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64화 (264/305)

제264화 전장으로

* * *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뿐 아니라 함께 영상을 지켜보던 마켈그로이언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의외인가?

-그렇긴 합니다.

-다,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쪽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이 좁은 땅덩이에서 전쟁이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

기오르그의 시선이 마켈그로이언의 수족인 오기원을 향했다.

“그, 그것이…….”

누구나 그렇듯 살면서 딱히 국사 공부를 집중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상식선에서 설명을 해 나갔다.

가까이는 한국전쟁과 멀게는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세계대전 규모의 수당 전쟁과 왜란 등…….

무수히 많은 피가 흘렀던 역사.

그럼에도 피지배를 인정치 않았던 역사를 조심스럽게 설명해 나갔다.

-그렇군. 그럼 이게 이해가 가지. 하지만,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게 신기하군.

기오르그의 중얼거림에 마켈그로이언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쫓기고 쫓겨 악에 받친 상황에서나 벌어지던 상황이라 이전의 경우는 미미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이건 동조하는 에너지원이 있어야만 발생하는 일이니까요.

기오르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몰렸을때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던 곳들이 태반이긴 했다.

삶을 구걸하거나 혹은 모든 것을 포기한 종족들이 살려고 발악 하는 경우가 특히 그랬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가? 정말? 푸하하하!

기오르그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을 들으며 오기원은 당연히 그러니까 덤빈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의견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다만 마계의 역사를 비추어 봤을 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반신의 존재가 남아있는 곳의 경우 저항이 강력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반신의 존재들이나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쓰러지면서 말라버린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도 용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이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재미있더라니.

-허나 이대로라면 추후 다른 차원의 침식을 이어나가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황을 보아하니 식민화 한다 해서 얼마나 보탬이 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이런 놈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었다 이거지? 하긴 지금까지 버티는 것만 해도 꽤 재미있어 보이기는 했지.

기오르그의 중얼거림에 오기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종특이긴 한데…… 꼭 틀린 생각도 아니지.’

지구의 역사는 전쟁과 저항의 역사이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태동도 그렇고, 현대 물질화된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다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기에 오기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군주시여. 허나 그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옵니다. 이곳이 무너지면 저들도 더는 버틸 힘이 없을 것이옵니다. 이곳을 정리하시면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번 전쟁에도 그러한 나라들이 지원을 해왔기에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오기원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나설 곳이 아닌데 나섰다며 책망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재미있구나.

기오르그의 중얼거림에 마켈그로이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원래 배반을 한 자들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보다 자신이 몸담았던 곳을 멸망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그래. 그래서 쓰임이 있는 거지.

그들의 대화에 오기원은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급급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곳이 없는 그다.

-어찌 되었든 더는 불필요한 소모는 피하는 게 좋겠군. 또 흥이 났을 때 즐겨야 하지 않겠나?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으며 대답했다.

-즐기실 거리가 되었다니 다행이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오기원의 마음 한 구석에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멀어졌다.

얼굴을 숨겼던 오기원의 입가에 억누르지 못한 미소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역사가 증명하는 나라를 아니 세상을 팔아먹은 배반자의 미소다.

* * *

차준우 사령관은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았다.

그의 손길을 따라 푸른 기운이 이리저리 따라붙었다. 주먹을 쥐어보니 힘이 넘치는게 느껴졌다.

조금 전만 해도 온몸이 무거워 지고 다리가 끌릴 정도였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거…….”

이미 설명은 들었지만 얼떨떨할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악전고투하던 군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내달리고 있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한쪽에 머리를 박고 벌벌 떠는 이들은 변함이 없었다.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비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부상자들이 누워있던 곳에서도 군인들이 벌떡 벌떡 일어서 자신의 무기 집어들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누워있는 이도 존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불안한 동공.

“만화 같지 않습니까?”

그의 곁에서 열심히 탄을 나르던 일병이 말을 걸어왔다.

평시라면 일병이 스스로 군 생활 꼬이게 만드는 짤이 만들어질 법한 모습이었다.

별이 네 개인 장성에게 히죽 웃으며 가벼이 걸어오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군. 만화 같군.”

하지만, 그걸 가지고 제지하는 이도 없고 이상하다 여기는 이도 없었다.

계급도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비슷한 표정이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던 이들. 전우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들이었으니까.

“이러다가 뒤에 남는 짤 생길 수 있습니다. 가시지요?”

그때 주변에서 함께 싸우던 이들이 엎어진 차량에서 여분의 무기를 꺼내들며 다가왔다.

“솔직히 이제 별로 없긴 합니다.”

카르르르!

그 때 주변으로 아직까지 살아남은 전차가 있는지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있었다.

“타고 가시디 말임다!”

“저게 아직 남아있었네?”

우습게도 그들의 앞에 당도한 전차는 천마호라고도 불리는 천리마 전차였다.

통일 이후에도 남아있었던 전차 중 일부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최신예전차들이 먼저 나선 덕에 아직까지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한국군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전차장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북한 어투였다.

