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차가 멈추면 걸어서 간다.
* * *
“시작됐구나…….”
판도라의 세인이 멀거니 화염이 치솟는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곁에는 제이와 레이니가 덤덤한 표정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거, 걱정마라! 니들은 내가 꼭! 지, 지켜주마!”
그녀들의 뒤에는 완전무장한 전창걸 대표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름 든든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대표님…….”
그 애처로움에 레이니가 고개를 슬슬 저었고, 제이는 그런 그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지켜주고 싶은 남자 순위 매기면 지금은 대표님이 1위 할 거 같은 건 아세요?”
“무, 무슨 소리! 이래 봬도 귀신 잡는 상근 예비역이란 말이다!”
전 대표가 나름 당당하게 외쳤지만 제이는 그런 전 대표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대표님. 어디 가서 그러지 마요. 해병대에서 명예훼손과 표절로 고소 들어와요.”
“내 말이.”
그런 전 대표를 보며 육의찬 감독이 마찬가지로 무장을 한 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세인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정말 가족들에게 안 가셔도 돼요?”
어린아이와 그 엄마들 그리고 노인들은 이미 섬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지금도 이 순간에는 계속 소개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여자들만이 아니라 중장년층 역시 소개의 대상이기는 했다. 그러나 의외로 거동에 문제가 없는 이상 다들 남아 있는 편이었다.
전쟁을 벌이는 전방에 보급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라도 전시경제는 이어져야 했다.
그것을 위한 인원들이 남은 것이다. 사실 이것도 강요는 아니었다.
이 상황이라면 국가에서 강제명령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른 국가 간의…… 아니 인간의 전쟁이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건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니까.
그럼에도 각자 자신들이 할 자리를 찾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부는 기존에 각 지역을 지키던 민방위의 임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족을 먼저 보내는 것에 다들 환호했다.
마음놓고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국가입장에선 그들을 전쟁터로 내밀 생각은 없었다.
만약에 지금 적진으로 향하는 본진이 무너지면 더는 버틸 힘이 없기에 항복을 할 가능성이 컸다.
최고의 전력으로도 이기지 못한 전쟁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다만 최소 양패구상이라던지 혹은 큰 타격을 입힌 뒤에 만에 하나 있을 전술적 후퇴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이렇게 판을 짜 놓은 것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깔끔하게 손을 드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판단을 이미 수뇌부에서는 내린 상황이었다.
물론, 이건 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전 대표나 육 감독이나 이렇게 전장에 나서 있는 것이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액션스쿨의 맴버들은 예비군으로 재입대를 하여 전장에 나아간 지 오래다.
승배와 광호등과 같이 말이다.
을지부루 역시 동의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루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배수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레이니가 불안한 얼굴로 희망을 담아 말했다.
“이기겠지?”
“응.”
“이겨야지.”
세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제이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듯 답했다.
* * *
아끼고 아끼던 전투기들마저 투입되었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미군 전투기들까지 동원된 전투였다. 물 론 큰 의미는 없었다.
그들이 날리는 것은 화약등의 장약이 빠진 멍텅구리 미사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추진체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대마물병기의 금속에 변형이 덜하고 또 마법적 처리를 통해 보존을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들이기에 위력은 적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않았어도…….”
전투기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하나둘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응체계가 점점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또 이미 문이 열린 이상 예전에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었던 침식지와 같은 현상이 문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갈 것이라는 부루 수하의 마족 마법사들의 대답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백두산 인근에서 적진을 살피던 장거리 정찰기와 드론들이 하나둘씩 신호를 잃고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이 관측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백여대의 전투기들이 먼저 길을 열 듯 미사일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쉬이익!
미사일들이 꽁무니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날아갔다.
그렇게 무겁게 달아놓은 미사일들을 쏘아보낸 전투기들이 재 출격을 위해 선회를 준비 하는 순간 그들을 향해 무언가가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치익! 빌어먹을 뭐야!
-위! 위다! 위를 봐!
-레이다에는 안 나와!
반투명의 흐릿한 비행체가 하늘에서 연신 촉수를 아래로 내리찍고 있었다.
마치 생김새가 가오리와 오징어를 합쳐놓은 듯했다.
일부 전투기들이 그것을 보고 미사일들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반투명한 몸체의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그것은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 구멍이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안 통해! 안 통한다고!
그때 무전이 들어왔다.
-가운데에 노란빛무리가 핵이라고 한다. 그 핵을 맞춰야 격추가 가능하다!
마법사들을 통해 대응 방식을 전해 들었지만, 다들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 노랗단 말입니까! 햇빛 때문에 전부 노래 보인단 말입니다!
-락온이 불가능합니다!
약점을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종사들은 아우성이었다.
현대의 전투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자기기들을 활용한 전투에 익숙해진 현대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레이더에 아무런 추적이 안 되는 마물들을 상대하기에는 벅찼던 것이다.
-저공으로 비행해! 저공으로! 최대한 살아서 미사일을 쏟아낸다! 대응은 포기한다!
다시 명령을 전달 받았던지 한숨을 내쉰 조종수들이 일제히 기수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뒤에선 하나둘씩 아군기들의 표식이 레이더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때였다.
전방에서 뭔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백업한다. 이쪽은 우리에게 맡겨라.
꽤나 중후한 음성이었다.
아니 중후하다 못해 장년의 음성들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편대장은 바짝 군기가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고생했네 후배들.
