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마족의 종특은?
을지부루의 앞에 무릎 꿇은 최상급 마족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꼭 실력 없는 놈들이 말이 되니 마니하며 남 탓을 하디.”
부루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마족의 머리를 날림으로써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때 뭔가 익숙한 기운에 부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디?”
뭔가 지렁이 비슷한 것이 하늘에서 흩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흠.”
고개를 갸웃 거린 부루가 다시 앞을 돌아보려다가 다시 후방을 살폈다.
“이건 또 뭐이야?”
주변에 푸른 안개같은 기운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고, 일부는 마치 홀로그램이라 부르는 문명의 이기마냥 형태를 제법 갖춘 것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아군이라는 점이었다.
“이거이 2차 강림이니 뭐니 하는 거간?”
부루의 질문에 전투가 마무리되고야 접근해온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별의 찌꺼기라고도 합니다. 별이 간직한 기운 중에서 남은 것을 쥐어짜는 것을 의미하지요.
“뭔 놈의 이름이 파편이니 찌꺼기니 하는 거이네?”
-그…….
부루의 말에 마법사는 할 말이 없었다.
항상 침략자 입장이었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다 그 꼴이었다.
물론 다른 이름들도 있었을 것이다.
마족들이 아닌 이런 현상을 직접 불러온 이들이 붙인 이름 말이다.
예를 들면 강림자라든지.
하지만, 그 이름을 붙인 곳들 중에서 존재하는 곳들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 그 이름은 항상 승자의 위치에 있던 마족들이 붙인 것이 통용되었을 뿐이다.
-강림자처럼 존재하기에는 미미한 힘들이 일제히 파장처럼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는 저렇게 2차 강림으로 현신하기도 하고, 일부는 저렇게 일체화되기도 합니다.
“응?”
일체화란 말에 다시 보니 일부 군인들의 몸에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힘이 넘쳐나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거이 단체로 귀신들린 거간?”
-그, 그런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마법사가 당황하며 대답하자 부루는 대부를 어깨에 들춰 메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도움이 되면 그만이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얼마나 되디? 꽤 잡아 죽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방금 갓 수확해 놓은 최상급 마족의 머리통을 발로 툭 하니 걷어찼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 몸통만 한 머리통이 혀를 길게 내민 채 데구르르 굴렀다.
-그, 군주마다 거느리는 최상급 마족의 수는 수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 수가 백은 넘지 않습니다.
“흐음. 기럼 나머지 다 때려잡아야 대가리가 튀어나오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황을 살폈다. 다행이었다.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찌꺼기니 뭐니 하지만, 그 효과는 충분했다.
반면 마법사는 부루의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죽어나간 최상급 마족의 숫자만 해도 마계에 존재하는 이들 중 사분지 일이 넘어갈 것입니다.
그때 헤게루이안이 한쪽에서 날아 내리며 부루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시켜주는 대답을 했다.
“너 제법 힘이 쎄졌구나야!”
-군주의 은총 덕이옵니다.
최상급 마족을 꺾고 그 힘을 흡수해 제대로 된 최상급 마족이 되었다.
그 변화를 부루는 금방 알아차린 것이고 말이다.
-군주니이이임!
쾅쾅쾅쾅!
그때 한쪽에서 커다란 덩치의 카르탈마니어가 땅을 울려가며 요란하게 달려왔다.
그 역시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물론, 헤게루이안처럼 격을 넘을 정도로 기운이 뛰어오른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강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헤게루이안이야 자신보다 상위의 격을 상대해서 이겼기에 그 상승의 범위가 컸지만, 카르탈마니어는 비슷한 격을 상대했기에 힘의 상승은 상대적으로 적게 오른 것이다.
물론 이렇게 힘을 키우다 보면 최상급 마족도 군주에게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대부의 군주시여!
“응?”
대부의 군주란 말에 부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셨습니까? 군주의 이름이 옵니다.
“그건 또 뭐이간?”
-군주의 이름을 찾는 순간, 그 수하들은 군주가 가진 힘을 형상화 할 수 있게 되옵니다. 그 이름이 큰 도끼를 상징하는 것이 되셨고 말입니다.
그 말에 부루가 자신의 대부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며 주변을 바라보자 자신이 이끄는 마족들의 무기의 상당수가 도끼 형상을 띠고 있었다.
“지략이나 전략과 관련된 이명은 안 붙었구만.”
-군주의 주력 병기가 이명이 되는 것도 마계 역사에서 처음이옵니다.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부루가 환하게 웃었다.
“기럼 내래 최초구나야!”
-그, 그러하옵니다. 카르탈마니어가 좋아하는 부루를 보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 고빈이 슬슬 다가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헤게루이안 아저씨. 최초인 건 이유가 있죠?”
-그, 그게 저도 잘…….
헤게루이안은 애써 대답을 피했다.
보통은 본질이나 가진 능력이 진명으로 나온다.
마수의 군주 혹은 마룡의 군주 등이 본질을 따른 진명이다.
그리고 가진 능력이 진명으로 나오는 경우가 예전 역사에 있던 파괴의 군주니 하는 것 혹은 지금 마켈그로이언의 회유와 교언의 군주 같은 경우다.
그 두 가지를 가진 경우도 있다.
바로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사자의 군주라는 이명.
죽음을 바탕으로 한 존재의 진명이자 수단이기도 한 진명이 바로 사자의 군주였다.
그렇기에 강력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부루는 그 둘 중 하나도 아니었다.
단순히 쓰는 무기가 진명이 되었다.