그의 말에 포탑 주변으로 차 사령관이 올라탔다. 주변의 군인들도 포탑주변에 빼곡이 올라탔다.

“옛날 한국전쟁때 사진 보면 이런 사진 있던데.”

누군가가 피식거리며 말을 뱉자 북한군 출신 전차장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기땐 우리끼리 총부릴 겨누디 않았슴까? 지금은 그림 예쁘고 좋슴다.”

“흐흐, 맞슴다! 동무!”

“푸하하하!”

그들 말고도 후방에서 밀려오는 살아남은 차량에 다들 탑승하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출발 명령 내리시디요!”

차장의 말에 차 사령관이 피식 웃으며 외쳤다.

“조지러 갑시다!”

“가즈아!”

“와아아!”

그들의 외침이 마치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차량에 올라탄 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대표님 달려!”

“니들 정말…….”

트럭을 모는 전창걸 대표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형님 팍팍 밟으쇼!”

조수석에선 트럭 뒤에 탄 망나니들을 말리기는커녕 동조하고 있는 육의찬 무술감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는 최초 종군 아이돌이 될 거야아!”

제이가 함성을 내지르며 손도끼를 들어올렸다.

“언니! 조심해! 막 휘두르지 마!”

그 옆에서 레이니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너, 내 동료가 되라!”

“언제 적 대사냐고 그거!”

“이 차. 블랙펄호라고 하면 어떨까?”

송가은 작가마저 정신나간 소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표정은 진지했다.

마족들이 몰려들고 죽음에서 몸을 일으킨 언데드들이 주변을 조여오자 하나둘씩 무기를 들었다.

더는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렵지 않으면 그게 이상했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온 이상 더는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기를 들고 나섰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판도라! 판도라! 판도라!”

주변에서 함께 달리는 군인들이 마치 공연장에라도 온 것 마냥 연호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지휘부가 반쯤 무너진 상황에서 그녀들을 중심으로 군인들이 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호하기 위하여 몰렸던 그들이 이제는 함께 싸우기 시작한 그녀들을 보며 사기가 치솟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달리는 주변으로는 그 푸른 기운이 유독 짙었다.

“전쟁 끝나면 내가 우리 아래로 다 집합시켜서 콘서트 초대한다! 다들 다치지 말고 잘 싸우자! 알았냐!”

제이의 외침에 군인들과 예비군들이 입을 모았다.

“와아아아!”

“언니 제발좀 주책부리지마아아!”

레이니가 벌게진 얼굴로 제이를 말렸다. 하지만 더한 함성이 내질러졌다.

고개를 돌리자 세인이 언제 일어섰는지 흔들리는 트럭 난간을 잡고 섹시 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이니가 한숨을 내쉬더니 난간을 한손으로 단단히 쥐고 따라 추기 시작했다.

“에해라!”

와아아아아!

그들의 차량주변으로 함성이 끊어지지 않았다.

* * *

반파된 차량에서 끝까지 남아 드론을 운용하던 운용병들이 하나둘씩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드론 모두 소진 되었습니다.”

할 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일부는 군인이고 일부는 급히 투입된 대학생들이었다.

혹은 게임 좀 한다 하는 백수들도 있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꽤 섞여 있었다.

민간인들이 다수란 의미였다.

그때 한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가도 됩니까?”

“지금 말입니까?”

나가도 되냐는 질문에 지휘관이 살짝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은 전쟁중이다.

“더는 날릴 게 없는데 여기서 뭐하겠습니까. 이제부턴 실사판 서든이라도 해야죠.”

그러더니 옆에 형식적으로 분출받았던 총기를 들어올렸다.

“탄은 분출해 주실 거죠?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 말에 곁에 있던 운용병도 자신의 총기를 챙기며 일어섰다.

“아재네. 언제적 서든이에요? 지금은 치킨이 대센데.”

“오! 치킨!”

“역시 베그지. 나 에임 죽이는데.”

그렇게 하나 둘씩 일어서며 총기들을 집어들었다.

그때 한 남자가 시시덕 거리는 운용병의 어깨를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애들은 가라.”

“왜요? 우리도 훈련 다 받았는데.”

“그거랑 이거랑 같냐?”

가지 말라고 한 대상은 바로 십대 운용병이었다.

“막말로 먹은 밥은 형들보다 못해도 킬수는 내가 더 많을걸요?”

“그냥 말들 좀 들어라. 누가 애들 데리고 전쟁나가냐?”

인상 쓰며 대꾸하자 학생이 말했다.

“영화 안 봤어요? 학도병 있잖아요. 막말로 지금이 그때보다 더 한 거 아니에요? 뒤로 가면 산다는 보장은요?”

“오! 말 빨 좋아!”

그들의 외침에 간부가 한숨을 내쉬며 총을 집어 들었다.

“현장 지휘관의 명에 따르셔야 합니다. 그럼 다들 차량 앞에 집합 강요는 없습니다. 지원자만 갑니다.”

지휘관의 말에 다들 환호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일부 남아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탓을 하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

두려운 건 매한가지라는 것을. 굳이 강요할 이유 없다는 것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