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버러지 같은 게!
마족병들을 지휘하던 중급 마족이 코끼리를 닮은 마물을 타고 기다란 창대를 휘둘렀다.
퍼퍼퍽!
그의 창대가 휘둘러지며 마갑주 병의 몸뚱이가 마치 쓸려나가듯 튕겨 나갔다.
그중 하나는 운이 나빠 끝에 달린 창날에 그대로 몸통이 쩍 갈라진 채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 모습에 오히려 중급 마족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걸 버텨?
날아간 대여섯 명 중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 그것만으로도 마치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적 처리가 된 갑주인 듯합니다! 게다가 놈들에게서 군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마족병중 하나가 굳은 얼굴로 보고를 올리자 중급 마족은 오히려 열을 내며 나아갔다.
-감히! 같잖은 쇳조각 걸쳐 입고 덤빈다고?
오히려 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나아갔다.
“작살 준비해!”
강문호 중령은 지휘관 중 하나로 보이는 마족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에 이쪽 마갑주병들이 계속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또 한 명의 마갑주병이 창대에 복부를 찔린 채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가 날아갔다.
강문호 중령의 외침에 이미 몇몇이 달려와 등에 매달려 있던 작살총을 뽑아 들었다.
그 동시에 주변의 말 갑옷 병들이 일시에 뛰쳐나가며, 적 지휘관 주변의 마족병들을 밀어내었다.
“쏴!”
누군가가 먼저 달려 나가며 외치자 사방에서 작살총이 발사되었다.
퉁! 투투퉁! 퉁!
사방에서 날아간 작살총이 지휘관이 타고 있는 마물의 몸뚱이에 그대로 날아가 박혔다.
그와 동시에 작살에 연결된 끈을 잡은 병사들이 일제히 그것을 잡고 달렸다.
그러자 대형 마물의 다리가 끈에 묶이며 비명과 함께 기울기 시작했다.
-버러지들이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이를 악물은 중급 마족이 쓰러지는 대형 마물의 위에서 몸을 날렸다.
그때 다시 무언가가 연달아 쏘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펑펑펑!
세 방향에서 쏘아진 것 중 한 개는 그대로 스쳐 날아갔지만, 나머지 두 개는 몸을 날린 중급 마족을 휘감았다.
촤라라락!
-이 빌어먹을 것들이!
중급 마족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의 몸을 휘감은 것은 바로 그 물총이었던 것이다.
물론 중급 마족은 그대로 날아 내리며 그물을 잡아 뜯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족했던 모양이었다.
뒤에서 달려온 마갑주병들이 일제히 창날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콰작! 콱!
대마물용 금속으로 코팅이 된 덕인지 아니면 마갑주가 주는 힘 덕분인지 그들이 찌른 창날은 중급 마족의 몸통에 틀어박히기에 충분했다.
-크으아아악!
순간 고통과 치욕 때문에 중급 마족이 비명과 분노가 섞인 외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외침은 곧 가려졌다.
투퍼퍼퍽!
이어서 또 다른 마갑주병이 작살총을 그에게 쏘았다.
그리고는 대형 마물처럼 맴돌아 달리며 그의 다리를 휘감자, 몸에 박힌 창대를 잘라내던 중급 마족의 몸뚱이가 그대로 기울어졌다.
그가 쓰러지는 순간 마갑주병이 야삽형 도끼를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조져!”
-가, 감히!
퍼퍼펑!
중급 마족이 손을 뻗자 제일 먼저 뛰어들었던 마갑주병이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달려드는 이들은 그 하나가 아니었다.
콰작!
-크아악!
이번에는 정말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또다시 손을 뻗으며 마력을 쏘아내려고 펼친 중급 마족의 커다란 손의 손가락 사이를 도끼가 가르고 틀어박힌 것이다.
손바닥이 두 개라도 된 것처럼 쩍 갈라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마치 미친놈들처럼 달려는 마갑주병들이 일제히 쓰러져 있는 중급 마족을 향해 무기들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 퍼퍽! 퍽! 퍼퍼퍽!
이를 악물고 내려치는 그들의 주변으로 보랏빛이 감도는 중급 마족의 핏물이 마치 사방에 뿌려지는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마족 특유의 울림이 느껴지는 음성도 비명도 없었다.
가끔 마갑주병이 바둥거리는 중급 마족의 몸부림에 밀려나기는 했지만, 이내 달려들어 연신 무기를 내려쳤다.
3m가 넘어가는 큰 체구인 만큼 달려들어 때릴 곳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숨통만 끊어! 전쟁은 이제 시작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던 마갑주병들은 다시 몸을 돌려 나아갔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처참한 몰골의 중급 마족이 헐떡이고 있었다.
팔다리가 다 다져져 잘려 나갔음에도 가슴에 기복이 남아 있었다.
그런 중급 마족에게 다가온 마갑주병이 마치 무당이 굿할 때 타는 작두를 연상하게 하는 커다란 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말을 하려 하는 중급 마족의 목줄기에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어른 몸통만 한 머리통이 그대로 데구르르 굴렀다.
가슴의 기복은 점점 멈추어갔다.
그 위를 마갑주병들이 밟고 지나가며 새로운 적들을 향해 내달렸다.
* * *
전장의 마법사가 보낸 화면을 보던 대군주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호기심이 어린 음성을 뱉었다.
-호오? 벌써?
갑주를 입은 형태의 병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소환자라 불리는 이들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오르그의 감탄에 회유와 교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이 입을 열었다.
-벌써 은총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했습니다.
