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역사는 승자의 것
크로드이언이 휘두른 도끼가 바닥을 찍는 순간 오히려 그 위에 올라탄 을지부루가 몸을 날렸다.
콰직!
마치 투석기에서 쏘아낸 바위처럼 날아간 부루의 머리통이 크로드이언의 안면을 그대로 찍었다.
-크헉!
코가 뭉개지고 이빨이 피로 물들며 고개를 쳐들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재빠르구나!
크리팔이 그런 부루의 등짝을 향해 양손으로 마법을 쏘아대었다.
덥썩!
그 순간 부루가 고개를 쳐든 크로드이언의 머리끄덩이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가슴팍에 두 발을 디뎠다.
-어억! 놔라!
머리끄덩이를 잡혀 앞으로 훅 끌려가던 크로드이언이 당혹감 섞인 외침을 터트리며 버텼다.
하지만 부루는 그대로 몸을 뒤로 누였다.
뿌드드득!
머리 가죽 채 뽑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크로드이언의 몸뚱이가 앞으로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치 유도의 배대뒤치기와 같은 기술에 그대로 몸뚱이가 빙글 도는 순간 크리팔이 날린 마법이 작렬했다.
퍼퍼퍼펑!
-퀘엑!
말 돼지 멱따는 소리가 크로드이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 이런!
뒤바뀐 위치 덕에 부루의 방패막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부루는 마법에 맞아 밀려 내려오는 크로드이언의 몸뚱이를, 지지하던 두 발을 뻗어 위로 날려 버렸다.
퍼엉!
크로드이언의 거체가 크리팔을 향해 날아갔다.
물론 워낙 덩치가 있고 무게가 있어 크리팔이 멀거니 맞을 이유는 없었다.
크리팔은 날아드는 크로드이언의 몸뚱이를 피해 허공에서 몸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 아래에서 돌풍이 느껴졌다.
후웅, 흥!
부루가 대부를 대각선으로 풍차처럼 휘두르며 날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콰드드득!
-크흡!
몸을 뒤틀어 보았지만, 이미 부루가 휘두른 대부는 그의 상체를 할퀴고 지나간 뒤였다.
그의 상체가 쩍 벌어지며 피가 하늘에서 사방으로 후두둑 뿌려졌다.
이어서 크리팔의 숨통을 끊어 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허공에서 몸통을 튼 부루가 대부를 고쳐잡다가 몸을 틀었다.
퍼퍼퍼펑! 퍼펑!
연이어 날아든 마력탄들이 부루의 몸뚱이를 집어삼켰다.
부루가 몸을 공처럼 말고 대부를 방패처럼 내민 채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 크리팔이 회복마법을 자신의 몸뚱이에 걸며 이를 갈았다.
그뿐 아니라 타격을 입었던 크로드이언도 자신의 몸에 부유 마법을 걸며 균형을 잡았다.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심경을 담은 시선이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 부루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홀로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은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마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세력이 크게 타격을 입은 탓이 컸다.
군주는 무리를 이끄는 자를 말한다. 은총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내린 종속자들이 힘을 키우는 만큼 그들의 권능 역시 힘을 얻었다.
그런데 그들의 권능의 기반이 망가진 지금 그들의 힘은 홀로 부루를 감당하기 어렵게 변했다.
물론 따지면 부루도 마찬가지여야 했지만, 이곳에서 새롭게 힘을 나누어준 것도 영향을 끼쳤고, 또 그를 욕심 내던 최상급 마족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며 작은 힘이지만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 차이가 지금 이렇게까지 벌어졌다.
-빌어먹을.
-누가 되든 기회를 잃을 순 없지.
크리팔과 크로드이언은 굳이 약속하지 않더라도 함께 힘을 모으기로 작정한 듯, 부루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홀로는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둘은 자신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크리팔의 마법이 부루의 다릴 붙잡았다. 그와 함께 크리팔의 수하들이 쏘아 보낸 마법이 부루를 두드렸다.
-빌어먹을 감히!
카르탈마니어가 분노한 얼굴을 보이며 부루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크로드이언의 군단장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런!
헤게루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리팔의 군단장과 군단의 병사들이 그를 향해 마법을 뿌렸다.
-놈의 정신을 조금만 더 갉아먹어야 해!
크리팔이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그러자 크로드이언이 코를 찡그리며 도끼를 고쳐 잡았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퍼퍼퍽!
크로드이언은 지금 부루가 당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도 저 정도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크리팔의 속박마법이 깨어지며 부루의 몸이 마법이 쏟아지던 곳에서 쏘아져 나왔다.
-흐읍!
크로드이언이 부루가 튀어 나가는 방향을 가로막으며 도끼를 휘둘렀다.
타앙! 텅! 텅!
연달아 두 자루의 대부가 불똥을 튀기며 격돌했다.
그 와중에 도마뱀 형상의 마족 하나가 꼬리를 휘둘러 부루의 발목을 휘감았다.
하지만, 부루는 지체하지 않고 발목을 휘감은 꼬리를 부여잡으며 반대쪽 손에 든 대부로 발목을 감은 꼬리를 잘라내었다.
쩍!
-캬아아!
꼬리가 잘려 나가며 도마뱀 형상의 마족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직 꼬리는 부루의 손에 잡혀 있어 고통에도 몸을 빼내지 못했다.
부와아아악!
부루는 꼬리를 잡은 채로 그대로 휘둘렀다.
부와아아악!
부루에게 휘둘러지는 마족은 크게 맴돌아가며 달려들던 마족들의 몸뚱이를 쳐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크로드이언이 있었다.
-장난이 지나치구나!
