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마창의 주인과 천유화
“잔챙이는 아이구만.”
을지부루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사방에서 그가 있는 방향으로 무언가가 조여 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으아아아! 어딜 보는 거냐고요!”
그 와중에 고빈은 산책 나온 사람인 양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부루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싸우라우. 밥값은 해야 하디 않네?”
“추, 충분히 하고 있다고요!”
빈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멍멍이가 더 잘 싸우고 있구만 기래. 챙피하디 않니?”
“얘가 저보다 더 세거든요!”
마수의 군주가 주력으로 이끌고 다니던 늑대형 마수들의 우두머리인 만큼 충분히 강력했다.
마수이기는 하지만, 마족으로 따지면 최소 상급 이상, 거의 최상급에 분류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름 부루가 빈의 안위를 위해 붙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장 위험한 이곳에 끌려 온 것만 보면 정말로 빈의 안위를 걱정하는지는 좀 고민해 봐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와 씨 이거 뭐야! 찌릿찌릿한 게…….”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고 또 부루에게 한마디도 안 지고 대꾸하던 빈이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도 느낀 것이다.
이쪽을 향하고 있는 힘과 적의를 말이다.
빈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오래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존재감이라는 게 유별난 것들이 멀리서부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한둘도 아니고…….”
그것들이 사령관급으로 명명된 존재들임은 그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 보기도 했고 마룡족 출신 사령관인 카르탈마니어나 부루로 인해 새롭게 그 격에 오른 헤게루이안 등을 겪어 보았기에 비교적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군주란 놈은 여전히 굼뜨구만 기래.”
“여기서 군주란 놈까지 나오면 어떻게 상대하냐고요!”
부루의 태평스러운 말에 빈은 환장하겠다는 듯 목소릴 높였다. 그때 무언가가 부루를 향해 날아 들었다.
콰콰콰콰콰!
기다란 창이 날아들었다.
날아드는 길목에 있던 마족과 마물들이 그 힘에 휩쓸려 온몸이 찢겨 나갔다.
“미친!”
빈은 아군의 희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공격에 놀라기보단 그 위력에 더 경악했다.
그것은 그대로 부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 이 양반아, 뭐해!”
그러나 부루는 날아드는 창을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빈이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그의 여유에는 이유가 있었다.
콰르르르!
순간 돌풍이 일면서 날아든 창날의 끝을 관통하는 또 다른 창날이 있었다.
콰차차차창!
창끝으로 날아오는 창의 끝을 맞췄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날아온 것이 산산이 박살 나는 것은 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어디 잔챙이가. 감히 우리 대장군께 말이야.”
날아든 창을 그대로 박살을 내 버리며 등장한 이는 바로 천유화였다.
그가 장창을 들고 당당히 창이 날아온 방향에 막아서듯이 버티고 섰다.
마치 내 상대라고 하는 듯.
“와…… 저걸 막네.”
놀란 빈이 천유화를 보며 혀를 찰 때 속속들이 주변으로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다.
“흐으압!”
방천화극이 크게 호선을 그리자 그 전면에 있던 마족병들의 몸뚱이가 우수수 잘려 나갔다. .
“여포 봉선! 누가 나를 상대할쏘냐!”
“여포 아저씨 중이병 쩐다…….”
분명 멋진 등장이지만 등장하며 내뱉은 말에 빈이 온몸을 움찔거렸다.
오글거림이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꺄! 아까 뭐라고 했어! 어!”
“닥치고 싸우시오! 이러단 다 뒈진단 말이오!”
뒤이어 나타난 것은 바로 김경징과 그의 소환자인 신컨 길드장 구도원이었다.
“여긴 막장이고…….”
“닥쳐!”
그들의 등장에 빈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던지자 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빠라바라바라방!
“음홧홧홧홧!”
그 뒤에 임꺽정이 어디서 구했는지 개조된 할리를 타고 나타났다.
