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백병전
콰콰콰쾅!
다행히 대형 마물 킹콩이 그대로 방패 위에서 한 번 퉁겨지더니 방진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크허어어엉!
밀집 방진을 무너트리지 못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볼썽사납게 옆으로 굴러떨어진 것 때문인지 킹콩은 괴성을 내지르며 긴 팔을 휘저었다.
거의 키 크기와 비등한 팔 길이다. 십여 미터에 육박하는 팔이 그대로 바닥을 쓸 듯이 휘둘러지며 방진을 후려갈겼다.
떠어엉!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는지, 순간적으로 방진이 통째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그러나 대형 마물인 킹콩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날아와 떨어지며 받은 충격에 방진 밖으로 내밀어져 있던 창날에 휘두르던 팔이 꿰이며 핏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킹콩은 연신 두 주먹을 말아쥐고 양손으로 그대로 방진 위를 내리찍었다.
쾅쾅쾅!
연신 굉음이 울렸지만, 밀집 방진은 처음 밀려 나갔을 때를 제외하면 마치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할 정도로 단단함을 유지했다.
그 와중에 창날을 뻗어 킹콩의 다리에 구멍을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밀집 방진을 따라오던 군인들이 일제히 집중사격을 했다.
대구경 탄을 쏟아붓고 뒤따라온 경운기에 탑재된 고정식 대형화살이 날아가 틀어박히자 이내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에 고무된 군인들이 환한 얼굴을 할 때였다.
콰아앙!
무언가 떨어져 내린 듯 굉음이 울리자 순간 반경 사오십여 미터의 병력이 일제히 뒤로 튕기듯 나자빠졌다.
“어으윽…….”
땅바닥을 구르던 군인 중 하나가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떡 벌려야만 했다.
“어…….”
“이, 이게 무슨…….”
“뒤, 뒤로 빠져!”
당황에 찬 음성들이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공통점은 당장 피해야 한다는 감정이 담긴 목소리들이었다.
-쯧. 덩치가 아깝군.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게끔 만드는 음울함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밀집 방진 한가운데에 떨어져 내린 마족의 주변으로 빛무리가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대형 마물인 킹콩이 떨어져 내렸을 때도 멀쩡했던 로마 군단병 방진이 말이다.
심지어 체구가 크기는 했지만, 4m나 될 듯한 비교적 작은 크기의 마족이 떨어져 내린 결과였다.
-시끄럽구나.
그 마족은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손을 휙 하고 쓸어버렸다.
그러자 마치 쌍팔년도식 특수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이 휘저어지는 방향의 땅들이 일제히 뒤집히며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물론 그 반향은 쌍팔년도 특수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땅은 물론이고 그 반경에 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나간 것이다.
사람의 몸뚱이고 기계화군단의 장비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터트려버린 것이다.
그 중에게는 피하라 외치던 이도 있었고, 강림자들도 있었다.
그 마족은 이내 반대편으로 손을 쓸었다.
“공격!”
밀집 방진이 와해 되었지만, 로마 군단병 강림자들은 커다란 방패와 글라디우스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족이 손에서 빛무리가 모이며 3m가 넘는 장검이 들려졌다. 그것을 그는 그대로 좌에서 우로 휘둘렀다.
서거거걱!
그 영향권 안에 있던 로마 군단병들의 몸뚱이가 화르르하고 무너졌다.
단단해 보이던 방패들은 아무런 보호를 해 주지 못했다.
방패들 역시 허무하게 잘려 나간 채 바닥에 나뒹굴다가 강림자들을 따라 빛무리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쯧, 어딜 가나 조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는 버러지들은 있기 마련이지. 마물 먹이 외에는 의미 없는 것들을 왜 굳이 기르시겠다는 건지.
마족은 영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듯 이리저리 칼을 휘둘렀다.
칼은 3m 정도였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이라도 있는지 그 칼끝이 향하는 방향의 모든 것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 영역에는 방패도 쇳덩이도 공평했다.
퉁퉁퉁퉁!
그러나 당하는 쪽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탄이 그의 주변을 두들겼다.
-쯧. 도망을 가도 모자랄 판에.
그의 몸 주변에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는 듯 잠시 보랏빛 반 투명한 점이 몇몇 곳 만들어지다가 사라졌다.
조금 전 날아온 대 마물용 탄을 퉁겨낸 것인 모양이었다.
쐐에엑!
그때 드론 여러 기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자 마족은 간단하게 손만 뻗었다.
퍼퍼퍼펑!
손을 뻗자 날아들던 드론들이 일제히 허공에서 폭발하며 사방으로 잔해를 뿌렸다.
이어서 조금 전 대형 마물의 몸뚱이에 날아들었던 대형화살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비록 대형 마물에 비해 작다고는 하지만 4m에 달하는 신장은 눈에 띄는 표적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의미가 없었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텅 빈 허공을 대형화살들이 스치고 지나간 사이 그 마족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또 다른 강림자들과 군인들이 뭉쳐 있는 곳이었다.
-갈 길이 바쁘구나.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다시 벌레라도 쫓듯 장검을 휘휘 휘둘렀다.
그렇게 강림자건, 군인이건 자르고 밟고 터트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 저것들은 대체?”
마치 대침식 초기를 연상케 하는 존재의 등장에 지휘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저거 아무래도?”
“사령관급 같습니다.”
차준우 사령관의 중얼거림에 참모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최상급과 상급의 귀족급 마족입니다.
그때 마족 마법사 하나가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으음.”