크로드이언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그에게 휘둘러지던 도마뱀 형상의 마족이 그의 주먹에 마치 풍선마냥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후두두둑!
그대로 터져나간 잔해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 사이로 부루가 다시 크로드이언을 향해 내달려 갔다.
한 손에는 조금 전 마족의 꼬리를 다른 한 손에는 대부를 쥐고 휘둘렀다.
-캬아악!
크로드이언이 연신 도끼를 휘두르자 부루가 무기처럼 쓰는 마족의 꼬리가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
그리고 부루의 대부와 다시 격돌.
쩌어어엉!
-크윽!
다시 한번 크로드이언의 도끼가 뒤로 밀렸다.
-왜 점점 강해지는 거지?
처음 격돌했을 때와 달리 힘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푸른 안개와 같은 별의 기운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것까지도 영향을 받는다고?
조금 전까지는 그저 자신들의 권능이 약해진 대신 부루는 최상급 마족들을 죽이면서 조금이나마 더 강해졌기 때문에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별의 찌꺼기, 즉 별의 마지막 몸부림이 그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것이다.
단순 의심이 아닌 확신에 가까운 의심 말이다.
퍼퍼퍼퍼펑!
오기원의 주변으로 화력이 순간적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는 마법사들이 펼친 방어마법은 그 공격으로부터 기원을 보호하는데 충분했다.
“기동대?”
가장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이들을 본 기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다다다다!
다다다다!
이런 난전에 가장 빛을 발하기 시작한 이들은 바로 기동대였다.
한 명이 바이크를 몰고 다른 한 명이 바이크 옆에 달린 보조석에 앉아 연신 대마물용 탄을 쏘아대고 있었다.
퍼퍼퍽!
그렇게 잠시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에게 보호 마법을 걸던 마법사의 머리에 화살 한 대가 꽂혔다.
“이런 젠장!”
기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 마법사가 펼치고 있던 쪽의 보호막이 흐려졌다.
그 사이로 대마물탄이 날아왔다.
퍼억! 퍽퍽퍽!
기원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의 팔뚝에는 미처 뚫지 못한 대 마물 탄환이 마치 껌처럼 붙어있었다.
그 짧은 사이 기원이 팔뚝을 들어 방패마냥 날아든 탄들을 막아 낸 것이다.
후두두둑!
“감히 나를?”
대 마물용 턴들이 팔뚝의 완갑을 뚫지 못했다.
기원은 살기 어린 눈으로 주변을 맴도는 기동대원들을 노려보며 한 손을 들었다.
부와아악!
동시에 그의 손에서 마력탄 여럿이 생성되었다.
“날파리 같은 놈들이!”
기원의 손이 앞을 향하자 마력탄들이 이리저리 날아들었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주변을 달리던 오토바이 몇 대가 불타올랐다.
쉬익!
그사이 날아든 강림자의 화살 한 대가 기원의 몸통을 노렸지만, 그것도 아쉽게 다시 생성된 마법 방어막에 틀어 막혔다.
그때 또다시 화살이 날아와 방어막을 깨었다.
순간 벌어진 구멍.
그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쉬익! 팍!
바람 소리와 함께 기원이 손을 놀려 날아든 것을 잡아챘다.
“돌멩이? 폐급 강림자들이나 쓰는 석전?”
그런 것 치고는 손바닥에 울리는 힘이 만만치 않았다.
그가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그적!
막대사탕 하나를 맛나게 빨던 강림자가 그대로 사탕을 깨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꺽정이었다.
“산적새끼가!”
“이빨도 털어주마! 으아하핫!”
“머리통에 화살도!”
“돌멩이가 강한지 네놈 머리통이 강한지 대보자!”
임꺽정의 좌우로 활을 든 이와 돌멩이를 든 이 그리고 뒤로 그들과 비슷한 짐승 가죽 복장을 한 산적 패들이 둘러서 있었다.
“2차 강림…….”
기원은 그게 임꺽정이 불러낸 2차 강림자임을 알 수 있었다.
쿠웅!
“내가 좀 늦었군.”
거대한 창을 바닥에 찍으며 나타난 것은 여포 봉선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도 주변으로 2차 강림자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기원의 뒤쪽에서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것들은 그가 끌고 온 마족병들이 뱉어낸 비명이었다.
“나는 원래 살길을 잘 찾아내는 편이라네. 그게 내 살길이 아니어도 말이네.”
김경징까지도 2차강림자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하, 어이없는 새끼들…….”
기원이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강림자들의 주변으로 모습을 드러낸 소환자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이제야 만나는구나! 오기원.”
광호가 이를 갈며 피를 듬뿍 뒤집어쓴 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옆으로 대원길드장인 구도원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니 강림자가 정중부라는 게 좀 이상하지 않냐? 을사오적이 딱 맞는데 말이지.”
그때 장웨이까지 나타나 염장을 질렀다.
“자라 새끼. 그따위니까 강림자가 떠나가지.”
“…….”
오기원의 강림자인 정중부 역시 2차 강림을 불러내었다.
다만 그렇게 불러낸 2차강림은 그를 도운 것이 아니라 마족들을 막으며 산화해 나갔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기원의 입가가 비틀려졌다.
“큭, 뭐라도 된 줄 아는가 보지?”
기원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법 당당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나타났지만, 그들의 몰골이 하나같이 정상은 아니었다.
몸에 걸친 마갑주들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었고, 손으로 잡아 뜯으면 다 벗겨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런데도 그나마 그게 아직은 제 역할을 하는지 악착같이 걸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래도 좋아.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흔한 소리도 있잖아?”
“적어도 니 건 아니야.”
구도원이 냉소 섞인 말을 던지자 기원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