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63화 (263/305)

제263화 이능의 발현

바닥에서부터 마치 연기처럼 피어올라온 푸른빛의 연무가 김경징의 쩍 벌어진 상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광호도 도원과 마찬가지로 이 현상을 지켜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벌어져 있던 상처에서 뿌려져 나오던 역소환의 징후인 빛무리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상처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일단 좋은 일이기는 했다.

역소환이 멈추고 오히려 상처가 회복되었으니까.

심지어 그들도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잘한 상처들이 아물고 또 물 먹은 솜처럼 무겁던 몸뚱이가 가벼워지는 기적을 맛봤으니까.

“일단 이거 좋은 거겠지?”

도원의 질문에 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그 푸른 기운이 일렁이더니 이번에는 마치 유령처럼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2차 강림?”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도원이었다.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가더니 일부는 점점 더 선명하게 변해갔다. 도원의 중얼거림에 확신을 준 것은 김경징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장군.”

“전생에 못다 한 칼부림 이제라도 해 보자꾸나.”

김경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부러졌던 그의 칼날도 다시 천천히 제 형태를 되찾아갔다.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몸뚱이에 거의 걸려 있다시피 하던 넝마 같던 갑주들도 어느새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내 말했지 않았소. 내 감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이런 빌어먹을!

거구의 최상급 마족이 눈에 화살 한 대를 맞고 짜증 섞인 외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 최상급 마족의 성질을 돋우듯 어디선가 날아온 것이 다시 머리통을 두드렸다.

따악!

마치 돌멩이를 던진 것같이 깔끔하게 울려오는 소리다.

“으하하하하!”

날아갔던 임꺽정이 호탕하게 웃으며 그 뒤로 수많은 2차 강림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 좌우로 선명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활을 든 산적과 돌멩이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산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쇠스랑 비슷한 것으로 무장한 모습의 흐릿한 이들.

보나 마나 산적일 것이다.

“뭔진 모르지만. 2라운드 시작이다!”

김경징과 함께 도원이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내달렸다.

그런 그들의 뒤로 푸른빛의 형태를 한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뭐야?

헤게루이안을 상대하던 최상급 마족 아나카파츠가 당황하며 몸을 틀었다.

갑자기 거대한 마수가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완벽하게 몸을 빼내진 못했다.

-우와아악!

콰자자작!

그의 몸뚱이 한쪽이 길게 찢어지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다가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대, 대체 뭐였지?

마수는 아니었다.

아나카파츠가 몸을 수복하기 위해 회복마법을 펼치며 흩어져 버린 그 괴수의 형상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후두두둑.

그때 흩어진 괴수의 형상에서 뿌려진 물방울이 마치 비처럼 흩어져 내렸다.

-히, 히익!

방금 있던 타격이 꽤 컸는지 단순한 물방울들이 쏟아져 내린 것들뿐임에도 화들짝 놀라며 휘청였다.

-물?

그냥 물이었다.

이내 자신이 꼴사나운 행동을 했다는 게 창피했는지 아나카파츠가 발끈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빌어먹을 네놈 한 수가 있었구나!

그러나 너무 오래 넋을 놓았던 탓일까, 고개를 돌린 순간 눈앞으로 다가온 암흑의 창에 그대로 얻어맞았다.

콰자작!

평소라면 몸에 두르고 있던 마력장을 뚫지 못했을 공격이었지만, 조금 전 몸을 수복하느라 옅어져 있었던 게 잘못이었나 보다.

-커어어!

암흑의 창이 미처 수복하지 못한 곳에 틀어박히고도 모자라 몸통을 꿰뚫었다.

-이, 이런 빌어먹…….

그때 아래의 잔해에서 솟구쳐 오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헤게루이안이었다.

-잘 가거라!

떨어져 내리는 아나카파츠와 솟구쳐 오르던 헤게루이안이 중간에서 만났다.

이어 헤게루이안의 한 손에 검보랏빛 마력이 무기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그 형태는 눈에 익숙한 것이었다. 마법사가 휘두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도끼.

콰자작!

헤게루이안이 형상화해낸 대부가 아나카파츠의 머리통을 그대로 갈랐다.

-비, 빌어먹…… 겨우 자격을 얻은 놈 따위에게…….

-우리 BJ 비니가 말하길 쪽팔리면 닥치라 했다.

서걱!

헤게루이안이 그대로 대부에 힘을 주자 아나카파츠의 몸뚱이는 그대로 양쪽으로 나뉘어 버렸다.

그렇게 두 조각이 된 아나카파츠가 떨어져 내리면서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운무가 헤게루이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쌓아왔던 마력의 근원이 승자에게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후우…….

헤게루이안은 넝마가 된 로브 자락을 마저 뜯어내며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통 푸르른 운무가 자욱했다.

-이런 건 처음이군. 누군가는 별의 찌꺼기라 했지만…….

보통 저것이 등장하게 되면 그 세상이 멸망했었다. 그래서 찌꺼기니, 마지막 발악이니라는 표현을 했다.

옹기종기 모여 최후를 기다리던 별의 주민들이 발악하다 보면 가끔이나마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

그래서 오히려 멸망의 징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헤게루이안은 그건 잘못된 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최후를 기다리는 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승부를 걸 줄 아는 독종들이었다.

-어쩌면 이게 진짜일 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저들은 별이 짜내는 마지막 힘을 처음으로 제대로 다룬 종족일 것이고.

