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여명이 밝아오고
* * *
폭음이 연달아 울리는 가운데에 소환자들과 최정예 병력들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장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애써 잠을 청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누워있는 이유는 바로 을지부루가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자라. 자는 것도 전쟁이다.’
이 말.
누군가가 말했다.
잠은 나중에라도 잘 수 있는 겁니다…….
나름 용감하게 말이다. 하지만, 부루는 그래도 자라고 했다.
이게 마지막 잠일 수도 있으니 자라고. 그리고 자야 내일을 화려하게 마무리 할 수 있지 않겠느나며 말이다.
처음에는 명령이었지만, 나중에는 왠지 모를 배려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 옛날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배불리 먹이고 하는 그런 장수들의 일화처럼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다들 전장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에 미리 지어진 막사로 들어와 몸을 누였다.
내일을 화려하게 마무리 한다는 말만으로도 어느 정도 다들 알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첫날 많은 것을 쏟아부은 전투였지만, 생각과 달리 적들의 두터운 벽을 쉽게 깰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망이 생기면 흔들고 또 흔들리고…….
그렇기에 이제 눈을 뜨면 마지막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이야기임을 다들 알 수 있었다.
처음의 작전과도 달라질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최대한 정예병력의 전력을 보존해서 목표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처음의 작전이었다면, 아마도 내일의 작전은 처음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목표물까지 끊임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자…….”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자고.
그게 지금 저 밖에서 밤을 지세며 싸우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콰쾅!
차량이 옆으로 넘어지며 안에 타고 있던 군인들이 마치 쓰러진 시루에서 튕겨나온 콩나물 마냥 매달렸다.
“일어서!”
“빨리!”
안전고리를 해체한 군인들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달려왔는지 주변으로 다가온 아군 차량이 방패막이라도 되어주려는 듯 멈추어 서있다.
의미없는 행동임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는지, 그 사이에 안전고리를 다 해제한 이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여기저기서 불타고 있는 차량을 엄폐물 삼아 방아쇠를 당겼다.
“끄응차!”
그 중에 고속 유탄발사기를 닮은 포를 차량에서 결국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 사수가 쓰러진 차량 옆에 거치를 했다.
다행히 차량에 실려있는 압축탱크는 손상이 되지 않았는지 방아 쇠를 당기자 연달아 쏘아지기 시작했다.
퉁퉁퉁퉁퉁!
콰콰쾅!
폭음이 다시 울리고 마지막까지 방아쇠를 당겼던 사수와 차량은 화염에 휩싸인 채 허공에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콰콰쾅!
누군가의 죽음이었겠지만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실시간으로 죽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방금 불꽃으로 화한 이의 다음이 자신일지 모르니 굳이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저세상에서 만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그렇게 목숨값으로 밤을 버티고 버텼다.
나아가지는 못할 망정 밀리지는 말자며 말이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치솟는 조명탄에 비춰지는 검은 하늘 속에서 점점 파란빛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알리듯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파란 빛 때문인지 흐르는 피와 뒤섞인 땅바닥에서도 비슷한 푸르름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새벽녘과 닮은 푸르름이다.
* * *
“다, 당장이라도 파견된 병력을 불러야 합니다!”
“제발 부탁 하나 하겠네.”
닉 레너드 대통령이 초췌한 얼굴로 안보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닥쳐 주게나.”
안보 보좌관이 이리 울상을 짓는 이유는 최후 방어선 마저 무너지고 인근 도시의 사람들을 소개 시키고 있는 현 상황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만한 부분은 방어선을 뒤로 물리면서 전선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넓어진 만큼 막는 쪽이 불리할 법도 하지만, 적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덕에 그나마 지금은 퇴각하는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쓴 것처럼 포를 쏟아붓는 일도 이젠 의미가 없어졌고, 또 화망을 구성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천조국의 위용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 친구들과 심지어 자기 나라가 반토막이 난 남미 친구들도 지원을 보내고 있어. 그 상황에서 빼자고? 만약에 한국이 무너지면? 우리 쪽의 탑에서 한국에 몰려있는 숫자의 절반이라도 쏠리면? 감당할 수 있고?”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안보 보좌관과 그를 부추겼던 국무위원들이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그래도 정비할 시간은 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다시 전세계의 힘을 모아…….”
“그 세계가 언제까지 우릴 믿어 줄까?”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미 표정에서 무너져 있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때 정보국의 케인 스미스 국장이 피곤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우.”
“방금 이 친구들이 한 이야기좀 들어 보겠는가?”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스미스 국장이 그대로 권총을 뽑아 안보 보좌관 뒤에 있는 국무위원 중 하나를 쏘았다.
탕!
“컥!”
“이게 무슨 짓인가!”
그가 총을 쏘는 사이 이미 대통령의 주변을 에워싼 경호원들의 총구는 스미스 국장을 향하고 있었다.
다만 레너드 대통령이 손을 들어 다음 행동을 제지하고 있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 뿐.
“죄송합니다.”
“끄으으.”
총상을 입은 국무위원이 엎어져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스미스 국장은 총을 든 손과 나머지 손을 모두 들어 올렸다.
항복하겠다는 제스추어였다.
“미친 건 아니겠지?”
