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미처돌아가는 세상
* * *
메케한 화염이 일렁이는 주변으로 수많은 이들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선 사내가 이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벙커에 들어가 있으면 다 안전한 줄 아나 보지?”
오기원은 비릿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쓰러져 신음하거나 이미 불에 타버린 이들은 바로 중국의 지휘부였다.
“이로써 이쪽도 더는 귀찮은 짓을 안 하겠지.”
기원은 맡은 임무를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마음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대군주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는 대체적으로 자율적인 것을 중시했다.
다만 자신의 먹잇감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먹잇감이 머뭇거리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작전에 나선 것이다.
운이 좋은 것인지 그의 군주인 회유와 교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과 그는 생각이 꽤나 잘 맞아 떨어졌다.
힘을 중시하는 마족들이지만 마켈그로이언은 그 중에서도 유별났다.
군주가 되기 전까지는 마족들에 의해 경원시 되기까지 한 존재.
용병이라는 개념으로 오로지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서 효율을 극도로 중시하는 이가 바로 마켈그로이언이었다.
그래서 상위 마족이었던 시절에 드물게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라는 특성과 이명이 발현되었다.
마켈그로이언도 꽤나 기원을 마음에 들어했다.
적은 투자로 큰 이득을 노리는 기업가적인 기원의 특성은 마켈그로이언의 방향과도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힘만을 중시하는 마족들과 다른 사고 방식은 그의 지시를 늘 만족시켰기 때문이었다.
“마무리 되었습니다.”
-빠르군. 그래도 이 세상에선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진 이들인데.
“방심이 컸겠지요. 아마 이쪽은 이대로 사분오열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다른 곳들과 달리 그곳은 꽤나 익숙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마치 대군주 아래에 서로 다른 군주들이 있는 형태니까.
비유는 마족의 형태를 따랐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침식 이후 각 군벌의 힘이 더 커져 버린 중국이었다.
그 상황에서 국가의 수반과 당 지휘부를 지금 기원이 소멸시켰으니 앞으로는 뻔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한국의 수뇌부는 놔둬도 되겠습니까?”
-그곳의 정보는 자네도 알잖은가.
“그야…….”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 지휘부를 언급했던 오기원은 아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흘렸다.
중국 쪽은 기원과 내통하는 군벌들이 있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한국 쪽은 한정적이었다.
아예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는 그저 매니저처럼 결정을 할 뿐이었다.
심지어 총리부터 해서 2순위 3순위등등 미리 쪼개놓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죽어도 문제 없이.
사실 그들의 존재의의는 전쟁후의 수습용에 가까웠다.
모든 전투상황의 통제는 전선에서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한국은 별 의미가 없기는 했다.
무엇보다 대군주인 기오르그가 거기까지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럼 저도 이만 복귀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동이 트면서 저들의 발악이 더 심해졌다는군.
“주변 상황 때문 아니겠습니까?”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원이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애 마냥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점은 칭찬하고 싶군.
“감사합니다.”
-복귀하도록. 마지막을 함께 볼 영광을 주도록 하지.
마지막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던 기원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영광입니다.”
통신이 끊어지자 기원은 잠시 자신이 멈칫했다는 것을 자각 하곤 얼굴을 굳혔다.
“멍청한. 미련 따위가 남았었나?”
스스로 던진 질문에 기원은 이어지는 미소로 답했다.
“그럴 리가.”
그가 환하게 웃으며 시체 사이를 헤쳐나갔다.
* * *
벙커 안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중국쪽의 상황을 전해 들은 탓이다.
“여러 채널에서 계속해서 복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중국 쪽 지휘체계가 무너지자 여기저기에서 차기를 외치며 장웨이와 중국쪽 소환자 전력을 복귀시켜 달라는 통보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양현재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며 전선쪽 통신을 맡은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웨이쪽은?”
“끝나고 간다고……. 지금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답이 왔습니다.”
“후우.”
“그대로 답합니까?”
장웨이의 선택을 통보하고 발을 빼자는 의미였다.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양 대통령이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알겠다고 통보해.”
그의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했다. 장웨이의 전력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그건 안 됩니다! 절대 적은 전력이 아닙니다. 심지어 전선에선 오늘…… 모든 것을 걸기로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목이 메이는 듯 울컥한 표정으로 양 대통령에게 재고 요청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늦춰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전력을 빼선 안됩니다. 심지어 방어선이 밀리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쪽도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마저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양 대통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 전력이 아니었으니 달라면 줘야지. 다만 어느쪽으로 보낼 건지 합의해 달라고 통보하게. 무슨 나란 하난데 요청 온 곳이 여섯이 넘어?”
양 대통령의 답변에 반대를 하던 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 요청이 온 곳들은 다 각기 다른 지역의 군벌들이다.