헤게루이안은 온몸에 충만하게 퍼져나가는 힘을 느끼며, 이 전쟁 왠지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아 보았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군주인 을지루부가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마족들의 시체가 그의 주변에 즐비했다.

-그런데 이게 참…….

빙긋 웃던 헤게루이안은 자신의 손에 들린 대부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군주의 이명이 발현된 거 같긴 한데…….

마수의 군주를 이었다고만 했지, 그 본질을 증명하는 이름은 아직 발현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방금 그 특성이 발현된 모양이었다.

그게 그의 손에 들린 것이다.

-대부의 군주? 도끼의 군주? 쪼개는 군주? 뭘 해도 안 어울리시는군.

곤란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럼 방금 그건 무엇이었지?

이쪽 세상의 정보를 얻던 중 보았던 용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는 했다.

서양이 아닌 동양 쪽의 용.

그게 자신의 주변에서 형상화되어 솟구쳐 올라갈 때만 해도 마수의 군주니까 이명이 발현되며 나타난 이적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대체 그건…….

뭔가 이질적이지만, 강력했던 그 힘. 헤게루이안으로써는 정체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빠아악! 콰앙! 뿌악!

그때 지축을 흔드는 타격음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카르탈마니어님…….

타격음이 울리는 곳에는 카르탈마니어가 아직도 뇌가 필요 없는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뻐어어억!

카르탈마니어의 고개가 크게 돌아가며 휘청였다.

-크크크! 도마뱀 일족 주제에 오래 버티는구나!

사자의 군주의 권속이자 군단장이며 최상급 마족인 악셀레이온의 주먹에 카르탈마니어가 밀렸다.

‘무모한 놈.’

힘 하나는 최상급 마족 중에서도 손에 꼽는 게 바로 카르탈마니어였다.

다만 단점이라면 단순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맨손으로 서서 서로 치고받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

처음에야 밀렸지만, 사자의 군주가 내린 특성 중 하나가 에너지 드레인이었다.

타격을 통해 상대방의 힘을 조금씩 빼앗아 오는 특성이었다.

물론, 이건 숨겨진 이능 중 하나였다.

이걸 알았다면 아무리 단순한 카르탈마니어라 해도 이런 무식한 싸움에 정면으로 덤벼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크윽! 난 절대 물러서지 않는드아아!

쾌애애액!

카르탈마니어의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힘이 빠졌을 것임에도 여전히 주먹에 실린 파괴력은 섬찟할 정도였다.

순간 피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걸 피하는 순간 전투의 양상이 변하게 된다.

그건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일부러 육체적 대결로 유도한 이유가 없게 된다.

거의 다 온 상황 아닌가.

가장 싱싱한 상태에서 그의 권속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최상급 마족을 이렇게 제대로 된 상태의 언데드로 부리는 것은 자신이 처음일 것이니까.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뻐억!

-크으!

악셀레이온의 고개가 대각선 위로 튕겨 올랐다.

힘도 힘이지만 제대로 맞은 것이다. 하지만 악셀레이온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먹을 날린 놈이 오히려 자신의 힘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다인 것이냐? 마족 중 카르탈마니어가 최강이라던 게 겨우 이 정도였더냐?

-닥쳐라!

휘청이다가 자세를 잡으며 악에 받친 외침을 터트리는 카르탈마니어를 향해 악셀레이온이 주먹을 날렸다.

그런 악셀레이온을 향해 카르탁마니어 역시 남은 힘을 쥐어짜며 다시 주먹을 날려왔다.

‘슬슬 끝이구나! 훌륭한 재료가 되겠어!’

악셀레이온이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두 거구의 주먹과 주먹이 중간에서 교차하여 상대방을 향해 날았다.

그때 악셀레이온의 동공이 커졌다. 카르탈마니어의 주먹을 두르고 있던 보랏빛 마력이 변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코앞에 와서야 말이다.

-이, 이 비겁한…….

뻑! 쩌억!

서로 다른 타격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카르탈마니어는 전투의 패배보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무투만으로는 마계에서 따를 자가 손꼽는다고 자신했던 카르탈마니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백히 결과는 불리함 그 자체였다. 더욱이 상대는 무투보단 시체를 끌고 다니는 놈이 아니던가.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하다는 것을 나중에 느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때였다.

-큭……, 어? 어이쿠!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치고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맛이 달랐다.

-크아아아아!

-어……, 네놈 이, 입이 그리 컸었더냐?

뭔가 비명과 함께 뭐라 떠드는 것 같았는데 자신의 주먹에 입이 훨씬 커져 버린 것이다.

목뼈에 겨우 입 윗부분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그제야 알았다.

-어?

자신의 주먹에 도끼날과 같은 마력이 형상화된 것을 말이다.

군주의 이능이 이제야 발현된 것이다. 은총 다음에 군주의 특성을 결정짓는 이능.

그게 지금에 와서 발현된 것이다.

-도끼날인가?

양 주먹에 맺힌 반월에 가까운 날을 카르탈마니어가 얼떨떨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당장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머리 윗부분을 부여잡고 있는 악셀레이온을 향해 카르탈마니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건 내 탓이 아냐. 우리 군주의 이능이 이거라서 그래.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며 비틀거리는 악셀레이온을 향해 다시 주먹을 날렸다.

정확히는 주먹에 맺힌 도끼날을 말이다.

와그작!

뼈마디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