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각자의 상대
* * *
여포 봉선이 방천화극을 빙그르르 휘두르며 털어내자 날에 붙어 있던 핏물과 살점들이 후두둑 하며 사방으로 뿌려졌다.
“흠!”
그리고는 적들을 오시하며 창대의 끝을 바닥에 찍었다.
쿵!
마치 이 영역은 나의 것이라고 선포하듯.
“후우, 후우.”
그런 여포 근처에 있던 장웨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장웨이는 여포가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듯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큰 찌꺼기가 하나 있구나.
사령관 급이라 명명된 또 다른 마족 군단장의 등장이었다.
다만 그 형태는 다른 마족들과 달리 조금 왜소해 보였다.
왜소하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2.5m에 달하는 체구였다.
장웨이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제대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덩치와 존재감은 비례하지 않는 것인 듯 했다.
“도대체 이런 괴물들이 얼마나 더…….”
장웨이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주변으로는 임병화의 신컨 길드원과 다른 중국의 소환자들이 각자의 강림자들과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다들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그래도 여포니까…….”
그나마 여포라는 강림자의 존재를 믿어볼 만하다는 표정으로 다들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괜찮나? 저쪽도 맞닥트린 거 같은데.”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살짝 돌아갔다. 그리고 누구 할 것 없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그들이 시선을 향했던 곳에는 신컨길드의 길드장인 구도원과 그의 강림자인 김경징이 또 다른 사령관급 마족 군단장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할 말을 잃은 구도원은 순간 김경징이 미쳤나 싶었다.
평소 그토록 살 구멍을 귀신같이 찾아가던 게 바로 김경징이었다. 그게 김경징의 가장 큰 능력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능력이 바닥이라도 난 것인지 사지로 들어와 있었다
“미친 거야?”
“……미칠 거 같소.”
“정상이긴 하네.”
김경징은 눈앞의 사령관급 마족을 두고 미친 듯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을 것이다.
“음하하하하!”
물론 다행히라고 해야 할지…… 지금 상대를 맞이하고 있는 건 김경징 혼자만은 아니었다.
“더 불안하네.”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이는 바로 임꺽정이었다.
하나는 귀신같이 도주로를 찾는 존재였고, 다른 하난 상대가 누구든지 일단 들이대고 보는 존재였다.
잘 튀는 놈과 잘 덤비는 놈.
최악의 상성이다.
그나마 임꺽정이라면 그 존재감으로 봐선 준 영웅급은 된다.
준영웅급 존재 둘이 있기에 어쩌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빌어먹을.”
도원과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광호가 한쪽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일단 승산이 있어서 여기 있는 거겠지?”
도원이 나름 침착함을 참으며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김경징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없소.”
“……뭐?”
순간 도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도 찍힌 표정이었다.
“승산따위 있겠소? 이젠 대가리가 굳은 것이오?”
“아까부터 자꾸 대가리, 대가리 할래! 왜 안 하던 짓을 하는데!”
도원이 버럭 소릴 질렀다. 그도 그의 강림자가 용맹했으면 했다. 준영웅급이나 돼서 튀는 데 고금제일이라는 비아냥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모한 것도 싫었다.
그도 무모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이머로 이름을 날릴때도 그는 질 싸움은 하지 않고 이길 싸움만 귀신같이 선택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서 항상 승리를 거머쥐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김경징과 나름 합이 잘 맞는 편인 것이다. 그래서 김경징의 소환자가 된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도 있고 말이다.
그때 김경징의 시선이 도원을 향했다.
아까보다는 조금 잦아든 흔들림.
평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조금은 진정된 듯한 동공이었다.
그렇게 안정되어가는 시선으로 도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 했던 짓이라 하오.”
“뭐?”
도원이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 보았다.
“점점 선명해졌소.”
“뭐……가?”
“그 혼란 속에서 정신없이 도주하던 기억…… 살자고 도주하는 나를 대신하여 죽어가던 가신들…….”