말 그대로 단순했다.
그렇기에 이걸 좋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죽으나 사나 도끼만 생각하셔서 진명이 이렇게 됐다는 말은 어떻게 하나…….’
헤게루이안은 복잡한 심정을 애써 숨기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기런데 나는 2차 강림이 왜 안 나오는 거간? 다들 뭐 하나라도 달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부루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생각이 좀 많은 표정이었다.
사실 별의 파편이라 불리는 존재가 군주가 된 것도 처음이었다.
보통 상식선에서는 별의 파편을 활용해 군주를 꺾는다면 그 주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
“왜 날 봐요? 뭐 이상해요?”
하지만, 빈은 아니었다.
아니 수동적이어야 할 파편에게 휘둘리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물론 이 경우는 빈이 비정상인지 부루가 비정상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때 헤게루이안의 시선이 잠시 빈을 향했던 탓인지, 부루가 그를 향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딱 보니까네, 비니 네놈이 비리비리 해서 안 되는 거구만 기래!”
“왜 또 내 탓이에요!”
“이걸 어케 잡아 굴리디?”
“아씨! 그만 좀요! 제가 무슨 굴렁쇠에요! 맨날 굴리게!”
언제나 그렇듯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보며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가다간 주먹질도 나을 것 같았다.
물론 빈의 참극으로 끝나겠지만,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헤게루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것 보다는 이미 권속을 거느리신 군주의 신분이시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 되옵니다.
“응? 이 모리지 탓이 아이간?”
“내가 아저씨보단 더 똑똑…….”
떡!
기어이 부루의 주먹이 빈의 면상에 틀어박히며 떡메로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악! 쌍코피!”
“어른 이야기 하는데 버릇없이 끼어들디 말라.”
-사실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빈 군의 탓은 아닙니다. 아마도 조금 전 말씀드린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쉽구만 기래. 얼굴이나 한번 보는가 했더니만.”
-소환의 대상은 강력한 연이 닿은 모든 존재입니다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찌꺼기 운운하는 것도 망하기 직전에 마치 마지막 몸부림처럼 간혹 벌어지는 현상이니까요.
“기래. 어쨌든 우리는 상황이 좋디? 기런 거디?”
-그러하옵니다. 스스로 전장에 나서서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내었으니 어쩌면 이게 진정한 쓰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사방에서 몰려온 검은 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일기예보에서 태풍의 눈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카지직! 카직! 카지지직!
동시에 그 중심부에서 보랏빛을 띠는 번개가 여기저기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사방이 번쩍이고 난 뒤에 천둥 소리가 뒤를 따랐다.
“흐음.”
하늘을 바라보며 부루가 어깨에 둘러맸던 대부를 천천히 내려서 고쳐 잡았다.
“이제야 얼굴을 보는구만.”
-그, 그런 듯하옵니다. 조금 전의 결투로 최상급 마족으로는 군 주님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아, 알았을 테니까요.
헤게루이안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늘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에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긴장 풀라우. 원래 보고자 한 낯짝 아니간?”
부루가 주변의 얼어붙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농을 던졌다.
그럼에도 다들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어느새 전투는 멈추어 있었다.
이미 부루의 주변에는 마족병이 싹 사라져 있었다.
본능인 것이다.
군주에 대한 욕심은 접은 지 오래다.
이미 그가 제대로 된 군주라는 것을 몇몇 최상급 마족들의 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당에 어중이떠중이 같은 마족병들이 그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하늘이 어두워지며 마족병들은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 다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치 왕을 영접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부루와 그가 이끄는 병력의 뒤쪽으로 모두 천천히 대열을 다시 갖추고 있었다.
한번 무너졌던 대열이지만, 다들 알아서 각자 모여서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강림자들이 가장 앞 열에 자리했고, 그 뒤에 소환자들이 섞이듯 자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절반이 조금 넘게 남은 마갑주 부대원들이 백전 노장인 기동대원과 부루의 권속인 마족들이나 마수들과 어우러져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아직까지 굴러다니는 전차나 경운기 그리고 바퀴달린 모든 것이 군인들과 함께 자리했다.
후방에 남아 있던 이들도 하나 둘씩 합류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다들 직감한 것이다.
최종보스가 드디어 이 자리에 도착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때 아군 대열 사이로 차준우 사령관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살아 있었구만 기래.”
“그러게 말입니다.”
“왜 온 거간?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아 보이는데 말이디.”
“뭐, 낯짝이나 한번 보려고 왔습니다. 적어도 이 뒤에 있는 군인들을 대표하는 건 저잖습니까.”
“하긴. 자격 있디.”
그때 하늘에서 섬광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자자자자!
하늘에서 보랏빛의 기둥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콰콰콰콰!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하늘에서 땅으로 연결된 듯 했다.
그 빛이 이내 사라지고 그 안에서 드디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직접 보니 반갑군.
사자의 대군주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그들을 향해 첫 인사 말을 던졌다.
담담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웃이 방문이라도 한 듯.
누가 보면 마치 친하고 싶어서 왔다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착각할 법했다.
“날래 오디. 여태 아 새끼들 대가리 떨어질 때까지 뭐한 거간?”
기오르그의 인사말에 을지부루가 불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기오르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름 수하들이 전리품을 욕심 내서. 기회를 주었던 것뿐. 뭐,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는 게 증명되었지만 말이야.
별것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다들 이를 악물었다.
마치 이 참상들이 그저 논공행상의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오르그를 향해 부루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거 아새끼. 지랄도 종특인가 보구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