대상은 하나인데 원하는 쪽은 여섯 곳. 심지어 시간이 지나며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통보 하겠습니다.”
알아서 니들 집안 정리부터 하라는 의미였다. 충분히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도 시간을 끌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또,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분명 복귀를 시킬 때에도 사방에서 자신들에게 보내라고 외칠 것이 뻔했다.
지금만 해도 당 서열을 들먹이고, 또 고향을 들먹인다. 거기에 실무직의 지위를 언급하며 듣도 못한 후계자 지위를 외쳤다.
왕조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 대통령의 발언은 절묘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전부 의미 없는 일이란 것을 모르는 건가…….”
그렇게 중국의 요청에 답을 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 정보국 쪽 라인을 맡은 상황병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미친!”
“무슨 일인가!”
짧은 욕설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무어라 하는 이들이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인가부터 물었다.
이미 대통령부터가 쌍욕을 하는 마당이다.
그런 예의까지 챙기기에는 상황이 항상 급속도로 돌아가기에 미친짓 아니면 다 허용되고 있었다.
“내란이 벌어졌습니다!”
내란이라는 말에 양 대통령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외쳤다.
“벌써? 이 상황에서 힘으로 군벌끼리 승부를 보겠다는 건가?”
그의 외침에 상황병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중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미치겠군.”
양 대통령이 이마를 짚었다.
어쩌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조기에 진압하긴 했지만, 이 좁은 땅덩이에서도 벌써 한차례 지나간 일이었으니까.
“이 전쟁이 승리로 돌아가더라도 한동안은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겠군.”
양 대통령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이 미처 돌아가고 있었다.
* * *
-참 재미있구나.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허공에 뜬 채로 미소를 머금었다.
수많은 대군과 대군이 맞닥트리는 순간이었다.
-침식때는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단 말이지.
그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시점이 되면 일이 끝나고 그 힘을 뽑아낸다.
그게 끝.
어쩌면 침식행위는 강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마치 식사를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재미를 느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잘 싸우는 이들이라 해도 몇 번 깨지고 나면 보통은 꽁꽁 틀어박혀서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삶을 구걸한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치고 나왔다. 마치 한판 제대로 붙자는 듯. 어쩌면 마계의 전투행위와도 닮았다.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저들이 착각을 하여 시간을 끌면서, 즐거움을 희석 시키기에 약간의 자극을 해주니 이런 판이 벌어진 것이다.
-마켈그로이언이 역시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효율보단 즐거움.
그의 취향과도 딱 맞아 떨어지게 판을 까는 능력이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저 길을 뚫지도 못할 것입니다.
최상위 마족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노력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지 않겠나?
기오르그의 말에 몇몇 최상위 마족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그가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물론, 나만 즐거워 해서는 안 되겠지.
기오르그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짓던 마족들의 얼굴 위로 생기가 돌았다.
-기회는 공평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다들 흥분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그들에게도 저들을 상대할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즉 저기에 있는 야수의 군주를 쓰러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굴러들어온 돌인 마켈그로이언이 군주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기회는 사라졌다.
그런데 그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네놈들을 이기지도 못한다면 뭐 굳이 재미도 없을 것 같고 말이지.
기오르그의 말에 마족들이 서로 자신을 보내달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기오르그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을지부루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때였다.
-응?
기오르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글쎄.
마족들의 질문에 기오르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먹을 쥔 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 팔뚝을 받혀 들었다.
-이게 무엇일까? 아주 먼 거리.
눈으로는 모두가 점으로만 보일 법한 거리에서 기오르그가 본 광경이었다.
* * *
“뭐에요?”
갑자기 허공에 주먹 감자를 먹이는 을지부루를 보며 고빈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기분나쁜 아새끼가 꼬나보고 있잖네.”
그의 말에 빈이 부루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날아다니는 저 시조새들요?”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놈. 아마도 그거이 바로 기오르근가 하는 놈이갔디.”
“헐? 그렇게 가까워요? 그럼 금방 뚫고 가겠네?”
부루의 말에 빈이 환한 얼굴로 떠들자 다들 와하하 하고 웃었다.
물론 부루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는 않았다.
아주…… 아아아아주 먼 거리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목표가 생긴만큼 힘이 솟았다.
최소한 도망칠 놈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럼 슬슬 출발 하디.”
부루가 천천히 퓨켈을 몰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먼저 달려나간 차량들이 먼지구름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전날보다도 더 많은 숫자의 비행체들이 마치 메뚜기 떼마냥 뒤덮으며 날아가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
바닥이 진동했다.
전날에 미친 듯이 퍼붓던 포탄들을 다시 한 번 쏟아내는 모양이었다.
이제 더는 맞아도 죽어나갈 만한 저급한 마물은 없었지만, 마치 그들의 진군에 승리를 기원하는 축포처럼 쏘아 올린 것이다.
그 축포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마지막 진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