김경징의 역사적 최후는 사실 보잘 것 없었다.
인조반정의 2등공신이었지만, 병자호란때에 지켜야 할 왕실의 가족들을 지키지 못한 죄로 결국 사사되었다.
실록에서는 성을 버린 무능한 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비를 책임질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 아무도 당신 말을 듣지도 않았다며!”
“그랬소. 그리 생각했소. 그래서 바뀐 게 있소?”
김경징의 말에 도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지금은 뭐라도 바꾸게?”
도원의 질문에 김경징이 칼을 고쳐 쥐었다.
정쟁에 얼룩져버린 역사의 기록.
“변명은 없소. 결국 무능하여 누구도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왕실을 지키지 못한 것도 사실. 책임이 있다 없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나라의 녹을 먹는 장수라면 지켰어야 했소. 하지만 난 스스로 변명하였소.”
“…….”
“홀로 도망친 역사가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오.”
“그래서?”
도원이 다시 물었다.
“지금 이순간 이 땅이 지켜진다면 최소한 내 역사는 다시 쓰여지지 않겠소? 겁쟁이에 살 구멍만 찾아다닌 머저리가 아닌…….”
천천히 들어올렸다.
방향은 적의 사령관급 마족.
“최소한 자신의 자리를 지킨 장수로…….”
김경징의 말에 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적응 안 되는 거 알지?”
“나도 안 되오.”
“염병할!”
도원이 도끼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
그때 김경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촉은 여전히 멀쩡하오.”
“뭐?”
“도망치면 죽고 버티면 산다.”
김경징의 말에 도원이 혀를 찼다.
“무슨 이순신 장군 짝퉁도 아니고…….”
하지만, 왠지 그의 말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다.
“음하하하하! 난 버티는 데에는 자신이 있지! 관군들이 몰려왔을 때에도 난 버텼느니라!”
임꺽정이 난데없이 끼어들었고 뒤에 있던 광호가 이를 갈며 끼어들었다.
“그게 자랑이냐! 그래서 청석골 싸그리 다 토벌 됐잖아!”
“음화화화!”
복장터지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들 앞에 드디어 사령관급 마족이 내려섰다.
콰콰콰콰!
-막지마라. 갈길이 바쁘니라.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6군단장 악셀레이온이 양팔을 휘두르자 주변 오십여미터가 그대로 붉게 변했다.
붉음은 바로 조금 전만 해도 인간이었던 이들의 흔적이었다.
비명도 없었다.
마치 물감을 터트려 놓은 것 같은 비현실적인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투타타타!
퍼퍼펑!
그럼에도 총탄들은 쉴 새 없이 날아들고 드론들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의 주변을 마치 행성 주변의 위성처럼 맴도는 보랏빛 구체들에 의해 부서지거나 그의 몸 주변에 펼쳐진 막을 뚫지 못하고 퉁겨 나갈 뿐이었다.
강림자들이 달려들기는 했지만, 그 역시 의미없었다.
-별의 찌끄러기들아…… 더는 추한 몸부림을 부리지 말라.
무표정한 얼굴로 달려드는 강림자의 머리통과 몸통을 잡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뿌드득!
잔인하게 들려오는 파육음과 함께 달려들었던 강림자의 몸이 둘로 나뉘며 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뿌려졌다.
“이 개새꺄!”
방금 전 강림자의 소환자인지 욕설과 함께 누군가가 달려들었다.
그 또한 빛으로 변한 강림자와 똑같은 형태로 나뉘었다.
둘이 다른 점은 강림자는 빛으로 화했지만, 그는 핏물로 변했다는 점이다.
그때였다.
-음!
순간 악셀레이온이 몸을 뒤틀며 양손을 교차했다.
콰아아앙!
강렬한 충격음과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콰드드드득!
바닥에 뿌리내린 듯한 양 발이 밭고랑처럼 길을 만들어내며 주르륵 밀려 나갔다.
