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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61화 (261/305)

제261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끝나야 할 수 있다

* * *

콰아아앙!

거칠게 휘둘러진 로버마이어의 몸뚱이가 을지부루에 깊은 상처를 입고 쏟아지는 공격에 짜증을 부리던 카이브로스를 그대로 강타했다.

-커억!

-끄으으…….

쏟아지는 강림자들의 공격을 막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인 카이브로스도 그 충격에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에게로 휘둘러졌던 로버마이어 역시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너…….

땅에 처박혔던 카이브로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로 다시 치켜 올라간 로버마이어의 몸뚱이가 눈에 들어왔다.

양팔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다리도 한 짝만이 남아있었다.

그나마 그 한 짝의 끝은 부루가 붙들고 있었으니 필요 때문에 남겨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뭐, 이런…….

잔혹함이라면 그들 역시 그리 뒤지지는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반열의 최상급 마족이 저런 몰골이 되었다는 건 꽤 큰 충격이었나 보다.

카이브로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로버마이어를 보면서도 당혹감에 몸이 굳어졌다.

콰앙!

-크흣!

물론 카이브로스는 그대로 십여 미터의 거구를 땅에 굴리며 피해 내었다. 하지만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흐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리는 로버마이어의 몸뚱이가 마치 거대한 채찍이라도 되듯 연달아 내리 찍혔다.

콰앙! 쾅! 쾅! 쾅!

로버마이어를 죽이기 위해 땅바닥에 메치는 것인지 아니면 카이브로스를 때려죽이기 위해 후두려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십여 미터의 거구였음에도 카이브로스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파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그물이 발에 얽혔다.

중형 마물들을 가두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를 다 덮을 수는 없었지만, 움직이던 발을 잠시나마 붙잡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잠시는 꽤 아프게 다가왔다.

뻐어어억!

-꾸웨에엑!

로버마이어가 입을 떡 벌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남은 이빨도 몇 개 없는 볼품없는 그의 입에서 피 분수가 울컥 하고 뿜어져 나왔다.

아까 부루가 머리통으로 복부를 강타한 것과 같은 고통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로버마이어의 복부에 머리통을 얻어맞은 카이브로스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어걱!

고개가 꺾인 것은 물론이고 뭔가 이빨이 다물리며 혀를 물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입에서 커다란 살덩이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히는 큰 충격에 무릎 꿇은 카이브로스에게 로버마이어의 흐느적거리는 몸뚱이가 다시 연달아 내리쳐졌다.

-아, 앙대에!

혀가 잘린 탓인지 새어 나오는 비명은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부루의 손에 자비는 없었다.

콰콰콰콰콰콰!

마치 산사태라도 나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 소리가 최상급 마족 둘의 몸뚱이가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얼마나 이들의 몸뚱이가 튼튼한지 알 수 있는 소리였다.

그것도 잠시, 연달아 맞부딪힌 둘의 몸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렸다.

무기로 쓰인 로버마이어는 물론이고 그의 몸뚱이에 때려 맞은 카이브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벼, 벼신 가튼 로버마……이어노엄.

-주, 주겨주…….

부루는 곤죽이 된 로버마이어를 손에서 놓고,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카이브로스를 바라보았다.

-구, 군듀는 군듀란…… 마, 말인가…….

최후를 예상했는지 회한 섞인 눈으로 부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카이브로스를 본 부루가 좌우로 그의 길고 긴 몸뚱이를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이, 더 크고 튼튼해 보이는구만.”

-…….

카이브로스의 보랏빛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그의 다리를 부루가 슬쩍 보더니, 도끼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잡기 좋게 다듬어야 갔어.”

순간 그의 눈길이 목숨이 끊어진 로버마이어를 향했다. 정확히는 그의 다리.

남아있던 다리의 무릎아래는 뼈만 남아있었다.

마치 쥐기 좋게 말이다.

-아, 앙대에에에!

같은 편조차 질린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행동에 고빈은 몸을 움츠리며 입을 열었다.

“꼭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지.”

묵갑귀마대원이 고개를 한쪽으로 슬쩍 향했다.

부루의 주변에 있던 마족병들이 점차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신분 상승의 기회라도 된 양 달려들던 놈들이 일단 정신을 차리잖냐.”

“그, 그러네요.”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동료가 바로 옆에서 죽어 나가도 광기 어린 공격만 해오던 마족병들이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거세된 완벽한 병사의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비로소 전장에 어울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깔린 것이다.

“원래 전쟁은 공포로 하는 거야. 공포에 먹히면 지는 게 전쟁이고, 그걸 우리 편으로 만들면 이기는 게 전쟁인 거지.”

을지부루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휘두르기 시작하자 더 큰 무기에 마족병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피떡이 되어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뒤쪽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돌격 앞으로!”

“가즈아아아!”

“싹 다 죽여버려!”

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흑먼지와 기름때, 그리고 붉은색과 보랏빛 감도는 핏물을 온몸에 치장한 마갑주병들이 영화의 대사에서 쓸법한 대사를 담은 함성을 내지르며 내달려왔다.

심지어 무슨 똥배짱인지 일반 군인들까지도 적들을 쓸며 용감무쌍하게 나아가는 부루를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

그때 한쪽에서 길고 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빈의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온몸을 두른 갑주가 걸레짝이 된 천유화가 최상급 마족의 가슴팍을 밟고 올라서서 머리통에 창날을 박아넣고 있었다.

