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영 거슬리는 것 하나
“갑자기 이게 무슨!”
심지어 총탄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 쏟아지자 순간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 와중에 차량들은 방향을 틀어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차차창!
“커억!”
방패막이를 자처했던 차량의 차장이 깨어지며 창문 안쪽으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와중에 차량에 올라 있던 이들이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퉁퉁퉁퉁!
비록 대마물 전용탄이지만, 지금은 이것이라도 쏘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대 마물용 탄도 두터운 가죽을 뚫기 위해 충분한 살상력을 가진다지만, 그건 관통력에 한해서였다.
콰콰쾅!
반면 화약의 장점은 바로 폭발과 파편의 비산이다.
“빌어먹을 대원길드와 거기 붙어먹은 놈들이야!”
누군가가 상대방을 특정해서 외쳤다. 아마도 그들이 맞을 것이다.
대원길드가 저쪽으로 넘어가면서 거기에 우호적인 북한군 출신 퇴역군인들이 고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화약이 가져오는 원초적인 공포가 달랐다. 화약이 가져온 혼란은 위기를 가져왔다.
그 사이를 뚫고 마족병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맞이하러 나선 것은 강림자와 마갑주병들이었다.
콰쾅!
병장기들이 중간에서 맞닥트려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왔다.
“으아아아!”
마갑주병이 각자 익숙한 무기들을 휘둘렀다.
일부는 검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단창이나 도끼류였다.
검이란 병기 자체가 쉽게 익숙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창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장된 총검술에 익숙한 이들은 대체제로 단창을 집었던 것이다.
거기에 구형야삽을 닮은 도끼도 꽤 많이 택하는 무기였다.
그냥 도끼와 달리 변형된 형태이기에 묵직함보다는 오히려 날렵함을 가진 무기였다.
월남전 때 야삽을 날려서 헬기 꼬리 로터에 맞췄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긴 했지만, 의외로 그 효용성이 있는게 야삽이었다.
최소 구형야삽을 휘두르며 가지치기 안 해본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빠르게 익숙해지기에는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콰작! 콱!
“크윽!”
몸통에 병장기가 날아와 찍히는 충격에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흘러나왔지만, 절대 물러섬은 없었다.
아군도 적군도. 그 와중에 강림자들 역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능력이 개화되고 했다지만 적들은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총화기로 대변되는 병기들이 발달된 이곳과 달리 마법과 창칼을 이용한 전투가 정석인 마족병들이었다.
그들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잡아!”
그 사이로 오기원도 뛰어들었다.
마켈그로이언의 선택을 받으며 그 역시 신체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최소한 중급마족의 능력은 되었던 것이다.
“쏴! 신경쓰지 말고 갈겨!”
뒤쪽에서 화약병기를 쏘아대는 군인들은 어떻게든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오기원을 따르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지구의 배신자였다는 것에 비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독기를 품은 이들이었다.
짧지만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에 자유를 만끽해 보기도 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통일이라고는 하지만, 대침식 이후 그들에게는 또다른 현실이 와 닿았다.
빠르게 안정을 찾은 남쪽과는 달리 북쪽의 정상화는 더뎠던 것이다.
그 와중에 북한이었다면 가질 수 없는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주의 계급 사회를 벗어나니, 이젠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맞이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세상의 배신자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신의 가족이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회.
그렇기에 더욱 독기를 품고 같은 동족에게 다시 총부리를 겨눌 수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것이 유탄발사기를 거치한 차량을 날려버렸다.
“뭐야!”
한방에 차량이 날아갔다.
“저, 전차가 남아있어!”
콰쾅! 쾅!
연달아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상대방의 잔류 전차들이 대전차용 날탄을 날리듯 조준사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화약의 폭발력과는 무관하게 무시무시한 운동에너지를 가졌다.
“도, 도와줘!”
콰쾅!
또 한 대의 차량이 훌렁 뒤집어졌다. 다급해진 대원길드 소속 군인들은 주변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전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최소한의 방어마법이라도 부탁하려고 말을 재차 이었다.
“도, 도와…….”
-스스로를 증명해라. 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중급 마족 하나가 경멸의 눈초리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 시선에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간 숱하게 보았던 시선.
그 순간 그들의 뇌리에 든 생각은 비슷했다.
‘과연 우리의 결정은 옳았는가…….’
그 순간 그들의 주변이 화끈해지며 세상이 뒤집혔다.
콰콰콰쾅!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지자 오기원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뭐, 뭐야?”
커다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하늘에 펼쳐진 방어막 위로 폭발이 이어져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그와 동시에 하늘을 가르는 비행음이 뒤늦게 들려왔다.
“빌어먹을 공군이 아직 남아있었어?”
그것도 지금까지 전투에 투입된 공군이 아니고 제대로된 공군이었다.
실제로 군에서는 첨단장비로 구성된 공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물을 상대하기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대마물용 병기를 사출할 수 있는 개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작전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의미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개전이 시작된 후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경비행기를 개조하거나 훈련기를 개조한 것들이 상당수였다.
