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66화 (266/305)

제266화 때론 삼류영화처럼

-하하하하핫!

게으하이오 폰 기오르그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즐거웠다.

상대방의 반응이 신선하기도 했다. 처음 보는 타입이다.

-재미있는 비유? 그래. 비유라고 해야겠군. 큰 수확의 기쁨을 망가진 정신에 대입을 하는 게 참 재미있군.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보이는 모습은 다 비슷했다.

분노하거나, 절망하거나.

혹은 없던 용기를 쥐어짜며 그럴싸한 말을 내뱉으며 사기를 끌어올려 보거나.

물론 대부분은 그저 말도 못하고 떠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상대는 마치 왜 이제 왔느냐는 듯 욕을 섞으며 타박하는 모습이었다.

늦은 게 미안할 정도다.

당당함이라면 당당함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기오르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 듯 을지부루는 역시나 이전 다른 존재들이 보여 주지 않는 모습을 이어나갔다.

“재밌으라 한 건 아닌데. 내래 실수 한 거간?”

을지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부분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예외라면 하나.

“뭐 하는 거간?”

“이게 될라나 모르겠네. 포탄을 하도 쏴 대서 뭐가 불안정하다고 했는데 이엠핀지 뭔지 때문에…….”

고빈은 허리춤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그것을 본 기오르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 차렸다.

오기원이 상대방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그에게 몇 번 보여 주었던 이쪽의 물건이었다.

주로 영상을 보여 주었던 기물이다. 전투에는 별 의미 없지만, 꽤 재미있는 물건이다.

스마트폰이 빈의 손에 들려 있었다.

“헐? 뜨네? 형님들 저 아직 살아 있어요!”

스마트폰을 자신에게 비추며 손을 흔드는 빈의 모습에 기오르그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역시 신선했다.

그때 빈이 그를 향해 스마트폰을 내밀며 입꼬릴 올리고는 말을 뱉었다.

“뭐해? 웃어 새꺄.”

역시 재미있다. 다만 지금 바로 밟아 버릴까 고민도 들었다.

그래도 웃었다.

이런 고민조차 지금은 즐거웠다. 오랜 기간 이런 유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세상이 망하네 뭐하네 하는 상황에서 다들 웅크리고 있는 지금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기나 전화 등 사회근간이 무너진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종말을 떠들고는 있지만, 어떤 이들은 기적을 기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어차피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그저 평소와 같이 익숙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때였다.

알람이 온 것은.

“어? 이겼나?”

알람의 주인공은 바로 Bj비니의 방송이었다.

처음엔 골때리는 소환자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말했다.

그의 방송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다큐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송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고빈의 일기였고, 이 시대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권력의 힘이 닿지 않는 날것의 방송이었다.

그래서인가 꽤 많은 사람들이 빈의 방송을 기다렸다.

어쩌면 빈의 방송이 끊어지는 것이 더 불안해서일지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강림자를 소환해 낸 소환자가 바로 고빈이었으니까.

그의 방송이 끊어졌다는 것은 아마도 죽음일 것이고, 그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우군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의 방송이 연결되었다.

그러자 홀린 듯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접속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둘 째 치고 마족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방송을 켰기 때문이었다.

댓글들이 미친 듯이 빠르게 올라갔다.

[……살아있어요!]

-방구석 강림자 : 헐?

-뽀둥이 : 저거 레알?

-임동원 : 빈하! 살아 있었나 보네?

달리는 아이디도 다양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접속자들 탓인지 본명을 쓰는 이도 있었고, 철 지난 닉을 쓰는 이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뭐해? 웃어 새꺄.]

-냥제 : 끝난 거임? 이긴 거?

-벽지화 : 눈깔 삐셨나? 당장 칼부림 할 거 같은데?

-빤스하우스 : 휴전? 휴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댓글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댓글들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전쟁이 끝난 거냐, 혹은 휴전이냐, 이겼냐 등등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질문이 올라오는 가운데 고빈의 말 한마디에 채팅창이 얼어 버렸다.

[쟤가 최종보스래요.]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채팅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아, 인상 더럽고 인성 더럽고, 뭐 그래요. 웃으랜다고, 쪼개는 거 보면 우린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저쪽은 아직 장난인가 보네요.]

“이거 비니?”

“쉿.”

방공호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영상을 틀거나 혹은 틀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모여들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오긴 했는데 엄청 죽었어요.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빈의 모습을 보며 다들 목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일부 모자이크를 하며 속보상황들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현장 취재를 나간 취재원들이 바뀌기도 했다.

데스크에선 취재원의 생사가 밝혀지는 대로 이어가겠다 하며 침통한 얼굴로 다른 인력으로 이어 나갔다.

꽤 후방에서 취재를 하는 이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뿐 아니라 이 방공호 안에도 전화를 받은 이들이 있었다.

살아 돌아가려 했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고.

유언이었다.

우습게도 군대에서도 훈련 때 전화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데 전투 중에는 허용했단다.

어쩌면 저렇게 최후의 순간 유언이라도 남길 수 있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일 수도 있었다.

또 스스로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허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마약성 진통재를 다발로 들고 다니며 전투를 벌이는 이들도 허다한 마당에 뭐가 문젠가 싶기도 했다.

그때 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똑똑히 기억하시라고 영상 띄운 겁니다. 저 새끼에요. 이 세상 말아 처먹겠다고 온 새끼가. 혹시나 제가 다시 방송 못 키게 될까 봐 보여 드립니다.]

유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뭐 열 받는 분 있으면 저 새끼 지나갈 때 우리 선조님들 마냥 도시락 폭탄 던지셔도 좋고요, 또 똥은 만지는 게 아니고 피하는 거니까 알아서 미리 피하셔도 좋고요. 그냥…….]

빈이 방송에서 잠시 입을 오므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잘 정리되지 않는 표정.

하지만, 이내 웃었다.

[이 세상 이 따우로 만든 놈이 누군지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켰습니다. 형님들. 후원 안 받으니까 하지 마시고…….]

빈이 천천히 뒤돌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 음. 이거 다시 방송하면 아마 이거 박제방송 될 거 같긴 한데 뭐,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만 방종 합니다.]

뒤를 돌아봤던 빈이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남겼다.

[다들 몸조리 잘하시고 살아서 보면 좋겠네요. 이제 빡시게 싸우러 갑니다. 응원이라도 좀 해 주시던가요. 그럼 이만.]

뭔가 채팅이 더 올라오기도 전에 방송이 끊어졌다.

침묵사이로 점점 웅성임이 커졌다. 불안 불신 그리고 슬픔이 뒤범벅되었다.

그때 중년 아저씨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대애애한 민~국!”

축구장에서나 할 법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박수를 친다.

짝짝~ 짝! 짝! 짝!

흥에 겨웠던 저 응원이 이리 썰렁할 수가 있나 싶었다. 아니 그것을 떠나 이 상황에 저러고 싶을까 하는 표정으로 몇몇 사람들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친 거 아니냐고 이 상황에서 그러고 싶냐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중년 아저씨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다리 하나가 없어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마도 마물과 싸우다 그리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침이 튀며 다시 외쳤다.

“대애애한 민~구욱!”

쪽팔리다고 할 만한 모습인데 이번에는 박수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조건반사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불어난 숫자가 박수를 쳤다.

짝짝짝! 짝짝!

외침은 합창이 되었다.

모두가 외쳤다.

국민 모두가 다 아는 그 응원소리를 말이다.

구슬프고 악에 받힌 목소리로.

마치 조금 전 고빈이 있었다는 그곳까지 들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치 삼류 영화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장면처럼 모두가 외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지금은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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