이런 씨…… 끝까지 염병을 떠는구나.”

오기원이 씨근덕거리며 축 늘어진 송가은의 발목을 놓고 양손으로 창대를 잡아 올렸다.

“끄윽…….”

“창대에 꽂아서 끌고 다니는 것도 재미는 있겠네?”

들어 올린 창대 끝에서 세인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녀의 괴로운 음성을 들으며 기원은 마음이 뭔가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해냈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왜 여길 쳐와. 할리우드 영화가 사람 다 멍청하게 만든다니까?”

기원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이죽거렸다.

철떡.

순간 그의 얼굴에 축하고 늘어지는 핏물과 침.

“푸흣! 1티어 거, 걸 그룹이 뱉어주는 침 맛이 어, 어때? 그, 그런 거 좋아하는 벼, 변태도 있다던데.”

“……이런 씨.”

순간 어이가 없었는지 기원은 들어 올렸던 창을 뿌리며 세인을 내동댕이쳤다.

퍼억!

바닥에 크게 퉁겨 오른 세인의 몸뚱이가 흐느적거리며 굴러갔다.

“약속대로 죽이진 않을게. 팔다리 싹 다 잘라서 깃발처럼 끌고 다녀주지.”

기원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널브러진 세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때 하늘을 보고 늘어진 세인을 본 기원의 얼굴이 살짝 굳어져 갔다.

“응?”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은 그녀들이기에 이 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싶어서 과하게 손을 썼다.

실제로 죽지는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멀쩡해?”

그녀의 몰골은 멀쩡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기원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들고 있는 창의 끝을 바라보았다.

서슬 퍼런 창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창끝을 향했던 시선이 세인의 복부를 향했다.

분명 저 배를 찔러서 들어 올렸다.

그 구멍으로 최소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피는커녕 구멍이 뚫렸던 자국도 없었다.

다가가며 기원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왜 멀쩡하냐고!”

뻐어억!

이어서 널브러져 있는 세인을 걷어찼다.

“커흑!”

세인이 비명을 터트리며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 하지만, 기원의 얼굴 역시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큭!”

통증으로 인한 고통.

그는 그녀를 걷어차는 순간 푸른 기운이 몰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영 더러운 기분이 이어졌다.

정중부가 그를 버릴 때도 저 푸른 기운은 있었다. 별의 찌꺼기라 불리는 저 힘의 잔재.

그게 이렇게 반탄력까지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의 눈이 다시 커졌다.

그에게 채여서 힘없이 떠올랐던 그녀의 몸이 떨어지다가 출렁이며 허공에 멈추어 선 것이다.

마치 뿌연 기운이 그녀의 몸을 받쳐 들고 선 느낌이었다.

그 연기 같은 기운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형상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뭐야…… 저거…….”

소위 공주 안기라고 부르는 모습. 푸른 연기가 마치 세인을 공주 안기처럼 안아 든 것 같은 모습처럼 뭉쳐지고 있었다.

“이런 씨!”

기원이 뭔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내달렸다.

그때였다. 그보다 먼저 반응해 달려 나간 마족병의 앞으로 또 다른 연기가 뭉쳐지며 쏘아져 나갔다.

뻐어억!

동시에 기원을 향해 그 마족의 몸뚱이가 날아왔다.

퍼억!

“컥!”

순간 기원은 커다란 덩치의 마족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기원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몸을 덮은 마족병을 밀쳐 내며 욕설을 뱉었다.

“이런 병신, 대체 뭐기에…….”

하지만,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팍이 함몰되어 있었다.

물론 마족병은 죽어 있었고 말이다.

“뭐, 뭐야 이 흔적은?”

그 함몰된 가슴팍에 정확하게 U자 비슷한 모양이 두 개가 모여 있었다.

뭔가 익숙한 문양.

“마, 말발굽?”

말발굽이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오기원은 조금 전 이 마족을 골로 보낸 것을 응시했다.

여전히 뿌연 기운이었지만, 그 형태가 커다란 체구의 말과 같았다.

꽤 건방져 보이는 모습.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이거 뭐야?”

그 주변으로 지금까지 신경을 거스르게 만들고 있던 푸른 기운들이 뭉쳐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말이다.

이어서 그것들에게서 밀려오는 커다란 압박감에 기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외쳤다.

“뭐냐고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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