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후퇴는 없다
* * *
“범위마법?”
창기병 공격이 먹히지 않은 이유는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이쪽에도 마법전력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들의 범위 마법이 무한정 펼쳐질 정도라고?”
지휘관의 질문에 보고를 올리던 참모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범위를 최대한도로 늘리되 극도로 위력을 낮춘 범위 마법이라 합니다.”
“빌어먹을…….”
그러면 이해가 간다.
비행체는 민감한 물건이다.
아무리 단순화한다 해도 두 날개가 있어야, 비행이 가능하다.
아니 날개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민감하다는 점이, 바로 비행체들의 공통적인 약점이다.
“일반적인 비행체라면 모를까 그 덩치가 작은 비행체의 경우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 전격 마법의 경우 전파교란도 가능해서…….”
“오기원 이 개자식!”
이쯤 되자 뭐든 욕설은 인류의 배반자인 오기원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어쩔 수 없지. 산개 형태로 가는 수밖에…….”
범위마법이 펼쳐지고 있다지만, 천지 사방을 뒤덮는 형태는 아니었다.
지금처럼 마치 화살의 일제사처럼 날아가는 게 아니라 산개해서 전 방위로 날아가면 일부라도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적들의 전진을 막는 데에는 의미가 없다.
“아직 드론의 수는 충분합니다만.”
“방금 놈들이 북진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어. 중국애들 난리 났어.”
지휘관의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했다.
“예?”
“미국쪽도 마찬가지로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그뿐이 아니야. 다른 국가들에도 균열을 통한 공세가 연이어지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있었어.”
가슴이 철렁하는 소식에 참모는 물론이고 상황실의 모든 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니 여유가 넘친다는 생각을 버려.”
“하, 하지만, 이쪽이 주력인 만큼 다른 국가들도…….”
“어느 나라가 자기네 국민이 죽어 나가는 마당에 계속 지원을 해 줄거 같나?”
지휘관의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지금으로썬 무작정 꼬나 박을 수 없어. 일단 상황 보고 올려. 그래도 꼬나 박으라면 꼬나박고.”
“알겠습니다.”
* * *
차준우 사령관은 몇몇개의 모니터만을 주시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적의 본진까지의 거리는?”
“아직 100Km는 더 남았습니다.”
“오늘 전진 거리는?”
“15Km로 정도입니다만…….”
15Km를 가기 위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한민국의 전차 전력이 멈추어 섰다.
물론 지금 구난전차들을 이용해 최대한 성한 것들을 끌어와 수리 중에 있지만, 그 중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나마 동이 트기 전에 그동안 폐기 대상이던 구 북한군의 전차 전력이 수리와 개조를 마치고 투입될 것이기는 했다.
어쩌면 그게 나을 수도 있다.
지금은 상식적인 현대전이 아니기에 궤도만 굴러가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퀴 달린 탈 것을 운용하기에 전장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기저기 마법과 포성이 울리는 가운데에 불도저들이 투입되어 아군과 마물들의 사체를 밀어내고 있었겠는가.
이쪽의 포탄 재료로 사용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오프로드 차량들을 운용하기 위한 길을 내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85Km를 간다 해도 적들을 만날 수 있을까?”
차준우 사령관의 중얼거림에 다들 입을 닫았다.
막말로 지금은 놈들이 떼지어 나왔기에 이런 승부가 가능했다. 마치 마초적인 전술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치고 빠지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일이 어찌 될지 모른다.
“아, 아군의 조력자들은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래. 그렇겠지. 그럼 목적지에 도달할 때 즈음이면 소환자와 강림자 전력이 얼마나 남을까.”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금도 소환자와 강림자들이 길을 열어주면 군대를 투입해서 어거지로 밀고 올라가며 겨우 진격을 해 낸 것이다.
“무인 전투사단에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연결해.”
사령부 내부로 드론등을 운용하던 전투 사단의 보고가 들어왔다.
묵묵히 듣고 있던 차 사령관과 작전참모들은 점점 고개를 떨구었다.
“사령관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조차도 죄송하다는 표정의 작전장교의 말에 차 사령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라도 방법이 있어야 명령을 내던 말던 할 것인데 지금은 어디 하나 택할 선택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령관은 그였기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을지 대장군님을 잠시 부르게.”
“알겠습니다.”
결국 오랜 침묵 속에 내린 답은 을지부루를 청하는 것이었다.
* * *
“상황이 더럽디?”
도착한 을지부루가 들어서며 질문부터 던졌다. 그의 질문에 차 사령관이 얼굴을 구기며 애써 담담히 답했다.
“예. 좀 그렇습니다.”
“어케하면 되간? 이대로 뚫고 가 달라면 내래 가갔어.”
“처음 작전을 입안 할 때에도 말씀드렸듯……. 그게 의미 없다는 것은 잘 아시잖습니까.”
“방법이 없을 때에는 그저 직진이야. 대가리만 따면 되는 일 아니갔어?”
“그것도 전력이 온전할 때 가능한 상황이잖습니까. 오늘도 역소환된 강림자와 전사한 소환자들도 많았습니다.”
그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까지 소환자가 된 인원까지 긁어 왔다.
그 중에는 고빈처럼 훈련이나 은총을 통해 강해진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극소수였다.
그런 극소수의 소환자들은 전장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강림자들을 부렸다.
그런데 그것을 적들은 하나씩 골라내어 죽여 없앴다.
그렇게 죽어 나간 소환자들이 적지 않은 수였다.
이곳 전장에 투입된 소환자의 숫자가 오천이다.