“저건 또 어디서 구했대?”
쓸 만한 바이크는 모두 징발되거나 투입된 마당이니 저런 폭주족 같은 바이크가 등장하는 것으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걸 탄 것이 임꺽정이라는 게 조금 스팀펑크 분위기를 풍겼다.
도도도도도!
그 뒤를 부실 해 보이는 바이크를 타고 따라오던 광호가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몰라! 타던 지프가 뒤집히니까 저걸 또 잡아타고 왔잖아!”
“운전은?”
“가끔 취미로 탈 때 가르쳐 주긴 했지만…….”
뒤따라온 광호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빈은 그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자 조금이나마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쪽에는 마갑주병들이 마족병들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선두에는 강문호 중령도 있었다.
“벌써 마갑주병들이 투입되었구나……”
빈이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최후의 전투에나 투입되기로 했던 그들이었다.
마갑주병이 능력은 좋지만 오래 싸울 수는 없었다. 능력을 증폭시키기는 하지만, 반대로 힘의 소모가 컸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것은 고작 서너 시간이 전부였다.
빈도 지금 소울아머를 입고 있지만, 그는 예외다.
듣기로는 원래 이것도 오래 운용하기 힘든 것이라고 들었었다. 다만 소환자의 경우는 강림자와 기운을 공유하기에 이렇게 입고 있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빈의 능력이 사실 하잘것없어 본 능력을 모두 끌어올리지는 못한다고 들었다.
즉 빈은 을지부루에게 빈대를 붙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쉽게도 소울아머의 카피 판인 마갑주는 그런 역할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몰려오는 사령관급 마족들을 보며 빈은 긴장을 지울 수 없었다.
-크롸아아아! 군주이시어! 군주의 선봉장이자 최강의 사령관인 저 카르탈마니어가 왔사옵나이다 아아아!
거기에 마법사보다 쓸모없다고 구박받던 카르탈마니어가 그 커다란 덩치를 뽐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얼추 이쪽의 진형은 갖춰지고 있었다.
“후우. 그래. 어차피 군주급은 없잖아? 그럼 뭐 할 만하지.”
빈은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부루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서 있는 부루의 모습이 아까와 달리 조금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쪽은 군주급도 있으니까.”
어쨌든 그의 존재 덕에 여기까지 왔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감히 막아? 배반한 용병들 따위가?
자신이 던진 창을 부수어 버린 존재를 보며 사자의 군단 소속 마창의 주인이라 불리는 최상급 마족 니블마인이 노기를 띠며 다시 허리춤에 달린 단봉을 잡아 뽑았다.
부와아악!
그러자 순식간에 4m에 달하는 그의 키보다도 반 배는 더 긴 창이 만들어졌다.
마치 중국 고전에 나오는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말이다.
-갈 길이 바쁘다! 비켜라아아!
이어 노성을 터트리며 그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창을 집어던지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없었다.
감히 최상급 마족이 가는 길을 막을 만한 간 큰 마족병들은 없었다.
쿵쿵쿵쿵!
그가 땅을 박찰 때마다 땅이 커다랗게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 근육이 두어 배는 팽창하며 응축하는 순간 잠시 멈칫했던 그의 몸은 마치 날아가는 포탄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파아아!
전투기가 지나가는 소닉붐과 같은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몸은 을지부루를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자신의 공격을 막은 존재가 2m 정도의 창대를 뒤로 잔뜩 당기고 자세를 낮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비켜라! 이 승부에 용병 따위가 설 자리는 없느니라!
“용병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이 몸이 꽤 유명했나 보구나!”
비키란다고 비킬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상급 마족 니블마인은 두 번의 우연은 없다는 듯 그대로 자신의 창대를 앞으로 질러 버렸다.
마치 앞을 가로막는 버러지를 꿴 채 그 뒤에 있는 마수의 군주 마저 꿰겠다는 듯 말이다.
콰콰콰콰!