그렇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공습을 맞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상공격을 감행하고 이탈하는 공군을 향해 마족들의 비행체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일부 전투기는 이미 마법에 당했는지 추력을 잃고 떨어지기도 했고 허공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짧은 폭격만으로도 방금 전까지 화력을 쏟아붓던 대원길드 차원의 병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놀람은 잠시 오기원은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시껍했네.”
멀어져가는 공군을 바라보며 오기원은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뒤쪽의 희생은 별 신경 안 쓰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소모품에 가까웠다.
차후 식민지가 될 이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끌어들였던 잔존병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정도 숫자는 언제든 채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파파파팡!
그때 그의 앞에서 보랏빛을 띤 방어막이 펼쳐지며 그 위를 두드리는 것이 있었다.
그의 주변을 지키는 마족 마법사가 펼친 것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가 시선을 옮기자 차량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미친!”
판도라 맴버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과 함께 있는 군인들이 이쪽을 향해 대 마물용탄을 쏘아 낸 것이 분명했다.
“아주 죽고싶을 정도로 만들어 주지.”
기원이 이를 빠득 갈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을지부루가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앞에선 크로드이언과 크리팔이 마법과 도끼를 휘두르며 맞이하고 있었다.
간간히 천유화와 묵갑귀마대가 끼어들어 크리팔을 견재했다.
거기에 카르탈마니어가 크리팔을 집요하게 노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크로드이언과 크리팔이 이끌던 최상급 마족들 역시 이 난장판에 끼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천유화와 묵갑귀마대원들은 뒤로 밀려나며 각 군주들의 군단을 힘겹게 대응해 나갔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건만 오로지 부루의 주변에는 수많은 마족들만이 남았다.
콰콰콰콱!
바닥에서 뾰족한 돌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자 부루는 옆에서 덤벼들던 마족병을 바닥에 깔았다.
퍼퍼퍼퍽!
꽤 거구인 마족인 덕에 훌륭한 발판이 되었다. 그 사이에 크로드이언이 도끼를 날리자 부루가 몸을 띄워 도끼를 밟고 날았다.
대부를 머리위로 세운 그가 떨어져 내리며 크로드이언의 머리통을 쪼갤 듯이 떨어져 내렸다.
부와아악!
퍼어엉!
“옌장!”
하지만 폭음과 함께 부루의 몸뚱이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런 그를 향해 갖가지 마법들이 뒤따르며 쏟아졌다.
퍼퍼퍼펑! 퍼펑!
그 주변에 있던 마족병들의 몸뚱이가 찢겨질 정도로 강력한 마법들이 집중되었다.
그때 그의 주변으로 둥그스름한 마법 방어벽이 생성되었다가 깨지기를 반복했다.
-크으윽!
“너…….”
부루가 고개를 들어 보니 헤게루이안이 온힘을 다해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다.
-구, 군주이시여…….
헤게루이안이 부루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잘 버티라우.”
부루는 그런 헤게루이안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그대로 뛰쳐나갔다.
그런 부루를 향해 마법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커헉!
그제야 집중 공격에서 벗어난 헤게루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를 맛있는 먹잇감을 본 것마냥 마족병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신분 상승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내꺼다!
-내꺼야!
그들 뿐 아니라 마법사들의 마법도 부루가 아닌 그를 향했다.
-이런…….
순간적으로 마력을 쏟아내느라 탈력감을 느끼고 있던 헤게루이안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건 어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퍼퍼퍼펑!
그의 앞에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이어서 달려들던 마족들의 몸뚱이들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어디 잡졸들이 감히!
-카르탈마니어님?
-뭣 하느냐? 마룡족 출신의 얼굴에 똥칠을 할 셈이냐?
카르탈마니어가 피를 뒤집어 쓴 채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를 보며 헤게루이안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잠시 고갈되었던 마력의 공백을 다스린 헤게루이안이 카르탈마니어를 보조하듯 뒤에서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네놈이 없어지면 군주님을 누가 말려주냐.
카르탈마니어가 가끔 헛소릴 하다가 부루에게 맞을 때면 대신 변명하며 구해주던 이가 바로 헤게루이안이었다.
그의 말에 헤게루이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저 아니면 누가 말리겠습니까.
헤게루이안의 답변에 웃음을 머금은 카르탈마니어가 이를 악물었다.
-군주님을 쫓아야 한다.
-예.
홀로 대군을 뚫고 나아가고 있는 부루의 뒷모습을 보며 헤게루이안 역시 이를 악물었다.
그때 카르탈마니어가 억눌린 목소리를 흘렸다.
-군주를 잃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니까.
그 말에 헤게루이안이 온몸의 마력을 끌어 모았다.
-두 번은 없어야지요.
턱을 괴고 있는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피식 피식 웃음을 흘 리고 있었다.
-제법 보는 재미가 있어.
두 군주를 상대하면서 조금씩이지만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오는 을지부루를 보며 뭐가 재미있는지 웃음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악착같은 모습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그 하나를 쩔쩔매는 두 군주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그러다가도 그의 표정이 영 불편하게 찌푸려졌다.
바닥에서 물결처럼 찰랑이는 푸른 운무가 점점 짙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리는 표정이었다.
-쯧. 거치적 거린다고나 해야 할까?
기오르그는 다 좋은데 그게 영 거슬리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