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사자의 땅
“다시 함 말해 보라.”
을지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던진 질문에 로버마이어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마치 조금 전 자신이 당황했다는 것을 잊으려는 듯.
-왜? 몸뚱이도 작달막해서 귓구녕도 제대로 뚫려 있지 않은가 보지?
그 소리를 들은 묵갑귀마대원들이 조금 더 물러섰다.
“오메.”
“저질렀네.”
“그냥 곱게 뒈질 것이지.”
“빈아 피해! 어여!”
그들의 반응을 따라 고빈도 조심스럽게 더 물러섰다.
그때 부루가 대부를 들고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대며 입을 열었다.
“그 한마디로 인생 조진기야. 아니디. 마족이니까네 마생쯤 되갔구나.”
서늘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대꾸하는 모습은 그가 충분히 화가 차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하하하! 재주 있으면 해 보던…….
뻐어엉!
로버마이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배 쪽에서 가죽 북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퀘엑!
순간 로버마이어의 몸뚱이가 기역자로 꺾이며 땅에서 붕 떴다.
땅을 박차는 순간 그대로 날아가 머리로 복부를 들이받아 버리는 부루의 모습을 본 묵갑귀마대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이네.”
“시작이야.”
빈은 이 순간 팝콘이 먹고 싶었다.
* * *
하늘에서 불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허공에 뜬 마족이 범위 마법을 펼치자 벌어진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땅에서 송곳 모습의 돌기둥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차량은 물론이고 군인들의 몸뚱이가 꼬지 마냥 꿰인 채 비명을 내질렀다.
한쪽에선 마물 하나를 두고 둘러싼 군인들이 연신 근접 병기로 난도질을 쳤고, 어떤 곳에선 팔다리를 잃은 군인이 눈물 콧물을 범벅한 얼굴로 기어가며 의무병을 찾았다.
마법을 사용하는 마족이 가장 까다로웠다.
낮은 수준의 마족이면 대형 마물탄이 직격하면 방어벽이 깨지지만, 중급 이상의 마족들은 잠시 방어벽이 깨어졌다가 다시 메워지기 일쑤였다.
“틈만 만들어 틈만!”
누군가가 악을 지르듯 무전을 때리자 어디선가 또다시 집중되 듯 공성 병기를 떠올리게끔 하는 커다란 화살이 날아들었다.
터터텅! 텅!
다행인 점은 마족병을 제외하면 나머지 중급 이상의 마족들은 덩덩 치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맞추는 데에는 어려움이 적었다.
공격이 이어지자 순간 방어막이 일렁이다가 한쪽에 공간이 생겼다.
그래봐야 눈으로 보일락 말락한 정도.
그 순간이었다.
퍼퍽! 퍽!
허공에서 마치 신이라도 된 듯 마법을 난사하던 마족에게 무언가가 날아든 것이다.
가까이서 본다면 어른 머리통만 한 큰 구멍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점으로 보일 정도다.
심지어 그 구멍은 빠르게 메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를 가르고 화살이 날아가 박힌 것이었다.
한 대도 아니고 서너 대가 말이다.
-크윽! 이건 또 뭔가!
순간 마법 방어벽이 흔들렸다.
그 틈을 노리고 다시 이어진 집중사격.
파창!
마치 유리창 깨지듯 방어막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빨랫줄에 넣어놓은 모포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퍼퍼퍼퍽!
허공에 떠 있던 마족의 몸뚱이가 마구 꿈틀거리며 하늘로 더 빠르게 치솟았다.
물론 지금 이 행동은 마족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쏘아진 총격들이 지금까지의 화풀이를 하듯 집중되어 쏟아진 것이었다.
이내 넝마가 된 마족이 추락하자 군인들이 함성인지 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다음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지옥은 이제 시작이었다.
어디선가 검보랏빛 연기가 마치 바닥에 쭈욱 깔리며 퍼져나갔다.