창날이 뻗어나가며 그 맹렬한 기운에 주변의 땅거죽들이 좌우로 패여 나갔다.
대지를 가른다는 게 이런 것일지도 몰랐다.
땅거죽을 그대로 뒤집으며 쏘아져 오는 창날을 보며 천유화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전에는 절대 보일 수 없었던 이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천유화나 일행들의 강함은 신체의 속박을 벗어난 지 오래. 영혼의 크기에 따라 그 강함이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천유화 역시 그 강함으로는 쉽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죽는 그 순간에서조차 그는 절대 물러선 적이 없으므로.
“내가 몽류화 그 양반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창으로는 어디서 꿀려본 적은 없지.”
천유화가 입꼬릴 끌어올리며 가우리군에서 창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몽류화를 떠올렸다.
사실 그에 비하면 좀 딸리긴 했다. 하지만, 상성상 딸린다뿐이지 절대 모자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호오오오오…….”
낮은 호흡과 함께 푸르스름한 기운이 그의 몸 주변을 감돌다가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호흡이 멈추는 순간 그의 왼발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반보 나아갔다.
콰앙!
마치 땅 위에 기둥을 세우듯.
그의 왼발이 미끄러져 나가다가 땅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단단히 박은 왼발의 뒤꿈치가 앞쪽으로 나아가듯 틀어지며 회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무릎을 타고 골반으로 올라왔다.
단단히 뿌리박은 왼쪽을 지나 오른쪽 골반이 마치 앞으로 튕기 듯 뒤틀어졌다.
왼쪽 상체 역시 뒤로 당겨졌다. 하지만 반대로 튕겨 나가는 오른쪽 골반을 따라 오른쪽 가슴과 어깨가 앞으로 쏘아졌다.
투콰콰콰콰!
동시에 오른 어깨를 따라 쏘아진 손에는 그가 쥐고 있던 창대가 마치 강선을 따라 쏘아진 탄두처럼 회전하며 날아오는 적을 향해 아까와 마찬가지로 뻗어나갔다.
아까 창끝을 맞춘 것이 마치 우연이 아니라고 증명하듯 날아드는 적의 창끝을 향해 말이다.
쩌어어어어엉!
“와악!”
고빈은 순간 을지부루의 애완늑대 멍멍이 등위에서 퉁겨져 날아갈 뻔했다.
둘이 만들어 낸 충돌의 여파로 몸을 고정하던 안전띠마저 뜯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고, 고맙다. 그런데 좀 놔주라. 누가 보면 네가 날 잡아먹는 줄 알겠다.”
빈의 몸뚱이의 절반은 거대 늑대형 마수의 입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드래곤볼이나 원펀맨도 아니고…….”
둘이 격돌한 곳은 마치 탄도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에 있던 적들이나 아군들이나 충돌의 여파에 밀려 나자빠져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빈은 천유화의 존재부터 찾았다.
“휴우.”
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유화가 창대를 내지른 채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있는 것은 처음 있던 자리보다 한 이십여 미터는 더 밀려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천천히 한 바퀴 뒤로 돌며 바닥으로 내려서는 상대편 마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쿠웅!
그가 내려앉으며 입을 열었다.
-용병 나부랭이치고는 꽤 하는구나.
그러자 천천히 창대를 거두며 천유화가 화답했다.
“씨발라먹을 수박 같은 새퀴가 뭔 헛소리야?”
-음? 무슨 소리지?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구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 굳이 알려 하지 마.”
-사자의 군단 제3군단장이며 마창의 주인 니블마인이다. 네놈에게 존재를 밝힐 수 있도록 하락하지. 네놈의 이름은?
제법 거창하게 외친 마족 군단장 니블마인의 말에 천유화가 입을 열었다.
“안 가르쳐 준다. 계속 궁금하다가 복장이나 터져 뒈져라.”
천유화가 히죽 웃었다.
빈도 웃었다.
심지어 배까지 잡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