-그렇지. 신기하군. 우리야 처음부터 허락된 존재. 허나 다른 존재가 저렇게 은총을 빠르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마룡의 군주가 그래도 빠르게 은총을 활용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말이야.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보충 설명하듯 대답했다.
-그래도 마룡은 그 태생 자체가 용언과 마법의 생물인 만큼 이상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이런 경우는 특이점이기는 하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이 꽤 잘 활용한 듯하군. 우리와 다르게 말이지.
-그래봐야 하급 마족병을 조금 넘는 수준일 따름입니다. 영향력 탓인지 수도 적고 말입니다.
그때 한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폄하하듯 말했다.
-뭐 숫자는 무의미하긴 하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하지. 하긴 마룡의 일족을 제외하면 마족이 아닌 존재가 군주가 된 것은 아니지, 침략지의 존재가 군주가 된 것은 처음이니까.
-심지어 별의 부스러기가 그런 힘을 얻은 것 역시도 처음이지 않겠습니까?
마켈그로이언의 대답에 기오르그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것도 그렇구나! 이거 말만 맞으면 함께 놀아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거 같은데?
기오르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을 하자 주변의 마족들이 술렁였다.
그때 마켈그로이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마켈그로이언은 을지부루를 처치하고, 그 군주의 자격을 가지려고 하는 사령관급 최상위 마족들을 언급한 것이다.
그것을 허락하며 그들을 보낸 것은 바로 기오르그였기 때문이었다.
-응? 아, 아. 그래. 기회를 잡으라 보내놓고 그러면 안되긴 하지. 맞아. 그랬지.
기오르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켈그로이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이지만, 도전을 이겨낸다면 그때는 한번 권유를 해보시지요.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주변 마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굴러들어온 돌인 마켈그로이언과 달리 그들은 어쨌든 함께 싸워온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의 말이 영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가 군주인 것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오! 역시 좋은 판단이야. 재미있어. 그쪽으로는 확실히 좋은 의견을 잘 내는군.
-감사합니다.
용병들을 이끌며 이 자리까지 온 것이 마켈그로이언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생각의 전환이 유연한 것을 기오르그가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을 입고 있는 듯합니다.
-마법사들을 동원한 건가?
-그래 보이긴 한데.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이쪽의 능력과 합친 듯 하기도 하고. 여하간 이쪽 존재들이 손재주는 좋은 느낌입니다.
-마법 이외에도 저런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한 세상이지 않나?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비슷한 문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곳은 그런 부분이 극도로 발달 된 게 차후에 하나씩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듯하옵니다.
-그래. 기대되는군. 큭큭큭큭큭!
기오르그가 어깨를 흔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 * *
트레일바니어는 금방 터져나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귀찮은 짓만 하게 만드는군.
그 역시 사령관급 마족임에도 군주의 죽음과 함께 종속된 탓에 중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 결과 다른 최상급 마족들이 군주의 기회를 얻기 위해 나아가는 이 상황에서도 이런 의미 없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손을 뿌리자 땅거죽이 뒤집히며 비명과 함께 차령과 군인들이 솟구쳤다.
물론 부서지고 찢긴 채였다.
가끔 뭔가가 날아와 따끔거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미 익숙한 공격일 뿐이었다.
물론 이전이라면 따끔한 느낌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이었다.
손을 휘처어 부수고 부수어도 달려들었다.
양손을 뻗자 전격으로 만들어진 그물이 만들어졌다.
그 사이로 날아들던 드론들이 일제히 약에 취한 모기들마냥 떨어지거나 그대로 터져나갔다.
그 와중에 함께 뒤섞여 날아든 헬기들은 전격에도 버텨내며 그에게 계속 따가움을 선사했다.
퍼퍼퍽!
-이건 좀 짜증이 넘치는군.
그중에 일부는 몸에 꽤나 충격을 주며 틀어박혀 왔다.
인상을 찌푸린 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헬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주변을 돌며 공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트레일바니어의 주변으로 시퍼런 얼음창이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그 수는 수십 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귀찮구나.
이내 쏘아진 얼음창들이 하늘을 오가며 귀찮게 구는 것들을 향해 일제히 쏘아져 나갔다.
파창! 파차창!
날아가는 얼음창들의 일부는 무언가에 맞았는지 일부는 그대로 깨어져 나갔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들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회피를 시도하는 헬기들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펑! 퍼펑!
헬기들이 연이어 폭발음을 울리고 있었다.
일부 굼뜬 대형헬기들은 무언가가 펼쳐지며 피격을 피하기도했다. 그것들은 마족 마법사가 선탑한 것들이었다.
-클, 일족의 배신자들이 좀 있다더니.
그 역시 마룡의 일족이었다.
그렇기에 마룡의 군주가 쓰러지는 순간 일부 탑을 넘었던 군단과 병력이 마수의 군주에게 충성했음을 알고 있었다.
방금 죽음을 면한 것은 바로 그런 이들의 일부라 생각했다.
왜냐면 그의 얼음창을 막은 것은 마족 마법사들이 기본적으로 펼치는 방어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를 향해 꽤 큰 존재감이 쏘아지는 것을 느꼈다.
-흐음?
트레일바니어가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본 방향에는 마족 마법사들이 허공에 뜬 채로 그를 향해 존재감을 쏘아내고 있었다.
-누구냐? 네놈은.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카르탈마니어는 아니었다.
같은 사령관급이었기에 모르지도 않았지만, 그는 마룡족이면서도 전사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더 구분되었다.
지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이는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나를 도발하는 거지?
트레일바니어가 어이없다는 듯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는 마룡족에서도 최고의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