“가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그 영역에 든 이들이 방독면을 빠르게 찼다. 하지만, 그것은 독이 아니었다.
“이, 이탈해!”
크르르륵!
누군가가 외쳤지만, 그보다 빠르게 답변이 들려왔다.
산자의 음성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확인 사살부터 해!”
일선 지휘관들의 외침에 군인들이 창백한 얼굴로 주변에 쓰러져 있던 이들을 보며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때 상처를 입고 선임에게 업혀 가던 군인이 몸을 들썩였다.
“크흑!”
“조금만 버텨!”
“그, 그게…….”
“닥치고 버티라고!”
후임병을 업고 달리는 선임이 악쓰듯 외쳤다.
살아야 한다는 애정어린 외침이다. 하지만, 업혀있던 후임병은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나, 날 버리고 가십…….”
“씨파! 조용하랬지!”
“크르륵…….”
순간 후임병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업혀있던 후임병이 자신에게 두른 팔에 힘을 주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늘어져 있던 것과는 다른 힘.
“너…….”
선임병의 얼굴이 굳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충혈된 눈으로 입을 쩍 벌린 후임병의 모습이 동공에 들어왔다.
낯선 모습.
콰드득!
“끄아아악!”
원치 않는 비명이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타타타타!
병장 하나가 등에 마물이 된 아군을 업고 목이 물어뜯긴 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오다가 엎어지자 총을 쏘아버린 지휘관이 이내 주변을 훑었다.
“사자 마법…….”
이미 겪은 바 있는 마법 중 하나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
흔하게 영화에서처럼 좀비라 부르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마법이었다.
그나마 영화처럼 이것들에 물린다고 똑같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위협적인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 예로 대한민국에서는 조직적인 예비군과 민방위 덕에 크게 확산이 되는 것은 막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몇 개 도시가 이 마법 때문에 죽은 자들의 땅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지금 난전이 벌어지면서 아군의 시체가 사방에 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이전과 다른 모습이 눈에 펼쳐졌다.
“끄륵!”
다친 채로 동료의 시체나 부서진 차체를 방패 삼아 총을 쏘아 내며 저항하던 이들이 갑자기 전기라도 감전된 것처럼 펄떡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알이 희번덕이며 사지가 기괴하게 틀어지는 모습.
시체가 일어서기 전의 전조현상이었다.
“주, 죽지도 않았는데 왜?”
문제는 그들이 부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아직 살아있었던 존재라는 것이다.
“캬아악!”
결국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다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곁의 군인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타타타! 타타타!
하지만 부활 과정이 요란했기 때문인지 주시하고 있던 지휘관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머리통이 박살 나 쓰러지는 순간 여기저기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제야 방금 총을 쏜 중대장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뭐해! 변화가 시작되기 전에 쏴!”
그 외침에 병사들이 놀라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아군이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사전에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학습했던 덕인지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중에는 의무병을 기다리던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나, 난…… 크륵! 크르륵! 사, 살려……”
“뭐해! 쏘라고!”
“하, 하지만…….”
아직 죽지도 않은 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다들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변화가 시작되지 않은 부상자들을 내동댕이치는 이들도 있었다.
“나, 난 아냐!”
“씨, 씨팔! 총 안 치울래!”
순간 부상자들은 잠재적 마물 취급을 받았다.
그중에는 마물로 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제정신을 유지하며 멀쩡하게 버티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도 결국 자신에게 총을 겨눈 아군에게 마주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다.
타타타타!
“아악!”
투타타타! 타타타!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공황에 빠진 군인들은 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부상자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기에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처음 부상자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던 이들은 이제 그들이 마물로 변해서가 아니라 공격을 했기에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와중에 새롭게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던 군인은 조금 전까지 뒤를 지켜주던 아군에게 공격을 다시 받아 엎어져야만 했다.
“미친놈들아! 쏘지마! 아군끼리 쏘지 말란 말이야!”
