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김경징의 촉
* * *
후욱 후욱!
어디선가 들려오는 숨소리가 거칠다.
키에에!
마물의 비명소리.
차량에 타고 있을 때와 지금은 또 달랐다.
차가 뒤집히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타고 다닐 차량도 없었다.
남은 건 오로지 두 발.
마치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손에 쥔 소총을 움켜쥐고는 주변을 슬쩍 돌아봤다.
우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선임의 시선이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새끼 빠져 가지고.”
웃으며 말하는 선임 최동찬 상병의 얼굴을 본 박상일 일병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푸히!”
“웃어? 넌 웃음이 나오냐?”
“아뇨. 지릴 거 같습니다. 그런데……박 상병님 보니까 흐흐.”
자신을 보고 웃긴다는 말에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 미쳤나 이게?”
“아뇨. 미쳐서라기보단 박 상병님은 저처럼 떨지 않을 거 같았지 말입니다.”
“뭐?”
“우리 중대 소친병 아닙니까.”
“그거 소대장 친구 병사냐?”
“흐흐흐.”
최동찬 상병은 중대에서도 잘 나가는 병사다. 축구면 축구, 작업이면 작업, 주특기면 주특기…….
모두가 알아주는 병사다.
전투력 측정에서도 특급전사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이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떠는구나 싶었던 거다.
“히히!”
“크크크!”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다들 비슷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씨파, 나라고 안 무섭겠냐?”
최동찬 상병의 말에 잠시나마 흘렀던 웃음이 사라졌다.
“옛날에 머스킷 시대에 줄지어서 걸어가 화승 땅기던 양반들은 대체 얼마나 배짱이 좋은 거냐?”
최동찬 상병의 말에 박상일 일병이 대꾸했다.
“에이. 그래도 그 양반들은 같은 사람이랑 싸웠습니다. 우리가 더 대단한 겁니다.”
박상일 일병의 말에 최동찬 상병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씨바. 그건 인정.”
“쌉인정이지 말입니다.”
몇몇이 또 동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일과 마치면 내가 피엑스에서 월급 턴다.”
“오오오오!”
최동찬 상병의 회식 선언에 다들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를 보며 처음에 웃음을 터트렸던 박상일 일병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전쟁의 끝은 승리 아니면 패배다.
그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지금이라도 원하는 병사는 후방으로 빼준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자신도 똑같이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농담을 던져주는 그를 보며 마음이 든든했다.
“이거 영화의 한 장면 아닙니까?”
박상일 일병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거 있잖습니까. 원래 영화 주인공들은 이렇게 전투 직전에 농담 따먹기도 하잖습니까.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꽤 디테일 있는 거지 않습니까?”
“새끼. 그래. 내가 주인공이다.”
그렇게 말하며 박상일 상병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니 나만 믿어라. 원래 주연 주변에 묻어가는 조연들은 다 산다.”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의 말이 맞기를 기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씀다!”
시작했다.
전진을 시작한 것이다.
“준비해라. 나자빠지지 말고, 뒤처지지 말고.”
약간의 긴장이 풀리자 다시 든든한 선임으로 돌아온 그를 따라 분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퓨켈의 몸뚱이로 창날이 날아와 연달아 틀어박혔다. 퓨켈이 비명을 내지르며 희미한 빛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즈음 을지부루의 몸뚱이가 하늘을 날았다.
부와아아악!
세상을 쪼갤 듯이 내리그어진 대부가 선두에서 마치 전차와 같은 역할을 하던 대형 마물의 몸뚱이를 그대로 아래로 절단하였다.
“뜨듯하네!”
색은 비록 보랏빛이 감돌기는 했지만, 잘려 나간 몸통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은 따듯한 모양이었다.
마치 따듯한 목욕물이라도 한바가지 끼얹은 사람 마냥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양옆으로 쪼개져 가는 대형 마물의 가랑이 사이를 마치 개선문이라도 통과하듯 당당하게 나아갔다.
-죽여라!
-군주가 될 기회다!
그런 부루를 본 마족병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길티! 용감하니 얼마나 됴아?”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부루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좋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끼에에엑!”
마물도 아닌 것이 뒤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고빈이었다.
물론 비명과 함께 도망가지는 않았다.
마치 죽지 못해 싸우는 느낌이지만, 그렇게 몰려드는 마족병들을 상대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용감한 거다.
빈의 성장이 기꺼운 부루는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가 덤벼드는 마족병들을 맞이했다.
터억!
내지르는 창대를 잡아챈 부루가 그대로 팔을 뒤쪽으로 휘둘렀다.
-끼에에에!
빈의 괴랄한 비명과 달리 진짜배기 비명과 함께 마족병 하나가 뒤로 날아갔다.
이어 빼앗은 창대를 그대로 휘 돌리며 앞을 쓸었다.
뻐버벅! 콰작!
서너 명의 몸뚱이를 그대로 작살을 내며 창대는 그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부실한 창대보단 더 든든한 무기가 부루에게 있었다.
부러진 창대를 집어던져 마족병의 몸뚱이에 박아넣음과 동시에 부루는 자신의 대부를 양손으로 단단히 그러쥐었다.
그리고는 대부를 좌우로 무한의 표식을 그리듯 휘둘렀다.
콰콰콱!
팔다리가 떠오르고 수급이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크게 한 바퀴 돌며 대부와 부루가 원을 그리면 허리부터 양단이 된 마족병들의 몸뚱이가 볏단처럼 미끄러지며 후두둑 분리되어 떨어졌다.
그 주변으로 천유화와 묵갑귀마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귀찮다! 대가리 불러라! 대가리!”