기수를 내리고 아래로 고도를 낮추는 그들과 교대하듯이 기수를 올리고 날아오르는 것들은 바로 프로펠러가 달린 훈련기들이었다.
그 종류도 다양했다.
전투기 용도가 아닌 것들도 있었다.
그들이 하늘을 뒤덮은 가오리 비슷한 비행형 마물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 세계대전 때의 독 파이팅을 하듯 말이다.
그들은 세계대전 이후 과도기에 활동하던 조종사들이었던 것이다. 첨단에는 익숙하지 못하지만, 옛것에는 그나마 이들보단 익숙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뒤를 막아주기 시작했다.
* * *
콰콰콰콰콰!
을지부루와 그 일행들은 그대로 적진을 꿰뚫고 있었다.
포격과 드론들을 이용한 공격에 밀집대형에 균열을 만들고 그 사이로 그들이 뛰어든 것이다.
“탱크가 따로 없구나.”
“왜 전차에 비유를 했는지 알겠네…….”
뒤를 따르며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은 온몸을 갑주로 두르고 적진을 돌파하고 있는 기마들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남은 마물들은 대부분이 중대형 마물이었다.
물론 소형이나 금방 만들어진 듯한 언데드 마물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나아가면 마치 트렉터가 추수라도 하듯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정신 붙잡아!”
그 와중에 곁에서 달리던 아군 전차가 그대로 고꾸라지듯 엎어지더니 마치 장대높이뛰기라도 하듯 부러진 포구를 땅에 쳐박더니 크게 반 바퀴 돌아 그대로 처박혔다.
콰앙!
그 뒤를 따르던 차량이 비껴나 가다가 바퀴가 걸렸는지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웨엑!”
“정신 차리라고!”
그 중에는 안전고리가 독이 되었는지 몸뚱이가 일부 뜯겨져 나가 죽음을 맞이한 아군들도 눈에 들어왔다.
언제봐도 익숙지 않아서일까.
일부 병사들은 계속 토사물을 게워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들 부루가 만들어낸 길을 따라 이동해 나갔다.
이제는 아군보단 마물들의 사체가 더 눈에 들어왔다.
콰앙!
하지만, 차량의 한계가 드디어 찾아왔다.
전날까지라면 이쯤되면 차량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하차! 하차!”
“빨리 움직여!”
하차하란 말에 다들 차량에서 뛰어 내렸다.
등에는 가스탱크를 매고 마치 고스트 버스터즈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물론 무기를 들고 뛰어 내렸다.
물론 형태는 단순했다.
마치 2차 대전 말기 영국에서 찍어내던 스텐건 마냥 말이다.
당기면 쏘아진다.
그게 전부다.
차량에서 내리던 군인들은 일제히 엄폐를 한뒤에 손난로들을 흔들었다.
촤촤촤촤촤촤!
가스식의 단점은 온도가 낮아지면 탄속이 안나오거나 총알이 날아가는데 있어 극도로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휴대용 손난로란 손난로를 모두 모아 투입시켰다.
시간이 있다면야 더 좋은 수를 냈겠지만, 지금은 이것도 한계다.
그럼에도 군인들은 불평 불만 없이 압축가스를 맨 배낭에 그렇게 흔들어댄 손난로를 끼워 넣었다.
“각 분대별로 전진!”
“전진!”
“화망을 구성한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군인들이 보병으로 구성된 소환자들의 뒤를 따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대만이나 중국쪽은 이런 거 말고 제대로 된 대 마물 병기도 있다던데.”
“거긴 에어 소프트 강국이니까. 말해 뭐해. 우리나라 이쪽 산업 다 망했잖아. 그놈의 해괴한 규제 때문에. 그러니 당연히 이런 게 최선이지.”
그렇게 말하며 초반에 다 소모된 덕에 스텐건 사돈의 팔촌 같은 디자인의 무기를 들어 보였다.
그나마 제대로 만든 것들은 이미 전날 전투에 투입되어 다 작살 났다.
내구성에서 한계가 있었고, 또 숫자에도 턱없었으니까.
“분대 약진 앞으로!”
마치 각개전투에서나 쓸법한 외침과 함께 군인들이 일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환자들이 싸우는 마물들을 향해 원거리 딜러가 딜을 넣듯 화망을 구성하며 마물용 탄환들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투터터터터!
“빨리 내려! 빨리!”
경운기들이 커다란 트럭 뒤에서 연이어 하차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경운기 뒤에는 고정된 석궁 같은 것들이 달려 있었다.
석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석궁이 맞았다.
기계식 석궁이지만 장전은 자동으로 하게끔 개조된 물건이었다.
콩알만한 대 마물탄환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저지력을 보충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전국에서 끌어온 경운기들이 다 여기 집결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차량으로는 더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상한 이상 이게 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람이 겨누고 쏘기에는 차라리 경운기의 속도가 더 나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들의 뒤쪽으로는 강림자로 보이는 이들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방진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방패병들이었다. 공격 능력은 떨어지지만 막는 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강림자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합을 이룬 것은 바로 양궁선수들이었다.
기계식 양궁과 화살을 채운 그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방패병들의 뒤로 섰다.
그들 뿐 아니라 석전을 주무기로 하는 강림자들과 또 다른 궁수 강림자들 역시 늘어섰다.
그렇게 전방에서 뚫고 나가는 사이 뒤쪽으로는 빠르게 전진해서 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