타타타타타타타!
어느 한 지휘관의 외침은 총성 속에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런 그들의 발밑으로 더욱 짙어진 검보랏빛 연기가 빠르게 번져 나갔다.
-사자의 군주 휘하의 고위 마법사 중에는 죽은 자뿐 아니라 목숨이 경각에 달했거나, 부상으로 인해 정신이 쇠약해진 이들도 마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건 얼마나 지속되는 거요?”
무시무시한 마법에도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마법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아무래도 대범위 마법인 사자의 땅 마법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자의 대공 휘하의 마법사 들은 단순히 매개체고 그걸 펼치는 이는…… 사자의 대군주 기오르그입니다.
아군 마법사의 설명에 지휘관들은 탄식을 뱉어내었다.
“빌어먹을…….”
사기를 북돋워야 할 어느 지휘관의 입에서 절망 섞인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전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흐르는 피는 더 많아졌다.
얼마나 죽었는지 파악도 다 안 될 정도였다.
명령이 떨어지면 그 명령을 받는 이중 제대로 된 계급이 얼마 안 남았다.
어떤 중대의 경우 소대장이나 부사관들이 전멸이라도 했는지 상병이 받는 일도 있었다.
어쩌면 병장들마저 다 죽었을 수도 있고, 혹은 전부 다 죽고 무전을 받은 그 상병만이 남았을 수도 있었다.
어떤 곳은 아예 연락이 끊어져 파악도 안 되었다.
드론들이 날아다니고는 있었지만, 그 숫자도 이내 적어졌다.
조금 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바위에 트레일러가 그대로 깔려 그 안에서 운용하던 병력이 그대로 몰살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재출격을 해 가며 공중을 제압하기 위해 애쓰던 비행기들은 그 수가 이젠 확연하게 줄어 있었다.
심지어 연료 보급하면서 정비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지, 일부 경비행기의 경우 날아가다가 갑자기 날개가 분리되며 뱅그르르 돌며 떨어지기까지 했다.
퍼억!
키륵!
한 손에 든 손도끼로 조금 아까까지도 함께 작전을 논의하던 작전장교의 머리통을 쪼갔다.
털썩.
“미안하네.”
쓸쓸한 눈빛으로 쓰러진 작전장교를 보며 차준우 사령관은 바닥에 깔린 채 천천히 움직이는 검보랏빛 운무를 바라보았다.
그 빛깔만큼이나 우울했다.
-버티셔야 합니다. 포기하게끔 만드는 음차원의 마력이 깔려 있습니다.
그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마법사의 말에 차 사령관은 온몸이 피범벅인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힘은 약해지겠지?”
-그럴 겁니다.
“정면 돌파는 무리였을까?”
중급에 불과한 마법사에게 던지는 질문치고는 난해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묵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을 따지자면 처음부터 무리였습니다. 상대는 하나를 제외한 마계의 모든 군주의 힘을 모은 자였으니까요.
“그런가. 그런데 자네들은 왜 질 싸움에 달려들었는가.”
-군주의 명이니까요.
“…….”
차 사령관은 그의 대답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에 현답이다.
“그렇군. 그건 우리랑 같군.”
어쩌면 을지부루가 이들을 얻은 것은 천운이었다.
모시던 군주가 상대 군주에게 패해 흡수된다면 그들이 바쳐야 할 충성의 주체는 바뀐다.
다만 이들은 그 주체가 바뀌어야 하는 순간 그곳에 있지 않았고, 또 마수의 군주인 부루 앞에 있었으니까.
그 덕에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말이다.
그때 마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면 돌파가 불가능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순간 차 사령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얼굴이었다.
-무리란 것은 불가능이란 말과 같지는 않으니까요.
차 사령관에게 조언해주던 마법사는 패배자의 것과 달랐다.
그때 그들의 발밑을 지나는 검보랏빛 운무에 푸른빛이 조금씩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