유화와 귀마대원들은 그 말마따나 잡졸들 따윈 귀찮다는 듯 환두대도를 휘두르며 나아갔다.
그 사이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가 또 있었다.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기이하게 생긴 창이 휘둘러지자 마족병 중에서도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중급 마족의 몸뚱이가 쩍 갈라졌다.
“불러와라아아!”
마치 앞에서 한 말을 따라 하듯 외치기 시작하는 이는 바로 여포 봉선이었다.
그의 방천화극이 휘둘러질 때마다 십여 개의 수급이 하늘로 치솟았다.
양민 학살력만큼은 부루에 못지않았다.
달리 영웅급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의 실력을 보여주는 강림자가 있었다.
“이야아아아!”
그건 바로 구도원의 강림자인 김경징이었다.
영웅급의 인지력이었지만, 그 전투력은 떨어진다는 바로 그 김경징이었다.
최근에는 항상 피해야 하오만 외치던 탓에 도주는 칼각이며 레전드급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그였다.
그런 김경징이 오늘은 웬일로 죽어라 싸우고 있었다.
사실 그가 다른 영웅급 강림자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리 약한 강림자가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모습에 전신 길드장인 임병화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김경징씨가 웬일로 저렇게 처절하게 싸워?”
“그러게. 자라 새끼처럼 항상 대가리 처박더니만.”
병화의 말에 장웨이가 맞장구를 치듯 대답했다. 그런 둘을 보며 김경징이 쓰러트린 마물에 칼을 박아넣던 구도원이 투덜거렸다.
“젠장!”
“왜, 칭찬이구만.”
물론 반은 장난기 있는 말이었지만, 사실 칭찬은 맞았다.
그러나 정작 그 소환자는 뭔가 쪽팔리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처지면 죽을 각이 더 선답디다.”
“뭐?”
도원의 말에 병화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장웨이 또한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죽을 각?”
“어딜 가도 살길은 없으니 이럴 땐 제일 쎈 사람 주변에 있는 게 오히려 낫다고 저 지랄인 거지. 등잔 밑이 어쩌니 하면서…….”
도원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던 병화가 고개를 내저으며 김경징을 다시 바라보았다.
김경징은 신건길드 소속 강림자들을 직접 지휘까지 하며 맹렬하게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용맹한 장수 그 자체였다.
상대방 입장에선 질릴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이래서 싸우더라도 살길은 하나 만들어 놔야 한다는 건가?”
살 구멍을 막아놓은 곳에 던져진 김경징의 활약에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병화의 중얼거림에 장웨이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 만약 여기에도 그런 구멍이 있었으면 아마 저렇게 잘 싸우는지도 몰랐겠군. 벌써 그리로 도주했을 것이니까.”
장웨이의 말에 도원은 이를 악물고 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 진짜 저런 꼴은 처음이네.’
그래도 처음에는 마음을 알아주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튈 곳은 없소! 사방이 울부짖고 있소이다!’
‘왜 이래? 재수 없게.’
‘이겨야 사는 전쟁이오! 이겨야!’
그 이후로 저렇게 날뛰고 있었다.
역사에서 살기 위해 튀고 또 튀다가 최후를 맞이한 이답게 기가막히게 살 곳을 찾아내던 김경징이었다.
그런 그가 저렇게 미친놈마냥 잘 싸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 전쟁은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씨바, 그래도 저 양반 이걸로 역사에 나왔던 꼴사나운 최후는 덮어지겠네.”
도원이 웃음 지었다.
그리고 무기를 단단히 쥐고 그 곁으로 달려 나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도…….”
승부조작이라는 주홍글씨도 이것으로 조금은 흐려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아 보았다.
그렇게 김경징과 나란히 무기를 휘두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도원은 웃었다.
왠지 지금, 이 순간 그의 강림자가 그 어떤 때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큭.”
자신도 모르게 김경징과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에게 김경징이 답했다.
“왜 여기까지 쳐 나와 쪼개고 있소! 그대가 뒈지면 나도 쫑이오! 대가리가 있으면 적당히 사리며 좀 싸우시오!”
“…….”
김경징이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렬하게 피력하며 외쳤다.
순간 충격을 먹은 그의 주변으로 병화와 장웨이가 스쳐 지나갔다.
“푸흡!”
“큽!”
짧고 강렬한 비웃음을 남기며.
그들의 비웃음 속에서 정신을 되찾은 도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박새끼!”
잠시나마 든든하게 생각했던 김경징에게 도원은 쌍욕으로 화답했다.
이탈리아 강림자들의 밀집대형은 그야말로 든든한 방패였다.
마치 땅 위에 거북선이 있다면 저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달려드는 마족병들과 마물들을 상대로 그들은 빈틈없이 막으며 사이로 낸 창으로 착실하게 학살해 나갔다.
그 덕에 그 뒤를 따르는 군인들도 안전하게 쓰러진 마족병과 마물들에게 총탄을 쏟아부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우우우웅!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비, 비행형 마물?”
마치 포탄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마물을 보며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반사적으로 마물용 탄을 쏟아부었다.
탄착군이 만들어지며 날아오는 마물의 몸뚱이에 피가 튀었다.
그런데도 날아오는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비, 비행형이 아니야! 킹콩이야!”
코드명 킹콩으로 불리는 대형 마물이었다.
물론 정말 영장류는 아니었다.
그저 원숭이처럼 긴 팔 때문에 붙은 별명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존재는 이렇게 날아 다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위험해!”
누군가가 외쳤다.
그 날아오는 킹콩이란 대형 마물이 떨어져 내리는 곳은 바로 로마군단병 밀집 방진의 머리 위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군단병들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방패를 밀집시켰다.
그 위로 십여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대형 마물 킹콩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