스미스 국장에게 레너드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대답대신 스미스 국장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총상을 입은 국무위원을 바라보았다.
“방탄조끼라도 입으셨나? 왜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을까?”
순간 국무위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경호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국무위원의 몸뚱이가 잠시 이리저리 흔들릴 뿐 그대로 레너드 대통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퍼억!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낸 스미스 국장이 달려들던 국무위원의 머리통을 뭔가로 후려쳤다.
쩌억!
머리통이 뒤로 퉁기며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다만 그 피는 붉으면서도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스미스 국장이 들고 후려친 것은 한국군의 근접 병기였다.
그제야 경호원들이 일제히 다른 총기로 고쳐 잡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국무위원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대 마물용 탄환이 장전된 총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보국에도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레너드 대통령은 얼굴을 비비다가 안보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저, 전 아닙니다!”
“그래. 아니길 비네. 그 자리가 바뀐 지 얼마 안 되었거든.”
진심으로 아니길 비는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이었다.
* * *
잠을 잔 것인지 설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새벽 동이 터올때즈음 잠을 청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평생 잘 잠 다 잔 느낌이네.”
새벽의 어스름을 바라보며 일어난 전신 길드장 임병화가 피식하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곁에 언제 다가왔는지 신컨 길드장인 구도원이 약간은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재수없는 소릴…….”
병화의 투덜거림이 영 맘에 안 들었는지 구도원이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잘 잤고?”
그러나 병화는 그저 웃으며 잘 잤느냐 물었다.
“뭐, 못 잤어도, 못 잤다고 하면 미안하지……. 아재는 좀 잤나?”
“뭐 좋은 꿈도 꾸고 그랬지 뭐.”
“헐? 대박. 이 와중에?”
“어. 우리 마누라랑 애들이랑 소풍 가는 꿈 꿨지.”
“…….”
구도원은 싱긋 웃으며 대꾸하는 병화를 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침식이 가져온 슬픔 중 하나가 바로 가족의 상실이다.
전신길드장인 병화 역시 부인과 아이들을 잃었다.
그 때문인지 을지부루가 나타나기 전에도 항상 강림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달리며 전투에 임하던 이가 그였다.
“듣고보니 나도 우리 할매 꿈이나 꿀 걸 그랬나?”
구도원은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했던 할머니를 잃었고 말이다.
“프흐흐.”
그런 도원의 중얼거림에 병화가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갑시다. 또 아나? 착한 짓 많이 하면 못 만나는 가족들 다시 볼 수 있을지도.”
죽은 후의 세상을 그리는 듯한 도원의 말에 병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제와서 착한 짓을 어떻게 찾아서 하나?”
병화의 질문에 도원이 몸에 걸친 무장을 다잡으며 답했다.
“마물 때려 잡으면 그게 착한 일 아닌가? 시파. 이럴 줄 알았으면 승부조작같은 거 하지 말걸.”
“그러게. 왜 했냐.”
그 옛날 구도원이 소환자가 되기 전의 시절 이야기.
승부조작 프로게이머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던 그.
병화의 퉁명스런 질문에 도원이 그동안 쌍욕으로만 했던 대답을 이제야 했다.
“할머니 아팠어. 뭐, 그래서 내 친구도 소속된 팀도 다 팔아먹었지. 개새끼 된 덕에 할머니는 구했는데…… 그래서 벌 받았나 보지.”
그렇게 구한 할머니를 대침식때 잃은 거다.
“차라리 팬들에게 좀 도와달라던지. 쯧.”
“그러게. 유유 하면서 구걸이라도 할 걸 그랬어. 이럴 줄 알았으면.”
왠일로 날카롭게 반응하는 대신 자조섞인 음성으로 후회를 뱉어내었다.
그런 도원에게 병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도원이 잠시 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었다.
화면이 켜지자 어렸을 적 도원의 모습과 그를 보듬고 웃고 있는 노파의 얼굴이 있었다.
“퇴원한 할매가 계속 물어보드라고. 왜 요즘은 시합 방송 안 하냐고. 봐도 모르면서 꼬박꼬박 챙겨봤거든. 울 할매가.”
그런 도원의 말에 병화는 잠시 자신의 손바닥을 펴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도원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렸다.
빠악!
“켁! 이 아재가 미쳤나! 말 좀 섞어주니까…….”
“씨파. 꼭 해보고 싶었다.”
“헐?”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린 병화를 보며 도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런 도원에게 병화가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듯 정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싸인도 받았었는데.”
“뭐?”
“네놈 팬이었으니까. 내 흑역사지.”
“…….”
병화의 중얼거림에 도원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그저 코를 찡긋하고 찌푸릴 뿐이었다.
“어흐으응…….”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둘은 동시에 돌아 보았다.
“이 새낀 왜 울어?”
장웨이였다.
둘의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 그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때 장웨이가 버럭 소릴 내질렀다.
“나도 팬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라새끼야!”
“……싸인이라도 해줘?”
뜬금없는 커밍아웃에 도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장웨이가 콧물을 팽하니 풀어내며 대답했다.
“그래.”
“헐? 진짜?”
“그래. 이 전쟁 끝나면.”
장웨이의 말에 도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그렇게 하나둘씩 새벽바람을 맞으며 이 전장의 끝을 향할 최정예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