그 외에 후방에 남은 숫자는 이천이 좀 안 된다.
통일한국의 인구수에 비하면 만 단위에 한 명 꼴. 그나마도 이게 적은 수는 아니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인구수 차이가 스무배가 되었지만, 소환자의 수는 다섯배가 조금 넘으니까.
미국은 더 적었다.
그나마 연구를 통해 확인된 것은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많이 벌어졌는가에 영향을 받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유럽의 경우도 땅덩이나 인구수에 비해 꽤나 높은 비율의 소환자가 있었으니까.
다만 그쪽은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덕에 소모된 숫자가 많았고 말이다.
“역소환된 강림자의 숫자가 천오백칠십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전사한 소환자의 숫자가 육백십칠명입니다.”
작전장교가 덤덤하게 전사자 수를 읊었다.
슬프게도 오늘 죽은 군인들의 숫자는 만단위가 넘어갔다.
그럼에도 그 숫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일단 야간은 우리가 버티겠습니다.”
“밤이 지나면 뾰족한 수는 있고?”
부루의 질문에 차 사령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일까지 더 길을 열겠습니다.”
“아서라우. 첫날 전력이 가장 강한 것을 내가 아는데 무슨 개소리간? 죄 죽어 나자빠진 다음에 도착하디 않간?”
“그래도 그게 맞습니다.”
차 사령관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부루와 그가 이끄는 부대는 강력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쩌면 오로지 전진만 한다면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도달점에는 오로지 부루 혹은 부루가 이끄는 소수의 강림자들만 남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군주급보다 더 상위의 존재와 싸워야 한다.
부루가 말이다.
아무리 부루가 강하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차이가 크다.
아군이 만전을 다한 상태에서 적들은 지금처럼 방심을 한다는 전제하에 이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간?”
부루가 어두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낙하하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공수부대.
처음 입안된 내용중 하나다.
하지만, 적들도 바보는 아니다. 금일도 동원되었던 폭격기중에 되돌아온 기체는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그 중에 조금이라도 깊게 들어간 것들은 무언가를 떨구지도 못하고 다 하늘에서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전선이 형성된 지역에라도 떨구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방법을 취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 다른 곳도 난리라하디 않았네?”
“예…….”
“놈들은 이걸 전투라 생각하디 않는 거이야. 우리와 다르단 말이디.”
부루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전투라 생각하디만, 놈들은 처형식이라 생각하는 것이디. 아직도 모르갔네? 지금 우린 놈들이 만들어 놓은 사형대 위로 한 발 한 발 들이고 있는 거란 말이디.”
부루의 말에 다들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애써 무시하며 묻어 두었던 생각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마치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마냥.
아이가 의외의 행동을 하면 그때까지 힘 조절을 해 주던 어른이 조금 더 힘을 써서 놀리는 것마냥…….
그렇게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부루가 지금 한 말이 더욱 와닿았던 것이다.
어쩌면 저게 맞을 수도 있었다.
“아끼다 똥된다는 말이 있디.”
부루가 담담하게 답했다.
“꼼수를 부릴수록 놈들은 그걸 깨는 재미만 줄 뿐이디.”
오로지 침묵만 감돌았다.
그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으니까.
“내일은 멈추지 말자우. 저 끝에 몇이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디. 가보자우. 얼마나 많은 피가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한번 열어 보는 거이야.”
“후우.”
차 사령관의 입에서 길고 긴 한숨이 뿜어졌다. 그때 부루가 적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섬광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피를 얼마나 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이디. 어떻게 흘리는가가 중요한 거이야. 이 전쟁은 그런 전쟁이고 말이디.”
그 말을 한 부루가 천천히 뒤돌아 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좀 쉬어야 갔어. 밤새 잘좀 부탁하갔어.”
“예…….”
“아마 지금이 내가 여기에 오는 마지막이 될 거이야. 알간?”
그 말에 다들 대답대신 이빨을 꽉 깨물었다.
가슴이 무겁다.
목은 매인다.
하지만 어떠한 말도 목구멍을 따라 튀어나오지 못한다.
“두만강이라 했디? 거기서 다 같이 먹이나 감자우. 시원하게 말이디.”
그 말을 끝으로 부루가 막사를 나섰다.
그가 나가고 그 방향을 멀거니 바라보던 차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무인 전투사단에 명령 전달해.”
“예.”
“내일은 없다. 지금부터 최대한 효율적으로 숫자를 줄이는 데 목적을 둔다. 전방은 우리가 몸으로 때울 테니까 하나라도 더 죽이라고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포병군단에도 연락해.”
“알겠습니다. 포신이 엿가락처럼 휘어도 좋으니 조명탄이 필요없을 정도로 쏟아 부으라 하겠습니다.”
“그래.”
차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막사도 이제 걷지. 전부 차량으로 이동한다.”
“예?”
“뭐 더 필요한가? 이 상황에서.”
“하, 하지만…….”
차 사령관의 말에 다들 그를 말리려 다가왔다.
“여기에 몰려있는 호위병력을 놀릴 건가?”
그 말에 말리려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 전투에서 작전상 후퇴가 있을 거 같나?”
“없습니다.”
“알면 다행이군. 작전상 후퇴는 없다.”
“예!”
차 사령관의 말에 다들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퇴도 없다.”
“예!”
참모들을 바라보며 차 사령관이 독기어린 표정으로 다시 외쳤다.
“항복도 없다. 적어도 우리는 말이야.”
그제야 차 사령관이 빙긋 웃었다. 마치 오랜 고민을 털어낸 것처럼 말이다.
그 미소에 모두가 화답했다.
“예!”