-네놈?
악셀레이온이 방어를 위해 교차했던 팔을 풀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 네놈 주인이 던져주는 뼈다귀가 부족한가?
단단하게 말아쥔 주먹을 뻗고 서 있는 이는 바로 마룡의 일족 군단사령관인 카르탈마니어였다.
-안 그래도 네놈이 평소 탐이났는데 여기서 만나는구나.
악셀레이온이 그를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동시에 그의 뒤로 본 드레이크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떠 있었다.
-잘 되었군. 오늘 내 일족의 뼈도 추려가고 네놈의 뼈도 추리면 딱 좋겠어.
카르탈마니어는 본 드레이크들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에 살기를 담아 뿌렸다.
-그게 가능할까?
-그 빌어먹을 힘의 균형 때문에 가지지 못했던 기회를 얻게 되어 정말 기쁠 뿐.
처음 마룡의 일족이 그들의 군주와 함께 자리잡을 때 희생되었던 일족들을 사자의 술법으로 되살려 끌고 다닌 게 바로 사자의 군주와 그 수하들이었다.
그렇기에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다.
다만, 분노와 복수심은 마음에 담아놓고만 있어야 했다.
힘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카르탈마니어는 이 순간이 더없이 즐거웠다.
-마룡의 군주 옆에 없어서 아쉬웠는데 말이야. 있었다면 지금 내 뒤에 네놈의 뼈다귀로 만든 훌륭한 권속이 되었을 것을.
-그게 네놈 유언이더냐?
카르탈마니어의 질문에 악셀레이온이 웃으며 양손을 펼쳤다.
동시에 그의 몸을 떠돌던 구체가 네 개로 늘어나 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별의 찌끄러기 밑으로 간 주제에 말만 늘었구나. 네놈을 이몸이 새로운 군주위에 오를 재물로 삼으면 딱 좋겠군.
그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하!
마치 가소롭다는 웃음.
그 미묘한 감정에 악셀레이온이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재미있어 보이는가?
-그래. 정말 재미있을 거 같구나. 나의 군주께서 마계를 일통하는 순간이 기다려지는구나.
-정말 그게 가능하리라 보느냐? 마룡족이지만 몸만 쓰느라고 머리를 쓰는 법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흐흐흐. 글쎄. 그런데 나의 주군은 왠지 질 것 같지 않더구나.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악셀레이온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머리통이 굳었구나. 단순히 같은 군주가 아님을 알 것 아니더냐.
-패배를 생각하며 싸우는 마계의 전사가 있더냐?
그 말을 끝으로 카르탈마니어가 그대로 질주해 나갔다.
-그렇지. 네놈은 그렇게 옛날에도 지금도 여전히 단순하니까.
달려오는 그를 향해 악셀레이온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돌던 보랏빛 구체들이 팔을 따라 맴돌며 카르탈마니어를 향해 날아갔다.
* * *
콰콰쾅!
콰앙!
사방에서 차량들이 연이어 솟구쳤다.
마치 영화에서 차량폭파장면이라도 찍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었다.
터져나가며 솟구친 차량에서 모빌마냥 덜렁 내려와 휘청이는 군인들의 모습.
그 주변에 있다가 날아가 쳐박혀서 온몸의 뼈가 부숴져 꿈틀거리지도 못하는 군인들.
그 주변에서 울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군인.
지옥이었다.
투앙! 투앙! 투앙!
차준우 사령관은 마치 야쿠르트 아줌마가 끌 법한 카트 비슷한 것에 올려져 있는 대형 석궁을 연달아 날렸다.
그 것 주변으로 피가 흠뻑 묻어 있는 것을 보면 원래 운용하던 이는 먼저 죽은 듯했다.
그들이 대항하고 있는 존재는 사령관급이라 불리는 마족 군단 장들이었다.
그들이 마치 공수부대처럼 떨어져 내린 이후로는 전방과 후방이 의미가 사라졌다.
모두가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