사령관급이라 부르는 것들.
침식균열에서 나타난 사령관급이라 명명한 것을 최초로 쓰러트렸다고 환호한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것도 전 세계 최초.
그 말은 그전에는 단 한 번도 쓰러트려 본 적이 없는 존재가 바로 저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귀족급 마족이라는 존재가 별도로 존재했다.
마족으로써 자신의 권능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의 존재가 바로 귀족 급이라 명명된 것들이다.
빠르면 상급부터 보통은 최상급이라 분류된 마족들.
강함이 기준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권능의 발현이 기준인 것이 더 많았다.
거기에 상위의 개념이 이명이 붙는다는 것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군주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했다.
“대체 몇 놈이나…….”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가 대여섯 개체가 떨어져 내린 것이다.
-문제는 저들은 이미 무너진 군주의 종속들이라는 점입니다.
마족 마법사의 말에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진짜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진짜라니?”
-대 군주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직속들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던 마족 마법사가 흠칫하더니 한 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가 그려낸 원안에 영상이 비쳤다.
-이들…….
마물과 마족병들을 헤치고 천천히 나아오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전진해 오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장군님쪽 영상 좀 비춰보게.”
차 사령관의 말에 잠시 뒤에 한 영상이 지휘 차량의 모니터에 비쳤다.
“오는군…….”
기오르그의 권속들이 을지부루와 이쪽 주력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오는 듯 말이다.
“타, 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물러서지마! 교대하라고!”
탄은 무한정으로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한두 방 맞아서 쓰러지지도 않는 마물에게 아껴 쏠 수도 없는 법이다.
화끈한 화력을 쏟아낸 덕에 남은 것들은 2m의 기준이 넘어가는 중대형급들이다.
소총 형태의 대마물 총기는 이제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었다.
최소한 20mm나 40mm 유탄과 유사한 것들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그런 것으로 제대로 화력을 쏟을 수 있는 것들은 경운기를 개조한 차량 뒤에 실린 고속 유탄발사기와 유사한 대마물형 대구경 총기나 기계식 대형 석궁 형태의 투사체들만이 의미가 있었다.
문제는 그것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족병들은 마물들과 달랐다. 한 대 뭉쳐서 전술적인 움직임으로 이쪽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강림자들이 전위를 맡아 준 덕에 조금이나마 숫자로 밀어 붙여 나가고 있었지만, 갑자기 떨어져 내린 규격 외의 존재들에 의해 후방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보급선이 끊어지고 병력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일부 군인들은 마치 정육 시장에서 토막이 난 고깃덩이들이 마냥 잘려 나간 아군을 보며 정신이 나가 멍하니 울고만 있었다.
또 누구는 괴성을 내지르며 전진해 나가는 방향의 반대로 뛰었다.
무기고 뭐고 다 던진 채 말이다.
죽음이라는 현실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바다다당!
그 사이로 바이크를 탄 기동대원들이 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대열이 무너진 지금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육중한 발걸음 소리들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가자아아!”
강문호 중령이 그 선두에서 내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야삽이라 불리는 형태의 단병 무기를 양손에 쥐고 내달려오는 이들.
정확히 말하면 양날 도끼에 가까우면서 공병삽의 형태를 가진 무기다.
그걸 들고 내달려오기 시작한 이들은 모두 특이한 갑주들을 입고 있었다.
마갑주를 입은 병력들이 드디어 투입된 것이다.
전국적인 헌혈을 통해 계속 만들어낸 마갑주들을 입은 그들을 드디어 투입한 것이다.
원래라면 저들의 수장이 나타나면 그때 투입하여 시간을 끌기 위해 준비된 병력이었지만, 그때까지 아낄 수 없다는 판단하에 차준우 사령관이 투입한 것이다.
저들의 전력은 하나하나가 최소한 마족병에 근소 우위를 지닌다고 판단되었다.
마갑주를 입지 않은 이들의 능력은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았다지만, 일반 마족병에 비해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입수해온 소울아머를 기반으로 개발한 마갑주는 다행히 그 성능이 좋아 신체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된 병력 오천이 대지를 가르며 내달렸다.
“후욱! 훅! 훅!”
강문호 중령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숨을 몰 아쉬었다.
숨이 차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곧 있을 백병전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점 다가가면서 처참한 전장이 눈에 들어오면서 흥분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던 이들이 걸레짝처럼 찢겨서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도 마족병이 창대에 사람을 꽂아 이리저리 휘두르다 던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싹 다 조져주마!”
빠득 하고 이를 간 강문호가 그대로 속도를 올려 무기를 휘둘렀다.
강문호 중령이 휘두른 야삽형 토끼는 그대로 마족병이 막기 위해 들어 올린 칼날을 자르고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콰작!
뼈가 부수어지는 느낌과 파열음이 그대로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동시에 배운 대로 발로 상대방의 몸뚱이를 밀어 차내자 뒤따라 온 아군들이 그대로 나자빠지는 마족병의 몸뚱이를 난도질하고 나아갔다.
“죽여!”
누군가는 전쟁 중에 죽이니 살리니 하는 영화를 보고 농담을 던졌다.
저 상황에서 말이 되나?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달랐다. 그 외침들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쪼개!”
“죽여!”
“개 같은……!”
마치 스스로에게 던지는 외침 같았다.
난 용맹하다.
무섭지 않다.
잘 하고 있다.
스스로를 세뇌하듯 짧게 욕을 버무려 외치며 마갑주병들은 그렇게 백병전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