커다란 머리통에 비죽이 나온 창날이 유독 서슬퍼래 보였다.

“나 천유화야! 씨바!”

그 역시 광기 어린 외침으로 적을 짓밟았다.

“봐라.”

묵갑귀마대원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난전도 이런 난전이 없었다.

여기저기 불타오르는 차량과 시체들. 폭음은 후방을 가리지 않고 솟구치고 있었다.

이미 전후방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어?”

싸우느라 미처 살피지 못한 모습.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저길 뚫고 적의 대가리를 쳐야 해.”

“아…….”

순간 빈은 진중에 남겨놓은 자신의 엄마인 마지연이 떠올랐다.

굳이 따라와서 이 전쟁을 남기겠다며 히죽거리던 모습이 뒤이어 눈가에 스치는 듯했다.

“어, 엄마!”

“걱정되냐? 그럼 가라.”

순간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려던 빈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서? 그다음엔?’

이 난장판에서 마지연을 찾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저 양반은 이 전쟁통에 폐하를 마음에 품고 있는 분들을 함께 모셨다. 알잖냐. 얼마나 떠받들며 애지중지했는지.”

안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는 세인과 송가은 작가란 말도 있었다.

“물론 그분들이 따라온다 해도 오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었겠지만. 왜 놔두었을까? 그리고 네 엄마는?”

“그…….”

순간 빈이 떨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묵갑귀마대원들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안다는 시선.

“아들내미 보내고 멀쩡할 부모 없지.”

“암.”

“명운이 걸린 전쟁인데…….”

“전쟁이 원래 이래. 이겨도 개똥 같은 거고.”

다들 한마디씩 던진다.

빈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탁하고 내뱉었다.

“후우.”

그리고는 다시 어깨에 대부를 걸터 매고 입을 열었다.

“아재들 안 싸워요? 빨리 가서 대가리 조집시다. 그래야 끝나지.”

그 말에 다들 웃었다.

“그래.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전쟁이 끝나야 할 수 있는 거지. 우린 싸우는 사람들이니까.”

누군가가 던진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끝나야 할 수 있다는 말.

빈은 멀어지는 부루의 꽁무니를 따라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하나만 생각했다.

이 전쟁이 끝나고 웃을 수 있기를 말이다.

* * *

“으라차아!”

여포 봉선의 방천화극이 내리찍어오던 메이스를 퉁겨내었다.

그 순간 여포의 다리가 휘청였다. 최상급 마족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여포의 갑주는 여기저기 뜯겨 나간 지 오래였다. 평소 타고 다니던 적토마도 역소환되었는지 곁에 없었다.

“젠장.”

장웨이가 핏물을 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했다.

사실 을지부루를 빼면 사령관급이라 불리는 최상급 마족을 상대로 이긴 강림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티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신 길드원 중 일부가 함께 무기를 들고 버티고 있었다.

여포를 도와 전투를 벌이던 그쪽 강림자들도 다수가 희생되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희생은 아니었는지 여포를 상대하고 있는 최상급 마족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팔다리에 큼직한 자상을 입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그를 따라왔던 중상급 마족들의 시신이 그득했다.

지금도 다른 마족병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화망을 구성하고 여기까지 살아남은 차량으로 들이받고 있었다.

-별의 파편 주제에 꽤 지금까지 버텨왔구나.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 네놈을 흡수하면 꽤 보탬이 되겠어.

그의 말에 장웨이가 이를 악물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여포와 자신을 번갈아 스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흡수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여포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게 선행되는 일일 것이라는 것.

“유언은 그게 다더냐.”

여포가 오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꽤 고전했음에도 내뱉는 말에는 아직 자신감이 넘쳤다.

그 모습에 장웨이가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그래. 오만 배짱 빼면 시체지. 그래야 여포지.”

무 하나만으로 전설이 되어 회자되는 이.

그게 여포다.

전설의 명장들은 이 세상에 강림하지 않았다. 이룬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그런 상황이 많았다.

누군가는 강림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어떻게 보면 설득력 있는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은 그들이 영웅이라는 것을.

그때 다시 맹공이 펼쳐졌다.

콰앙! 쾅! 쾅!

연달아 뿌려지는 메이스가 여포의 방천화극을 두들겼다. 계속해서 밀리는 발걸음.

그때 누군가가 재빠르게 뒤를 돌아갔다.

전신길드장 임병화였다.

입고 있는 마갑주를 믿은 것인지 아니면 초반부터 빈과 함께 구르며 강해진 자신을 믿는 것인지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다.

“미친 인간아!”

그 순간 장웨이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임병화의 강림자 역시 역소환된 상황. 그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도 없는데 뛰어든 것이다.

당연히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하지만, 그 속에 장웨이는 자신에게 분노했다.

지금 저 행동을 하는 건 자신이었어야 했으니까. 그의 강림자가 여포였으니까.

서걱!

깊지는 않았지만, 병화의 칼질이 최상급 마족의 종아리를 베었다.

그게 틈이 되었는지 여포의 방천화극이 최상급 마족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터억!

하지만, 조금이 모자랐다.

방천화극을 단단히 잡아챈 최상급 마족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병화를 바라보았다.

-네놈부터 정리해야겠구나. 감히 이 몸에 상처를 남기다니.

메이스가 전신 길드장 병화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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